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보/성지순례(3)/2009년 11월>

화보 2차와 3차 성지순례

2차 성지순례는 요르단을 거쳐 육로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기로 하고 요르단의 수도 암몬의 '알리아 왕비' 공항에 도착하였다. 내려다 보이는 암몬은 별로 크지도 않았고 잘 정돈되어 있지도 않은듯 했다.

도시 곳곳에는 옛날의 영화를 말하는 듯 옛 건물의 잔해들이 남아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요셉이 천사와 씨름하였다는 얍복강, 큰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으나 한국의 실개천에 불과하여 '요 강'이 얍복강이냐는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요르단에는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교역의 중심지였던 페트라가 있었으며 영광스럽던 날들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폐허가 된 경기장의 모습과

붉으색 벽돌로 만든 건축물들과 도로들이 이채로웠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약속한 가나안 땅을 내려다 보면서 운명하였다는 느보산을 마지막으로 요르단에서 제2차 순례를 마쳤다.

이스탄불은 로마제국의 수도와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1230년 동안 영고성쇠를 누렸던 도시로 지리적으로 동서양을 연결하는 가교역활을 하였다.이곳에서부터 사도 바울이 선교하였던 소아시아의 지역들을 찾아보는 제3차 성지순례를 시작하였다.

동서를 잊는 다리는 무척 길었다. 세계에서 네 번째 긴 다리로 알려진 보스포러스(Bosporus)다리가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연결하고 있다

이스탄불 한 복판에 하기야 소피아 대성당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당에는 기독교와 모슬렘이 뒤범벅이가 되어 있다. 5세기에 기독교의 대성당으로 건축되었지만 6세기에 모슬렘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모슬림 회당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십자가와 함께 아랍어로 쓰여진 모슬렘 상징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으며

회로 덮어 씨우다 만 예수의 초상화도 볼 수 있다.

에배소는 교통의 요지로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번성하던 곳이었고 한때 주민도 30만이 넘었다고 한다. 남아있는 폐허 가운데서도 그 대단했던 규모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사도 바울도 이곳을 중요하게 여겨 1,2차 전도여행때 이곳을 찾았고 3차때에는 2년동안 체류하면서 전도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었다고 한다. 그 후 요한 사도가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에 와서 체류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요한의 묘가 있다는 성 요한 교회를 찾았을때는 건물의 골격괴 기둥들만이 남아 있었다.

에배소의 자랑이었던 도서관도 앙상하게 기둥들만 남아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았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 앞에는 사진과 같이 한글로 된 안내판이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소 아시아 일곱교회의 두번째 교회가 있는 서모나는 현재는 터어키의 항구도시이다.

이곳도 현재는 옛 도시의 잔재들만이 딩굴고 있었다.

버가모는 상업이나 산업의 중심지는 아니었으나 소 아시아의 수도로 400여년이나 행정의 중심지 역활을 하였다.높은 반원형 언덕을 중심으로 경사진 곳에 성읍이 건설되어 무척 인상적이다.

그곳에도 옛 도시의 모습들이 알몸을 들어내고 있다.

교통의 요지였던 두아디라는 따라서 산업의 중심지로 특히 염료와 섬유산업이 발달하였다고 하는데 자주장사 루디아가 두아디라 출신이라는 기록이 성경에 나온다

우상숭배가 심하였다는데 폐허가 된 신전들을 볼 수 있었다.

기원전 6,7세기에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사데는 알렉산더와 로마의 지배를 밭으면서 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사대교회가 있던 시민회관도 기둥만 남겨놓고 있다.

용암의 재로 땅이 비옥하여 옛날부터 포도산지와 포도주로 유명하였다는 빌라델피아, 교회는 크게 번성하지 못했지만 충성스러운 교회로 칭찬을 받았다.

빌라델비아의 교회는 자주 일어났던 지진과 화산 폭발로 인해 파괴되었으며 지금은 두 개의 돌기둥과 주초만 남아 옛 날을 말해주고 있었다.

라오디게아는 주전 3세기 경에 세워진 도시로 의류 산업과 의료 산업이 발달한 곳이였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찍이 바울의 도움 자였던 에바브라에 의하여 세워젔으나 도시의 번영만큼 발전하지는 못하고 교회당도 현재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옛날을 말하듯이 깨어진 벽돌장만 뒹굴고 있었다

히엘라볼리는 로마시대에 온천지역으로 번성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그곳 온천수는 유명하여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는 곳이다. 필립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하여 그의 기념 예배당이 있었다고하나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으며 폐허가 된 극장터도 남아 있어 옛날을 말해주고 있다.

희랍의 수도 아덴은 사도 바울이 학문의 도시인 이곳에서 학자들과 대중들 앞에서 기독교를 변론한 곳이기도 하다. 아레오바고 언덕에는 아덴의 신을 예배하던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데 지금은 기둥들만이 남아있다.

빌립보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울은 강가에 나가 설교하였다고 전한다.바울이 설교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성 밖 강가에서

빌립보는 바울이 "마케도니아에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도착한 첫번째 소 아시아 도시로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립에 의하여 세워진 도시라고 한다. 옛 교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문밖 강가로 추정되는 곳에 세워진 교회에서 순례단원들이 다같이 기도를 드리고 떠나 온 기억이 떠오른다.

바울의 전도여행지를 찾아보는 제3차 성지순례를 마치면서 데살로니가의 알렉산더 대왕상 앞에서 필자와 여행안내자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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