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지혜로운 삶/2022년 1월 15일*<동양의 지혜(1)-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동양의 지혜>*<허유슈선의 '행복의 비결'-쾌락의 세 단계*<웃으면 복이 와요-모파상과 에펠탑,불쌍한 사람,>*<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50-예레미야 예언자(2)-격동기의 예언자>*<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칭찬은 상대방의 가슴을 기쁨으로 채워준다.>

<동양의 지혜>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동양의 지혜

동양사상이라하면 중국의 공자에게서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동양의 지혜라고 하면 공자의 가르침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사실이기도 합니다.

공자 이전의 교육은 전적으로 국가가 틀어 쥐고 있었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귀족뿐이었습니다. 이 점은 책도 마찬가지여서 민간에서는 책을 만들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당시의 달라진 사회적 조건에 힘입어 일정한 예를 갖추고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들여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공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사립학교를 세워 놓고 보통 교육과 평등 교육을 펼친 사람인 셈입니다

공자 학당의 교과서는 공자가 편찬한 <시경>, <서경>, <주역>, <예기> 등이었습니다. 이 밖에 공자는 당시 242년간의 역사를 ‘옳고 그름’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기록한 <춘추>라는 역사책을 짓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기관들이 ‘춘추필법’이나 ‘춘추정필’을 회사의 사훈으로 내걸고 있는 것은 공자가 ‘옳고 그름’의 잣대로 역사를 기록했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공자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책은 <논어>입니다. 반고가 지은 <한서예문지>에 따르면 ‘논어’는 ‘의논해서 편찬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거친 한나라 초기에는 세 종류의 <논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제나라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나라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온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공자가 살던 옛 집의 벽속에서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논어>는 그 가운데 제나라 본과 노나라 본을 합쳐 만든것입니다.

지금의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편의 이름은 첫머리에 나오는 두 글자나 세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므로 편을 구분하는 의미 외에는 아무런 다른 뜻이 없습니다. <논어>는 송나라 때 이르러 <대학>, <중용>, <맹자>와 더불어 사서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중요한 책이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대체로 공자의 말과 행동, 공자의 제자 또는 공자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대화, 제자의 말, 제자들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제자들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한문으로 쓰인 대부분의 동양 고전들이 그렇듯 <논어>도 많은 함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막스 베바는 <논어>를 읽으면 마치 인디언 족장의 말을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살신성인’이라든가 ‘극기복례”같은 교훈적인 말들이 대부분 <논어>에 들어 있습니다. <논어>는 도가사상이 휩쓸던 위진 남북조 시대에도 <노장>, <주역>과 더불어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혔고, 예전 우리나라 승려들도 <논어>를 필독했습니다. 이처럼 <논어>는 오랜 세월동안 동양의 지혜를 담은 책으로 읽혀 왔습니다.

이들 고전들을 통해서 동양의 지혜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내용은 김교빈,이형구 지음 <동양철학 에세이>동녘 가운데서 발췌, 요약, 전제를 하려고 합니다. 구약의 지혜와, 아미시의 지혜,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지혜에 이어 동양의 지혜에서 많은 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허유슈선의 ‘인생철학’>

쾌락의 세 단계

당신은 어디에서든 웃고 기뻐할 수 있다. 쾌락은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쾌락에는 세 개의 단계가 있다. 쾌락의 첫 단계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과 학력, 사회적 배경 등 훌륭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를 매우 사랑하는 약혼자까지 있었으니 정말이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러나 그녀만이 아는 결함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왼쪽 치아에 난 덧니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덧니가 보일까봐 말을 할 때면 입의 오른쪽 부분만 움직이곤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입은 흉하게 비뚫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는 약혼자의 사업적인 약속 자리에 함께 나가게 되었다. 약혼자와 한참 사업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녀를 보고 웃으며 “당신의 입은 어쩌다가 그렇게 비뚫어졋나요?”하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직설적인 질문에 두 사람은 입이 비뚤허진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동업자는 여자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덧니가 보기 흉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편견이에요. 유명 연예인 중에는 덧니 때문에 인기 있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입을 똑바로 벌리며 웃는 연습을 하세요. 덧니는 당신에게 주어진 개성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하십시요. 자기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당신을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이날 만남은 사업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성과가 없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몇 달 뒤 남자는 두 사람이 보낸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충고를 해 주었고, 이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키가 크든 작든 몸이 말랐든 뚱뚱하든 혹은 예쁘든 못생겼든, 그런 외적인 요소들은 아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느냐이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밝힐 수 있을 때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쾌락의 두 번째 단계는 일과 학문에 몰두하는 것이다.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즐거워지기 힘들다. 일과 학문으로 인생의 빈 자리를 채워야 한다.

발명왕 에디슨은 일에 미친 사람이었다. 10대 소년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매일 16시간 이상을 연구에 몰두했다. 누군가 “그렇게 오랜 시간 일하면 피곤하고 힘들지 않나요?”하고 묻자 에디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소. 나는 항상 내 삶을 즐길 뿐이오.”

일과 학문에 몰두하는 순간 그것은 일종의 유희가 되고 당신은 그 안에서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쾌락의 세 번째 단계는 늘 희망을 간직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각에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침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매일 아침 빗자루를 들고 공원을 청소하는 70세쯤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느날 공원에 간 나는 할머니가 연못가에서 화사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 할머니.”하고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면서 “안녕하세요!”하고 화답하더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곧 연꽃이 피는 것을 알고 있나요? 매년 이맘때가 되면 피기 시작하지. 처음에는 한두송이 뿐이지만 이제 곧 온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 찰 거에요.”

물질적인 향락과 유희, 친구들과의 즐거운 모임, 성공한 사람으로서 이름을 떨치는 것등은 분명 커다란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진정한 즐거움이란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한 상태를 말하며, 이것은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을 뜻한다. 따라서 외부 환경과 상황의 변화와는 아무 상관 없이 유지되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철학자 니체는 “고통에 빠진 사람은 비관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실패하는 것은 우리의 건강, 질병, 부귀, 빈곤, 가정환경, 결혼 여부 등의 조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세상 어디에나 똑같이 아침 햇살이 비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어디에서든 웃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다. 쾌락은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허우슈선의 <인생철학 41강>황소지리 간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모파상과 에펠탑

모파상은 파리의 경관을 망친다는 이유로 에펠탑 세우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런 모파상이 매일 에펠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모파상에게 에펠탑이 싫다면서 왜 여기서 식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모파상이 대답하기를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곳이 여기니까요” 하더랍니다.

불쌍한 사람

밖에 나가 놀던 딸이 뛰어들어오면서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1000원만 주세요.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 서서 소리치고 있는 불쌍한 사람에게 줘야겠어요.”

“그래? 어이구 우리 딸, 착하기도 하지. 여기 있다. 1000원. 그런데 그 사람이 뭐라고 소리치더냐?”

그러자 딸이 말했습니다.
“따끈따끈한 군밤이요. 군밤!" 이렇게 외치고 있어요.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50>

47. 격동기의 예언자 예레미야(2)

“이 산 저 산을 보며 저는 목이 메어 웁니다.
광야에 있는 목장들을 보며 슬피 웁니다.
모두 다 없어져 찾는 이 없고, 양떼 울움소리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날짐승도 들짐승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읍니다. ”

(예레미야서 9장 9절, 공동번역)

예레미야는 기원전 627년 경부터 기원전 580년 경까지 활동한 에언자다. 이 기간은 중동지역에 큰 변화가 일어났었다. 당시 유다의 동북쪽에는 앗시리아를 중심으로 바빌론과 페르샤, 메디아 등이 있었고, 서남쪽에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시리아, 모압, 암몬, 에디오피아 같은 나라들이 있었다. 그 중에 앗시리아와 에집트가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속국으로 삼아 대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결국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말았다.(기원 전 722) 남왕국 유다는 앗시리아의 침공을 용케 피했으나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집트가 강해지면 이집트에 속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어느때는 일시적인 독립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유다는 앗시리아(후에는 바빌론)와 이집트 사이에서 정치적인 혼란을 겪으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수 밖에 없었다. 특히 북왕국이 망할때, 대부분의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시리아의 포로가 되어 근동의 여러지역으로 흩어지게 되고 대신 이 민족들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살게 된다. 북왕국에 살던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왕국 유다로 피난하기도 했다. 북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북왕국이 망하기 이전부터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사람들과 모세의 신앙전통을 지키던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성전이 있고 제사제도가 지켜지던 남쪽의 유다로 이미 피난해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전통을 가르치고 지키는 일을 예언자들이 주로 했다. 물론 신앙적으로 훌륭한 왕이 있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불신앙적인 왕이 다스릴 때에는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앗시리아 제국이나 이집트 같은 대국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약소국가로써 항상 불안과 염려가운데 살고 있었다.

북왕국이 망 할때, 앗시리아는 남왕국 유다도 침략했다. 그때 히스기야왕과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온 백성과 힘을 합하여 앗시리아군의 침공을 막아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이 죽고 그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자 형편이 달라젔다. 므낫세 왕은 앗시리아의 계속된 위협에 겁을 먹고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기로 하고 친앗시리아 정책을 취했다. 그래서 해마다 막대한 조공을 앗시리아에 바치고 앗시리아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놓고 섬겼다. 므낫세 왕은 하나님의 눈에 거스리는 짓들만을 한다. 그는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지 않았다. 온 나라가 부정부패로 가득했다. 의로운 사람들이 억압을 당하고 생명을 잃었다. 점쟁이나 무당들을 두고, 심지어 자식을 몰렉이라는 우상에게 불살라 바치기도 했다. 오십년간 나라를 다스리던 동안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갖은 악행을 했다. 그가 죽자 아들 암몬이 왕이 된다. 암몬은 왕이 되자 아버지 므낫세를 따라 앗시리아를 섬기며 온갖 나쁜짓만 하다가 이년 만에 신하들에 의하여 암살을 당한다.

암몬 왕이 죽자 아직 여덟살 밖에 안된 어린 요시야가 왕이 된다. 제사장과 예언자들은 왕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요시야는 비록 어렸지만 바른 정치를 시작한다. 마침 200 여년간 강성했던 앗시리아제국이 신흥 바비론의 공세로 세력이 약해젔을 때였다. 왕은 앗시리아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독립하려고 한다. 특별히 므낫세가 만들어 세웠던 우상들과 산당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성전을 깨끗이 한다. 그리고 성전뿐 아니라 예배(제사)를 정화한다. 안식일 예배뿐 만 아니라 유월절도 법대로 성대하게 지킨다. 마침 성전을 수리하다가 한 율법책을 발견 한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원 신명기 법전”이었다고 한다. 왕과 예언자들은 새로 발견한 율법책에 있는 대로 사회제도를 개혁한다. 그러자 나라가 새로워 젔다. 이것을 “요시아의 종교 개혁”이라고 부른다. 이때 예레미야가 왕과 백성들을 도와 종교및 사회개혁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나 세상일은 모른다. 마침 그 때 앗시리아가 신흥바빌론의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이집트가 앗시리아를 도우려 출병한다. 이집트군은 북쪽으로 가려면 유다를 거쳐야 했다. 그러자 요시아왕이 이를 막으려고 나갔다가 어이없게도 이집트군이 쏜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요시아 왕이 죽자 요시아 왕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된다. 그러나 이집트로 돌아가던 이집트의 왕(바로 느고)은 예루살렘에 쳐들어 와서 여호아하스 왕을 퇴위시키고 대신 엘리야김(요시아 왕의 아들로, 후에 여호야김으로 개명)을 왕으로 세우고 유다를 이집트의 속국으로 만든다. 유다는 이집트가 요구한 조공을 바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까지 거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앗시리아는 신바빌론에게 망한다.(기원전 605년) 신바빌론제국의 세력이 중동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제 유다는 종주국이 이집트에서 바빌론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반바빌론 동맹에 가담했다가 유다는 바빌론의 공격을 받는다. 이것이 제일차 바빌론 침공이다(기원전 597년) 이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여호야긴 왕은 항복한다.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여호야긴 왕과 유력한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 또한 성전에 있는 기구들과 나라의 많은 보물들을 약탈한다. 그리고 여호야긴 왕의 삼촌 맛다니야를 여호야긴 대신에 왕으로 세운다( 이름을 시드기야로 개명한다) 유다는 바빌론 제국의 속국이 된다. 유다는 풍전등화같은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지도자들은 친바빌론파와 친이집트파로 나뉘어 계속해서 싸운다.

시드기야 왕은 바빌론을 섬기다가 친이집트파를 따라 바빌론에 반기를 든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왕에게 항복하기를 권한다. 나라는 망하고 왕과 지도자들은 죽을지라도 백성은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왕은 예언자의 말을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자 바빌론은 유다를 재차 공격하여 예루사렘을 함락한다. 이것이 바빌론의 제2차 침공이다(기원전 586년). 이 공격에 결국 유다는 망하고 만다. 왕과 중요한 백성들은 바빌론군에 잡혀 죽거나 혹은 포로로 잡혀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바빌론군은 예루살렘성을 헐어버리고 성전을 불태워 버린다. 400년간 지켜오던 성과 성전은 원수들의 손에 무너져 버린다. 하나님의 징벌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을까?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칭찬은 상대방의 가슴을 기쁨으로 채워준다.

나는 좋은 칭찬으로 두 달을 살 수 있다.-마크 트웨인

칭찬은 그냥 툭 내던지는 듣기 좋운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긍정적인 점을 알아보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 긍정적 요소의 가치가 떨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보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배우자, 자식, 직원 또는 나 자신을 칭찬할 때마다 칭찬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굳건해진다. 형편이 좋을 때 은행에 돈을 예금해 두면 나중에 형편이 궁해질 때 버틸 힘이 생기는 것처럼, 수시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면 힘든 시기에도 관계가 악화되지 않는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미소와 따뜻한 말을 전하는 데는 전혀 돈이 들지 않는다. 이때 얻은 행복의 이익은 돈으로 환산하 수 없다.

아동서 <날마다 행복해지는 이야기 Have You Filled a Bucket Today>에서 케럴 맥라우드와 대이비드 메싱은 각각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 통을 들고 다니는 가상의 세계를 묘사한다. 이 통은 우리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을들
담는 데 쓰기위한 것이다. 통이 가득 차면 기분이 좋지만, 텅 비면 불행해진다.

친절하게 대하거나 칭찬하거나 그냥 웃어 주어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할 때,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통을 채울 수 있게한다. 반대로 깎아내리거나 조롱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주어 그들을 불쾌하게 하면, 긍정적인 감정이 들어 있던 그들의 통을 비워 버리게 된다. 선행과 다정한 말의 아름다움은 남들이 그들의 통을 채울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통도 채우게 한다.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다.

이 우화는 비록 어린이를 위한 것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변호사, 교사, 은행원, 약사, 친구, 배우자, 부모로서 나와 다른 사람의 통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채워 줄 수 있다. 통을 채우는 사람이 될 때,우리의 삶과 주변사람들의 삶은 한층 더 좋아질 것이다.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 간>에서

<늘푸른나무(www.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