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2022년 9월 15일*<이달의 기도-모든 필요에 도움이 되시는 주님-중요한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 드리는 기도>*<의문이 생기십니까?-왜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 Son of Man)라고 부르셨나? (마가복음 2장 10절)>* <이달의 기도-가족여행을 위한 기도>*<의문이 생기십니까?-영생을 얻으려면 선행이 필요한가?>* <이달의 기도-외로울 때 드리는 기도>*<의문이 생기십니까?-누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나?>

<이달의 기도>

모든 필요에 도움이 되시는 주님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 드리는 기도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명기 31장 6절)

사랑의 주님!

지금 제가 하고저 하는 결정이
저의 삶과 저희 가족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것이기에
저는 무척 긴장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진정시켜 주시고
당신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게 도와주셔서
결정의 순간에 옳바른 해답을 알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응답이 왔을 때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A Prayer for Every Need-Guideposts

 

<의문이 생기십니까?>

왜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 Son of Man)라고 부르셨나? (마가복음 2장 10절)

예수께서는 이 신비스러운 구절로 자신을 들어내 보이기도 하셨고 자신을 숨기기도 하셨다.

예수는 분명히 인간이었다. 그러나 또한 신이셨다. 그의 선교활동은 꾸준하게 이 사실을 보여주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려 하셨다. 그러나 예수를 인간을 위하여 그의 목숨을 내어 주기로 되어있는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이 명칭 자체가 그의 신분을 들어내는 것이었다.

인자란 말이 마가복음에 14번 나오는데 예수께서 자신을 표현할 때 가장 좋아하였던 명칭이다. 그 명칭 가운데는 기꺼이 종의 역할을 감당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때때로 이 명칭은 그의 신적인 권위, 그의 희생적인 역할 그리고 그가 돌아오셨을 때의 영광 등을 서술하는데 사용되었다. 마가복음 13:26과 14:62에서는 이 명칭을 사용함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다니엘 서 7장에 나오는 하나님을 대신해서이 세상에 오셔서 통치하고 심판하는 권리를 부여받은 하늘이 권위를 가진 인물의 성취로 보았다.

이 명칭은 예수의 하늘과 지상의 두 면을 잘 융합하였다. 이 신적인 본질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위를 허용하셨다.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려는 그의 지상적인 목적때문에 그는 고난을 당해야 했고 배신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으며 결국은 다시 살아나셨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께서 이 명칭을 사용한 의미를 금방 이해하기가 어려웠겠지만 예수께서는 이 명칭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권위를 주장하고,능력을 보여주며, 책임을 지는데 사용하였다.

*The Quest Study Bible 참조

<이달의 기도>

가족여행을 위한 기도

여호와께서 너를 모든 재앙에서 지켜주시고
네 목숨을 지키시리라
떠날 때에도 돌아 올 때에도 너를 항상 지켜 주시리라
이제부터 영원히.(시편 121편 7-8)

사랑의 예수님,
우리가 떠나려고 하는 여행길,
저희들을 지켜주세요.
우리들이 지칠때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들을 도와주시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당신이 사랑으로 같이 하심을
기억하게 도와주세요.

우리들이 함께 보내는 여행이
의미 있고, 기억할만한 시간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

 

<의문이 생기십니까?>

영생을 얻으려면 선행이 필요한가?(마태복음 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얻기위한 기본으로 선한 행실들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시는 않았다. 성경은 분명하게 영생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디도서 3:4-5)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우리의 행함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았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선행을 했으면 하고 원하신다. (에배소 2:8-10)

진정한 믿음이란 신앙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통해 나타나기 마련이지(요한 1서 3:16-18) 구원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사람들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곤궁한 사람들을 돕는데서도 앞장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선행들이 진정한 종교의 핵심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중에 돌보고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 1:27)

<이달의 기도>

외로울 때 드리는 기도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매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다.
(이사야 58장 11절)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무척 외로움을 느낍니다.
때때로 저는 아무도 저를 돌보아 주고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저는 깊은 우정과 진한 관계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저로하여금 당신께서 저를 돌보아 주시며
결코 저를 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사랑과 이해심으로 저를 감싸고
위로하여 주옵소서
제가 무력감을 느낄 때
당신의 능력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시고
당신의 은총이 넉넉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 멘

<의문이 생기십니까?>

누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나?(출애급기 10장 1절)  

만약 바로가 자기 마음대로 행한 행동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는 그의 행위에 합당한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가 단순히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였다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 보면 바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들은 전적으로 바로의 자의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시사하고 있다. 성경은 바로의 간악한 마음을 때에 따라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첫 째는 중립적 감각으로(출애급기 7:13-14; 8:19) 묘사한 것이고, 둘째는 바로왕 자신의 선택을 강조한 것(출애급기 8:15)이며 세 번째는 하나님의 통치행위를(출애급기 :12) 강조한 것이다.

몇 몇 성경구절들에서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였다고 기술한 반면 다른 아홉 곳에서는 바로가 마음이 강팍해졌다거나 주위 환경이 바로로 하여금 강팍하게 도왔다고 하였다(출애급기 7:13,14,22. 8:15,19,32; 9:7,34,355) 하나님이 특별히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든 것은 여섯 번째 재앙(9:12) 이후로 그 후 몇 번 바로는 아주 완고한 모습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의 결론은 하나님에 거역하는 위험성은 너무 지대하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 자신들의 선택권에 맡기신다는 것이다(로마서 1:24,26,28을 참조하라)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한 사건에 하나님과 바로가 동시에 개입되어 있다는데에 아무런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듯 그들에게 있어서 바로의 조건들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통치계획 모두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바로는 하나님의 행동의 불운한 희생자는 아니었다. 하나님은 바로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에 반항하도록 끌어들였지만 바로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결과적으로 바로는 자신의 불신앙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압박한 책임을 지게되었다. 동시에 다른 수준에서는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이 일 이후에 모세는 바로의 강팍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