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지혜로운 삶/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2)/2020년 12월>
목차

3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무지한 백성./29.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28."네 어미를 고발하라"/27.예언자 호세아, 사랑은 슬픈 것인가?/26.최초의 문서 예언자 아모스와 그가 본 환상./25. 아모스와 아마샤./24."정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23.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22. 회개하는 니느웨 사람과 하나님의 자비'/21.희망의 예언자 요나/20. 제2의 모세, 엘리야/19.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18.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의 대결/17. 국가의 분열과 예언자./16. 왕과 예언자(2)

3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무지한 백성

그렇다고 일반 백성들은 지배자들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왜 이들은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되었나? 호세아는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아, 주의 말씀을 들어라.주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고 하였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시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호 4:1-3)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몰랐다. 그저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던 것같다. 랍비들은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고집을 세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과(외고집에 의한 무지)같다고 한다. 즉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자기 남편을 우습게 알던것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알처럼 생각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도덕적인분인 것을 그들은 잊고 있었다. 마치 고멜이 목표가 없이 살듯이 이스라엘은 나쁜 환경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가난, 질병, 부조리 등을 탓하면서 바알종교를 따라 타락했다.

처음에는 가나안의 바알종교풍습을 조금씩 따랐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농담이 변하여 진담이 되고 숨어서 하던 작은 행동들이 나중에는 대담하게 공중 앞에서 행하듯이, 바알숭배도 그렇게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라는 죄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모세나 예언자들이 이방민족의 관습을 본받지 말라고 주장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호세아도 모세의 제자 중의 하나다. 그의 가르침은 옛날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강조했던 것과 같았다. 즉 “우상을 섬기지 말라. 우상 섬기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호세아 예언자가 활동할 때까지도 여로보암왕이 벧엘에 만들어 놓은 송아지 상을 섬기고 있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스라엘에서 우상이 나오다니! 송아지 신상은 대장쟁이가 만든 것일 뿐, 그것은 신이 아니다.”(호8:6)라고 말한다.

송아지 상은 앗시리아에서도 섬겼다. 또 앗시리아를 기쁘게하기 위하여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일로 오히려 수치를 당했다. 이런 신상숭배는 소위 제사장들이 백성을 잘못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나(하나님)에게 짓는 죄는 더 많진다…. 그러므로 백성이나 제사장이 똑같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호4:7-9)

마치 고멜이 정부에게 바람이나서 타락해 가듯이 이스라엘도 바알에 빠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희망이 있는가? 고멜에게 사는 길은 남편 호세아에게로 돌아가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밖에는 없다.

“이제 주께로 돌아가자. 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쳐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 앞에서 살 것이다.(호6:1,2)"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길은 옛 일을 다시 회복하는데 있다.

“나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 살 때로부터 주 너희 하나님이다. 그 때 너희가 아는 하나님은 나 밖에 없고, 나 말고는 다른 구원자가 없었다.”(호13:4)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3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29.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북쪽의 침략자 앗시리아는 갑자기 이스라엘에 처들어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한번 지나간 곳은 파괴와 폐허만 남았다. 앗시리아의 침략이 시작되자 유대(남왕국)와 이스라엘(북왕국)은 이집트에 도움을 청했다. 이집트는 즉시 돕겠다고 약속했으나 끝내 돕지 않았다. 대신 유대와 이스라엘 등 작은 나라들이 동맹을 맺어 앗시리에 대항하려 했으나 힘은 미미했다.

당시 유대와 이스라엘의 대 앗시리아 정책은 두 가지였다. 첫 째는 앗시리아에 항복하는 것이었다. 앗시리아에 대항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의견이었다. 즉 앗시리아에 항복하고 속국이 되는 것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주화파라 했다.

둘 째는 이집트나 다른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앗시리아에 대항해 보자는 것이다. 비록 싸우다 망하더라도.한번 싸워보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주전파라 했다. 특히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2세가 죽은 후 (기원전 743), 약 20년간 이 두 그룹이 번갈아 가면서 여섯번이나 왕위를 차지하였다. 대개는 구테타로 정권을 차지하거나 혹은 왕을 암살하거나 했다. 아모스나 호세아의 예언대로 예후의 집안은 (여로보암의 집안) 완전히 망했다.

나라에 피의 구테타가 계속되자 호세아는 침묵을 지키지 않았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호 4:2)

“길르앗(북왕국의 성전이 있던곳)은 폭력배들의 성읍이다”.(호6:8)
호세아는 왕궁에는 쉴새없이 음모와 기만이 일어나고 서로 중상과 모략이 있다고 외친다.

“왕을 갈아치울 자들이 악한 음모를 품고서도 겉으로는 왕을 기쁘게 하며, 온갖 기만으로 대신들을 속여 즐겁게 한다……새 왕을 세우려는 자들의 마음은 빵 굽는 화덕처럼 달아 오르고, 그들은 음모를 품고 왕에게 접근한다. 밤새 그들의 열정을 화덕처럼 부풀리고 있다가 아침에 맹렬하게 불꽃을 피워 올린다. 그들은 모두 빵 굽는 화덕처럼 뜨거워져서, 그들의 통치자들을 죽인다. 이렇게 왕들이 한하나 죽어가는데도 어느 누구도 나 주에게 호소하지 않는다.”(호7:3-7)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위하기보다는 자기들의 권력과 평안만을 얻으려고 했다.
결국 주전파가 세력을 잡았다.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의지하고 주위의 작은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에 대항했다. 그런데 가장 가난하고 약한 유다가 동맹을 거부하자 이스라엘은 다메섹(시리아)과 함께 유다를 공격했다. 그러자 유다왕 아하스는 놀라서 앗시리아에 구조를 요청한다. 앗시리아왕 디글랏빌레셀은 주저하지 않고 당장 군사를 거느리고 길르앗과 갈릴리 북쪽을 공격하여 납달리 지역(이스라엘의 북쪽)을 점령한다. 그리고 거주민들을 포로로 잡아 앗시리아로 끌고 간다. (왕하 16장)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앗시리아에 포로로 잡혀간 역사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앗시리아파와 이집트파로 나뉘어 계속 싸웠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살길을 찾지 않고, 대신 이집트와 앗시리아 등을 허둥지둥 찾아다니며 살길을 찾았다. 약소국가가 강대국에 속국이 되어 (동맹을 맺어 도움을 받아) 살아보려고 하는 어리석은 정치적인 책략은 결국 실패하고 나라는 망하고 만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지난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28.“네 어미를 고발하라.”


호세아는 자기의 아픈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예언 활동을 했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살았을 뿐아니라 동족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을 잘 알고 있었다. 신실한 남편이 부족한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는 남편과 같은 분이심을 알았다.

고멜이 결혼하기 전부터 음란한 여성인것을 호세아가 알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터 부정한 민족인 것을 아셨다. 그러나 호세아가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한 것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자기 백성을 삼으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호세아에게 비록 부정한 여자지만 고멜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하셨다. 이유는 “음란한 자식들”이란 호세아의 자식이 아닐 수도 있듯이 이스라엘도 비록 하나님을 믿는 선민이라 하지만, 다른 민족들과 비교하여 특별하지도 않은 민족이었다.

자식들을 낳았을 때마다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첫째 아들은 하나님이 씨를 뿌린다는 뜻으로 “이스르엘”이라 했다. 이스라엘은 농부가 씨를 뿌려 곡식을 자라게한 것처럼 하나님이 직접 키운 백성이란 뜻이다. 둘째로 딸을 낳았을때는 이름을 “로루하마”라 했다. 그 뜻은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딸”이란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며 타락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버림받은 민족처럼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셋째로 아들을 낳았을때는 “로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유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지 않으니 결국 버림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웃의 강대국들을 의지하고, 또 가나안의 주민들같이 바알신들을 섬기며 살아갈 때,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바람난 자기의 아내 고멜과 같다고 생각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호 6:4)

백성들은 우상들을 섬기며 악을 행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백성은 음행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무에게 묻고, 그 요술 막대기가 그들을 가르치니, 그들의 마음이 음심에 흘려서 곁길로 가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빗나간다.”(호 4:11-13).

호세아가 집을 나간 아내 고멜을 다시 찾아올 때 호세아를 바로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어리석고 무능한 남편이라고 비웃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알이나 이방의 신들과 비교하며 부족하다고 비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세아는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외쳤다. 하나님이 잘못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고멜처럼 헛된 신들을 쫓아다니는 바람난 여자 같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언자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백성들을 깨우치려는 예언자를 미쳤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고멜을 잊지못하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금도 사랑하고 있으니 하나님께로 돌아서라고 한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 만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외친다.

?27. 예언자 호세아: 사랑은 슬픈 것인가?


예언자에게도 러브스토리가 있는가?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애인으로부터 배반당하고 괴로워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 주인공이 호세아다.

호세아는 아모스와 거의 같은 때(기원전 8세기 후반 경)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다. 그는 브레이의 아들이라고만 알려지고 있다.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고멜은 호세아에 대해서 애정도 없었고, 신실하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좀 어리석은 여성이었다. 이미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도 행실이 좋지 못하여 평판이 좋치않았던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고멜을 사랑하였고 결혼까지 했다. 호세아와 고멜은 결혼하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고멜은 호세아의 애정에 불만이었는지 혹은 가정 살림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얼마되지 않아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가고 말았다. 아마 잘 생기고 돈도 많고 권력도 있는 남자였던 것같다. 호세아는 갑자기 아내를 잃고 어린 세 자녀을 키우며 어렵게 살게되었다. 작은 동네에서 당장 소문이 났을 것이다. “예언자의 아내가 바람이 났대. 여북하면 아내가 도망했을까?” 사람들은 호세아를 비웃었다. 호세아는 괴로웠을 것이다.

한편 가정을 버리고 정부와 도망한 고멜은 처음에는 재미있는 살림을 살았던 것같다. 그러나 이것도 잠간뿐이었다. 정부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따라가다가 결국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쓸모없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고멜은 창녀로 팔리게 되었다.

호세아는 고멜이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처가집에 결혼할 때 지불한 지참금을 돌려달라고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요즈음 같으면 가정법원에 이혼 소송과 함께 손해 배상을 요청했을 것이다. 고멜은 당연히 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남편 호세아는 왜 괴롬을 받아야 하나?

호세아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음녀가 된 아내 고멜을 멸시하거나 천대하지 않고 불쌍히 여겼다.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고멜을 용서했다. 왜 그럴까? 호세아는 아직도 고멜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좋을찌 몰라 애쓰고 있을 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고멜을 다시 찾아 오라고 하신다.
호세아는 수소문한 끝에 창녀로 팔려가있는 고멜을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사서 데려온다. 그리고 우선 피난처에 두고 “당신은 많은 날을 나와 함께 살면서, 창녀가 되지도 말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지도 말고, 나를 기다리시오. 그동안 나도 당신을 기다리겠소.”하고 말했다(호 3:3)
사랑은 생리적으로 괴로움을 품고 있다고도 한다. 어떤사람은 잘못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이라고도 한다. 어떤사람은 끝 없는 질투심 등으로 밤낮 괴로움을 당할 수도 있다. 혹은 깊은 상처를 입고 일생동안 아파하며 살 수도 있다. 불행한 사랑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그래서 사랑은 슬픈 것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지극한 사랑은 누가 뭐래도 개의하지 않는다. 그러면 호세아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26. 최초의 문서 예언자 아모스와 그가 본 환상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가운데서 최초로 그의 예언을 문서로 기록한 예언자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된 성경은 아모스서부터 말라기서까지를 후기 예언서라고 부른다. 그러면 전기 예언서란 무엇인가? 잠간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이스라엘 예언자의 역사는 대단히 길다.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하여 다니엘까지 2000년 이상의 긴 세월을 거쳤다. 한편 이스라엘백성들은 한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12지파를 이루고,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고 살다가,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고, 결국은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각각 망했다. 그동안 모세나 다윗같은 지도자들에 의해서 어려움을 이기며 나라를 세우기도하고 원수들과 싸워가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특별한 나라였다. 즉 이스라엘은“야훼”하나님 만을 섬기고,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에게 말씀을 주셔서 왕이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며 살아온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지도자들도 있었고, 또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지 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모스 예언자 때까지는 예언의 말씀들을 기록해서 남기지 않았다. 그러면 모세나 엘리야같은 예언자들의 역사는 어떻게 전해저 왔나? 구약성경에서는 신명기 다음에 전기 예언서라는 부분이 있다. 전기예언서에는, 여호수아기,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가 포함되어 있다. 내용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가나안땅에 들어갔으며, 왜 왕을 세우고, 그리고 어떻게 나라가 망하고 외국에 포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역사서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왜 전기 예언서라고 부르나?

그러면 누가 이것을 기록했을까? 이 문제를 놓고 많은 성서 학자들은 여러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면 “신명기적 역사가”가 썼다고 본다.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무명의 예언자들이 라고 한다. 왜냐하면 전기 예언서의 기록 정신이 예언자들의 사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좀더 말하면, 신명기 역사의 역사철학인 이스라엘의 범죄- 하나님의 심판- 백성들의 회개- 하나님의 구원 등이 예언자들의 멧세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은 “예언시”라는 특별한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대개 예언서는 예언자나 예언할 당시의 형편등을 제외한 예언의 말씀들은 모두가 “시편”에 기록된 시처럼 쓰여젔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의 한자로 된 시처럼, “5언 절구”나 “7언 절구”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 소절을 5자나 7자로 제한 하기에 말씀을 기록하는 일이나,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리고 아모스서부터 말라기예언서까지를 후기 에언서라 부른다.

아모스가 본 환상은 모두 다섯이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에 대한 것이다. 처음 두 가지는 “메뚜기 재앙”과“가믐 재앙”이다. 메뚜기는 곡식이나 푸른 풀을 먹어버리는 재앙이고 두번째의 기근은 뜨거운 바닷바람이 불어와서 깊은 샘까지 말려버리는 가뭄이 올 뿐 만 아니라 너무 더워서 식물이나 가축이나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재앙을 본 아모스는 놀라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간절히 호소하며 용서를 빌자 하나님은 재앙을 철회하신다. 예언자는 백성의 잘못을 보고 책망도 하지만 또한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호소하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

세번째 환상은 “다림줄”이다. 그리고 다람줄의 끝을 하나님이 잡고 계신 것을 본다. 다람줄은 옛날에 집을 지을 때 쓰던 도구 중의 하나다. 담이나 벽을 쌓을 때, 굽어지지 않고 똑바로 쌓아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도구다. 그런데 다림줄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서, 벽이 굽어져서 집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하신다. 사람의 눈으로는 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네번째 환상은 ”여름과일 한 광주리”다. 겉으로 보기에는 싱싱한 것 같고 먹음직스러우나 속으로는 상해서 곧 버려야할 과일이다. 다른 번역에는 “끝물 과일”이라고 했다. 즉 이스라엘이 더 쓸모 없어 망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아모스는 참 기근이 오고있다고 한다. 참 기근이란 마실 물이나 먹을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 수 없는 때라고 한다. 하나님(말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타락한 사회는 결국 망하고 만다는 뜻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섯째 환상은“무너지는 성전”이다. 아모스는 성전이 붕괴되고 민족이 전멸되는 참담한 환상을 보며 넋을 잃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성전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제도적이며 형식적인 예배행위부터 약자들을 착취하고 자기 이익들만 늘리려는 자들이 아무리 살진 짐승이나 예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린다해도 하나님은 이를 받지 않으시고 심판하신다는 엄한 경고다.

그러나 예언자 아모스는 진노의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말한다. 하나님은 잘못한 것을 징계하지만 결국은 자기의 백성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희망의 멧세지로 예언을 마친다.

“그 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그래서 에돔 족속 가운데서 남은 자들과,
나에게 속해 있던 모든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하겠다.
이것은 이 일을 이루실 주의 말씀이다.” (암 9:11,12)

25. 아모스와 아마샤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을 예언하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일어나서 아모스를 왕에게 고발한다. 아마샤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아마 당시에 궁궐에서 왕을 보좌하고 있었거나 혹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벧엘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있었던 것같다. 아마샤는 왕에게 보고하기를, “아모스는 여로보암 왕은 칼에 찔려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사로잡혀서, 이스라엘을 떠나 타국으로 끌려가리라고 선동합니다. 그러니 즉시 아모스를 잡아서 처벌을 하라고 권면한다. (암7:11)

그리고 직접 아모스에게도 말하기를, “선견자야, 살아져라. 유다 땅으로 도망가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을 빌어 먹어라. 다시는 벧엘(하나님의 집)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말아라. 이곳은 임금의 성소요, 왕실이다.”(암7:12,13). 아마샤는 전형적인 직업예언자 혹은 제도적인 종교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자 아모스는 대답하기를,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혹은 아들)도 아니다. 나는 가축을 키우며, 들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다. (암 7:14,15)

그리고 아마샤의 잘못과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너는,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너는 나더러 이스라엘을 치는 예언을 하지 말고,
이삭의(이스라엘) 집을 치는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네가 바로 그런 말을 하였기 때문에,
주께서 이렇게 말씀 하신다.

네 아내는 이 도성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은 칼에 찔려 죽고,
네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차지하고,
너는 사로잡혀 간 그 더러운 땅에서죽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꼼작없이 사로잡혀
제가 살던 땅에서 떠날 것이다.” (암7:16,17)

왕이나 권력자에게 쓴 소리보다 기쁘게하는 예언을 하는 거짓예언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신학자는, 참예언자와 정치 지도자와의 관계를 “창조적인 긴장관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은 예언자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현실을 바로 보고 비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예언자가 생명의 위협까지도 무릅쓰고 바른 소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주변에 있는 나라들; 다마스쿠스(아람), 가사(불레셋), 두로(페니키아), 에돔, 암몬, 모압, 남왕국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다. 이들은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열강들이었다.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첫째는 무정한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다. 한때 강하고 부유 하다고 해서 약한 이웃 나라들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것을 하나님은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우주적인 심판자임을 알리는 것이다. 우주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브라함부터 계속해서 강조해온 사실이다.

1855년 고고학자들이 모압땅에서 멧사의 석비를 발견하여 해독했다. 그 내용은 본래 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땅을 빼았겼다가 다시 회복했다는 것이다. 좀더 보면 모압사람들이 그모스신을 섬겨오다가 그모스신을 버렸으므로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그모스신을 섬기자 나라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기원전 9세기 중동의 역사적 사실과 선지자들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24. 정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

아모스는 예언자의 양심으로 세상을 보았다. 특히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살폈다. 예언자의 양심이란 하나님의 마음(눈)으로 현실을 보는 것이다. 아모스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이스라엘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고 부자와 가난한자가, 그리고 자유인과 노예가 서로 평화롭지 못하게 함께 살고 있음을 보았다. 법정에서는 권력이나 뇌물로 인권이 무시당하고 올바르지 못한 재판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시장에서는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악덕 상인들이 저울 추를 속이고 부정하게 거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권력자와 부자들은 어떻게하면 더 이득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외친다.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켜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 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모스 2:6,7)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빚때문에 종이된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하여 빚을 얻었다. 그러나 빚을 제때 값지 못하자 빚은 또 다른 빚을 얻어야 했고, 또 높은 이자까지 물게하여 가난한자는 결국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빼았기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재산이 없어지면 결국 자기 자신이나 자녀들을 종으로 팔 수 밖에 없었다. 부자들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혹독하게 부렸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뉠때 남왕국 유다는 다윗왕조의 전통과 예루살렘 성전의 정통성을 강조했으나,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었음을강조하고 동족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새 나라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신명기 15장 7-8절에, “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는 땅의 어느 한 성읍 가운데서 가난한 친족이 살고 있거든, 너희는 그를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지 말아라. 그 가난한 친족에게 베풀지 않으려고 너희 손을 움켜 쥐지 말아라. 반드시 너희 손을 그에게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라.” 또 계약의 책( 출애굽기 21장-23장)에서,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가난하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너희는 그에게 빚쟁이처럼 재촉해서도 안되고, 이자도 받아도 안된다.”고 했다(출애굽기 22:2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겉으로는 정의롭게 사는척 했지만 사실은 무자비한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의로운 사람들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했다고 아모스는 고발한다.

또한 부와 권력을 쥐고 있던 상류층은 신앙과 생활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았다. 그들은 자부하기를 자기들은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안식일이나 절기때가 되면 성전에 모여 예배와 감사제를 드렸다. 그들은 성전에서 “전당으로 잡은 옷을 제단 옆에 펴놓고는, 그 위에 눕고, 벌금으로 거두어 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했다(암 2:8)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가?

이것을 보는 예언자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너희가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아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여라… (암5:14,15)"

선을 사랑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을 적극적인 사랑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하나님),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물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암5:21-23)

헛되고 거짓된 예배를 더 이상 드리지 말고 진실되게 살라고 외친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암 5:24)

23.드고아의 목자 아모스

10여년 전에 마세다 성채가 있는 유대광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그곳은 낮은산과 언덕들, 그리고 바위와 모래가 덮여 있는 메마른 곳이었다. 그때 우리를 안내하던 유대 안내원이 갑자기,“여러분, 광야를 보고 무엇을 느끼십니까? 유대인들은 광야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여기에서 무엇을 심거나 거둘수가 있나? 광야는 예언자말고는 아무것도 날 수가 없다.여기에는 사막에서만 자라는 조악한 풀이나 가시덤불 외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가 없읍니다.그런데 한가지 예외가 있습니다.그것은 예언자입니다.유대광야는 예언자를 생산하는 곳입니다.”

과연 광야는 메마른 곳이었다.일년 내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다. 낮에는뜨거운 태양이 거친 대지를 내려 쪼이고 밤에는 어두움의 깊은 침묵만이 천지를다스린다.낮에는 해가, 밤에는 별들만이 반짝 거리는 곳이다.광야의 일상은 인간의 문명과는 너무나 절연된 세상이다. 이 장엄한 우주의 엄위 아래서는, 인간의 문명이나 도시같은 것은 졸아들 수밖에 없고, 인간은 초라한 무력한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대신 이런 곳에서 도시나 농촌에서 찾을수가 없는 신비한 영성이있다.즉 창조주의 마음을 알 수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창조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모스는 모세 이후 약 500여년이 지난 뒤 기원전 8세기 중엽에 유대의 동쪽 , 사해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드고아에서 양을 치다가 예언자가 되었다.당시 남왕국 유다의 왕은 웃시야였고, 북왕국 이스라엘 왕은 여로보암( II세 이었다. 아모스는 비록 유다에서 예언자가 되었으나, 북왕국의 사마리아와 벧엘에서 예언활동을 했다.

아모스는 외롭고 거치른 광야에서 양들을 돌보면서, 옛날 모세가 경험했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그때 경험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산을 만드시고,
바람을 창조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것을 사람에게 알리시고,
여명을 어둠으로 바꾸시고,
땅의 높은 곳을 밟고서 걸어다니시는 분,
그분의 이름은‘주 만군의 하나님이다.” (아모스 4:13)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풍요했다. 이유는 당시 주변의 강대국들이 자국의 팽창과 번영을 위하여 서로 갈등하고 있었음으로 미처이스라엘을 침략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있었기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없고 일시적이지만 평화로운 시절이 계속되었다. 여로보암왕은 이때를 이용해서 영토를 넓히고,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왕의 길”(무역을 하는 대상들이 다니는상업적인 길)을 장악하여 경제적으로 풍요하게 살고 있었다.또한 백성들은 당시정치지도자들이 가르치는대로 이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고 살았다.

그러나 이러한 부유함은 왕과 권력층들만이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좋은 집에 살며 호의호식하며 지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부자들은 오히려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마리아와 벧엘, 길갈 같은 곳에 아름다운 성전들을 짓고, 안식일과 절기때 마다 형식적인 제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드렸다.

왜 아모스는 남왕국 유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활동을 했을까?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측하건대, 아모스는 양을 기르는 목자였기에 양털을 팔려고 자주 이곳 도시들을 방문했고 그 때마다 그들의 사치스럽고 부조리한 모습들을 보고 정의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면 예언자 아모스가 무엇을 보았을까? 북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22. 회개하는 니느웨 사람과 하나님의 자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요나는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니느웨 도시로 간다. 니느웨도시는 대단히 큰 성이어서 도시를 둘러쌓고 있는 성벽만 사흘길이나 되고 수 십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요나는 우선 하루길을 가면서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40일 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웨첬다.

그러자 니느웨이 사람들은 요나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즉시로 금식을 선포하고 베옷을 입고 회개운동이 일어난다. 심지어 이 소식을 들은 임금도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잿더미위에 앉아 회개하며, 전 국민뿐 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금식하며 폭력을 그치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또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한다.

앗시리아 사람들은 예언자 요나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지은 죄를 뉘우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니느웨를 멸망시키려고 하던 마음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내리시지 않기로 하신다.

요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매우 못마땅하여 불같이 화를 낸다. 요나는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의인은 복을 받아야하고 악인은 벌을 받아야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니느웨나 앗시리아는 마땅히 멸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셔서 니느웨를 구원하시려고 하자 하나님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옳지 않다고 항의를 한다.

우리는 흔히 예언자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같을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기서 발견한다. 요나는 자기가 처음에 니느웨로 오지 않고 다시스로 갔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든가를 말한다. 즉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스러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제는 제발 내 목숨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요나서 4:2,3)

그러자 하나님이 요나에게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하고 책망하신다. 그리고 요나에게 깨달아 알도록 교훈을 주신다. 그때 마침 요나는 니느웨성 동편 언덕에 임시로 해빛을 가리우는 초막을 세우고 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박넝쿨(어떤 번역에는 잎이 넓은 아주까리 나무라고 했음)하나가 자라서 요나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요나는 박넝쿨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다음날 동이 틀 무렵, 벌레 한마리가 나와서 박넝쿨을 쏠아버려서 박넝쿨이 말라버리고 만다. 그래서 해가 뜨자 뜨거운 해빛이 요나의 머리에 비치게되고 마침 무더운 동풍이 불어오자 요나는 너무 더워서 기력을 잃고 불평하기를,"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 박 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가 대답하기를,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요나서 4:9-11)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묵묵부답이었다. 하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온 민족과 온 우주의 하나님이 되심을 요나서를 통하여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의로운 사람들뿐 아니라 죄인들까지 사랑하시고,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분임을 알게 하신다.

요나서는 약 300년 후에 문서예언자들에 의해 예언서에 편입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혜자들(랍비들)은 대속죄일에 요나서를 읽으며 하나님은 죄인들도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라고 한다.

21.희망의 예언자 요나

어렷을 때 주일학교 성경공부시간에 들은 “고래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예언자”로 알려진 요나의 이야기를 배운다. 요나는 기원전 8세기 경, 북왕국 여로보암 2세때,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다. 그는 아밋대의 아들이이라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것이 없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는 권위있는 예언자로써 존경을 받았으며 우주적인 하나님의 자비와 섭리를 가르쳐준 위대한 예언자중의 하나다.

요나서는 모두 4장으로 된 짧은 책이다. 내용도 단순하다. 다른 예언서들처럼 예언의 말씀이 길게 기록되지도 않았다. 다시말하면, 요나나 그의 제자들이 기록했다는 증거도 없다. 다만 제3자가 요나의 선교 이야기를 기록한 것 같다. 그래서 신학자들 중에서는 이 책은 후세에 (기원전 3세기나 기원 후 3기경) 이스라엘의 지혜자나 랍비들에 의해 기록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첫 성전이 있었던 때( 기원전 500년 이전)기록 되었다고 주장한다.

내용은 당시 이스라엘이 미워하던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야기다. 그런데 흥미있는것은 요나가 니느웨에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듣고 순종하지 않고 멀리 도망하려다가 물속에 빠져서 큰 고기에게 먹혀서 삼일간 고생하면서 회개하고 결국 니느웨이로 가서 멸망할 도시를 구원한 이야기다. 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도망했을까? 당시 앗시리아와 이집트는 중동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들이었다.

앗시리아는 지금의 이란과 이락과 아라비아 반도를 다스리는 왕국으로 수도는 니느웨였다. 앗시리아는 가장 포악한 나라로 알려젔다. 요나와 같은 때 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했던 나훔 예언자는 앗시리아를 “거짓말과 강포가 가득하고 노략질이 끊어지지않는 나라”며 그 수도 니느웨를 “피의 도시”라고 불렀다(나훔서 3:1. 더구나 앗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 끼어서 고생하던 이스라엘로써는 앗시리아가 속히 망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또한 니느웨는 예언자를 잡아 죽이는 나라일 뿐 아니라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가망성이 전혀없는 도시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요나는 도망하기로 결심했다.

요나는 이스라엘에서 먼곳으로 가서 숨어있으면 하나님이 찾지 못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마음에서 항구 욥바에 가서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다시스는 당시 지구의 끝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요나의 착각이었다. 배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서 요나가 탄 배는 큰 풍랑을 만나게 된다. 선원들은 풍랑을 피해 항해를 하려고 했으나 폭풍을 뚫고 갈 수가 없었다. 점점 파도가 커지고 배가 파선하게 되자 배를 가볍게하려고 짐들을 바다에 버리고 또 함께탄 사람들을 모두 불러서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기도하라고 요청한다. 이때 요나는 배의 제일 밑 선실에 내려가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급해진 선원들은 함께 탄 사람들 중에 필연코 꼭 죽을 죄인이 있어서 이런 난리가 났다고 생각이 들어 모두 모이게하고 제비를 뽑아 죄인을 찾기로 한다. 결국 모두 모여서 제비를 뽑은 결과 요나가 뽑힌다.

선장은 요나에게, “ 우리에게 말하시오. 누구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내렸소?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길이오? 또 어느 나라 사람이오? 하고 묻는다. 요나는 대답하기를,“나는 히브리(이스라엘)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 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그리고 계속 말하기를 “자기가 주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고 고백한다(요나서 1장) 그러자 사람들이 요나가 예언자임을 알고 그를 살려보려고 했으나 파도는 더 커지고 어찌할 수 없어지자, 어떻게하면 좋은가? 하고 묻는다. 요나가 말하기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잠잠해 질 것이오. 바로 나 때문에 이 태풍이 당신들에게 닥쳤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결국 뱃사람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다. 그러니 폭풍이 멈추고 바다가 조용해 젔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 한마리를 미리 준비해 두셨다가 바다에 빠지는 요나를 삼키게 해서 요나는 죽지 않고 사흘간 고기 뱃속에서 있다가 다시 뭍으로 나오게 된다. 보통 이 고기를 고래라고 한다. 요나는 사흘간 고기 뱃속에 있으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기도의 내용은(요나서 2장) 자기를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한편의 시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 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스올 한가운데서 살려달라고 웨첬더니, 주께서 나의 호소를 들어주셨습니다….. 주의 눈 앞에서 쫓겨났어도, 내가 반드시 주님계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습니다. “(요나서 2:2-4) “땅이 빗장을 질러 나를 영영 가두어 놓으려 했습니다만, …. 주께서 그 구덩이 속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셨습니다. 내 목숨이 힘없이 꺼저 갈 때에, 내가 주님을 기억하였더니, 나의 기도가 주께 이르렀습니다.”(요나서 2:6,7) “”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주께 희생제물을 바치겠습니다. 서원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겠습니다.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요나서 2:9). 요나를 삼켰던 고기는 사흘만에 요나를 육지에다가 뱉어 냈다.


20. 제2의 모세,예언자 엘리사



마치 여호수아가 모세의 제자인 것같이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다. 그는 본래 부자였다. 엘리야는 소 12겨리로 밭갈고 있던 엘리사를 불러 제자로 삼았다. 엘리사는 10여년간 엘리야와 함께 지내면서 예언자의 수련을 받았다. 당시에 엘리야는 선견자들( 지금의 신학생들)을 모아 훈련을 시켰는데, 엘리사는 그 중의 하나였던 것같다.

엘리사가 얼마나 엘리야를 본받으려고 했는지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엘리야가 승천하기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엘리사는,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어떤 번역에는 “영력”) 제가 갑절로 받기를 원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엘리야는, “너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주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보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들 두 사람을 갈라 놓더니,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가 이 광경을 보면서 외치기를,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 하고 웨첬다. 그리고 다시는 엘리야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왕하 2:9-12)

엘리사는 엘리야가 떨어뜨리고 간 것옷을 가지고 돌아와 드디어 스승 엘리야를 이어 이스라엘의 국가적 예언자로 일했다. 그는 사마리아와 벧엘 , 길갈, 갈멜 등을 돌면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신앙이 바르게 가도록 도왔다. 그는 길갈에 예언자들을 훈련하기 위하여 신학교를 세우고 가르쳤다. 그는 기적을 많이 행했던 예언자로 알려젔다. 특히 가난한 신학생들을 경제적으로 도왔다는 이야기나 빵 20개로 100명을 먹인 이야기, 독이든 물이나 국을 깨끗하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예언자를 잘 대접하던 한 가정의 아이가 죽었을 때 다시 살려주었던 이야기 등이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다. (열왕기 하 2장부터 6장까지)

그러나 그의 대표적인 기적은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준 이야기다.(왕하 5:1-27) 당시 시리아는 이스라엘보다 강한 나라였다. 그래서 자주 이스라엘을 침입하기도 하고 또는 여러가지 트집을 잡아 조공을 요구하기도 하며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한번은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시리아의 군사령관으로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아만이 나병에 들었다. 시리아에서는 고칠 수가 없었다. 마침 이스라엘에 나병을 고칠 수있는 예언자 엘리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왕이 나아만과 함께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보낸다. 즉 이스라엘에 나병도 고쳐주는 예언자가 있다니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이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왕은 놀라서 어쩌면 좋은가하고 참모들과 의논한다. 즉 이것을 빌미로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앞에 도착하자,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번 씻으면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릴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빌강(둘 다 시리아에 있는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하며 분을 참지 못한 나아만은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한 지혜로운 부하가 말하기를,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읍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충고를 들은 나아만이 마음을 돌려 예언자 엘리사가 시킨대로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몸을 씻었더니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병이 나은 나아만은 너무 기뻐서 엘리사에게 감사하며 가지고 왔던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선물받기를 극구 사양한다. 그러자 나아만은 대신 고국에 돌아가 하나님에게 제물을 드릴 제단을 쌓을 흙을 좀 얻어가지고 돌아간다. 그러나 엘리사의 시종 계하시는 뒤에 나아만으로부터 돈 두달란트와 옷 두벌을 몰래 받앗다가 엘리사의 책망을 듣고 나병에 걸린다.

엘리사는 애국적인 예언자였다고 랍비들은 말한다. 이스라엘과 모압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마실 물이 없어 고생할 때,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엘리사는 거문고 타는 사람을 불러 음악을 들으며 예언을 해서 이스라엘군이 물을 얻게 도왔을 뿐 아니라 전쟁을 이길 수 있도록 정략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한번은 시리아의 대군이 사마리아성을 웨어쌓고 공격할 때, 모든 사람들이 적군을 보고 벌벌떨며 두려움에 쌓여 있을 때, 엘리사의 시종이 이를보고 어쩔줄을 모르고 엘리사에게 , “큰일 났습니다. 스승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말하자,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편에 있는 사람들 보다는 우리의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다음에 엘리사는 기도하였다. “주님, 간구하오니, 저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셔서,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자 그 시종의 눈이 뜨여 바라보니, 온 언덕에는 불 말과 불 수례가 가득하여, 엘리사가 있는 성을 두루 웨어싸고 있었다. 엘리사가 적군들이 눈이 멀도록 기도하자, 그들은 눈이 멀었다. 그래서 갈길을 몰라 헤매는 그들을 성안으로 안내한 뒤 다시 눈을 뜨게 했다. 이때 이스라엘 왕이 이것을 보고 적군을 모두 죽이려고 하자, 엘리사는 이를 말리며, 대신 잔치를 베풀어 그들을 잘 대접한 뒤 자기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되자 이스라엘 왕이 문병왔다. 그때 엘리사는 왕에게 활을 쏠 준비를 시킨다. 그리고 왕의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그런다음 동쪽 창문을 열고 활을 쏘게 했다. 엘리사는 말하기를, “쏘십시오.” 왕이 화살을 쏘자, “주의 승리의 화살입니다.시리아를 이길 승리의 화살입니다.” 그리고 다시 땅을 향하여 화살을 쏘게 하자, 왕은 세번 화살을 쏘았다. 그러자 엘리사는 왕이 세번 쏘고 그만 두는 것을 보고 왕은 시리아와 싸워 세번 이길것이라고 예언한다.

예언자 엘리사는 60여년간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했다. 스승인 엘리야를 본 받아 이스라엘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한 예언자다. 그러나 엘리야의 그늘에 가려 크게 돗보이지는 안했다. 그러나 엘리야와 달리 성격이 부드럽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잘 이루는 예언자였다.

?19.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


아합왕의 궁궐밖에 아름다운 포도원이 하나 있었다. 이 포도원의 주인은 이스르엘에 사는 나봇이었다. 아합은 이 포도원으로 자기의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나봇에게 이 포도원을 자기에게 팔라고 했다. 그러나 나봇은 이를 거부했다. 이유는 이 포도원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이것을 기업이라 불렀다) 이기에 팔 수 없다고 했다. 아합은 이 일로 인해서 몹시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이세벨이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으로 인해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말하기를,

“당신은 현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이 아니십니까? 일어나셔서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좋게 가지십시오.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임금님의 것으로 만들어 들이겠습니다.” 했다.(왕상 21:1-7) 이세벨은 음모와 술수가 뛰어난 악한사람 이었다.

그런 다음에 이세벨은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나봇이 살고 있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그 내용은,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게 하시오. 그리고 건달 두 사람을 그와 마주 않게 하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하게 한 뒤에,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서 죽이시오.” 그래서 성읍에 살고있던 원로들과 귀족들은 편지에 써있는대로 하고, 나봇이 죽었다고 이세벨에게 알렸다( 왕상 21:8-14) 당시 법에는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는 사람은 증인 두 사람 이상만 있으면 공개적으로 사형을 받게 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건달이란 돈이나 권력에 쉽게 넘어가는 거짓된 사람을 말한다.

이세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들 듣고, 즉시 아합에게 말하기를, “일어 나십시오. 돈을 주어도 당신에게 넘기지 않겠다고하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 하십시오. 나봇을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일어나서,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내려 갔다.(왕상 21:15,16)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당장 엘리야를 부르신다.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내려갔으니 너는 사마리아에가서 아합에게 내 말을 전하라고 하신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불같이 아합을 찾아간다. 마침 이세벨의 음모로 자기의 땅이 된 나봇의 포도원을 보려고 온 아합과 아합의 죄를 책망하려고 달려온 엘리야가 서로 만나자 아합이 먼저 말한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 왔느냐?”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또 찾아 왔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목숨을 팔아 가면서까지,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에게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너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는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씨도 남기지 않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없애 버리겠다. 네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해서 나를 분노하게 하였으니, 내가 네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되게 하겠다.”

또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또 이세벨을 놓고서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의 주검을 찢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은,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찢어 먹을 것이고, 성 밖에서 죽으면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왕상 21:17-24)

이 책망을 들은 아합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빈다. 하나님은 그런 아합을 보시고 아합의 가문에 내리기로 한 벌을 아합이 죽을 때까지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이스라엘은 시리와와 전쟁하게 되었다. 싸우러나간 아합은 적군이 우연히 쏜 화살을 맞고 부상을 당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중에 병거 가운데서 죽었다. 아합이 죽은 병거에는 아합의 상쳐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닦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싸움이 끝난 뒤, 아합이 탔던 전차를 사마리아의 연못에서 씻을 때, 개들이 그 피를 핥았다.(왕상 22:29-40)

그 후 이세벨은 예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 입성할 때, 성위에서 내려보고 있다가 이세벨을 미워하던 내시들이 밀어내쳐 떨어저서 죽었다. 떨어저 죽을때, 피가 벽과 말에게까지 튀었고, 예후가 탄 말이 이세벨의 주검을 밟고 지나갔다. 그 후 장사지내려고 시체를 찾았으나 이미 개들이 먹어버리고 다만 해골과 손발밖에는 없었다.(왕하 9:30-37) 그리고 아합의 아들 70명은 하루 아침에 몰살을 당하고 아합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예후와 그의 부하들 손에 모두 죽었다.


18.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의 대결


엘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였다. 당시에 북왕국은 오므리의 아들, 아합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오므리를 닮아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 멋대로 왕노릇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웃나라 시돈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자 그는 더욱 더 악한 왕이 된다. 시돈나라는 바알신을 열심히 믿는 나라일뿐 아니라 바알교를 전하는데 앞장선 나라였다. 아합과 이세벨은 열심히 바알을 섬길뿐 아니라 사마리아에 바알과 아세라 신전을 세우고 백성들로 예배드리게 했다. 대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몹시 핍박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엘리야를 부르셨다. 엘리야의 가문이나 성장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다만 엘리야는 길르앗의 디셉에 살았다고 한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데 광야에 가까운 곳이고, 주민들은 주로 조상들이 하던대로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야도 짐승을 돌보는 목자였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왕과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며, 잘못하고 있을때,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언자 였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앙이 위기에 빠젔을때 이를 지켜낸 위대한 예언자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상태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또한 바알도 섬기는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제설혼합주의적인 신앙(Syncretism)”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하나님이나 바알이나 아스다롯이나 모두 같은 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바알 예언자들은 누구던지 가나안땅에 들어오면 바알을 믿어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바알은 생산과 자연의 능력을 조정하는 신이라고 믿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가나안에서는 바알을 “비”의 신이라고도 불렀다. 과연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하나님 만을 의뢰하지 않으며 신앙적으로 타락해도 해마다 풍년이 들고 모든 것이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알의 예언자들은 이것은 바알의 능력으로부터 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생명과 자연이나 풍요의 근원되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드디어 예언자 엘리야는 바알 신앙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는 아합왕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겁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

예언자 엘리야의 말이 끝나자마자, 과연 이스라엘에는 가뭄이 시작되었다. 설마 긴 가뭄이 계속될 줄 믿지 않던 사람들도, 가뭄이 계속되자 놀라기 시작했다. 푸른 초장이 노란 색으로 변하고, 샘물과 시냇물들은 마르기 시작하고 짐승들은 목말라 헐덕이기 시작했다. 왕은 바알의 제사장들을 불러 대대적인 기우제를 드리라고 명령한다. 이곳저곳에서 바알에게 기우제를 드렸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가뭄이 계속되자 할 수 없이 왕은 엘리야를 찾았다. 그러나 엘리야를 만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돈의 사렙다에 보내어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있었다.

가믐이 든지 삼년이 되자, 드디어 엘리야는 참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줄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엘리야가 왕 앞에 나타나자 아합왕은 말하기를,

“그대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인가?”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엘리야는 왕에게,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과 임금님 아버지의 가문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주의 계명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십니다.”( 왕상 18:17,18)하고 왕의 잘못을 책망한다.

그리고 바알이 거짓신인것을 보여준다. 엘리야는 왕에게 백성들과 바알신에 속한 제사장들을 갈멜산에 다 모이도록 했다. 그리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과 바알 중에 어느 신이 참 신이고 어느 신이 거짓신인가를 알게하자고 요청했다. 왕도 왕비도, 바알의 예언자들도, 백성의 지도자들도 모두 동의한다.

드디어 갈멜산에 백성들이 모였다.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북서쪽에있는 낮으막한 산이다. 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평평한 곳이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웨치기를, “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왕상 18:21)

그리고 제단 둘을 쌓게하고 소 두마리를 잡아 각기 제물로 올려놓고 기도해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는 신이 참 신이고 그를 섬기자고 했다. 먼저 바알의 제사장들에게 기도하게 했다. 8백명이 넘는 바알제사장들은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응답이 없자,

이번에는 일제히 소리를 지르고 펄펄뛰면서, 심지어 자기 몸을 칼로 찌르며 (이것은 바알예배의 한 형식이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기도를 했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기척도 없었다.

이들을 보고 조롱하던 엘리야는 드디어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12돌(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을 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돌보신 주 하나님, 주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주님의 종이며, 내가 오직 주의 말씀대로만 이 모든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저들이 알게하여 주십시오. 주님 응답하여 주십시오. 응답하여 주십시오.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님이 주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열왕기상 18장 36,37절)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과 나뭇가지들과 돌과 흙, 모두를 태웠다. 바알과의 싸움은 끝났다. 백성들은 업드려서 말하기를, “그분이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주 하나님이시다!” 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 지금도 유대인들은 “욤 키퍼”즉 참회의 절기예배때나 전쟁을 할때 이 기도문을 외운다고 한다) 그리고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죽였다.

그러나 이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비가 내려야 했다. 그는 한 종을 데리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비가 내리기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기도하는 동안 종에게 구름이 떠 오르는지 바다쪽을 살펴보라고 한다. 그러나 바다쪽을 살피고 온 종은 아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엘리야는 다시 기도를 한다. 그때마다 종은 앞으로 나가서 바다쪽 하늘을 살펴보고 와서 보고한다. 그러다가 일곱번째 기도를 마치자, 종이 와서 보고하기를, 바닷가 하늘에 손바닥만한 구름 한점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러자 엘리야는 사람들에게 비가 내릴것이니 모두 산을 내려가라고 한다. 과연 조그만 구름조각이 삽시간에 시커멓게 온 하늘을 덮고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왕상 18:39-45) 삼년만에 내리는 가믐의 단비!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다시 믿게 되었다.

한편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은 이 소식을 듣고, 엘리야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한다. “네가 (바알의)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왕상 19:2) 예언자 엘리야도 자기를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위협에 놀라 유대 남쪽 사막근쳐의 브엘세바로 도망해서 홀로 앉아,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하고 지친 생을 마치려고 했다. 그러자 천사가 물과 음식을 주며, “일어나서 먹어라. 갈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엘리야는 일어나 음식을 먹고 힘을 얻은 후, 밤낮 40일을 걸려서 호렙산으로 갔다.(왕상 19:3-8)

17. 국가의 분열과 예언자

솔로몬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르호보암은 비 정상적인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르호보암은 많은 의붓어머니들( 솔로몬의 후궁들과 첩들)과 의붓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 왕궁은 많은 여자들의 시기와 질투와 음모 등으로 가득했고 이방나라에서 온 왕비들이 세운 신전들과 우상숭배 등으로 르호보암은 하나님에 대해서 배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르호보암의 어머니 나마는 밀곰을 섬기는 암몬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계약(모세의 법)에 대해서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즉 모세의 정신을 이어받은 큰 나라의 지도자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기원 전 925년에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 백성들은 솔로몬왕의 잘못된 일들, 즉 무거운 세금과 타락한 생활 등을 반복하지 않도록, 왕에게 짐을 덜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오히려 짐을 더 무겁게 하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왕권을 더욱 더 강화하는 것이 통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같다. 결국 백성들의 형편을 잘 몰랐다.

그러자 북쪽지파들에서 불길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받을 몫이 무엇인가? 이새의 아들에게서는 받을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저마다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가라.다윗아, 이제 너는 네 집안이나 돌보아라.“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은 저마다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열왕기 상 12:16)

북쪽의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새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했다. 그리고 남은 두 지파 (유다와 벤야민)만이 다윗의 전통을 이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나라 이름은 유다라 했다. 결국은 사울이나 다윗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통일되었던 이스라엘은 둘로 나누어젔다. 랍비들은 나라가 나누어진 이유를 솔로몬이나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모세의 법대로 교육받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모세의 법이란 이웃에게 정의와 자비를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예언자가 필요하다. 나라가 갈라지자 르호보암과 유다의 지도자들은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다시 통일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예언자 스마야를 시켜, 유다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벤야민의 모든 가문들과 그 남어지 모든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한다.

“나 주가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된것은, 내가 시킨 것이다. 너희는 올라가지 말아라. 너희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언자 스마야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그만두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남북왕국의 기본 구성은 달랐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계속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비교적 부유하고 더 세속적이었다. 가나안과도 좀더 문화적으로 교통이 빈번했다. 결과적으로 쉽게 타락헀다. 반면에 남왕국 유다는 비교적 단순하게 살았다. 그들은 광야가 아닌 산악지대에서 살고 조상들처럼 주로 양치기나 가축을 기르며 살았다. 또한 성전을 지키며(레위족속이 돌보았음) 가나안의 영향을 덜 받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다.

두 나라는 세월이 갈 수록 점점더 멀어졌다. 점차적으로 나누어져, 외국과 각기 다르게 동맹을 맺기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과 북이 서로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피흘리는 전쟁을 치르기도하고 서로 미워하며 불행하게 살았다. 결국 점점 더 약한 나라들이 되었다. 동시에 남북의 국민들은 모두 고통을 당하며 살았다. 북왕국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선택한 여로보암왕이 자기들이 배반한 르호보암왕보다 낮지 못한 것을 알았다.

특히 북왕국은 주로 농사를 지었으므로 가나안의 농경신의 영향을 쉽게 받았다. 점점 바알종교로 기울어졌다. 즉 자연종교적인 이해가 그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적은 씨앗이 싻이 터서 크게 자라고, 동물들이 종족을 버식시키는 일들을 항상 신비하게 생각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모든것을 창조하고 주관한다고 믿으나, 자연종교는 많은 신들이 있어서, 이 모든것을 만들고 다스린다고 이해해서 많은 신들을 섬기며 살았다. 그러므로 계절과 결실들에 따라서 , 특히 기근이나 병충해 같은 것, 바알신의 조화를 믿으며 살게 되었다. 이는 모세가 엄격히 금했던 길로 가게 되었다.

한편 북왕국의 왕위는 항상 불안했다. 약 50년간 두 왕조가 바뀌고, 여러 왕들이 바뀌었다. 주로 오므리 왕조가 계속되었다. 특별히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시돈 여자 이세벨과 정치적인 결혼을 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가 섬기던 페니키아의 바알신을 섬기도록 강요했다.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 “멜카트”를 세웠다. 450명의 바알신전 사제들과 400명의 아스다롯의 여사제들을 데려다가 섬기게 했다(열왕기상 16:33) 아합은 앞장서서 하나님 대신 바알신을 섬겼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바알신 섬기기를 거부했다. 특히 예언자들은 강하게 거부했다. 예언자들은 무리지어 광야를 떠돌며 백성들을 가르쳤다. 왕비 이세벨은 이들을 찾아 무참히 죽였다. 결국 많은 예언자들은 순교하거나 유다로 도망했을 것이다. 이세벨과 바알의 추종자들을 대항해서 누가 싸웠나? 당시 이스라엘에는 오직 한 사람이 있었다. 한사람 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가 누구일까?

16. 왕과 예언자(2)


솔로몬왕은 예언자들이 목적하는 길과는 다르게 출발했다. 열왕기 상 3장 3절에, “솔로몬은 주를 사랑하였으며,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랏으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고 하였다.

솔로몬은 다윗의 길을 가며 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성전건축은 솔로몬의 의무요 또한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일찌기 어버지 다윗이 성전지을 마음을 품고 준비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막고 자기에게 짓게 하였다고 생각했다.(열왕기 상 8:17) 솔로몬도 하나님이 반드시 성전안에 계시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축하예배를 드릴 때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땅 위에 계시기를,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열왕기 상 8장27절)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곳으로 이해하고, 솔로몬은 정성을 다하여 성전을 건축하였다. 그는 계속 기도하기를,

“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의 종이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오늘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으면서 들이는 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열왕기 상 8장 28절)



성전은 다윗과 솔로몬이 바라던것 이상을 성취했다고 볼수 있다. 성전은 거룩하고, 유대인들의 역사의 영원한 상징이며, 다윗의 도성은 거룩한 도시가 되었고, 시온산은 거룩한 산이 되었다.

그러나 왕국이나 성전은 인간적인 기구요, 잘못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만약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전혀 의도하지 않게 잘못 사용될 수 있다. 즉 왕국은 비록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고, 성전은 거룩하고 아름답게 건축되었으나,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왕국은 점점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고, 성전제사(예배)는 종교적인 형식에 불과하게 되었다.

제사장들은 성전이 아름답게 건축되자, 점점 예배의식에 바빠서 사람들을 돌보지 못하게 되었고, 동시에 왕에대한 충고나 책망대신, 제사장들의 권위는 성전관리나 제사에만 제한되고 말았다.

솔로몬은 그 외에도 큰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웃나라들과 정략적인(정치적인) 결혼을 하게 되엇다. 이집트의 바로의 딸 외에도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히위 여자들과 결혼하고, 또한 후궁 700명과 첩 300명을 두었다고 한다.(열왕기 상 11:1-2)

그러나 그 대가는 엄청 컷다. 세월이 가고 솔로몬이 늙어가자, 왕비들은 옛날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우상종교들을 가져다가 섬기기 시작했다. 열왕기 상 11장 4절에, “솔로몬이 늙으니, 그 아내들이 솔로몬을 꾀어서,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열왕기 상 11장 7,8절에도, 소로몬은 예루살렘 동쪽산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그모스를 섬기는 산당을 짓고, 암몬 자손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록을 섬기는 산당도 지었는데, 그는 그의 외국인 아내들이 하자는 대로,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며,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왕국도 하나님의 법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대신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중노동에 끌려가고,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을 내야되었다. 이런 일이 외국의 왕에(정복자들) 의하지 않고 동족인 이스라엘 나라와 왕에 의하여 됐다는 사실이 비극이었다. 그들의 노동과 세금으로 궁궐과 공공건물들을 지었다. 백성들 중에서는 광산으로 끌려가 일해야 했고 왕을 위해 큰 배들을 짓게 되었다. 이미 왕국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어기고 백성을 학대하게 되었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지난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