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2020년 6월 1일*<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32.잃어버린 10지파와 사마리아 사람들>*<허유슈선의 '인생 철학'-포기는 또 다른 선택이다.>*<웃으면 복이 와요-황혼 이혼방지 십계명, "끊어질 때마다 반드시 갈아 끼우지요!", >* <복잡한 시대를 단순하게 사는 아미시들의 지혜-잘 가거라, 내 아들아!>*<탈 벤 사하르의'행복한 삶의 지혜'-다른 사람의 의견에 마음을 열어라>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32. 잃어버린 10지파와 사마리아 사람들

앗시리아는 계속 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앗시리아왕 티글랏빌레셀은 거침없이 이스라엘 땅을 침략했다. 사마리아성은 3년간을 버텼다. 그러나 호세아는 희망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배반한 죄값을 치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대신 새롭게 출발할 것을 가르친다.

“에브라임이 다시 태어나는 진통을 겪고 있다….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는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사마리아가 저희 하나님에게 반항하였으니, 이제는 그 죄값을 치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칼에 찔려 쓰러지고, 어린 아이들은 박살나고, 아이 밴 여인들은 배가 찢길 것이다.”(호13:13-16)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는 앗시리아의 살곤에게 망했다. 기록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2만7천여명이 포로로 앗시리아로 끌려가서 앗시리아(지금의 이란과 이락과 아라비아 등)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는 앗시리아 사람들과 또 다른 정복민족들을 보내어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섞여 살게했다. 이들을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열왕기하 17장24절)

아모스와 호세아가 예언한대로 북왕국 이스라엘은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는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날 이들을 잃어버린 10 지파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모두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많은 주민들이 유대와 이웃 나라들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특히 레위족속들은 남북이 나누일 때 이미 유대로 피신해서 정착했다고 한다.

호세아와 고멜 그리고 세자녀들은 어떻게 되었나? 전설에는 호세아는 포로로 잡혀 앗시리아로 끌려갔다가 그곳에서 죽어 그의 몸은 후에 이스라엘로 옮겨와서, 갈릴리호수에 가까운 사페드에 묻혔다고 한다. 호세아는 나라가 망하고 동족이 포로로 끌려갈 때 홀로 피할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동족과 함께 고난의 행군을 하고 적국에서 동족들과 함게 살다가 죽었다.

왜 오늘날 사마리아에 살고있던 이스라엘사람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나?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한지 약 150여년 후 남왕국 유다도 바빌론에게 망했다. 남왕국 유다도 많은 주민들이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그후 바벨론은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바벨론에 잡혀온 유대인들을 유대땅에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기원전 537경부터) 이 때 이미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옛 이스라엘 땅에는 앞에서 본 것처럼 이스라엘인과 앗시리아인 등 혼혈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비록 이민족과 혼혈이 되었지만, 그들은 이스라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잃어버린 10지파”후손들일 것이다. 하지만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이들을 동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냉대하고 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거의 같은 시대에 예언자로 일했다. 그러나 아모스는 사막의 사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르게 살지 않는 것을 보고 분이 나고 실망하여 정의를 외첬다.

호세아는 도시 사람으로 동족의 잘못을 연민의 눈으로 보고 슬퍼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를 희망하게 되었다. 호세아가 강조한 두 가지는 사랑과 희망이다. 첫째로 하나님은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호6:6)

두째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주께서는 예언자 한 사람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시고, 예언자 한 사람을 시켜서 그들을 지켜주셨다.”(호12:13)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3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허유슈선의 '행복한 삶의 지혜'>

포기는 또 다른 선택이다.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도중에 좌초되거나 침몰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무게를 줄여야 한다.

살면서 항상 얻기만 하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안타까운 순간이 다가오고 그때마다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당장 눈앞의 안락한 생활에만 연연한다면 당신의 미래는 눈물로 가득한 하루하루의 연속이 될지도 모른다.

무게와 부피가 똑같은 두 건초 더미 사이에 당나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당나귀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었지만, 두 건초더미의 조건이 완전히 똑같아 도무지 객관적인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당나귀는 오랫동안 어느 쪽을 선택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오락가락했다. 그러다가 결국 처음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굶어죽고 말았다.

이야기 속의 당나귀가 겪은 곤란함과 비극은 지금 우리를 괴롭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사회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이들은 이 비극을 더 크게 받아들일 것이다.

케임브리지의 엔서니 홉킨스 교수는 “선택은 곧 포기와 책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남보다 조건이 월등히 나은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선택하기 이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모순도 그만큼 많아진다.

어떤 충돌과 모순이 있더라도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대상중에서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버려야 할 것을 과감히 포기하지 못하면 때때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오직 자신들만의 전통적인 사냥법으로 캐코원숭이를 포획한다.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작은 나무상자 안에 개코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어두고 상자 위에 작은 구멍을 내기만 하면 된다. 구멍은 정확히 개코원숭이의 앞발이 들어갈 만한 크기이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이렇게 간단히 개코원숭이를 포획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손에 잡힌 먹이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습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개코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어째서 앞발을 펴서 열매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비단 개코원숭이만이 저지르는 잘못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지위나 환경을 포기하지 못해 하루 종일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은 당장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재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재물을 손에 넣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유혹의 덫에깊이 빠져들어 자신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아부와 뇌물공여를 일삼으며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인격마저 던져버린다. 그러고는 이 모든 행위가 세상에 폭로되고 나서야 땅을 치며 후회한다.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 인생이라는 배는 너무 많은 욕심과 허영을 실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도중에 죄초되거나 침몰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무게를 줄여야 한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는 지혜를 지녀야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허유슈선의 <인생철학 51강>황소지리 간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황혼이혼 방지 십계명

1. 함께 있는 시간을 줄여라. 그래야 의견충돌로 다툴 일이 적어진다.

2. 서로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마라. 각자 세상을 살아온 경험이있다. 치매 환자가 아닌 이상 허튼짓은 안 한다.

3. 쪼잔하게 여자가 돈 쓰는 데 간섭하지 마라. 돈 쓰는 데 간섭받으면 제일 열 받는다. 스트레스 받아 병들면 돈 더 많이 든다.

4.같은 취미를 가지지 마라. 서로가 어울리지 않는게 좋다.

5. 식사는 각자가 알아서 챙겨 먹어라.

6. 집안 일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알아서 해라.

7. TV채널은 여자에게 우선권을 줘라. 안 그러러면 한 대 더 사라.

8. 모임을 부부가 함께 가지마라. 서로 비교하고 나쁜 일만 생긴다.

9. 마누라랑 한 방에서 같이 자자고 하거나, 간식 없느냐고 물어보지 마라.

10. 마누라가 화장하고 나가는데 어디 가냐고 물어보거나, 외출했다 들어 오면 어디 갔다 오냐고 물어 보지 마라.

"끊어질 때마다 반드시 갈아 끼우지요!"

높은 절벽 위에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오르려면 여러 명의 수도사들이 끌어당기는 로프로 묶은 광주리를 타고 올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계곡이 아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날 아주 예민한 방문자가 이곳을 찾았습니다. 광주리를 타고 반쯤 올라갔을 때 그는 광주리를 묶은 끈이 약간 닳아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란 이 방문자는 옆에 있는 수도사에게 얼마나 자주 로프를 갈아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수도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끊어질 때마다 반드시 갈아 끼우지요!"

천당에서 온 E-메일

죠지아주에서 한 미망인이 남편의 장례식을 마치고 막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목사였으며 5일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장례식을 마친것입니다. 미망인은 친구들이나 친척들의 위로편지들이 왔으려니 하여 E-Mail을 열었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편지를 읽자 소리를 지르며 졸도하고 말았습니다. 달려온 아들은 바닥에 쓰러진 어머니를 보았지만 다른 이상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의 스크린을 본 아들 역시 . . .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집을 떠난 남편으로부터
제목:무사히 도착

무사히 도착하여 입실수속을 마쳣소. 내일 당신을 맞을 준비도 다 되었으니 내일 만나기를 바라오. 오는 길에 나같이 별 일 없기를 바라면서 . . . 당신의 유일한 애인으로부터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사는 아미시들의 지혜>

잘 가거라, 내 아들아!

그리스도가 더 이상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그만 용서할 수 있다.-아미시 잠언-

Esther Huuyard가 David Smucker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삶을 완전하게 만드는데에는 비오는 날과 개인 날이 다 있게 마련이다”라고 상기시켜 주었다.젊은 부부로 펜실바니아에서 낙농장을 일궈가면서 에스더는 여러번이나 그것이 진리임을 실감하였다.

스머커의 집과 창고 사이에는 복잡한 도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에스더와 데이빗은 여섯 명의 자녀들에게 언제, 어떻게 길을 건너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며 조심하라고 하였다. 어느날 아침 에스더는 야드세일에서 자녀들의 서프라이즈 선물로 중고 스쿠터를 하나 샀다. 그날 저녁 에스더가 마굿간에서 우유를 짜는 동안 아이들은 보물찾기 게임을 하였다. 보물은 스쿠터였다.

잠시 후에 에스더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다섯살 난 데이빗 쥬니어가 보물을 찾기위해 길을 건너다가 달려오던 차에 치인 것이다.

앰뷰렌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동안 시간은 무료하게 지나갔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쥬니어의 시신옆에 무릎을 꿇고 앉자있으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내 주위에 있어서 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경외의 감정이며, 성스러운 느낌이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낀것이다. 그때 내 감정을 주장하고 있던 것을 설명해 보라면 당신 자신의 강력한 힘이 맥을 못추게 되었을 때 당신이 자신의 것이 아닌 어떤 내적 힘으로부터 무언가 뽑아내는 것으로 그것은 신의 도움이라고 하겠다”
“쥬니어를 친 차의 운전사는 22세의 젊은 남자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는 길위를 올라 갔다, 내려 갔다 하면서 울기도하고 “신세 망쳤어, 이제 감옥에 가는거야?”하며 소리지르기도 했다.

에스더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녀 자신에게서 나온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반응이 나타났다. 그녀는 젊은 운전수에게 가서 그를 껴안고 말했다. 쥬니어는 엄마에게 곧 하늘나라로 갈거라고 이야기 했었다며 “지금 그는 천당에 가 있어.!”라고 말하면서 젊은이가 진정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당신은 단지 그 도구였을 뿐이야”라고 이야기 하였다.

구급차가 도착하였고 쥬니어의 맥박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전혀 의식이 없고 반응도 없었는데-병원으로 운반하였다. 그때 경찰이 와서 인포메이션들을 수집하고 교통을 정리하였다. 경찰관이 젊은 운전수를 자기차로 데려가자 에스더는 조용히 경찰관에게 접근하여 기도하듯이 두손을 모아 가슴에 얹은채 “이 소년을 잘 돌봐 주세요”라고 말했다.

경찰은 그녀가 자기 아들을 잘 봐달라는 줄 알고 그녀에게 의사들이 최선을 다 할 것이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저는 저 운전수 말입니다. 우리들은 저 아이를 이미 용서했어요”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쥬니어는 생명보조기를 달고 있었다. 검사 결과 뇌가 이미 죽었으며 그의 내장도 심하게 부상을 입었다. 의사는 쥬니어가 에스더가 사고현장에서 느꼈던 것 처럼 즉사한 것 같았다고 하였다. 데이빗과 에스더는 생명보조기를 떼어내고 그의 장기들을 기증하는데 동의하고 그들의 귀중한 어린 아들에게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눈물의 작별을 준비하였다.

에스더는 쥬니어가 그녀가 말하던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갔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쥬니어가 행복했다는 사실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깊은 신앙도 아들을 잃은 그녀의 슬픔을 줄여줄 수가 없었으며 그녀의 슬픔은 심각하였다. 그녀는 쥬니어가 죽은 때부터 힘들었던 치유의 과정을 일기체로 엮어 <Good Night, My So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그녀는 쥬니어의 죽음이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데서 위로를 받았다. 사고현장에서 그녀를 도와주었던 경찰관은 그의 아들과는 다시 연결된 것이다.에스더와 데이빗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술이 취해가지고 그들을 조롱한 환자가 있었다. 그가 쥬니어의 죽음을 알고는 에스더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였다. 그때에도 에스더는 이미 자신이 아들의 죽음을 통해 감화받은 한 삶을 보기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유사한 상실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이 스머커의 가정을 통해서 에스더와 데이빗이 그들의 슬픔을 서로 도우며 견디어내듯 그들의 슬픔을 잘 견디어 내도록 도와주었다고 하였다.

오래 전에 에스더는 그녀의 마음에 꽂치는 한 문장을 읽었다. “결코 부활로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에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묻지 말라.”

그녀는 말한다 “이러한 신앙으로만 삶은 견딜만 한 것이다”라고

에스더는 자식의 죽음 이후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항상 따라 다녔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은 마음의 평화를 해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에스더는 결국은 가능한한 조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우리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경지에 이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 경지에 이를 때 평화가 찾아온다고 하였다.

그의 책에서 에스더는 쥬니어가 죽은 후 한 1년 동안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상실해 갔으며 기도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녀의 친구가 된 경찰관이 그녀에게 권했다. “신앙을 잃어가고 기도를 할 수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세요. 한번 해봐요, 우선 시편부터”라고 하였다.

당신의 슬픔을 혼자서 짊어지려 하지 말라. 믿을만한 친구나, 교회 그릎 그리고 상담자가 될 수 있는 분들을 찾아 보라.

*Suzanne Woods Fisher<Amish Peace> 에서

<탈 벤 샤하르의 '행복한 삶'의 지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마음을 열어라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옳기를 바란다는 의미다(미니어 몰두비아누)

완벽주의자들의 뚜렸한 특징 하나는 비판을 받을 때 방어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비판은 불완전함과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것은 완벽주의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꼭 완벽주의자가 아니라도 비판받을 때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너그러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비판에 방어적일 경우,우리는 아주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독단적으로 비판을 거부하는 태도는 우리와 우리에게 유익할 수도 있는 생각 사이에,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벽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진정한 성장은 물론 진정한 친밀감이 형성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내 이름은 탈 벤-사하르이고, 나는 완벽주의자다.

심리학자 카렌 호니(Karen Horney)에 따르면 신경증의 한 형태인 완벽주의는 결코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신경증의 찌꺼기가 항상 남아 있긴 해도 시간이 가면서 그 힘과 영향력은 차츰 약해질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완벽주의 성향을 어느정도 털어 냈다. 그것은 상당 부분 방어적인 태도를 줄이기 위해 내가 해오고 지금 하고 있는 일 덕분이다.

나 자신이 방어적임을 깨닫고 인정했을 때, 그리고 모든 비판을 방어하고 무시하는 데 따르는 대가를 인식했을 때, 나는 변하기로 결심했다. 완벽주의 성향을 버리기 위해 몇 가지 행동에 집중했다. 특히 나는 내 글에 대해서든 관리 방식에 대해서든,비판해 달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요청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비판할 때, 나는 반응을 자제했다. 처음에는 격렬하고 신랄한 반격을 자제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피드백을 수용하는 일이 더 쉬워졌다. 더 쉬워졌다는거지, 쉬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후 비판에 대한 반응이 더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지면서 일상생활과 직장에서의 삶이 많이 좋아졌다.

다른 사람에게 피드백을 청하고 나의 개선점이 무었인지 묻는 것을 습관화하라. 피드백을 받을 때는 마음을 열고 깊이 경청하며 배워라.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에서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