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나무/Gallery/2008년 11월/이달의 화보>

죽음 저편엔? (Beyond Death)

인간의 삶에도 황혼이 오기 마련이다.

예외 없이 사람들은 삶을 마감하고 육신은 이렇게 묻혀갔다.

그러나 옛날부터 영혼은 남아 있다고 생각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스캔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 세상으로 갈때 사용하라는 뜻으로 무덤을 중심으로 배 모양의 돌무더기를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죽은 사람을 보내는 의식은 하나의 축제이기도 하다 . 죽은자들과 산자들을 위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고대 에짚트에서는 왕족들이 사후에 살 수 있는 호화로운 주택을 마련하기 위하여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거대한 피라밋을 만들기도 하였다.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잘 살다 죽은 사람들이 '태양신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은 아즈텍 사람들은 태양과 가까운 높은 지역에 훌륭한 거주환경을 만들고 살았다

과연 죽음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은 인간들의 끝임 없는 의문이었다.

영매(靈媒)들은 죽음을 영혼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는 긴 터널을 거쳐 저 세상으로 간다고 생각하였다.

희랍신화에서는 나룻군 샤론(Charon)이 망자들을 험한 Styx강을 지나 지하의 세계로 데려다 준다고 생각하였다.

미켈란제로가 그린 이 그림은 하데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하여 샤론의 배에 오르려는 죽은사람들의 모습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부활로 죽음의 권세를 물리쳤으니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상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천당과 지옥으로 나누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기의 가톨릭 교회는 천당, 지옥 그리고 연옥을 무척 강조하였다. 그것은 단테의 <신곡(神曲)>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단테가 천국, 지옥, 연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교황 베네딕트 12세에 의하여 제정된 '연옥' 교리는 개신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중세 캐토릭의 산물이다. 죄를 깨끗이 씻고 천국으로 가기를 기다리는 연옥. 단테의 신곡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한 장면을 Signorell이 그린 <최후의 심판>. 지옥의 악마들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있다.

지옥의 또 다른 모습으로 안에서는 악마들에 고문을 받지만 밖의 천사는 그들이 나오지 못하게 잡을쇠로 잠그고 있다.

최후심판에서 지옥행 판결을 받은 영혼들이 칼을 휘두르는 천사들에 의해 지옥으로 쫒기고 있다.

<심판의 날>에 대한 생각은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양에서도,불교에서도 찾아볼수 있는데 일본에서 그린 지옥도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붙잡은 사람들은 천국인 새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그렇치 않으면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진다는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그린 19세기 아메리칸의 그림.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탄들의 방해가 심하여 심지어 수도사들도 중도에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염원하는 것은 아름답고 자유스럽고 평온한 저 세상. 종교마다, 시대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이 그림과 같이 호젓한 분위기일 것이다.

착한 영혼들이 영원히 살 처소로 18세기 중국의 자기에 그려져 있다.

중세기에 그려진 천국의 모습으로 천사들이 어린양으로 표현된 예수 앞에 경배하는 가운데 아래의 성자들과 순교자들이 창조자를 찬양하고 있다.

불교에서 보여주는 극락의 모습.

예수님을 가운데 모신 천국의 모습

부처님을 중심으로 평화롭고 즐거운 극락의 모습

가사상태에서 죽음 직전의 체험을 한 환자들을 상담하여 1975년 <Life After Life> 란 유명한 책을 출판한 Raymond Moody 박사는 환자들이 한결같이 긴 터널을 지나자 환한 빛이 보였다고 증언하였다고 한다.

죽음 저편에 있다는 삶 이후의 삶이란?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