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발행인의 편지/2007년 11월 1일>

독자 여러분께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은퇴를 맞으면서 아직은 건강한데, 평균수명이 자꾸 올라가고 있는데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얼마가 될런지 모르지만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가를 생각하면서 현재의 여건 아래서 즐겁게, 무리하지 않게,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때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시도했었으나(1980년도 초반 4년동안 <크리스쳔리뷰>라는 잡지를 시카고에서 발간) 이민생활이 어려워 접어둘 수 밖에 없었든 잡지 만들기가 먼저 떠올랐지만 그런것을 할만한 돈은 벌어 놓지 못했으니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일찌감치 리스트에서 빼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같은 맥락이면서도 별로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인터넷으로 만드는 잡지 webzine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라면 겨우 컴맹을 면한 극초보였으니 컴퓨터 기술자를 고용하여 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무리한 일이였기에 성큼 마음을 정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web-page를 만들어 올리는 일을 직접 한다면 무리하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을가? 하는 것이였습니다. 시간도 선용하고 취미도 살리고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서 web-page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신속성과 간단명료함을 생명으로 하는 web의 속성탓인지 거의 매일 새 기사들이 뜨는 신문형의 web-site들은 활성화 되고 있는데 한달에 한,두번 기사가 바뀌며 긴 글들을 싣게 되는 잡지형태의 web-site들은 1,2년 하다가 중단해 버리고 말았거나 인쇄매체의 보조 광고수단으로 방문자들을 의식하지 않은채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인터넷 잡지의 정형이랄까 모델 역시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우선 만드는 법을 알아야 반장이라도 하겠기에 컴퓨터 학원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구세군 센터에서 처음으로 개설한 <웹사이트 만들기> 코스가 있어서 컴퓨터를 전공한 젊은 선생에게서 처음부터 하나씩 배울수가 있었습니다. 한 두어 학기 공부하면 기본적인 웹페이지를 만들수 있겠지 생각하였지만 하면 할수록 배워야 할 기본 기술들이 너무 많아서 네 학기만에 web-page를 만들어 작년 10월말에 web-site에 올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웹 페이지라는게 제가 생각하는 잡지의 골격을 갖춘것이 아니고 교실에서 실습하면서 샘플로 만들어 본 첫 Home 페이지와 그 뒤에두,세페이지 이기에 그후 수정 보완의 시험기간을 거쳐 금년 1월 1일에 미숙하지만 제가 의도하였든 골격을 갖춘 <늘푸른나무>(www.webegt.com) 를 올릴수 있었습니다. 그후 매달 1일과 15일 새글들을 교체하면서 그때 그때 배운 기술을 활용하여 지형을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왔는데 저로서는 꾸준한 진화의 과정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발간 1주년을 11월로 하느냐? 1월로 하느냐 하는 작은 고민이 있었습니다만 노학생이 4학기 동안이나 쉽지 않게 공부한 끝에 첫 web-page를 올렸을때의 흥분이나 제나름대로 webzine의 format이나 내용을 만들어 내놓았을때의 설레임등이 다같이 중요하였기에 이달에는 1년을 맞는 저의 소감을, 1월에는 웹페이지의 새로운 변신을 통해 1주년을 기념할가 합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초라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로서는 '즐겁게, 무리하지 않게,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면서' 보람을 느낄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웹사이트만큼 깔끔하지는 못해도 계속 하다보면 그렇게 만들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분들이 제가 올리는 글들에 공감하면서 다시 찾아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늘푸른나무>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상록수(常綠樹)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로는 Evergreen Tree라고 하여 여기에서 이니시얼을 뽑아 web을 첨부하여 webegt로 늘푸른나무의 주소를 정했습니다.(www.webegt.com) 농촌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을 常綠樹라 이름 붙였든 심훈의 소설과는 달리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나이를 잊고 백발임에도 불구하고 늘 푸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늘푸른나무>로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그저 그 푸르름을 간직하고, 더욱 짙어지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읽을거리들을 제공하고 교환하는 장으로서 <늘푸른나무>를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 시니어들을 위한 webzine이지만 시니어니, 실버니 하는 단어들은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생물학적인 나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저의 독자는 그저 '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사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그에 맞는 글들을 올리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또 그러한 분들의 글이나 작품들을 환영합니다. 이것 만큼은 여러분들의 신세를 져야겠으며 질수록 내용이 더 알차지고 기쁨이 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동안 컴퓨터 기술을 배우고 실을 글들을 모으느라고 바빠 별로 신경을 못쓰고 지내다가도 가끔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질문을 받을때, 이 사람이면 인터넷을 사용하겠지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저는 컴맹이에요'하고 대답할때 그리고 '요즘 바빠서 못들어가 보았는데! 계속 하시지요?' 하는 인사를 받을때 '내가 괜한 일을 하는게 아닌가,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 . .'하는 생각을 할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방문자를 count 하는 란을 만들지 못한것은 그 프로그램에 대한 것을 배우지 못한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부터 설치했다가 encourage 보다도 discourage 당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10월초에 counter를 설치하고 지난 한달동안 300여분이 저의 사이트를 찾아주셨음을 확인했습니다. 광고도, link도 전혀 하지 못한 상태에서 로칼 신문기사로도 소개되지 않았고 그저 아름 아름으로 알려진 사이트가 그것도 한달에 2번 새로운 내용이 뜰뿐인데 일부러 주소를 치고 찾아오시는 방문객이 300여명이 된다는 것은 저로서는 큰 보람이요 기드온의 300명 용사 못지 않는 힘으로 보다 좋은 잡지를 위해 저의 노력을 모두 바쳐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동안 제대로 못한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또한 새해의 과제이겠지요.

공감대를 확인한 이상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생명을 허락하시는 한 열심히 보다 좋은 잡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글로, 작품으로 도와 주신분들, 도움말을 해 주신분들 , 여러모로 협조해 주신분들께 감사드리며 '나이를 잊고 무모하게 달려든' 노 학생에게 인내로 첨단 기술을 가르쳐 준 '구세군 메이훼어 쎈터'의 Director David Kim 선생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2007년 11월 1일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사람 김 상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