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지혜로운 삶/2023년 4월 1일>*<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65-고난 받는 종의 노래>*<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환경과 운명에 사로잡히지 마라>*<웃으면 복이 와요-가을이 오기를. . ., 허풍쟁이, >*<동양의 지혜-성악설을 주장했던 중국의 순자>*<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행복을 미루지마라>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65>

65 고난 받는 종의 노래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소리 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쇠하지 않으며,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이사야 42:1-4, 표준새번역)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하며 이스라엘의 우주적인 사명에 대하여 노래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지도자를 보낼 것이라 예언한다. 이것을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의 노래”라 부른다. 이 시는 이사야서 42장부터 59장까지 17장에 4편의 예언 시가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장차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할 한 “구세주”를 보낼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분은 세상적인 위인이나 영웅이 아니라 겸손하고 자비한 종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예언자가 노래하는 고난 받는 종의 노래를 좀더 들어보자(이사야 53장)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죄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주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이사야 53:1-12, 표준새번역)

그러면 이 종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몇 가지 설명이 있다.첫째는 고난 받는 종이란 바로 이스라엘을 말한다고 한다. 즉 제사장 민족으로 고생하며 살아온 이스라엘이 장차 온 세상을 구원할 민족이라고 보는 것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고난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며 모든 민족의 모델이 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바로 세상을 구원할 종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을 가리킨다고 한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메시아)를 택하여 세우셨다는 주장이다. 즉 이스라엘을 포로로부터 해방을 선포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라는 것이다.그러나 고레스 왕이 죽은 후, 이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 후에는 세상의 걸출한 지도자들이 출현할 때 마다 혹시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믿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믿는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아는 오시지 안았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오실 것이라고 믿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환경과 운명에 사로잡히지 마라.


운명적으로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의 불행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랠프 블럼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했을 수도 있고 정 많고 유복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성장했을 수도 있다. 몇 차례 행운을 거머쥐었을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불운에 치를 떨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미 지나온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래는 미리 계획할 수 있다.

확실히 과거의 경험은 현재와 미래의 행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 그러나 과거의 영향은? 결정론적이기보다는? 개연적이다. 다시 말해, 자기 인식과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원하는 삶을 창조할 수 있다. 매 순간 과거의 불행에 지배당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해 가느냐,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심리학 교과서에 흔히 등장하는 것이 술주정뱅이에다 마약 중독인 아버지 밑에서 학대당하며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다. 이 쌍동이들이 30대가 되었을 때 한 심리학자가 연구의 일환으로 그들을 인터뷰했다.

그가 만난 첫 번째 쌍동이는 사회보장 연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마약 중독자였다. 아내와 자식들은 수년간 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상황이었다. 드물게 그가 마약에 취하지 않거나 감정이 격하지 않을 때, 심리학자가 물었다. “왜 자기 자신과 가족을 이렇게 학대하는 거죠?” 이에 그가 대답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가족이 그 모양이었는데, 어떻게 달리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심리학자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다른 쌍동이를 만나러 갔다. 사업가로서 성공한 그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는 훌륭한 아버지였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느냐는 심리학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가족이 그모양이었는데 어떻게 달리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이 쌍둥이들은 아주 비슷한 카드 퍠를 받았다. 학대받는 환경도 똑같았고 유전자도 똑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패를 쥐고 아주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한 사람은 과거에 발목 잡혀 그것의 노예가 되었고, 한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했다.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 간>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가을이 오기를

노 부부가 미술관을 돌아 다니며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여성의 중요한 부분만을 나뭇잎으로 살짝 가린 나체그림 앞에 섰습니다. 아내는 흥미가 없다는 듯 잠시 보더니 다음 그림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떠날줄을 모르고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아내가 돌아와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얼 기다리고 있는거요?"

"가을이 오기를. . ." 남편의 대답이었습니다.

허풍쟁이

두 허풍쟁이가 대결을 벌였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난 세상에 있는 모든 보석과 황금, 골동품 그리고 모든 땅을 다 사버릴 수 있어. 세상의 모든 미녀들까지도 다 살 수 있다구."

듣고 있던 두 번째 허풍쟁이가 대답했습니다.

"안 팔아!"

 

<동양의 지혜>

성악설을 주장했던 중국의 순자

순자는 공자와 맹자를 이어 유가 철학을 발전시킨 사람입니다. 그의 생년월일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기원전 298년 경에 나서 238년 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기원전 298년은 공자가 죽은지 200년쯤 뒤이고 맹자가 죽을 무렵입니다. 당시 중국은 혼란이 극에 이른 전국시대 말기였지만 한편 서서히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던 때입니다.

순자는 공자나 맹자의 삶과 비교해 볼 때 살아 있을 당시 상당한 영광을 누렸습니다. 쉰 살 무렵에 제나라로 가서 직하학파의 가장 덕망 있는 학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순자의 행복은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오래가지 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였습니다.

순자의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 책이 <순자>입니다. 책의 편제는 논문식으로 되어 있으며 어떤 학자들은 <예기>의 많은 부분과 <대학>의 일부도 순자가 지은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순자의 글들은 표현방식이 소박하며 꾸밈이 거의 없고 체계적이고 논증이 비교적 세밀합니다.

순자의 성악설

순자는 무슨 근거로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했을까요? 순자도 맹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을 선천적인 것으로 규정합니다. 본성이란 배우거나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도덕적인 측면에 주목한 맹자와는 달리 순자는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게 하고 싶고, 피곤하면 쉬고 싶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 주목했습니다. 순자는 이러한 생리적인 욕구에 바탕한 이기심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욕구대로 간다면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순자가 볼 때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한 것입니다.

인간의 심리상태에 대한 순자의 분석은 심리학자를 방불케 합니다. 순자는 본성대로 가면 결과는 악이고, 본성을 거스르는 의지적 실천대로 가면 선이기 때문에 성은 악이고, 위는 선이라고 합니다. 순자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았다고 해서 본성대로 살자고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의지적 실천을 통해 본성이 가져올 악한 결과를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착하다고 한 맹자의 주장은 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사람이 타고난 본성과 후천적인 의지에 의한 노력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맹자의 말대로 본성이 본래 착한 것이라면, 현실의 인간은 대부분 태어나면서 바로 자신의 착한 본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라고 비판합니다. 또 인간이 본래 착한 존재라면 애초부터 훌륭란 임금이나 좋은 제도 따위는 필요가 없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주장의 근거를 인간 내면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순자는 현상에서 출발하여 인간 내면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본성이 악하다는 규정을 내립니다. 순자는 사회가 잘 다스려지는 상태가 선이고, 혼란한 상태가 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대부분 혼란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적 혼란은 인간의 이기적 욕구 때문에?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순자는 맹자와 달리 선악을 가르는 기준을 인간 외적인 현실에 두었습니다.

순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합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의 표본이었던 요순의 본성과 가장 악한 사람의 표본이었던 걸 임금이나 도척의 본성이 같다고 보았습니다. 순자가 같다고 본 본성은 당연히 생리적, 감각적인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도덕성은 본성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부차적 노력인 셈이 됩니다.

물론 순자도 맹자처럼 군자와 소인을 나눕니다. 순자는 사람의 성품과 지능, 이기적인 욕심은 군자와 소인이 같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그것을 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소인은 본성이 하고자 하는 욕구를 그대로 따라가지만, 군자는 교육과 예(禮)를 통해 절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본성을 거슬을 수 있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순자가 그러한 의식적인 노력을 제도화하려고 한 것이 예였습니다.

*김교빈,이현구 지음 <동양철학 에세이-동녘 간> 에서

<탈벤-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행복을 미루지 마라

영원은 지금과 지금과 지금의 합이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것보다는 가상의 삶에, 평온하고 실재하는 현재보다는 긴장된 ‘가상의 미래’의 삶에 사로잡힌 채 짧은 생의 그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시험성적이 나쁘면 어쩌지? 승진이 안 되면 어쩌지? 시인 콜웨이 키넥스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온전히 경험하기보다 “경험의 전면에 기대의 검정 물감을 덧칠한다” 또 과거에 발목 잡혀 불행했던 역사를 되새김질하고 실패한 관계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프로젝트를 곱씹으며 숱한 시간 탕진한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속박된 삶이 아닌, 현재가 가져다주는 풍요를 온전히 만끽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사라 오렘, 재클린 빈커드, 앤 클랜시가 지은 <장점 탐구 코칭(Appreciative Coaching)>은 로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의료 비서로 일하던 로리는 자신의 열정을 따르기로 마음먹고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요가 스투디오와 마사지 비지니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걷기로 한 로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실패와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그는 작가 폴린 아워슬리의 표현대로 “어제에 대한 회한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사이에서 시소를 탔다. 관심이 없으면 어쩌지? 고객이 없으면 어쩌지?

이런 부정적인 가상적 사고가 자신을 맥 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로리는 아주 간단한 조치를 취했다. 바로 시계 표면에 굵은 글씨로 지금이라는 말을 칠해 넣은 것이다. 그가 시계를 볼 때마다 글자는 시간은 지금이고 인생은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손목 띠를 작용하는 것과 비슷한 이 간단한 행동은 그가 삶을 경험하고 살아내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로리는 더 긍정적이고 활기차고 결국은 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현재에 집중해 “로리는 현재의 매 순간이 가능성과 선택으로 충만해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하라. 손목 띠를 착용하거나 시계에 지금이라는 글자를 써 넣거나, 아니면 컴퓨터나 전화기에 현재를 상기시키는 화면 보호기를 설치하라. 호흡이나 다른 신체 감각, 또는 심지어 당신의 물리적 환경에 몇 시간마다 1분간만 집중해도 그날 하루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탈벤-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 와이즈베리 간>에서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