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역사의 미스테리/2014년 12월>

<역사의 미스테리> 열 두번째 이야기

성배(聖盃, the holy Grail)에 얽힌 미스테리

‘다 빈치 코드’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성배’의 향배를 찾아 가다가 결국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성배’의 비밀’을 찾아내는 랭던의 이야기로 캐톨릭 교계와 세계를 뒤흔들었던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로 예수의 ‘성배’는 21세기에 들어와 또 다시 종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독서계의 관심을 사로 잡았습니다.

종교마다 나름대로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으며 귀하게 여기는 성물(聖物)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불교에서는 사찰마다 크고 작은 탑들을 만들고 석가모니의 사리에서부터 고승들의 사리에 이르기 까지 격에 맞도록 귀하게 보존하고 있으며 캐톨릭 교회에서도 마리아 상을 위시해서 다양한 성자들의 성물들이나 기적을 일으켰다는 물건들을, 심지어는 개신교의 종교개혁 깃발을 든 마틴 루터가 우상숭배요 미신이라고 공박한 것들 까지도 귀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방정교회는 아이콘이라고 하는 성상이나 성화들을 특별히 신성시 하기도 합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서방세계에서 책이나 영화로 꾸준히 관심을 보여준 ‘성배’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리 낯설은 것은 아니지만 막상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대답하기가 궁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21세기 근래에 와서 더 심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성배에는 미스테리가 따라다니기 마련이고 그 미스테리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기에 댄 브라운 같은 소설가들은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서 미스테리를 더해 가면서 21세기에 ‘다 빈치 신드름’을 일으킨 것입니다.

성배란?

‘거룩한 잔’이란 뜻의 성배는 흔히들 예수께서 로마군사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기 전 12제자들과 더물어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할 때 포도주를 나누며 사용했던 포도주 잔이라고 하여 the Holy Grail 또는 the Holy Chalice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 26장 27-28절에는 분명히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라고 하셨습니다. 매우 엄숙한 의식이고 돌려오는 잔은 무척 무겁게 느껴졌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이 예수와 제자들이 최후만찬을 할 때 사용했던 주방의 식기 가운데 하나였는지 아니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배낭에 넣고 다니며 편리하게 사용하던 식기 가운데 하나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최후만찬을 위해 예수님이 따로 준비해 둔(가롯 유다가 회계책임자니까 어쩌면 그를 시켜 준비했을지도 모를) 하나님의 순수한 본질인 거룩함이 듬뿍 담겨 있는 특별한 잔인지, 포도주를 담아 돌렸다는 것 외에 그것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후대에 와서 다른 또 다른 저자들에 의해 다른 내용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면서 성배 역시 다양한 의미들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성배는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된 포도주만을 담았던 용기만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흘린 피를 담았던 용기이기도 하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19장 34에 보면 로마병사가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다는 기사가 있지만 그 피를 담아 보관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으며 설사 그렇다 하드라도 만찬에 사용했던 용기와 그것이 동일한 것인지도 분명치 않으나 이러한 후대의 전승이 추가되면서 성배의 가치와 의미는 더욱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쫒겨다니며 예배와 성례전을 행해야 했던 초대교회에서는 어떤 용기를 사용하여 성찬식을 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은 초기의 교회들은 저마다 지금 성당이나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모양의 포도주 잔들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고 교회들의 재정형편이 나아지면서 보석까지도 박은 보다 고귀한 모양의 포도주 잔들이 유행하였습니다만 그것들을 성배(聖盃)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성유물과 성배

카톨릭 교회에서 성물이나 성유물에 관한 관심이 부쩍 일어난 것은 중세기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만찬과 세례예식 정도의 간소한 종교의식을 가진 극히 관념적인 기독교는 당시 이교도들에 비하여 개종자들에게 신심을 돋우기 위하여 보여줄만한 성물이나 축제가 부족했습니다. 중세기로 들어서면서 이교도들의 축제였던 ‘봄의 축제’를 기독교의 부활절과 결합하여 기독교 최대의 명절로 축하하게 되었으며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성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말씀(logos)이 참 육신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기독교에서 불교의 사리와 같이 그 육신의 일부라고 보여줄 수 있는 유해보다 더 강력하고 감명을 주는 것은 없겠지만 부활하신 예수에게서는 그러한 육신의 흔적을 기대할 수 없기에 그의 삶과 고난과 죽음과 관계된 유물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기 예수를 뉘였던 구유, 가시 면류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목 마르다” 하였을 때 우슬초를 찍어 입을 적시게 하였던 스폰지,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찔렀다는 창, 로마의 형틀이었던 진짜 십자가, 수의 그리고 성배 등에 Holy란 이름을 덧붙여서 신비한 능력을 지닌 성물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물들이 11세기 제1차 십자군(기원 1096-99) 이후 유럽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나 사도들 그리고 예수의 가족들의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람들과 교회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저마다 성지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가져와 그럴듯한 이야기(설화)와 함께 성물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성물붐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물론 대부분은 도굴꾼들과 장사꾼에 놀아난 것들입니다. 당시 교회의 골치꺼리는 이 성물들의 진위를 확인해 주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수많은 물건들이 성물로 교회의 한 자리들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비근한 예가 예수께서 달리셨던 십자가형틀의 나무조각이라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수 있는 나무조각을 1000여년이 지난 후에 바로 그것이다라고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 True Cross’로 불리는 그 귀한 성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성당들이 속출하는 바람에 그것들을 다 모아놓으면 숲을 만들수 있다는 풍자가 나올 정도였으며 파리의 한 성당에는 예수의 ‘가시면류관’이라는 것이 전시되어 있지만 같은 주장을 하는 성당들이 여러 곳에 서 나타나 결론 없는 진위 시비를 벌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요즘도 가끔 언론에 나오는 ‘튜린의 수의’는 아직까지도 성물의 대상으로 남아 있으면서 진위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심지어는 한때 병에 담긴 ‘마리아의 우유’라는 것 까지도 나와 도는 바람에 교회당국이 서둘러서 ‘위조’라는 판결을 내렸으며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진위판정을 내려지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성물들도 많이 있지만 사실 1000여 년이 지나서 제원(諸元)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특정한 물체에 대해 자신있게 진위를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 오랜 세워동안 ‘성배’라고 주장된 성물 또는 그에 관한 기록들이 여러번 나타났었습니다. 주로 중세기에 나타났었지만 20세기 초에도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되기도 했었는데 간단히 소개한다면:

제노아 성배(왼쪽), 바렌치아 성당의 성배(가운데). 안디옥 성배(오른쪽)

가장 먼저 성배가 언급된 것은 7세기 앵글로 색슨의 순례자 Arculf로 <Se Locis sanxtus>라는 그의 문서로 예루살렘의 골고다 대성당 근처에서 성배를 보았으며 직접 만져보기도 하였는데 그곳 주민들이 무척 소중하게 다루며 경외하는 것 같았다고 쓰고 있습니다. 성배를 성지인 예루살렘에서 보았다는 유일한 증언이나 그 이상의 것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태리의 제노아 대성당에는 ‘sacro-catino’라 부르는 5각형의 조그마한 잔이 있는데 보석으로 만든 ‘성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가 이태리를 정복한 기념으로 이것을 프랑스로 보냈다가 수송도중에 깨지면서 단순 유리로 만든것이 판명되어 되돌려 진 것입니다. 청빈을 실천하였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보석으로 만든 ‘성배‘를 사용했겠느냐는 반론과 함께 ‘성배’로서의 권위는 이미 상실되었다고 보아야겠지요.

이보다 더 그럴듯한 성배는 스페인의 바렌치아 성당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마노라라는 보석으로 만든 조그마한 컵인데 1세기 경에 제작된 것이며 스페인의 성당안에 정교하게 만든 금 받침대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60년 스페인 고고학자 가 4세기에서 1세기 사이에 제작된 물품으로 근동이나 에짚트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것 까지는 확인하였으나 어떤 과학적인 테스트를 거쳐 확인된바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베드로에 의해 로마로 갔으며 교황들의 소유물로 전승되 오다가 어떤 경로로 스페인으로 가서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세기에 들어서 발견된 안디옥 성배(Antioch Chalice)입니다. 20세기 초 안디옥 근처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것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에 의해 6세기 경에 교회에서 성만찬 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잔일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성배’로의 가능성이 많이 떨어지고 현재는 뉴욕 메트로포리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성배에 관한 설화(이야기들)

성배에 관한 설화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중세기 12세기 말엽 프랑스의 시인 크레티앙이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에 성배에 관한 부분을 끼어넣으면서 부터입니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분명치 않지만12세기 아서왕의 전설을 실제 역사적 사실인듯이 기술한 죠프리 몬마우스(ca. 1100-1155)의 작품에다가 크리티앙이 기독교 테마의 이야기들을 섞어넣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크레티앵 역시 놀만디 정복 이후 프랑스에서는 잘 알려져 있던 켈틱 신화들에서 소재들을 빌려온듯 한데 그것들은 중세기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 의해 기록되어 내려오는 것들로서 그들은 기독교 전래 이야기들에 이교적인 이야기들도 집어 넣기도 하고 이교도들의 이야기에 기독교의 전래 이야기들을 섰어 넣기도 하였습니다.크레티앙 역시 그러한 작품이나 문서들을 보면서 비슷한 시도를 하였던듯 합니다.

성배와 관련하여 아일랜드 쪽에서 특별히 추가된 이야기 가운데 아리마대 요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Robert D.Booron의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에게 무덤을 제공하였던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에게서 ‘성배’를 얻게 되었고 그 성배에 예수의 피를 받았으며 그것을 가지고 그레이트 브리턴으로 가서 그곳에서 성배를 지켜줄? 관리자를 임명하여 계속 보존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더왕은 이 성배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배가 Glastonbury Abbey에 묻혀 있다는 전설의 기원이 되었고 누군가에 의해 문자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성배에 관한 전설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크레티앵이 일단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올리자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마음대로들 각색하여 역사적 사실인듯이 소개했습니다. 성배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이때 나타났는데 어떤 소을스(기독교나 이교도들의 것들) 보다도 이때 나온 설화들 가운데 많은 상상력이 첨가되면서 <성배>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비밀이 많이 담긴 신비로운 것이라는 인상을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여기에 불이 붙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성배의 발견이 어떤 영향을 미치기도 했겠지만 대중문화의 발달이 촉진제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물리적 실체로서의 ‘성배’ 발굴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성배’는 상상의 날개를 타고 새롭게 비약하였으며 영화로, 소설로 그리고 책 등, 대중매채를 통해 널리 소개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였던 것입니다.

성배에 관한한 21세기 초반 전 세계의 출판계와 종교계를 떠들석하게 하였던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3년과 2006년에 상,하로 출판된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는 저자가 픽션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소설의 장르에 속하는 것으로 저자나 독자가 다같이 동의한 픽션입니다만 너무나도 흥미로운 추리와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그만 소설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자칫하면 기독교 특히 캐톨릭 교회의 ‘성배’에 관한 음모란 것에 빠져들어 ‘성배’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 에 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미국에서만 6000만부 이상 팔렸고 40여 개국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이 소설은 드디어 프랑스 루브로 박물관 입구의 피라밑 밑에 묻혀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무덤을 찾아내면서 ‘성배’는 어떤 물체나 용기를 의미하기 보다는 예수의 아내인 막달라 마리아가 프랑스로 피신하여 비밀리에 보존하였던 예수의 ‘혈통’(자녀들)을 의미한다는 뉴앙스를 남기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댄 브라운의 이러한 상상은 그의 독창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캐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도 교회의 한편에서는 끝임없이 이야기 되던 설화나 외경의 이야기들을 짜깁기한 것으로 1982년 헨리 링컨(Henry Lincorn), 마이클 베이전트(Michael Baigent), 리처드 레이(Richard Leigh) 등이 기독교의 기원과 예수 전설에 관련된 내용들을 모아 낸 책 <성혈과 성배: 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에 수록된 것들과도 유사합니다. 그때문에 댄 브라운은 이들로부터 표절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소문과 상상으로 치부되던 이러한 이야기들이 때마침 ‘사해사본’ 에 대한 연구 결과 영지주의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학계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캐톨릭 교회뿐 아니라 개신교회들도 놀라고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2000여년 동안 “말도 안돼”하던 막달라 마리아가 ‘여성 제자’냐 아니면 예수의 아내냐?하는 논쟁도 일어 났고 ‘가룟 유다’의 복음서라는 것들도 뻐젓이 출판되어 읽히고 있으며 “잊혀진 또는 숨겨진 기독교’를 다시 찾자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성배의 ‘실체’를 찾으려는 노력이나 성배의 ‘미스테리’를 풀어 보려는 끈질긴 추적이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으려는 인간들의 호기심과 노력, 역시 끝이 없을 것입니다. 매스콤의 발달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말입니다.

어쩌면 진리는 발견하고, 완성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찾고 탐구하면서 공감대를 넓혀 가는 것임을 ’성배’는 가르쳐주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고대문명의 발자취를 따라> 등을 연재하였고 현재 <지리로 배우는 미국>와 <명화감상>을 담당하고 있다.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