<늘푸른나무/Gallery/미켈란젤로의 비밀(4)/2009년 5월 15일>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비밀(4)

김 상 신

미켈란젤로가 받은 사상적인 영향

유대전통의 영향을 받기까지

아버지가 지방파견 근무 중에 태어나 병약한 어머니 때문에 시골의 유모 밑에서 자라다가 6살 때 별거 중이던 어머니마저 잃고 10 살 때에야 계모와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프로렌스로 불려와 읽고 쓰기를 배우기 시작한 시골뜨기 소년 미켈란젤로가 메디치가의 로렌조의 보살핌 가운데 자신 앞에 갑자기 펼쳐진 세계 최첨단의 교육환경 가운데서, 더욱이 감수성이 가장 강한 10대에 과연 무엇을 배웠으며 그것들이 그의 사상과 생애와 예술가운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은 미켈란젤로를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지만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당시 프로렌스의 상류층, 젊은 자제들의 교육과목들을 통해서 이탤리어 문법에 라틴어 또는 희랍어를 공부하고 버질이나 단테의 시를 기본으로 공부하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희랍과 로마의 신화들을 공부하고 구전되어오던 기독교의 가르침과 성자들의 이야기도 배웠을 것이며 거기에는 물론 구약과 유대인들의 이야기도 들어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다는 기독교의 입장을 증명하는 입장에서였을 것이다. 그 외에도 상류층 자제들은 전쟁에 나가서나 사회에서 미래 지도자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무술도 배우고 운동도 하며 예술분야도 공부하였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며 시를 쓰기를 좋아하였지만 무술이나 운동에는 별 취미가 없었던 듯 하다.

이러한 기본교육 외에 당시 유행하였고 미켈런젤로와 그의 스승 피고(Pico)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든 것은 고대희랍의 를 교재로 한 윤리교육이었다. 후에 위작(僞作)으로 밝혀진 <신탁(神託,Sibyllines, 고전적인 세계의 신비적인 12 여 사제들의 신탁을 모아 만들었다는 12권의 책)과 함께 가장 권위 있는 고대 희랍의 문서로 전수되어 온 이것은 250개의 시구와 경구로 구성되어 있는 도덕 입문서인데 문제의 발단은 이것이 희랍철학자로 가장한 한 유대시인의 위작으로 판명되었다는데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유대계 시인이 마치 존경 받는 희랍의 철학자인양 가장하고 이교도 이방인들이 그들의 생활습관을 버리고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도록 토라와 예언자들을 인용하면서도 유대인의 신분을 숨기기 위하여 우상숭배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비난을 자제하면서 주변사람들의 행동과 사회에 대한 도덕적인 행동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받은 교육은 처음부터 기독교는 물론, 유대교의 가르침과 이교도들의 경구 등이 뒤 범벅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Ficino와 Pico 같은 대담하고, 혁신적이며, 친 유대적이고 때로는 이단적이기까지 한 스승들의 사상적 영향을 받으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디자인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게 되었으며 전형적인 기독교나 당시의 신화적인 소재들 보다 유대전통의 소재들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시스틴 채플의 천정벽화에 그대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유대사상의 영향

Ficino나 Pico에 의하여 미켈란젤로에게 특히 그의 후기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유대교에 관해서 간단하게나마 알고 지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듯 하다.

유대교 하면 구약성경이나 특히 모세 5경으로 대표되는 율법만을 생각하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미드라쉬(Midrash)이다. 이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원년 1년부터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주로 구전으로 전수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설과 경전에 대한 해석 등을 모아놓은 것으로 율법보다는 신학에, 인간의 마음보다는 영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겠다.

유대교에 정통한 한 학자의 견해로는 미켈란젤로가 스승들을 통해 미드라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구약의 장면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단지 구약의 장면을 읽고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신학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추어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시스틴 채플의 <에덴동산>을 예로 들어 보면, 중세기나 오늘날의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금단의 열매’는 사과이다. 그런데 미드라쉬에 의하면 ‘금단의 열매’는 무화과이며 시스틴 채플의 <에덴동산>에서도 ‘금단의 열매’는 무화과로 그려져 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금단의 열매’가 무화과라는 미드라쉬의 주장에는 또한 깊은 신학적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문제를 제기할 때에는 이미 그에 대한 해답도 갖고 계시다는 유대교의 사상은 선악을 구별하는 ‘금단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지시하였을 때는 어기고 먹었을 때의 조치까지도 이미 가지고 계셨는데 그들이 먹고 수치감을 갖게 되었을 때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수치를 가리게 해 주었다면 수치를 느끼게 한 원인 역시 무화과라는 주장이다. 미드라쉬의 내용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시스틴 천정벽화의 복원작업에 고문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던 이 학자는 시스틴 천정 벽화를 보노라면 현대의 학자들도 알지 못하고 무심코 넘긴 미드라쉬의 가르침들이 그림의 여기저기에 나타나 있다는 확신이 선다는 것이다.

유대전승 가운데는 미드라쉬 외에도 500여년 동안 방대한 유대의 법률을 집대성하고 주석한 탈무드(Talmud)가 있다. 탈무드의 특징은 소위 <탈무드 논리>라고 부르는 특이한 사고방식으로 질문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성을 신앙과 연계시키며 다양한 논리를 높이 평가하고 상반되는 의견을 존중하면서 그것들을 조화시키는데 강조점을 두는 것으로 무비판적이고, 비판적인 논리를 거부하며 다른 생각은 탄압하면서 일사 분란한 신앙을 강요하던 카톨릭교회의 그것과는 다른 태도로서 자신의 작품가운데서 다양한 레벨의 의미를 추구하고 상반되는 것에서 조화를 발견하려 하였던 미켈란젤로가 비록 깊이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스승 피코를 통해 탈무드의 정신에 관해 배우고 받아들인 결과라고들 생각한다. 왜냐하면 피코는 당시 유럽에서 탈무드에 관한 자료들을 가장 많이 구비한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피코가 유대교 전승가운데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수집한 또 하나의 자료는 이색적인 신비주의 전통의 Kabbalah에 관한 것이다. 카발라라는 말은 “받았다”라는 뜻으로 그 가르침이 너무나 신비하고 복잡하여 스승에 의해 선택된 사람에게만 ‘주어진’ 감추어진 진리라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탈무드시대부터 사본이 전해져 왔지만 13세기에 스페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물론 타코와 미켈란젤로가 왜 카발라에 매혹되었고 어떻게 그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나? 하는 것을 사료를 통해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미켈란젤로와 카발라를 다같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비교를 통해 힌트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물의 표면 아래에는 하나님의 “빛”이 숨겨져 있으며 그 빛이 열 개의 교통수단(Communicaiions)을 통하여 유한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카발라의 주요 주장이다. 이것은 “커단란 돌 안에는 이미 형상이 들어 있습니다. 조각가가 하는 일은 그것을 보고 돌을 쪼아 끌어내는 것이지요”라는 미켈란젤로의 생각과 너무나도 일치하는 것이며 인간의 육체에도 하나님의 불꽃이 들어 있다고 하는 주장에서 미켈란젤로는 당시 카톨릭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의 나체까지도 신성한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카발라에서는 인간의 성(性)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였으며 남성과 여성의 차이도 달리 생각하였다. 양성(兩性) 다 하나님의 동등한 한 부분으로서 하나님은 양성을 완전하게 혼유한 존재로 하나님은 남성이고 또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카발라의 생각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의 성에도 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원자의 양성과 음성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되는 것을 조화시키고, 극단적인 것에 균형을 맞추며 숨겨있는 사물의 내적인 핵심의 힘을 끌어낸다는 것은 옛 종교인들의 마음뿐 아니라 어느 시대의 예술가들이나-과학자들-의 마음에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숫자와 히브리 알파벳에 대한 카발라의 특별한 의미부여가 관심을 끈다. 히브리 문자에는 숫 적인 의미와 영적인 가치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카발라에 의한 문자의 의미를 알면 미켈란젤로가 그의 천장벽화의 여기저기에 물래 집어넣은 히브리어 알파벳에서 그의 의도와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시스틴채플 천정벽화의 복원사업에 고문으로 직접 참여하였던 유대계 전문가는 미켈란젤로가 처음에는 원치 않았음에도 시스틴 채플 천정벽화를 그리도록 마음을 바꾼데에는 그가 영향받은 카발라의 가르침을 암믁적으로나마 전달해 보려는 더 깊은 뜻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하고 있다.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깨닫기에는 아직 너무나 젊은 형성기에 있었든 젊은 예술가에게는 치기가 발동할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호에 계속)

(시카고 교외 Skokie에 거주하는 김상신님은 은퇴한후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한편 서양사와 교회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쳔의 역사해석','역사와 희망'등의 역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