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2020년 8월 1일*<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34."내가 누구를 보낼꼬?"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보내소서">*<허유슈선의 '인생 철학'-자연미,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웃으면 복이 와요- 선장의 배려, 친절한 집 주인(?), >*<복잡한 시대를 단순하게 사는 아미시들의 지혜-일요일에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기>*

<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

34. “내가 누구를 보낼꼬?"

"제가 여기 있아오니 저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누군가? 이사야는 예언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모스는 유다왕 아마시아 왕과 형제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예언자로 활동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은 구원자 이시다”는 뜻이다. 아마 이사야가 태어나기전부터 장차 예언자로 활동할 것을 믿고 이름을 지었던 것 같다. 그의 아내도 예언자였다. 그리고 아들 둘을 두었는데, 첫 아들은 “스알야숩” (‘남은자가 돌아온다’) 둘째 아들은 “마헬살랄하스바스” (‘노략자가 속히 올 것이다’). 라고 했다. 아들들의 이름은 모두 앞으로 당할 유다민족의 운명을 의미하는 표징으로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아버지가 예언자 이기에 자연히 에언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사야가 예언활동을 시작할때, 북왕국에서는 이미 아모스와 호세아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불의한 지도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북왕국은 같은 동족으로 유다보다는 크고 또한 여로보암 II세 같은 정치적으로 수완이 좋은 왕들이 있어서 나라가 부강하였다. 그러나 아모스나 호세아 에언자를 통하여 본 것 같이 그들은 선을 버리고 악한 길을 가고 있었다. 더구나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약자를 괴롭히고 불의를 행하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아모스와 호세아가 나라를 살리기위해 타락한 왕과 지도자들에게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외치고 있었으나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비하여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덜 타락한 것 같으나 이미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더구나 성전이 있고 제사장적인 정통성이 유지되고는 있으나 아하스 왕이 앗시리아와 동맹을 맺으며 우상의 신전들을 곳곳에 세우고 왕이 몸소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는 타락한 예배들을 드리고 있었다. 또한 백성들은 형식적으로는 잘 믿는척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불신앙의 국가로 타락해가고 있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진노가 가까왔음을 알고 왕과 지도자들을 깨우치고 바로 세우기 위하여 기도하며 애쓰고 있었다. 이사야는 예언자이면서 또한 정치적으로도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아모스와 호세아 같은 예언자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 부름받는 이야기는 이사야 6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아사랴 왕이라고도 함)이 죽을 때( 기원전 740년 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마침 북이스라엘과 시리아가 동맹을 맺어 유다를 침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리고 있을때 였다.

그는 풍전등화같은 나라의 운명 앞에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 지도자들을 생각하면서 성전에서 기도드리고 있었다. 그는 악한 왕과 잘못된 지도자들을 원망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자신은 깨끗하고 지혜로운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사야를 부르신다. 기도하던 이사야에게 높은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보였다. 의 기록에 보면 , 주님의 거룩한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주위에는 스랍(천사)들이 둘러 서 있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노래하기를,(이사야 6:1-4)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시다.”

우렁찬 천사들의 노랫소리에 성전의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찾다. 그러자 이 순간 이사야는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부족하고 죄가 많은지를 깨닫게 된다.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보잘것 없는 자신임을 알았다. 그는 외치기를,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이사야 6:5)

이때 한 천사가 제단에서 부집게로 타고 있는 숯을 들고 날아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말하기를,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희 죄는 사해젔다.”( 이사야 6:6-7) 고 선고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정결하게 해주셨음을 알게 된다. 더러운 자신의 모습이 변하여 깨끗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 이사야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

그러자 이사야는 대답하기를,

“제가 여기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이사야 6:8)하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무슨 일이나 자신이 다 하실 수 있다. 그러나 모세를 부르실때 본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 이사야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를 체험했다. 영원전부터 계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을 결심한다.

소명을 받을 때의 경험은 에언자마다 다르다. 또 소명 받을때의 경험을 기록하지 않은 예언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대언자로써 신앙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과 행동에 지혜롭고 용기있는 예언자로 일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이사야 6:9-13)

“너희가 듣기는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너는 이 백성은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될까 걱정이다.”

이 말은 앞으로 이사야가 예언 활동을 할때 당하게될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왕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이사야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할뿐 아니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는 낙심하지 말고 말씀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을 묻는다. 그러자 하나님은,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이사야6:11-13)

이 말은 장차 유다도 북왕국이스라엘처럼 멸망하고 백성들은 이국의 포로로 잡혀가서 살게되며 오직 남은자 만이 돌아오리라고 하신다. 즉 자기 아들 “스알야숩”의 이름이 증거가 되리라고 한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3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허유슈선의 ‘인생철학’>

자연미,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

조바심치지 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진다.

나폴레옹은 “자연스럽지 않으면 완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자연스러울수록 완벽하다’는 뜻이며, 곧 자연스러움에서 완벽함이 나온다는 의미이다. 어린아이일수록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갓난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라. 한없이 천진무구한 아이를 보노라면 어느새 선과 사랑을 깨닫게 된다.

한 건축설계사가 녹지대 안에 빌딩 숲을 설계했다. 건물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그에게 어디에 보행로를 깔아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빌딩 사이사이 모든 공간에 우선 잔디를 심으십시오.”하고 말했다.
여름이 지나자 건물 사이의 풀밭에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크고 작은 길들이 생겼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닌 곳은 넓은 길이 되었고 사람들이 적게 다닌 곳은 좁은 길이 되었다. 가을이 되자 이 설계사는 인부들을 시켜 이 발자국 길을 따라 보행로를 만들게 했다. 이 보행로 설계는 이용자들의? 필요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낸 가장 완벽한 작품이었다.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가면 훨씬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고 기본적인 도리에 어긋나는 일도 없다. 정원을 손질하듯 인생의 계획을 세워보라. 일부러 애쓰고 억지스럽게 꾸미기보다 차라리 자연스럽게 변화에 맞추어가는 것이 낫다. 인생은 자연스러워야 편안하고 즐겁다. 지나치게 애쓰고 노력하는 일은 삶을 더 힘들고 괴롭게 한다. 케임브리지의 레스터 소로 교수는 말한다. “자연적인 것이 가장 진실하고 믿을 수 있다.”

옛말에 “애써 심은 꽃은 피지 않고, 뜻 없이 심은 버드나무만 무성하다.”는 말이 있다. 양심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신이 해햐 할 일을 하는 동안 세상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진다. 사랑, 우정, 사업, 삶, 죽음 등도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걱정하고 슬퍼하는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이다.

*허유슈선 편집 <인생철학 51강> 황소자리 간 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笑聞萬福來)>

선장의 배려

배가 난파하여 무인도에서 여러 해를 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 보니 연안에 커다란 군함이 서있고 조그마한 보트가 자기를 향하여 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보트가 해안에 닿자 수병 한명이 신문뭉텡이를 건네주면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선장님의 특별한 배려입니다. 선장님 말씀이 이 신문을 다 읽어보고

그때에도 구조받기를 원한다면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

친절한 집주인(?)

한 사냥꾼이 사냥에 몰두하다가 너무 멀리 가버렸습니다. 아차 싶어 집으로 향했지만 금방 땅거미가 짖게 드리우고 집까지 갈길은 멀었습니다. 하루 밤 자고 갈 수 있는 농가를 찾던 사냥꾼은 마침 농가를 발견했습니다.

사냥꾼은 부지런히 달려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몇 분 후에 한 농부가 2층 창문을 열고 등불을 휘두르며 누군가하고 내려다 보며 물었습니다.

"누군데 이 시간에 웬일이시요?"

사냥꾼은 "사냥꾼인데 이곳에서 오늘밤 지낼 수 있을까? 해서요"라고 대답하자

집 주인은 "좋아요, 그곳에서 오늘밤 지내시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참문을 닫고 들어가드랍니다.

 

<복잡한 시대를 단순하게 살아가는 아미시들의 지혜>

일요일에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에 심으셨다. 사탄은 세상을 교회에 심으려고 한다. -아미시 잠언에서

기다란 자갈밭 드라이브길이 끝나는 곳에 조그마한 손으로 쓴 표시판이 있었다. “계란과 누비이불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주일날에는 팔지 않음”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러한 표지판은 당신은 아미시가 소유한 농장이나 가게에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토요일 오후에 이러한 드라이브웨이 끝에 살고 있는 그레이버(Graber)가족은 아미시 생활의 근간이 되는 일요일 호슽팅교회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두 큰 아들들은 마차를 열심히 닦고 먼지들을 털어내고 차창을 청소하였다. 이 집의 장녀인 데비 그레이버는 옷들을 세탁하고 다림질하고 개어서 제 자리에 갖다 놓았다. 데비의 어머니는 주일날 저녁식사를 위해 음식들을 준비한다. 집은 깨끗하게 청소되었고 한 주간의 일들이 끝났다.

아미시들에게 있어서 대부분의 토요일 오후는 주일날의 안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들은 우유짜기나, 가축들을 돌보는 필수적인 일외에는 주일에는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자유시간을 갖는다. 비록 귀리를 수확할 계절이지만 잡일들은 하지 않고 기다린다. 비록 건초를 만들려고 풀을 짤라놓았는데 비가 오더라도 그대로 내버려둔채 월요일까지 기다린다. 주일인 일요일은 거룩한 날이다.

300여년 동안 아미시들은 일요일을 예배와 가족들을 위해 전적으로 바쳤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들의 예배의 자유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러한 자유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여야 하는 것이다.

1500년대와 1600년대에 반 세례파들은 종교당국과 정부당국에 의해 심각한 박해를 받아왔다. 그들은 기성의 개신교회나 천주교회 밖에서 종교활동을 하다가 박각돠면 그들은 체포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초기 기독교에서 신자들이 카타콤에 모여 예배본 것과 같이 숨어서 몰래 예배를 드렸다. 발각되면 반세례파들은 고문을 당하고 처형을 받았다. <Martyr’s Mirror>이라는 책은 아미시들의 가정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선조들이 견디어 내야 했던 어려움들을 서술하고 있다.

오늘날 아미시들은 한달에 두 번 드리는 예배를 가정에서 드린다. 그들은 교회는 믿는자들의 공동체로서 어떤 지정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회에 속한 모든 가정들은 호스팅교회의 책임을 맡는데 일년에 한 번 정도 하게 된다. 한 가정이 호스팅 교회를 맡게되면 장모와, 누이들과 며누리들 그리고 이웃들까지 2,3일씩 시간을 내어서 그 집을 철저하게 청소하며 필요한 것들을 도와준다.

모든 것들을 운반할 수 있는 커다란 왜곤이 동원되어 예배시 사용할 찬송가들과 긴 의자들을 수송한다. 또 예배를 위해 모이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문을 넓히고 내부를 수리하기도 한다. 아미시들은 작은게 좋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교회가 한 집에서 모이기에는 너무 커졌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구역을 둘로 나누어서 새로운 목사와 장로들을 세운다.

아미시들의 예배는 세 시간 내지 그 이상 걸린다. 여신도들은 한쪽에 앉고 남신도들은 다른 쪽에 앉는다. 얘기들이 울면 교인들은 그것을 참아준다. 목사는 계속해서 설교한다. 처음부터 어린아이들은 예배시간에는 조용히 있도록 훈련을 받지만 때로는 간식거리들을 주며 달래기도 한다, 교회의 모든 예배후에는 미리 준비했던 가벼운 식사들을 나누며 오후에는 이웃이나 친구들을 방문하며 보낸다.
아미시 공동체에서는 일요일 오후나 저녁은 전통적으로 “젊은이”들-16세 이상-을 위한 친교의 시간이다. 그 날 오전에 호스트 교회를 한 가정들은 젊은이들을 그날 저녁에 초청하여 음식을 나누고 운동을 하고 그리고는 한, 두 시간 노래하며 즐긴다. 때로는 50명 내지 100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동네를 오르내리며, 때로는 마차를 열어 젖히고 거리를 누빈다.

그러나 그것은 아미시들에게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군중들이다. 혼란이나 무질서를 의마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임들은 아미시 젊은이들에게 낭만적인 상대를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계기가 되기도 한다. 데비의 큰 오빠인 제이크는 신부감을 사촌의 노래판에서 만났다. 3년 동안 제이크는 마차를 타고 로즈를 만나기 위해 10마일씩 여행하면서 때로는 아침 우유짜는 시간에 늦기도 하였다.

아미시들은 그들의 일요일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지킨다. 데비는 “비록 다른 날들도 가족둘과 친구들과 지내며 독서도 하면서 잘 지내지만 주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지요. “라고 말한다.

아미시들에게 주일은 따로 정해 놓은 날이다. 그것은 새로움을 제공하는 날이다. 영혼을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의 비결>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기.

좋은 자세와 태도는 올바른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모리헤이 우에시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발을 질질 끌거나 머리를 숙인 모습은 자신감과 활력의 부족함을 드러낸다. 반면 어깨를 활짝 편 꼿꼿한 자세와 당당한 자세와 당당한 걸음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멧시지를 보낸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몸가짐이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멧시지를 보낸다는 사실이다. 자신있는 사람처럼 걸으면 실제로 더 자신감을 갖게 된다. 허리를 곧게 편 채 똑바로 앉는 행동은 실제로 활력과 의욕을 높인다. 힘 빠진 악수보다 굳은 악수가 우리를 더 적극적으로 만든는 것처럼 말이다.

더 적극적이고 활력 넘치는 자세릏 취하면 실제로 자신감이 높아지고 힘이 솟는다. 행동이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르바 콜린스(marva Collins)는 1930년대에 엘라바마에서 태어난 흑인 소녀다. 그녀는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성장해, 차별과 각종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콜린스는 크게 성공한 유명한 교사가 되어 불우한 처지의 학생 수 천명을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녀는 가르치기 어렵다며 모두가 포기한 그 학생들을 바른 길로 들어서게 했을까? 콜린스는 자기 학생들에게 그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선물,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선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자신감, 곧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갖고 있던 믿음 때문이었다.

콜린스는 “그 당시에 흑인이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공을 부모님 덕으로 돌린다. 그녀의 부모님은 어려운 경제적 환경과 시대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딸을 ‘자부심’을 가지고 키웠다. 한 사람의 자존심에 괭장한 상처를 줄 수 있는 차별과 학대가 횡횡하던 문화에서도 콜린스의 부모님은 딸이 강하고 자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

자립의 중요성은 그녀의 부보님이 매우 중시한 개념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콜린스는 당당해지려면 당당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배웠다. 이런 자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콜린스의 어머니는 종종 그녀와 여동생에게 “머리를 똑바로 들어라!”라고 훈계했다고 한다. 이제 70대의 할머니가 된 오늘날에도 콜린스는 여전히 머리를 높이 들고 걸으며,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의 기운을 전달하고 자세, 목소리, 눈빛,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존경을 자아낸다.

꼿꼿이 앉아라. 걸음걸이로 자부심을 표현하라. 바른 행동과 처신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힘과 자신감을 뿜어내라.

*탈 벤 사하르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와이즈베리 간

<늘푸른나무(www.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