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지혜로운 삶/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3)/2020년 12월>
목차

41. 가난한자의 예언자 미가/ 40. 메시야가 다스리는 영원한 평화의 나라/ 39.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 /38.남은자가 돌아오리라 /37.이사야의 포도원의 비밀/36.바른예배를 드리는 길/35.임마누엘의 징조/34."제가 여기 있아오니 저를 보내소서"/33. 유다에 심판을 선포한 이사야 예언자/32.잃어버린 10 지파와 사마리아 사람들 /31.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45.?오바댜 예언자:“네 형제가 고난 받을 때 기뻐하지 말라.”

오바댜?예언자는 요엘 예언자와 거의 같은 때 유다에서 예언자로 일했다.

오바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이다.?랍비들의 전통에 의하면, 오바댜는?가나안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라고 한다.?요즈음으로 보면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말처럼 부모들이 가나안으로 이민왔다고 볼 수 있겠다.?
요엘처럼 성전에서 제사를 도우며 예언활동을 했다고 본다. 그의 활동 연대는 유다가 침략을 받고 백성들 일부가 포로로 끌려간 것과 에돔이 망한 것을 볼 때 기원전 587년부터 538년 경이라고 본다.?오바댜서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예언서중의 하나다.

오바댜는 “너희는(천사들) 일어나 에돔을 쳐부수러 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선언한다.( 오바댜서 1:1, 표준번역)?에돔은 어떤 나라며 왜 쳐부수러 가자고 하시는가??

에돔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아주 옛날로 거슬려 올라간다.?창세기 18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해서 에서와 야곱 형제를 나았다.?그런데 에서와 야곱은 형제간의 의가 조치못하여 자주 다투었다.?특히 에서는 야곱에 비하여 좀 둔하고 어리석었다.?마침내 아버지 이삭이 늙어 죽게되었을 때?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가 받을 축복을 받고 형 에서가 가지고 있던?장자의 명분을 갖는다. 에서는 뒤늦게야 야곱이 아버지와 자기를 속여 장자의 명분을 빼았아 가진 사실을 알고 야곱을 미워한다.?

결국 야곱은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하여 멀리 하란에 있는 라반 외갓집으로 피신을 한다.?그리고 외삼촌 집에서 일하면서 외사촌 동생,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여 아들만 12을 얻고, 많은 재물을 얻어 대 가족을 이룬다.?그리고 야곱의 이름을 따라 “이스라엘 족속”이라 부른다. 한편 에서는 가나안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또한 큰 가족을 이루어 살게되고 이를 “에돔족속”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그리고 사해의 동남쪽 지역 (지금의 욜단)에 정착한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이스라엘 족속은 이집트에 내려가서 살았고, 약 사백년 후, 더 큰 민족이 되었고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온다.?그러나 에돔족속은?자치적인 나라로 지내지만 지정학적으로 약소한 나라로 지내고 있었다.?그러나 이스라엘과는 별로 좋은 관계를 갖지 않았다.?그러다가 이스라엘이 강성해젔을 때에는, 아마 다윗과 솔로몬왕때, 완전히 이스라엘의 일부가 되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남북한 관계처럼 껄끄럽게 지냈다.?

오바댜가 말한 에돔의 잘못은 유다의 여호람왕 때 있던일 같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 같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북왕국은 아주 망하고 남왕국은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적군들이 쳐들어와 재물을 약탈해가고, 왕자들과 여자들을 포로로 잡아갈 때 에돔이 유다를 돕지 않고 오히려 적군을 도와 같이 약탈하고 유대인들 잡아 적군에 넘겨주는 등 유대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학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바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아우 야곱에게 저지른 그 폭행 때문에?네가 치욕을 당할 것이며, 아주 망할 것이다.

네가 멀리 서서 구경만 하던 그 날,?이방인이 야곱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적들이 그의 문들로 들어와서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을 나누어 가질 때에, 너도 그들과 한 패였다.?

네 형제의 날, 그가 재앙을 받던 날에, 너는 방관하지 않았어야 했다.
유다 자손이 몰락하던 그 날,
너는 그들을 보면서 기뻐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가 고난 받던 그 날,

너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지 않았어야 했다. (오바댜서 1:10-12,“에돔의 죄”에서, 표준번역)


예언자는 감성적으로 예민하게 말한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세계역사뿐 만아니라 인간들의 마음과 행동, 그리고 자연만물까지 보살피시는 분이심을 강조한다.

오바댜는 하나님이 세계 만민을 심판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웨친다.

“너희가(이스라엘) 내 거룩한 산에서(시온 산) 쓴 잔을 마셨다.?그러나 이제 온 세계 모든 민족이 더욱더 쓴 잔을 마실 것이다.?마지막?한 방울까지 다 마시고 망하여 없어질 것이다.”?(오바댜서 1:16, 표준번역)

오바댜의 예언처럼 에돔은 역사에서 사라진다.?에돔의 후손들이 한 때 욜단의 페트라를 수도로 번성했으나 그 것도 잠깐뿐이었을 뿐, 그 후 나라가 망했고,?일부 에돔인들은?욜단에, 일부는?팔레스타인의 이두메로 이주하여?살고있다

44. 요엘 예언자: 백성아, 울어라!

미가 예언자로부터 예레미야 예언자까지 약 200년간은 이집트와 앗시리아, 페르샤, 그리고 바벨론이 근동지방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던 때다. 그동안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망하고(기원전 720년경),?남왕국 유다는 앗시리아의 침략을 극복하고?살아남았으나 결국?신바빌론에 의해서 망했다(기원전 586년 경). 또한 이 기간의 역사를 구약성경 열왕기하 18장부터?25장까지와 역대지하 29장부터 36장까지와 예레미야서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에?유다에서는 요엘, 오바댜, 나훔, 하박국, 스바냐 같은 예언자들이 활동했다.

예언자 요엘은 자신을 브두엘의 아들이라고만 소개하고 있다.?그 외에는 요엘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물론 구약성경에 동명 이인은 있다. 그러나 다른 예언자들처럼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들을 소개하지 않고 있다. 신학자들은?요엘이 활동하던 시대를 페르시야가 근동지방을 지배하던 때(기원전 539-331년)로 보고 있다.?특히 “메뚜기와 가믐 재앙”이 근동지방을 휩쓸었던 때로 보아 기원전 7세기 후반부터 5세기초 이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요엘은?제사제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전에서 예배를 주관하던?예전(성전)예언자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요엘서는 당시 메뚜기떼의 창궐로 인해 일어난 피해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임하는가를?알려주고 있다.?먼저 요엘 예언자는 메뚜기떼의 재앙에 대해서 말한다.

"늙은이들은 들어라 이 땅의 주민들은 모두 귀를 기울여라.?너희 세대에?이런 일이 있었느냐??너희 조상 적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요엘서 1:2, 공동번역)

요엘은 갑자기 몰려든 메뚜기떼를 수 많은 외국군대가 갑자기 처들어온 것 같다고 한다. 역사가들은 아프리카나 근동지방에 몇 십년에 한번씩 오는 메뚜기(황충이라고도 함)떼의 공격에 대해서 놀라운 자연의 재해라고 알려주고 있다.?메뚜기떼가 몰려오면 하늘이 어두어지고 온 산과 들에 메뚜기들이 가득하게되어?곡식이나 과실나무들을 먹어버리는 것이 마치 사자같은 짐승들이 포도원을 짓밟아버린 것 같다고 한다.?메뚜기떼는 농사만 망칠뿐 아니라 짐승들도 죽게해서 마치 온 들판에 산불이 나서 모든 것이?불에 타죽어버린 것같이 되어버린다.?

요즈음 코로나바이러스 유행병이 사회적으로 두려움을 가져오듯이,?당시 메뚜기떼의 창궐은 온 유대나라를 질식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천재지변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왔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요엘은 말한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떨도록?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야훼께서 거동하실 날이 왔다… 땅은 뒤틀리고 하늘은 뒤흔들린다.?해와 달은 어두워지고 별들은 그 빛을 잃는다.?야훼께서 당신 군대를 호령하신다.

그의 군대는 크기도 하다.?그의 명령을 이루는 자는 강하니 야훼께서 거동하시는 날,

그 엄청난 날, 그 무서움을 누가 견디랴?” (요엘서 2:1, 10-11, 공동번역)


사람들은 메뚜기떼를 보고 자연의 재해라고 말하지만, 요엘은?메뚜기 재앙을 하나님이 주시는 심판이라고 한다.?즉 죄를 짓고 회개할줄 모르는 지도자와 백성들의 운명을 알려준다.

이제 백성들이 할 일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야훼의 말이다.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 오라.?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라.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찟고?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 오라.?주는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사랑이 그지 없으시어 벌하시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 (요엘서 2:12-13, 공동번역)

요엘은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재난을 거두시고 원수들을 물리쳐 주시고 풍요한 땅을 회복시켜주심을 강조한다.?그리고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내려주실 것을?노래한다.

“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그날, 나는 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 주리라.?나는 하늘과 땅에서 징조를 보이리라.?피가 흐르고 불길이 일고 연기가 기둥처럼 솟고 해는 빛을 잃고 달은 피같이 붉어지리라.?야훼께서 거동하시는 날,?

그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그 때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으리라.” (요엘서 3:1-5, 공동번역)

요엘의 예언의 말씀은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의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통하여 반복된다. 특히?요엘의 계시적인 예언 말씀은 요엘서를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과 비교하기도 한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떨도록?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야훼께서 거동하실 날이 왔다… 땅은 뒤틀리고 하늘은 뒤흔들린다. 해와 달은 어두워지고 별들은 그 빛을 잃는다.?야훼께서 당신 군대를 호령하신다. 그의 군대는 크기도 하다.?그의 명령을 이루는 자 강하니 야훼께서 거동하시는 날, 그 엄청난 날, 그 무서움을 누가 견디랴?” (요엘서 2:1, 10-11, 공동번역)

사람들은 메뚜기떼를 보고 자연의 재해라고 말하지만, 요엘은?메뚜기 재앙을 하나님이 주시는 심판이라고 한다.?즉 죄를 짓고 회개할줄 모르는 지도자와 백성들의 운명을 알려준다.?

이제 백성들이 할 일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야훼의 말이다.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 오라.?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라.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찟고?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 오라.?주는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사랑이 그지 없으시어 벌하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 (요엘서 2:12-13, 공동번역)

요엘은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재난을 거두시고 원수들을 물리쳐주시고 풍요한 땅을 회복시켜주심을 강조한다.?그리고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내려주실 것을?노래한다.

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그날, 나는?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 주리라.?나는 하늘과 땅에서 징조를 보이리라.?

피가 흐르고 불길이 일고 연기가 기둥처럼 솟고 해는 빛을 잃고 달은 피같이 붉어지리라.?야훼께서 거동하시는 날, 그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 그 때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으리라.” (요엘서 3:1-5, 공동번역)

요엘의 예언의 말씀은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의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통하여 반복된다. 특히?요엘의 계시적인 예언 말씀은 요엘서를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과 비교하기도 한다.

43. 사람아,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한다는 예언자의 사상은 고대 사회에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흔히들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성대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미가는 말하기를,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미가서 6:6,7, 표준번역)

이 말은 예배드릴 때에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진정에서 나오는 말이다. 좀 더 말하면 이것은 제사(예배)뿐만 아니라 종교의 핵심이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해야될 말이다. 그러면 예배드리는 자가 꼭 알아야될 것이 무엇인가? 미가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 사람아,
야훼(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한결같은 사랑을 즐겨 행하는 일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 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미가서 6:8, 공동번역)

미가의 사상은 기원 전 8세기 예언자들의 사상을 대표한다고 한다. 즉 아모스의 정의, 호세아의 사랑, 그리고 이사야의 신앙을 종합한 예언의 진수라고 부른다. 미가의 예언도 아모스나 호세아와 같이 이스라엘의 죄와 벌에 대해서 책망도 하고 경고도 했으나 동시에 희망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정의를 강조하는 엄하시기만 한 분이 아니시라고 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듯이 자기 백성들을 돌보신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고생하지만 다시 고국에 돌아와서 평화롭게 살 때를 마련해 주실것이라고 한다.

그 표징으로 베들레헴에서 장차 이상적인 통치자가 나오리라고 예언한다. 즉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보잘것 없이 작은 족속이 살고 있는 지역이지만, 앞으로 위대한 왕이 나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옛날 다윗왕이 베들레헴에서 나왔다는 전통에서 인용한것으로 본다.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 저자는 앞으로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가 베들레헴에서 나심을 가르킨다고 했다. 마태복음 2:6)

하나님의 통치로 우주적인 평화가 이루어지던 때가 오면, 세상에는 전쟁이 없고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 것이라고 미가는 외친다.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스럽게 살 것이다.”( 미가서 4:3,4 표준번역)

42.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나의 백성을 속이지 말라”

지도자들은 일반 백성들에 비해서 여러가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 중에 왕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정치적인 지도자들과 제사장이나 예언자들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호사를 누리며 살 뿐만 아니라 힘없는자들을 압제하고 특히 농부들의 땅이나 곡식들을 빼았아 부자가 되었다. 못된 지도자들은 밤낮으로 약자를 억압하고 그들의 재산을 어떻게하면 뺐을까를 궁리했다. 그래서 미가는 이들을 책망하기를,

“망할 것들!
권력이나 쥐었다고
자리에 들면 못된 일만 꾸몄다가
아침 밝기가 무섭게 해치우고 마는
이 악당들아,
탐나는 밭이 있으면 빼앗고
탐나는 집을 만나면 제 것으로 만들어
그 집과 함께 임자도 종으로 삼고
밭과 함께 밭 주인도 부려 먹는구나.” (미가서 2:1,2, 공동번역)

그러나 미가 같은 예언자가 이들의 잘못을 책망하면, 그들은 대답하기를,

“너희는 우리에게 예언하지 말아라.
이 모든 재앙을 두고 예언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우리를 망신시키실 리가 없다.” (미가서 2:6, 표준번역)
하면서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려고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빈부의 차이가 점점 심해지고 약자들의 울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치게 되었다. 옛날 모세가 가르쳤던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는 찾을 수가 없었다.

예언자의 의식은 공평과 자비가 넘치는 공동체였다. 그러니 약자나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그릇된 길로 백성들을 이끄는 예언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열성적이고 신앙적인 것 같았으나, 그들의 설교는 기복적이고 행동은 자신의 안전과 이익만을 위하여 일하고 있었다. 어리석고 물질과 권력에 빠져버린 거짓된 예언자들이었다. 미가는 외치기를,

“예언자라는 것들이
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만사 잘 되어간다고 떠들다가도)
입에 아무것도 넣어 주지 않으면 전쟁을 벌일 준비를 한다. (트집을 잡는구나).” (미가서 3:5, 표준번역)

오늘날도 권력에 아부하고 이득에 눈먼 거짓된 설교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위 성경적이라는 주장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 약자들을 무시하는 잘못된 현대판 거짓 예언자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미가는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자랑하는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백성을 죽이고서,
그 위에 시온을 세우고,
죄악으로 터를 닦고서,
그 위에 예루살렘을 세웠다.” (미가서 3:10, 표준번역)

소위 거룩하고 아름답다는 시온산과 예루살렘 성전은 백성들의 희생위에 세워진 것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역겨운 건물에 불과하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드시려고 하시니, 회개하라고 한다. 오늘날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들을 세우고 자랑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 말을 듣고 회개하여야 한다.

41. 가난한자의 예언자 미가

미가는 이사야 보다 약 10 여년 뒤에 유대나라에서 활동한 예언자다. 그는 유대 남부의 모레셋(혹은 셉펠라 라고 부름)에서 살았다. 이 곳은 지금의 팔레스타인의 가자지역에 있었다고 한다.

좀더 자세히 보면, 모레셋은 지중해 해안을 끼고 이루어진 낮은지역으로 본래는 50여개의 작은 성읍들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기원전 700년 경에 앗시리아가 애굽을 침공했을때 이 지역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빈 언덕만 남아 있다.

“미가”는 “주와 같은 자가 누구인가?” 라는 뜻이다. 미가는 이사야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호세아와 아모스의 에언활동을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의 예언 활동은 비교적 짧았다. 이유는 아마 앗시리아가 애굽을 공격하며 미가가 살던 모레셋 지역을 점령했을때 앗시리아군을 피해서 근처의 광야로 숨어 다니며 예언활동을 했기때문이라고 본다. 미가가 숨어지내던 광야는 옛날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다니며 숨어지내던 아둘람굴이 있던 곳으로 바위가 많고 계곡이 깊어 동굴이 많은 지역이었다.

미가가 활동하던 때는,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고 망해가고 있었으나 사마리아성은 아직 함락되지는 않고 남아 있었다. 한편 남왕국 유다는 히스기야왕이 다스리던 때로 반 앗시리아 동맹군 ( 이집트와 시리아와 북이스라엘 등)에 반대하다가 그들의 침공으로 어려움을 당하가다 겨우 위기를 면하고 안정을 찾았으나, 앗시리아의 계속된 위협으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미가서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애도의 시로 시작된다.

“뭇 민족아, 너희는 모두 들어라.
땅과 거기에 있는 만물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
주 하나님이 너희 죄를 밝히신다.”
(미가 1:2, 표준번역)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벌을 주시려고 하시나? 왜 하나님은 사랑하시던 이스라엘의 도성들을 폐허로 만드시려고 하시는가? 왜 심판을 선포하시는가? 그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다. 무슨 죄악인가?

“그러므로 내가 슬퍼하며 통곡하고,
맨발로 벌거벗고 다니며,
여우처럼 구슬피 울며,
타조처럼 목놓아 울 것이니,
이것은, 사마리아의 상처가 고칠 수 없는 병이 되고,
그 불치병이 유다에까지 전염되고,
기어이 예루살렘에까지,
내 백성의 성문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가서 1:8,9, 표준번역)

북왕국 이스라엘(사마리아 혹은 벧엘 혹은 에브라임이라고도 함) 은 전통적으로 예언자적인 정신이 강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남북이 나뉠때부터 벧엘과 사마리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을 섬기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때 번성하고 풍요한 시절에는 강자가 약자를, 부자가 간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사회적으로 빈부의 차이가 심해 아모스 예언자는 사회적 정의를 외치며 약자를 보호하려고 애썼다. 또한 앗시리아의 침략이 일어나자 이웃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이를 거부하는 남왕국 유대를 공격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한편 남왕국 유대는 비록 작은 나라였으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제사적 전통을 지키며 바르게 살려고 애썼다. 특히 히스기야왕 같은 지혜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서 예언자 이사야의 충고를 잘듣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앗시리아의 공격을 지혜롭게 막아내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큰 잘못이 있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그들을 착취하는 것이다. 소위 지도자들이라는 이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권력으로 약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악을 행하고 있었다. 미가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웨친다.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너희가,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한다.
너희는 내 백성을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낸다.
너희는 내 백성을 잡아 먹는다.
가죽을 벗기고, 뼈를 산산조각 바수고,
고기를 삶듯이,
내 백성을 가마솥에 넣고 삶는다.” (미가서 3:2-3, 표준번역)

그러므로 이들이( 지도자들)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호소와 기도를 들은체도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한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3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40.메시야가 다스리는 영원한 평화의 나라

이사야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뿐만아니라, 주변민족들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말씀을 전하고 다음에는 회개와 구원, 그리고 회복과 축복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참 평화의 나라와 온 세계를 다스릴 메시야의 오심을 전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형식으로 기록했다.

특히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보고 예언한 예언자다.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서로 싸우며 지나가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끝날 마지막 때에 “메시야”가 올 것을 에언한다. 앞서서 하나님은 징조로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다.) 왕이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실 것을 말했다(이사야 6: 10-16) 그러나 이사야는 “ 참 메시야” 즉 “영원한 평화의 왕”이 장차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사야 9:6)

그리고,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루어 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이사야 9:7)

그리고,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끝을 맺는다.

신학자들은 이 “평화의 왕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해석을 한다. 우선 유다의 랍비들은 시대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해석했다. 예를 들면 히스기야 왕이나 혹은 요시아 왕으로 보기도 했다. 또 에스라 혹은 스룹바벨 같은 사람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평화의 왕”은 세상 끝날에 올 것이라 한다.

또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으나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분으로 세상 끝날에 심판주로 다시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한다.

유다의 랍비들이나 기독교 신학자들은 개인의 생각대로 해석해서, 메시야가 이미 왔다고도하고 혹은 장차 올 것이라고 하기도하며 누가 평화의 왕인가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말한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메시야: 평화의 왕”이 오실 때 세상은 모든 악한 것들이 사라지고 영원한 평화의 나라가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주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를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 내려오시니,…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는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이사야 11:1-9)

이사야는 메시야가 다스릴 의로운 나라를 이렇게 노래한다.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
주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우리에게 영을 보내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히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그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비록 삼림이 우박에 쓰러지고 성읍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도,)씨를 뿌리는 곳마다 댈 물이 넉넉하고,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소와 나귀를 놓아 키울 수 있으니,너희는 복이 있다.” (이사야 32:1, 15-20)

마지막으로 이사야는 원수들에게 잡혀갔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속량받고 돌아올 것을 이렇게 노래한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맬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거기는 큰 길이 생길 것이니,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주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이사야 35:1-10)

 

39.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


히스기야는 아하스 왕의 아들로 25살에 왕이 되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택함을 받은 왕이었다 그는 이사야 7장에서 예언된, 하나님이 징조로 주신 “임마누엘”왕 이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활동할 당시 “메시야”라고도 했다.

그는 예언자들의 충고대로 신앙운동을 벌렸다. 즉 종교개혁을 실시했다. 그는 왕이 되자 먼저 성전 정화작업을 했다. 아하스 왕이 닫아 두었던 성전 문들을 활짝 열고, 우상과 우상에게 제사드리던 제단 들을 모두 치우고 성전을 깨끗하게 했다. 다음에 그동안 치워놓았던 하나님의 제단과 성물들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성전재봉헌예배”를 드렸다.

유월절에는 유다뿐 아니라 북왕국이나 이웃나라에 나가있는 이스라엘백성들까지 초대하여 성대한 유월절절기를 지켰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우상들이나 신상들을 섬기는 산당들을 모두 페지하거나 불태웠다.

제사장이나 레위사람들을 성별시켜 효과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백성들을 바르게 교육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조직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십일조를 바치도록해서 이것으로 그들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하므로 그들이 성전일에 전력할 수 있도록 했다. ( 열왕기하 18:-19: 역대하 29:-32: ) 또한 앗시리아의 침공을 대비해서 성벽을 겹으로 세우고 적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특히 성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물을 지하로 성안으로 들어오게 상수도 공사도 했다.

과연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시리아가 다시 침공해왔다. 그리고 이집트와 에디오피아가 유다를 부추겨 앗시리아에 대항하자고 했다. 그러자 이사야는 사람이나 무력을 의지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니, 하나님만 의지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야한다고 웨친다. 이사야는 말로만 하지않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벌거벗고 거리를 다니며 웨치기도 했다.

“그 때에 주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면서, 이집트와 에디오피아에게 표징과 징조가 된 것처럼, 앗시리아 왕이, 이집트에서 잡은 포로와 에디오피아에서 잡은 포로를, 젊은이나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벗은 몸과 맨발로 끌고 갈 것이니, 이집트 사람이 수치스럽게도, 그들의 엉덩이까지 드러낸 채로 끌려갈 것이다”(이사야 20:3,4)

이사야는 사람들과 맺은 동맹은 모두 헛된 것들이라고 했다. 반앗시리아 동맹이나 친 이집트 동맹도 모두 부질없는 헛된 것들이라고 했다.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의 충고대로 정치적인 동맹들을 맺지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앗시리아에 맛섰다. 과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던 앗시리아의 군대를 물리쳤다. 앗시리아의 군대는 하루 밤 사이 십팔만 오천명이나 죽었다. 그리고 앗시리아의 산혜립 왕은 고국에 돌아가서 이년 후 자식들의 칼에 죽었다.

이제 이사야도 늙었다. 이사야와 히스기야 왕은 서로 도우며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한 나라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가 예언한 영원한 메시야는 아니었다. 평화로운 시대가 오래 계속되자 히스기야 왕은 실수를 많이 했다. 특히 왕은 교만해 젔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되였다. 그러자 왕은 이사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이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병낮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은 병을 고쳐주시고 십오년 더 살게 해주셨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3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38.남은자가 돌아오리라


이사야가 다른 예언자와 다른 점은 온 가정이 예언 활동을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예언자였고 그의 아내도 예언자였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들에게는 민족의 운명과 관계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첫 아들의 이름은 “스알야숩”이라 했다. 뜻은 “남은자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장차 이스라엘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잡혀가더라도 결국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조상들과 약속한대로 반드시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을 살려두신다. 그러므로 남은 자들이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을 가지고 믿음을 지킬 것을 가르쳤다.“남은 자가 돌아온다”라는 사상은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때 마다 용기를 주는 말씀이다.

둘째 아들은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했다. 이 뜻은 “노략하는 자가 속히 올 것이다”라는 것이다. 가깝게는 머지 않아 앗시리아가 다마스쿠스(시리아)와 사마리아(북왕국 이스라엘)에 쳐들어와서 사람들을 죽이고 전리품들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보기에는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으나 결국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두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말씀을 전했다. 이들은 이사야가 멧세이지를 전할때 마다 증거자 역활을 하기도 했다.

이사야의 예언 활동은 말로만 전하지 않고 때로는 행동으로 보이기도 했다. 앗시리아의 침략을 경고하기 위하여 벌거벗고 거리를 다니기도 했고, 바빌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할때는 마치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듯이 온 몸이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 이사야 202, 21:3)
그러나 아하스왕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반대로 앗시리아왕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해마다 많은 공물을 바치기로 하고 또 앗시리아가 섬기는 우상을 가져다가 하나님 대신 섬기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

백성들은 “내일 죽으리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하며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예언자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었다(이사야 22:1-14)
심지어 백성의 정신적인 눈 역활을 해야하는 예언자나 제사장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환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며, 판결을 옳게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이사야 28:7-13)예언자들은 눈이 멀고 잠에빠져 있으니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

결국 하나님은 원수들을 시켜서 유다를 징벌하신다.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용사들은 죽고 남은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원수의 나라로 끌려가리라고 웨첬다.
그러나 이사야는 포로로 잡혀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죽지않고 살아남은자가 있으리라고 한다. 그들은 비록 먼 이국에 끌려와 원수들의 압제 아래 노예로 살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결국 이들은 때가 되면 고국으로 돌아오리라. "이스라엘아,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고 하여도, 그들 가운데 오직 남은 사람들(스알야숩)만이 돌아올 것이다.” (이사야 10:22)

“소수의 남은자”에 대한 이사야의 사상은 새로운 예언 말씀이었다. 지금까지는 흔히 이스라엘의 민족의 번영만을 강조하는 것을 예언활동의 목적처럼 보였다. 소위 기복적인 신앙이 예언의 본질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소수의 남은자가 돌아오리라”는 이사야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자비(회복)가 함께한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보여준다. 민족의 장래를 희망적으로 해석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용기를주었다.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 남은 사람들이 비록 적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상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오늘날도 부조리하고 고난이 짓누르는 현실 가운데서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며 희망으로 인도하는 삶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37.이사야의 포도원 비유

예언자 이사야는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아름다운 포도원과 그 주인으로 비유해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예언시를 전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해 주겠네. 그가 가꾸는 포도원을 노래하겠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그리고 이어서 유다백성들에게 생각해 보라고 한다.

“예루살렘 주민아, 유다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나와 나의 포도원 사이에서 한 번 판단하여 보아라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께서 심으신 포도원이다.

주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보이는 것은 살륙뿐이다

주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이사야 5:1-7)

예루살렘 성은 본래 “성실한 도성” 혹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이라고 불렀다. 그곳은 지치고 고달픈 사람들이 편안히 쉴곳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과 교훈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백성과 지도자들의 범죄로 결국 타락하고 버림받은 우상이 가득한 곳이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고 천박해 젔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같은 곳이 되었다고 한다. 이사야는 회개할줄 모르고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호세아가 전한 자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주께서 말씀하신다.'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너희가 가까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이사야 1:18-20)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잘못을 회개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36. 바른 예배를 드리는 길


예언자의 사명은 나라와 민족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이다. 유다는 당장 북왕국 에브라임과 다마스커스 동맹군의 공격으로부터 마치 폭풍앞에서 풀과 나무들이 흔들리던 것처럼 위기에 빠진 나라를 안정시키자 이번에는 앗시리아의 침략을 당하게 된다. 그러자 왕과 지도자들은 어쩔줄을 모르고 다시 패닉에 빠지게 된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보고 다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굳게 서서 이겨야 한다고 웨친다.

이사야는 지도자들에게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 위기를 이겨나갈 방도를 가르친다. 젊은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안의 거리나 성문이나, 시장이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찾아 갔다. 그리고 말을 들으려는 사람들만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말씀을 전했다.

이사야는 예언자로써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그의 말은 호소력이 있었다. 마치 오늘날 스펄죤이나 빌리 그래함이 설교를 통하여 현대인의 잠자는 심정을 깨어주어 위대한 부흥사라 불리우는 것처럼,이사야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위대한 예언자였다.

그러므로 예언서를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이사야를 “예언자의 모델” 혹은 “예언 문학의 대가”라 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사야는 당시 이스라엘뿐 아니라 근동의 각 나라의 장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에 대해서 설명했음을 의미한다.

그뿐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은 절망과 함께 용기와 희망의 말씀을 아주 아름다운 예언시로 전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듯이, 이스라엘은 예언의 말씀을 전할때 아름답고 정교한 시로 전했다.이사야는 유다백성을 꾸짖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이어, 들어라 땅이어, 귀를 귀울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이사야 1:2,3)

이사야는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은 짐승만도 못한 민족이라고 책망한다. 거짓된 마음으로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린다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기도문과 설교와 찬양을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거룩한 예배가 될 수 없다고 한다.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는 하나님이 극히 싫어하시는 헛된 예배라고 한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그러면 무슨 일을 해야하나?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또는 억압하는 자들을 꾸짖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올바른 예배는 곧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35.임마누엘의 징조

예루살렘 성밖 수원지에서 왕과 지도자들을 만난 이사야는 아직은 유다가 망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그러니 앗시리아나 이집트 같은 나라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믿음 안에 굳게 서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외친다

이 말을 듣고 의심하는 왕에게 이사야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니,?의심이 되거든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달라고 하라고 한다.?즉 유다가 지금은 원수들에게 둘려 쌓여 있고 앗시리아 같은 강대국의 위협아래 있어서 금방 망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뜻으로 어떤 표를 보여 달라는 말이다.?그러자 왕은 자기는 하나님에게 징조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시험하지도 않겠다고 말한다.

왕은 이미 앗시리아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그래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또한 왕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강대국 앗시리아를 의지하여 이 위기를 벗어나려고 이미 결심한 상태였다.?그러자 왕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이사야는 왕에게,

“다윗 왕실은 들으십시오.?다윗 왕실은 백성의 인내를 시험한 것만으로 부족하여, 이제 하나님의 인내까지 시험해야 하겠습니까??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것입니다.?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사야 7:14)

이 말씀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에 주신 위대한 예언의 말씀이다.?특히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주는 말씀으로(마태복음 1:23)설명되고 있다.?특히 “젊은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구절에서, “젊은 여자”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로 해석하기 때문이다.?이 해석의 근거는 기원전 270년 경에 완성된 “70인역” (히브리어 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한 것)에서 “젊은 여인”을 “처녀”로 번역한데서 시작되었다.?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임마누엘”을 그리스도의 출생을 예언한 말씀으로 믿는데도 무리가 없다.?“70인역”의 저자들이 기독교인들은 아니었다.?그러나 이사야 7장 14절의 “젊은 여인”은 히브리어에서도 “처녀”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랍비들의 해석은 이 구절을 이사야 예언자가 유다 왕에게?하나님께서 유다나라를 돌보시고 계신 것을 보여주는 징표로 주시는 말씀으로 설명한다.?즉 이 젊은 여인은?아하스 왕의 아내거나 혹은 아하스 왕이 잘 아는 왕족 중에 어떤 젊은 여인을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한다.?다시 말하면, 아하스왕은 첫 아들을 우상의 제물로 바쳤다. 지금 형편으로는 대를 이을 왕자도 없고,?외세에 의하여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으나, 머지 않아 유다를 지켜나갈 새로운 지도자로 어린 왕자를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본문에는 없지 만, 아하스왕을 이을 히스기야 왕의 출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사야는 어떻게 하든지 왕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뜻을 경험하도록해서 왕의 신앙을?살리고 유다를 살려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그러나 지금 아하스 왕은 마음 문을 닫고 이사야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그러나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척하고 있다.?즉 하나님께 어떤 징조도 구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아하스의 후계자가 된 왕은 임마누엘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아하스의 아들로 왕이 된 다음 앗시리아의 침략을 저지하고 백성들의 신앙을 부흥시킨 위대한 왕이었다.


34.“내가 누구를 보낼꼬?""제가 여기 있아오니 저를 보내소서.”


"제가 여기 있아오니 저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누군가? 이사야는 예언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모스는 유다왕 아마시아 왕과 형제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예언자로 활동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은 구원자 이시다”는 뜻이다. 아마 이사야가 태어나기전부터 장차 예언자로 활동할 것을 믿고 이름을 지었던 것 같다. 그의 아내도 예언자였다. 그리고 아들 둘을 두었는데, 첫 아들은 “스알야숩” (‘남은자가 돌아온다’) 둘째 아들은 “마헬살랄하스바스” (‘노략자가 속히 올 것이다’). 라고 했다. 아들들의 이름은 모두 앞으로 당할 유다민족의 운명을 의미하는 표징으로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아버지가 예언자 이기에 자연히 에언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사야가 예언활동을 시작할때, 북왕국에서는 이미 아모스와 호세아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불의한 지도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북왕국은 같은 동족으로 유다보다는 크고 또한 여로보암 II세 같은 정치적으로 수완이 좋은 왕들이 있어서 나라가 부강하였다. 그러나 아모스나 호세아 에언자를 통하여 본 것 같이 그들은 선을 버리고 악한 길을 가고 있었다. 더구나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약자를 괴롭히고 불의를 행하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아모스와 호세아가 나라를 살리기위해 타락한 왕과 지도자들에게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외치고 있었으나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비하여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덜 타락한 것 같으나 이미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더구나 성전이 있고 제사장적인 정통성이 유지되고는 있으나 아하스 왕이 앗시리아와 동맹을 맺으며 우상의 신전들을 곳곳에 세우고 왕이 몸소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는 타락한 예배들을 드리고 있었다. 또한 백성들은 형식적으로는 잘 믿는척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불신앙의 국가로 타락해가고 있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진노가 가까왔음을 알고 왕과 지도자들을 깨우치고 바로 세우기 위하여 기도하며 애쓰고 있었다. 이사야는 예언자이면서 또한 정치적으로도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아모스와 호세아 같은 예언자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 부름받는 이야기는 이사야 6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아사랴 왕이라고도 함)이 죽을 때( 기원전 740년 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마침 북이스라엘과 시리아가 동맹을 맺어 유다를 침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리고 있을때 였다.

그는 풍전등화같은 나라의 운명 앞에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 지도자들을 생각하면서 성전에서 기도드리고 있었다. 그는 악한 왕과 잘못된 지도자들을 원망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자신은 깨끗하고 지혜로운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사야를 부르신다. 기도하던 이사야에게 높은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보였다. 의 기록에 보면 , 주님의 거룩한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주위에는 스랍(천사)들이 둘러 서 있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노래하기를,(이사야 6:1-4)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시다.”

우렁찬 천사들의 노랫소리에 성전의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찾다. 그러자 이 순간 이사야는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부족하고 죄가 많은지를 깨닫게 된다.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보잘것 없는 자신임을 알았다. 그는 외치기를,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이사야 6:5)

이때 한 천사가 제단에서 부집게로 타고 있는 숯을 들고 날아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말하기를,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희 죄는 사해젔다.”( 이사야 6:6-7) 고 선고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정결하게 해주셨음을 알게 된다. 더러운 자신의 모습이 변하여 깨끗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 이사야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

그러자 이사야는 대답하기를,

“제가 여기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이사야 6:8)하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무슨 일이나 자신이 다 하실 수 있다. 그러나 모세를 부르실때 본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 이사야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를 체험했다. 영원전부터 계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을 결심한다.

소명을 받을 때의 경험은 에언자마다 다르다. 또 소명 받을때의 경험을 기록하지 않은 예언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대언자로써 신앙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과 행동에 지혜롭고 용기있는 예언자로 일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이사야 6:9-13)

“너희가 듣기는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너는 이 백성은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될까 걱정이다.”

이 말은 앞으로 이사야가 예언 활동을 할때 당하게될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왕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이사야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할뿐 아니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는 낙심하지 말고 말씀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을 묻는다. 그러자 하나님은,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이사야6:11-13)

이 말은 장차 유다도 북왕국이스라엘처럼 멸망하고 백성들은 이국의 포로로 잡혀가서 살게되며 오직 남은자 만이 돌아오리라고 하신다. 즉 자기 아들 “스알야숩”의 이름이 증거가 되리라고 한다.

33. 유다에 심판을 선포한 이사야 예언자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이사야는 신학자들에 따라서 한 사람으로 보거나 혹은 여러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까지와 40장 이하는 예언 활동의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그러므로 기원전 8세기 활동한 이사야를 첫 이사야라 부르고, 기원 전 6세기 이 후에 활동한 이사야를 제2 이사야 혹은 제3이사야라 부른다. 랍비들은 이들을 모두 이사야 예언자 그룹에 속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제일 먼저 활동한 이사야 이후에 그의 제자들이 예언활동을 계속하면서 예언서를 기록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글에서 이사야를 둘로 나누어, 유다나라가 바빌론에 망하기 전까지 활동한 이사야와 (기원전 740년 경부터 기원전 586년까지, 이사야서 1:-39),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올때부터 제2성전을 건축하는 중에 활동한 이사야(제2이사야로 부름)( 기원전 537년 경부터 기원전 516년 경까지, 이사야 40:-66:)으로 나누어 연구하려고 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기 삼년 전 쯤이다( 기원전 725년 경) 한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벽을 따라 서쪽으로 뚤린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이 길은 예루살렘 성 안으로 식수를 공급해 주는 수원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다. 그 곳에는 지금 유다의 왕이 신하들과 함께 나와서 예루살렘 성이 안전한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중동지역은 북쪽에 새로 등장한 앗시리아가 점점 강한 대국이 되어 아라비아지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프리카 일부(이집트)까지 침공하려고 했다. 그러자 남쪽의 이집트는 주변의 작은 나라들과 연합하여 앗시리아의 침공을 저지하는 한편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중동의 작은 나라들은 앗시리아편에 가담하거나 아니면 친 이집트편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다는 작은 나라였다. 본래 12지파가 연합하여 이스라엘 통일국가를 이루었으나, 그것도 잠간뿐이었다. 결국 솔로몬 왕이 죽자, 나라는 남북으로 나뉜다. 그래서 북왕국은 에브라임지파를 중심으로 10지파가 뭉쳐서 “이스라엘”( 혹은 사마리아, 또는 에브라임이라고 부름)나라를 이루고, 나머지 두 지파 ( 유다와 벤야민 지파)가 연합하여 “유다”나라를 이루었다. 유다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제사제도가 잘 유지되어있고 또 다윗왕의 전통이 잘 계승되어서 비교적 안전했으나, 땅도 작고 인구도 얼마 안되는 작은 나라 중에도 작고 약한 나라였으므로 힘이 없었다. 더구나 남쪽에는 역사가 오랜 강대국 이집트가 있어서 자주 충돌이 있고 북쪽으로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시리아(다메섹), 앗시리아. 바빌론 등이 끊임없이 침공하여 항상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서 고생하는 것과 비슷했다.

마침 앗시리아가 남쪽으로 쳐내려오자, 북왕국 이스라엘과 시리아(다메섹) 는 유다에게 자기들과 연합하여 앗시리아의 침략을 저지하자고 했다. 또한 이들은 남쪽의 이집트와 손을 잡고 반앗시리아 동맹을 맺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다 왕과 중요한 정치인들은 앗시리아에 항복하고 평화조약을 맺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등과 손을 잡고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앗시리아의 침략을 막아내자고 했다. 그러나 예언자 그룹에서는 친앗시리아도 친이집트도 아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현실적으로 유리한 편을 택했다. 즉 앗시리아에 항복하기로 했다. 그러자 반앗시리아 연합군은 무력으로 유다를 연합군에 가담하게 하려했다. 그래서 우선 이스라엘군과 시리아군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했다. 대부분의 유다땅은 반앗시리아 연합군에 의해 쉽게 점령 당하고 많은 유다인들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 만은 함락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연합군은 예루살렘성을 웨어쌓고, 자기들과 함께 연합하지 않으면 계속하여 성을 공격할 것이고, 성을 점령한 뒤에 현재 친앗시리아왕 대신에 다른 왕을 세울 것이라고 위협했다.

적군이 성을 포위하면 우선 성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당장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없어서 곤란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유다는 먼저 성밖의 물근원이 막히지 않게 성벽을 뚫고 성안에 있는 물 저장소로 모일 수 있도록 대비를 하여야 했다. 그리고 앗시리아의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다 왕은 많은 선물을 앗시리아 왕에게 보내면서 연합군의 침략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했다. 나라의 운명이 대단히 위태롭게 되었다.

그때 유대의 왕은 아하스였다. 그는 이십대의 젊은 왕이었다. 정치적으로도 미숙했다. 또한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실수가 많은 지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또한 이웃나라들이 섬기는 우상들도 섬겼다. 솔로몬 왕 말년에 했던 것처럼 정략적으로 이웃나라의 공주들과 결혼한 것 같이. 그는 유다나라 곳곳에 우상들을 세우고 섬겼다. 대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일부 문들을 없애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께서 금하신 인신제사까지 드렸다. 인신제사는 우상을 섬기던 나라들이 드리는 제사 중의 하나로, 나라에 전쟁이나 유행병 같은 위급한 일이 일어나면, 왕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불에 태워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 화를 면하려고 했던 나쁜 풍습이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아하스왕을 “믿음이 없고 악한 왕 중의 하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하 16장, 역대하 28장)

그리고 왕을 만나러 달려오는 아버지와 아들은 예언자 “이사야”와 그의 아들 “스알야숩” 이었다. 아마도 왕은 바른 말 만하는 이사야를 미워해서 만나기를 꺼렸던 것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마침 수원지를 찾아 나온 왕을 만나러 가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사야는 가장 악한 왕과 그를 추종하는 나쁜 그룹의 정치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설득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올바른 나라를 세워나가야할 사명을 갖은 예언자였다. 숨차게 달려온 이사야는 왕과 신하들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외친다.

“ 시리아의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르말리아의 아들)가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이사야 7:4)

이사야는 계속해서,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예루살렘성을 공격하여, 유다를 정복하려는 계획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은 얼마되지 안아서 망하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하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 (이사야 7:9)고 웨친다.

32. 잃어버린 10지파와 사마리아 사람들


앗시리아는 계속 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앗시리아왕 티글랏빌레셀은 거침없이 이스라엘 땅을 침략했다. 사마리아성은 3년간을 버텼다. 그러나 호세아는 희망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배반한 죄값을 치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대신 새롭게 출발할 것을 가르친다.

“에브라임이 다시 태어나는 진통을 겪고 있다….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는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사마리아가 저희 하나님에게 반항하였으니, 이제는 그 죄값을 치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칼에 찔려 쓰러지고, 어린 아이들은 박살나고, 아이 밴 여인들은 배가 찢길 것이다.”(호13:13-16)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는 앗시리아의 살곤에게 망했다. 기록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2만7천여명이 포로로 앗시리아로 끌려가서 앗시리아(지금의 이란과 이락과 아라비아 등)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는 앗시리아 사람들과 또 다른 정복민족들을 보내어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섞여 살게했다. 이들을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열왕기하 17장24절)

아모스와 호세아가 예언한대로 북왕국 이스라엘은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는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날 이들을 잃어버린 10 지파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모두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많은 주민들이 유대와 이웃 나라들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특히 레위족속들은 남북이 나누일 때 이미 유대로 피신해서 정착했다고 한다.

호세아와 고멜 그리고 세자녀들은 어떻게 되었나? 전설에는 호세아는 포로로 잡혀 앗시리아로 끌려갔다가 그곳에서 죽어 그의 몸은 후에 이스라엘로 옮겨와서, 갈릴리호수에 가까운 사페드에 묻혔다고 한다. 호세아는 나라가 망하고 동족이 포로로 끌려갈 때 홀로 피할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동족과 함께 고난의 행군을 하고 적국에서 동족들과 함게 살다가 죽었다.

왜 오늘날 사마리아에 살고있던 이스라엘사람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나?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한지 약 150여년 후 남왕국 유다도 바빌론에게 망했다. 남왕국 유다도 많은 주민들이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그후 바벨론은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바벨론에 잡혀온 유대인들을 유대땅에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기원전 537경부터) 이 때 이미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옛 이스라엘 땅에는 앞에서 본 것처럼 이스라엘인과 앗시리아인 등 혼혈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비록 이민족과 혼혈이 되었지만, 그들은 이스라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잃어버린 10지파”후손들일 것이다. 하지만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이들을 동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냉대하고 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거의 같은 시대에 예언자로 일했다. 그러나 아모스는 사막의 사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르게 살지 않는 것을 보고 분이 나고 실망하여 정의를 외첬다.

호세아는 도시 사람으로 동족의 잘못을 연민의 눈으로 보고 슬퍼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를 희망하게 되었다. 호세아가 강조한 두 가지는 사랑과 희망이다. 첫째로 하나님은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호6:6)

두째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주께서는 예언자 한 사람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시고, 예언자 한 사람을 시켜서 그들을 지켜주셨다.”(호12:13)

31.하나님은 자비하시다.

호세아가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임을 새롭게 깨달은 것은 아니다. 예언자들의 전통에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가르침이 일찍부터 있었다. 모세는 이미 아브라함, 이삭, 야곱같은 조상들이 이방신들과 하나님이 다른분이심을 알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번째 계명을 받아가지고 올때 , 모세앞을 지내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 “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출 34:6)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요,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이오, 모든 율법과 예언의 근본이다. 다른말로 하면 세상이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특히 노예들의 구세주가 되고, 고아와 과부의 보호자가 되고, 가난하고 억압받고 나그네가된 사람들의 구원자가 된다. 또한 보잘것 없는 피조물들까지도 돌보아주는 분이심을 가르쳐주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청했다. “첫째는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4) 그리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19:18,이 말씀은 마치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3장 16절과 같다.)
시편도 호세아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예배시에 사용하는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시118:2) 또는 “영원 전부터 변함이 없으신, 주의 그의 긍휼하심과 자비로우심을 기억하여 주십시오.”(시25:6)

히브리어 성경에서 호세아서가 예언서의 맨 첫머리에 기록된 이유는 “사랑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원수들이 처들어 와서 위기에 처해도 또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더라도 하나님 사랑을 잊지말고 살아야할 것을 강조했다.

한편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때에도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희망을 걸고 살며 백성들을 이끌었다. 호세아는 가정을 버리고 정부를 따라 집을 나간 아내 고멜을 버리지 못하고 사랑하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사랑하고 있다고 외친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는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는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는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호11:8)

아드마와 스보임은 옛날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한 두 도시라고 한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사랑은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나는대로 할 수가 없구나.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북 이스라엘)을 멸망 시키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려 온 것이 아니다.”(호11:9)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3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