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2020년 2월 15일*<복잡한 시대를 단순하게 살아가는 아미시들의 지혜-새 총(정직) >*<탈벤 사하르의 '삶의 지혜-가까운 사람일수록 함부로 대하지 말라>*<웃으면 복이 와요-남자의 성공, 역지사지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28 예언자 호세아 "네 어미를 고발하라.">*<허휴슈선의 "삶의 지혜"-자기애(自己愛), 모든 사랑의 시작>*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사는 아미시들의 지혜>

새 총(Slingshot)

-정직함에는 등급이 없다-아미시 잠언

하늘은 마치 담요로 덮어 놓은 듯이 잿빛 으로 짖게 덮인 어느 후덥지근한 일요일 오후, 여섯 살 난 토비 밀러는 엄마로부터 사촌 미리암의 집을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토비의 아버지와 큰 형들은 저녁 우유짜기를 위하여 집에 머물렀다. 엄마는 한 손을 내밀어 토비를 잡아 마차로 끌어 올리면서 “토비야,서둘러”라고 이야기 하였다. “서둘러, 빨리 갔다가 비가 오기전에 돌아와야 한단 말이야”

토비는 말이 빨리 달려나가자 언덕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짖은 구름들을 쳐다보았다. 그는 미리암의 농장방문을 좋아하였다. 미리암의 아들인 죠는 토비보다는 몇 년 위였다. 토비는 그의 집에서는 응석받이였다. 그래서 불박이 놀이기구는 날씨 좋은 여름 오후에는 그의 완전한 놀이터였다. 그래서 그는 비가 거치기를 바랐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토비는 죠를 찾기 위해 창고로 달려갔으며 이 두 소년들은 손을 맞잡고 건초더미 위를 미끌어지며 놀았다. 건초타기를 마친 다음에는 호숫가로 가서 고기들을 한,두마리 잡았다. 그리고 나서 엄마들이 근처에 있는지 확인한 다음 염소에다가 마구를 올려놓으려고 하였다. 아이들이 생각한 것보다 재미가 없었던지 염소 한 마리는 화를 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금방 염소놀이를 그만두었다. 그러구보니 아이들은 금방 심심해졌다.

죠는 그냥 앉아 있느니 새 공기총을 가지고 토끼사냥을 하기로 했다. 죠의 어머니는 야채밭을 보호하기 위해서 토끼의 숫자를 줄이도록 죠의 도움을 구하곤 하였다. 엄마의 정원에 가득찬 브루베리에 집중이 잘 안되자 죠는그가 베리를 먹는 동안 토비가 공기총을 가지고 놀도록 하였다. 토비는 공기총에 홀딱 반했다. 그는 죠만큼 토끼들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토비는 연습만 더하면 저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너무 일찍 죠의 어머니가 우유 짤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종을 울렸다. 죠는 토비도 잊고, 공기총도 내버려두고 창고로 달려갔다. 토비는 공기총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부드러운 공기총의 나무틀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는 공기총을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 넣고 바지를 코트로 덮었다.

토비와 엄마가 집에 돌아 왔을 때 그는 말을 마차에서 떼어내는 것을 도와주려고 마차에서 뛰어 내렸다. 말의 앞 머리에 있는 굴레를 떼어 내려고 발을 올렸을 때 그의 코트가 삐죽 나왔다. 어머니는 공기총이 그의 허리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그것을 나꿔 채면서 “토비 이게 뭐지?”하고 소리쳤다.

토비의 뺨은 빨갛게 물들었다. “ 음, 그거 죠건데, 돌려줘야 하는 걸 잊었네”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토비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들의 본능으로 토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 말 없이 어머니는 깜짝 놀란 말의 멍에를 다시 채우고 토비에게 다시 마차에 오르라고 한 후 “죠의 집으로 다시 간다”고 하였다.
“토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하고 물었다.

보통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토비의 어머니도 감정을 좀처럼 얼굴에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고 그의 볼은 붉어 있었다. “ 이제 너는 죠에게 사과해야 해. 먼저 새총을 돌려주고 죠에게 용서해달라고 해야 돼.”
신호라도 한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비는 점점 더 세게 내렸다. 마차를 끄는 말마저도 토비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54년 후, 토비는 그 오후에 있었던 일을 마치 어제 일인듯이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던 것은 용서를 빌 때의 모습이었다. 죠는 기꺼이 용서하였고 둘 사이의 간격은 금방 메꿔졌다. 토비와 죠는 일생동안 아주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새총도난 사건은 그 후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다.

*죄는 평화를 깨트린다. 우리가 평화를 상실할 때 거기에는 죄가 개입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죄를 무시하거나 부인하지 말라. 우리의 평화를 깨트리는 죄가 무언인지를 알아내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요한 1서 1장 9절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그는 신실되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한 것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Suzanne Wood Fisher의 <Amish Peace>에서

<탈 벤 사하르의 삶의 지혜>

가까운 사람일수록 함부로 대하지 마라

우리는 자신의 가장 친절한 행동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따로 떼어 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보다, 우리에게 가장 마음을 쓰고 우리가 마음 쓰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함부로 군다. 가족에게 고통스럽고 상처 주는 말을 하며, 배우자나 친한 친구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아무리 소중한 관계라도 때로는 마찰과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비록 이런 무례한 행동이 친밀감이나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시간 때문이라고 해도 모욕, 적대감, 경멸적인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약간 다듬어진 황금율을 제안하고 싶다.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하지 않을 일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화가 나고 속상하고 실망하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우리의 관계가 더 성숙하고 돈독해지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최소한 방금 만난 사람에게 보여 준 만큼은 존중하며 대해야 한다,

나는 정통 유대교도 가정 출신이다. 내가 열 여엷 살이 되자 할머니는 결혼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약 1년간 내게 참한 유대인 색시들을 소개했음에도 별 진척이 없자 할머니는 나를 붙들어 앉히고는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내 문제는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할머니 고향인 루마니아의 시게트라는 도시 출신의 한 청년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이 청년은 열 여덟 살이 되자 결혼 중매인을 보러 갔다. 중매인이 그에게 물었다. “아내가 될 여자에게 무엇을 바라나요?” 그러자 이 청년은 ?자기는 좋은 가문 출신에다 똑똑하고 착하고 매력적이고 겸손하고 요리 잘하는 여성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중매인이 외쳤다. “이봐요 총각, 총각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니군요. 그 정도 조건을 다 갖추려면 여섯 여자가 필요해요. 물론 남편도 여섯이 있어야겠지.” 할머니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요점은 간단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모든 걸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대개 부모님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질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현실에 눈을 뜨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인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실망했기 때문이든 그들의 결점을 깊이 알았기 때문이든, 우리는 남보다 그들을 더 심하게 공격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불완전함이나 약점에 주목하는 대신 우리가 감탄하고 고맙게 여기는 특성들에 유의하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 조부모님은 53년동안 행복한 부부로 사셨다.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 간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남자의 성공

40대: 2차를 쏠 수 있으면 성공

50대: 공부 잘하는 자녀 있으면 성공

60대: 아직 돈 벌고 있으면 성공

70대: 건강하면 성공

80대: 본처든 세컨드든 밥 차려 주는 여자가 있으면 성공

90대: 전화 오는 사람 있으면 성공

100대:아침에 눈 뜨면 대성공

역지사지

아마츄어 사진작가가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아 자기가 찍은 사진을 몇장 가져갔다.

그의 작품을 본 안주인이 감탄하며 말했다.

"사진들이 참 멋지네요! 카메라가 좋은가 보죠?"

저녁을 다 먹은 사진작가가 집을 떠나며 안주인에게 말했다.

"저녁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주 좋은 냄비를 쓰시나 보죠?"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28. “네 어미를 고발하라.”

호세아는 자기의 아픈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예언 활동을 했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살았을 뿐아니라 동족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을 잘 알고 있었다. 신실한 남편이 부족한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는 남편과 같은 분이심을 알았다.

고멜이 결혼하기 전부터 음란한 여성인것을 호세아가 알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터 부정한 민족인 것을 아셨다. 그러나 호세아가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한 것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자기 백성을 삼으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호세아에게 비록 부정한 여자지만 고멜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하셨다. 이유는 “음란한 자식들”이란 호세아의 자식이 아닐 수도 있듯이 이스라엘도 비록 하나님을 믿는 선민이라 하지만, 다른 민족들과 비교하여 특별하지도 않은 민족이었다.

자식들을 낳았을 때마다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첫째 아들은 하나님이 씨를 뿌린다는 뜻으로 “이스르엘”이라 했다. 이스라엘은 농부가 씨를 뿌려 곡식을 자라게한 것처럼 하나님이 직접 키운 백성이란 뜻이다. 둘째로 딸을 낳았을때는 이름을 “로루하마”라 했다. 그 뜻은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딸”이란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며 타락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버림받은 민족처럼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셋째로 아들을 낳았을때는 “로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유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지 않으니 결국 버림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웃의 강대국들을 의지하고, 또 가나안의 주민들같이 바알신들을 섬기며 살아갈 때,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바람난 자기의 아내 고멜과 같다고 생각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호 6:4)

백성들은 우상들을 섬기며 악을 행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백성은 음행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무에게 묻고, 그 요술 막대기가 그들을 가르치니, 그들의 마음이 음심에 흘려서 곁길로 가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빗나간다.”(호 4:11-13).

호세아가 집을 나간 아내 고멜을 다시 찾아올 때 호세아를 바로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어리석고 무능한 남편이라고 비웃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알이나 이방의 신들과 비교하며 부족하다고 비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세아는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외쳤다. 하나님이 잘못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고멜처럼 헛된 신들을 쫓아다니는 바람난 여자 같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언자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백성들을 깨우치려는 예언자를 미쳤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고멜을 잊지못하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금도 사랑하고 있으니 하나님께로 돌아서라고 한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 만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외친다.

<허유수선의 삶의 지혜>

자기애(自己愛), 모든 사랑의 시작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는 것처럼 외롭고 두려울 때, 아름다운 희망의 꽃 한송이를 건네 주며 활짝 웃어줄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옛날 두 음악가가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한 명은 어느 농촌 마을로 보내져 그곳에서 7년동안 가축에게 먹일 건초를 작두질했다. 그가 유배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총기가 흐르고 젊음이 넘쳐나는 그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 세상 어디에든 음악이 있는데 어떻게 늙을 수가 있겠소? 나는 매일매일 신나게 박자를 맞추며 작두질을 했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명은 유배지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살했다. 그는 자신의 전부라고 믿었던 음악을 할 수 없게 되자 영혼이 무참히 짓밟히는 고통을 느꼈고, 이내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결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항상 정신적 지주가 되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타인의 말과 감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비로소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나를 격려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언제나 타인의 말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 방종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주변에 엄격한 선을 그어 놓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를 독려하고 이끌어주고, 우리에게 충고하고 당부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다. 나를 가장 깊이 사랑하는 부모와 가장 절친한 친구조차 영원히 우리 곁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이따금 비 내리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외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순간 우리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아름다운 희망의 꽃 한 송이를 건네 주며 환하게 웃어줄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눈부신 아침 햇살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케임브리지의 애나 혼 교수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위대한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무지와 편협함을 버리고 생명과 인간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인생은 더욱 풍요롭고 건강해질 것이며 우리의 영혼은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영혼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떠돌고 있다면, 스스로 벽돌을 쌓고 기와를 올려 자신만의 궁전을 만들어라. 이 궁전의 주인인 당신이 바로 당신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이다.

*허유슈선의 <케임브리지 교수들에게 듣는 인생철학 51강>에서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