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신의 역사의 미스테리(14)

<역사의 미스테리> 열 네번째 이야기

마야문명은 왜 갑자기 사라져 버렸나?

콜럼버스가 1492년 카리브 해안에 도착하여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북 아메리카와 남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중부 아메리카 지역에는 어느곳 보다도 먼저 유럽의 식민지화가 시행되었고 당시 중남미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엄청난 억압속에서 지독한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 스페인의 식민지화 작업으로 불과 수 십년만에 당시 한창 번성하였던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과 페루의 잉카 문명은 완전히 말살되어 버리고 주민들도 거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마야문명의 몰락만큼은 스페인 원정대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원인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졌고 마야문명에 관한 연구들도 활발하게 진쟁되어 왔습니다.

'마야문명(Maya)'이란 북 아메리카와 남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중남미에서 걸프해안쪽으로 솟아오른 유카탄 반도 일대와 태평양 쪽의 남부 멕시코와 과테말라, 서부 엘살바돌 그리고 서부 혼듀라스의 산악지대 일대에 도시국가형태로 발전하였던 마야족의 문화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마야문명은 오랫동안 잊혀져왔기 때문에 마야문명의 유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많은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황폐화된 마야지역은 간혹 스페인 군인들이나 신부들에 의한 인상기로 외부에 소개됐을뿐 사람들의 관심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는데 미국의 작가요 외교관인 John Lloyd Stephens이 화가요 건축가인 친구와 함께 1843년 이 지역을 탐사하다가 마야의 건축물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림과 함께 책으로 발간하자 처음으로 마야문명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20세기 이후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어 많은 고고학자와 ?문자,언어 연구가들의 끊임없는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마야문명에 관한 연구의 초기단계에서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면서 마야문명은 신비롭고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안고있는 세계 4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점점 더 신비에 싸여가고 있었습니다. 열대 밀림지대나 고지대에 세워진 거대한 석조건물들이 세계 어느 곳의 것들 보다도 뛰어나고 거대하였으며 다른 고대문명보다 훨씬 앞서 역법, 천문학, 수학 등을 사용하였고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사용되지 않았던 0란 숫자를 사용한 20진법을 마야인들이 사용한 기록들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러한 고도의 문명을 소유한 마야인들이 평지에 강을 끼고 도시를 발전시킨 다른 세계문명들과는 달리 고산지대나 비가 많은 밀림지대에 도시를 세운것도 불가사의이며 그러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마야문명이 기원후 9세기 이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 역시 불가사의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유적가운데서 상형문자를 사용한 문서들과 석판들을 발견하였으나 1000여년간의 단절상태에서 해독이 불가능한데다가 관심마저 부진하여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본격적인 해독작업이 시작되었고 개중에는 21세기에 들어와서야 해독된 것들도 있으며 어떤 것은 아직도 해독을 못하고 연구중에 있는 것들이 있어 추측만 더해졌었습니다. 또한 유적의 대부분이 밀림과 산간지대에 묻혀있어 답사에만 의존하던 발굴작업 역시 부진하여 극히 적은 부분만이 가능하였는데 최근에 와서는 비행기를 띄워 탐사한후 답사팀을 보내는 방법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마야문화의 흔적은 중부멕시코에서부터 1000km 밖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마야의 예술과 건축에는 먼 외지(外地)의 재료와 양식들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인근 지역과의 교역도 매우 활발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야문명의 흔적은 지역적으로 널리 흩어져 있을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350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어 온 것으로 전성기 이전(Pre-Classic period, 기원전 2000년 경부터 기원후 250년 까지), 전성기(Classic period, 기원후 250-900), 전성기 이후(Post-Classic period, 기원 900년경 부터-16세기 초 스페인 침략자들의 도래)의 세 기간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한때 스페인의 침략과 함께 소멸되었으리라고 생각되었던 마야문명이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왔을 때는 이미 전성기를 넘긴지 한참 되었을 때였던 것입니다. 물론 유럽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왔을 때 마야문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남부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서부터 과테말라나 혼듀라스 또는 엘 살바돌 등지의 고원지대에 마야부족들이 살고 있었지만 도시를 만들고 신전과 탑을 만들며 건물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상형문자를 사용해서 책을 만들며 과학 특히 수학을 활용하여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높이의 건물들을 만들던 그러한 마야 문명은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것입니다. 9세기에 들어서서 100년 남짓한 기간동안에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나 도시들은 방기(放棄)되었고 열대숲으로 다시 둘러쌓였으며 주민들의 숫자는 급락하여 어떤 지역에서는 90%가 줄어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한 짧은 기간동안에 그와같은 극적인 몰락이 가능했느냐?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마야문명은 잉카나 아즈텍 문명과는 달리 강력한 하나의 통치자의 지배밑에서 억압적으로 강대국을 이루었던 것이 아니라 안정된 농업을 기반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여러개의 도시국가들이 자신들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의식을 행하고 신전을 짓고 외부와 교역도 하면서 각종 문화를 만들어 가며 자체적으로 발전해 간 문명이었습니다.

이렇게 마야 문명이 한창 번성하던 전성기인 8세기 경에는 마야문명지에는 1천 1백여만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었으리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와같은 마야문명의 전성기 또는 고전기가 갑자기 몰락한 원인으로 도시국가들 간의 치열하고 무자비했던 전쟁과 인간을 제물로 바치던 종교관행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도시들은 물론 교역을 활발하게 하면서 비교적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은 하지 않았지만 이 지역의 통치자들은 또한 신정사회의 제사장으로서 백성들을 위하여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직무였는데 희생제물로 사람을 바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주민들을 위하여, 제사에 사용할 희생제물들을 확보하기 위해 무척 용감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전투를 하여 포로로 잡은자들을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번영과 안위를 위해서는 선한 일로 간주되었고 신을 위한 신성한 임무로 간주되었습니다.다른 도시에서도 같은 생각들이었으니 그 치열함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잔인한 상쟁으로 국력을 과도하게 소비했던 것이 한 이유였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같은 마야문명의 전성기 또는 고전기가 갑자기 몰락한 원인과 관련해서기후 변화가 마야 문명 흥망성쇠의 주요 배경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마야문명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에 의해서 제기되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의 농사기술의 개발과 관개시설의 개량 등을 통해 농산물의 생산이 증가하고 외지와의 교역 등을 통해 식량조달의 염려가 없어지자 사람들이 몰려들었었는데 인구가 증가하자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해 농지를 넓히는 과정에서 밀림의 나무들을 짤라내야 했으며 나무가 없어진 열대지방의 태양열은 지상의 물들을 증발시켜 음료수의 공급마져도 힘들에 하였고 결국에는 우기(雨期)와 건기(乾期)로 나뉘었던 기후가 비없는 날씨로 변하였다는 것입니다.

가뭄으로 인해 농산물 생산이 감소되자 주민들은 불안해 졌고 사회안전이 위협을 받게 되었으며 한 때 신의 대리자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면서 백성들을 동원하여 신전을 짖고 번영을 누리던 통치자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면서 곧 비가 내려 가뭄을 해소해 줄것이라고 국민들을 달랬지만 그래도 비가 계속 오지 않자 통치자를 위시한 엘리트 층의 권위가 상실되었고 민중들의 반란과 함께 식량을 찾아 이탈현상이 나타나면서 마야문명이 몰락하였는데 그것이 기원후 8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나타난 현상이고 실은 2000여년 전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현상들이 축적되면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스위스 연방기술대학, 영국 더럼대학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최근 중앙아메리카 벨리즈 남부에 있는 마야 문명 유적지의 동굴에서 채집한 석순을 화학·광물학 기법으로 분석하여 과거 2000년 기간의 강수량 데이터를 복원했으며 그것을 마야의 역사, 즉 전쟁, 적군생포, 동맹, 왕위 승계 사건들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된 석재 기념비들에서 찾아낸 연대기(Chronicle)의 역사기록들과 대조해 본 결과 비가 충분히 내리던 시기에 마야 문명이 흥성했으며, 건기와 가뭄이 이어지던 시기는 인구 감소와 쇠망의 시기와 겹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기후 변화가 문명의 흥망성쇠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연구팀은 풀이하였습니다. 역사적 유적들과 과학이 손잡고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좋은 예입니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에 관한 경고가 발동된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겨울만 되면 이상 기후로 온 세계가몸살을 앓으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내일의 역사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야 몰락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지?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고대문명의 발자취를 따라> 등을 연재하였고 현재 <지리로 배우는 미국>와 <명화감상>을 담당하고 있다.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