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신의 '고대문명의 발자취를 따라(15)'
크노소스(Knossos)의 미노스(크레타) 문명
기원전 8세기의 희랍 시인 호머의 글에 “포도주와 같이 검은 바다로 둘러 쌓인 아주 풍요롭고 아름다운 섬이 있는데 그곳에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괴물이 거대한 지하의 미로에 갖혀 있다” 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 튜키디데스는 옛날에 미노스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함대를 이끌고 에게해(그리스 해)를 누볐으며 동부 지중해의 섬들을 정복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 지역이 실제로 어디인지는 모르는듯 했고 후대의 그리스인들에게는 하나의 전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지중해 한 가운데 크레테 섬의 크노소스에서 발견된 궁전은 . . .
그러나 영국의 아더 에반스 경은 호머의 기록에 착안하여 1894년 크레테 섬을 답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래되는 민요가운데 ‘미노스의 궁전은 Kephala라는 언덕 위에 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중북부의 민둥산으로 방치되어 있는 크노소스(Knossos) 지역의 한 언덕을 사들여 1900년부터 발굴을 시작하였습니다. 작업을 시작한지 1년만에 그곳에서 궁전의 유적이 발굴되자 에반스는 ‘미노스왕의 궁전’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 후 그가 죽기까지 40여년 동안 발굴작업을 하면서 이룩한 것은 하나의 폐허가 된 도시를 복원해 놓은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곳에 그런 문명이 존재하였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문명을 찾아내어 놀라울 정도로 발전된 그들의 실상을 보여준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무엇이라 불렀는지 모르지만 에반스 경은 희랍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왕 Minos의 미로(迷路)가 있던 곳이 크노소스라고 단정하여 미노스 문명 또는 미노스 사람들의 문명(The Minoans civilization)이라고 명명하여 그 후 그대로 부르고 있습니다.
왼쪽의 발굴된 잔해들 가운데서 3500여년 전에 오른쪽에 보는 것과 같은 웅장한 궁전이 이 자리에 세워졌었다는 상상도를 그릴 수 있었다.
사도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맞바람을 피하기 위하여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다가 미항이라는 곳에 들렸다는 기사가 나옵니다만(사도행전 27장 7절) 여기에 나오는 그레데가 크레테 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리스본토에서 160킬로 남쪽, 북동쪽으로는 터어키 본토가, 남쪽으로는 리비아 바다를 끼고 아프리카의 리비아가 보이는 지중해상에 자리한 지금의 크레테 섬입니다.
현재는 그리스에 속한 섬으로는 가장 크고 인구가 많은 곳으로 그리스본토와 터키, 팔레스틴, 아프리카 그리고 이태리 등으로 항해하는 배들이 들려가는 곳으로 옛부터 많이 이용되었으며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 정도로 알려져왔습니다.
그러나 에반스 경이 1901년 ‘미노스의 궁전’터를 발견하고 밝혀낸 것은 유럽지역의 어느곳 보다도 오래된 고도의 문명이 이곳에서 꽃을 피웠으며 그 문명이 사라진후 지난 3000여년 이상을 그 존재조차도 잊혀진채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기원전 30세기(B.C. 3000년 경)부터 기원전 15세기 사이에 크레테 섬에서 꽃피웠다고 하는 미노스 문명의 시작은 구석기시대로까지 올라갑니다. 듀란트(Will Durant)같은 역사가는 기원전 12만 8천년 경에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첫 유럽계 인류들이 배를 타고 크레테 섬으로 건너와 생활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기원전 5000년경에는 이 섬에 정착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농산물을 경작한 흔적들을 찾아내었습니다. 이들은 북방에서 그리스 본토로 내려와 그리스문명을 세운 사람들(Aegaen언어를 사용하던 미케네인)과는 다른 경로로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500년 내지 4000년 전 에게해와 지중해 동부연안을 누비면서 풍요로운 미노아 문명의 원동력이 되었던 미노스의 선단모습이 벽화에 그려져 있다.
발굴작업을 통하여 알려진바에 의하면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2000년 사이 청동기 시대에 이미 포도와 올리브를 재배하여 포도주와 올리브 유를 만들고 밀과 귀리, 콩, 깨같은 농산물들을 재배하였으며 자두나 무화과 과수원들이 있었고 염소나 양, 소 같은 가축들을 길러 우유나 치즈를 만들고 양모를 사용 옷감을 만들었으며 양봉까지 하는 등 매우 발달된 농축산을 경영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세공된 장식품들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바퀴달린 운송수단들을 이용하였으며 무역로를 개척하여 포도주와 올리브 오일 및 잉여농산물들과 토기들과 장식품들을 동부 지중해 연안의 섬들이나 여러지역에 다니면서 파는 한편 그곳의 물건들을 다른 지역에 갖다 파는 등 교역을 통하여 국력이 강해지고 주민들은 유복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기원전 2000년 경에는 크노소스에 커다란 규모의 궁전과 농산물 저장창고를 건축하였으며 기원전 1500년경에는 에집트와 앗시리아와 바벨론 등 지중해 동부의 제국들과 무역을 하면서 나라가 번창하고 안정되었으며 새로운 궁전을 건축하였는데 에반스가 발굴한 궁전의 잔해와 벽화들이 이때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에반스가 발굴한 궁전이란 당시의 다른 제국에서의 궁전들과는 달리 왕과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크노소스 도시의 생활공간으로서 잉여농산물들을 저장하는 창고와 물건들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는가하면 종교의식을 행하고 운동경기를 즐길수 있는 종교센터와 관공서들 그리고 왕족의 주거공간과 고급 아파트 들이 서있는 그야말로 하나의 대도시였습니다.
궁전의 외곽과 궁전 내부의 모습, 견고한 돌 기둥들이 여러 층의 건물들을 받치고 있다.
전성기 크노소스의 인구가 인접한 항구도시 Amnisos를 합쳐서 10만 여명에 이르럿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그렇다면 당시 지중해 일대에서는 가장 큰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원전 1450년 크레테에서 70여마일 북쪽에 있는 테라(Thera)라는 섬에서 화산이 터지면서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와 크레테섬을 덮쳐 크노소스를 포함한 북쪽 연안에 있던 주거지들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피해의 규모를 알 수 없지만 소규모의 궁전을 재건하는 등 재기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원전 1250-1200사이에는 크레테의 여러 도시들이 파괴되거나 버려졌는데 인근에서 화산이 터질때마다 날아오는 재로 농사는 자급자족도 여의치 않고 교역은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웃 도시국가들과도 마찰이 불가피해졌으며 화산의 영향 이외에도 기원전 1900년 경부터 그리스 본토에 세워진 고대 미케네 그리스인들이 발길이 이곳까지 미치면서 그들에게 밀려 미노스 문명이 약탈당하자 크노소스 중심의 미노아 문명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로 크레테에서는 미노스문명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지고 호머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쓰던 기원전 8세기에는 전설속에 용해되어 버린채 항해하는 사람들이 들려가는 기항지로 전락하여 3000여 년을 완전히 잊혀진채 지냈던 것입니다.
미노안 들의 생활모습
원래 크노소스 지역은 물의 공급이 원활하고 땅이 비옥하며 주위에 숲과 돌들이 많아 도시를 이루기에 적절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신석기 시대 이래 파손된 건물들의 잔해들이 발견되었는데 에반스가 발굴한 궁전은 기원전 1700년에서 1450년 사이에 세워진 궁전이었습니다. 건축의 기술이나 용모가 눈부셨으며 그 규모가 대단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잉여농산물들을 저장하는 커다란 창고와 제조공장이 자리잡은 지하실 그리고 공무를 집행하는 건물과 종교센터, 환기가 잘되고 호화로운 황실가족들의 주거지역 등이 있었습니다. 1000여개가 넘는 방들 외에도 현관의 지붕들과 회랑들이 종교의식이나 운동경기를 하는 포장된 뜰을 감싸고 있었고 동쪽 별관에는 주거용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에반스 경에 의하면 그가 발굴한 왕실 아파트의 상하수, 통풍, 계단 등 각종 편의시설의 편리함과 호화로움은 자신이 살던 1900년대 초 영국의 것보다 훨씬 훌륭한 것이었다니 그 수준을 상상할 수 있으며 발굴단에 의해 복원된 건물들의 생생한 벽화들과 화병이나 항아리 등에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서 당시 그들의 생활상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미노스의 문명은 희랍의 고대문명보다 1000여년이 앞선 것으로 유럽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문명임에도 그들은 무척 여유로웠고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동의 고대제국에서와는 달리 군인들이나 전투장비 또는 전투장면 같은 것은 벽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그것은 벽화에 그려져있는 춤을 추거나,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의 발랄한 여가활동의 모습들과 호화로운 식탁에서 그들의 여유를 쉽게 상상할 수 있으며 궁전이나 저택의 집기들에서도 지중해 무역을 통해 누렸든 그들의 풍요를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미노안들의 정치와 종교
크노소스에서 발굴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리스문명 이전의 문자를 사용하던 문화가 있을 것이라는 에반스의 기대대로 문자가 새겨져 있는 수백개의 점토판들을 찾아내었습니다. 여기에서 세개의 다른 형태의 문자들이 나왔습니다.
상형문자, 아직도 해독이 안된 Linear A 와 고대 희랍어인 Linear B 등이 사용되었다.
첫번째 가장 오래된 형태의 문자는 병이나, 돌로 만든 도장이나 공예품 등에 쓰여있는 것으로 상형문자에 사람이나 도구나 나무같은 친숙한 심볼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추상적인 선과 곡선으로 만들어진 두개의 다른 형태의 문자들로 구별되는데 에반스경은 하나는 Linear A. 다른 것은 Linear B라고 불렀습니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Linear A는 기원전 17세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도 판독이 되지 않고 있으나 후에 나온것으로 생각되는 Linear B는 기원전 1400여년 경에 사용된 것으로 초기 형태의 희랍어로 판명되었으며 1952년에 Michael Ventris라는 영국사람에 의하여 판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Linear B로 판명된 점토판에서는 미노안들의 문화생활을 알 수 있는 생활이야기나 종교적인 문서나 심지어는 통치자의 명단까지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상거래와 무역에서 사용되던 기록들만 나왔는데 기원전 1400년 경은 이미 미노아 크레테 문명이 몰락하기 시작한 때여서 미노아 문명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미급한 것이었습니다.
미노아에서는 통치자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연대기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권력과 부가 크노소스에 집중되었던것 만은 분명하지만 후에 그리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도시국가들의 느슨한 연합체와 같은 체제를 가지고 있어 도시들은 도시나름대로의 통치자가 있었으며 ‘미노스’ 역시 어떤 왕의 이름이 아니고 크노시스의 통치자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도시간에는 확장이나 정복을 위한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자연이 가져다 주는 축복을 만끽하면서 여유롭게 생활을 즐겼던듯 합니다.
자연을 사랑하였던 미노스 사람들은 정착초기부터 대 자연 앞에서나 언덕위 거룩한 곳 또는 동굴이나 돌을 쌓아 만든 대피소 등에서 지모신(mother goddess)를 예배하였습니다. 기원전 2000년 경부터는 크노소스의 궁전에 종교센터 같은 시설을 만들어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중동에서 보는것 같이 사람들을 압도하는 큰 규모의 신전같은 것은 없었으며 에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와 같이 악령에 시달린다거나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의식의 흔적은 찾아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배한 Mother goddess란 자연세계의 모든 현상 즉 땅이나 공기 또는 나무, 바위 등에 스며들어 있는 여신의 영으로서 이 여신은 종종 뱀과 같은 생명체로도 나타나는데 그래서 뱀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땅 속에 있는 생명의 상징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들의 종교의식은 춤과 노래로 황홀경에 빠지는 생명예찬의 한마당이었고 종교센터란 것 역시 춤추기 좋은 바닥을 깔고 있었습니다.
크노소스에서는 기원 2000년경부터 투우경기가 있었는데 이것 역시 하나의 종교의식이였던 듯 합니다. 크노소스에서는 두 뿔 달린 황소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종교의식을 행하는 방에는 뿔 달린 황소머리로 장식하였으며 집 앞 벽에도 걸어 두기도 하였습니다. 또 크노소스의 궁전 폐허에서는 두 뿔을 상징하는 돌로 만든 조각도 발견되었는데 황소를 제물로 바칠때 사용하던 제단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노안들은 위기에 처할때면 황소를 잡아서 제물로 바쳤다고 하는데 황소는 남성의 힘의 상징으로 종교적인 의미와 함께 통치자의 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벽화에 의하면 투우는 당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있는 경기로 남자와 여자가 경기에 참여하며 곡예사의 곡예도 함께 행해집니다.
궁전 벽화인 황소와의 곡예, 남여와 곡예사가 다같이 참여한다
여기 보이는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는 꽃이나 기하학적 문양들과 함께 두 개의 날을 가진 도끼들이 그려져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의식을 위한 도구로 황소를 제물로 잡을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미노안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종교적 상징물로서 크노소스 궁전의 벽이나 회랑이나 그릇들에 그려져 있습니다. 미노바의 두 날 가진 도끼를 희랍어로 ‘labyrs’라고 부르고 ‘labyrinth’는 ‘쌍 날 가진 도끼가 있는 곳’을 의미하는데 호머가 “괴물 황소가 미로에 갖혀있다”고 한 것은 이 뜻이 와전된 것인듯합니다
미노안의 예술
궁전의 벽화에서는 용사나 전쟁의 그림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미노스인들은 예술과 공예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일상생활의 경험을 주제로한 벽화나 전원의 자연풍경들과 바다의 풍경들을 화려한 색갈로 발랄하게 그렸으며 청동기 시대부터 구리나 금, 은 등을 사용하여 꽃 모양이나 벌과 같은 곤충모양의 귀금속을 만들었고 돌을 갈아 그곳에 문장을 조각하여 팔찌나 목걸이 반지 등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조각이 매우 정교하였습니다. 궁전에서는 커다란 조각품들은 찾아볼 없었고 4,5천년 전의 작품이라고 상상하기에는 어려운 아름다운 세공제품들과 함께 특별한 무늬의 항아리나 병 등도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이미 이와 같은 솜씨의 장식품들을 만들어 냈다.
희랍에서는 아직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많은 신화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크노소스의 발굴로 미노스의 전설이 밝혀진 경우도 있지만 지중해 상에 있다가 바다밑으로 사라져버렸다는 애트란티스의 전설과 같이 최신장비를 동원한 열띤 탐색작업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별 진전이 없는 곳들도 있습니다. 5000여년 전에 그러한 문화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한편 놀랍기도하고 그동안 고대제국들의 문명을 섭렵하면서 권력자 중심의 전쟁과 압제의 역사에 식상했던 마음에 하나의 청량제가 되었습니다. 신화같은 이야기들이 역사로 확인될수록 희망이 늘어나지 않을가? 생각해 봅니다.
고대문명을 찾아-크노소스의 미노스(크레타)문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