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Gallery/2012년 3월/이달의 화보>

기미년(1919년) '3.1 만세운동' 화보(2)

'3.1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제에 저항하여 조선이 독립국가임을 선언하고 길거리에 나서서 벌인 '만세운동'을 말한다.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을 위시해서 뒤에서 운동을 주도하고 준비한 사람들을 합쳐 민족대표 48인이라고 부르지만 조선의 만세사건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공헌한 스코필드 박사를 포함하여 민족대표 49인을 '3.1 만세운동'의 지도자로 꼽기도 한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탐골공원에는 연희, 보성, 경신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최남선이 작성하고 이광수가 감수하였으며 한용운이 행동지침 공약 3장을 추가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모인사람들은 만세를 높이 불렀고 만세행렬은 시내로 나아갔다. 행열은 보신각을 지나 남대문으로 향한 군중과 태평로를 거쳐 서대문으로 향한 군중으로 나뉘었다

마침 서울에는 의문의 변사를 한 고종황제의 장례일인 3월 3일 인산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올라와 있었는데

3.1 만세운동은 이들의 '한맺힌 슬픔'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민족대표 33인들이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태화관에 모여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후 총독부에 연락, 경시청에 붙잡혀 간것과는 대조적으로

거리행진을 주도했던 학생들은 상경한 문상객들과 함께 6시까지 "일본군과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조선독립만세", "조선 독립정부를 수립하라"는 구호를 외치다 별 충돌 없이 해산하였다. 이날 서울 일대에서 만세에 참석한 인원이 50만명 이상이 될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세운동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서의 '만세 사건'소식이 지방으로 번지면서 장이 벌어지는 곳에서들 만세운동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아우네 만세운동에는 이화여전에 다니던 유관순이 서울에서의 만세사건 이후 고향에 내려와 지내며 지방유지들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은 한달 후인 4월 1일 천안 병천 시장에 있던 3,0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른 사건으로 일제 경찰은 총검을 이용하여 강력한 제지를 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모의만세 사진)

일제의 강제 진압으로 현장에서 죽은 사람은 19명이며, 유관순을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부상, 투옥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순국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모진 고문끝에 끝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유관순은 온 국민의 '누나'로 불리며

기념관이 건립되어 그녀의 넔을 기리고 있다.

그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비가 도처에 세워졌다.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재의 화성시 향남읍) 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본 경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향남면 제암리 제암리교회에 동네의 남자들을 몰아 넣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불을 질러 28인의 장정이 숨지는 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을 제암리 사건이라고 부른다.

불타버린 제암리 교회의 모습

선교사로 와 있던 가나다인 의사 스코필드 박사는 이 사실을 처음으로 외부세계에 알려 세계의 여론에 호소한 '3.1 독립 만세운동'의 제34인이다.

화재에 희생된 28인의 공동묘소와 묘비가 세워져 있다.

불타버린 옛 교회자리에 새로 세워진 교회와 조성된 공원과 기념관. 일본교회가 사죄하는 뜻에서 공사비를 지원하였다.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면서 2개월 동안에 1214회의 '만세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박해나 참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전라남도 광주의 3.1 만세운동 기념탑

인천에 세워진 '3.1 만세운동'기념탑'

대구에서는 '3.1 만세운동' 90주년(2009년)을 맞아 <3.1 독립만세운동 90돌 계단길>을 만들고 양쪽 벽에 관련자료들을 전시하며 기념하였다.

제주 조천리에 세워진 기념탑

강원도 홍천에 세워진 기념 조각상

강원도 홍천에 세워진 돌에 새겨진 <독립선언문>

전라도 군산에 소재한 기념관에 설치되어 있는 만세 모형

처음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서울의 탑골공원에는 그날을 기념하여 대리석에 새겨진 독립선언서와 33인의 명단이 세워졌다.

3·1운동 이후 3개월간 만세운동 상황은 202만 3089명이 시위에 참가하였으며, 시위 횟수는 1,542회,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피체포자 46,948명이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교였다고 한다.조선총독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106만 명이 참가하여 진압 과정에서 553명이 사망, 12,000명이 체포되었다.

"아니면 말고"식의 심심풀이 시위가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며 목숨을 바칠 각오로 참여하였던 선조들을 기억하면서 '이날의 정신을 기리 빛내자"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