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지혜로운 삶/2023년 12월 1일*<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73-최후의 예언자 말라기(마지막 회)>*<김열규의 '노년의 지혜-퇴직이라니요, 당치않습니다.>*<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72-제2성전 재건을 도운 스가랴 예언자.">*<웃으면 복이 와요-거꾸로 가는 자동차,명문 명답>*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71-학개 예언자:"성전을 재건하라.">*<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두려움과 맞서 싸울 때 용기가 생겨난다.>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한상휴 목사는 본지 창간호부터 이번호까지 <탈무드의 지혜>와 <예언자의 지혜>란 제목으로 거의 130여회에 걸쳐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를 다루어 왔습니다. 한 회도 늦거나 거르지 않고 정성껏 준비해 주신데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노후가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73. 최후의 예언자 말라기(마지막 회)

“이제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너라.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겠다”(말라기서 3장 7절)

말라기는 “나의 사자(Messenger)”라는 뜻이다. 부모나 활동 연대 등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 그래서 사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예언자는 스가랴에서 끝났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유대 랍비들은 말라기는 제2성전이 세워진 후 약 50년이 됐을 때 (기원전 460년경) 활동한 예언자 였다고 한다. 이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말 보다는 “유다 지파가 중심이 된 “유대공동체”라고 불리운다.

포로에서 돌아와 비록 보잘것 없는 성전이지만 성전(소위 제2성전)을 건축했고 자기들이 살 집도 지었고 예루살렘 성도 쌓았다. 그리고 장차 메시야가 오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메시야 시대는 오지 않았다. 잇따라 가뭄과 흉년이 계속되었고 평화보다는 전쟁이 계속 되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옛날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던 것 같이 지금도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고 에돔자손들을 버리셨다고 한다. 그러면 왜 유대나라에 어려움이 계속 되는가? 그리고 메시야 시대는 오지 않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백성의 지도자들이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하여 엄격하게 꾸짖는다.“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제 주인을 두려워하는 법인데, 내가 너희 아버지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공경하기라도 하였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언제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내 제단에 더러운 빵을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우리가 언제 제단을 더럽혔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나 주에게 아무렇게나 상을 차려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절뚝 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그런 것들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그가 너희를 반가워하겠느냐? 너희를 좋게 보겠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말라기서 1:68, 표준번역)

랍비들은 이제는 예언자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았다. 대신 성전 중심으로 예배를 주관하는 제사장들과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 중심의 지도자들이 유대의 지도자들이 되었다고 본다. 더구나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사렘이 망하자, 성전 예배도 사라진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같은 고정된 성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대신 율법과 랍비들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미 포로생활을 통해서 이미 경험한 사실이다. 예언자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말라기서는 4장으로 기록된 짧은 예언서다. 그리고 말라기기가 활동할 당시는 유대인의 삶의 형편이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라기 예언자는 기본적인 신앙회복을 강조한다.

당시 형편에서는 다음 세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성실한 유대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의 뜻대로 사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복되게 사는 길은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특히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는 성직자들이 충성되게 하나님과 신앙공동체를 섬겨야 한다. 그리고 백성들은 성직자들을 성전에서 잘 봉사할 수 있도록 도아야한다. 성직자들이 충분한 교육과 훈련 등을 할 수 있고 생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에스라 느혜미야서에서 많은 제사장들이나 랍비들이 성전봉사를 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느헤미야서 13:1013) 그래서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내 집에 먹을 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말라기서 3:3,4, 표준번역)

셋째는 종교적인 전통과 정신을 회복하라. 즉 모세를 통해서 준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강조한다 “너희는 율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라. 그것은 내가 호렙산에서 내 종 모세를 시켜서, 온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이른 것이다. “(말라기서 4:4, 표준번역)

말라기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 말라기서 4:5, 표준번역)

누가 앞으로 올 엘리야인가? 에스라인가? 혹은 느혜미야인가? 혹은 세례 요한인가? 혹은 예수 그리스도인가?

<김열규의 '노년의 지혜' >


퇴직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남달리 복이 많았을까? 교수의 정년보다 자그마치 일곱 해를 더 전임으로 일하다가 나이 일흔 둘에 이른바 ‘퇴직’이라는 것을 했다. 이런 게 화제가 될 때마다 나는 나의 ‘대기만성’에 우쭐대곤 했다. 아니, ‘대기노성’이라고 고쳐 말하고는 어깨에 힘을 준다.

늦게까지 전임노릇을 한 것은 분명히 만성이다. 늙어서까지 전임교수 자리를 꿰차고 있었으니 노성이기도 할 것이다. 그만한 만성이며 노성을 이룩한 처지이고 보면 스스로 ‘대가’라고 자처해도 큰 망발은 아닐것이다.

그렇게 ‘만성’과 ‘노성’을 즐기던 나는 드디어 전임 자리를 내려 놓고 퇴직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퇴직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퇴직의 ‘퇴退’라는 글자, ‘뒤로 물러날 퇴’자를 물고 나는 말썽을 피워댔다. 혼자 머릿속으로 꿍꿍이를 거듭했다. 그 퇴자가 민망해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명색이 퇴직이라고 한 뒤에 오히려 일이 늘어났다.즐겨 일에 묻히고 잠기고 했다. 그렇기에 나의 퇴직은 물러나는게 아니었다. 전직(轉職)이라고 고쳐 부르는게 옳을 것 같았다. 그 전직은 ‘직업을 향해서 앞서 나아간다’거나 ‘전진하는 직업’이라고 해석해주는 것이 맞을 것 갔다는 말을 굳이 붇이고 싶다.

그나마 그 ‘전직’들은 내가 알아서 고르고 정하고 꾸려가는 일들이었다. 누가 시키거나 정해놓은 게 아니었다. 전직들은 오직 나만의 전유물이고 독과점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만의 나만을 위한 나의 일’이 마련되었다. 나는 태어난 후 처음으로 나의 주체성을 누리게 된것을 크나큰 천행이요, 천운으로 여기고 있다. 이제는 뭐든 내가 알아서 하면 그만이다, 해도 그만이고 아니 해도 그만이다. 나는 오직 나이다. 누가 이래라,저래라 끼어들 리가 없다. 거기 ‘나만의 민주주주의’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 나만의 자치며 독립이 버티고 있다.

내가 그렇게 풍요롭고 넉넉하다는 것을 퇴직 후에야 겨우 깨달았다. 그건 노년이 베풀어 준 엄청난 특전이었다. 비로소 내가 된 것 같았다. ‘自手成家자주성가’란 말이 비로소 실감났다. 내 손으로 내 영역을 일구어낸 것이라 생각하니 노년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의 업을 성취해내는 것이라는 실감이 났다.

일흔이 넘고서야 찾은 나만의 나라니! 그 전의 시간과 세월은 오직 이를 위한 준비이고 예비의 시기에 불고했던 것만 같다. 이전의 내 생애는 과도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의 나만을 위한 나의 일! 이건 노년의 내가 비로소 향유하게 된 새 삶의 징표였다. 보통 일이라고 하면 작업이나 노동같은 걸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물론 작업이나 노동도 내게 일은 일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책 읽기, 걷기, 군것질하기, 차 끓이기, 차 마시기, 멍하니 바다 보기, 눈 감고 명상하기, 고개 숙이고 상상하기 등등이 모두 나의 일이다. 뿐만 아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원두를 갈아서 내 손으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맛을 보는 것도 일이다. 그러다가 그 모든 것에 진력나면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것도 요긴한 일이다. 덕분에 노년에 접어든 나의 일상은 ‘만다라’고 만물전이다.

*김열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비아북 간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72. 제2성전 재건을 도운 스가랴 예언자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자 누구냐?(스가랴서 4:10, 표준번역)

기원전 520년 경에 페르시야( 전 바빌론)포로에서 고향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려는 이들을 돕는 예언자 가운데는 학개와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예언자는 스가랴였다. 그는 학개보다는 훨씬 젊은이로 그 가족은 제사장 집안이었다. 스가랴는 그의 예언서 서문에 자기의 할아버지는 잇도였고 아버지는 베레갸였다고 한다. 에례미야나 에스겔 처럼 스가랴도 아버지를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돌보며 율법을 배웠을 것이다.

스가랴는 어른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와서 고군분투하는 예언자 학개와 함께 성전 재건을 위하여 힘썻던 예언자다. 랍비들에 의하면 스가랴는 학개가 예언자로 활동한지 약 두달 뒤에 학개를 도와 약 2년간 당시 포로귀환 공동체를 지도하던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적극 지지하며 성전 재건의 필요성과 믿음을 강조한 예언자라고 한다.

스가랴가 말한 “성전재건에 대한 믿음”이란 무었일까?

포로에서 돌아와 폐허가 된 이스라엘을 재건하려는 유대인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쉽지 많았다. 특히 성전을 재건하려는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로 젊은 이들은 바빌론이나 페르샤에서 크고 웅장한 우상의 전각들을 보았던 터라 그들에게 지금 건축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너무 작고 보잘것 없다고 여겨젔다. 그리고 다음에는 포로전에 솔로몬의 성전을 보았던 늙은이들은 자기들이 예배드리던 옛 성전을 생각하면서 다시 재건하는 성전은 첫 성전에 비교해서 너무 초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가랴는 외치기를,

“ 야훼의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즈룹바벨이 제 손으로 이 집에 주춧돌을 놓았으니, 그가 손수 그 일을 이루리라. 그제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가 만군의 야훼이심을 너희가 알리라. 일이 자잘하게 시작되어 사람들이 빈정거렸지만, 즈룹바벨이 골라 놓은 돌을 보고는 그 사람들도 기뻐할 것이다. 이 일곱 등잔은 천하를 살피는 야훼의 눈이다.” (스가랴서 4:8-10, 공동번역)

스가랴는 믿기를 성전재건은 이스라엘의 재건을 의미하고, 동시에 시온의 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모두 용서하여 주시고 당시의 백성으로 삼아주실 것을 확신시켜주시는 일이다.

“도성 시온아, 기뻐하며 노래불러라. 내가 간다. 내가 네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 나 주의 말이다."(스가랴서 2:10, 표준번역)

스가랴는 머지않아 예루살렘의 모든 것이 풍성하게 회복될 것이고 영원한 평화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스가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멧시지를 8개의 비젼을 통해서 전한다. 그 내용은 에스겔서에서나 다니엘서에 보듯이 신비적이고 종말론적이다. 특히 세상의 종말에 대한 환상적인 예시, 그리고 천사와 사탄과의 대립 등이 메시야 시대에 출연될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며 설명하기가 어렵다.

스가랴서에서 우리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종말론적인 기록들(요한 게시록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사역과 관련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메시야 시대의 도림에 대한 비젼(스가랴서 3장), 장차 올 메시야가 나귀를 타고 입성한다는 것(스가랴서 9) 사랑하는 자의 집에서 받은 가슴에난 상쳐(스가랴서 13:6)”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연상하는 말씀들이다.

제2성전은 시작한지 4년 반 만에 완성된다. 기원전 516년 이른 봄에 봉헌식을 드린다. 첫 성전이 망한지 70년 후다. 이스라엘은 무덤에서 살아 나온 것과 같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거꾸로 가는 자동차

한 노인이 아들 집에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운전중이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지금 고속도로에 계시죠?”

“그래, 왜?”

“지금 교통안내 방송에서 어떤 자동차 한 대가 고속도로에서 거꾸로 달리고 있다고 나왔거든요? 조심하시라고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참, 정신 없는 놈이구먼, 그런데 한 대가 아니다. 수백 대가 전부 거꾸로 달리고 있어!”

명문 명답  

*황소 머리가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 순간 꼬리는 어느 쪽?
   답은 "땅쪽"

  
   *두 사람이 하늘을 가리키며 "초승달이다" "아니다 그믐달이다" 논쟁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가 하는 말-"저는 이 동네에 안 살아서 모르겠는데요."

  
   *흑인의 피부는 무슨 색일까?  답은 -살색.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71. 학개 예언자: “성전을 재건하라.”

적막한 옛 이스라엘의 언덕에 한 떼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이들은 낙타와 조롱말이나 나귀 등에 물건들을 싣고 먼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주로 나이 많은 노인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 여인들도 있고 젊은이나 어린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먼 바벨론 근처에서 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바벨론 사람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팔레스타인의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 바빌론 땅에서 포로로 살다가 풀려나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귀향 민들이었다. 이때가 바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다(기원전 537년경).

소위 제2 이사야가 예언한 바벨론의 포로인들(디아스포라) 중 믿음을 지키며 산 사람들”소위 남은자들” 의 일부였다.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빌론은 페르시아에게 망한다(기원전 539년). 그리고 바빌론에 잡혀 있던 포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왕의 특명을 받고 각나라로 돌아간다. 유대민족도 바빌론에 잡혀왔던 여호야긴 왕의 손자 세스바살( 혹은 룹바벨이라고도 함)과 제사장의 자손 요수아 그리고 에언자 학개와 스가랴 등이 귀향민을 인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이때 돌아온 유대인들이 42,360명이었고 종들이 7367명이었다고 에스라는 보고하고 있다.(에스라서 1:8, 5:1)

반겨주는 이들이 없는 예루사렘과 유대땅은 황무지가 됐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서로 격려하며 재건을 시작한다. 그들은 우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아놓고 바빌론에서 갖고 온 제기들을 펴 놓고 감격의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 돌들을 주춧돌 삼아 성전재건을 시작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성전을 맨 먼저 재건하고, 다음엔 자기들이 거처할 집들을 짓고, 다음엔 버려진 토지들을 개간하고 그리고 과수목들을 심으려고 한다. 세계 이차 전쟁 뒤 유럽 등 세계각지에서 유대 땅으로 돌아 온 유대인들이 옛 땅을 개척하듯, 그러나 이 일은 쉽지 않았다. 물론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는 일이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근처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방해때문이었다. 이들은 본래 유대인의 친족들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살다가 앗시리아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로 당시 앗시리아의 정책에 따라 이민족들과 혼합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일찍이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정착했으므로 “사마리아 인”이라 불렀다. 이들이 처음엔 돌아온 유대인들을 환영하고 재건을 도왔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순수한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고 이민족과 섞인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며 그들의 도움을 거부하자, 유대인인의 예루살렘성 재건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마침 유대인들 성전 재건을 기쁘게 지원하던 고레스 왕이 죽고 예루살렘 재건에 열심이 없는 아하수에로가 왕이 되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유대인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며 왕에게 반항하려고 한다”고 거짓으로 고소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자 아하스에르 왕은 유대인 성전재건 공사 지원을 중단한다. 또한 가뭄이 들어 흉년이 거듭되었다. 기쁘게 성전을 재건하려는 꿈도 열성도 점점 시들기 시작한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매일 먹을 양식도 귀한 처지에, , 집을 지으며, 원수들과 싸우며, 성을 쌓으며,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말하기를 “아직은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중에 세월은 흘러서 성전 재건을 시작한지도 어언 이십년이 되었다.
그러자 예언자 학개는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언자 학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다만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왔다는 것뿐이다. 아마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던 소수의 ”남은자” 혹은 “엘리트”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랍비의 전승에 의하며(바빌론 탈무드) 바빌론에서 유대 포로 공동체의 지도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학개 예언자는 생각하기를, 비록 지금 살기 어렵지만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이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즉 유대 귀향민들의 중심은 성전이라고 보았다. 학개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성전이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지금이 너희만 잘 꾸민 집에 살고 있을 때란 말이냐?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살아온 지난날을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 너희는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했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했으며, 입어도 따뜻하지 모하며, 품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음이 되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성전을 지어라. 그러면 내가 그 성전을 기껍게 여기고, 거기서 내 영광을 드러내겠다.(학개서 1:4-6,8, 표준번역)

그리고 당시 귀향민의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요수아에게 하나님이 도우시니 염려하지 말고 성전을 재건하라고 격려한다. 학개서에는 네 번에 걸쳐 성전 재건에 대한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다.

예언자 학개의 외침은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잠자던 의식을 깨우친다. 학개의 격려로 지도자와 백성들이 힘을 합해 다시 성전 재건을 시작한다. 드디어 다리우스 왕 유월 3일에 드디어 성전을 봉헌한다. 비록 옛 성전에 비교하면 새로 세운 성전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세운 첫 성전은 외국의 건축가들이 풍부한 가운데 웅장하고 아름답게 지은 성전이었다. 그러나 지금 봉헌하는 제이성전은 크기나 모양으로 비록 작고 보잘것이 없어 보이나 이 성전은 가난하고 적은 유대인들이 손수 정성을 다해 건축한 성전이었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두려움과 맞서 싸울 때 용기가 생겨난다

용기란 단순히 미덕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미덕이 시험대에 오를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C.S. 루이스-

자신의 영웅들을 상상하고 압도감을 느껴 보라. 자유세계의 짐을 자기 어깨에 걸머졌던 윈스톤 처칠의 불멸의 낙관주의, 사업 방식을 일변시킨 에니타 로딕의 에너지와 카리스마, 예리한 통찰로 교육 분야를 혁신한 마리아 몬테소리의 탁월함을 느껴 보라. 나는 가끔 글을 쓰면서 다음 문장을 이어가거나 곧 있을 강연준비에 물안을 느낀다. 그러나 포기하고 굴복하기 전에 나는 내 영웅들 역시 때로는 두려워 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단지 그들은 그 느낌에 무릎을 꿇지 않았을 뿐이다.

용기란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밀고 나가는 것이다.

코넬 대학교 심리학자 다릴 벨이 제안한 자기 지각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가령 어떤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는 장면을 보면 나는 그가 정중하다고 추측하며,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소리지르는 것을 보면 나는 그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형성하는? 인상의 일부는 내 행동에 대한 나 자신의 관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용기라는 미덕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어려움에 대처하거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볼 때, 나는 그들이 당당하고 용기있다고 추정한다. 이와 비슷하게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볼 경우, 나는 나 자신이 당당하고 용기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용기 있게 행동하기 위해 꼭 용기를 느낄 필요는 없다.오히려 내가 용감해지는 것은 내가 용기있게 행동할 때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결험이다 죽은 사람이나 정신병자 외에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두려움에 굴복하고 노력을 멈추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두려움을 끌어내 어떻게든 뜻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당신은 언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밀고 나갈 수 있겠는가? 언제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 간)>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