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간
천정 벽화 가운데에서도 한 가운데인 중간에 있는 3개의 그림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그린 것들이다. 아담을 만드시는 하나님, 이브를 만드시는 하나님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는 장면과 죄를 범한 후 천사에 의해 쫓겨 나는 장면의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그린 <아담의 창조>는 시스틴 천정벽화 가운데서 압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걸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흙으로 막 빚어 만든 아담은 기운이 없고 나른 한 젊은이의 모습이다. 아직 하나님의 기운을 받기 전 상태이다. 하나님의 오른 손과 아담의 왼손이 맞닿으면서 생기를 받으려는 순간을 그린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기운을 받기 전의 무기력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같이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닌지.
이 그림을 자세히 보노라면 하나님이 왼팔로 감싸고 있는 여인은 누구인지? 그 아래에 있는 어린 아이는 누구이고 왜 주위에 여러 천사들이 하나님을 부추기는듯한 모습으로 에워싸고 있는지? 퍼플 색깔의 망또 같은 것은 무엇이며 아래로 흘러내린 진초록의 스카프 같은 것은 무엇인가? 또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누구인가?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을 만드는 순간인데! 하는 의문들이 계속 생겨난다.
먼저 여인의 정체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 이미 이브도 만드실 것을 알고 계셨다는 전제에서 영적 배우자인 아담을 기다리는 이브의 영이라는 설과 지혜의 여신인 소피아를 상징한다는 주장이 있다. 소피아는 희랍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지만 그 근거는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찾고 있다. 유대인들의 기도문 가운데 “지혜로 인간을 만드신(form)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는 표현이 있다. 이 지혜가 희랍에서는 소피아로 표현되었고 희랍의 고전과 유대교 사상에 정통하였던 미켈란젤로는 그것을 수용하여 표현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인 아래 하나님의 왼손이 닿아있는 어린 아이는 아담에게 전달해 주려는 아담의 영혼이라는 해석이다. 어린 아이와 아담의 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다. 아담은 왼손을 뻗어 하나님의 생기를 받으려고 하는데 전통에 의하면 심장이 왼쪽에 있어 모든 혈관들과 이어졌듯이 왼손을 통하여 모든 축복과 좋은 것들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왼손 잡이였던 미켈란젤로가 이점을 의식하고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의 이미지가 등뒤로 휘날리는 망또와 아래로 흘러내리는 스카프 같은 것들로 복잡하게 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는 오랫동안 아무도 설명을 하지 못하고 지내왔다. 신비에 싸여 내려오던 이 이미지가 1975년에 한 유대게 미국 외과의사에 의하여 명확하게 들어났다는 것이다. 이 외과의사가 이 천정벽화를 처음 보는 순간 그림의 웅장함에도 놀랐지만 자신이 해부학 시간에 본 인간 두뇌의 구조와 너무나 흡사한데 놀랐다는 것이다. 대뇌, 소뇌, 후두엽, 피질, 뇌간 등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하나님 이미지 안에 인간두뇌의 완전한 해부도를 집어 넣은 것이다. 여기에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하는 의문이 다시 생겨난다.
미켈란젤로가 인간 신체구조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조각한 인체의 외부에 대한 섬세하고 생동적인 모양만이 아니라 지난 회에 소개한 하나님이 물과 하늘을 가르는 장면에서 배경이 된 것이 신장주머니라는 주장 역시 사실이라면 그는 인체의 내부 구조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든 게 사실이며 혹자들은 미켈란젤로가 당시에는 금지되어 있는 인체해부 현장도 몰래 참관했으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결과 당시에는 일반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두뇌의 모습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두뇌와 연결하여 그려 보여주었으나 20세기 후반까지도 아무도 알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자기만이 아는, 그렇지만 알렸다가는 큰일나는 비밀을 어떻게든 표현해보고 싶다는 예술가적 호기심도 작용했겠지만 그럴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유대학문을 연구한 학자들의 주장이다. 중세기 유대 신비주의의 하나인 카바라(Kabbalah)에서는 두뇌는 신비롭게 지혜와 연결되어 있는 조직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지혜와 연관된 뇌는 전체가 아니라 오른쪽 뇌라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여기에 그린 뇌가 바로 오른쪽 뇌로서 그는 이미 유대학문에 능통한 스승들을 통하여 이것을 알고 있었고 창조자 하나님을 그릴 때 자연스럽게 자신이 알고 있던 뇌의 해부도를 적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은 무엇인가? 뇌 속에 있는 신경센터를 중심으로 갈라져 있는 신경들의 교차점을 상징한다는 설명도 있지만 유대전통에 따른 신비적인 해석에 더 관심이 간다. 유대교의 탈무드나, 미드라 그리고 카발라에 의하면 여자의 자궁에서 임신되는 남자의 정액은 남자의 성기를 통해 전달되지만 원래는 뇌에서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창조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들, 임신되기를 기다리는 미래의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뇌에서부터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후예라는 뜻이 그 곳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패널에서는 이브를 만드시는 하나님이 그려져 있다. 비교적 간단한 구도이지만 여기에도 전통적인 기독교의 멧세지 보다는 유대교의 전통이 들어 있다고 한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서구적인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이 이브를 만들 때 아담의 갈비뼈를 꺼내어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 경전에 의하면 갈비뼈가 아니라 아담의 옆구리(the side of Adam) 에서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랍비들의 설명에 따르면 기고만장할까 봐 머리에서 만들지도 않았으며 너무 천대받을까 봐 발에서 만들지도 않았고 동등한 삶의 동반자로 만들기 위하여 옆구리에서 만들었다는 것인데 여기에서도 갈비뼈를 취하는 모습은 안보이고 잠자는 아담의 옆에서 하나님을 향해 일어서는 이브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패널에서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특별한 구도로 그렸다. 가운데 나무를 감싸고 있는 뱀을 중심으로 과일을 받아먹으려는 아직은 죄를 짓지 않은 상태의 아담과 이브가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는 정의의 천사에 의하여 에덴동산을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한 장의 그림 속에 같이 있는 구도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금단의 열매’ 이다. 기독교를 중심 한 서구의 일반적인 전통에서는 ‘금단의 열매’는 사과이다. 대부분의 서양의 그림이나 벽화에서 ‘금단의 과일’은 사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유대교 전통에서만은 다르다. 탈무드에는 랍비들이 서로 토론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이미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그 안에 만들어 놓고 계신다”는 것이다. 즉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과일’을 먹고 벗은 것을 알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을 때 무화과 나무 잎으로 가릴 수 있게 하였다는 경전의 기록이 있는데 무화과 열매를 먹었기에 무화과 나무에서 해결책을 찾게 하였다는 것이다. 논리의 비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뱀이 이브에게 주는 과일이 분명 빨간 사과가 아니라 푸른 무화과 열매이다. 미켈란젤로는 당시 공인된 기독교의 견해가 아니라 유대교의 해석을 따랐던 것이다.
또 왼쪽의 그림에서 아담은 이브에게서 과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손을 뻗어서 무화과를 따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것 역시 전통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이브가 주어서 먹었다”는 아담의 변명과는 달리 아담도 이브와 똑같이 죄를 지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유대전승에 의하면 이브가 뱀에게 유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담이 이브에게 하나님의 분부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여 속아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는 원죄에 대하여 똑 같은 책임을 같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미켈란젤로는 유대전승의 손을 들어 주어 원죄에 대한 다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리고 유대전승의 미드라에서만 뱀이 팔과 발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여기 그려진 팔과 발을 가진 뱀 역시 유대전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패널의 왼쪽 그림을 보면 칼을 든 천사가 아담과 이브를 쫓아 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아담과 이브는 이미 왼쪽의 아담과 이브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죄지은 인간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의로운 천사는 사악한 뱀과 똑 같은 판에 밖은 듯한 쌍둥이 모습이다. 몸짓과 자세도 똑같고 둘의 포즈를 합치면 인간 심장(Heart)의 모양이 된다. 여기에서 미켈란젤로는 평소 고민해오던 인간의 2중성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유대철학에 의하면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일생 동안 내적인 상충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즉 선을 행하려는 자아와 악을 행하려는 자아-뱀과 천사로 상징되는-가 에덴동산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양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켈란젤로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원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 선택과 자유 의지의 가능성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미켈란젤로의 비밀(11)-하나님과 인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