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보/성지순례(4)/2009년 12월>

화보 로마의 성지를 찾아

바티칸은 로마시내 서북쪽에 흐르고 있는 테레비(Tereve) 강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바티칸은 시국(市國)이라고 부르는 독립된 아주 작은 나라이지만 캐톨릭 교회의 총본산으로써 그 영향력은 세계 구석구석까지 미친다.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베드로가 순교하여 묻혔다고 생각되는 현 장소에 베드로를 기념하기 위한 대성당을 지었지만 여러번 개축되었고 지금 바티칸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과 광장, 완공에는 176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큰 돔(Dome)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들어내는 부분이었으며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의 모형이 성당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원형의 성 베드로 대 광장 둘레엔 돌기둥으로 열두 회랑을 세워놓았는데 그 회랑 위에는 140명이나 되는 성인들의 석상들을 만들어 세워놓았다.

한편 성 베드로 대 광장의 중심에는 애급에서 옮겨와 한동안 칼라칼라 황제 경기장에 세워놓았던 오벨리스크를 교황 식스쿠스 5세 때인 1586년에 다시 옮겨 세워놓았다.

그 바로 바울의 순교지로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던 곳에 성 바울 대성당을 지었는데 그곳에는 칼과 성경을 들고 있는 사도 바울의 석상이 현관 앞에 세워져 있다.

대 성당의 내부는 양쪽에 한 줄로 쭉 제단 앞까지 세워진 돌기둥에 의하여 5개의 통로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 성당 내부의 넓음과 웅장함은 순례자들에게 경건과 장엄함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나무들과 묘비들이 늘어서 있는 로마의 아피아 가도, 이 길 밑에는 카타콤베들이 있다

카타콤베란 말은 9세기부터 초대 기독교 신자들의 공동묘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사실은 혹독한 박해를 피하려 지하로 내려갔던 초대교회 기독신자들의 신앙생활 현장을 가르치고 있다.

16세기 초 산타 체칠리아 성녀의 관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 녀의 관을 열어보니 성녀의 유해는 1,000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순교 당시의 보습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조각가 미테르노는 이 모습을 대리석 조각으로 옮겼는데 그것을 복제한 석상이 현재 바로 이곳 성 칼리스로 카타콤베의 산타 체칠리아의 방을 지키고 있었다.

옛날 이 ‘목수 요셉의 성당’ 지하에는’ 마메르티노’ 감옥이 있었다고 한다. ‘목수 요셉의 성당’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그 중앙에 작은 제단이 있는데 그 제단의 맞은 편에는 여기에 투옥되었거나 처형된 정치범들과 순교자들의 명단이 있으며 이들 순교자들의 명단에는 베드로와 바울의 이름이 맨 먼저 있다.

처형된 순교자들과 정치범들의 명단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카타콤베를 지하에 두고 있는 아피아 가도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아피아 성문을 지나 도미네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을 만나게 된다

베드로는 네루의 박해가 끝날 때까지 당분간 로마를 떠나려고 하는 그 때에 베드로는 로마로 향해 들어가고 있는 예수님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놀란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도미네 쿠오 바디스) 라고 예수님에게 물었다고 한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고대 로마인들의 뛰어난 기상과 건축 그리고 토목에 이르는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콜로세움의 내부, 이곳에서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맹수의 먹이가 되어 순교하였는데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 토목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콜로세움 앞 광장에는 콘스탄틴누스 대제의 개선문이 콜로세움 쪽으로 우뚝 다가서 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콘스탄틴누스는 십자가 군기를 만들어 앞 세우고 마침내 테레베 강의 밀바오 다리에서 그의 정적 막센피우스를 맞았으며

이후 콘스탄틴누스는 원로원과 시민들의 열 열한 환영을 받으며 로마에 입성하여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였다

또 다른 개선문인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만나게 된다. 이 개선문은 70년대에 있었던 에루살렘 점령을 기념하여 티투스 황제의 사망후 기원 81년에 원로원과 로마의 시민들이 함께 세웠다고 한다.

개선문의 내벽에는 티투스 장군의 개선에 따른 여러 모습과 이야기들이 부조되어 있었다.

베드로가 체포된 후 헤롯에 의하여 결박을 당하였던 바로 그 쇠사슬이 여기에 보관되어 있어서 베드로 성당을 가리켜 일명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이 쇠사슬은 성 베드로 성당을 세운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딸인 에우도시아(후에 황제 발렌티아누스 3세의 황비가 되었음)에게 그 녀의 어머니가 보낸 것이라고 한다. 청동함 속에 잘 보관되어 있다.

또 하나 진귀한 작품은 일찍이 미켈란젤로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앉아 있는 모세의 대리석 상'이 바로 이 성당 의 내부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거룩한 계단의 성당’은 16세기에 대 건축가로 이름을 떨쳤던 포타나에 의하여 건축된 성당이라고 한다.

이 성당의 정문을 통하여 내부로 들어서면 거기에서 28개의 계단으로 된 ‘거룩한 계단(Scala Santa)’을 만나게 된다. 빌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예수님께서 밟았던 바로 그 28개의 계단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특히 옛날 수도사들은 우리 주님의 고난과 핍박 그리고 아픔을 생각하면서 무릎으로 기어 한 계단, 한 계단씩 28개의 이 ‘거룩한 계단’을 올라갔었다고 한다.

오늘날도 많은 순례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새로운 다짐을 하고 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