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글쓰기 교실(CSULB, OLLI)/2020년 4월 15일>

 

<CSULB, OLLI 글쓰기 교실>

은퇴후의 senior

김 경 상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들어서 알고있는 경주 최부자 이야기가 있다.12대 손까지 근 400년 동안 부를 유지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집안에서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엄격한 규율로 근검절약 하는 생활을 하고 밖으로는 이웃 소작농들과 모두 잘 살도록 노력한 가문이다

그 시대에 보기드믄 가장 민주적인 경영철학을 가진 지주였다 모든 주위의 존경과 칭송을 받고 순탄한 세월을 지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멀리 해외로 눈을 돌려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군에게 독립자금을 보냈고 해방후에는 나머지 전 재산을 풀어 후학양성에 투자했다 우리네 보통사람은 따를수 없는 훌륭한 가문으로 소개된다.

여기 보통사람 중에도 보통인 우리들 이야기를 하련다

평범한 직장인 으로 살던 우리는 30대 중반에 한국에서의 모든 걸 내려놓고 이곳 L.A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친구를 따라서 시작한 가게일은 전공과는 아주 다른 생소한 업종이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그리고도 7 days를 감수한다. American dream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 시작된다 매달 지불해야하는 loan payment, taxes, business expense가 어김없이 닥쳐온다 다행히도 두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한국체험 프로그램에도 보낸다 우리도 연로한 부모님 효도 방문도 가급적 자주 한다

그시절 이민붐이 일어나면서 한인고객을 위한 전자제품상을 구상한다

좀 큰 규모의 가게를 학교 후배와 동업으로 시작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투자금을 손해보면서 손을 털고 나왔다. 젊은 나이여서 그랬나 가슴은 아펐지만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을 뚫고 나갈수 있었다. 시련을 딛고 새 출발을 하게 방향을 제시하신 섭리에 감사한다 우리는 참으로 재주도 없는데 그래도 건강하게 안전하게 지켜주신 은혜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남편의 commercial refrigerator service사업은 근 10년간 유지햇으나 너무 강직하고 착한 남편은 경제적으로 손해도 보며 돈이 뫃이지 않는다. 아이들 대학 학자금이 필요하게 될즈음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가게가 운좋게 나타났다. 아니 하나님이 예비하셨다고 믿는다

1990년 전후였는데 이때가 미국경기가 가장 활기있던 시절인 듯

가게 주위의 공장들이 3교대로 돌아간다. 으쌰으쌰 참 신나던 그때였다

한국의 친척분들 미국관광도 시켜드린다 또한 형제분들 이민초청도 해서 정착할수있게 도왔다

아이들 대학교육도 끝날지음에 친구들과 어울려 성지순례 여행도 갔을때는 우리 생애 밤 6시 쯤 일께다

어느듯 아이들은 결혼적령기가 되어 배우자를 만나 집을 떠나고 귀한 예쁜 손녀도 태어나고 우리도 65세가 지나서 은퇴적령기에 들어섰다 뒤돌아보니 한 30여년을 또순이 기질도 못되지만 게으름도 안 피우고 성실히 일 한 것 같다 경제적으로 up and down을 몇 번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은퇴후에는 벼르던 대륙횡단 여행길에도 나섰다 욕심을 부려서 호주 배낭여행도 마칠수 있었다

GDP10만불을 훨씬 넘는다는 륙셈부르크 라는 조그만 나라가 있다 인구 60만명인 북 구라파의 복지 국가중 복지 국가 란다

경치도 아름답고 평화스런 사회 환경 과 순진한 국민들을 부러워 하며 모두가 살고 싶은 곳이란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먼 옛날 한국이 해방되어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울 때우리 한반도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나라 미국이 있다

지금까지도 우리 한국인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신뢰할수 있는 나라다 기본적으로 infra공공시설이 편리하게 되었고 정의와 양심이 통하는 국가이다 일단 미국 시민은 전 세계인구의 1%안에 들어가는 삶 의 혜택을 누린단다 지금은 우리의 가장 젊은 황금기 이다 크게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많은 부를 이루지는 못했어도 우리 여생을 성경에 쓰인대로 가난하지도 부하지도 않게 이끌어 주시는 고마우신 분께 맡낀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