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2020년 9월 15일>*<코로라 바이러스 19속의 세계-中학자 "코로나19, 우한연구소서 발생…증거 곧 공개">*<코로라 바이러스 19속의 세계-'통곡의 벽' 앞에도 칸막이>* <지금 미국에선 . ..-기독교 세계관에서 점점 벗어나는 중>*<세상엔 이런 일도 . . .-모스코로 돌아간 소피아 사원>*<6.25 72주년 특별기획-기억해야 할 것들 >

<코로라 바이러스 19속의 세계 1 >

中학자 "코로나19, 우한연구소서 발생…증거 곧 공개"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연 발생한 것 아니다"
"비밀장소에서 화상브리핑으로 보고서 발표 예정"

옌 박사가 과거 인터뷰 중인 모습. <사진출처 :유튜브 캡쳐> 2020.09.13

[서울=뉴시스] 중국 출신 바이러스 학자 옌리멍 박사는지난 11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입증할 과학적 증거를 갖고 있으며 곧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출신 바이러스 학자 옌리멍 박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영국 ITV 방송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 시장에서 최초 발생했다는 대대적인 언론 보도는 '연막'이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옌 박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연구소)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면서 “이 연구소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우한의 연구소”라고 전했다. 이는 앞서 여러 차례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출 의혹이 제기된 우한바이러스연구소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비밀 장소에서 화상 브리핑을 통해 바이러스가 중국 실험실에서 발원했다는 보고서를 곧 발표할 것”이라면서 "생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보고서를 읽어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왜 중국의 연구소에서 나왔다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옌 박사는 또 “바이러스 기원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고, 이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폭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내가 후회할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옌 박사는 홍콩대 공중보건대학에서 바이러스학과 면역학을 전공했다.

코로나19가 세계로 퍼져나가기 전인 지난해 12월 31일 그는 지도교수로부터 우한에서 발생한 신비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그는 본토의 전문가들과 접촉을 하고 코로나19 확산과 관련된 1차 자료를 입수했다.

그는 당시 확진 사례는 이미 40건이었는데 이는 공식 발표인 27건보다 많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우한시 당국은 당시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 서열 정보를 보유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한시 당국은 지난 1월 중순에야 바이러스 유전자 서열 정보를 확보했다고 주장해 왔다.

옌 박사는 이런 사실을 자신의 지도교수에게 보고했고, 지도교수는 그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그는 사람 간 감염 사례가 이미 발생해 유행병이 될 것이라고 윗선에 알렸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그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지난 4월 말 홍콩을 떠나 미국으로 도피한 상태다.
그의 폭로에 대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어떤 지연이나 은폐도 없었다"면서 "우한에서 발병 사례가 확인되자마자 즉각 확산 방지를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없다”고 수차례 밝혔다.

홍콩대 측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주요 사실과 옌 박사의 주장은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옌 박사는 작년 12월부터 올 1월까지 코로나19 사람 간 전염 연구를 진행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입장은 소문과 같고,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부연했다.

그의 폭로로 잠잠했던 코로나19 기원 논쟁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sophis731@newsis.com

<코로라 바이러스 19속의 세계-2>

‘통곡의 벽’ 앞에도 칸막이

이스라엘 확진자 급증 속 감염 차단 위해 설치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에도 칸막이가 설치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만들어낸 진풍경이다.

이스라엘에서 사역 중인 유대학연구소장 이강근 목사는 지난 2일 ‘통곡의 벽도 칸막이 시대’라는 제목의 사진 한 장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지인 통곡의 벽을 배경으로 텅 빈 광장에 칸막이가 설치된 사진이었다. 이 목사는 6일 국민일보와 카카오톡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통곡의 벽 관리소에서 바둑판 칸막이를 설치했다”며 “설치된 지 2개월쯤 됐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경전을 크게 소리 내어 읽고 큰소리로 노래 부르고 기도하는 유대인들에게 코로나19는 더 치명적이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아예 성지 출입을 금지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다 100명 안팎의 사람들만 출입시켰고,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는 이렇게 칸막이를 설치해 최대한 감염을 차단하고 있다”며 “이런 진풍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가 전한 이스라엘의 상황은 심각하다. 최근 한 달간 거의 매일 1000명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일엔 하루 최대인 299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주요 산업인 관광도 타격을 입었다. 이 목사는 “지난 몇 달간 국경 및 공항을 폐쇄해 여행객은 전혀 들어오지 못한다”며 “순례객들 역시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교회든 회당이든 모임 인원이 제한되면서 대부분 한인 교회도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입력 : 2020-09-07 00:01/수정 : 2020-09-07 00:01

<지금 미국에선. . >

“미국인들 기독교 세계관에서 점점 벗어나는 중”

아리조나대 조사 결과

최근 아리조나 대학(UA)이 발표한 미국인의 세계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예수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 미국인들이 과거에 비해 줄었으며 사람이 단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9일 크리스천포스트는 이 대학의 문화연구센터가 발표한 ‘미국인 세계관 조사 2020(American Worldview Inventory 2020)’을 인용, 미국인의 3분의 2는 어떤 종류의 신앙이든 가지는 것을 좋게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이 응답한 기독교인은 68%였으며, 그 중 자신을 복음주의자로 밝힌 응답자는 56%, 오순절파라는 대답은 62%였다. 그밖에 주요 개신교에서는 67%가 이 같은 답에 동의했으며 가톨릭 신자는 77%가 여기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원과 관련해서 ‘의롭거나 선행(being or doing good)을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 개신교인은 44%, 천주교인은 70%가 ‘그렇다’고 답했다. 오순절파는 46%, 복음주의 계열은 41% 순으로 집계됐다.

또한 미국인의 58%는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의 기초가 하나님 이외의 요소나 원천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응답자의 77%는 ‘옳고 그름은 성경 이외의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인의 59%는 ‘성경이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참된 말씀이 아니’라고 답했으며 69%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답했다.

이 단체 이사인 조지 바르나는 최근 CP에 보낸 서한에서 “오늘날 미국인의 생각을 지배하는 요소들을 보면, 대부분은 삶의 목적이 자신에 대해 좋다고 느끼는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인들 대부분은 모든 신앙이 동등한 가치를 지녔고,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로 들어가는 것은 개인이 택한 수단에 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를 도덕적으로 인도하거나 성장시키는 절대적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바르나는 이어 “이런 삶의 철학은 미국의 존속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록인 성경과 미국 헌법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도덕적 기준과 전통을 버리고, 포용적이고 조건부적인 선호도로 대신함으로써, ‘미국의 실험(American experiment)’이 2세기 넘도록 성공할 수 있게 한 기초를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는 중대한 도덕적 기관들 중에 특히 가정과 교회가 깨어나서, 나라가 본 궤도에 오르도록 도와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설문조사는 올해 1월, 미국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UA 문화연구센터는 최근 수십 년간 변화해 온 미국인들의 세계관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해왔다.

바르나는 과거 CP와의 인터뷰에서, 30년 전 미국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으나, 현재는 문화의 많은 영역이 점점 더 자기 중심적이 돼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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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라 바이러스 19속의 세계>

코로나19 후유증, 박현 교수가 고백하며 쓴 글

박현(48) 부산대 기계공학부 겸임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지 160여일이 지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라몬유 대학에서 마케팅 전공 교수로 있는 그는 부산대 특강을 위해 지난 2월 미국을 거쳐 귀국했다. 이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때부터 ‘부산 47번째 환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완치 판정 받고 퇴원한 지 165일째, 요즘도 계속되는 후유증 증상은 크게 5가지이다.

머리가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하면서 기억이 힘들고 집중이 힘든 Brain Fog가 계속 되고 있다. 조금만 집중해도 머리만 아플 뿐 아니라, 가슴통증등 다른 증상까지 심해지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좋아지기도 하고, 방금 했던거나 할려고 하는 것을 기억 못하는 일이 너무 흔하다. 방금전에 비타민 약을 먹었는지도 기억 못하고, 뭘 찾을려고 구글을 열었다가도 뭘 찾을려고 했는지도 기억 못하고, 부엌에 갔다가 어 내가 왜 여기있지하는 순간도 있다. 미국 언론들을 보면 많은 회복자들이 brain fog 증상을 후유증으로 겪고 있다고 하고, 중국,영국 언론도 뇌질환으로 후유증을 겪는 회복자들이 많다는 보고들이 있었다.

가슴 통증은 여전히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여전히 통증이 심해지면 앉아 있으면 불편해지고, 누워서 쉬어야 하지만, 누우면 또 다른 불편함이 있다. 가슴통증도 후유증으로 중국,미국,영국등 해외 언론에 많이 언급되고 있다.
배의 통증도 여전히 왔다 갔다 하고, 여전히 속쓰림 증상도 있고, 특히 맹장이 있는 오른쪽 아랫배가 가끔 아픈 증상도 여전히 왔다 갔다 한다. 위장의 통증 또한 후유증으로 중국,미국,영국등 해외 언론에 많이 언급되고 있고, 맹장과 콩팥도 최근 미국 언론에 후유증으로 나왔었다.

여전히 피부 문제가 있다. 피부가 검붉은 색으로 변했던 건 많이 나아졌지만, 요즘도 피부가 갑자기 보라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피부에 보라색 점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혈액 및 혈관 문제일 수도 있다고 하고, 중국,미국,영국등 해외언론에 후유증으로 혈액 및 혈관문제로 회복자들이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보고들이 있었다. 그런데, 피부색뿐 아니라 건조증도 여전히 문제이다. 물을 많이 마시고 있지만, 여전히 짧은 팔 상의나 짧은 바지를 못 입는다. 4월에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잤다가 피부 건조증이 갑자기 심해졌고, 5월에 짧은 팔 상의, 짧은 바지 입은 하루만에 노출되었던 부위만 피부건조증이 심해졌고, 요즘도 선풍기 바람에 조금만 노출되어도 노출된 부위만 피부 건조 증세가 나타난다.

만성피로가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이도 여전히 좋았다가 나빴다를 반복한다. 예전에는 날 별로 좋은 날, 나쁜 날이 있었지만, 요즘은 아침에 좋았다가도 갑자기 오후에 나빠지기도 하면서 예측 불가이다. 뉴욕에 있는 미국 의사 친구는 예전부터 나의 후유증으로 신경계열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고, 해외언론들도 후유증으로 신경계열 문제를 보고하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한시간 산책으로 체력 관리를 할려고 하는데, 요즘도 마스크 안 쓰고 산책 나오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마스크도 안쓰고 전화로 큰 소리로 잡담하면서 바로 옆으로 걸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매일 적어도 1,2명은 있다. 산책때 지하철역을 지나가는데,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사람중에 마스크 안 쓴 사람들도 꽤 있다. "완치자"라는 말에 중,장기 후유증을 겪는 회복자들이 많다는 걸 모르고 아직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세상엔 이런 일도. . . >

모스크로 돌아간 소피아 사원의

파란만장한 1500년 역사!

터키의 독재자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슬람 교도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박물관으로 쓰던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용도변경하였다. 1500년 이상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가는 위대한 건물의 이력서에 또 다른 기록이 추가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교회-이슬람 모스크-박물관-이슬람 모스크로 변신했지만 서기 537년에 준공된 모습은 그대로이다. 건물에 입혀진 인간의 역사만 변할 뿐이다.

  서기 312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전투를 앞두고 하늘에 뜬 십자가를 보았다. 이 전투에서 이긴 그는 기독교를 허용하여 國敎(국교)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 자신은 서기 337년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서기 324년 그는 공동황제 리치니우스를 물리치고 단독황제가 된 직후 수도를 로마에서 지금의 이스탄불로 옮겼다.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렀다. 콘스탄티노플은 1천 여년이 지나 이슬람에 정복되자 1453년에 오스만 터키에 의해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기 330년에 로마의 수도가 된 도시는 콘스탄티노플로 불리게 되었다. 그 뒤 지금까지 1690여 년간 비잔틴 제국(東로마제국), 오스만 터키 제국(이때부터 이스탄불로 改名), 터키 공화국을 거치면서 수도로 계속 기능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로마-기독교 문명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중동과 동양으로 열려 있는 도시라는 利點(이점)으로 富(부)의 중심이 되었다. 약 천년간 콘스탄티노플(또는 이스탄불)은 富, 문명, 인구의 규모와 다양성에서 세계최대 도시였다.

  이스탄불의 이런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 기록하고 버텨온 건물이 바로 聖(성)소피아 사원이다.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의 그리스 단어이다.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를 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교회로 지었다가 1453년 오스만 터키 지배로 넘어가면서 용도는 모스크로 바뀌었고, 케말 파샤 주도의 터키 공화국 건국 이후 정교분리에 의하여 박물관으로 바뀌었다가 최근 독재자 에르도안에 의하여 모스크로 돌아갔다. 유럽의 반발이 심하다.
  
서기 537년에 준공된 뒤 약 천년간 유럽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 100X150m의 평면적인데 돔의 높이는 약 56m이고 돔의 지름은 약 33m이다. 16세기 세빌리아 성당이 완공되기까지 약 천년간 세계최대의 교회였다.

이 건물과 관계가 깊은 3大 인물이 있다. 소피아 사원을 만든 東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직후 이 성당을 부수지 않고 이슬람의 예배당인 모스크로 바꾼 오스만 터키의 메흐메트 2세, 그리고 터키를 공화국으로 개조하고 政敎(정교)분리의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바꾼 케말 파샤(아타 투르크)가 그들이다.

오스만 터키의 위대성은 이슬람의 宗主國(종주국)이면서도 기독교와 유태교를 허용했고 그리스-로마문화와 단절하지 않고 동양유목민족(투르크族) 문화의 바탕 위에 동서양을 융합했다는 점이다. 터키의 독재자로 비난받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슬람 교도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박물관으로 쓰던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용도변경하였다. 기독교와 유대교에 관대하였고 동서양 문명의 융합에 크게 기여하였던 오스만 터키의 위대함에 누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6·25 70주년 특별기획-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서울이 함락되는 데 걸린 시간
3일

전세를 뒤바꾼 작전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이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인천에 상륙, 낙동강까지 남진한 인민군의 허리를 절단, 섬멸한다는 계획으로 세워진 군사작전이다.

맥아더 장군은 누구
풀네임은 더글라스 맥아더. 태평양전쟁 미군 최고사령관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을 공격해 항복시키고 일본 점령군 최고 사령관이 됐다. 6·25 전쟁 때는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했다.

한국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영화 ‘고지전’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백마고지’를 꼽는다. 국군 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이 벌인 치열한 전투다. 전투가 벌어진 10일 내내 백마고지의 주인이 24차례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던 전투다.

왜 치열해야 했나
백마고지는 서울로 통하는 주요 보급로를 가진 중요한 군사요충지이자 곡창지대였다. 또한 김화-평강-철원 등 철의 삼각지대 중 하나인 철원까지 위협받게 돼 꼭 확보해야 했던 고지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투
장진호 전투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겨울 전투로 꼽힌다. 연합군 3만과 중공군 10만명이 맞붙었다. 이 전투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는데 추위 때문에 동사한 군인만 수천명에 달한다.

당시 남북 군사력 비교(육군)
남한 9만6140명, 북한은 2배로 19만1680명에 달했다.

군장비 비교
남한은 곡사포 91문, 대전차포 140문, 박격포 960문, 장갑차 27대, 전차는 없었다. 그에비해 북한은 곡사포 552문, 전차포 550문, 박격포 1728문, 장갑차 54대, 전차가 242대를 보유하고 있어 엄청난 군사력 차이를 보였다.

38선과 휴전선의 차이
38선과 휴전선은 다르다. 38선은 제 2차 세계대전을 끝내면서 미소 양국이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눈 군사분계선이다. 휴전선은 1953년 6·25전쟁 이후 휴전 협정을 맺을 때 북한과 남한의 경계를 나누기 위해 새롭게 지정한 기준선이다.

비무장지대
비무장지대(DMZ)는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한이 각각 2 km씩 완충지대를 설정해 사람이 무기를 가지고 들어 갈수 없는 지역으로 약속한 곳이다.

정전협상 기간은
1951년 7월 10일 시작됐지만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1953년 7월 27일이 되어서야 끝났다.

정전협상 주요 안건은
군사분계선 설정, 외국 군대 철수, 정전감시위원회 설치, 포로송환 방식이 주용 쟁점이었다.

정전협상에 한국이 빠진 이유
한국 정부가 북진 통일을 고집, 서명을 거부했다.

정전협상에 사인한 사람은
인민군 사령관 김일성, 중국 인민 의용군 사령, 미합참의장이 사인했다.

전쟁이 더 일찍 끝나지 않은 이유
전쟁은 1951년 마무리될 수 있었지만 정전 협상으로 지연됐다. 특히 포로 송환문제와 관련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유엔군은 포로들의 선택권을 주장했다.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국가를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 그에 비해 북한군·중국군은 포로의 의사와 상관없이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었다.

정전회담이 53년 6월 중단됐던 이유
유엔군의 포로 가운데 한국이나 대만 등에 남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반공포로라고 불렀는데 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유엔군의 동의 없이 2만 7000여 반공포로를 석방했다. 반공포로들이 자유진영에 남지 못할 것을 우려한 결단이었지만, 전 세계가 이 대통령의 조치에 경악했고 이로 인해 회담마저 중단됐다.

경제적 피해 규모는
재산 피해도 추산이 어려울 정도다. 북한군에 밀려 마지막 교두보로 삼았던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초토화됐다. 제조업 42%가 파괴됐고, 군사작전에 이용될 수 있는 도로, 철도, 교량, 항만, 학교 등은 물론 가옥도 대부분 파괴돼 사회 경제체제의 기반과 함께 국민은 생활터전을 잃었다.

전쟁 직후인 1953년 한국 국민총소득은
1953년 1인당 76달러.

1953년 국내총생산(GDP)은
1953년 477억 원에서 2019년 현재 1919조 원으로 4만 배 가까이 증가했다.

6.25 이산가족 수
1988년 이산가족 신청을 받기 시작한 이래 지난 5월까지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이산가족 등록인 수는 13만3386명이다

6·25 발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전쟁기간은
6·25 발발부터 정전협상까지 1129일. 3년 1개월 2일이다.

6·25 참전국가는
미국을 포함 16개국에서 전투병력, 6개국에서 의료지원팀을 파병했다. 이외에도 40개국이 물자 수송을 지원하고 6개국이 전후 복구를 지원하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남한을 지원했다.

병력과 의료 참전국은
미국·영국·호주·네덜란드·캐나다·뉴질랜드·프랑스·필리핀·터키·태국·그리스·남아공·벨기에·룩셈부르크·콜롬비아·에티오피아. 의료지원국은 스웨덴·인도·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독일.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 역시 미국이다. 179만 명을 파병했다.

참전한 유엔군 숫자는- 연인원 기준으로 196만 명에 달한다.

6·25 전쟁기간 사망한 군인 수
한국군 13만7899명, 미군 3만6940명, 유엔군 3730명이 사망했다.

유엔군 실종자와 포로- 실종자와 포로 합쳐 9931명.

민간인 사망자 수- 남한 민간인 사망자는 24만 4663명.

학살된 민간인 수- 12만8936 명.

행방불명된 남한 민간인 수- 30만3212명


<코로라 바이러스 19속의 세계>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