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비밀(13)
김 상 신
천정 네 모퉁이의 그림들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채플 벽화의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로 그 구도(構圖)를 들 수 있다. 본래 원통(圓桶-둥근 통)모양의 단순하고 수수한 천정을 벽과 천정이 시작되는 부분을 부채꼴 모양의 삼각형으로 나누어서 그 안에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착시(錯視)현상을 일으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놀라운 솜씨를 발휘하였을 뿐 아니라 가운데 부분에 그려진 9개의 그림들도 역시 그 옆의 그림들과 구별하는 기둥 같은 굵고 분명한 선으로 건축상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벽과 천정이 시작되는 동, 서, 좌, 우 네 귀퉁이에 부채꼴의 커다란 삼각형 틀이 있고 그 안에 각각 그림들이 그려져 있으며 동, 서 그림들 사이에 조금 작은 삼각형 4개씩이 들어 있고 거기에 또 각기 그림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회에서는 네 모퉁이의 그림들이 각각 무엇이며 그 그림들을 통해 전달하려 던 멧세지는 무엇이고 그 속에 미켈란젤로가 감추어 놓은 비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동쪽 출입문으로 들어 서서 위를 처다 보면 오른쪽 반을 차지하는 귀퉁이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그림이 그리고 왼쪽 반으로는 쥬디스와 홀로퍼네스(Judith and Holofernes) 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쪽 끝 제단 위쪽으로는 오른쪽에 에스더와 처형당하는 하만(Harman)의 그림이, 왼쪽에는 광야의 구리 뱀이 그려져 있다.
1) 다윗과 골리앗
구약성경 사무엘 상 17장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무패의 대장 거인 골리앗을 앞세우고 처 들어 온 이방인 불레셋 군대 앞에서 벌벌 떠는 유대백성. 군대에 가 있는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온 양치는 소년 다윗은 동족을 깔보며 여호와를 훼방하는 골리앗을 보고 자신이 골리앗과 1대 1로 싸우겠다고 자청한다. 갑옷도 칼도 마다하고 반들반들한 돌 다섯 개와 돌팔매를 가지고 전장에 나선 다윗은 단 한번의 돌팔매로 골리앗을 때려눕히고 한 손으로는 그의 칼을 빼어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골리앗의 머리를 잡고 내려치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따르면 마지막 순간, 골리앗은 누가 도와주러 오지 않나 해서 뒤를 돌아보지만 그의 부하들은 놀라 어둠 속으로 숨을 뿐 감히 다윗에 대항하러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장수’를 잃은 불레셋 군사들은 생기를 되찾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완전히 섬멸 당한다.
2) 쥬디스와 홀로퍼네스
이 그림의 이야기는 유대경전이나 개신교의 구약에는 없지만 가톨릭 교회의 경 외전에 들어 있는 것으로 유대인들이 지키는 하누카(Hanukkah) 명절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로서 가톨릭과 유대전통에 다같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로 유대전통에 관심이 많았던 미켈란젤로는 어쩌면 이 이야기가 가톨릭과 유대전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는지도 모른다.
쥬디스는 아무 대책 없는 그저 아름다운 유대인 과부이다. 당시 막강한 앗시리아의 헬레네 군대의 홀로퍼네스(이스라엘에서는 베두리아로 알려졌음) 는 예루살렘을 파괴하기 위한 첫 번 조치로 이스라엘을 합방하려고 한다. 이에 놀란 유다백성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를 하는데 쥬디스는 놀라운 음모를 꾸민다. 그녀는 가장 예쁘게 치장하고 신뢰하는 하녀와 함께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은 채 도시를 떠난다. 신앙과 미모와 지혜만을 무기로 간직한채.
그들은 금방 홀로퍼네스 군대에게 발각되어 강간 당하고 죽을 처지에 이르지만 쥬디스는 홀로퍼네스에게 성(性)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은 물론 적은 희생으로 예루살렘 성을 점령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여 홀로페네스를 직접 만나게 된다. 주디스의 미모에 반한 그는 깊은 관계에 빠졌고 홀로페네스는 이미 전쟁에 이긴 듯이 부하들과 승전파티를 열고 만취된 채 골아 떨어진다. 쥬디스는 여호와께 힘을 달라고 기도한 후 홀리페네스의 칼을 뽑아 그의 목을 자르고 그것을 바구니에 숨겨 하녀와 함께 머리에 이고 빠져 나와 도시로 가져온다. 홀로페네스의 머리가 성밖에 걸리자 앗시리아의 헬레네 군대는 전의를 상실하고 이스라엘은 이들을 추격하여 수많은 전리품들을 획득한다. 여기에 보이는 그림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머리가 잘린 홀로페네스와 바구니에 든 머리를 이고 가는 두 여인의 그림이다.
3) 에스더와 하만
안쪽 오른쪽에 있는 그림은 에스더와 처형당하는 하만의 그림이다. 히브리 경전이나 기독교의 구약성서에 다같이 나오는 <에스더>서의 이야기다. 당시 해외에 나가 있는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던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유대인들이 대량학살을 면하고 구원 받은 이야기로 이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은 해마다 부림절에는 <에스더>를 읽는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황제 아하수에로 왕은 수도인 수산에서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고 있었으나 방탕과 연회를 즐겼다. 그의 오른팔과 같은 심복이 황제 못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려는 야망에 찬 하만이다. 하만은 왕에게 전국적인 미인대회를 열어 죽은 왕비를 대신할 여인을 선택할 것을 건의하였고 그 결과 젊고 아름다운 유대여자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되었으나 아무에게도 유대인임을 알리지 않았다. 얼마 지난 후 하만은 페르시아 제국 안의 유대인들을 다 죽이기로 하고 왕의 승낙을 받아 칙령을 내린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에스더가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 자신이 유대인인 것과 하만이 유대민족을 죽이려는 음모를 밝히자 왕은 하만이 유대인 지도자들을 매달아 죽이려고 세운 높은 장대 위에 도리어 그를 매달아 죽였다. 아이로닉 하게도 하만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높이 올라가려던 그의 소원을 이렇게 성취한 것이다.
여기에서 하만은 황금빛 옷이 벗겨진 채 나체로 뒤틀어진 나무 위에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못이 박혀 달려있다. 바티칸의 설명에 의하면 나무에 달린 모습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지고가신 예수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준 것이라지만 이교도요 간악했던 하만에 대한 설명으로는 적절치 못한 듯 하다.
4) 광야의 구리 뱀
안쪽 왼쪽 귀퉁이에 있는 그림은 광야에서 구리 뱀을 달아놓고 사람들이 처다 보는 그림이다. 구약성서 민수기 21장 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독사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구리 뱀을 만들어 높은 장대에 매달아 놓고 머리를 들어 그것을 처다 보는 사람은 나음을 얻었다는 기사에서 나온 것이다. 머리를 들어 구리 뱀을 처다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생각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을 처다 보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는 모세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유대인들이 유월절마다 출애급의 이야기로 읽어주는 하가다(Haggadah)에는 놀랍게도 모세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옛 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모세의 겸손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의 구원은 전능하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지 아무리 능력 있고 권위 있는 지도자라 하드라도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도 모세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신명기 30장 19절에 보면 “내가 네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두니 생명을 택하라”는 말이 나온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의 왼쪽에는 머리를 들어 생명을 택한 사람들이 환한 빛 가운데 서 있다. 그러나 오른쪽 끝에는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어두움 가운데 누워 있다.
위에 언급한 각기 다른 네 개의 그림들을 미켈란젤로가 내 모퉁이의 그림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며 네 개의 그림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나 공통된 테마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무작위적인 선택인가? 분명한 것은 네 개의 장면들은 가장 암담했던 때 유대백성들에게 임했던 네 개의 구원의 사건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쥬디스는 다윗의 맞은 편에, 모세는 에스더의 건너편에 배치하여 영웅적인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주하도록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연이었을까? 미켈란젤로의 의도적인 배치였을까? 이스라엘의 카발라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성(性)적인 2중성을 무척 강조한다. 육체적인 모습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다같이 가지신 분으로 영적으로는 정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자비의 하나님이신 그의 성품가운데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남성적인 강함이 모성적인 사랑과 합쳐져서 완전한 균형을 이룰 때 하나님의 통치는 제 기능을 하게 된다. 두 가지 힘의 신비로운 조화가 천상적인 완전의 비결이라고 카발라는 말한다. 유대 사상에 매료되었던 미켈란젤로는 신의 성적인 조화를 여기에서 형성화하여 보여주려고 하였던 것은 아닐까?
이들 네 개의 장면들은 유대백성들의 구원의 장면이라는 것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신명기 26장 8절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란 말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강한 손’,’쭉 편 팔’, ‘큰 위엄’ 그리고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네 가지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해하고 유월절 축제에서는 이 구절을 낭독하고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한가지 한가지 기억하면서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신다.
미켈란젤로가 네 개의 모퉁이 그림을 선정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네 가지 방법을 기억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유대사상과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정통한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쥬디스는 적장 홀로페네스의 머리를 자르기 전에 “미천한 과부인 저에게 저의 계획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강한 손(a mighty hand)을 주옵소서”(쥬디스 9장 9절)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신명기에 나오는 강한 손과 같은 표현으로 쥬디스로 하여금 적장의 목을 베어 유대민족들을 희랍과의 통합에서 건지신 분, 하누카의 기적을 이루신 분은 쥬디스의 기도에 응답하신 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골리앗과 다윗의 그림을 보면 다윗은 골리앗의 큰 칼을 쥔 오른 팔을 쭉 펴서 내려 치려 하고 있다. 여기에서 미켈란젤로는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은 돌팔매나 하는 조그마한 어린 소년의 팔이 아니라 그를 도와준 신의 “쭉 뻗은 손”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이 장면을 선택했으리라는 것이다.
한글성경에서는 ‘큰 위엄’이라고 번역한 ‘Great Fear’는 <에스더>에서는 ‘큰 두려움(great fear) 으로 번역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듯 하다. 탈무드에 의하면 페르시아의 유대인들이 하만의 음모를 알고 큰 두려움에 쌓였으나 그로 인해 바른 신앙의 길로 돌아왔는데 어느 선지자가 한 것 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하만은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하만이 음모를 꾸민자라고 지목하자 ‘큰 두려움’에 쌓였다. 그리고 에스더 서에 의하면 페르시아 사람들이 유대인을 ‘두려워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미켈란젤로가 ‘큰 위엄(두려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에스더와 하만의 이야기를 형성화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유대의 현자들은 ‘표적과 기사’를 이야기 할 때 모세의 지팡이를 언급한다. 출애급기 4장 17절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의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 그것으로 기사를 행할 것이다”고 말한다. 미켈란젤로의 구리 뱀에도 중요한 대목은 모세의 지팡이에 구리 뱀을 매달은 것이다. 기사외 이적을 통해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모세를 그렸으리라는 것이다.
유대교의 전통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4 가지 방법을 깨달은 미켈란젤로로서는 그것들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으로 그가 선택한 4장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가장 거룩한 시스틴 채플 천정 네 모퉁이와 유월절 잔치의 네 잔의 포도주가 어울려져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메켈란젤로의 천정 네 모퉁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유대 전통의 탈무드나 미드라를 어떻게 그의 그림에 사용하였는가를 알면 설명하기가 어려웠던 이상한 그림들에 대한 실마리가 풀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천정벽화를 보면 볼수록 그가 간직했던 기독교 신앙과 함께 개인적인 사상을 형성한 휴매니즘과 신 프라톤주의, 유대전승, 탈무드와 카발라 등의 영향이 깊이 배어 있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비밀(13)-천정 네 모퉁이의 그림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