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Gallery/2009년 2월/이달의 화보>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 까지의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의 역사 (2)

2차 대전 이후 두각을 나타내는 흑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1947년에 제키 로빈슨이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메이져 리그에 진출하였으며

시인 그웬도린 부룩스는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50년에 퓨리처 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 가을 흑인 외교관 랄프 번취(Ralph J. Bunche,1904-71)는 팔레스틴 분쟁을 조정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흑,백 분리정책으로 남부의 여러 주에서 흑인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의 흑인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을수가 없었다.

이에 항의하여 흑백 분리를 정당화시켜 주는 프루시 결정 무효 소송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었고 대법원에 까지 올라간 이 사건을 Linda-Brown 판결사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을 판결하게된 연방 대법원장은 Earl Warren이어었으며 그는 1954년 학교내 흑백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만장일치로 프러시 법안이 위법임을 결정한 워렌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은 민권운동과 정의 구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주법으로 흑백분리정책을 강행하는데 항의하여 알라바마주에서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버스 좌석 양보를 거부하면서 대규모 흑인 민권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로 떠 오른것이 Rosa Parks가 나가는 침례교회에 새로 부임한 Martin Luther King Jr. 로 무저항,비폭력인 방법을 통한 민권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Rosa와 함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코트 사건으로 민권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한 킹 목사는 1963년워싱톤 DC에서 민권운동 확산을 위한 100만명 대규모 집회를 통해 유명한 연설 '나는 꿈을 꿉니다'를 남겼다.

다음해 1964년 린든 죤슨 대통령은 민권법에 서명했고 킹 목사는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서명시 후 악수를 나누는 죤슨 대통령과 킹 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평화적인 민권운동에 불만을 품고 힘의 투쟁을 통한 급진적인 민권성취를 주장한 흑인들이 있었다. Marcom X가 그 대표적 인물이었으나 말년에는 로선을 바꾸는듯 했는데 1965년 암살당하고 말았다.

1966년에는 급진적인 흑인운동가들이 Black Panther Party라는 정당을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1965년 여름에는 로스엔젤레스에서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 1주간 동안 계속되면서 많은 부상자를 내었으며 여러 도시로 번져갔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테네시 주 멤피스에 있는 이 모텔의 베란다에서 인근 빌딩에서 쏜 백인의 총탄에 암살당하였다. 이 모텔은 <미국 민권운동 뮤지움>으로 변신, 개방되고 있다.

Linda Brown 사건의 법율고문으로 활약하였든 Thurgood Marshal이 1967년 흑인 최초의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1989년에는 버지니아주의 Doulus Wilder가 미국 최초의 주지사로 선출되었으며

Collin Powell이 흑인 최초로 미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고 2001년에는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 되었다.

1984년과 1988년에 흑인운동 지도자인 제시 잭슨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아무도 그가 후보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급증하는 일부 흑인들의 지위향상에도 불구하고 1992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나 50여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후발 이민자로서 자리를 잡기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던 한인들이 많은 피해를 보았다.

1995년에는 흑인 이슬람 단체들의 주도로 100만 워싱톤 행진을 벌였으며

1960,70년대에는 모하메드 알리 같은 운동선수들이

1980-90년대에는 마이클 졸단 같은 선수들이 1990년 이후에는 타이거 우드 같은 운동선수들과 많은 연예인들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흑인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였다.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의 국무장관 기용은 흑인들은 운동과 연예만 잘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하였고

'변화'를 주장하며 나타난 지성과 지모를 갖춘 오바마를 흑인 최초의 미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미국민들은 인종을 초월하여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미 대륙에 발을 들여 놓은지 400여년 만에 바릭 오바마가 미 합중국(USA)의 최초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늘푸른나무-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 webz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