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지혜로운 삶/한상휴의 예언자의 지혜(1)/2020년 12월>
목차

15. 왕과 예언자(1)/14. 사무엘과 사울왕/13. 예언자 사무엘/12.예언자(선지자)와 선견자/11. 요담의 우화 / 10. 기드온의 300명 용사/9. 여성 예언자 드보라/8. 여호수아와 가나안 점령 7. 교육자 모세/6. 율법의 전수자 모세(2)/5. 율법의 전수자 모세(1)/4. 예언자 모세(3) /3. 첫 예언자 모세(2)/2.첫 예언자 모세(1)/1.예언자의 조상 아브라함

15. 왕과 예언자(1)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든 일을 했다. 이집트를 나올때 바로를 찾아가서 이스라엘의 해방을 요구했다. 그리고 허락을 받자 직접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땅을 향해 갔다. 가는 도중에 물이나 양식등이 필요할 때 준비해 주었고, 적군이 처들어 오면 앞장서서 백성을 이끌고 싸웠다. 또한 가나안땅에 가까워지자 가나안땅에 들어갔을 때 일어날 문제들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이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모세는 이상적인 지도자였다. 그러나 모세는 세상을 떠났고 모세같은 지도자는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왕을 세워달라고 했다?

왕은 모세를 대신해서 백성을 지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당면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가 없었다. 왕은 백성들을 단합시켜 전쟁을 치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 도덕적으로 지도자는 될 수가 없었다. 비록 신앙적으로 훌륭한 왕도 있었으나 우주적이고 참 왕이신 하나님을 대신하는 왕은 될 수 없었다.

종교적인 지도자 중에 제사장이 있었으나 제사장은 예배드리는 의식에 전념해야 했다. 더구나 국가가 발전할 수록 제사의 의전(예배 드리는 절차나 방법)도 복잡해저서 백성과는 더 가깝게 할 수가 없었다.

예언자들은 계속 하나님 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간에 맺은 “계약(약속)”을 지켜나가도록 왕과 백성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동시에 예언자는 왕이나 왕국의 잘못을 찾아 이를 책망하는 존재가 된다. 예언자들은 때로 왕궁안에서 왕의 참모중의 하나로 일하기도 했다. 예언자들은 왕을 세울때 반드시 기름을 부어 세웠다(오므리 왕만 제외). 그러나 대부분은 왕과 충돌했다. 다시 말하면 왕들이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왕에게 바른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용기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약성경의 사무엘하에서부터 열왕기 상하에 사무엘의 제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즉 나단, 갓, 스마야, 미가야, 엘리야, 엘리사 같은 예언자들이다. 탈무드에는 그 외에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예언자들이 많았다고 본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왕에게 도전하여 충고와 책망을 했다. 예를 들면 나단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관계를 했을 경우 심하게 책망했으며, 엘리야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왕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처음 두 왕인 사울과 다윗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믿었다. 사울은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된 뜻을 끝까지 지키려고 애썼다. 보잘것 없는 군인들을 데리고 불레셋대군을 상대로 해서 싸우다가 자기 아들 요나단과 함께 길보아산에서 죽었다. 이스라엘은 그의 지휘밑에 단결하여 싸웠다. 비록 불레셋군을 완전히 물리치지는 못했지만 불레셋의 공격을 막고 뒤에 다윗이 승리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또한 백성들이 바알 우상을 섬기지 못하게 했다. 비록 사무엘과는 좋은 결말을 맺지 못했지만, 다윗은 자신을 참 왕이신 하나님의 도구로 믿었다. 밧세바의 일로 에언자 나단의 책망을 들은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이 인정한 후, “내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사무엘 하 12:13)하고 회개했다. 다윗은 나단과 갓에게 순종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후 성막에 돌아가 주 앞에 꿇어업드려 기도하기를,

주 하나님, 내가 누구이며 또 내 집안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나를 이러한 자리에 오르게 해주셨습니까?..”(사무엘 하 7:18).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고백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애썼다. 결국 불레셋의 위협을 물리치고 홍해로부터 유브라데스강까지 나라를 크게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나라를 부강하고 평화롭게 했다.?

다윗이 한 일 중에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기쁨으로 법궤를 옮겼다. 랍비들은 이것을 가장 아름다운 예배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다윗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고 가르쳤다. 다윗은 사무엘의 가르침을 따랐다. 사무엘이 염려한 것도 법궤가 잘못하면 우상처럼 되지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14. 사무엘과 사울 왕

사무엘의 뛰어난 지도력은 이스라엘에 오랫동안 평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무엘도 늙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은 사사로 일했으나 사무엘같은 좋은 지도자가 못 되었다. 결국 백성들은 다시 왕을 요구한다. 장로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사무엘은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모두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라.”(사무엘상 8:5-9)

사무엘은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고, 왕을 세울 경우 백성들이 부담해야 할 일들, 즉 세금을 내야하고, 젊은 이들은 징집되어 왕과 나라를 위하여 일해야 하고, 백성들은 왕의 종이 되어야할 것을 자세하게 일러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왕을 주시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곧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백성들은 듣지 않고 계속해서 왕을 요구한다. 사무엘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 신이시며 왕인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보다 강력한 왕을 원하고 있음을 알았다. 또한 사무엘은 왕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는 인간에 불과 하며, 왕도 제사장이나 사사같은 지도자 중의 하나라고 해도, 백성들은 끝까지 왕을 원한다. 장로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왕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사무엘은 차선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사울에게 기름부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운다. 그리고 사울 왕을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좋은 왕으로 만드는 일이 자기의 사명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알계된다. 즉 왕이 된 자나 왕을 지지하는 백성들의 생각은 사무엘과 달랐다. 즉 그들은 왕이 있으면 모든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는 세속적인 인기와 세력이 더 중요하고, 신앙이나 덕보다는 부나 권력을 더 좋와하는 것을 알게된다. 남은 일은 왕이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왕으로 지켜야할 길로부터 탈선하지 않고 바르게 가도록 보호하고, 인도하고, 감시하는 것이 자기가 할 임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울은 비극적인 왕이었다. 왕이 되기에 너무 젊었고, 또 백성을 다스려 본 경험도 없었다. 처음에는 무척 겸손하고 예언자의 말을 잘 듣고 지혜롭게 했다. 그러나 점차 자기를 돕는 예언자를 두려워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는 것을 질투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해서 인기가 올라가자, 자가가 잘나서 왕으로 선택된줄로 착각한다. 이것을 본 사무엘은 크게 실망한다. 특히 불레셋과의 전투를 시작할 때,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왕이 직접 제사를 드리는 잘못을 범하자, 사무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는다.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봐주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사무엘 15:22-23)

주: 이스라엘은 전쟁을 시작할 때, 반드시 제사장이 먼저 제사를 드리고 기도한 뒤에 했다)

13. 예언자 사무엘

사무엘이 태어날 때는 이스라엘에 대단히 위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선 그동안 이스라엘에 쫓겨서 사방으로 흩어져있던 가나안 원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공격할 경우 사사가 지파별로 혹은 이웃 지파들을 연합하여 적을 물리쳤다. 그러나 기원 전 11세기 후반부터는 이스라엘의 적들이 연합하여 조직적으로 공격하자 이를 대항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파별로 방어하던 일이 이제는 국가적으로 단결해서 싸워야 했다. 또한 사사나 제사장들의 지도력 만으로는 나라를 지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왕을 세우기 원하게되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도 드물었고, 계시(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사무엘상 3:1) 영적으로도 어두운 밤이었다.

“위급한 때” 는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 역사할 때가 되기도 한다. 사무엘은 이 때를 위하여 준비된 지도자였다. 그의 부모는 믿음이 깊었고 충성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무엘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무엘이 일생을 헌신하도록 준비했다. 사무엘은 부모의 뜻대로 사명자 답게 철저하게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즉 젖을 떼자마자, 집을 떠나 성전에서 당시 대제사장인 엘리의 지도를 받으며 제사장의 수업을 받았다. 또한 모세의 법을 배우고 익혔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엇다. 그는 어느날 밤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다. 그는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옛날 모세나 드보라가 경험했던 신비한 일을 체험한다.

한편, 당시 대제사장이던 엘리는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가 될 아들들은 성격도 포악했고 제사장의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가르침이나 충고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도 듣지 않고 계속 악을 행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반복하여 주신다.

나 주가 말한다… 어찌하여 너는 나 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에게 바친 모든 재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다가, 스스로 살찌도록 하느냐?... 이제는 내가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만 존중하고, 나를 경멸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너희 집안에 오래 살아 나이를 많이 먹는 노인이 없게 할 날이 올 것이다. “(사무엘상 2:27-36)

그러는 중에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에벤에셀로 나아가 불레셋 군을 막아 전투를 벌렸다. 그러나 첫 번 싸움에 이스라엘은 불레셋에 패한다. 그러자 장로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싸우러 가자고 한다. 왜냐하면 법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광야에서나 가나안에서 싸울 때 법궤를 앞세워 싸워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로에 있는 법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를 앞세워 용기를 내어 불레셋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대패한다. 이번에는 법궤까지 빼았긴다. 함께 갔던 엘리의 두 아들들도 전사한다. 패전의 소식을 들은 엘리는 그 충격으로 죽는다. 또한 며느리가 해산하다가 죽으면서 낳은 아들 이름을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 지은 것 같이 엘리의 집안이 망한다.

법궤는 얼마 뒤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 왔다. 왜냐하면, 불레셋군이 법궤를 빼았아 자기들 성으로 가져갔으나, 가는 곳마다 병이 돌거나 혹은 자기들이 모시고 있던 신상이 넘어저 토막이 나는 등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서 결국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다.

법궤를 돌려 보낼때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불레셋의 지도자들은 꾀를 부린다. 즉 이 재앙이 하나님이 내린 것인가 아니면 자연적으로 온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수레에 법궤를 싣고 새끼를 갖인 암소 두 마리로 수레를 끌고 가도록 했다. 이 때 어린 새끼는 집에 두고 어미소들이 어디로 가는지 살펴 보았다. 두 어미소들은 수레를 끌고 집으로 가지 않고 큰 소리로 울면서 이스라엘의 벳세메스로 올라갔다고 한다.

드디어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엘리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고 또한 사사가 된다 우선 낙심한 백성들의 상쳐를 치유해주는 동시에 옛 신앙을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는 온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면 주께서 너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이다.”(사무엘상 7:3)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 을 듣고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다.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해서 특별 집회를 갖는다. 즉 금식하고, 죄를 회개하고, 물로 제물삼아 제사를 드린다.(사무엘상 7:5-6)

그러자 불레셋이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것을 알고 공격한다. 그러자 사무엘과 백성들이 나라를 구해달라고 기도하자, 하늘로부터 천둥 소리가 나며 불레셋군을 공격하자, 적군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져 도망한다. 사무엘은 그 곳에 큰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불레셋과 세번째 전쟁에서 드디어 크게 승리했다.

사무엘은 그 뒤에 빼았겼던 성읍들을 되찾고, 국경을 튼튼하게 하고, 온 백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한다. 그뿐 아니라 백성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래서 매년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 지역을 돌면서 백성들의 분쟁을 중재해줄 뿐만아니라, 250여년 전 모세가 강조한 예언자적인 신앙대로 살도록 열심히 가르쳤다. 이제 사무엘은 대제사장이나 사사나 선견자를 넘어서 예언자로 일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법궤가 있는 중앙성소에만 계시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즉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분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고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이천년 후 “하나님이 어디계신가?” 하고 묻는 질문에, 경건한 랍비들은 “하나님은 어디든지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들 가운데 계신다”라고 대답했다.

12. 예언자(선지자)와 선견자

사사시대 예언자의 활동은 미약했다. 그러나 예언활동이 아주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예언자를 대신해서 “선견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는다. 선견자는 누구며 선견자들은 무엇을 했나?

선견자”는 히브리말로 “로에” 혹은 “코제”라 불렀다.(영어성경은 “Seer”라고 번역했다.) 이 말은 “앞으로 있을 일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선견자의 역활을을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동안의 신앙생활의 형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성소를 중심으로 생활을 했다. 중앙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있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예배(제사)를 주관했다. 제사장들은 주로 아론(모세의 형)의 후손들이 맡았다. 그리고 레위사람들이 제사장을 도왔다. 레위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의 한 지파로, 제사장을 도와, 제물을 준비하고 성막을 관리하는 일만 전담했다. 이 성막은 지리적이거나 정치적인 형편에 따라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적어도 세번(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은 중앙성소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을 준비해가지고 중앙 성소에 가서 몇일을 지내며,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이나 예언자나 사사들의 설교를 듣기도 하고 신앙 상담도 했다.

가나안 정착 초기에는 중앙성소가 실로(남쪽)에 있었다. 그러나 중앙성소가 너무 멀어서 가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곳곳에 작은 성소를 세우고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수도 많지 않았다. 또한 백성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채워주지 못했다. 점점 제사장들의 역활이 백성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예언자도 없었다. 이때 선견자들이 나타나서 멀리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찾아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신앙을 격려해주며, 고생하고 있는 백성들을 도왔다

선견자는? 예언자(선지자)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선 예언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백성들을 가르쳤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 신앙생활을 하도록 애썼다. 선견자들은 모세의 예언자적인 전통을 지키도록 백성들을 가르쳤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도 했다 그리고 예언이나 병을 고쳐주거나 잃은 물건을 찾아주는 일이나,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내는 등, 신비한 일도 했다. 또한 선견자들을 양성하는 신학교도 있었다. 선견자들은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신앙부흥운동을 했다. 때로는 몇명씩 그룹을 지어 다니기도 했다. 또한 집회 중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입신이나 예언등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신앙적인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종교지도자 노릇을 했다. 그들 중에는 사무엘이나 엘리사 같은 중요한 종교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선견자들은 대부분이 직업적으로 예언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언을 해주거나, 병을 고쳐주거나, 잃은 물건들을 찾아주는 대신 약간의 사례비나 헌물 등을 받았다.그들은 예언자로써 존경이나 인정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때로는 예언한 것이? 맞지 않아 가짜 예언자라 불리우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가 금한 “마술사, 점쟁이, 복술가, 무당, 주문을 외워 액땜을 해주는 박수, 또는 귀신을 불러모으는 영매자 같은 가짜 혹은 거짓예언자로 취급되기도 했다(신명기 18:10-11).

그러므로 대부분의 선견자들은 예언자와 닮은 점도 많았지만 참 예언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 참 예언자는 백성들이 당한 어려운 문제를 몸소 체험하고 그들을 향한 사랑이 넘쳐흘러서 하나님으로부터 대답을 들으려 얘쓰는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했다.다시 말하면 예언자는 영적 통찰력을 가진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11 요담의 우화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은 다시 타락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의 일부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일이다. 이스라엘은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자기들의 왕이심을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웃나라들이 왕이 있어서 전쟁이 있을때 효과적으로 대쳐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왕을 갖기를 원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적인 행동이었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70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 중에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아비멜렉의 어머니는 세겜 성 사람이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 기드온이 죽자, 즉시 세겜 성에 가서 자기를 따르는 친족들과 불양배들을 앞세워 왕이 된다. 그리고 자기와 경쟁이 될 형제들을 모두 죽인다.

마침 그 중에 가장 어린 동생 요담 만은 숨어 살아 남았다. 요담은 아비멜렉을 피하여 도망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를 남긴다(사사기 9:8-21)

나무들이 사는 나라에서 왕을 뽑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무대표들이 맨 처음엔 올리브나무를 찾아가, 왕이 되어 자기들을 다스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올리브나무는 “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하고 거절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무대표들이 무화과나무를 찾아가 왕이 될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무화가나무도 “내가 어찌 달고 맛있는 과일맺기를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하고 거절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포도나무를 찾아가 같은 청을 하자, 포도나무 역시, “내가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 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하고 거절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시나무에게 말한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 그러자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

가시나무란 보잘것 없는 덤불이어서 그늘도 없고 , 또 가시가 있어서 찌르고 상쳐를 주는 식물이다. 그리고 만약에 가시덤불에 불이 붙으면, 온산을 불태우고 백향목같이 크고 좋은 나무도 견디지 못하고 타버린다는 이야기다.

요담은 예언자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일임을 알고 있었다. 또한 형 아비멜렉은 왕이 될 자질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이되려는 형이나 그를 왕으로 세우려는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함을 나무에 비유해서 백성들을 깨우친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아비멜렉과 그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비멜렉은 세겜에서 3년간 왕노릇 했다. 그러나 세겜성 안에서 분란이 일어나자 아비멜렉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람뿐 아니라 성읍까지 파괴한다. 마지막으로 아비멜렉은 데베스라는 성을 공격하다가 성 위에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짝에 맞아 죽는다. 아비멜렉이 죽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흩어지고 왕제도는 사라지고 만다.

10. 기드온의 300명 용사

사사겸 선지자로 활동했던 드보라가 죽은 뒤 사무엘 때까지는 이스라엘에는 예언자가 없었다고 한다. 대신 제사장들과 사사들과 선견자같은 이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로 일했다. 그들은 모세의 예언자적인 정신을 이어받아 외적으로는 원수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고 내적으로는 백성들이 믿음을 지키며 살도록 힘썼다. 그 중에서 기드온은 예언자의 품성을 가진 훌륭한 사사였다.

기드온의 300명 용사”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때(사사시대) 있었던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우상을 섬기며 타락하자 하나님은 사막에 살던 미디안 족속들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있을때였다.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비하여 체력이 강했고 또한 많은 낙타를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이 농사를 짓고 있으면 갑자기 습격해서 농사를 망쳐놓고 사람들뿐 아니라 가축들을 약탈해 갔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디안을 피하여 산악지대의 동굴이나 요새에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미디안사람들을 쫓아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드온을 택하여 구원하게 하신다.

기드온은 힘이 장사였다.그러나 매우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천사가 나타나서 기드온에게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자 처음에는 “나는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하고 사양한다.그러나 거듭하여 권고하자 순종하여 사사가 된다. 그는 우선 자기집과 동네에서 섬기던 우상들을 모두 불태우고, 우상들에게 제사 드리던 산당을 모두 때려부신다. 대신 산 꼭대기에 제단을 새로 쌓고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드온을 “여룹바알” 즉 바알과 싸워서 이긴 사람이라고 했다.

이때 아말렉족속과 미디안족속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다시 습격했다. 그 수는 십삼만명이 넘는 대군이었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는, 기드온이 싸우러 나갈 장병들을 소집하자, 약 삼만명이 모였다. 군대 수로 비교해도 이스라엘은 미디안연합군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하고 소수의 정병만 데리고 가라고 한다. 그래서 기드온은 모세의 전쟁규정(신명기20장)에 있는대로 전쟁을 두려워 하거나 전투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런다음 기드온은 남은 300명 만을 데리고 싸우러 간다. 기드온은 전쟁의 승패는 군대의 수나 무기에 있지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굳게 믿고 싸우러 나갔다.

이 때 이스라엘군의 무기는 다만 질그릇으로 만든 항아리와 햇불과 뿔나팔 뿐이었다. 기드온의 군인들은 햇불을 항아리 속에 감추고 밤중에 잠자고 있는 적군을 갑자기 습격한다. 그들은 적군 가까이가서 일제히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깨뜨리고 햇불을 들면서, “야훼(하나님)만세, 기드온 만세”하고 웨치자 잠자고 있던 미디안연합군은 놀라서,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대부분이 죽거나 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쉽게 적군을 무찌르고 크게 승리했다

전쟁이 끝나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기드온에게 “장군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 주셨으니, 장군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한다. 즉 다른 나라들처럼 왕이 되어주기를 요청한다. 그러자 기드온은,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여러분을 다스릴 것입니다.”라고 거절한다.(사사기 8:22-23) 기드온은 모세의 정신에 충실한 예언자의 후손이었다.

기드온은 왕되기를 거절하는대신 전쟁때 거둔 전리품 중에서 금붙이를 모아 달라고 해서 그것으로 “에봇”하나를 만든다. 에봇이 무엇인가? 에봇은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입는 예복(조끼 혹은 까운 같은 것)이다. 에봇에는 아름답게 수를 놓았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열두보석이 달려있으며, 가슴 한 가운데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을 넣어두는 주머니가 달려있었다. 그래서 제사장이 에봇을 입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에봇은 법궤와 같이 거룩한 성물로 인정했다.그러면 기드온은 왜 에봇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에봇으로 무엇을 했을까? 신학자들은 당시 교통이 불편하여 일반백성들은 중앙성소에 가서 제사(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자주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드온이 자기집 근쳐에 작은 성소를 짓고, 필요할 때, 자신이나 가족 둥에서 에봇을 입고 제사를 인도하지 않dkT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드온이 죽은 후에도 그의 가족 중에서 이 일을 계속 하였으리라고 본다. 기드온이 살아있는 동안 40년을 이스라엘은 전쟁이 없이 평화롭게 지낸다.

9. 여성 예언자 드보라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염려했던대로 얼마되지 않아 타락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신들을 섬기어,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행동을 일삼았으며, 이집트땅에서 그들을 이끌어내신 주 조상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주위의 백성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따르며 경배하며 주를 진노하시게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주를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크게 분노하셔서, 그들을 약탈자의 손에 넘겨 주셨으므로, 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하였다. 또 주께서는 그들을 주위의 원수들에게 팔아 넘기셨으므로, 그들이 다시는 원수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사사기 2:11- 14)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버렸을때, 필연적으로 그들은 원수들과 싸울 목적도 의지도 약화되었다. 또한 지파간의 단결도 약화되어 전쟁이 났을때 서로 도우려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같은 동족끼리 싸우기도 했다.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볼때, 이스라엘은 좋은 먹이 감이 되었다.?한때 이스라엘에 밀려 이스라엘을 섬기거나 산악지대나 주변으로 도망하여 살던 이들은 자주 이스라엘을 공격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번번이 싸움에 패배했다. 그리고 자기들을 공격하는 정복자들에게 많은 공물(세금)을 바쳐야 했다.

백성들의 고통이 심해지면, 지방의 힘센 지도자가 일어나 이웃 지파들을 연합시켜서 원수들에게 반항하기도 하고 전쟁을 하기도 했다. 이들을 “사사”라 불렀다. 사사는“재판관”이란 뜻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쟁지도자 혹은 힘센 장군이라는 말이 옳다. 사사들의 사명은 원수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고, 동시에 백성들이 바르게 살도록 지도하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사사의 도움으로 원수들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돌아와 평화를 되찾기도 했으나 사사가 죽고 나면 다시 옛생활로 돌아갔다.

또한 사사들 중에는 훌륭한 사사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사들은 지도자로써 잘 훈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삼손같은 사사가 나오기도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위한 좋은 지도자를 찾고 계셨다. 드보라는 하나님이 찾으시던 사람이었다. 드보라가 살던 때, 가나안 사람 시스라가 일어나 가나안 연합군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시스라는 전차부대를 앞세워 공격했다. 그리고 20여년간 주로 평야지대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백성들을 지배했다. 드보라는 비록 여성이었지만 백성들이 위급한 일을 당하자 용감하게 일어나 사사가 되었다.드보라는 모세의 정신을 이어받은 여성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간절히 구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을 모아 전쟁터에 나갔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장군 바락을 불러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나 드보라는 당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전쟁할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가나안군에 비교하면 이스라엘군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은 녻슬고 보잘것 없는것들 이었고, 군인들은 잘 훈련되지 못했고, 싸움에 필요한 전쟁물자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 도망하여 숨으려 했다.?장군 바락도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으면 전쟁하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드보라는 사람들을 모았다.?그리고 모인 사람들을 믿음으로 격려했다.?즉 조상들이 갖었던 신앙과 용기를 깨우쳐주었다.?드보라가?머뭇거리고 있는 장군 바락에게 말했다.

자, 가십시오. 오늘이 바로 주께서 시스라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주신 날 입니다.주께서 친히 그대 앞에서 싸우러 나가실?것입니다. “ (사사기 4:14)

그래서 바락은 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다불산에서 쳐내려 갔다. 그러자 갑자기 태풍이 불어 강물이 넘쳐흘러?많은 가나안의 군인들이 물에 빠져 죽고 전차들은 수렁에 빠져버렸다.?그러자?가나안군은?싸움도 못하고 도망쳤다.?시스라는 혼자 도망하다가 야엘이라는 여인의 손에 죽었다.

싸움에 이긴 후, 드보라와 바락이 이렇게 노래했다.

별들이 하늘에서 시스라와 싸웠고,
그 다니는 길에서 그와 싸웠다.
기손 강물이 그들을 휩쓸어 갔고,
옛 강, 기손의 물결이 그들을 휩쓸어 갔다.”(사사기 5:20-21)

이 싸움은 특별히 여성들, 드보라와 야엘,이 공을 세웠다.특별히 드보라는?이스라엘의 옛신앙을 다시 살려 백성들을 가르치고 지도했다.

드보라는 모세 이후 처음 출현한 예언자라고 한다. 드보라는 위대한 공적을 이루거나 비젼을 보여주지는 안했다. 또 자신이 예언자로써 위대함을 말하지도 안했다. 그러나 드보라는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하는 신비한 능력을 갖인 사람이었다. 즉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무엇을 해야 하나?”을 알았다. 또한 다른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확신시켜주는 일을 했다. 이것은 일찌기 모세가 보여주었던 예언자적인 지도력이었다.

참 예언자는 백성들의 당한 어려운 문제를 몸소 이해(체험)하고 그들을 향한 사랑이 넘쳐흘러 하나님에게 대답을 얻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용기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언자를 영적 통철력이 있는 사람 혹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뜻대로 하는 사람에게 능력이 함께 한다.

8.여호수아와 가나안 점령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점령한다.여호수아는 지혜롭고 용감한 장군이었다.여호수아는 모세가 이미 세운 계획대로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몰아낸다. 그리고 지파별로 땅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의 충실한 제자였다.그는 모세가 지시한 대로 할뿐더러 모세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까지 실천했다. 비록 여호수아시대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가 염려하던대로 너무나 쉽게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의 유혹에 빠져든다. 왜 이스라엘백성들이 쉽게 타락하게 되었을까? 많은 랍비들이나 학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첫째는 정신적인 해이라고 본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쉬지 않고 원수들과 싸워야 했다. 가나안의 원주민들은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정복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은 그들을 정복했다. 물론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능했지만. 목적을 이루었을때 당연히 오는 현상일 것이다.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은 거의 금욕적이었다.그러나 원주민들이 섬기는 우상종교는 사치스럽고 향락적이었다. 우리 말에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한다”는 것처럼, 건전한 생활을 위해서는 적당한 긴장과 교육과 강한훈련이 계속 필요하다.

둘째는 부해지려는 욕심에서 왔다고 본다.지금까지 이스라엘백성들은 비교적 가난하게 살았다.천막에서 살았다.음식은 주로 만나를 먹었다.빈부의 차이도 없었다. 공평하게 살았다.그러나 가나안땅에 정착하게 되면서 달라젔다. 살 집과 농사할 땅이 있어야 했다. 또한 풍요한 가나안의 문화생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부를 갖기 위해서는 때로는 공평하게 살 수 없었다.더구나 원주민들이 믿던 우상”바알신”은 재물의 신으로 여겼다.바알신을 잘 섬기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되었다

셋째는 옳바르고 강한 지도자가 없었다. 광야에서 훈련되었던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살아 있을때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았다. 세월이 가면서 자연히 지도자들이 바뀌어 저 갔다. 새 지도자들은 예언자의 신앙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죽을때 한 고별설교에 보면,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이렇게 늙었소.여러분은 주 여러분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편이 되시어, 이 모든 이방 나라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그 모든 일을 잘 보셨소. 과연 주 여러분의 하나님은 여러분의 편이 되시어 싸우셨소. 보시오, 요단 강으로부터 해 지는 지중해까지, 아직 남아있는 모든 나라와 이미 정복한 모든 나라를, 나는 여러분들의 각 지파에게 유산으로 나누어 주었소. 주 여러분의 하나님이 친히 여러분 앞에서 그들까지 마저 쫓아내실 것이오…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아주 담대하게 지키고 행하시오. 그것을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을 섬기고 경배하면, 주의 진노가 여러분에게 내려, 여러분은, 그가 주신 좋은 땅에서 곧 망하게 될 것이오….(그러나)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옛날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 아니면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땅(*가나안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여러분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를 섬길 것이오.” (여호수아 23장? 24장)

그러면 모세와 여호수아가 엄중히 금한 “바알 종교”란 무엇인가?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근동지방에는 지역마다 많은 신들을 섬겼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아브라함 시대부터 내려오는 자연종교를 믿었다. 많은 신들 중에서, “ 바알”(복수로는 바알림)신을 주로 섬겼다. 바알신은 농경신으로 곡식과 가축이 잘 되게하는 신이었다. 그래서 “비의 신” 혹은” 봄철의 신” 혹은 “생명의 신”(겨울철 말라 죽었던 식물들을 다시 살리는)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여신 아스다롯(혹은 이스탈이라고 부름)은 아들을 낳게해 주는 영험이 있다고 해서 여인들에게 중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전 중심에는 사방에서 볼 수 있는 큰 나무기둥 (토템)을 세우고 섬겼다.

이들에게 바치는 제물로는 짐승이나 곡물 이외에, 인신제사( 전염병이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도 드렸다고 한다. 집단 쎅스가 제사의 일부로 하기도 했다. 바알신전의 사제들은 당시 부와 권력을 차지했다고 한다. 굿을 하고 부적을 만들어 팔고 노예들을 거느리고 대부업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부패의 온상노릇을 했다고 한다. 바알신들은 뇌물을 주고 거짓으로 섬길 수가 있었다고 한다.

모세는 이것을 “더러운 행위”(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몹쓸 짓)라 하고, 만약 너희가 이러한 우상들을 섬기면 땅이 너희를 토해낼 것이라고 경고했다(레위기 18:26-28), 가나안의 우상종교는 벌(두려움)을 무기로 썼다. 만약 사제의 지시를 거부할 경우 무서운 재앙을 내린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을 나온 후, 하나님은 억압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주고, 행운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비롭고 친절한 사랑의 신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으로부터 3200년전, 모세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신이심을 알았다.

7.교육자 모세

모세는 동족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편안해 지면 지난 일들을 잘 잊어버리고 잘못된 길로 가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정착할 가나안 땅의 문화는 이스라엘민족을 타락하게 할 위험한 함정들이 많을 것을 예상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은 가나안의 신과 같지 않음을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은 사람들과 맺은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대신 사람들이 해야할 것들도 엄격하게 요구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세는 죽음이 가까워지자 더 열심히 백성들을 가르쳤다. 무엇보다도 강조한 것은 “하나님은 오직 한분 뿐이시며, 변함이 없으신 성실하신 분이시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모든 명령을 지켜라. 그러면 너희는 힘을 얻고, 너희가 건너가 차지하려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실제로 차지할 것이다. 또한 주께서, 너희 조상과 그 자손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땅은, 너희가 나온 이집트 땅과는 다르다. 이집트에서는 채소밭에 물을 줄 때처럼, 씨를 뿌린 뒤에 발로 물을 댔지만,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는 산과 골짜기가 많아서, 하늘에서 내린 빗물로 밭에 물을 댄다. 주 너의 하나님이 몸소 돌보시는 땅이고, 주 너의 하나님의 눈길이 해마다 정초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늘 보살펴 주시는 땅이다.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그의 명령들을 착실히 듣고,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를 섬기면, 주께서 너희 땅에 가을비와 봄비를 철 따라 내려 주셔서,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거두게 하실 것이며, 들에는 너희의 가축이 먹을 풀을 자라게 하실 것이며, 그리하여 너희는 배불리 먹고 살 것이다. 너희는, 유혹을 받고 마음이 변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그 신들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라. 너희가 다른 신들을 섬기면, 주께서는 너희에게 진노하셔서,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으실 것이며, 너희는 밭에서 아무것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너희는, 주께서 주신 기름진 땅에서도 순식간에 망할 것이다”.(신명기 11:8-17)

람비들에 의하면,모세가 이 말을 할때,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했다고 한다. 모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한 이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골수에 새겨 두고 또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기호로 삼아라 또 이말을 너희 자녀에게 가르치며, 너희가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쳐라. 너희의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여라.그러면 주께서 너희 조상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오래 오래 살 것이다. 너희는 하늘과 땅이 없어질 때까지 길이길이 삶을 누릴 것이다.” (신명기 11:18-21))

모세는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된 사실을 잊지 말아야할 것을 강조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이집트사람들과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얻어진 구원의 사건이었다. 사람은 잊기를 잘한다. 그래서 모세는 이를 말씀으로 전할 뿐 아니라 의례로 정해 주었다. 즉 예배와 절기 행사 등을 통해서 기억하도록 했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과 감사다. 제물을 드릴때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하나님과 맺은 약속(계약)을 잊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게 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음을 모세는 강조했다.

또한 자녀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도록 했다. 특히 역사를 잊어버리는 민족이 될까 걱정한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대대로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6. 율법의 전수자 모세(2)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우상들과 다르다는 것을 가르쳤다. 즉 우상은 제물만 원하고 마술적인 행위로 사람들을 속이는, 나무나 흙으로 되어진 생명없는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람들끼리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시고, 말로만 아니라 행동을 요구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했다.즉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는 것은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외친다.

호렙산에서 맺은 언약은 위대한 민족,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는 시작이었다.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출애굽의 목적이라고 생각했으나 모세는 그 보다 훨씬 더 멀리 보았다. 가나안을 완전히 점령하기에는 그 후 수세기가 걸렸다. 모세는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의 입구까지 갔으나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또한 모세는 자기가 가르친 하나님의 명령(법도)를 백성들이 완전히 지키는 것도 보지 못했다. 다만 기도 했을 뿐이다.

모세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로운 사람들로 만들은 것이다. 광야 사십년은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때로는 백성들과 다투기도 했고 때로는 백성들의 거친 반항에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세는 참고 예언자의 사명을 다한다. 결국 백성들을 훈련시켜 새로운 민족으로 만들었다.즉 자유를 누리며 선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델로 만들었다. 모세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 보아라, 내가, 주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명하신 대로,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가르쳐 주었다.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너희가 그대로 하도록 하려고 그렇게 가르쳤다. 너희는 이 규례와 법도를 지켜라. 그러면 여러 민족이, 너희가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이 모든 율법과 같은 바른 규례와 법도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 어디에 또 있겠는냐? “ (신명기 4: 5-6, 8)

흔히 유월절을 “유대인의 생일”이라고 하기도 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로 간 것을 기념하는 “해방 기념일”이다. 이들이 광야에 들어 갈때는 보잘것 없는 도망하는 노예들이었고,?불쌍한 거지떼들에 불과했다..그러나 광야를 나올 때에는 신앙으로 무장된 강한 민족으로 나타났다.

"너희가운데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그에게 알리고, 그에게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그는 나 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민수기 12:6-8)

모세는 위대한 예언자였다. 모세 이후에 오는 예언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다.모세는 하나님을 순박하게 알고 믿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3000여년 전 모세가 읽어준 “쉐마”를 읽으면서, 옛 이스라엘에 들려주시던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다

“이스라엘아, 들어라.주는 우리 하나님 이시요, 주는 오직 한 분뿐이시다.?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쳐라.또 너희는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여라.” (신명기 6:4-4-9)

"쉐마”란?히브리말로 “들어라”란 뜻이다. 유대 신학자들은 이”쉐마”를 “모세의 신앙 고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래서 모세가 가졌던 신앙을 갖고 살기 원하는 유대인들은 예배를 드릴 때나 기도할 때 뿐만 아니라 언제나 이 말씀을 읽으며?모세의 신앙을 함께 갖고 살아가기를 원한다

토라(율법서)는 모세의 최후를 다음과 같은 짧은 말로 끝낸다.

“그 뒤에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나지 않았다.주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모세와 말씀 하셨다.” (신명기 34:10)

5. 율법의 전수자 모세(1)

광야의 길은 멀고 험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은 130 마일 정도였다. 그러나 모세는 이 길을 버리고 거의 반대 길을 택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에는 매우 호전적인 족속들이 살고 있었고, 국경을 지키는 경비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며 많은 상인들 혹은 여행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집트에서 노예로 오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은 모두 처음 부딛치는 원수들이었다. 또한 매우 위험스러운 사실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혹 백성들이 전쟁을 만나면 놀라 낙심하게 되고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기록했다. (출 13:17-22)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지역에서 먼 동남쪽 광야길을 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길은 원수들을 피하여 선택한 것 뿐 만 아니라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광야는 이스라엘 민족이 좀더 훌륭한 민족으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훈련장이었다.

3000여년이 지난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 갔던 길을 거의 확실하게 추적하고 있다. 모세는 광야를 잘 알았다. 더구나 미디안 지역은 지난 40년간 양떼를 먹이던 곳이다. 모세는 사람이 많이 살던 지역이나, 큰 길이나, 구리광산이 있던 곳이나, 혹은 잘 알려진 오아시스들을 피해서 거친 광야로 백성을 이끌었다.

백성들은 처음에는 해방의 기쁨에 취해 즐겁게 모세를 따라 왔지만 시간이 지나자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집트에서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그들은 집이 있었고 먹고 마실 음식이 풍부했었다. 우선 거친 광야(사막)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또한 당장 마실물과 먹을 음식이 필요했다.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매일 필요한 물과 음식을 어디서 구할 수 있나? 또한 낮에는 뜨거운 해빛과 밤에는 추위로부터 보호해줄 집이 없었다. 가끔 떼를 지어 습격하는 강도들을 막아내는 일이나, 또한 백성들끼리 다투는 일들을 해결해 주는 일들도 모두 모세가 할 일들 이었다. 모세는 어느 예언자도 당하지 않았던 큰 일들을 해결해야 했다. 마치 말썽꾸러기 자식들을 키우는 부모 이상으로 백성들을 돌보아야 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매일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움과 지시를 받지만, 모세는 당장 해결해야할 문제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먼 미래의 일까지를 바라보며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다.

모세는 불평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이 백성들에게 참으로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일반 사람들은 대개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강한자가 약한자를 지배한다는 세계를 살고 있다. 정의롭고 선하게 산다는 것은 말 뿐이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뜻은 바르게 살고, 이웃을 사랑하며, 또한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장래 위대한 민족(나라)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새 질서와 법이 필요한 것을 생각했다. 또한 앞으로 백성들이 알아야할 분명한 목적과 비젼을 보여줄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세는 사십여년 전에 올랏던 거룩한 산, 호렙산(시내산)을 찾았다. 산 밑에 백성들을 머물게하고 홀로 산에 오른다. 이 산은 놀랍고 신비한 산이었다. 모세는 밤낮 40일간 산에 머물며, 마치 산모가 아기를 낳을때 애를 쓰듯,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애쓴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자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돕는 분이다.

드디어 모세가 산을 내려올 때, 그의 두 손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이 적혀있는 두 돌판이 들려 있었다. 오늘날 이것을 “십계명”이라 부른다. 물론 십계명과 함께 모세가 가지고 내려온 것들은 왜 이 법을 지켜야하며, 법을 지키기 위한 부수적인 설명 등도 있었다. 후에 유대 랍비들은 이것을 정리하여 613개의 법조문을 만들었다.

십계명과 법(규정 혹은 율례)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십계명의 첫 부분(1-3계명)은 바른 삶을 원하시는 분이 누구신가? 그리고 선의 근원이 누구신가? 그리고 나머지 부분(4-10계명)은 대부분 사람들끼리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십계명은 종교와 사람의 행위와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신에게 무슨 선물(제물) 가지고 오느냐 가 아니라 매일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심판하신다고 가르쳤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해야할 일을 했는가? 아니했는가? 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이것은 당시 세상에서는 혁명적인 사상이었고 분명히 새로운 종교(윤리적인 종교)였다.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은 선과 진리와 정결한 삶을 원하시고 계신다고 계속 가르쳤다. 물론 도망나온 노예의 무리들, 교육도 훈련도 받지 못한 보잘것 없는 떠돌이 백성들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들을 오합지졸로 보지 않았다. 이들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예들이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사람들임을 믿었다. 그래서 백성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스라엘아, 내가 오늘 너희에게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귀담아 듣고,그것을 읽히고 지켜라. 주 우리의 하나님은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다. 주께서 이언약을 우리 조상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성심껏 지켜야 하며,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너희가 차지할 땅에서 풍성한 복을 얻고, 오래오래 잘 살 것이다.”(신명기 5:1-4, 32-33)

모세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불평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명령(법, 규정)을 지킬것을 굳게 약속한다. 옛날 조상들이 하나님과 약속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며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모세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불평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명령(법, 규정)을 지킬것을 굳게 약속한다. 옛날 조상들이 하나님과 약속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며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로 했기에 “선민”(선택받은 민족)이라 불리었다. “선민”이란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과 함께 “책임”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로 약속했으니 이 법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즉 스스로 하나님의 법과 관례를 지킴으로 하나님을 따르도록 선택된 민족이 된것이다.

4. 첫 예언자 모세 (3)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르기로 결심한 뒤 가족들 (아내와 두 자녀들)을 장인에게 맞기고 홀로 이집트로 간다. 혹시 자신에게 위험한 일을 당하더라도 가족을 살리려는 의도나 혹은 가족들이 이 일에 거침돌이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40년만에 돌아온 고향 이집트는 많은 변화는 없었다. 변한것이 있다면, 모세를 잡아 죽이려 했던 왕은 이미 죽었고 새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새왕이 제 19대 왕조의 “람세스 II 세” (기원전 1290-1223) 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때가 이집트로는 가장 강했던 시대 중의 한 때다.당시 이집트는 에디오피아와 북 아프리카 대부분을 그리고 동쪽으로는 가나안으로부터 시리아와 아라비아의 일부까지 점령하고 있었다니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중의 하였다고 본다. 그래서 곳곳마다 왕의 기념비들이 서고 중요한 국경에는 튼튼한 장벽들을 세우고 국경 경비대들이 지키게 했다.

그러나 노예들은 옛날과 다름 없이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새 건물들을 짓거나 국가의 재정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예가 필요했고, 노예들은 더 힘들게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 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벽돌을 만들어 나라의 곡식들을 저장할 창고를 짓는 공사에 동원되었으리라 본다.

모세는 우선 형 아론을 만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린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장로들(각 지파의 대표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알린다.

"아론이, 주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그들을 믿었다. 그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살피시고,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셨다는 말을 듣고, 엎드려 주께 경배하였다.”(출애굽기 4:30-31)

장로들은 모세의 말을 듣고 그들이 조상적부터 믿고 있던 신(하나님)의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전해준 신앙: 즉 하나님은 살아계신 신 이시며,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조상들과 맺은 약속대로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구원( 자유)을 주신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섬겨오던 이집트 왕을 대항해서 새 지도자, 모세를 따라 하나님이 약속한 새 나라를 향해 이집트를 떠나야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기로 한다. 결국 모세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다.

놀라운 사실은 백성들이 모세가 말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한 것이다. 400여년간 긴 노예생활에 찌든 그들이 새 지도자를 따라,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이집트 왕, 바로의 세력에 대항해서 미지의 세계로 출발하라는 하나님의 뜻 “ㄱ원”(자유) 받아드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한편 모세는, 강력한 이집트의 세력을 물리치고 이 백성들을 이끌고 가시 덤불이 덮여있고 뱀과 전갈이 우굴거리고 원수들이기다리는 거친 광야로 갈려고 할때, 이들이 따라 나설 것인가? 하고 의심했을 것이다. (사실 이집트를 나온지 한 달도 안되어 불평하고 반항 하였지 만). 그러나 모세는 이 문제도 하나님께 매끼고 나아갔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킬줄을 믿었다.

장로들의 지지를 받은 모세와 아론은 담대하게 이집트 왕 바로 앞에 선다. 그리고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 시키라고 외친다. 물론 이집트왕 바로는 처음에는 완강하게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열가지 재앙이 내리고 마지막 이집트의 처음 태어난 사람이나 짐승들이 죽어가자 할 수 없이 항복하고 만다.

우리 말에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음에는 홍해를 만난다.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이집트의 군대가 쫓아 오는 아주 위험한 순간 모세는 두려워 울부짖는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아라.너희는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여라. 너희가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진정하여라.”(출애굽기 14:13-14)

과연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백성들이 바다 속을 마른 땅 같이 건너가게 하셨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홍해를 건넜다는 말은 오늘날 스에즈 운하가 있는 곳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동쪽에 있는 “갈대바다”라는 호수를 건넜다고 본다.

불행하게도 예언자의 길은 험하고 힘들다. 사람들은 더디 믿고 쉽게 믿음을 버린다. 그러나 예언자는 비젼을 보고 사람들과 이를 나눈 다음 혹 돕는자가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굳게 비젼을 붙들고 외로운 싸움을 한다. 혹시 백성들이 반대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간다.

왜 유대인들은 모세를 최초의 예언자라고 부르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이 믿던 신(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했기 때문이다.멧세지의 내용은 “이집트에서 나오라!. 너희 조상들과 약속한 새땅으로 가라!. 그리고 내가(하나님) 너희를 인도하리라.”였다.

모세는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믿고 고난 당하는 동족들과 함께 구원을 실천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3. 첫 예언자 모세(2)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부른 것인가?” 아니면 “ 모세가 하나님을 찾은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인가?” 이 문제를 가지고 신학자들은 열띤 논쟁들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자들을 돕는 분이다. 그러나 문제해결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일해야 한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협동자(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의 내용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약속을 한다는 것은 파트너의 책임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해야할 분야가 있다.

드디어 하나님이 모세를 부른다.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주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야 하겠다.”(출애굽기 3:4-10))

모세는 깨달았다. 모세를 부른 하나님은 옛날 아브라함을 찾은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불의와 싸우고 고난당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행동하는 분”이다. 그분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기다리지 않고 인간세상에 찾아와서 사람들을 부르시는 분임을 경험한 것이다.

그뿐아니라 “ 지배자와 피지배자” 만이 존재하던 당시 세상에서 억압받고 버림받고 고생하는 자들을 해방시켜주는 하나님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분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자들의 보호자가 되심을 알게된다.이것은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한 거짓신들을 섬기는 자연종교와 전혀 다른 “새롭고 혁명적인 종교”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나의 대변인이 되라”고 한다. 그러나 모세는 이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누구입니까? 어떻게 이스라엘자손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킬수 있겠습니까? 사실 모세는 자기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모세는 계속 거절한다.“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모세와 함께하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모세는 계속해서 불평하기를, 백성들이 어떻게 저를 믿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 너를 보낸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리고“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옛사람들에게는 이름은 중요했다. 이름은 본인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릴뿐만 아니라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모세의 당돌한 질문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
“스스로 계신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출애굽기 3:14-15)

하나님의 이름 에 대해서, 히브리성경에는 “예흐예 아셀 예흐예” (I shall be what I shall be) 로 되어있다.그대로 직역하면 “나는 나다 이다. 우리말 성경에는“자존지자”라 번역했다. 유대의 신학자들이 이 말을 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고 애를 썼다. 결국 야훼”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나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은 것처럼 ,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야훼”라 기록은 할 수 있지만 부를때나 읽을때는 반드시“야훼”라 하지 않고 대신 “아도나이”(“주님”이라는 뜻)라고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름이 무슨 능력이 있는가? 이 이름만 가지고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알 수도 없다.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은 믿음 뿐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절대의지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모세는 더 이상 핑계 대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한다. 모세는 자기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동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기로 한다. 바로 예언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2.첫 예언자 모세(1)

모세는 아브라함이 죽은 뒤 약 500여년 뒤에 태어났다. 그동안 옛나라들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나라들이 서기도 했다. 많은 민족들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강한자가 약한자를 압제하는 “정글의 법칙”과 이를 뒷 받쳐주는 “우상 종교”가 아직도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때 모세가 이집에서 출생했다.

어떻게 모세는 이집에서 태어나게 되나?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만난 뒤 하나님과 약속을 한다. 즉 앞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만을 믿고 살기로 했다. 한편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손들이 앞으로 크게 번성하도록 하고 또한 그들이 살 땅을 주시겠다고 한다

주께서 아브람(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2:1-3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서라고 한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0살 이었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곧 가족들과 기르던 가축들을 데리고 새 나라, 새 세상을 향해서 길을 떠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선 어디로 가야할지 실제적인 목적지가 불분명했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나그네 생활이다. 살기 좋은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친절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거칠고 야만적이었다. 텃세가 심한 사람들이었다. 지역마다 주민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있었고, 자기가족 (부족) 중심의 이기적이고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90이 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아브라함은 인내와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다.

고향 바빌론 (갈데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은 초원을 따라 하란(지금의 시리아 지역)으로 옮겼다가 다음에는 가나안땅 (지금의 이스라엘) 에 정착 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100살 되었을때 드디어 외아들 이삭을 낳는다.다음에는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은 12아들들을 낳아 대 가족을 이룬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가나안땅의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였다. 그러던 중에 한 번은 큰 가뭄이 여러해 계속되자 야곱의 가족은 이집트로 이주하게 된다. 이집트의 삼각주 평야는 나일강이 흘러 땅이 거름지고 곡식이 잘되어 살기 좋은 곳이었다. 또한 이집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문화가 높은 나라들 중의 하나였다. 결국 좀더 잘 살기 위해서 이집트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잘 살아보려고 들어간 이집트에서 노예가 될줄은 미쳐 몰랐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 산지도 400여년이 되었다.모세가 태어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노예로 살고 있었다. 이집트는 당시 물질은 풍요했으나 정신문명은 야만적이었다. 고통받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거짓신들을 섬기며 살았다. 그들에게는 노예의 인권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중노동을 하며 어렵게 살았으나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점점 불어났다고 한다. 그러자 이집트의 왕 바로는 새로 태어나는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강물에 던지라고 명령한다. 이 때 태어난 모세도 강물에 던져저서 죽게되었을 때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이집트의 궁궐에서 왕자 중의 하나로 자라게 된다.

모세는 왕의 궁궐에서 자랐지만 외로운 소년이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자기의 가족과 함께 살 수가 없었다. 대신 진실을 외면한 거짓사회의 실상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거짓 신(우상)을 섬기는 이집트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조상 아브라함이 전수시킨 참된 종교(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모세는 궁궐에서 편하게 살고 있었지만 고난당하는 동족들의 아픔을 외면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의롭고 담대한 행동의 사람이었다. 모세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족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걱정만 하고 있지 않았다. 불의를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하는 공사장에 나갔다가 한 이집트 사람이 부당하게 이스라엘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여 이집트 사람을 죽인다. 이 일로 모세는 살인자가 된다. 왕은 즉시 모세를 잡으려 한다. 결국 모세는 미디안 (지금의 아라비아 사막)으로 도망한다. 미디안으로 도망나온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한다. 그리고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양치기가 되어 미디안 광야에서 살게 된다. 모세는 다시 외로워졌다.

그러나 모세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비록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밤낮 그의 마음속에는 애굽에서 노예로 고생하는 동족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가 없었다. 조상 아브라함이 약속한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브라함이 전한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나?

수 십년이 지난 후 모세를 죽이려했던 이집트 왕도 죽고 새 왕이 왕위에 오른다. 이제 이집트로 돌아갈 때가 된것일까? 이집트로 돌아가서 고난받는 동족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여야 하나? 이집트왕 바로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모세는 너무 초라한 자신을 보게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하나? 모세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애쓴다. 그는 다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리저리 양떼를 몰며 헤매다 보니 사막의 맨 끝까지 간다. 그곳은 거칠고 외진곳이지만 조용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호렙산(시내산 이라고도 함) 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산을 “거룩한 산” (혹은 "신의 산”) 이라 불렀다. 모세는 이 산에 오른다. 드디어 이 곳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1. 예언자의 조상 아브라함

앞으로 함께 연구할 “예언자의 지혜”는 구약성경을 좀더 자세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중의 하나다.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위대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이스라엘민족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배우면서 삶의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 예언자들의 활동과 예언서들은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예언자의 지혜”란 말은 “예언자의 신앙 혹은 사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쓰면서 유대신학자인 한나 굳맨( Hannah Grad Goodman) 의 “예언의 이야기(The Story of Prophecy)”를 주로 참고 했음을 밝힌다.

Aert de Gelder의 <아브라함과 세 천사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갈때 경고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소리를 지를 뿐만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고난중에서 미래의 희망을 보여 주는 지도자였다. 사람들은 이들을 “예언자”라 불렀다.

“예언자”를 히브리말로는 “나비” (복수형은 “네비임”)라 부른다. “나비”는 “입술의 열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로 “ 소리를 외치다” 혹은 “소리를 지르기 위해서 불리움 받았다” 라 뜻으로 썼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을 대신 전하는 사람, 즉 “대변자(멧센져)”라는 뜻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성경에 들어 있는 “예언자”(prophet)라는 말은 구약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할 때 예언자가 하는 일을 강조해서 만든 말이다. 즉 예언자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앞으로 될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말 성경은 한문성경을 대본으로 했기에 “예언자 혹은 선지자”로 쓰고 있다.

예언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위해 선택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었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이나 행동은 자신의 지혜나 경험이나 통찰력 등에 의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왔음을 강조한다. 다시말하면 자신은(예언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예언자는 흔히 있는 점장이나 무당 혹은 환상가와 혼동하기 쉽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미래에 대해 예언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대개 기원 전 1200년부터 기원 후 100년 사이에 활동했다.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적을 때는 한 세기에 삼사명 정도에서 많을 때는 십여명 정도였다.

시대에 따라서 예언의 말씀들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때 각 절의 가사는 다르나 후렴은 같은 것 같이 예언의 말씀들의 결론은 한결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옛날 기록된 예언서를 지금도 읽고 있는 것이다

예언자를 예술가에 비교하기도 한다. 작곡가가 작곡할 때 떠오르는 새로운 멜로디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작곡가들은 이 멜로디가 어떻게 왔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시인이 시를 쓸때 떠오르는 새로운 생각이 어디서 왔는가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창조적인 생각 혹은 영감이라 부른다. 이때 성경은 이러한 생각(영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창작을 할때 오직 영감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작곡을 하거나 시를 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결국 아름다운 노래나 시는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만든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전할 준비된 일꾼들에게 예언자의 사명을 주셨다. 탈무드의 랍비들은 에언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예언자적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윤리적으로 완전하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을 택하여 당신의 예언자로 쓰셨다”

예언자들의 활동과 예언의 말씀들은 어떻게 전수되었나?

이스라엘에는 일찍부터 문자가 있었다. 제사장들이나 예언자들이나 율법학자(우리성경에는 서기관)들이 옛날부터 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성전예배에 관한 것들이나 왕국의 역사 등에 대해서 정성껏 기록했다. 특히 언어학자들의 수고로 고대문자들의 뜻이 밝혀지면서 이스라엘의 기록들도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구약성경의 처음기록은 율법서(토라 혹은 모세오경)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다섯 책이다. 내용은 천지창조로 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까지의 이야기들이다.

다음 기록이 예언서(네비임)다. 예언서는 구약성경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유대인의 성경에는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나뉘어 있다. 전기예언서는 여호수아부터 열왕기까지 네권이다. 내용은 가나안 정착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기독교 성경은 역사서로 분류함) 예언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전기예언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을 구전예언자들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예언을 기록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기예언서는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열 다섯권이다.(다니엘서는 제외) 내용은 예언자들이 받은 예언의 말씀들을 기록해 놓았다. 이를 문서예언자라고 부른다.

세번째 기록은 성문서(케투빔)다. 욥기로부터 시편과 잠언 등 12권으로 되어있다. 옛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1500년경에 갈데아(지금의 이락)에서 살았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데아 주변에는 많은 셈족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이 모두 셈족이다)이 살고 있었다. 당시 세상은 자연종교를 믿고 살았다. 쉽게 말하면 자연으로부터 종교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해가 뜨는 것을 보고 해가 어디서 오나, 해가 질때는 해가 어디로 가나? 왜 밤은 깜깜한가? 비가 내리면 식물이 잘 자라고 가뭄이 들면 모든 것이 말라 죽는 것, 인간은 병들거나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것 등등을 보면서 이 모든 것들을 만들고 유지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의 존재가 있다고 믿게되었다. 동시에 인간은 신앞에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신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하므로 신의 모습을 만들고 신을 기쁘게하는 제사나 굿 혹은 기도 등을 하게 된다.

특히 먹고 살기 위해서는 풍년이 들어야 했으므로 비나 땅을 관장하는 신에게 기도나 제사를 드리고 자신의 대를 이어갈 후손과 원수들로부터 가족이나 공동체를 보호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자녀를 두어야 했다. 그래서 바알이나 삼신할미 같은 다산의 신에게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재산을 강탈하고 가족이나 약한 동족들을 잡아다가 종으로 삼는 원수들로부터 보호받고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기 위하여 전쟁의 신이나 풍요의 신 등을 섬기게 되었다.

또한 이 신들의 호감(도움)을 얻기 위하여,사람의 생각을 적용해서, 신상(우상)들을 만들고 거기에 가장 좋고 귀한 것을 바쳤다. 반면에 악신이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굿이나 제사를 드렸다. 지금 말로하면, 비윤리적이며,기복신앙을 기본으로 한 미신종교였다.

당시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갈데아 나라의 왕이나 권력자들은 우상들을 섬기도록 장려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살아있는 신이니 섬기라고 강요했다. 그러므로. 이를 거부할 경우엔 모든 재산을 빼앗을 뿐 아니라 죽이거나 추방시켰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종교적인 생각에 반대했다. 반대 할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거부했다. 대신 윤리적이며 유일하신 신(하나님)을 찾아 섬기기로 결심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신앙을 부모로부터 배운것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 장사였다고 한다. 또 선생으로부터 배우거나 책을 읽고 깨달아 안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대학도 신학자도 없었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홀로 하나님을 찾아 나섰다. 아브라함은 길을 막는 모든 것들을 넘어서 결국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랍비들은 말하기를,“아브라함은 종교적인 천재”라고 한다. 즉 유일신 하나님을 발견하는데 신비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하지 않는다. 단순히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라고 한다. 비록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을 한다.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다시말하면, 지금부터 약 4000여년 전, 과학적이거나 수학적 연구의 결과가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영적 통찰력, 진리에 대한 분별력, 하나님께 향한 간절한 소망이 결국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좀더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이 이러한 생각을 맹목적으로 했을까? 아마도 앞에서 말한 예언자와 예술가 이야기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생각(영감)을 주시고, 아브라함은 이 영감을 받아드리는데 온 힘(지혜, 의지, 용기, 인내 등)을 다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랍비들은 아브라함을 예언자라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대변자 노릇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예언자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지난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고령임에도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건강한 가운데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