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미켈란젤로의 비밀/2010년 1월>

인간의 모습(노아와 홍수)

천정 벽화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세 번째 부분의 그림들은 노아와 홍수 그리고 그에 관계된 세 개의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과의 화해 그리고 구원의 미래에 대한 약속을 보여주는 그림들이라는 교회당국의 공식 설명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타나는 그 많은 사건들과 인물들 가운데서 유독 노아를 세 번씩이나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미켈란젤로의 비밀 10-우주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설명을 참조하기 바람) 그리고 세 개의 그림들이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그려져 있지도 않다는 것에도 의문이 생긴다.

제사 드리는 노아와 그 가족들

첫 번째 그림은 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다음에 나오는 홍수의 장면이 끝난 뒤 노아와 가족들과 짐승들이 물이 말라 단단해진 땅에 상륙한 뒤 하나님께 자신들을 구원해 주심에 감사 드리기 위하여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잡는 장면으로 여기에서 (붉은 옷에 흰 수염의) 노아는 팔을 들어 손 가락을 하늘로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제단이 이방 신들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한 분 하나님을 위한 것 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방주를 전형적인 배모양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무지개가 뜬 자연을 배경으로 정박해 있는 방주 옆에 각종 짐승들이 도열한 가운데 제사를 드리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비슷한 장면들과 비교할 때 무척 단출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장소도 협소한 실내인 듯 하고 제단도 생각보다 낮으막 하며 짐승들도 양과 소와 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미켈란젤로는 미드라의 유대 전통에 대한 이해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드라에 의하면 노아는 선지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후에 야웨 신이 모세에게 지시하였던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동물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사자나, 낙타나 당나귀 같은 짐승들은 제물에서 제외하였다는 것이다. 미드라의 전승을 잘 알고 있던 미켈란젤로는 그 점을 충실히 반영하다 보니 구약의 기사만을 보고 그린 다른 화가들과는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노아 홍수

두 번째 나오는 그림이 3부의 중심이 되는 홍수장면이다. 오른쪽 윗부분 천막과 나무 왼쪽으로 하얀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1795년 바티칸 화약고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때 진동으로 떨어져 나간 부분으로 물론 천정에서 떨어진 부분은 박살이 났다. 이 부분에 ‘물과 천둥과 벼락으로 쏟아져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려져 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감히 대가의 작품을 복구해 보겠다는 화가가 나타나지 않아 어설픈 복구보다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미켈란젤로에 대한 예우라고 결론짓고 그대로 놓아두었다고 한다.

이 그림의 특징은 방주와 그곳에 실려 있는 짐승들에 대한 강조 보다는 물이 차올라 오면서 살기 위하여 좀 더 높은 곳으로 기어 오르려 애쓰는 군상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어차피 죄로 인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려 했던 듯 하다.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방주의 모습이다.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배의 모양은 전혀 없고 상자(box)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습에 위로 향한 굴뚝 같은것이 있다. 원래 유대경전인 토라에서는 ‘방주’를 teivah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단어에는 보트나 항해하는 배라는 뜻은 전혀 없고 돛도 없는 ‘상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탈무드나 미드라의 설명에 의하면 홍수 때 노아가 올라 탔던 ‘방주’는 ‘상자’와 같은 것으로 스스로는 항해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숨결’에 의해서 또는 ‘하늘의 바람’에 의해서 물위를 떠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구원임을 강조하는 설명이다. 이러한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라 미켈란젤로는 시스틴 채플 천정에 ‘박스’ 모양의 방주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군상들이 대부분 나체로 그려져 있지만 가끔 의상을 갖추어 입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특히 왼쪽 끝에 당나귀에 기대 서있는 주황색의 옷을 입은 여인과 오른쪽 끝, 바위 위에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머리모양을 하고서도 빨간색과 황금색의 옷을 제대로 입고 있는 두 인물이 보인다. 황금색과 빨간색은 로마 시를 상징하는 색깔로 로마도(여기에서는 바티칸을 의미)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미켈란젤로는 이야기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노아의 술 취함

노아가 술 취하여 벌거벗은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 마지막 장면은 물론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홍수가 끝나고,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고(이 그림의 왼쪽 부분 밖에서 무언가를 심고 있는 노인의 모습), 그 소출로 포도주를 만든 노아는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다. 위의 셈과 아벳, 두 아들은 고개를 돌리고 옷을 들고 들어가 노아의 벗은 몸을 덮어주려고 한다. 반면 막내인 함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형들에게 저것 좀 보라는 제스츄어를 보이고 있다.

 

이 장면에 대한 창세기 9장 24절의 “노아가 술에서 깨어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한 일을 알고” 란 구절에 대하여 탈무드는 단지 말로서 한 일이라면 어떻게 노아가 술이 깨었다고 알 수 있었을까? 의문을 제기하며 랍비 사무엘은 그것은 아버지 노아에 대한 함의 동물적인 성적 희롱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것은 함의 자손들에게 대한 노아의 가혹한 저주에도 어울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미켈란젤로는 탈무드에서의 의문과 랍비 사무엘의 결론을 받아들여 함을 동성애자로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형들과 달리 노아를 바로 처다 보는 자세도 그렇고 형 아벳의 몸을 팔로 둘러 싸고 있는 모습 등이 당시 유행하던 동성애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화육(새 포도나무를 심는)과 수난(피를 상징하는 포도주)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거의 죄를 덮어주시는)을 암시하는 그림이라는 로마교회의 공식적인 설명과는 달리 이 소재에 대한 탈무드의 가르침과 미켈란젤로의 성적 성향을 나타내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노아에 관한 3부작에서 미켈란젤로가 의도하였든 것은 에덴동산에서의 뱀과 천사의 그림과 같이 인간 영혼의 이중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는 해석도 있다. 홍수 이후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제사 드리던 노아의 영혼에는 향락을 추구하던 물질적이고 동물적인 경향도 같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연대를 바꾸어 가면서 홍수 장면 앞뒤에 인간의 다른 모습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어쩌면 미켈란젤로는 천정벽화를 그리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 그림을 보면서 하나님께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가? 아니면 한 걸음 더 멀어져 가고 있는가?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카고 교외 Skokie에 거주하는 김상신님은 은퇴한후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한편 서양사와 교회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쳔의 역사해석','역사와 희망'등의 역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