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글쓰기 교실(CSULB, OLLI)/2020년 3월 15일>

 

<CSULB, OLLI 글쓰기 교실>

 

풍성한 어느 봄날.

이 성 춘

아침 잠깐 청명하고 높은 하늘과 눈부신 해볕이 지난 후 오늘은 종일 축복받은 봄비가 사막을 적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조용히 달래주는 비를 즐기고 마음의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심리기전 은 의학적으로 잘 규명은 안 되어 있지만 나는 젊었을 때부터 비가 오면 우수에 빠지기도 했다. 이젠 조금은 쑥스러워 이런 감정을 잘 추스르지만 여전히 비 오는 날엔 더 순수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비가 며칠 온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빗방울이 정원을 두드리자 겉옷을 걸치고 과원으로 정원 숲속으로 기다리던 애인이라도 온 듯 껑충 껑충 뛰어 나갔지요.

문명의 기구인 스프링클러가 시간 맞춰 아무리 물을 뿜어도 갈증을 해소하기엔 항상 모자랄 것 같은 강박관념의 병자처럼 물을 주고 또 주어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스프링클러와 물 호스를 과수원에 틀어놔 상당한 물 값을 내기도했다.

오늘 이렇게 시원한 폭우가 쏟아지니 어디 아니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그저 신이 나서 과수들이 줄지어 서있는 사이를 거닐며 눈인사와 밝은 미소로 그들에게 애정의 폭우를 주고 받는다.

장미보다 더 화려하게 만개한 복사꽃 잎들이 비와 춘풍에 휘말려 대지 위를 붉게 물들였고 하얀 소복에 순백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요조숙녀 같은 배꽃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 두 손 벌려 안아주고 입맞춤한다.

대학시절 배꽃 뱃지를 단 아내의 얼굴이 다가 온다. 꽃물 몇 방울 나의 입술 적시고 혈관 속 내 몸 찌꺼기를 씻어 내린다.

매화꽃 이미 떨어진 몇 그루에서는 사춘기 소녀의 젖꼭지 같은 매실이 촘촘히 생명의 경외함을 나타내고 몇몇은 청록색 잎들만 간들거린다.

바로 옆에 있건만 어찌 이렇게 다른지. 내가 혹시 편애를 해 이놈이 항의를 하고 있나. 아빠는 막내만 좋아한다고 늘 불평을 하던 딸이 연상된다.

다른 종류의 과수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시간표가 있나보다.

아직은 커다란 대추나무, 포도같이 작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리는 장식용으로 쓰이는 사과 꽃은 흰색과 연분홍이 섞여 잘 어울려 특이하다.

살구꽃은 금년에 안식년인지 작년 같지 않다.

두 그루의 살구와 두 그루의 자두나무는 작년에 아주 풍성하여 몇 문우들에게 돌렸고 나머지는 나의 서재에 있는 각종 과실주 진열대에 놓여있다.

석류, 무화과 또 다른 종류의 사과, 복숭아나무들도 나의 과수원을 풍요롭게 장식해 준다. 과수뿐만 아니라 사막 나무중의 나무라는 죠슈아트리는 송곳 같은 잎들에게 부지런히 새순을 키워내고 있다.

아직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름 모른 나무들, 백일홍, 사철나무 , 석류나무들도 다소곳이 봄비를 맞고 30-40년은 족히 되는 청송들의 웅장한 가지들과 비에 씻겨 매끄러히 빛나는 솔잎의 초록 윤기들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사늘하다.

나도 홈초로이 젖은 몸으로 숲속 나무가 되어 먼 지평선을 응시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훈훈한 방기온과 여느 때와 같이 흐르는 고전음악이 창밖 빗소리와 어울려 한층 분위기를 띄운다.

옷을 갈아입고 한 잔의 술과 함께 소파에 몸을 맡긴다.

딸네 집 마실, 교회 봉사활동, 집안 일, 친구들과의 식사약속 등등 항상 바쁘기만 한 아내는 정기적으로 와서 반찬과 청소를 하고 가는 아줌마의 음식들을 반찬 그릇에 챙겨 냉장고에 넣고 어떻게 어떻게 해먹으라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내려 간지도 며칠 째가 된다.

반찬 몇 가지에 밥 한 그릇 먹으면 되는데 뭘 그리 요란한지.

오늘같이 비가 흠뻑 내리는 사막에서, 더러운 몸 씻어내고 꽃물 몇 방울로 배를 채워도 되련만

3122020

비오는 밤에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