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지혜로운 삶/2021년 9월 15일*<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지혜7-인디언들이 아메리카에 전하는 멧세지-여기 치유의 힘이 있으니-리모나 베네트>*<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먼저 괴로움을 경청하라>*<웃으면 복이 와요-아빠는 겁쟁이(?),1970년대 한국의 금지곡들과 사유들,>*<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46-나훔 예언자:"주께서 진노하시면 누가 당하랴">*<허유슈선의 '인생철학'-행복의 열쇠를 타인에게 넘겨주지 말라>*

<인디언들이 아메리카에 전하는 멧세지 7 >

여기 치유의 힘이 있으니

라모나 베네트(푸알룹 족)

나는 워싱톤 주 레이니어 출신이다. 얼굴 흰 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어머니 산(레이니어 마운틴)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산은 누구의 소유인가?”

인디언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얼마나 재미있는 생각인가? 산을 소유하다니!. 우리에게 어머니 산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 산은 우리에게 시원한 물을 제공해 준다. 우리의 강이 시작되는 곳도 이곳이다. 이 산은 영원하다.그러자 얼굴 흰 사람들은 주인 없는 산이라고 여기고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왔으며 산의 이름을 ‘어머니 산’에서 맥주 공장사장의 이름인 ‘레이니어’로 바꾸었다. 그들은 산을 깎아 거리를 내고 비탈에는 스키장을 만들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잔인한 행위다. 이 산은 우리에게 신성한 장소다. 그것은 마치 동정녀 마리아의 젖가슴에 유원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 대륙에는 오직 하나의 인디안 국가만이 존재한다. 알래스카꼭대기에서 남 아메리카끄트머리까지 사방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모두 같은 형태의 문화, 예술, 언어를 갖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방언을 가진 한 민족이다.
얼굴 흰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투명 인간인 것처럼 행동한다. 아시아에서 얼음 다리를 타고 건너 온 사라진 종족인 것처럼, 하지만 우리의 종교적인 믿음에 따르면, 할아버지 위대한 정령은 우리를 바로 이곳, 거북이 섬에서 창조했다. 지느러미를 가진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보호하라고 바로 이곳 푸양릅 강에서 우리를 창조했다.

나의 어머니는 푸알롭 족 사람이며, 어머니 집안이 속한 지파는 퓨젓 만의 섬주민이었다. 푸알롭 족은 일자집에서 살았다. 이 기다란 집에서는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다. 그곳에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데 필요한 규칙을 알고 있는 노인들이 있다. 그들은 또한 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무용지물처럼 소외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혜를 갖고 있으며,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삶에 기쁨을 가져다 주며 튼튼한 다리와 밝은 눈을 갖고 있어서 동작이 빠르고 어른들의 일을 돕는다. 나이가 들면 더 강해져서 사냥과 낚시를 하고, 힘든 일을 한다. 그러니 일자 집 자체가 매우 훌륭한 공동체인 것이다.

인디언 사회의 좋은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모두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규칙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이란 없었다. 또한 누구나 예외없이 쓸모있는 존재이고, 미래의 일부였다. 따라서 실업 보험이라거나 빈민기급, 비행 청소년 수용 시설, 감옥, 양로원 같은 것이 필요없었다. 인디언들에게 사회는 곧 가정이 더 넓어진 것이었다. 역사상 존재한 가장 훌륭한 사회 형태였다.

1800년대 중반에 얼굴 흰 사람들이 보스톤에서 와서 우리와 조약을 맺기 시작했다. 어떤 부족은 야생 쌀과 잣을 놓고, 또다른 부족은 사냥과 낚시할권리를 놓고 그들과 협상을 벌여야만 했다. 그것들은 인디언들의 경제에서 매우 필수적인 것이었다. 우리 인디언들은 얼굴 흰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족도 없이 혼자 왔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의 관점에서는 가족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추방당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얼굴 흰 사람들은 너무 목욕을 하지 않아서 몸에서 악취가 났다. 반면에 우리 부족들은 땀천막을 갖고 있고, 강에서도 목욕을 했다. 또한 식물의 엽록소가 우리 몸의 냄새를 좋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스톤에서 온 그 사람들은 우리의 일자 집으로 와서 말했다.
“당신들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우리 부족은 모계사회였기 때문에 늙은 여인이 나갔다. 그들은 또 말했다.
“아니, 당신 말고 당신들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늙은 남자가 나갔다. 그들은 또 말했다.
“아니, 아니, 당신 말고 지도자를 나오라고 해라.”
인디언들은 말했다.
이거 환장하겠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그래서 그들은 젊은 인디언을 내보냈다. 그런 식으로 얼굴 흰 사람들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대표를 뽑는 잘못된 방식을 강요했다. 지도자를 정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방식은 얼굴 흰 사람들의 성차별적인 방식에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얼굴 흰 사람들은 2천 8백만평의 땅을 푸얄룹 족의 ‘영원한 소유’로 보장할 것을 약속하는 조약을 맺은 뒤, 인디언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이 지역 전체,저 산꼭대기에서 강 하구의 삼각주까지가 우리의 보호구역이다. 하지만 ‘영원한 소유로 보장한다’는 것은 누군가 그곳을 필요로 할 때까지라는 뜻이다. 조약을 맺고나서 이 지역을 조사한 뒤 슬그머니 6백만평의 땅을 제외시켰다. 그런 다음 세 가지 큰 전염병이 우리를 강타했다. 천연두, 홍역, 감기가 그것이다. 그 결과 우리 인구의 90%가 감소됐다. 보호 구역으로 이동할 무렵에는 생존자가 얼마 남지도 않았다.

얼굴 흰 사람들은 보호 구역을 여러 구획으로 나눈 뒤 인디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 지역에 살라. 이곳을 잘 가꾸라. 그렇지 않으면 도로 빼았을 것이다.”

얼굴 흰 사람들에게 잘 가꾼다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르고, 갈아엎고, 그 위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덮는 것을 의미한다. 대지를 벗겨내고,평평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어쨌든 인디언들은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배치되었으며, 처음 연방 정부가 맺은 조약에 명시된 넓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작아졌다. 그렇게 인디언들을 재배치 함으러써 우리가 갖고 있던 일자집의 사회 체제는 무너져 버렸다.

얼굴 흰 사람들은 우리더러 자유롭게 우리의 땅을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영어를 모르니 대리인을 지정해 주겠다고 했는데그 대리인이란 자들이 속이 시커먼 사업가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로부터 모든 권한을 가져가서는 사류에 서명을 하라고 욱박질렀다. 이들 대리인들과 미국 정부의 밀어부침에 인디언들은? 총부리에 밀려 다시 ‘보호구역’에서도 쫒겨 났다. 원래 인디안 보호구역은 ’인디언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이 제외된 땅이었다. 하지만 주 정부들은 자기들 멋대로 이 땅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다.

나의 할아버지가 그 시기에 이곳에서 사셨다. 할아버지는 당시 교육을 받은 몇 안되는 인디언 중 한 분이었다. 부족 사람들은 서류 종이를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곤 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세금을 내라는 고지서입니다, 돈을 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인디언들은 말하곤 했다.
“돈이라구요? 돈이 뭔데?”
그만큼 그들은 아직도 물물교환 경제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보호구역안에서는 수많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얼굴 흰 사람들이 술을 퍼마시고? 강간과 살인을 자행했으며 죽임을 당한 인디언들의 집과 땅을 빼았고, 아이들을 동부에 있는 백인 고아원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나의 할아버지가 그 인디언들의 장례식을 주관하곤 했다. 그 모든 슬픈 일들이 할아버지의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그 분은 이 보호구역 안에서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푸압롭 강은 자유롭게 굽이쳐 흘렀으며, 때로는 흐르는 강둑 너머로 범람하기도 했다. 우리는 울타리를 세워 물고기를 잡았다. 수많은 연어떼가 산란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인디언들은 여인네와 아이들을 데리고 강으로 가서 축제를 벌이고 수확의 춤을 추었다.

하지만 얼굴 흰 사람들은 너무도 탐욕스러워 산란하러 올라오는 물고기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위대한 정령은 물고기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 그것은 바로 신선한 물, 깨끗한 자갈들이 그것이다. 우리 부족 위원회는우리의 연어떼가 돌아올 수 있도록 강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고기들이 쓰레기더미 사이로 헤엄치지 않아도 되도록 강 밑바닥을 청소하고 샛강에서 부서진 차체와 침대스프링, 철조망 등을 건져냈다.
들소에 대해서 미국인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아는가? 그들은 들소 고기가 콜레스트롤이 낫고, 강한 면역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발견했다. 우리 인디언 치료사들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 온 약들을 미국인들은 아직도 발견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공동체 생활의 이점을 이제서야 자각했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살면서 커다란 거실과 공동 부엌을 사용하고 동시에 독립된 침실과 욕실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게 한다. 연료와 도구,공간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게 해주며, 따라서 매우 실용적이고 경제적이다. 우리는 그러한 주거 공간을 단순히 ’일자집’(롱 하우스)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할 중요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 대지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이곳에 있다고 믿는다. 시궁창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기 전에 이 환경을 깨끗이 되돌려야 한다.

일전에 아메리칸 원주민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 천막에 앉아 이런 기도문을 들었다.

“할아버지 위대한 정령이여, 날개 가진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도우소서. 흙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형제자매들, 땅 위를 기어다니는 형제자매들,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물고기 나라에 속한 형제자매들을 도우소서. 흰 피부색을 가진 형제자매들을 도우소서. 그들이 이 대지를 보호하고 더 이상 지구별에 상처입히지 않도록 도우소서.’

얼굴 흰 사람들이 대륙에서 대륙으로 건너다니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인디언들은 이곳이 천국임을 안다. 영적인 세계는 바로 이곳에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과 육체를 떠난 이들 모두가 날마다 우리와 함께 이곳에 있다. 육체를 떠난 이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어린것들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남겨 주는 것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제 새로운 날,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부족에게 일어난 모든 슬픈 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아이들은 밝게 빛나는 별들이다. 모든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의 약속이 태어나고 있다.

*류시화의<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감영사 간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먼저 괴로움을 경청하라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다.-올리버 웬델 홈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힘이 되어 주는 데 열쇠가 되는 것은 그들의 말을 들어 주는 능력이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로의 말과 현실적인 충고부터 늘어놓으려 한다. 그러나 공유하고자하는 지식이 아무리 가치 있고 도우려는 마음이 아무리 선의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공간과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또 상대가 말하는 동안 대답할 말을 생각하고 그가 마치지 못한 말을 성급히 대신 완성해 주거나,충고를 하면서 중간에 끼어드는 성향을 제어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최고의 충고라해도 말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충고에서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개인으로서 성장해 가는 주요 방법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그 충고를 받는 사람이 상대가 자신과 공감했다고 느껴야만 효과가 있다. 충고를 받는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말했고, 이해받았다고 느낄 때만 효과가 있다.

아마 위대한 리더십과 관련된 가장 흔한 특성은 카리스마일 것이다. 그것은 듣는이를 분발시키는 연설을 하거나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사실 카리스마는 과대평가되어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위대한 리더들의 특성은 바로 듣는 능력이다.

1970년대 초 미국의 학자 로버트 그린리프는 역사가 낳은 위대한 리더들이 윗사람을 섬기는 종으로서 말하고 행동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모세와 예수 같은 성경에 등장하는 리더들은 종으로 묘사된다. 또한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같은 최근의 정치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27년을 보낸 뒤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들에게 한 말은 “저는 여러분의 종입니다”였다. 존슨 & 존슨의 짐 버크와 미국 더보디숍 창업자 애니타 로딕 같은 위대한 경영자들은 CEO로서 그들의 주된 책임이 직원과 고객을 섬기고 그들의 필요에 유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린리프와 다른 리더십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번트 리더십의 주요 특징증 하나는 먼저 듣고 나중에 말하는 것이다. 사실 서번트 리더가 되려면 “듣는 법을 배우는 길고 고된 훈련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그린리프의 주장이다. 그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먼저듣는 것이 자동적인 반응이 될 정도로 오래 지속해야 하는 훈련”이다.

우리는 모두 리더다. 적어도 특정 상황과 특정 시간에, 가령 가정과 직장과 문화센터에서 친구나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런 역할을 떠맡는다. 누군가 우리와 뭔가 중요한 내용을 공유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과 리더십을 요청한다. 유능한 리더가 되어 그들을 돕고 싶다면, 듣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 간 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아빠는 겁쟁이(?)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한 어느 여름밤이었습니다. 엄마는 어린 아들을 재우기 위하여 아들의 방으로 가서 예전대로 책을 읽어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불을 끄려고 하는데 아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 오늘밤 나와 함께 자면 안돼요?" 하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꼭 껴안고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아빠방에서 아빠가 기다리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한동안 어린 아들은 아무 말도 안하고 있더니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아빠는 겁쟁인가봐! 덩치는 나보다 크면서 . . ." 하더랍니다.

 

1970년대 한국의 금지곡들과 사유들

*이장희의 '그건 너';가사가 퇴폐적이고 저속하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함.

*한대수의 '물 좀 주소';물고문을 연상시킨다.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양희은의 '아침 이슬';가사 중 '태양'이라는 단어가 북한을 암기한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노래제목이 불신을 조장

*송창식의 '왜 불러';경찰의 장발단속에 저항하는 영화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사용.

*배호의 '0시의 이별';0시부터 통금인데 0시에 이별하면 통행금지 위반한다고.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46 >

46. 나훔 예언자: 주께서 진노하시면 누가 당하랴

예언자 나훔은 누구인가? 성경에는  “ 엘고스 사람 나훔” 이라고만  알려진다. 엘고스는 갈릴리 호수 근쳐에 있던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훔이 활동하던 때는 앗시리아가 망하는 기원전 600년경으로 본다. 200여년간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앗시리아는 드디어 망하게 된다. 

앗시리아는 나훔보다 약 120년전 예언자 요나가 당시 수도였던 니느웨이에 가서 회개하라고 웨첬던 곳이다.  앗시리아는 근동지방에서 가장 악한 나라 중에 하나였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불러서 앗시리아에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있을 것을 전하게 했다.  요나는 처음엔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도망하려고 했다.  그래서 당시 아주 먼 다시스란 곳을 가려고 배를 탓다가  풍랑을 만나 결국 물고기 배속까지 들어가서 3일동안 죽을고생하고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시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앗시리아 사람들은 예언자 요나의 말을 듣고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

그 후 다시 죄를 짓고 악을 행하다가 드디어 기원전 640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앗시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남왕국 유대까지 침략해서 곳곳마다 페허를 만들고 심지어 예루살렘까지 위협했다.  그러나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하지 못했다.  그 후 앗시리아는 페르샤와 바벨론에 의해서 망했다. 

나훔은 “위로” 혹은 “위로 자”란 뜻이다.  나훔도  성전에서 예배를 도우며 왕과 왕자 등을 가르치던  신학자였던 것 같다.  특히 요엘 예언자처럼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의 심판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묵시적인 예언을 하고 있다.

나훔은 그의 예언 첫 머리에 “니느웨(앗시리아)가 형벌을 받을 것을 내다보고 쓴 묵시록”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한다.

“주는 질투하시며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는 원수를 갚으시고 진노하시되,                                         당신을 거스리는 자에게 원수를 갚으시며,                               당신을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하신다.                                          주는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고                                             권능도 한없이 많으시지만,                                                  주는 절대로, 죄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나훔서 1:2-3, 표준번역)

하나님은 공의의 신이요 인간들의 잔혹하고 부도덕한 것을 그저 보고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시다.  물론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시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한때 앗시리아를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셨으나 이제는 앗시리아의 죄를 묻고 계신 것이다.

“주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말리시고,                                          모든 강을 말리신다.                                                       바산과 갈멜의 숲이 시들며, 레바논의 꽃이 이운다.

주앞에서 산들은 진동하고, 언덕들은 녹아 내린다.                                                                                                    그의 앞에서 땅은 뒤집히고,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곤두박질한다.                              주께서 진노하실 때에 누가 감히 버틸 수 있으며,                                                                                                    주께서 분노를 터뜨리실 때에                                               누가 감히 견딜 수 있으랴?                                                 주의 진노가 불같이 쏟아지면,                                              바위가 주 앞에서 산산조각 난다.”( 나훔서 1:4-6, 표준번역)

앗시리아가 아무리 주를 거역하여 음모를 꾸미고 또 군대의 수가 많고 아무리 강해도  주께서는 그들을 단번에 없애 버리실 것이니 두 번까지 수고하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말한다.

“나 이제 너를 치리라”.   만군의 야훼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네 병거를 연기가 되어 사라지게 하고 너의 백성을 칼로 쳐죽여 다시는 세상에서 약탈하지 못하게 하리니,

" 네 사절들이 떠드는 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으리라. 피로 절은 이 저주 받을 도시야, 협잡이나 해먹고 약탈을 일삼고 노략질을 그치지 않더니,          들리느냐?  저 채찍질 소리.                                                병거 바퀴 돌아 가는 저 요란한 소리.                                       말은 소리치고 병거는 치닫는다.” (나훔서 2:14-3:2, 공동번역) 

앗시리아의 세력 밑에서 고생하던 이스라엘은 앗시리이아의 멸망함에따라 해방의 기쁨과 감사를 노래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이 패망함으로 해방과 자유를 노래하던 것과 같다.

“희소식을 전하는 발길이 산을 넘고 넘어 달려 온다
광복의 소식을 안고 온다. 유다야,
축제를 마련하여라.                                                       서원제물을 바쳐라.                                                                                                                                    그 못된 자들은 모두 없어졌다.  다시는 너희 가운데 얼씬도 못하리라.        야곱의 포도덩굴, 그 이스라엘의 자랑을,적들은 짓밟고 털어 갔었다.                                                                                    그러나 야훼께서 그 포도원을 다시 일으키시리라.”

( 나훔서 2:1,2, 공동번역)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지난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허유슈선의 '인생철학'>

행복의 열쇠를 타인에게 넘겨주지 마라.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시드니 해리스는 친구와 함께 걸어가다 가판에서 신문을 한 부 샀다. 친구는 신문팔이에게 “고맙습니다”하고 아주 예의 바르게 인사했지만, 신문팔이는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사람 태도가 너무 오만불손하지 않아?”
해리스는 길을 걸어가며 친구에게 물었다.
그러나 친구는 “그 사람은 늘 그래”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데 자네는 왜 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건가?”
해리스의 물음에 친구는 이렇게 되물었다.
“왜 내 행동이 그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지?”

“행복의 열쇠’는 우리 마음 속에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열쇠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곤 한다.

어떤 부인이 매우 원망스럽게 말한다. “사는게 즐겁지가 않아. 남편은 언제나 일 때문에 밖에 나가 있다고.” 이 부인은 행복의 열쇠를 남편에게 줘 버렸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는 도대체가 말을 안 들으니 내가 늘 화를 낼 수밖에 없어.” 하고 말한다. 이 어머니는 열쇠를 아이에게 주었다. 한 남자가 “우리 사장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 난 이제 모든 의욕을 상실했어.”하고 말한다. 이 남자는 열쇠를 사장에게 주어버린 것이다. 한 할머니가 “우리 며누리는 효도라곤 전혀 몰라. 난 정말 운도 없지..”하고 말한다. 한 젊은이가 문구점에서 나오며 “여기 사장은 서비스가 왜 그 모양이야? 정말 열 받네.”하고 말한다, 이들은 모두 타인에 의해 자신의 감정을 지배받고 있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감정이 지배될 때 우리는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일에든 무기력하고 오직 화내고 원망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힘든 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고통을 책임져야 해.”하고 말하며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아주 소중한 권리를 놓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이 권리를 잃은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기피대상이 되기 쉽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즐겁게 해주길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다. 안정된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책임지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아주 즐겁다.

지금 당신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혹시 다른 사람의 수중에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빨리 가서 되찾아오라.!

*허우슈선의 <인생철학 51강>황소자리에서

 

<늘푸른나무(www.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