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Gallery/주제별 명화감상/2022년 1월 1일>

주제별 명화 감상

미술작품을 분류하는데는 시대적 배경과 화풍에 따라서 나누기도 하지만 작품의 주제나 기법 또는 재료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그동안 연재해 온 것은 시대적 배경을 따라 화풍별로 작품들을 분류해 보았는데 복잡하고 골치아픈 것이었다. 앞으로는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주제별로 작품들을 분류하고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감상해 보려고 한다.

열 두번째 주제: 역사화(歷史畵, History)

미술사에 보면 ‘역사’라는 것이 특별히 그림의 소재로 유행하며 그림의 주제가 된 적이 있었다. 신화나 종교화 그리고 전쟁화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림의 테마로 즐겨 사용되었지만 역사화라는 것이 특히 관심을 갖게된 것은 근대의 일로 19세기에 특별히 유행하며 회화의 주제가 되었다.

역사화란 정물이나 초상화와 같이 구체적이고 정적인 주제가 아니라 묘사된 이야기의 한 순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역사화란 용어는 "이야기" 또는 "내러티브"를 의미하는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historia 라는 단어를 넓은 의미에서 합성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이야기 그림"을 의미한다. 

현대 영어에서 역사화는 좁은 의미로 역사의 장면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19세기 예술의 경우에는 더 넓은 의미의 역사 회화에 포함되는 종교적, 신화적, 우화적 주제를 제외하였는데 19세기는 역사화가 가장 흔한 주제였다.
‘역사화’와 ‘역사적 그림”은 혼동되어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구태어 구분하자면 ‘역사적 그림’이란 세속적 역사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을 뜻하며 19세기에 유행한 것인데 반해 ‘역사화’란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일부 화가들이 선호하던 역사적 회화이다.

르네상스기의 Alberti(1404-1472)는 <On Painting>이라고 하는 팜프렛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역사화야 말로 최고의 예술형태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역사화가 따라야 할 규칙들을 요약하였는데 독창성과, 다른 표정과 몸짓과 반응을 보여주는 여러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알베티는 역사화는 가장 어려운 형태의 그림이지만 관람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가능성은 지대하다고 하였다

‘역사화’는 ‘역사적인 그림”과 혼동되어 사용되었으며 특히 20세기 이전가지 그러하였다. 구태어 차이점을 들자면 “역사적인 그림”은 어떤 스토리가 있던지 없던지 상관 없이 세속적인 역사의 장면들을? 그린것으로 특히 19세기에 이런 역사적인 그림들이 특별한 장르로 발전하였다.

티치아노의 <디아나와 악테온 (Diana and Actaeon)>

Diana와 Actaeon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Titian의 그림으로 1556-1559 년에 완성되었으며 Titian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여신 다이아나와 그녀의 님프가 목욕을하는 곳에서 헌터 Actaeon이 터지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신화 이야기의 극적인 순간을 인물화, 풍경화 및 정물의 요소와 함께 보여주는 고전적인 역사화 . 6ft 1in x 6ft 8in, 1556년?1559년, 유성페인트. Scottish National Gallery (1945년?)에 소장되어 있다.

렘브란트의 <은화 30개 를 돌려주는 유다> 1629년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Noorth Yorkwhire의 Lythe에 있는 Mulgrave성에 소장되어 있다.
마태복음 27장 3절에 나오는 가롯 유다가 은화 30량을 받고 예수를 배신한 것을 회개하여 은화 30량을 대제사장들에게 돌려주는 장면를 그린 그림으로 1629년 작품, 비교적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비록 성경에서 소재를 얻었지만 종교화라고 부르기에는 적당하지 않으며 전형적인 역사화로서 16세기 이태리의 위대한 화가의 감정표현들이 일품이다.

외전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외젠 들라크루아가 프랑스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1830년에 그린 그림이다. 그림 가운데 여성은 자유를 상징하며, 한 손에는 프랑스 국기를 다른 손에는 총검을 휘두르고 있다. 이 작품은 들라크루아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8ft 6in x 10ft 8in 낭만주의 시대의 역사화 , 유성페인트, 1830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

 


 

열 한번째 주제: 전쟁(War)

죤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의 <Gassed> 7ft 7in x 20ft 1in
의 큰 작품으로 1918년?1919년 3월에 제작된 유화(Oil on canvas)이다.

1 차 세계 대전 동안 '겨자 가스' 공격의 여파를 묘사하고, 부상당한 병사들의 모습을 부각시켜서 전쟁의 부당성을 고발한 '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

초기 동굴이나 암반미술 이래 전쟁은 예술에 대한 강력한 자극제 역할을 해왔다. 전쟁은 그 극적인 전개때문에 미화되고 부당하게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그에 저항하기도 하고 또는 객관적으로 다큐멘트화 되기도 하였다.

현대 이전에도 예술가들은 전쟁에 대한 혐오, 충격 또는 슬픔 등을 표현하였다. 미래주의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1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기 이전에는 전쟁이란 아이디어를 열열히 지지하였다.

고상한 기마상, 프리즈나 대리석 기념비 등은 전투를 그리고 있으며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영웅들이나 전승기념탑들이 만들어졌는가 하면 동상이나 전쟁장면등은 많은 문화권이나 시대에 보편적인 것들이다.

고대세계에서부터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은 전쟁드라마나 장면에 열광하였고, 군사행동을 미화하는 명작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네델란드의 .hieronymus Bosch 와 brugel the Elder같은 화가들( massacre of the Innocents)은 전쟁의 사악함을 폭로하였는가 하면 dadaist 들은 전쟁의 무분별함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첫 번째 예술가 그릅들이다.

전쟁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분명히 하면서 표현주의자들이나 피카소같은 많은 예술가들이 관람자들과 사회기득권자들에게 다같이 도전하였다. 공식적으로 두 전쟁자료들을 접했던 많은 사람들은 초기의 예술가들이 영웅적인 애국심이라고 해석했던 사건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전쟁의 경악스러움에 주체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한국에서의 학살(The Massacle in Korea) 1951 3ft.7in x 6ft.11in *오른쪽-게르니카 (Guernica)1937 305.5x137.4 in. 마드리드국립소피아왕비 예술센터 소장.

스페인이 낳은 세기의 거장 “파브로 피카소”(Pabolo Picasso, 1881-1974)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다고 하는데 수많은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강한 호소력을 지닌 작품은 단연 벽화 형식의 “게르니카”(Guernica)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게르니카〉(오른쪽)는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1937년 4월 26일 24대의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신문으로 보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한국에서의 학살>(왼쪽 그림)은 파블로 피카소가 1951년 그린 그림으로 6.25전쟁 와중 미군에 의한 학살을 보여준다.

자크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의 Napoleon Crossing the Alps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신고전주의 양식에 속하는 유력한 프랑스 화가로, 이 시대의 탁월한 화가로 평가 받는다.

<알프스를 가로 지르는 나폴레옹(Napoleon Crossing the Alps)>은 1801 년에서 1805 년 사이에 프랑스 예술가 인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캔버스 승마 초상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나 근세 이전 전쟁이 대량살인을 가져오기 전에는 전쟁을 미화하고 장군들을 기념하는 전쟁화들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근세에 와서 학살이 대형화하면서 전쟁을 고발하는 전쟁화로 바뀌었다.

 

프랜시스코 드 고야(Francisco de Goya.)의 <1808년 5월 3일 (The Third of May 1808) 1814년

《1808년 5월 3일》또는 《1808년 5월 3일의 학살》로 불리는 이 작품은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1814년에 그린 작품이다. 8ft 10inx 11ft 5 in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야는 궁정화가이자 기록화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1808년 5월 3일에 일어난 프랑스군의 마드리드 학살사건을 묘사한 그림이다.

 

열 번째 주제:풍속화(Genre)

문학이나 예술에서 장르( genre)라고 하면 흔히들 “장르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경우와 같이 분야나 양식 또는 범주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술에서는 장르라고 하면 ‘풍속화’라고 하는 특수한 주제를 다루는 그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가운데서 장면들을 그린 풍속화를 장르라고 부른다.

그런점에서 장르미술의 주제는 실내 배경이나 장식, 시장풍경이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 같이 평범한 일상들이다. 이와 같은 그림들은 대개 이념적인 그림들이 아니라 생동적이다. 장르 그림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일상생활을 그저 묘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16세기에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Pieter Brugel the Elder)는 농민들의 풍속화들을 주로 그렸으며 네델란드의 황금시대 미술가들은 일상생활의 과업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주로 그렷다. 영국에서는 화가요 조각가였던 윌리암 호가스(William Hogarth)가 ‘현대 도덕적 주제들’이라 부르는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었는데 현대이야기에서 이 사회의 모순들을 묘사하고 있다.

*피터르 브뤼헐 아우더 (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30-1569)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은 브라반트 공국의 화가로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인 그는 태어난 마을 이름을 따 성을 삼았다. 1551년 안트베르펀의 화가 조합에 들어간 후, 이탈리아·프랑스에서 유학하였다. 

Wedding Dance in the Open Air.  Pieter Bruegel the Elder:

웨딩 댄스는 Pieter Bruegel the Elder의 1566 년판 유화. 농촌에서의 결혼식 피로연 풍경을 그린 풍속화. 설명이 필요없는 역동적인 그림이다. 1930년에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있는 디트로이트 미술관으로 가져왔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네덜란드출신 화가이다. 그는 네덜란드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네덜란드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로 델프트에서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델프트의 페르메이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The Milkmaid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

The Kitchen Maid라고도하는 Milkmaid는 네덜란드 예술가 Johannes Vermeer의 "유제품", 즉 가정식 주방 메이드의 유채 그림이다’.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 박물관에 있으며, "박물관에서 가장 훌륭한 명소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1657-1658년 제작  1ft 6in x 1ft 4in, Oil on Canvas.

*윌리엄 호가스 (William Hogarth, 1697-1764)

윌리엄 호가스는 로코코 시대의 영국의 화가이다. 영국은, 회화사에서 오랫동안 불모지로,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를 통해서 한스 홀바인, 안토니 반 다이크 등의 외국 출신의 화가를 제외하고, 눈여겨 볼 화가가 없었다. 

Beer Street and Gin Lane

Beer Street와 Gin Lane은 1751 년 영국 예술가 William Hogarth가 ‘진법안 (Gin Act)’이 통과될것을 예상하여 발행 한 두 장의 지문이다. 서로 나란히 볼 수 있도록 설계된 그들은 맥주 소비의 장점과 대조적으로 진 소비의 악을 묘사하고 있다. 가난과 범죄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그린 풍속도. 동판에 새긴 판각화. 357x305 cm. 개인 소장품


아홉 번째 주제; 색깔 또는 빛깔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색깔이 특히 선명하고 값싼 인공적인 색소들의 보급으로 때로는 그림의 주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로 식물이나 광물에서 추출된 색소들은 값이 비싸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제한적이고 일치하지 않아 별로 활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1794년 이후 인공적인 색소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810년 요한 볼프강 괴테가 색깔에 관하여 “색깔이 감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림에서 사용하면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 이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베네치안 르네상스부터 빛나는 효과들을 내기위해 풍성한 색소들을 계속 덧칠해졌으며 후에는 낭만주의자들이 감상적인 반응을 떠올려주기 위해 강열한 색깔들을 선위에 그려넣었다.

1848년에 설립된 라파엘 이전 그릎들은 축축한 흰 운동장에 풍부한 색깔들을 사용하였고 그 후에 나타난 인상주의자들, 후기 인상파들과 새로운 인상파들은 그들의 그림이 더욱 활기차게 하기 위해서 동시대비의 법칙같은 이론을 따라 작품을 제작하였다. Seurat, Gauguin, Van Gogh 그리고 마티스 등은 색깔을 자기 작품들의 테마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조치는 야수파, 오르피즘 그리고 추상적 표현주의에 영감을 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 색깔에 초점을 주었던 운동이 1912년 경 발전하였고 시인이요 예술평론가였던 Guilliaume Apollinaire에 의해 오르피즘이라고 불려졌는데 그것은 고대희랍의 시인이요 음악가였던 Orpheus의 이름을 딴 것으로 큐비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 작가들- Georges Seurat, Henry Matisse, Piet Mondrian, Franz Marc

프란즈 마르크의 <In the Rain>.

 

 

In the Rain, Franz Marc, 1912, Oil on Canvas,
81k106 cm(32x41 in)
Stadtische Galerie in Lenbachhaus,, Munich. Germany)

프란즈 마르크(Franz Marc, 1880- 1916)는 동물 그림으로 강렬한 신비주의를 보여준 독일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로 유명하다. 독일 표현주의 예술가 협회인 Der Blaue Reiter ("The Blue Rider").의 창립멤버였다. 마르크의 초기 작품은 자연주의적 학문적 스타일로 1903년 프랑스 인상파 그림을 발견한 후 그는 단순화된 선과 생생한 색상을 사용하여 보다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빈센트 반 고흐의 강렬하고 감정적인 붓놀림이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오랫동안 동양 철학과 종교에 관심을 갖고 있던 Marc는 예술이 자연 형태의 객관적인 모습을 복사하는 대신 자연 형태의 영적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는 칸딘스키의 개념에 열성적으로 반응했다. Kandinsky와 Marc는 신비로운 에너지가 추상화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Marc는 문명 이 자연의 영적 힘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파괴한다고 믿었다.

앙드에 드롱의 <항구의 보트들>  

 

 

*Boats at Collioure Andre Derain, 1905, oil on canvas 38.4x46 cm
Oil on canvas, Private colletion

앙드레 드랭(1880-1954)은 프랑스의 예술가, 화가, 조각가이다. 그는 모리스와의 교제를 통해 그의 초기 스타일을 발전시켰으며 제자인 앙리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를 주창하였다. 그는 때로는 풍경이나 인물을 아주 눈부시게 그리기도하고 때로는 순수한 색깔로 그리기도 하였으며 부러진 붓놀림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즉흥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후기 인상파의 폴 세잔느의 영향을 받아 야수파와 작별하고 입체파에 몰두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신고전주의 그리고 탈인상주의 등을 거쳐 근대미술의 기수가 되었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6ft 10in x 10ft 1 in, Oil on canvas, 1884-1886, 시카고 미술관

점묘법, 후기인상주의, 근대미술

조르주 쇠라(1859-1891)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이다. 그는 색깔이론에 몰두하여 부드러운 질감의 색조로 된 그림들을 그렸는데 그의 가장 유명한 대작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색깔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신인상주의의 시작으로 현대 예술의 방향을 바꾸었고, 19세기 회화의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예술사조는 점묘법을 사용한 인상주의 또는 후기인상주의라고 하며 또는 탈인상주의, 신고전주의라고도 한다.


여덟 번째 주제: 풍경화(산수화)

자연풍경은 무엇보다도 그림의 소재로 적합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풍경화나 산수화가 그림의 주제가 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중국 송나라 때(420-479)에 이미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표현한 산수화 또는 풍경화가 발달하였다. 이들 산수화들은 비록 고대 로마의 벽화들이 가지고 있던 상상적인 전망을 특징으로 하고는 있지만 풍경화를 주제로 한 첫 번째 그림들 가운데 속한다고 하겠다.

 

곽희,조춘도(早春圖),송시대 .곽희는산수화에 있어서 북송회화의 전환점에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풍경화의 기본 요소들은 다른 문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구성되었지만 17세기 이전에 서방에서 만들어진 풍경화들은 풍경자체로서 주체를 확보하지 못하고 주변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말하자면 성경의 주제나 신화의 인물들을 그릴 때 또는 풍자적인 그림이나 초상화를 그릴 때의 배경으로 풍경화가 등장하는 정도였다.

후에 몇몇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풍경화를 공부하여 그것들을 성경의 장면을 그릴때 구체적인 배경으로 사용하였다. 보다 흥미로운 풍경화 그림들은 Dutdh Golden Age에 은유적인 의미가 없는 순수한 자연풍경을 그린 Jacob van Ruisdael(1628-1682) 같은 화가에 의해 나타났다.

Claude Lorrain(1600-162)의 Pastoral Landscape,(왼쪽) Jacob van Ruisdael(1628-1682)의 Dune Landscape(오른쪽)

풍경화는 고전적인 화가들인 Claude Lorrain(1600-162) 등에 의해 인기를 끌게되었고 Canaletto(1697-1768,) 와 Francesco Guardi(1712-1793) 같은 화가들이 순회여행을 하면서 그들이 본 풍경들을 회상하여 그림으로서 풍경화 인기를 가져오는 전기를 만들었다.

*프란체스코 콰르디(Francesco Guardi)

비엔나의 풍경화가로 로코코시대의 저명한 풍경화가다.형과 동생 그리고 누이까지 모두가 화가였다.

 

 

 

*Turner나 John Constable(1776-1837) 같은 영국의 화가들은 Ruisdael과 Claude같은 화가들의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그들의 주제인 풍경화를 만들었으며 Barbizon 학파나 사실주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이 경향을 따라 작품을 만들어 냈다.

*1824년 John Constable의 작품 하나가 연례파리쌀롱 전시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프랑스 화가들이 Barbizon이란 동네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자극하였으며 그 결과로 나온 풍경화들이 사실주의의 선구가 되었다.

부드러운 브러시와 선명한 빛의 효과를 사용한 장 밥티스트 까미유 코로(Jean Baptiste Camille Corot(1796-1875)는 당시의 가장 영향력이 강한 풍경화가였다. *The Gust of Wind, 1826, Muse du Louvre, Paris, France

 

 


일곱 번째 주제: 은유적인 주제들

‘은유’란 단어는 라틴어와 희랍어가 합쳐진 ‘Allegoria.’에서 나온 것으로 ‘달리 말하면’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각적인 은유가 문자적인 표현보다 숨겨져 있는 의미나 멧세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은유들은 관람자들이 읽어야 할 멧세지를 예술가들이 분명하게 만들어 내는데 종종 사용되어 왔다. 은유들은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여러가지 형태의 예술로 다양하게 유행하였다.

일반적으로 은유적인 멧세지들은 성자들에게 붙어다니는 장식물들과 같이 관람자들이 쉽게 이해할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열쇄꾸러미를 들고 있는 성 베드로나 바퀴를 가지고 있는 성 카데린과 같은 경우이다. 이때부터 은유는 다양한 개념을 가지고 널리 사용되어 왔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문학적으로 설명하느라고 애들을 먹었을 것이다.

 

Williama Holman Hunt(1827-1910)의 <The Light of World>(1851-1853)

요한 계시록 3장 20절의 "보라, 내가 문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내가 들어가서 같이 음식을 나누고, 함께하리라"한 말씀을 은유적으로 그린 것이다. 헌트에 의하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예수요 이 문은 ㅗ랫동안 사용하지 않았ㅇㄹ 뿐 아니라 아에 손잡이가 없는 문이다. 집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한 문을 열 수 없게 되어있다. 화가가 주려고 하는 멧세지가 은유적이지만 뚜렸하게 나타나 있다.이 그림은 1872년 아서 설리반의 오라토리오로 재생되었으며 한동안 학교 ㄱ실이나, 유치원, 교회 등에 널리 걸려져 내려왔다.

은유적인 인물들은 외로움이나, 사랑, 또는 애국심이나 시간과 같은 관념 등을 의인화하는데 사용되었다. 티티안(Titian)의 Venus of Urbino는 사랑에 관한 은유이며 Munch의The Scream은 외로움에 관한 은유로 볼 수 있고 윌리암 홀만 헌트의 닫혀진 문밖에 등잔을 들고 서 계신 예수의 그림, The Light of World는 인간의 마음문을 두드리는 예수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많은 예술활동가운데서 신화들 특히 로마와 희랍의 신화들은 특히 은유를 위한 기본그림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비너스는 사랑의 상징으로, 머큐리는 스피드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또는?프리마베라(primavera)는 15세기 르네상스?시대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적인 그림 가운데 하나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1482년경 보티첼리가 로렌초 디 픠에르프란세스코 데 메디치의 카스텔로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섬세하고 매끄러운 선과 가벼운 느낌의 옷, 여리고 서정적인 선율과 같이 보티첼리의 독특한 스타일을 표현하고 있다.

보티첼리의 Primavera에서 희랍의 신들과 여신들 그리고 요정들은 봄이 오는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여섯 번째 주제: 신화들

모든 종류의 신화들은 수많은 화가들에게 수 천년에 걸쳐서 많은 영감을 주었다. 고전적인 이야기들을 예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서양예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소재이다.

고대 세계의 이야기들과 전설들의 많은 부분들이 예술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되었다. 5세기 로마제국이 몰락한 후 대부분의 예술들은 기독교회의 지시아래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1453년 오토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1천년 이상이나 지속되던 비잔틴 제국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오토만제국의 한 부분이 되었고 희랍어를 사용하던 많은 학자들이 그들의 귀중한 고전들을 가지고 유럽으로 망명하였다.

이와 연동하여 구텐버그의 인쇄기의 출현으로 문학작품들, 특히 호머, 프라토, 아리스토틀, 시셀로 등과 같은 고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휴매니즘에 영감을 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이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그들은 고대 신화의 주제들을 묘사하기 시작하였으며 나아가 그것을 풍유법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신화들은 많은 문화권에서 발전한 이야기들로서 어떤 문제들을 정당화 하거나, 법이나 가치관을 설명하기 위해서, 또는 하나의 경고로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이해하기 쉽고, 평이한 감성과 분명한 관계를 포함하여야 하였다. 예를 들면 고대 로마의 전설은 징벌받은 로마인이 공동체에 상고하는 권한을 가진 법율을 보여주고 있다.

*The Oath of the Horatil, Jacques louis david의 작품으로 1784년, Oil on Canvas.330X425 프랑스? 파리의 르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중한 신고전주의 화가인 David은 1776년 대망의 로마대상을 수상하였으며 4년동안 이태리에 머물면서 당시 Anton Raphael Mengs와 johan Joachim Winckermann에 의해 유행하던 고대 그리스예술의 영향을 받았다. 파리로 돌아 온 그는 새로운 혁명의회에서 일했으며 보나팔트 나폴레옹의 궁정 화가가 되었다.

*The Death of Socrates 1787, 프랑스 화가 잭 루이 다이빗의 작품으로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에 소장.

프라토의 Phaedo 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처형장면으로 소크라테스는 아덴의 젊은이들을 부패시켰다는 죄목으로 당국에서 보낸 독약을 마시고 죽는 것으로 되어 이다. 2000여년 이상을 신화처럼 전해오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1787년 잭 데이빗에 의해 명화의 소재로 태어났다.

흰옷을 입고 한 손에는 독배를, 다른 손은 허공을 향한 노인이 소크라테스이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로 그의 처형을 둘러싼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The Birth of Venus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의 탄생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적인 그림 가운데 하나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재료는 템페라.

비너스의 탄생은 고대희랍시인 호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것으로 전래되어오는 전통에 의하면 비너스가 태어난 후 조개껍질을 타고 바다거품을 통해 시델라 섬으로 갔다고 한다. 신화를 주제로 한 가장 전형적인 그림으로서 비너스가 중앙에 두드러지게 자리잡고 있으며 Zephyrus가 바람을 불어 비너스를 안내하고 있다.


 

다섯 번째 주제:자화상

지난번에 언급한 초상화와 함께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데마가운데 자화상이라는 것이 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화가들의 자화상 가운데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들이 없지 않으나 사실 르네상스 이전의 자화상은 희귀한 편이다.

독일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알브레헤트 듀러의 "자화상"이다. 듀러는 그리스도의 아이콘을 닮은듯한 자화상을 그렸는데 1500 년 초, 29 세 생일 직전에 그린 세 장의 자화상 중 마지막 것으로 미술사 학자들은 그의 자화상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상징적이며 복잡한 것으로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예수의 인상을 닮은 자화상인데 예수를 닮기 원했던 듀러의 소원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화가로서의 재능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자화상은 전통적으로 화가들이 이목을 끌기 위해서 또는 일종의 서명 대신 자신의 자화상을 삽입하던것이 르네상스 이후 널리 퍼진것으로 특히 렘브란트나 반 아이크 등은 중요한 계약에는 조그마한 자화상을 포함하였다고 한다. 피에로 델라프란체스카(1415/20-1492)는 심지어 그의 <부활>이라는 작품에서 로마병정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으며 렘브란트를 포함해 많은 자화상들이 깊은 성찰끝에 만들어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Velazquiez 나 고야의 작품과 같이 왕실의 초상화와 같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신분이나 명성을 강조하려고 하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이후 대부분의 화가들은 적어도 한, 두개의 자화상을 제작하였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듀러,렘브란트, 피카소, 죠수아 레이놀드 같은 화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자화상들을 제작하였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자화상은 모든 예술가들의 무기고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막스 베카만은 "초상화를 그리면서 늘 문제였던 것은 '자아'를 찾는 것이었다"고 하였으며 뭉크(Munch)는 그의 어려운 삶 가운데서 생겨나는 우울감을 표현하려는 시도로 자신을 정기적으로 그렸지만 ”나의 문제는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엇다”고 하였다.

*렘브란트나 반 고호 그리고 칼로 같은 화가들은 그들 자신의 인간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면서 수많은 자화상들을 제작하였다. 후기 화가들은 새로운 예술적 아이디어를 시험하기 위하여 전통적이고 일반적으로 용인된 미술과는 단절된 자화상을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는 고야,콜베트 그리고 데라크로스, 마네. 스잔느 그리고 틀루스 로트렉스 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타리아의 화가 자포코 틴토레토의 자화상(Self-Portrail, Jacopo Tintoretto, c. 1588, oil on canvas, 파리의 르브르 박물관에 소장. 그는 30 세가되었을 때이 표현적인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검은 곱슬 머리, 콧수염, 턱수염, 그의 검은 색 재킷과 함께 거의 청 검정색 배경과 조화를 이루며 그의 얼굴은 마치 어둠을 비추는 빛에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  이태리아 르네상스기의 피에로 델라프란체스카(1415/20-1492)는 그의 <부활>이라는 작품에서 로마병정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예수의 오른쪽에 앉아서 자고 있는 갈색의 병정의 얼굴이 델라프란체스카라고 한다. 이태리의 상세포크로의 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도 바울로서의 자화상>은 1661 년 네덜란드 예술가 렘브란트가 그린 수많은 자화상 중 하나. 현재 암스테르담의 국립 박물관에 있다. 그는 자신을 성경의 인물 바울로 가장함으로 관람자가 성자와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네 번째 주제: 초상화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그림들 가운데는 초상화가 있다. ‘ 앞으로 들어낸다’, ‘빛이 있는 곳으로 내어 놓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portrahere에서 나온 초상화들은 에짚트의 파이움장례용 초상화에서부터 마크퀸의 냉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모델과 유사한 화상과 성격(개성)을 보여주려는데 목적이 있다.

에짚트와 그리스, 로마 그리고 비잔틴을 포함한 고대지중해 연안 문명들에서 초상화란 주로 대중들을 위한 예술형태이거나 부자나 권력자들의 장례를 위한 준비로 만들어졌다. 초기의 초상화들은 1세기 경 에짚트 미라 위에 부착된 나무판자 위에 그려졌었다. 고대로마문명애서는 중요한 인물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조각이나 벽에 그린 판화로 그린 것들이 유행했다. 이러한 초상화 관행들이 다양한 사회속으로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경우 모델과 유사한 화상을 보여주려고 만들었던 초상화들은 주인공의 성격이나 특이한 속성들 그리고 권력이나 영향력. 아름다움,부 또는 학식 등을 그려내려고 하였다. 대부분의 초상화들은 주인공에게 아첨하는 필치를 보이게 마련인데 고야나로트렉, 딕스 그리고 루시안 프로이드 같은 화가들은 보다 솔직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날도나 미켈란젤로, 라파엘, 티티안, 밴 에이크 그리고 한스 홀베인 융거 같은 예술가들은 자연주의와 초상화법의 표현력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하겠다.

Hans Holbain the Younger의 Henry VIII,1540년 제작,

oil on panel, 88.5x74.5 cm;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소장

*가장 성공적인 초상화 화가들은 아부성과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잘 배합하여 공경받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화가들이다. 초상화가들은 통치자나, 종교 지도자, 장군들이나 귀족들의 초상들을 열심히 그렸다. 그들의 일이란 권력과 자신감을 유발하고 주인공이 가지지 못했던 특성들을 초상화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위의 초상화 '영국왕 헨리 8세'는 가장 전형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라고 평할 수 있다. 자랑할 수 있는 것이란 모두 동원하여 그의 지위에 올맞은 초상화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Jan Van Eyck의 <Arnolfini Portrait>1434, Oil on Oak, 82.2x60 CM
National Gallery, London, UK
소장

 

*프랜더스에서 태어난 얀 반 아이크는 그의 친형인 화가 후벌트 반 아이크와 함께 일을 하였으나 형이 세상을 떠나자 강력한 공작 필맆 더 굳(Phillip the Good, 1396-1467)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능이 뛰어나고 학식이 깊으며 여행을 많이 한 반 아이크는 처음에는 예술가인 동시에 필맆공작의 외교관으로 일을 도왔다. 그는 두 분야에서 다같이 공을 세웠는데 특히 오일페인트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미술계에서 존경을 받았다.

오일 페인트를 처음 사용한 화가가운데 하나인 쟌 반 에이크는 인물들과 소품들을 세심하게 그리면서 깊고 진한 색깔로 상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부자 부부의 초상화로 부를 세상에 뽐내어 본다.


* Leonardo Da Vinci의 <Mona Lisa>.1503-1519 *Oil in White Lombard Poplar. 77x53 CM. Musee Du Louvre, Paris , France

*레오나도 다 빈치(1452-1519)는 화가, 조각가, 공학자, 건축가, 과학자, 발명가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세계적인 천재로 불린다. 앙드레 베로치아 밑에서 도제수련을 받고 밀란, 프로렌스, 로마, 프랑스 등지에서 당시 가장 중요한 고객들을 상대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가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다는 것은 그의 완성된 예술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의 노트북을 통해 그의 다양하고 다수의 아이디어들을 엿볼 수 있다.

<모나리자>로 널리 알려진 이 주인공의 이태리어 이름은 'La Gioconda'로 '명랑한'또는 '쾌활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혼한 부인에게 붙여주는 상투적인 표현일 뿐 모나리자에게서 신비적인 여인의 초상화가 모습을 들어내었다. 주름없는 두 눈과 명멸하는 입 그리고 불가사이한 미소 , 거기에 희고 긴 손과 손가락 등이 여인의 신비를 더해주고 있다.


세 번째 주제 종교

*피에로 델라프란체스카의 ‘부활(Resurrection) 1460 년 경
225x 200cm(89x79 in)
Museo Civico,Sansepolcro, Italy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의 기독교 미술로 1460년대에 그려진 벽화이다. 공동집회장에 설치되어 있는 이 그림은 공직자들이 공무를 집행하기 전에 이 앞에 모여 기도하던 곳으로 세속적인 것과 공적인 의미를 함께 지닌 곳이다.

초기 미술에서는 종교나 성스러운 개념들을 지원하는 그림들이 수적으로 무척 광대하였다. 그리고 영적인 것들에 대한 상징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물들을 지배하였다.

동물이나 사람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종교는 선사시대부터 고대 에짚트와 고대 희랍시대를 거쳐, 마야의 원주민들로부터 고딕과 바록크에 이르기까지 주요 테마의 하나였다. 특히 기독교는 미술사를 통해 초기 성경의 인물상에서부터 르네상스의 감성적인 인물화 그리고 반 고흐나 고갱같은 19세기 화가들이 만들어 낸 상징주의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그려졌던 종교화의 한 부분이었다. 심지어 그림들이 우상숭배라는 비난을 받던 비잔틴 시대나 개신교 종교개혁시대에도 예술가들은 그들의 신앙을 그림으로 그려낼 방법들을 찾아내었다.

초대기독교에서 기독교의 상징으로 흔히 사용되었던 생선과 비잔틴 기독교에서 전능하신 예수님으로(Christ Pantokreator) 특정 묘사된 그리스도의 도상.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그랜드소피아 모스크에 있는 벽화이다.

기독교의 예술주제들은 마돈나와 아기 예수,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콘버라 콘버사초네’ 같은 다양한 예술운동으로 재현되어 종종 문맹자들에게 성물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연꽃속에 앉아있는 붓다

인도의 초기 불교예술에서도 부다는 처음에는 싸인으로 표현하였다. 기원전 5세기 경에 시작된 불교에서 서기 1세기에 와서야 인간의 형상을 가진 의인화 된 붓다가 나타났다.위대한 철학자요 스승이었던 붓다는 주로 사색하는 모습으로 구상되었고 연꽃으로 상징되었다. 불교예술의 주요 창작 센터는 오늘날 북서부 국경 지방 인 파키스탄의 간다라 (Gandhara)와 인도 중부의 마투라 (Mathura) 지역으로 확인되었다.

 

서기 622년 모하메드가 메카로부터 메디나로 옮겨온 후 무슬림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급격히 전 지중해 연안과 아시아 , 아프리카 일부로 퍼져나가면서 이슬람 예술 역시 다양한 스타일로 융합되며 발전하였다.

모하메드는 원래 구상 예술을 허용하지 않았고 코란에는 "신과 똑같은 것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슬람 예술은 이슬람 건축, 이슬람 서예, 이슬람 미니어처, 이슬람 유리, 이슬람 도자기, 카펫 및 자수와 같은 섬유 예술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지역, 시대 및 장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특성화하기가 어렵다.?그래서 이슬람 예술은 일반적으로 구상적인 것 보다는 상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기독교 화가들로는 고토 디 본돈( Gotto Di Bondone).마사키오( Masaccio), 삐엘로 델라 프란체스카( Piiero Della Francesca), 라파엘 엘 그레코( Raphael El Greco)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주제:인물들(사람의 생김새 또는 몸매)

최초의 화가들이 그린 짐승들의 그림과 함께 사람들의 생김새나 몸매들을 조각하거나 주조한 작품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헬레네 시대라고 부르는 희랍, 로마 문화권에서 많이 발견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Melos의 아프로디테 또는 Milos 의 비너스로 알려진 것으로 알렉산더 대왕시대(기원전 323경 경)의 작품이다.

이 입상은 그리스의 Milos 섬에서 1820년에 발견되었다. 실물보다 약간 크게 만들어진 이 조각품은 두개의 대리석으로 만들어 수직으로 고정하여 구성한 것이다.
나선형으로 된 구성 요소들, 흘러내린 휘장, 선세게, 주조된 육체와 조그마한 유방의 늘씬한 몸통 등은 모두 헬레네 시대에 발달한 이상적인 미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원래는 이 조각품에 살색 칠을 하고 귀걸이나 손목걸이, 머리띠 같은 장식품들을 달았었는데 지금은 살색 페인트는 사라지고 걸었던 구멍만이 남아 있다. 실종된 두 팔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근처에서 발견된 받침돌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안디옥의 알렉사드로스의 작품으로 추정되나 제작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조각상이 고대희랍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조각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프로티제는 사랑과 아름다움과 쾌락과 정열의 여신으로 로마시대의 비너스 여신과 융화되어 버렸다.

대표적인 인물화가들로. 미켈란젤로,카라바지오, 니콜라스 푸싱, 굿스타프 콤트 등을 들 수 있지만 헬레네 시대의 다른 조각상으로는 싸모드라케의 니케(The Winged Victory of Samothrace c. 200-190bc)가 유명하다.

The Winged Victory of Samothrace, 로도 알려진 헬라 시대에 대리석으로 조각한 이 조각상은 기원전 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헬라시대의 여신 니케를 조각한 것으로 1884년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헬라시대의 가장 훌륭한 조각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로마시대의 복사품들은 많이 있지만 헬라시대의 원작은 쉽게 찾을 수가 없어 희귀품으로 더욱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의 오른쪽 날개는 본래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거울효과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크기는 244cm, (96인치)


 

첫 번째 주제 동물들(Animals)

기원전 16,000-14,000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는 Lascaus에서 발견된 <황소들의 벽화>

인류가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그리기 시작한 첫 번째 주제가 동물이 아닐까? 선사시대의 동굴 Lascaux 에서 발견된 <황소들의 벽화>는 물론 그 전 들짐승들을 사냥하는 원시 유목민들의 모습을 바위에 그린 그림들은 고대 유적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림들이다. 그만큼 미술사에서 동물들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물들은 원시인들의 주제뿐만이 아니었고 중세기나 르네상스 시대에도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주제로 사용되었다.

기독교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으로 충직을 상징하는 개, 평화와 성령의 표지로 비들기, 용기의 표징으로 사자 등을 즐겨 그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토템기둥이나 오스트랄리아 원주민들의 그림들,에짚트와 같은 고대몬명에서 그들의 조상들이나 신들을 동물모습으로 상징한 그림들을 본다. 신고전주의나 랑만주의에서도 동물이 고결함과 우아함의 감정으로 그려졌다.

이태리의 티치아노가 그린 <Venus of Urbino>

이태리 랑만주의 시대의 화가 티치아노(Titian)가 canvas에 oil로 그린 1534년 작품 <Venus of Urbino, > 는 언듯 보기에는 '젊은 여인, 비너스의 나체'가 주제이기는 하지만 애완견을 곁들임으로 나체가 주는 선입견과는 달리 비너스의 우아함과 고결함을 상징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태리 프로렌스의 Ufizi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상신의 <서양미술사 산책(34)>

서양미술사 산책을 마치면서

2018년 1월에 시작한 <서양미술사산책>을 3년만에 여기에서 끝내려고 한다.

필자에게는 워낙 버거운 주제였음에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한 번 시도해 본 것인데 역시 어려웠던 작업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쾌적한 산책환경을 마련하는데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저로서는 견문을 넓히는 좋은 계기였다고 자위해 본다.

시작할 때 이미 언급하였지만 미술사란 일반역사와는 달리 인과관계를 따져가면서 풀어나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예술가란 점과 점을 연결해 가는 것으로 그것은 보기에 따라 무척 다양해질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점들을 쫓아가다가 때로는 시대적인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때로는 필자의 이해를 초월하는 주장들에 멍멍해져서 핵심을 놓쳐버리면서도 가능한한 충실하게 소개하느라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다. 이 글이 독자들의 다양한 미술사조에 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면 하는 바람이다.

자연의 정확한 묘사를 통하여 균형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을 재생하려는 이성적인 ?노력에서 시작된 고전적인 미술작업은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려는 인상주의 또는 낭만주의를 거쳐 미술의 대상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발전해 왔다. 새로운 기술시대와 함께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시도들이 시도될런지 .

참고가 될까하여 그동안 다루었던 내용의 목차를 정리해 보았다. 내용들은 이 페이지에 역순(逆順)으로 계재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목 차

선사시대 ‘라스코 동굴의 미술’
그리스 미술
로마 미술
비잔틴 미술
중세기 미술
초기 르네상스 미술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
베네치안 르네상스 미술
매너리즘
네델란드 황금시대 미술
바로크 미술
로코코 미술
신 고전주의 미술
낭만주의 미술
사실주의 미술
인상주의 미술
후기 인상파 미술
신 인상파 미술
아르누보 미술
표현주의 미술
야수파 미술
입체파 미술
미래파 미술
절대주의 미술
다다이즘 미술
신 조형주의 미술
마술적 사실주의 미술
추상 표현주의 미술
대중 미술(팜 아트)
행위 미술
최대한 표현주의(미니말리즘)미술
개념 미술
미디어 텍크노로지 아트
마치면서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