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2019년 11월 15일*<복잡한 시대를 단순하게 살아가는 아미시들의 지혜-용서가 주는 자유 >*<지혜로운 삶-불행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법 -허유수선>*<웃으면 복이 와요- 남편의 선물, 인간의 일생.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25.아모스와 아마샤의 대결>*<삶의 지혜-행운을 창조할 준비를 하라.-탈 벤 샤하르>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사는 아미시들의 지혜>

용서가 주는 자유

은총의 감격을 맛 본 심장은 그 얼굴에 기쁨이 넘친다 -아미시 속담

전형적인 가을, 주일 아침, 베스 키미(Beth Kime)는 교회에서 한 친구에게 17살 난 아들 요엘(Joel)이 운전할 때 너무 속력을 내는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대부분의 10대 소년들과 같이 그 아이는 속도내기를 좋아하였다. “베스는 친구에게 “어쩌면 한 달동안 그녀석의 운전면허를 압수해야 할런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몇 시간 후, 요엘은 오후 풋볼게임을 위해 인근 학교로 차를 몰고 있었다. 그 차에는 남동생 제프와 두 친구 챠드와 데이브가 같이 타고 있었다. 요엘의 회상에 의하면 “몇 백 야드 앞에는 아미시 사륜마차가 우리가 가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애들에게 ‘저 녀석들을 앞질러야지’란 뜻의 말을 하였다고 한다.
사륜마차를 지나치려는 순간 요엘은 사륜마차의 왼쪽방향 회전시그날을 보지 못했거나 조그만 시골길로 사륜마차가 회전하는 것을 보지못했다. 요엘은 “나는 내 앞에서 회전하는 말의 콧배기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요엘의 차는 사륜마차를 받아버렸고 사륜마차는 요엘의 차 꼭대기로 날아 올랐다. 요엘의 차에 탓던 아이들은 비교적 적게 다쳤지만 찌그러진 마차에서 기어나온 아미시 장정이 몹시 화가 나서 “CRP가 무언지 알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의 부인이 중상을 입었다. 이들 부부는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아미시 스타일의 신혼여행중이었다. 그들은 결혼한지 겨우 닷새 밖에 되지 않았다.신랑인 아론은 스물 한 살이었고 신부인 사라는 열 아홉 살이었다.

다음날 요엘의 부모는 요엘의 사고당한 아미시 가족들을 방문하여 만나 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요엘은 “저는 무척 불안해요. 속이 찢어지듯이 아파요”라고 말했다. 요엘은 랭카스터 카운티에서 성장했지만 그를 둘러싼 아미시 문화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나는 아미시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알지 못했다. 혹시 총이라도 들고 포치에서 기다리지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요엘의 가족들이 그들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농장 뒷편에 세워놓은 사륜마차는 요엘의 두려움을 더욱 높여주었다. 그 가족들은 요엘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방앞에서 가족들을 맞았다. 사라의 부모인 멜빈과 바바라는 요엘에게 걸어오더니 그들의 팔로 요엘을 감싸 않았다. “눈물이 나서 나는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못했다. 그런데 그들은 나로서는 가장 믿을 수 없는 말을 하였다. ‘우리는 자네를 용서하네. 딸애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에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네”

사라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론도 손을 벌리고 요엘에게로 다가 왔다. “그는 별 말 없이 나를 용서해 주었다. 우리는 용서의 자유함으로 얼싸안음으로 나를 압도하였다. “요엘은 그를 짓누르던 중압감에서 풀려났을 때의 그 안도감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먼저 보인 용서는 너무나 의미있고 강력하여서 다음날 당장 나의 모든 것들을 바꾸어 버렸어요. 단번에 마음판이 깨끗이 닥아졌어요”
아미시 가정의 진정한 용서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요엘과 그? 가정의 친구가 되어 서로 만찬에 초청하기도 하며 판사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특별청원을 하기도 하였다(요엘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실형은 면하였지만 3년 동안 운전면허가 정지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 형을 받았다.). 또 요엘의 결혼식때는 온 가족이 참석했으며 요엘이 아내와 쟈마이카 선교여행을 갔을때는 재정적인 지원도 해 주었다.

요엘은 “나는 종종 그날을 생각합니다. 나는 그때 사고났던 지역을 거의 매주 통과하는데 아직도 그때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요엘의 어머니인 베스는”그날 교회에서 요엘의 면허증을 빼았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그동안 수 백번도 넘게 해보았지요 그랬다면 “사라가 아지도 살아있을텐데”
그러나 그들은 금방 비극가운데서도 축복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요엘은 “그들은 나를 용서해 주었고 그후 전혀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실제 관계에서 그것을 실천해 주었어요, 그것은 강력한 것이었고 온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날 이후 요엘은 사람들을 용서하는데 힘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바꾸어 놓으신듯 해요. 왜냐하면 더 이상 용서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용서가 물흐르듯 내 마음에서 흘러났으니까요.”

요엘에게서 그 아미시 가정의 준비된 용서가 계속해서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었다.
*Suzanne Woods Fisher<Amish Peace> 에서

<허유슈선의 ‘인생철학 강의’>

불행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법

곤경에 빠졌다면 먼저 자신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스스로를 이겨내야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비관론자들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통을 이겨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겪었던 일상의 고통과 번민을 되짚어보면, 그 원인은 대부분 자신을 이겨내지 못한 데 있다.

조지프는 아주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한 철도 역무원이었다. 그러나 성실한 조지프에게도 단점이 한나 있었으니 바로 인생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였다. 그는 늘 부정적인 시각으로 ㅛ세상을 바라보았다.

어느날 조지프는 회사의 냉동창고에 들어갔다가 실수로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냉동차아고 안에서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고함도 질러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날 마침 사장의 생일잔치가 있어 전 직원이 일찍 일을 마치고 퇴근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지프의 손은 문을 두드리느라 빨갛게 부어올랐고 목청이 터질것 만큼 소리를 지르느라 목도 잠겼다. 그런데도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그는 절망감에 휩싸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지프는 생각할수록 점저 더 무섭고 고통스러웠다. 냉동창고안의 온도는 최소한 영하 20도로 유지되기 때문에 당장 나가지 못하면 얼어죽을 것이 뻔했다. 조지프는 종이와 펜을 찾아들고 덜덜 덜리는 손으로 유서를 써내려갔다.

다음날 아침 직원들이 출근하여 냉동창고를 살피다가 바닥에 쓰러진 조지프를 발견했다. 조지프는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뒤였다. 사람들은 조지프의 죽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날 창고 안의 냉동장치는 꺼져 있었고 산소도 충분했는데,조지프가 어떻게 ‘얼어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지프는 냉동창고의 온도 때문이 아니라 얼어붙은 자신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웬만해서는 냉동장치가 멈추는 일이 없다고 생가가했지만, 그날은 마침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해 냉동장치를 꺼둔 상태였다. 그러나 조지프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일생 동안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서는 수도 없이 이겼던 사람도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지곤 한다. 우리가 기회를 포기할 때에도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릎을 꿇고? 포기할 때가 훨씬 많다. 다름 사람에 의해 저지당하기보다는 대부분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 더 이상 살지 말라고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염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한 비관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고통을 이겨낼 용기만 있다면, 이 세상에 해결 못할 어려움은 없다.

육지 위에선, 태풍의 존재를 눈으로 보기 힘들다. 다만 몸으로 느낄 수 있을뿐이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는 태풍의 존재를 눈으로 볼 수 있다. 거대한 담장이 일렬로 줄지어 다가오듯 대단한 기세로 파도가 일렁인다. 바다 경험이 없는 선장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는 빨리 뱃머리를 뒤로 돌려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태풍의 속도보다 빨리 도망갈 수 있는 배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좋지 않습니다. 어느 쪽으로든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그 배는 바람을 맞는 면적이 더 커지기 때문에 전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방법은 모든 문을 걸어 닫고 전속력으로 태풍을 향해 돌진하는 것입니다. 태풍의 세기가 강하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태풍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단거리 코스입니다.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다. 곤경에 빠졌을 때에는 절대 당황하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라. 두려움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곤경에 빠졌다면 먼저 자신 안의 공포를 이겨낼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스스로를 이겨내야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만약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먼저 자신의 나약함을 이겨내야 한다. 자연스러움이 필요할 땐 먼저 고집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면 먼저 게으름과타성과 싸워야 한다. 넓은 도량이 필요할 땐 먼저 자신의 편협함을 이겨내고, 청렴결백해야 한다면 탐욕을, 공명정대함이 필요하다면 사리사욕을 이겨내야 한다.

자신을 이겨내지 않으면 새롭게 태어날 수 없다.

*케임브리지 교수들에게 듣는 <인생철학 51강> 허유슈선 편집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남편의 선물

남자가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줬다.

이 소식을 듣고 그의 친구가 말했다.

"자네 부인은 벤츠 승용차를 갖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하지만 어디서 내가 가짜 벤츠 승용차를 구할 수 있겠어?"

인간의 일생

하나님께서 소를 만드시고 소한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60년만 살아라. 단 사람을 위해 평생 일만 해야 한다."

그러자 소는 30년은 버리고 30년만 살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개를 만드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30년을 살아라. 단 사람을 위해 평생 집만 지켜라."

그러자 개는 15년을 버리고 15년만 살겠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세 번째 원숭이를 만드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30년만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재롱을 떨어라."

그러자 원숭이는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을 만드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25년만 살아라. 너한테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주겠다."

그러자 사람이 하나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소가 버린 30년, 개가 버린 15년, 원숭이가 버린 15년을 다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25세까지는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냥저냥 살고, 소가 버린 30년으로는 26-55세까지 일만 하고, 개가 버린 15년으로는 퇴직하고 집 보기로 살고, 원궁이가 버린 15년으로는 손자, 손녀 앞에서 재롱 떨며 산다고 합니다.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25 >

25. 아모스와 아마샤의 대결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을 예언하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일어나서 아모스를 왕에게 고발한다. 아마샤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아마 당시에 궁궐에서 왕을 보좌하고 있었거나 혹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벧엘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있었던 것같다. 아마샤는 왕에게 보고하기를, “아모스는 여로보암 왕은 칼에 찔려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사로잡혀서, 이스라엘을 떠나 타국으로 끌려가리라고 선동합니다. 그러니 즉시 아모스를 잡아서 처벌을 하라고 권면한다. (암7:11)

그리고 직접 아모스에게도 말하기를, “선견자야, 살아져라. 유다 땅으로 도망가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을 빌어 먹어라. 다시는 벧엘(하나님의 집)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말아라. 이곳은 임금의 성소요, 왕실이다.”(암7:12,13). 아마샤는 전형적인 직업예언자 혹은 제도적인 종교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자 아모스는 대답하기를,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혹은 아들)도 아니다. 나는 가축을 키우며, 들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다. (암 7:14,15)"

그리고 아마샤의 잘못과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너는,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너는 나더러 이스라엘을 치는 예언을 하지 말고,
이삭의(이스라엘) 집을 치는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네가 바로 그런 말을 하였기 때문에,
주께서 이렇게 말씀 하신다.
네 아내는 이 도성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은 칼에 찔려 죽고,
네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차지하고,
너는 사로잡혀 간 그 더러운 땅에서죽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꼼작없이 사로잡혀
제가 살던 땅에서 떠날 것이다.” (암7:16,17)

왕이나 권력자에게 쓴 소리보다 기쁘게하는 예언을 하는 거짓예언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신학자는, 참예언자와 정치 지도자와의 관계를 “창조적인 긴장관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은 예언자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현실을 바로 보고 비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예언자가 생명의 위협까지도 무릅쓰고 바른 소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주변에 있는 나라들; 다마스쿠스(아람), 가사(불레셋), 두로(페니키아), 에돔, 암몬, 모압, 남왕국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다. 이들은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열강들이었다.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첫째는 무정한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다. 한때 강하고 부유 하다고 해서 약한 이웃 나라들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것을 하나님은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우주적인 심판자임을 알리는 것이다. 우주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브라함부터 계속해서 강조해온 사실이다.

1855년 고고학자들이 모압땅에서 멧사의 석비를 발견하여 해독했다. 그 내용은 본래 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땅을 빼았겼다가 다시 회복했다는 것이다. 좀더 보면 모압사람들이 그모스신을 섬겨오다가 그모스신을 버렸으므로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그모스신을 섬기자 나라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기원전 9세기 중동의 역사적 사실과 선지자들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틸 벤 사하르의 '행복론'>

행운을 창조할 준비를 하라

진리가 문을 노크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리 가! 나는 진리를 찾는 중이니까.”
결국 진리는 그냥 가버린다.
로버트 M. 퍼식,(Robert M. Pirsig)
 

우연의 일치, 뜻밖의 만남, 예상치 못한 선물, 놀라운 일 등의 형태로 기회는 매우 자주 노크하지만, 우리는 그들에 주의를 가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고 중요한 일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인생을 살아간다. 만약 이것이 우리가 선택하는 믿음이라면 , 정말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셈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기회들을 낚아채고 자기 앞에 다가오는 것들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몴이다. 신의 섭리를 믿든 안 믿든, 확실히 임의적인 경험들 속에 우리의 삶과 직접 관련있는 의미 있는 교훈들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믿든, 안믿든, 우연한 사건들에 또는 심리학자 칼 융이 말한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를 뜻하는 동시성에 유의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분명 인생에는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측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행운을 창조할 수 있는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다. 허트퍼드셔 대학교 리처드 와이즈먼은 운 좋은 사람들을 연구하였다. 여기에는 스스로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남에게 행운아로 인정받는 사람들 모두가 포함되었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운 좋은 사람들과 불운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행동 패턴과 사고 패턴 같은 실제적인 특징이 있음을 발견했다.

운이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행운을 창조해 내는 방법 중 하나는 우연한 만남에 주목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운 좋은 사람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별 의미 없는 우연의 일치라고 여기는 것을 의미 있는 기회로 본다. 그들은 행운이 손 내밀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습관적인? 패턴을 바꿔 행운을 만들어 낸다. 가령 자주 읽는 신문, 출근할 때 이용하는 노선, 참여하는 활동, 접근하기로 선택하는 사람들 등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의미 있는 기회와 조우할 가능성을 높인다.

행운아들의 또 다른 특징은 컵의 비어 있는 부분이 아니라 물이 차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다. 예컨대 강도를 만나 지갑을 털리면 몸이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또 과제를 수행할 때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이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이런 식의 사건 해석을 통해 그들은 강탈이나 실적 미달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할 사건을 몸이 다치지 않았거나 배울 기회가 생겨 다행이라는 긍정적인 것으로 변모시킨다.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이런 해석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영향을 준다. 믿음은 종종 자기 실현적인 예언이 되며 자신이 운 좋다고 믿는 사람들은 실제 삶에서 정말 그렇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판에 밖힌 패턴을 바꾸고 일을 다르게 하며 자신이 얼마나 운 좋은지에 주목해 스스로 행운을 창조하기 시작하라.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 간 에서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