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지혜로운 삶/2023년 5월 15일>*<김열규의 '노년의 지혜'-노년의 녹색지수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분노에 즉시 반응하지 마라>*<웃으면 복이 와요-나는 누구인가? 천당 가는 길? 글쎄요. . .,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65-다니엘 서: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위한 예언서>*<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배움의 기회에 마음을 열어라>

<김열규의 '노년의 지혜'>

노년의 녹색지수

노년일수록 초록이 커져야 한다. 노인일수록 파래야 한다. 푸르다 못해 짙푸르러야 한다. 20-30대는 원래 초록이라, 일부러 초록을 말할 필요가 없다.

노년은 둘레를 초록으로 갈무리하고 일상을 초록빛으로 무늬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새파란 노년’이게 해야 한다. 그것은 노년의 인생철학에서 금과옥조가 된다. 내게 뜰일, 채소밭일, 꽃밭일, 그리고 잔디밭일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내 노년의 녹색지수는 무한대이다. 봄날의 태산처럼 높고, 가을날의 푸른 하늘처런 드높다.

몇 해 전, 그러니까 내 나이 70이 되던 해 봄에 집 옆의 채소밭을 개조했다. 밭의 모양새를 제법 많이 고쳤으니 개조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말을 빌려 개혁이라고 해야 할까?

20평은 더 되는 밭 둘레에 디귿 자로 둑을 쌓아올리고는 관상수와 유실수를 심었다. 사이 사이에는 꽃나무도 옮겨 심었다. 그리고 밭 한 복판에는 작은 동산을 쌓고는 아주 잘 생긴 단풍나무 한 그루를 심은 다음 허부로 둘러쳤다. 그렇게 정원을 겸한 밭읕 만들고 보니 여간 흡족하지 않았다. 경관도 좋고, 채소로 실속도 차리고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같은 밭일을 해도 꽃밭 사이에서 하니 능율이 오를 것은 뻔했다.

그런데 얼마 안가 날벼락이 떨어졌다. 면사무소에서 들이닥치더니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하는게 아닌가! 죄명은 농지 훼손죄였다. 채소밭에 당치도 않게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어서 채소밭을 망가뜨린 죄라고 했다.

“당신 할머니나 어머니가 울안에 채마밭을 기꾼 것도 못 보았소?”

나는 다짜 고짜 이렇게 항의했다. 장기판으로 치면 ‘멍군’을 크게 외친 셈이다.

“당신네 채마밭에는 봉선화도, 분꽃도 심지 않았단 말이오? 그게 울 바깥이라면 생울타리도 있었을 거 아니오?”

그래도 그는 물러서지 않고 아까보다 더 심하게 ‘농지보존법’을 휘둘러댔다. 나는 나대로 더 강한 방패로 밀어붙여야 했다.

“이런 걸 영국에서는 ‘키친 가든’이라고 부른다오. 부엌에서 요리할 채소를 기르는 밭에 관상수도 함께 심고, 꽃도 함께 가꾸는 것, 그게 바로 키친 가든이요.”

면사무소 직원은 외래어를 미처 못 알아들었는지 표정이 뜨악해졌다. 더 이상 ‘장군’ 소리를 하지 못하는 그에게? 나는 ‘장군’을 불렀다.

“그래,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건 농사가 아니란 말이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뒤늦게 나타난 그의 상사가 중재에 나서고야 겨우 나는 농지 훼손죄에서 벗어났다.

이 작은 사건은 제법 큰 뜻을 품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정원이나 가든이 처한 불우한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드닝(gardening), 즉 뜰이나 정원을 가꾸는 것이라면? 영국이세계 제일일 것이다 .미국의 첫 인공위성이 지상으로 보낸 멧세지 가운데 “영국이야말로 가장 푸른 국가”라는 대목이 있었음을 영국인은 지금도 자랑스러워 한다.? 미국도 교외 주택의 경우 가드닝이 절대적이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유일한 ’가드닝 국가’일 것 같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정기적으로 국내의 아름다운? 정원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면 가드닝의 녹색지수는 국가의 문화수준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이 사정은 어떨까? 모르긴 해도 전국 각지의 도시는 물론이고 군청 소재지에서조차 주민 차원의 ’가드닝’은 그야말로 ‘가믐에 콩나기’일 것이다. 아파트와 주택은 도시라는 불모지 속의 황무지라고 하면 말이 지나칠까? 마찬가지로 공공의 가드닝도 흡족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초록은 생명의 바탕색이다. 분홍, 빨강, 노랑, 자주, 파랑 … . 어느 색깔의 꽃이든 초록을 바탕으로 비로소 피어난다. 그래서 초록은 꽃다운 생명의 모태이다.

지구 자체도 초록이다. 그리고 순연한 파랑이다. 산과 들의 초록과 바다의 푸름으로 지구는 자연스럽게 채색되어 있다.물의 파랑과 초목의 초록, 이 둘은 ‘지구의 양대 생명소’가 된다. 우리에게는 활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먹을거리의 태반은 초록이다. 곡식이 그렇고 채소가 그렇다.

동시에 초록은 평화이고 안식이다. 인간 정서의 안존함, 인간 감정의 안정이다. 잠도 깊어지면 푸른 숲을 닮을 것 같다. 묵상도 초록으로 물들 때 비로소 명상의 경지에 드는 것 같다. 뇌신경의 안정과 활기를 동시에 살려내는 것이 초록이다. 초록은 사람들의 안력(眼力)을 지탱해 주고 시계(視界)를 넓혀주는 혜택도 준다. 초록을 자주 대하는 사람은 그 좋은 시력에 힘입어서 세상을 보는 시계도 넓어지는게 아닐지.

내친 김에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난해에 건강 검진을 받으면서 시력 검사를 했다.

“두 눈의 시력이 1,2. 1.5 라니요?”

눈을 크게? 뜬 간호사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내 시력은 순전히 산에 안긴채 바다를 바라 보고 있는, 나의 둥지 덕택이다. 우리 집은 동서와 북은 산의 초록을 향하고 남은 바다의 파랑을 향한다. 늘 초록과 파랑을 바라본 덕분에 믿을 수 없는 시력을 갖게 된 것이 틀림없다.

“영어사전도 안경 없이 보는데!”

시력 좋은 노인네가 뻐기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시력 덕분에 나는 세상을 보는 시계는 몰라도 주위의 사물만은 황조롱이 부럽지 않게 보아낸다. 그렇기에 나무, 꽃, 그리고 채소를 가꾸는 가드닝은 나의 시력을 위한 가드닝, 더 나아가서는 나의 목숨을 위한 가드닝이 될 것이다. 가드닝은 다른 노년들에게도 절실한 일이다. 가드닝은 노년 자체를 파랗게 가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라의 녹색지수, 생활공간의 녹색지수를 선진국만큼 높여야 한다, 그러러면 노년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들의 여가가 큰 몫을 해낼테니 말이다. 그렇게 녹색지수를 높이면 노인의 생명이며 몸도 함께 싱그로워질 것이다.

아무튼 농지 훼솑죄에서 별 탈 없이 벗어난 뒤 나의 가드닝은 한결 흥을 더해간다. 나의 노년은 그렇게 진초록으로 푸르러 간다.

*김열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에서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분노에 즉시 반응하지 마라

이상한 역설은,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칼 로저스

강렬한 감정을 경험할 때, 우리의 선택은 그 감정에 생각 없이 반응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느냐 하는 양자택일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사실 어떤 감정을 경험할 때, 그것이 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우리ㅣ는 두 가지 선택과 마주 한다. 첫 번째 선택은 그 감정을? 거부하느냐 수용하느냐, 존재하는 것을 억압하느냐 인정하느냐의 문제다.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 꼭 우리가 느끼는 것을 모두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에게 그 감정을 온전히 경험하게? 한다는 의미다. 두 번ㅉ째 선택은 감정에 자동 반응하느냐, 아니면 시간을 갖고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가장 적절할지 생각하느냐와 관련된 것이다.

적극적인 수용은 이 두 가지 선택을 결합하는 문제이다. 첫째는 감정을 거부하기보다 수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감정에 생각 없이 반응하는 대신 가장 적절한 행동 방침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일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주에 나는 딸을 ㅈ조류 보호구역에 데려갔고, 아내는 큰아들 데이비드를 친구의 생일 파티에 데려갔다. 딸과 나는? 아주 즑거운 시간을 보냈고,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딸이 앵무ㅐ와 꽃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어떤 사진은 딸의 사진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우리가 사진을 보며 감탄할 때 일곱 살짜리 큰아들은 함께 유심히 보긴 했지만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내가 2층으로 오라갔다가 몇 분 뒤 사진을 컴퓨터로 내려 벋기 위해 돌아왔더니 어찌 된 일인지 카메라의 메모리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곧 데이비드가 사진을 모조리 지워버렸음을 알았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분을 폭발시키려는 찰라 인생의 매 순간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ㄴ끓어오르는 화를 잠시 진정시켰다. 그리고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빤 지금 방을 나가야겠다. 네게 너무 화가 나서 만약 방을 나가지 않으면 폭발해 버릴 것 같아.”?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어느 정도 이성을 회복ㅎ했다고 느낄 때까지몇 시간 동안 데이비드를 보지 않았다.

아들이 무슨짓을 했는지 알았을 때, 나는 내 감정에 대해 서낵의 여지가 없었다.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goodehdddp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나는 화를 폭발시키거나, 방을 나갈 수 있었다.그리고 마음이 좀 가라앉았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나중에 감정이 좀 진정되자 나는 데이비드에게 질투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의 감정은 수용할 수 있지만, 네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로서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틀림없이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나는 내가 올바로 처신했다고 믿는다. 데이비드는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내가 아들에게 보여 주었으면 싶었던 행동의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감정이 들끓는 순간에도 내가 가르치는 바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분노나 증오나 질투심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진정시켰다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라.

*탈 벤 사하르 <행복을 미루지 마라> 와이즈베리 간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나는 누구인가?:

英國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이 세상은 무대이고 인간은 연극배우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一生중 일곱 가지 배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버둥대는 갓난아기, 변덕 심한 학생, 용광로 같은 戀人(연인), 겁 없는 軍人, 근엄한 심판자, 축 늘어진 老人, 그리고 마지막엔 이빨 빠진 갓난아기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천당 가는 길? 글세요 . . .

시골 동네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지나가는 소년에게 우체국 가는 길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소년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오늘 저녁에 교회에 오면 천당가는 길에 대한 나의 설명을 잘 들을 수 있으니 한번 와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소년이 하는 말; "글쎄요, 우체국 가는 길도 모르는 분이 천당 가는 길을 설명한다고요?"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65>

65. 다니엘서: 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위한 예언서

다니엘은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니엘 1:8, 표준번역)


다니엘서는 기원전 598년경에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온 유다 청년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신앙과 전통을 지키며 살았는가? 그리고 위기에 처할 때 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들을 도우셨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먼저 다니엘서 1장에는 네 유다 청년들이 어떻게 바빌론의 고관이 되었는가를 알려준다. 이들은 히브리 이름에서 바빌론 이름으로 바뀐다. 즉 다니엘은 벨드사살로, 하나니아는 사드락으로, 미사엘은 메삭으로, 아사랴는 아베느고로 개명된다. 이 네 사람은 유다 사람을 대신해서 앞으로 바빌론 왕을 도와 지도자로 교육받도록 선택된다. 그들은 삼 년간 왕궁에 있으면서 바빌론의 언어와 학문, 풍습, 음식 등에 대해서 특별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그들만이 고집하는 특별한 습관과 전통들이 있었다. 특히 먹거리는 대단히 거룩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금한 음식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이것을 “깨끗한 음식” (히브리말로 “코셀”) 이라 부른다. 그래서 유대인을 학대하거나 또는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시험할 때 먹거리를 가지고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깨끗하게 도살하지 않은 고기나 혹은 돼지고기를 먹게 해서 거부하면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빌론 궁에서 이들에게 주는 술과 음식가운데 유대인들이 거부하는 음식들이 있었다. 그러나 궁중에서 주는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곧 왕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에 정당한 이유 없이 왕의 명령을 거절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이들은 왕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자기들을 맡아 교육을 시키는 환관장에게 앞으로 왕궁에서 먹는 음식이 아닌 유대인이 먹는 음식 만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 말을 들은 환관장은 처음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만약 궁중의 음식을 먹지 않고 굶거나 잘못 먹고 사고가 나면 자기의 책임이니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의지가 확고한 것을 알고, 타협안으로 앞으로 10일간 시험하기로 허락한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함께 모여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10일간 궁중의 음식 대신
유대인만이 먹는 깨끗한 음식을 먹는다. 과연 10일이 지난 뒤, 궁중음식을 먹은 다른 청년들과 유대청년들을 비교해 본 결과 유대 청년들은 훨씬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 청년들의 믿음을 보시고 기쁘게 돌보아 주신다. 그래서 몸만 건강하고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지혜도 주셔서 꿈을 해몽하는 능력 등도 더 주시고 왕궁에서 함께 공부하는 어떤 젊은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게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 유대청년들은 계속해서 이들이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교육을 받게 되었다.

삼 년간의 교육이 끝난 후 왕이 직접 이들을 면접하여 시험해 본 결과 당시 바빌론의 전국에 있는 그 어떤 지혜 자들이나 마술사나 주술사들, 점성가들 보다 더욱더 지혜가 뛰어났음을 알고 왕은 기뻐하며 이들을 왕을 보좌하는 가장 높은 참모로 일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니엘은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한 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때까지 궁중에서 계속해서 왕의 보좌관으로 일했다고 기록 되어있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배움의 기회에 마음을 열어라.

경영 결정에서 가장 흔한 실수의 근원은 올바른 질문보다 올바른 답을 찾는데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이다.-피터 트러커

아는 것은 도착하는 것이고 질문을 하는 것은 탐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마침표보다는 물음표로 특정지여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 즉 어디를 가든 뭔가 배울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 대체로 더 행복하고 더 창의적이고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며 더 크게 성공한다.

평생의 학습자가 되는 일은 재미있으면서도 실용적이다. 그리고 그 길을 여행할 때 필요한 것은 겸손하고 호기심에 찬 마음뿐이다. 학생이든 교사든 친구든 처음 보는 사람이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칠 수 있다. 각각의 경험은 그 안에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으며, 매 순간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메시지가 있다. 탐구 정신과 호기심을 포용할 때, 우리는 삶을 포용하게 된다. 이 삶이 무궁무진한 신비의 근원인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배움의 흥분이 평생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논어>는 중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짤막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것은 열린 마음과 열린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3편의 15장에서 공자는 대사원에 들어가 온갖 것에 대해 질문을 한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이런 행동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위대한 학자는 사소한 문제에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엿들은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 역시 올바른 처신이네.” 이 위대한 스승은 마음을 여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겸손하게 이 행동의 본을 보였던 것이다.

공자와 동시대인이었던 문자는 술수가 뛰어나고 평생 권력을 추구했지만, 죽은 후에는 ‘교양인’이라는 뜻의 文 칭호를 받았다. 5편에서 공자의 제자 중 하나가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여 사후에 그런 영예를 얻었는지 묻는다. 그때 공자는 그것은 그가 배우기를 즐기고,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배우려는 열린 자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지 1백년도 지나지 않아,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쏘크라테스도 이와 비슷하게 배움에 대한 열린 태도를 보여 주었다. 바로 자신의 지혜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도처에 있는 풍부한 지식의 보고에 마음을 열어라. 질문하고 듣고 배워라.

*탈 벤 샤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 와이즈베리 간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왜 그랬을까요?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갈 때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그러자 6살 난 데이빗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우리 아버지같이 차를 세우고 길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