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2019년 10월 15일*<복잡한 시대를 단순하게 살아가는 아미시들의 지혜-아미시와 용서>*<지혜로운 삶-약점과 장점의 변증법적 순환논리 -허유수선>*<웃으면 복이 와요-번지수가 틀렸어요, 초대,>*<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24. 정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삶의 지혜-당신은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탈 벤 샤하르>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사는 아미시들의 지혜>

아미시와 용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마침표를 찍을지 물어보아서는 안된다. 아미시 잠언

드보라는 조용 조용히 이야기하는 열 여덟살의 아미시 여인으로 어머니의 누비이불 가계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의 발에는 반짝 반짝 빛나는 오랜지 크록스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들을 감싸고 있는 화려한 색갈의 스카프는 진한 핑크책 핀을 꽂아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녀는 i-Pod 나 린지 로한의 장식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10대들보다 빼어난 조용한 성숙미를 발산하고 있었다.

드보라의 언니 하나가 결혼하고 근처의 농장으로 이사를 왔다. 그녀는 네 명의 아이들을 두었는데 드보라의 조카들은 웨스트 니클 마인스학교라고 하는 교실 하나짜리 학교에 다녔다. 이 학교는 웨스트 닉클 마인스 동네에 있는 열 개의 학교가운데 하나였다. 아미시교구학교들은 규모가 작아서 한 교실 학교가 많았고 농장의 한 구석에 아담하게 자리 잡아 이웃아이들과 함께 시골길을 걷기 좋을 정도로 가까이들 있었다. 보통 교실 하나에 25명 내지 30명의 학생들이 수용된다. 아이들의 대부분은 서로 인척관계로 형제자매가 아니면 사촌이기 일수였다.

2006년 10월 2일 어떤 미친 사람이 어릴때의 나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유배달 운전수- 총을 가지고 웨스트닉클 마인스 학교에 침입하였다. 그는 남자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내보내고 여자애들만 인질로 잡았다. 45분 후에 열 명의 여자이이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쏘았다. 세 여자애들이 현장에서 죽사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드보라의 조카였다. 다른 조카는 목숨은 건졌지만 병원으로 공수되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세 번째 조카는 극적으로 도망쳐 나왔다. 그 애는 “이곳을 떠나려면 조용히 나가라”는 한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문을 통해 뛰어나왔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 근처에는 그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줄만한 사람이 전혀 없었거든요”. 드보라는 잠시 숨을 쉬고 나서 수줍은듯이 “우리들은 그 아이에게 나가라고 말한 것이 천사였다고 생각하지요”라고 말했다.

선생님도 피했다. 어른들은 소년들을 데리고 학교를 떠나라는 명령을 괴한으로부터 받았는데 그 소년들 가운닉 하나가 드보라의 조카였다. 총상을 입고 중상을 입은 드보라의 조카는 어깨부분에 광범위한 수술을 받기는 하였지만 다행히 살아남았다. 드보라는 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그건 기적이었지요, 정말 놀라운 기적이었어요”라고 말하면서 “그애는 회복이 잘 되어서 치료가 끝나면 거의 정상으로 돌아갈 거에요”라고 계속하였다.

드보라의 가족 가운데 네 명이 그 학교 교실에 있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네 명! 그러나 그녀는 연민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그녀는 무분별한 비극에 관해 비탄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부드럽고 정상적인 톤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정상대로 진행되도록 하여야만 했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쉬운일이 아니었음을 금방 지적하였다. “그건 정말 힘들었어요. 우리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지요. 우리는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셨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은 우리는 완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하지가 않아요. 그러나 우리는 일어난 사태 가운데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께 맡겨야만 했어요”

<Amish Grace>란 책에서 저자인 도날드 크래빌(Donald B. Krabill)은 웨일스 닉켈 마인스 비극 이후 그가 행한 인터뷰 가운데서 사랑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아미시의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러한 끔찍한 사건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더욱 깊이 간직하였다.

그러나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웨스트 닉켈 광산촌의 아미시들이 보여준 범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감동적인 용서의 실제적인 모습에서였다. 범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의 반 이상이 아미시들이었다. 아미시 아이들의 장례식에 범인의 미망인이 초대되었다. 성금과 선물들이 답지하자 아미시들은 선물을 나누는데 범인의 미망인과 아이들을 포함시켰다.

용서란 살을 예이듯이 아픈 어려움을 동반할 수 있다. 결함이 많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용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아미시들은 진정한 용서에 대해서는 우리들 대부분보다 더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듯 했다. 아미시들에게 겸손은 깊이 뿌리하고 있는 덕성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해 산다는 것을 잘 안다. 아미시들은 다음의 성경말씀을 애독한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14-15) 아미시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 예수는 그들에게 죄인들은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용서해야만 할 사람의 의무에 관해서만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아미시들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를 용서해 주리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무에게도 웨스트 닉클 마인스 학교에서의 학살사건 같은 사태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해를 가한 범인을 용서할 필요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적건 크건간에 그러한 상처를 아물도록 해야 할 때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들은 아미시들과 같이 감정은 의도를 따른다는 것을 믿으면서 우리의 용서 기술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용서하듯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도록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좋은 것들을 헤아리면서 비극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나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용서를 넓혀가자-그것들이 아미시들이 그 사건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를 얻는데 사용한 도구들이다. 드보라가 거듭 이야기한대로 “우리들은 우리 삶을 계속해 나가야만 했어요”

그녀가 말한 방법이란 너무나 강력하고 확실하며 ,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Suzanne Woods Fisher의 <Amish Peace>에서

<허유수선의 인생철학 51강>


약점과 장점의 변증법적 순환논리

약점이 오히려 장점이 되는 예는 아주 많다. 자신의 약점을 저주한다면 약점은 당신에게 확실한 본때를 보여 줄 것이다.

자동차 사고로 왼팔을 잃은 열 살 소년이 유도를 너무나 배우고 싶어했다. 소년은 일본인 유도 선생을 찾아가 사부로 청하고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년의 유도실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사부는 3개월이 지나도록 그에게 한 가지 기술밖에 가르쳐주지 않았다. 소년은 사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은 참지 못하고 사부에게 요청했다.

“이제는 다른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너에게는 이 기술 하나면 충분하다.”

사부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소년은 여전히 사부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사부를 믿고 연습에만 몰두했다. 몇 개월 후 사부는 소년을 데리고 유도대회에 참가했다. 첫 출전이었는데, 소년은 자신의 필살기를 이용해 연달아 승리하며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소년보다 키도 훨씬 크고 건장한 데다 경험도 많아 보였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소년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고, 소년이 부상을 당할까 염려한 심판은 경기를 중지시켰지만 사부는 경기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고, 상대방은 다소 긴장을 늦추는 듯했다. 바로 이 순간 소년은 자신의 필살기로 상대를 제압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사부와 함께 매경기의 주요 부분을 되짚어 보았다.

“사부님, 어떻게 제가 한 가지 기술로 우승할 수 있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단다. 우선 너는 유도 기술중 가장 어려운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 둘째는 이 기술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가 너의 왼팔을 제압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나 소년에게는 왼팔이 없었다.

소년이 가진 최대의 약점이 최고의 무기가 된것이다.

약점이 오히려 장점이 되는 예는 아주 많다.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은 늘 조심조심하면서 꼼꼼하게 일을 진행한다. 말을 잘 못해서 사람들과 잘 사귀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약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외로움을 잘 참고 사려가 깊다. 반면 성격이 거칠고 급해서 사소한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내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잡을 확률이 높다.

생리학적 대상(代償)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가령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은 그 대신 청력이 특별히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인 측면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약점을 비난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약점을 적절히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약점을 혐오하고 저주하기만 한다면 약점은 당신에게 확실한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약점은 당신을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열등감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적절히 이용할 수 있다면 약점은 오히려 장점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장점이 아무리 많아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약점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령 부유한 집안 배경은 충분히 인생의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성공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약점을 감추려 애쓰지 마라. 대신 자신의 장점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약점을 어떻게 하면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길이다.

*허우슈선의 <인생철학 51강(황조사리 간)> 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번지수가 틀렸어요

한 부부가 성격 차이로 자주 싸웠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갔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파촐소를 찾아가서 말했지요.

"혹시 교통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르니 빨리 좀 찾아주세요."

경찰은 아내를 진정시킨 후 남편의 인상착의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아내의 경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저는요, 남편을 찾으러 온 게 아니고 개를 칮으러 온 거라고요!" 

초 대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약간 미안한듯 말했습니다.

"내일 말이야 . . . 회사 후배 두명을 집으로 저녁 초대 했거든 . . ."

이 말을 듣고 아내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아니 왜 그런 걸 당신 맘대로 결정하는 거죠?" "이렇게 좁은 집에, 나는 요리도 할 줄 모르고, 또 당신에게 억지로 애교를 부려야 하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 . 당신 후배들에게 잘해 줄 리 없잖아."

그러자 남편이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응 . . . 이미 알고 있어."

남편의 말에 아내는 더욱 화를 내며 말했다.

"뭐라고요. 다 아는데 왜 초대한 거죠?"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 자식들이 결혼하고 싶다고 바보 같은 소리를 자꾸 하잖아."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24 >

24. 정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

아모스는 예언자의 양심으로 세상을 보았다. 특히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살폈다. 예언자의 양심이란 하나님의 마음(눈)으로 현실을 보는 것이다. 아모스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이스라엘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고 부자와 가난한자가, 그리고 자유인과 노예가 서로 평화롭지 못하게 함께 살고 있음을 보았다. 법정에서는 권력이나 뇌물로 인권이 무시당하고 올바르지 못한 재판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시장에서는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악덕 상인들이 저울 추를 속이고 부정하게 거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권력자와 부자들은 어떻게하면 더 이득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외친다.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켜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 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모스 2:6,7)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빚때문에 종이된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하여 빚을 얻었다. 그러나 빚을 제때 값지 못하자 빚은 또 다른 빚을 얻어야 했고, 또 높은 이자까지 물게하여 가난한자는 결국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빼았기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재산이 없어지면 결국 자기 자신이나 자녀들을 종으로 팔 수 밖에 없었다. 부자들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혹독하게 부렸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뉠때 남왕국 유다는 다윗왕조의 전통과 예루살렘 성전의 정통성을 강조했으나,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었음을강조하고 동족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새 나라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신명기 15장 7-8절에, “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는 땅의 어느 한 성읍 가운데서 가난한 친족이 살고 있거든, 너희는 그를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지 말아라. 그 가난한 친족에게 베풀지 않으려고 너희 손을 움켜 쥐지 말아라. 반드시 너희 손을 그에게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라.” 또 계약의 책( 출애굽기 21장-23장)에서,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가난하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너희는 그에게 빚쟁이처럼 재촉해서도 안되고, 이자도 받아도 안된다.”고 했다(출애굽기 22:2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겉으로는 정의롭게 사는척 했지만 사실은 무자비한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의로운 사람들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했다고 아모스는 고발한다.

또한 부와 권력을 쥐고 있던 상류층은 신앙과 생활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았다. 그들은 자부하기를 자기들은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안식일이나 절기때가 되면 성전에 모여 예배와 감사제를 드렸다. 그들은 성전에서 “전당으로 잡은 옷을 제단 옆에 펴놓고는, 그 위에 눕고, 벌금으로 거두어 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했다(암 2:8)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가?

이것을 보는 예언자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너희가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아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여라… (암5:14,15)"

선을 사랑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을 적극적인 사랑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하나님),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물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암5:21-23)

헛되고 거짓된 예배를 더 이상 드리지 말고 진실되게 살라고 외친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암 5:24)

<탈 벤 사하르의 '삶의 지혜">

당신은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소수의 사려 깊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마라. 실제로 이제까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그들뿐이었다.-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세계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압도감을 느낀다. 교육 수준 하락,기업 부패 스캔들 증가, 경제 위기 등을 비롯해 전쟁, 오염, 테러까지 무수히 많다. 그런데 나 혼자 어쩐다고 뭐가 달라질까? 결함도 많고 여러 가지로 불안정한 내가 어떻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세상의 일중 상당 부분이 개인의 힘이 미치는 범위 밖에서 일어나지만 ,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나는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어떤 대의에 전력을 기울이며 행동에 나서기로 선택한다면 말이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Pay It Forward”에서 한 선생님은 자기 반 학생들에게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과제를 내준다. 트레버라는 학생은 남을 위해 임의적인 친절한 세 가지 선행을 하고 그에 대한 답례로 그들도 다른 세 사람에게 세 가지 선행을 하도록 요청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세 사람도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게 하는 식이다. 만약 도움을 받은 각각의 사람이 다른 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식으로 보답한다면, 이렇게 주고 받기가 스물 한 차례 이어지기 전에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는다. 이 영화는 트레비를 따라가며 그의 행동이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깊고도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 준다.

대규모 난제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해야 새발의 피수준일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우리가 도움을 주면서 단 몇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자극할 방법을 찾아낸다면,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지구촌에서 사회적 네트워크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우리 각자가 하는 일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파문처럼 번져 간다.

세상에 긍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라. 당신이 받은 것을 돌려주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라.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 간 에서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