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글쓰기 교실(CSULB, OLLI)/2020년 5월 1일>

 

<CSULB, OLLI 글쓰기 교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중에 ‘내가 만난 시인’

김 정 숙

 

직장도 상점도 닫혀있어 두려움속에 서성거렸다

마음둘곳을 찾아 집안 방구석을 기웃거리다가

어제는 옷장 설합, 부엌캐비넷을 정리했다.

 

오늘은 책장에서 잠자는 시집들에게 마음을 보냈다.

한때는 애정을 가지고 시인의 세계를 기웃거렸다.

시적감성이 차면 내 수필의 맛도 깊어질것 같았다.

 

시집을 모아보니 책상위에 눈에띄는 시인들이 있었다.

윤동주,백석,황동규,기형도, 양성우, 류시화, 마종기, 함민복, 릴케, 파블로 네루다.....

내 시야에서 멀어져 있던 시인들이 안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회고 하건대,

시는 짧은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인의 마음을 불러들이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쉽게 오지않았다.

시는 비유로 짜여진 촘촘한 예술이었다.

그예술성이 부족하여 초장에 도망을 쳐버렸다

 

저자에게 받은 시집도 여러권 있다.

낯익은 시인들이지만 흑백사진으로 보내다가

한 시인에게 잡혀 달려갔다.

 

하얀색의 작은 시집이 벌떡 일어나 나의 손을 잡는다.

 

‘봄날의 텃밭’

"아 만일 바람이 없었다면 오십을 바라보는 내 가슴에도 흔들리는 물결이없었다면

내 향기를 너에게 전 할수 없다면

나는 꽃일수있었을까?

나무일수 있었을까 사람일수 있었을까’

 

책 표지의 시 구절이 종소리로 달려온다.

 

그의 시는 사람냄새가 푹푹 밀고 온몸에 덮친다.

솔직하고 담백하며 거침없어 겨울 동치미를 마시는것 같다.

그의 시세계에 있다보면 시인의 끈끈한 인간미가 절마다 숨어있다가 나타나서 그들의 막걸리 냄새로 취하게 한다.

 

그는 평상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 그대로 보여 줄뿐이였다.

 

오랫동안 모르는척 살았던 그가 궁금해졌다.

지인을 통해서 가끔 풍문처럼 스쳐가긴 했다.

 

초기 페이스북을 같이 하면서 그의 삶의 근황을 볼 수있었다.

어디를 다녀왔다든가, 누구를 만났다던가?

또는 거리의 재치있는 문구를 잡아 올리기도 했다. 유모어와 센스로 우리의 마음을 잡았다.

그의 친구들처럼 나도 댓글을 달며 그와 소통했다.

 

어느 날 극 보수성향의 시니어 시인이 등장했다.

경상도의 거친 억양으로 진보세력을 난도질하자 그는 사라졌다. 계정을 삭제한것 같다

나도 그후 가슴이 떨려서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가 마지막 대화였던것 같다.

 

지금 쯤 몇권의 시집이 나오지 않았을까.

매스컴에서도 인기있던 시인인데 조용했다.

 

이 십 여 년 전,

그는 40대 초반으로 미주문인협회장을 역임하며 인지도가 높았다.

십 수년전에는 그가 이끄는 문학회에서 문학공부를 했었다.

회원은 많지 않았지만 문학의 꿈을 키우는 인재들이 더러있었다.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주로 읽고 작품감상을 나누었다.

습작들을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들에게 배우는것이 많았다.

 

회원들과 빅 베어에 가서 문학캠프도 열었다.

바베큐도 해먹고 저녁에 모닥불에 모여 앉았다.

삼행시를 지어 밤하늘에 총총한 별에게 띄우기도 했었다.

 

수필공부를 할 수록 작품성있는 글이 아쉬웠다.

 

회원에게 따뜻한 그에게 나의 글을 봐 달라고 했다.

 

서울에서 작은 아버지 장례를 치루고와서 쓴 수필

작은 아버지 부고’ 이었다.

 

다음주에 내글은 빨간펜으로 틀린 철자법과 불필요한 문장들을 뽑아내며 만신창이가 되었다.

주제가 명확하지 않고 내개인의 넋두리를 길게 풀어놓은 것에 대해선 수술부위가 커져 걱정되었던 같다.

그런와중에 친구의 권유로 몇편의 수필을 서울에 있는 한국산문 계시판에 올렸다.응원하는 친구들이 있어 많은 답글을 받게되었고 쉽게 등단에 채택되었다.

그들의 요구대로 서울의 한국산문 등단 축하식에 참석했다. 마침 서울에 머물던 그는 그곳에 지인도 있어 행사에 참석해 주었다.

그날 그는 두껍고 무거운 책을 선물로 주었다.

포장이 찢어지고 책의 알몸이 들어났다.

한국어 대사전’. 기대에 찾던 나는 억 소리를 냈다.

 

등단하고 새 수필을 몇편 썼지만 반응이 좋지않았다.

먼저 등단한 문우들이 내글을 읽고 조언도 해주었다.

 

설계가 어설프고 골조도 튼튼하지 않은 집 공사에 벽을 만들고 치장을 했다

기본인 설계와 공사능력이 부족하므로 집은 볼품이 없었다.

내수필은 그렇게 지은 집이었다.

친구는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 쓰기’ 를 선물로 주었다.

그때는 별 감동도 없었으니 내 수준을 알만하지 않은가.

 

오십대에 시작한 글쓰기가 제대로된 글을 쓸 수있겠는가.

문학적 감수성도 부족했고 내공도 딸리는 데 욕심만 앞서있었다.

 

고민 끝에 나의 글은 (국화일기)로 접기로 하고 조용히 숨어버렸다.

처음 배우는 자세로 많이 읽고,생각하고,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마추어 급도 안되는 취미생이 조바심을 내며 과욕을 부렸다.

요즈음,

십여년 컴퓨터에서 잠자던 내 글을 꺼내서 읽을 용기가 생겼다. 그때는 나의 지성과 감성이 성장통을 앓는 아줌마이었다. 지금은 나의 소박한 글들을 부끄러워 하지않는다.

어느 햇볕 좋은 날은 꺼내서 물도 뿌려주며 못다한 대화도 나누어 보리라.

 

똑, 똑, 누님 뭐 하십니까?

아직도 먼지를 쓰고 뚱하게 서있는 큰 사전의 얼굴, 그 시인은 말한다.



사전을 찾아가며 꼭 맞는 단어를 찾아 글의 품위를 높여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는 그런 시인이다.

나를 그의 인생에 스치고 지나간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주도 잡히지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고 있다. 적이 모습을 변화시키며 허술한 인간을 노린다.

김. 동. 찬’

그 시인은 오늘 항체를 주사해 주었다.

집안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에 복종하며

그로 채워진 화요일

그의 항체는 바이러스에게 내 몸으로 침략할 틈새를 주지 않았다.

 

2020년 4월 21일 국화.정숙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