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Gallery/미켈란젤로의 비밀(15)/2010년 6월 15일>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비밀(16)

김 상 신

시스틴 채플 천정벽화를 마친 미켈란젤로

그 동안 15차례에 걸쳐 미켈란젤로가 4년 반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받침대 위에서 고개를 들고 때로는 누워서 그렸다는 시스틴 채플의 천정 벽화의 그림들을 하나 하나 자세하게 그림을 곁들여 보면서 그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의 의도는 무엇이고 거기에 그만의 특별한 비밀스러운 표현이 있었는지 그리고 있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등을 살펴 보았다.

천정벽화란 회벽을 바르고 그것이 다 마르기 전에 그 표면에 안료를 직접 바르는 기법을 쓰며 일단 채색한 후에는 수정할 수 없는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또한 그림 전체에 대한 계획을 미리 잘 세우고 단계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작업이기에 회화를 마스터한 대가들만이 무난히 해 낼 수 있는 작업으로 알려졌다. 사실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시스틴 채플의 천정벽화를 맡기도록 건의한 것은 바티칸의 건축담당자 Bramante였다. 라이벌 의식이 강했던 그는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이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기회에 미켈란젤로가 톡톡히 망신당하고 율리우스 교황의 신임도 잃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그를 추천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러한 어려운 작업을 잘 마무리하고 불후의 명작을 인류에게 남겨 주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 천정벽화를 완성한지 275년 후에 이 작품을 처음으로 본 괴테는 1787년 8월 23일 자 일기에서 “. . .시스틴 채플의 벽화를 보기 전에는 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을런지 제대로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곳에서 머리 위에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것들을 보게 되면 과연 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켈란젤로와 동시대인이요 라이벌이기도 하였던 라파엘(Raphael) 역시 이 벽화의 제막식에서 벽화가 개봉되는 순간 그 장엄함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잘 아는 대로 미켈란젤로는 이 작업을 원치 않았었다. 그의 최우선 관심사는 조각이요 또 맡아놓은 일거리들이 많이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역에 세울 조각품 제작을 의뢰받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별 흥미도 없는 그리기 작업을 육체적으로도 고통이 따르는 작업 환경가운데서 무엇보다도 도저히 존경할 수 없는 율리우스 교황과 그의 가문의 영광을 위해 작업 한다는 것은 유대교와 신 프라토니즘의 영향을 깊이 받은 미켈란젤로로서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작품으로 볼 때 그가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4년 동안 계속 싫어하고 불평하면서 작업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한 마음 상태로는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 그가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분명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그로 하여금 불멸의 명작을 만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교황에 대하여, 전쟁광인 교황이 이끄는 부패한 교회에 대하여 그림을 마칠 때까지 계속 불평하였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은 놓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신앙이 그로 하여금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그의 하나님에 대한 성실한 신앙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듯 하다.

학자들에 의하면 교황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작업을 하던 미켈란젤로가 어느 순간부터 작업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열 두 사도를 중심으로 신약의 인물들로 천정 벽화를 채우라는 교황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이 제시하였던 구도가 교황과 교황청 심의 위에서 받아들여지고 하나 하나의 그림들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 비밀스러운 장면들이 별 의심을 받지 않고 통과되면서 미켈란젤로는 처음과는 달리 자신이 작업하는 의미 특히 교황과 교회에는 물론 두고 두고 찾아 올 관람자들에게 분명한 멧세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그로 하여금 신나게 일을 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 그러한 자신과 자부심이 없었다면 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그러한 비밀 작업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찬사가 우러나오는 명작도 어쩌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독촉이 심해서 제대로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고 불평하였지만 1512년 10월 31일, All Saint’s Day 에 성대한 천정벽화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봉헌식은 교황이 추기경들을 데리고 채플에 입장하는 행진으로 절정에 이르렀으며 벽화가 공개되자 미켈란젤로의 명성은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시스틴 채플 천정벽화를 마친 미켈란젤로는 홀가븐한 기분으로 그가 원했던 조각에 다시 전념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스틴 채플과의 인연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20여 년이 지난 1533년, 교황 Clemente 7세의 요청으로 미켈란젤로는 시스틴 채플 안쪽 벽 전면에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을 그리기로 약속하고 1535년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시스틴 채플 천정 벽화 복원사업

1980년 6월, 시험적으로 Eleazar 과 Matthan 그림에서 촛불의 검댕이와, 향의 연기 그리고500여 년 동안 쌓인 먼지 등을 제거하는 청소작업을 시행해본 시스틴 채플 천정벽화 복원 위원회에서는 1981년 1월, 전체의 청소작업과 함께 복원작업을 계속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러나 복원사업이 시작되던 1980년대 예술계의 비판이 무척 강하였다. Andy Warhol, Louis Bourgeous 그리고 Robert Rauschenberg같은 미술가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청원서를 보내서 복원사업을 중단할 것을 청원하기도 하였다. 주요 이유는 귀중한 명작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여 년에 걸쳐 ‘최후의 심판’까지 작업을 마쳤을 때 500여 년 만에 그림은 한층 선명한 모습을 들어내었으며 먼지와 연기에 그을려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이 모습을 나타내었고 전문가들이 받침대에 올라가서 그림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가운데 미켈란젤로가 즉흥적으로 바꾸거나 추가한 부분들도 발견함으로 작업 기법은 물론 미켈란젤로의 작업 의도마저도 짐작할 수 있어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채플 천정벽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복원 사업에는 현대의 최신 장비와 기술들이 동원되었으며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이 복원작업의 전 과정은 Nippon Television Network이 녹화하였는데 15미리와 16미리 필름 147,638 피트(45,000 미터)에 달하였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비밀(15)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조상들

짧은 시간에 그 웅장한 창세기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시스틴 채플의 천정벽화를 감상 하노라면 제대로 눈에 뜨이지도 않고, 뜨였다고 해도 잘 보이지도 않아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인물들이 천정과 벽이 맞 닫는 부분, 여 사제들과 예언자들의 그림 사이로 천정에서 벽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삼각형의 굵은 선으로 만들어진 칸막이와 계속해서 천정과 벽을 구분하는 반 원(圓)형의 굵은 선으로 벽의 창문 윗부분까지 막은 칸막이 등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 원형 그림의 한 가운데에는 위의 삼각형 부분과 양 옆에 그려져 있는 인물들의 이름이 현판에 라틴어로 쓰여 있지만 밑에서 알아 보기에는 너무 작고 순서도 제멋대로여서 어떤 그림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그들을 하나 하나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1. 제단 위쪽 오른쪽-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마태복음 1장 2절)

2. 제단 위쪽 왼쪽 -베레스, 해즈론, 람(마태복음 1장 3절)


* 위의 두 그림은 20여 년 후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 앞 면에 <최후의 심판> 벽화를 그리면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지워버리고 말아 지금은 볼 수 없다.

3. 오른쪽 첫 번째-아미나답

탈무드에 의하면 큰 공을 세운 아들 나손을 키운 아주 경건한 아버지이다. 꼬불꼬불한 붉은 머리칼에 동방의 옷을 입은 활기 넘치는 젊은이로 그려진 그는 울어서 검은빛을 띠는 눈에 분노가 서려 있는 얼굴로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있다. 그림들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반드시 앉아있는데 거기에는 주의하여 보라는 멧세지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왼쪽 팔둑을 덮고 있는 까운 소매에는 뱃지 같은 것이 붙여져 있는데 지난번 복원작업을 통하여 그것이 밝은 원형의 노랑색 뱃지로 들어났다. 노랑색은 옛날부터 오줌의 색갈이라고 하여 수치와 모욕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미켈란젤로는 밑에 앉아 있는 교황을 향하여 예수의 가족들인 유대인들을 당시 카톨릭 교회가 증오하고 박해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요 모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65피트 높이에 있는 그림의 한 작은 부분이어서 밑에서는 눈에 제대로 띠지도 않았으며 촛불의 연기에 그슬려서 그동안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4. 왼쪽 첫 번째-나손

 

미드라에 의하면 나손은 유대민족들이 애급에서 나와 홍해를 건널 때 야웨는 그냥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한 것이 아니라 나손이 먼저 홍해로 뛰어들면서 “오! 우리 주 하나님과 같은 분이 어디있을고”하자 홍해의 물이 갈라지게 하여 모두가 건너게 하였다는 것이다. 나손은 믿음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보여준 것이다.

5. 오른쪽 두 번째 위-살몬(이상 마태복음 1장 4절)


6. 오른쪽 두 번째 아래-보아스 오벳


7. 왼쪽 두 번째 위-이새(마태 1장 5절)


8. 왼쪽 두 번째 아래-다윗, 솔로몬(마태 1장 6절)


9. 오른쪽 세 번째 위-르호보암


10. 오른쪽 세 번째 아래-아비야


11. 왼쪽 세 번째 위-아사(마태 1장 7절)


12. 왼쪽 세 번째 아래-여호사밧, 요람


13. 오른쪽 네 번째 위-웃시아(마태 1장 8절)


14. 오른쪽 네 번째 아래-요담, 아하스


15. 왼쪽 네 번째 위-히스기아(마태 1장 9절)


16. 왼쪽 네 번째 아래-므낫세, 아몬


17. 오른쪽 다섯 번째 위-스룹바벨


18. 오른쪽 다섯 번째 아래-아비훗, 엘리아김


19. 왼쪽 다섯 번째 위-요시아(마태 1장 10절)


20. 왼쪽 다섯 번째 아래-여고니아, 스알디엘(마태 1장 12절)


21. 오른쪽 여섯 번째-아킴, 엘리웃(마태 1장 14절)


22. 왼쪽 여섯 번째-사독, 아졸


23. 입구 위쫏 왼쪽-엘르아살, 맛단(마태 1장 15절)


24. 입구 윗쪽 오른쪽-야곱, 요셉(마태 1장 15-16)

유대인들의 역사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역사적인 배경과 문화를 달리하는 여러 나라에서 비교적 박해가 덜한 로마로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그들과 교우가 있었던 미켈란젤로는 그들을 모델로 유대인 조상들을 그렸으며 그 모습들은 일반적으로 망명살이 하는 유대인들의 분노와 슬픔이 담긴 모습이라는 것이다.

 

쥴리우스 2세가 시스틴 채플의 벽화를 미켈란젤로에게 부탁하면서 주문한 것은 신약에 나오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성모 마리아나 세례 요한 같은 측근들로 벽화를 채워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그림에는 우리들이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신약의 인물은 하나도 없고 구약의 인물들과 이교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교황이나 그를 자문했던 카톨릭교회 자문단들의 의도를 묵살하고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의도대로 지금과 같은 벽화를 그릴 수 있었던 데에는 나름대로 그의 설명이 먹혀들었음을 알 수 있다. 창조에서부터 이교도들의 활동을 거쳐 유대인들의 역사를 통해 내려온 인간의 역사는 결국 메시아로서의 예수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이 자신의 의도로 카톨릭의 경전인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의 조상들을 명단 그대로 하나도 빼지 않고 그린데서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바티칸은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지치고 우울한 모습의 예수의 조상들은 포로생활의 암흑가운데서 메시아의 오심을 갈망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는 공식설명을 내면서 미켈란젤로의 의도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의 직계 조상인 ‘다윗의 집’을 그리는 데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숨은 의도들을 엿 볼 수 있으며 여기에도 그의 소신인 휴매니즘과 신 프라톤 사상 그리고 보편적인 관용 등을 고양하려는 의도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곁들어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를 보면 가끔 부인의 이름이 나오기는 하나 대부분이 남자의 이름만 나오는데 그림에 보면 대부분이 여인과 아이들이 같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어떤 그림은 여자가 도리어 앞에 크게 크로스엎 되어 있고 남자는 가리워져 있는 경우도 있다. 가정을 돌보고 자녀들을 기르는 것을 모든 것의 근간으로 여기는 유대인들의 전통과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여기며 균형을 맞추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유대사상을 강조하려 하였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세계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박해를 받고 있던 때에 유대인들만을 카톨릭 교회의 본산인 시스틴 채플에 그려 넣으면서 그들에 대한 최대의 예우를 갖추어 그려 넣는 모험을 단행하였다는 주장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류(2流) 시민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미켈란젤로는 이들의 옷감이나 색갈들을 최고의 것으로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치고 우울한듯한 모습도 사실은 12세기부터 다른 지역에 번진 종교재판으로 박해를 받던 배경과 문화를 달리하는 여러 지역의 유대인들이 비교적 박해가 덜한 로마로 많이들 몰려왔는데 그들의 전형적인 얼굴의 모습이 그렇게 보인 면도 있지만 사실은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그린 것이며 특히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예수의 조상 벽화’들을 교황과 자문단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사용하였지만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창문 옆에 있는 그림들은 그런대로 잘 보였지만 예수와 가까운 직계 조상들일수록 창문이 없는 안쪽 깊숙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서 조명이 없던 당시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으며 20여 년 후 정면에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를 그린 패널과 베레스, 헤즈론, 람을 그린 패널, 두 장을 그냥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아브라함에서 람까지를 빼먹고 아미나답과 나손으로 시작되는 양쪽 패널들은 한때 누구를 그리려 한것인지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연재하였고 <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을 연재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

 

<늘푸른나무(www.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