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2020년 1월 15일*<복잡한 시대를 단순하게 살아가는 아미시들의 지혜-거룩한 침묵 >*<소노 오야코의 '나이듦'의 지혜-혼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습해 둔다>*<웃으면 복이 와요-안쓰는 물건(?), 한심한 가장(?) 행복한 가장.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27.예언자 호세아-사랑은 슬픈 것인가?>*<탈 벤 사하르의 삶의 지혜-물질보다 경험을 소중히 하라-탈 벤 샤하르>*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사는 아미시들의 지혜>

거룩한 침묵

할 말이 없는 사람들과 말하도록 설득 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복이 있도다 (아미시 금언)

주일 아침, 시계가 아침 8시를 알리면 아미시 가족들은 집을 나서서 오늘 교회가 열리는 가정을 향해 언덕길을 올라간다. 그들은 두, 세명이 짝이 되어 뒤에 처지는 아이들과 함께 서로 어깨를 나란히 걸어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걸어간다. 몇몇 사람들은 사륜마차를 타고 오지만 언덕이 가파로워 지면 가족들은 마차에서 내려 말의 부담을 덜어준다. 이런 경우에도 말없이 조용하다. 침묵은 다시 내려 덮히고 기다림의 달콤함만이 있다.

예배의식도 침묵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자기의 자리를 찾아 앉을때에는 특별한 차례가 있다. 처음에는 안수 받은 사람들, 다음에는 그 외의 모든 남자들이 나이순서대로 입장하고 그 다음에는 부인들과 여자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목사와 악수하고 들어가 반대쪽에 앉는다. 그 뒤로 남자 아이들이 입장한다. 찬송을 부르는 중간중간에는 한참동안의 침묵시간을 갖는다. 온 회중이 무릎을 꿇고 침묵의 시간을 가진다. 기도는 목사의 목소리 가다듬는 헛기침으로 끝난다. 예배시간의 침묵 기도는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고 자신을 벌거벗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침묵 가운데서 입니다”라고 회색 머리가락을 쪽 짓고 모자를 눌러쓴 조그마한 체구의 루디 죡은 말한다. 그녀는 종종 웃음을 짓는데 그럴 때면 태양이 그의 살결을 씻어준 듯 화사하다. 그녀는 내적 평안의 증거로 그의 손을 맞잡아 가만히 배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우리가 침묵을 하는데 실패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세상의 씨끄러움을 통해서 우리들의 “시선”을 집중하려 하실 것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루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의미를 숙고하고 그 향기를 느끼기 위해서 조용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한 때가 있다고 믿는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그녀는 계속해서 “그들은 무언가 특별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알고 있었지요 그리고는 그들이 그 경험에 푹 빠져서 산을 내려오며 침묵 했으리라 고 생각해요. 말은 그들을 실패하게 하였지요”

온유의 겸손의 아미시 가치관은 때로는 부드럽고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주문한다. 설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말하기를 더디하라”(야고보 1”19)라는 성경말씀을 강조한다. 아미시들에게 겸손은 침묵과 항상 함께한다.

가정 식탁에서는 매 식사 전과 후에 두 번씩 침묵기도를 올리도록 한다. 가장은 목청을 높이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기도가 끝났음을 알린다. 개인적인 대화도 강조하지 않는다. 루비는 “그러니 가정은 매우 조용한데 어떤 가정은 자연적으로 수다스러운 가정도 있지요”라고 루디는 말한다. 주일에는 존경의 태도가 넘쳐난다. 일요일 날 집에서는 일하는 평일과는 달리 장도리질이나 집 짓는 소리, 심지어는 휘파람 소리까지도 포함해 떠들썩한 소리들은 금지되고 있어 조용하게 지낼 수 있다. 한가로운 한담이나 휴식 그리고 산보 등은 예배분위기와 섞여 있다. 교회에서 어떤 교인이 죄를 자백하면 모든 죄가 용서받는다. 죄는 전혀 없었던 듯 깨끗이 씻어져 버린다. 그의 죄는 다시는 언급되지 않는다. 침묵이 다시 힘을 얻게 된다. 만약 외부인에 의해 욕을 먹거나 놀림을 받았다면 아미시들은 침묵으로 대응한다. 이것은 다른 뺨도 내어주는 것으로 평화주의자들이 순교자에 이르는 이유이며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거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루디는 “침묵에 대신할 만한 것이 없어요” 라고 덧붙였다. “속임수도 있을 수 없고 지름길도 없지요. 우리의 이기심 안에서는 우리는 묵상가운데서 하나님께 우리의 시간을 선물로 드린다고 상상할 수 있으며 그의 제단에 무엇인가를 바친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꺼꾸로 생각하는 거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지혜를 선물로 주시지만 그것은 우리가 우리들의 씨끄러운 자아와 세상을 침묵시킬 수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며 내안에서 그와 그의 지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침묵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침묵은 편안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구요. 그것은 순종에 관한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침묵은 내가 하려는 말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이냐 를 강조한다. 침묵은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소통을 보다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아미시들에게 있어서 동정(공감)과 이해는 주일날 오후의 방문(심방)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아이들의 가장으로서의 만족한 모습은 부엌 식탁에서 나타난다. 도움이란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지는 것이다.

*Suzanne Woods Fisher <Amish Peace>에서

<소노 오야코의 '나이 듦"의 지혜>

혼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습해 둔다.

아무리 사이 좋은 친구도, 금실 좋은 부부도 죽을 때는 혼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만 간혹 자식을 먼저 잃는 경우도 있으므로 혼자가 되었을 때를 상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 둡니다.

화재훈련과 비슷합니다. 막상 일이 터졌을 때는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쓸 일이 없더라도 예행연습을 해 두면 언젠가는 도움을 받습니다. 가끔 “아내가 나보다 먼저 떠난다는 건 생각해 보지않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해가 안됩니다. 나는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와 아들, 단둘만 남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자주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몸이 약하거나 병에 걸린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인간의 죽음은 불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도록 소설을 썼지만 그 시절엔 대형일간마다 언론통제를 받았던 터라 혹시라도 정부에 밉보여서 지면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소설 외에 어떤 일을 하면서 어린 아들을 키울 것인지 궁리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요미우리 신문을 사곤 했습니다. 그 당시엔 요미우리 신문의 구인광고가 제일 많았습니다.

내 마음에 든 일자리는 재래식화장실에서 분뇨를 수거하는 분뇨 차 운전기사였습니다. 냄새도 심하고 더러운 일입니다.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일당도 꽤 높았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세상에서 더럽다며 남들이 피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귀한 일이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돈도 벌고 사회적으로도 의미도 있는 일을 한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1960년대 후반에는 산케이 신문을 제외한 일간지에서 중국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정부가 중국에 관련된 기사를 사전에 검열했기 때문입니다. 잡지사 계통의 주간지는 상대적으로 검열이 약했고, 나는 별다른 제약 없이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쓸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아사이, 마이니치, 요미우리 등 일간지들이 사상통제에 대항하기 시작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늘어났습니다. 또 남편이 먼저 떠나는 일도 없었습니다. 아들은 이제는 50대 장년입니다.

나는 성격적으로 걱정이 많은 편입니다. 나쁜 일은 되도록 떠올리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걱정과 함께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마다의 특징이므로 누가 옳고 그르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타고난 성품대로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얻은 것을 잃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이를 대비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소노 오야코의 <나이 듦의 지혜, 리수 간>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안쓰는 물건(?)

여의도 어떤 아파트에서 바자회를 한다면서 경비원 아저씨가 집집마다 돌면서 '안쓰는 물건' 가지고 나오라고 신신당부 했더니 . . .

다음날 주부들이 전부 남편들을 끌고 나왔다네요, "요새 안쓴다고요!"

한심한 가장(?), 행복한 가장

한 남자가 결혼 초부터 아내에게 꼭 쥐여사는 것을 보고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난 너를 보면 아주 답답해 죽겠어."

"왜 또 그래?"

"생각해 봐, 솔직히 너희 집에서 가장이 누구야?"

그러자 친구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글쎄 . . . 전에는 아내가 가장이었는데 딸애들이 자라고 나서는 위원회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27. 예언자 호세아: 사랑은 슬픈 것인가?

예언자에게도 러브스토리가 있는가?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애인으로부터 배반당하고 괴로워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 주인공이 호세아다.

호세아는 아모스와 거의 같은 때(기원전 8세기 후반 경)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다. 그는 브레이의 아들이라고만 알려지고 있다.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고멜은 호세아에 대해서 애정도 없었고, 신실하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좀 어리석은 여성이었다. 이미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도 행실이 좋지 못하여 평판이 좋치않았던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고멜을 사랑하였고 결혼까지 했다. 호세아와 고멜은 결혼하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고멜은 호세아의 애정에 불만이었는지 혹은 가정 살림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얼마되지 않아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가고 말았다. 아마 잘 생기고 돈도 많고 권력도 있는 남자였던 것같다. 호세아는 갑자기 아내를 잃고 어린 세 자녀을 키우며 어렵게 살게되었다. 작은 동네에서 당장 소문이 났을 것이다. “예언자의 아내가 바람이 났대. 여북하면 아내가 도망했을까?” 사람들은 호세아를 비웃었다. 호세아는 괴로웠을 것이다.

한편 가정을 버리고 정부와 도망한 고멜은 처음에는 재미있는 살림을 살았던 것같다. 그러나 이것도 잠간뿐이었다. 정부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따라가다가 결국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쓸모없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고멜은 창녀로 팔리게 되었다.

호세아는 고멜이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처가집에 결혼할 때 지불한 지참금을 돌려달라고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요즈음 같으면 가정법원에 이혼 소송과 함께 손해 배상을 요청했을 것이다. 고멜은 당연히 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남편 호세아는 왜 괴롬을 받아야 하나?

호세아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음녀가 된 아내 고멜을 멸시하거나 천대하지 않고 불쌍히 여겼다.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고멜을 용서했다. 왜 그럴까? 호세아는 아직도 고멜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좋을찌 몰라 애쓰고 있을 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고멜을 다시 찾아 오라고 하신다.

호세아는 수소문한 끝에 창녀로 팔려가있는 고멜을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사서 데려온다. 그리고 우선 피난처에 두고 “당신은 많은 날을 나와 함께 살면서, 창녀가 되지도 말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지도 말고, 나를 기다리시오. 그동안 나도 당신을 기다리겠소.”하고 말했다(호 3:3)

사랑은 생리적으로 괴로움을 품고 있다고도 한다. 어떤사람은 잘못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이라고도 한다. 어떤사람은 끝 없는 질투심 등으로 밤낮 괴로움을 당할 수도 있다. 혹은 깊은 상처를 입고 일생동안 아파하며 살 수도 있다. 불행한 사랑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그래서 사랑은 슬픈 것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지극한 사랑은 누가 뭐래도 개의하지 않는다. 그러면 호세아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탈 벤 샤하르의 행복한 삶의 지혜>

물질보다 경험을 소중히 하라

행복은 얼마나 갖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즐기느냐에 있다.-촬스 스퍼전

많은 사람이 행복의 비결은 더 큰집, 더 비싼 자동차, 최신 전자제품, 더 두둑한 은행예금을 갖는 데 있다고 믿는다. 대체로 광고산업은 물질에 대한 숭배를 조장하고 고무하며, 그들이 추천하는 물건을 구입하면 영원한 행복이 찾아온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일단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더 크고 더 좋고 더 새롭고 더 비까번쩍한 물질을 더 많이 갖는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그것은 마약 중독자가 마약 주사를 맞았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일시적인 도취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지속적인 행복은 물질을 소유하는 데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데서 나온다. 아이들과 공원에서 함께 하는 공놀이, 친구와의 즐거운 점심 식사, 바닷가를 거닐며 바람에 배어 있는 소금기를 느껴 보는 것 등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자신의 선택으로 구매할 수 있다. 행복한 경험이 없는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가격은 낮지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당신은 방금 연말 보너스를 받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 당신은 1년 동안 뼈빠지게 일했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여기서 당신은 고민에 빠진다. 이 돈으로 올해 나온 신형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쓸까, 아니면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날까? 휴가를 가면 좋겠지만 , 길어야 일주일이다. 반면 자동차는 오래 탈 수 있다. 이것이 당신 계산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구입하기로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당신의 계산이 틀렸다. 마케팅 전문가 네오나르도 니콜라오 교수와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일단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우리는 대개 물질보다는 경험을 구매하는데서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느낀다. 비록 경험은 짧고 물질이 주는 가치는 훨씬 오래 갈지 모르지만 , 행복한 경험은 기억속에서 언제든 재경험하며 계속 즐길 수 있다. 반면, 새로운 물건이 주는 신선함과신기한 느낌은 금방 사라져 버린다.

물질의 가치가 우리에게 유쾌한 경험을 제공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예컨대 자동차를 수리하는 일이나 고속질주를 즐긴다면 , 자동차는 내게 긍정적인 경험을 수없이 선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내가 구입한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것을 통해 내가 얻을 경험이다.

경험의 가치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연말 보너스 같은 횡재를 만날 때만이 아니다. 물건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사고는 비교적 사소한 일상적인 결정에도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전자제품이나 장난감보다는 극장에서의 저녁시간이나 가족과의 볼링게임을 선호한다.

*탈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에서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