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지혜로운 삶/2022년 8월 1일>*<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57-예루살렘의 최후>*<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배움의 기회에 마음을 열어라>*<웃으면 복이 와요-한 쪽이 더 필요해요, 설마 두 번 씩이나>* <동양의 지혜-노자의 정치론>*<허우슈선의 '인생철학'-미래는 누구에게나 예측불허다>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57>

57. 예루살렘의 최후

“아, 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 길 가는 모든 나그네들이여, 이 일이 그대들과는 관계가 없는가? 주께서 분노하신 날에 내리신 이 슬픔, 내가 겪은 이러한 슬픔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 예레미야 애가 1:1, 12, 표준번역)

유다와 이집트가 반바빌론동맹을 맺고 바빌론에 반항하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이끌고 이집트와 유다를 침공한다. 마침 예레미야는 친척으로부터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것은 앞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의 상징으로 주어진 예언적 사건이었다. 땅이 있는 아나돗은 예루살렘성 밖에 있었다. 비록 당장 희망은 없어 보이나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하나님의 뜻 이었다. 그러나 이 일로 예레미야는 오히려 바빌론에게 항복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밭을 보려 아나돗으로 가려고 하자, 당시 통치자들은 예레미야를 반역자로 몰아, 붇잡아 매를 때리고 착고에 채워 다시 감옥에 가둔다.

이번에는 성안에 있는 지하감옥에 갇힌다. 그곳은 물은 없는 웅덩이지만 당시 형편으로보아 여기에 갇히면 살아 나올 수 없는 감옥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죽게 된다. 이 때 왕궁에서 일하던 에디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이 이 소식을 듣고 왕을 찾아가서 예레미야를 살려야한다고 특별히 간청한다. 시드기야 왕은 에벳멜렉의 요청을 받아드려 예레미야를 지하 감옥에서 구해내서 다시 근위대 울안에 있는 감옥으로 옮긴다

한편 시드기야왕은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누구든지 동족 히브리인을 종으로 부리고 있는 자들은 종들을 해방시켜주라” 는 칙령을 내린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지켜야할 법을 주셨을 때, 그 중에 “종에 관한 법”에서 만약 동족 히브리 사람을 종으로 삼았을 경우엔 7년이 되면 무조건 사면해 주어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다. (출 21장) 그래서 당시 권력자나 부유한자들은 빚을 갚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들을 종으로 부리거나 혹은 빚을 갚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빚대신 자녀를 종으로 팔거나 아니면 본인 스스로 자청해서 종이 되었다. 그러나 권력자들이나 부유한 자들은 히브리 종이 7년이 넘었어도 그들을 사면해 주지않고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바빌론군의 공격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한 통치자들은 잘못을 회개하는 뜻으로 모든 종들을 사면하라고 했다. 그래서 집집마다 종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며칠이 안되어 그들은 다시 종들을 잡아다가 부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것을 본 예레미야는 약속을 어기고 제멋대로 사는 유다인들에게 분명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외친다. 즉 같은 피를 나눈 겨레들에게 자유를 거절한 그들에게 칼이나 염병이나 기근으로 죽으리라고 예언한다.( 렘 34:8-22)

시드기야 왕은 다시 예레미야를 조용히 불러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묻는다. 예레미야는 전과 마찬가지로 바빌론에 항복하라고 한다. 그러나 왕은 주저한다.

드디어 예루살렘의 최후가 왔다. 기원전 586년 아빕월, 바빌론군이 성을 포위하고 예루살렘 성 밖에 성벽을 세우고 공격 준비를 한지 3년 만에 성이 뚤린다. 왕과 지도자들은 무너진 성벽을 넘어 도망간다. 그러나 왕과 지도자들은 곧 바빌로니아 군인들에게 잡힌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 앞에 끌려가 처형을 당한다. 시드기야 왕도 붙잡혀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서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살아 남은 백성들 일부는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나머지 늙거나 병든자들이나 약한 자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남는다. 바빌론군은 성전에 들어가 귀중품들을 약탈하고 성전을 불지른다. 또한 성벽도 모두 허물고 불태운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슬프게 노래를 한다.

“아, 그렇듯 붐비던 도성이 이렇게 쓸쓸해지다니, 예전에는 천하를 시녀처럼 거느리더니, 이제는 과부 신세가 되었구나. 열방이 여왕처럼 우러르더니 이제는 계집종 신세가 되었구나. 밤만 되면 서러워 목놓아 울고, 흐르는 눈물은 끝이 없구나.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조차 위로하여 주지 않고 벗들마저 원수가 되어 등돌리는구나….” (애가 1;1-2, 공동번역)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배움의 기회에 마음을 열어라


경영결정에서 가장 흔한 실수의 근원은 올바른 질문보다 올바른 답을 찾는 데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이다-피터 트러커

아는 것은 도착하는 것이고 질문을 하는 것은 탐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마침표보다는 물음표로 특정지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 즉 어디를 가든 뭔가 배울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 대체로 더 행복하고 더 창의적이고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며 더 크게 성공한다.

평생의 학습자가 되는 일은 재미있으면서도 실용적이다. 그리고 그 길을 여행할 때 필요한 것은 겸손하고 호기심에 찬 마음뿐이다. 학생이든 교사든 친구든 처음 보는 사람이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칠 수 있다. 각각의 경험은 그 안에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으며, 매 순간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메시지가 있다. 탐구 정신과 호기심을 포용할 때 우리는 삶을 포용하게 된다. 이 삶이 무궁무진한 신비의 근원인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배움의 흥분이 평생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논어(論語)>는 중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짤막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것은 열린 마음과 열린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3편의 15장에서 공자는 대사원에 들어가 온갖 것에 대해 질문한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이런 행동은 부적절하디고 지적한다. 위대한 학자는 사소한 문제에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말을 들은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 역시 올바른 처신이네.” 이 위대한 스승은 마음을 여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겸손하게 이 행동의 본을 보였던 것이다.

공자와 동시대인이였던 문자(文子)는 술수가 뛰어나고 평생 권력을 추구했지만, 죽은 후에는 “교양인”이라는 뜻의 문文 칭호를 받았다. 5편에서 공자의 제자중 하나가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여 사후에 그런 영예를 얻었는지 묻는다. 그때 공자는 그것은 그가 배우기를 즐기고,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배우려는 열린 자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리스의 위대한 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이와 비슷하게 배움에 대한 열린 태도를 보여주었다. 바로 자신의 지혜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도처에 있는 풍부한 지식의 보고에 마음을 열어라. 질문하고 듣고 배워라.

*탈 벤 사하르는 하바드대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세계적인 긍정심리학 교수.그의 <행복(Happiness)>수업은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베스트셀러 <행복을 미루지 마라> 애서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한 쪽이 더 필요해요.

나는 그날도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세 아이들과 같이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서로 내 옆에 앉으려고 실랑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는 오른 쪽, 왼 쪽, 두 쪽밖에 없단다. 그런데 너희들은 셋이니 교대로 둘 만이 내 옆에 앉도록 해야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랫더니 3살이 아직 안 된 막내가 냉큼 말을 받았습니다. "엄마, 지금 당장 기도해서 예수님께 엄마에게 한 쪽을 더 보내 주셔서 우리 모두 어머니 쪽에 앉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안돼요?" 하더랍니다.  

설마 두 번씩이나

여자친구 둘이서 저녁 6시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40층 빌딩에서 뛰어 내리겠다고 위협하는 뉴스장면이 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그 남자가 정말 뛰어내릴 것인가?”를 놓고 10만원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정말로 그 남자가 뛰어내리는 장면이 나와서 10만원을 차지하게 된 친구가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저런 비극적 사건을 놓고 내기를 하다니 . . . 나 이 돈 안 받을래. 사실 3시 뉴스 때 보고 이미 다 알고 내기하자고 한 거야.”라고 실토했습니다.

그랬더니 딴 친구 왈,

“나도 그때 다 봤어. 그런데 설마 두 번씩이나 뛰어 내릴 줄은 몰랐지.”

<동양의 지혜>

노자의 정치론

“똑똑한 사람을 높이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만든다. 얻기 힘든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도적질하지 않게 한다. 욕망을 일으킬 만한 것을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의욕을 줄이고 뼈를 튼튼히 하여 늘 백성들이 무지(無知)하고 욕심이 없게 만들며, 지식인들이 제멋대로 주장할 수 없게 만든다. 무위(無爲)로 다스리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도덕경 3장)

“천하는 불가사의한 그릇이어서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다. 잘하려고 애쓰면 실패하고, 꽉 잡고 장악하려 하면 천하를 잃고 만다”(도덕경 29장)

노자는 학자라는 자들이 학파를 만들고 서로 논쟁하는 것이 천하를 위하여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옳고 그름도 각기 달라 혼란만 더한다고 본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잘못 들어섰다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하를 평안하게 할 방도를 놓고 이론이 분분하여 어느 도가 옳바른 도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자는 이미 잘못 들어선 길을 포기하고 원점으로 돌아와서 생각하자고 주장합니다.

노자는 만물의 근원인 도의 성질이 ‘저절로 그러함(자연)’이듯이 인간을 다스리는 정치의 도는 ‘무위’, 즉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위적으로 계획하고 조장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가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한 요순 임금은 ‘남쪽을 향하여 앉아 있는 것’으로 천하를 평안히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남면(南面)의 통치술’이라고 하는데, 임금이 자기 자리에 앉아 완전한 인격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들에서 일하는 백성들까지도 착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유가의 도덕적 모범과 다른 뜻입니다. 노자의 도는 유가의 도덕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위’의 통치술을 자세히j 설명하면, ‘요점을 지킨다’는 방법과 ‘공평무사하다’는 성격으로 표현됩니다. ‘요점’이란 곧 노자의 ‘도’이며, 그것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천하를 천하에 맡기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저절로 그러한 것을 따르지 않고 사사건건 간섭하여 바로잡아 주는 것은 도를 잃었다는 증거입니다. 노자는 정치를 생선 굽는 일에 비유하여, 자꾸 이리저리 뒤적이면 생선이 다 부서지고 타 버리는 것과 같이, 정치가 백성들에게 끼어들수록 뒤죽박죽이 된다고 합니다. 노자의 무위는 백성들의 본래 그러한 삶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백성의 본래 그러한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노자의 정치입니다.

무위의 정치는 통나무와 같은 자연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관청에 기구를 설치하더라도 되도록 기구를 축소하여 자연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위태롭지 않다고 합니다. 놀고 먹는 자가 많거나, 일하는 사람보다 감독자가 잘사는 것은 거꾸로 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노자의 이러한 정치론은 현대 사회의 정치와 매우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인류 역사가 흘러 온 방향과도 맞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계획과 노력의 가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노자의 무위의 정치는 ‘예측할 수 있는 정치’나 ‘위로부터의 개혁’같은 방법과 180도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자의 ‘대도(大道)’라는 것은 전제 군주의 교묘한 통치술의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노자의 ‘대도’는 전제군주의 비밀 정치를 옹호하고 군주의 통치술에 의존한 정치만을 논하였으며 ‘대도’ 자체가 매우 주관적인 것이므로 민주적인 논의와 제도적 장치를 통한 합리적 통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정치론은 전제군주를 위한 ‘제왕학’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교빈,임현구 지음 <동양철학 엣세이, 동녘 간)에서

<허우슈선의 '인생철학'>

미래는 누구에게나 예측불허다

위대한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계획한 것을 얻을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았다.

기회의 문은 닫혀 있을 뿐, 결코 잠겨있지는 않다. 용감하게 달려들어 문고리를 돌리는 사람만이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용기는 성공하는 사람들이 갖춰야할 필수조건이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움추려들지 않는 자신감과 용기 있는 모험정신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대한 사람들은 그들의 젊은 시절에 어떻게 기회를 잡았을까?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내부와 외부의 모든 구속과 관습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일단 도전을 결심한 뒤에는 계획한 것을 얻을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의 힘의 원천이 바로 용기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소년시절 형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우면서 그곳에서 발행하는 신문 <뉴잉글랜드 커런트>에 가명으로 투고하곤 했다. 만약 프랭클린 이름으로 투고하면 형이 자신의 원고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형은 프랭클린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의 인격과 재능을 모두 무시했다. 프랭클린은 형이 알아볼까봐 글을 쓸 때면 글씨체를 바꾸고, 한밤중에 몰래 인쇄소 정문에 원고를 밀어넣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형과 다른 동료들은 작업 현장에서 원고를 읽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이 글을 쓴 작가가 아주 고상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옆에서 열심히 일을 하던 프랭클린은 자신의 글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매우 흐믓해했다. 그러나 어느날 모든 사실이 밝혀졌고, 사람들은 놀라운 눈으로 프랭클린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형은 오히려 그를 비난하며 일을 못한다고 때리기까지 했다. 프랭클린은 더이상 형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았다.

프랭클린이 떠날 것을 염려한 형은 다른 인쇄소 사장들을 찾아다니며 절대로 프랭클린을 고용하지 말라고 당부해 두었다. 그러나 그는 동생의 용기를 과소평가했다.프랭클린은 자기가 갖고 있던 책을 모두 팔아 멀리 필라델피아로 떠났다. 이때 나이 겨우 열일곱이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소년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프랭클린 역시 먼 길을 가느라 온갖 고생을 겪었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세상의 쓴맛을 모두 경험했다. 수없이 많은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고 나서야 프랭클린은 낯선 도시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의 한 인쇄소에서 몇 년 간 일하면서 숙련된 기술을 인정받아 승진을 했지만 인쇄기술자로 일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인쇄업에 필요한 기술들을 모두 터득한 후에 스스로 회사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해 런던에 은밀히 인쇄설비를 주문해 두었다. 그러나 인쇄소 사장은 프랭클린의 포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늘 열심히 일하는 그가 평생 인쇄기술자로 남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순전히 인쇄기술자로서 월급을 더 많이 받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쇄기술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프랭클린에게 많은 보수를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사장은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프랭클린을 못살게 굴었다. 어느날 인쇄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프랭클린이 별 생각 없이 창밖을 내다보자, 사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프랭클린에게 욕을 퍼부으며 화를 냈다.

프랭클린은 드디어 독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기술은 훌륭했고, 자신감도 넘쳤다. 지금 받는 높은 보수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지만 다만 런던에 주문한 인쇄기와 활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그는 꾹 참고 인쇄소 일을 계속했다. 몇 달 뒤 인쇄설비가 도착하자 프랭클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인쇄소를 그만두었다. 그때까지도 사장은 프랭클린이 보수를 더 많이 주는 다른 경쟁 업체로 옮기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프랭클린이 필라델피아에 직접 인쇄소를 차려 자신의 경쟁 상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프랭클린의 인쇄소는 날로 번창하여 전국적으로 영업을 확장했고, 그는 미국 출판업계의 대부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발전을 원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일에 과감히 뛰어들거나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한다. 감히 사직서를 내던지거나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히 투자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전의 기회는 멀리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케임브리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젊은이여, 왕성한 혈기와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라.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전진한다면 미래는 여러분의 세상이 될 것이다.”

*허우슈선의 ‘인생철학 51강’ 황소자리 간 에서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