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보/역사의 미스테리/2015년 12월>

(화보) 역사의 미스테리 1

창조냐? 진화냐? 요즈음은 진화론이 대세인듯 하지만 21세기 미국 한복판(오하이오주 신시나티 교외)에 '창조박물관'이 건립되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지적설계론과 같은 변형된 창조론 등이 나오는 등 창조론도 만만치 않다.

과연 수 십억년의 과정을 거쳐 진화된 것일까? 에덴동산에서 8000여년 전에 창조주에 의해 다른 종으로 창조된 것일까? 역사의 미스테리는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서쪽의 큰 바다(대서양)에는 고도의 문명을 가진 대륙이 있었으며 주민들의 도덕적 타락으로 신의 저주를 받아 화산이 폭발하여 대양 밑으로 가라 앉아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후에 아틀란티스로 불려진 고도의 문명을 가진 이 섬의 수도는 잘 조화된 설계에 의해 관개와 수로, 토지계획등이 잘 정비되어 사람들이 살기에 아주 편리한 파라다이스일 것으로 상상한 사람들에 의해 그림으로도 전해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소재나 유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영국 남단에 있는 솔즈베리(Salisbury) 도시에서 수마일 밖에 있는 솔즈베리 들판에는 영국(Briton)의 가장 오래된 상징적 기념물이 서 있는데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의 특이한 유물이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1백만 명을 넘고 있지만 아직도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세운 목적이나 용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 거대한 바위들을 옮겨다가 스톤헨지를 만들었는지? 설(說)만이 분분할 뿐 확실한 것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받아 언약궤를 만든 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언약궤를 하나님 모시듯이 거룩하게 대했고 함부로 행했을 때에는 벌을 받았으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나 전장에서는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보였다.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가장 귀중하고 성스러웠던 신앙의 상징인 언약궤는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 400여년간 보존되었지만 기원전 59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공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된 이후 구약성서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에짚트는 자신과 주변국에 관한 많은 정보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는 나라가 하나 있다. 그것이 푼트(Land of Punt)라고 부르는 에집트의 무역교역 상대국으로 에집트의 기록에 의하면 푼트는 아주 아름다운 곳, 고대의 일종의 ‘지상낙원’으로 살기가 편하고 분명 에집트 보다도 훨씬 좋은 곳입니다. 에집트에서는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서 푼트에 관한 언급이나 그림들이 나타나는데 거의 모든 경우에 풍요롭고 자원이 풍성한 무역상대국으로서 긍정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에집트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푼트, ‘에덴동산’이 과연 어디일까?하는 호기심과 마찬가지로 푼트는 과연 지금의 어느지역일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그곳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하였지만 아직까지 그 자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당시 일류급 여행자들을 위한 일종의 여행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여행지 명단들이 전해져 오는데 그 가운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7곳(Seven Wonders of the World)’이라는 리스트가 있다.

그 가운데 비록 현재 남아있는것은 기자의 피라밋 하나밖에 없지만 그 소재지들은 확인되었는데 < 바벨론의 ‘가공정원’>만은 아직까지도 이름만 전해질뿐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다. 그 정원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심지어 과연 존재하기는 했는지?하는 것 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1900년 10월 그리스의 한 작은 섬 앤티기데라(Antikythera)섬 연안 200피트 심해에서 잠수부들에 의해 고대 로마의 난파선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 배안에서는 수많은 동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들과 도자기, 화병, 보석, 동전들과 함께 동으로 만든 기계장치가 발견되었다.

이 기계장치는 그리스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천문학과 수학의 원리에 따라 천체의 위치나 일,월식을 계산하기 위해서 만든 고대의 수동식 아나로그계산기(또는 컴퓨터)로 기원전 87년에 만들어 졌으며 몇 년 후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페루 남부의 나스카 사막에 그려져 있는 일련의 거대한 선들과 그림들을 <나스카 라인>이라고 부른다. 1939년에 처음으로 외부에 발표되었고 199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명된 이 라인들은 남 아메리카 페루의 나스카와 팔파 도시 사이 80킬로미터가 넘게 펼쳐져 있는 건조한 고원사막지대에 새겨져 있는데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는 400킬로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기원후 400년에서 600년 사이에 이곳 나스카 문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들 가운데는 단순한 직선에서부터 복잡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수백개의 그림들이 있는데 사람의 모형은 물론 새, 거미, 원숭이, 라마, 쟈구어, 몰고기, 상어, 고래 같은 동물들과 나무나 꽃같은 식물들의 그림들이 있으며 가장 큰 것은 지름이 200미터 이상이 되는 것들도 있다.

1947년 팔레스타인의 사해(死海, The Dead Sea), 북서부 사막과 산들이 만나는 쿰란지역에서 양과 염소를 치던 베두인(아랍계 유목민) 목동이 숲속으로 달아난 염소를 찾으러 쫓아갔다가 동굴들을 발견하였다

답사와 발굴작업들을 통하여 1957년까지 쿰란 지역에서 11개의 동굴들이 발견되었으며 그 밖에도 와디, 므라바트 지역의 동굴들, 킬베트. 밀드 지역등지에서도 항아리에 담겨있는사본들을 발견하였는데 <사해사본>으로 알려진 이 사본들은 가치나 규모에서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굴로 평가되었고 지난 6,70여년 동안 학계와 종교계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고금을 통틀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평가되고 있다. 거대한 피라밋을 남긴 에집트의 파라호들이나 위대한 도시 로마를 남긴 로마제국의 시이저들 보다도 젊은 나이에 더 많은 영토를 정복하고 통일하였던 알렉산더는 역사상 흔치 않은 The Great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톨레미 I세의 상속자인 톨레미 2세(Ptolemy II Philadelphus,309-246 경)는 에집트의 톨레미 왕조의 2대 파라호가 되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특별 묘역을 조성하고 멤피스에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시신을 이곳으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알렉산더의 시신을 담은 석관도 순금으로 만든 두개의 관에 담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묘역이나 관들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장소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진나라의 왕 영정은 자신을 통일 진나라의 첫번째 황제라고 하여 진시황제(秦始皇帝)라고 부르고 처음으로 통일된 중앙집권의 봉건국가체제를 수립하였다. 봉건계급제도를 마련하고 통치체제를 수립하였으며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는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하였다.

시안에서 35마일 동쪽에 자리한 여산 근처에서 발견된 점토 군마들은 진시황제의 황릉의 위치발견으로 이어지면서 2000여년 이상 땅속에 묻혀있던 진시왕제의 신비가 열릴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아직도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군마만으로도, 조각상들의 섬세함과 놀라운 규모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중국을 다시 보게끔 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세계적인 고고학적 발굴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정부는 진시황제의 황릉발굴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거룩한 잔’이란 뜻의 성배는 흔히들 예수께서 로마군사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기 전 12제자들과 더물어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할 때 포도주를 나누며 사용했던 포도주 잔이라고 하여 the Holy Grail 또는 the Holy Chalice라고 부른다.

성배는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된 포도주만을 담았던 용기만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흘린 피를 담았던 용기이기도 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누가복음 19장 34에 보면 로마병사가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다는 기사가 있지만 그 피를 담아 보관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으며 설사 그렇다 하드라도 만찬에 사용했던 용기와 그것이 동일한 것인지도 분명치 않으나 이러한 후대의 전승이 추가되면서 성배의 가치와 의미는 더욱 높이 평가되었다.

북부 이태리의 튜린(Turin)에 있는 성 세례 요한 성당에는 아마포 섬유(flax fibrils)로 직조되어 있는 길이 약 4 미터, 넓이 약 1 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천(직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예수의 장례식 때 사용된 수의로 알려져 있는 유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셨을 때 예수님의 몸을 감싸서 아리마대의 무덤에 눕혔던 그 수의라고 믿고 귀히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수의’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 40여명이 STURP(The Shroud of Turin Research Project Inc.)라는 기구를 만들어 1978년 튜린의 수의에 접근하여 다방면에 걸친 조사를 진행했다. 이때 교황청은 ‘신비로운 수의’를 이렇게 과학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달아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교황청으로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役事)를 인간의 과학기술로 해명해 보겠다는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모든 사물의 원인과 결과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과학으로서는 진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보다도 ‘초자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이미지의 형성방법에 대한 호기심을 접을 수가 없었다. 종교와 과학의 긴장가운데서 어쩌면 ‘예수의 수의’는 그 신비를 더해가고 있다.

'마야문명(Maya)'이란 북 아메리카와 남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중남미에서 걸프해안쪽으로 솟아오른 유카탄 반도 일대와 태평양 쪽의 남부 멕시코와 과테말라, 서부 엘살바돌 그리고 서부 혼듀라스의 산악지대 일대에 도시국가형태로 발전하였던 마야족의 문화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마야문명은 잉카나 아즈텍 문명과는 달리 강력한 하나의 통치자의 지배밑에서 억압적으로 강대국을 이루었던 것이 아니라 안정된 농업을 기반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여러개의 도시국가들이 자신들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의식을 행하고 신전을 짓고 외부와 교역도 하면서 각종 문화를 만들어 가며 자체적으로 발전해 간 문명이었다.

1722년 네델란드 함대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스터 섬의 거대석상(Moai)은 한동안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투성이였으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큰것은 20미터까지 되며 무게 역시 90여 톤에 이르는 석상들을 900여 개나 만들어 어떤 것은 가파른 산 꼭대기에까지 올려다 세웠다는 사실이 도저히 그곳 사람들이 한 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외계인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세워졌다는 주장들과 함께 신비에 쌓인 불가사이의 하나로 서양인들의 관심을 끌게되었던 것이다.

레오나도 다 빈치(1452-1519)는 미술사가들에게는 골치덩어리 화가였다. 자신의 작품에 싸인도 하지 않고 제작날자도 기록하지 않았으며 누구의 부탁으로 누구를 그린것인지 또 그 대가로 얼마나 받았는지에 관한 기록을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16세기에 출판된 책 한 끝 가장자리에 Mona Lisa를 그렸다고 끄적거려논 것이 있어서 그것이 이 중세기 대가의 작품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지만 그외 모든것들이 미술사가들의 입장에서는 논쟁거리들이였다.

레오나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한 여인의 상반신을 77cm X 53cm 의 하얀 포플러 나무판에 오일로 그린 조그마한 그림에 불과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졌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관하였으며, 가장 많은 찬사를 받고, 작품에 관한 글들이 가장 많이 작성된 그리고 가장 많은 위작(僞作)들이 나돌기도 한” 작품이다. 초상화들은 부탁한 사람들에게 배달되어 보관되지만 이 초상화는 배달이 안됀채 그의 화실에서 발견되어 과연 모델의 주인공이 누구냐?하는 의문이 생긴것이다.

1564년에 태어나서 1616년에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시인, 극작가 그리로 배우로 활동하면서 거의 20여 년 동안에 39편의 희곡 작품을 썼고 154편의 소네트 시들을 남겼다. 그뿐 아니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지난 400여 년 동안에 180개 이상의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고 근래에 와서는 연극, 오페라, 발레, 그림, 영화 등 다양한 창작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계속 사랑을 받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시골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별로 교육을 받은 기록도 없는 사람이 쓸 수 있느냐? 7년이란 짧은 기간동안에 극작의 기교를 마스터하고 작품을 올맇 수 있었다니 천재가 아니냐?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희곡들은 문장들이 아름다울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왕실과 제임스왕 시대의 궁정의 관행등에 무척 친숙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표현들과 외국에 관한 해박한 지식들이 캠브릿지에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해외여행을 할만큼 부잣집 출신도 아닌 셰익스피어 같은 신분의 사람으로서 가능하냐?는 의문이다.

동북 아시아의 유목부족들을 통합하여 권력을 장악한 징기스칸은 자신을 1206년에 황제(Khan)라고 선포하고 소위 말하는 ‘몽고 침공’을 시작하여 유라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하였다. 그 가운데는 오늘날 중국을 위시하여 한국, 코카사스, 중앙 아시아, 그리고 상당 부분의 동부 유럽과 러시아, 남서부 아시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몽고부족들의 관습과 징기스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시신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장하고 무덤에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기로 하였다. 징기스칸의 시신은 몽고로 옮겨져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장되었지만 어쩌면 그가 나서 자라면서 놀던 Burkhan Khaldun산 근처의 오논(Onon)강 일대일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 지난 800여년 동안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영면(永眠)할 수 있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도읍지 시안에서도 5000여리나 떨어져 있고 북경(베이징)서는 6000리나 떨어져 있는 돈황은 중국대륙에서는 서쪽끝에 자리한 오지(奧地)이긴 하지만 옛부터 실크 로드의 관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었다.

이질 문화들의 교류가 많았던 이 지역은 인도에서 발생한 라마교와 불교가 유입되면서 동쪽으로 중국대륙과 동방의 조선에까지 불교를 전파한 인연 깊은 루트이기도 하다. 이곳 벼랑에 석굴을 파고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한 것은 전진 시대인 기원 4세기, 낙준이라는 승려에 의해서였으며 그후 북양과 오호16국 시대와 수 나라 시대를 거쳐 당(618-907)에 이르러 불교가 크게 번성하면서 이때 만든 막고굴의 숫자도 크게 늘어났다

돈황의 밍사산 벼랑에는 천불동이라고 부르는 막고굴(莫高窟)이 있고 영어로는 모가오(Mogao) 동굴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고비사막이 펼쳐진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