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글쓰기 교실(CSULB, OLLI)/2019년 11월 1일>

 

<CSULB, OLLI 글쓰기 교실>

 

금강산, 북녘 땅을 밟다

김 정 숙

1. 프롤로그/해금강 호텔에 묵다.

잠실에서 금강산행 고속버스에 간신히 올라 탔다. 장소가 바뀌어져 헤맨 사람들이 많았다. 애간장을 태웠지만, 나는 금강산과 인연이 있었다. 남북통일의 방해선인 휴전선을 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운전사는 명단 확인을 마치고, 도심을 빠져나가 고성의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는 조국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서 일년동안 할머니와 살고 있던 딸과 동행했다. 딸이 미국으로 돌아가기전, 내 고향인 이북 땅도 밟게 해주고 싶었다.

버스는 홍천, 인제를 지나 싱그러운 5월을 노래하며 달려갔다. 네시간쯤 후에 첫집결지인 고성의 금강산콘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북한여행 안내와 이미 신청했던 북한관광증과 출입국 신고서를 받았다. 북한에서는 달러화로만 사용 가능하기때문에 여행자에게 전자카드를 한개씩 나누어주었다. 우리도 그 카드에 북한에서 쓰고싶은 액수를 충전시켰다.

버스는 오후 세시경에야 고성의 통일전망대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했다. 반대편 주차장에는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하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곳을 완전히 빠져 나왔을때, 우리일행 오백 여명은 남한측 출입국사무소에서 출국검사를 마쳤다. 그들은 우리가 타고 이곳까지 왔던 버스를 타고 돌아가고,우리는 그들이 금강산관광을 마치고 돌아왔던 십 여대의 현대버스에 나누어 탔다. 미국 교포 십 여명은 같은 버스에 배정되어 반가웠다. 이곳은 매일 천여명이 통과하며 금강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의미있게 만나는 장소이기도하다.

좁은 비포장도로를 버스는 덜덜거리며 달려갔다. 철조망을 길게 쳐놓은 우리 남한측 초소에서 무장한 헌병들이 서 있다. 그들은 우리가 흔드는 손짓에 환한 미소로 환영해주었다. 군사분계선인 삼팔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천 만의 이산가족의 한이 서려있는 이곳은 들풀만 무성한 시골모습이다.버스 안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그곳을 응시했다. 내 할머니는 북에 두고온 아들인 내 아버지를 부르다 저 세상으로 떠나신지 이십 여 년이나 된다.

평생 홀로 남편을 기다리며 사신 어머니는 온몸이 쇠진하여 기력도 없으시다. 기다림은 너무도 길었다.그들의 한을 풀어드릴 남북통일은 우리들의 몫이건만,그 통일은 도대체 어디까지 와있는 것일까? 육로로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에 갈 수 있다하기에설레는 가슴을 안고 나선 길이었다.

수 년전 중국을 통해 우리민족의 기상, 백두산 천지에 올랐었다. 그 건너편은 북녘 땅임을 알고 있었다. 혼신을 다해 내 아버지를 불렀지만, 그 외침은 허공으로 부서졌다. 휘청이는 걸음으로 돌아서야 했던 그날이 살아온다.

드디어 북한초소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무장한 북한군이 십 여명 보였다. 우리가 동포애로 흔드는 손짓에는 안중에 없고 전투태세를 갖춘 긴장감만이 서려있다. 그들은 구세대 복장에 왜소하고 깡마른 초라한 모습들이었다. 남북한 사람을 같이 세워놓으면 누가 같은 조상의 피를 나눈 동포라 말할수 있겠는가. 오십 여년의 분단은 사람들의 모습까지 바꾸어 놓은 현실을 목격했다.

아직도 적대감정을 버리지 않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통일을 바라는 우리의 염원이 얼어붙는 듯 했다. 빈들에는 가끔 십 대로 보이는 인민군들이 철도공사를 하고, 그 자재는 모두 현대건설에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버스가 지나갈 때는 모두 돌아앉아 쉬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군데군데 보초병이 한명씩 서있는데 그들도 우리가 흔드는 손짓에는 무표정이었다.

들판에서 가끔 밭일을 하는 아낙들도 볼 수 있었으나, 그들은 긴 행렬의 버스에 무관심하게 행동했다.잡초만 자라고 있는 들에서 뜨문뜨문 인가 같은 낡은 기와집들이 보였다. 집의 크기와 모양은 같았고 빈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북한 주민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사, 오십 여년전 우리 농촌마을의 정경을 보고있는 듯해서 정겨움과 측은한 마음이 교차했다.

금강산이 가까워지고 있는듯 크고 작은 둥근 바위 덩어리들이 서로 껴안고 누워있는듯한 바위산이 보였다. 남한과 인접한 곳이라 나무는 모두 잘라버려 민둥산이다. 금강산은 일만 이천봉이라는 노래를 불러왔었는데 어디쯤에서 그 신비한 자태를 볼 수 있을까.

저 멀리 동해 바닷가가 동그라미를 그리듯 들어와 호수같이 보이는 곳이 장전항이다. 그곳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고층건물이 우리의 숙소인‘해금강호텔’이란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출출해진 우리는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온정각식당으로 갔다.
저녁식사는 무공해 건강식으로 간소해서 진수성찬에 익숙한 우리에게 먹는 재미는 없었다. 저녁식사후 수백 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시설을 갖춘 금강산온천장에 갔다. 잔뜩 흐려 별도 없는 까만하늘을 바라보며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피로에 지쳤던 몸을 풀었다. 온천천국이라는 일본의 뱁부온천장이 부럽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금방 부슬비라도 내릴것 같다. 어제부터 남부지방에 내리고 있는 비가 북상하고 있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떠나왔었다.
아침식사를 하러 호텔식당으로 내려가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비와 우산을 준비해있었다.날씨에 신경을 써서인지 음식이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2. 금강산을 향하여

십 여대의 버스가 행렬을 이루어, 포장이 되지않은 좁은 산길을 오르며 금강산으로 향했다. 금강산은 서해쪽으로는 내금강, 동해쪽으로는 외금강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산이다. 세 시간쯤 걸린다는 외금강에 구룡연 코스를 오른단다. 이곳에는 삼록수, 양지대, 옥류동,금강문,연주담,비봉폭포,구룡폭포와 구룡연 그리고 상팔담 등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한다.

어느 지점에서 버스는 멈추고 우리는 물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인 그곳의 신선한 공기가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계곡의 바위모양이 절묘해지고, 그곳을 부딪혀 내리는 물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산에서는 폭포수가 떨어져 내리며 바위사이를 구비구비 곡예를 하는듯한 장관을 보며 신비로움에 푹 빠졌다. 그 정취에 홀려 정신없이 계곡을 오르다보니,어느새 검은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선선한 바람까지 부는 날씨로 변한것이 아닌가!
멀리 미국땅에서 방문한 우리 모녀가슴에 금강산 경치를 담아 고향땅에 대한 그리운추억을 만들어 주려는가보다. 끝을 모르게 산을 오르면서 구름다리도 건너고 가파른 계단을 숨을 몰아쉬며 올랐다. 뾰족한 산봉우리들 바위틈 사이에 서있는 소나무가 잘 그린 산수화를 보고 있는듯 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산이 가파러지자 숨이 차고 땀이 흐르며 서서히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그럴때마다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하며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았다. 저 아래 멀리 보이는 수많은 작은 봉우리에서는 물안개가 피어 오르며 얼싸안고 하늘과 정을 나누는것 같았다. 바위에 부딪혀 내리는 물은 비취색을 띠며 모였다. 가파르고 긴 계곡을 춤을 추듯 방향을 틀면서 내려간다. 마실때마다 십년씩 젊어진다는 금강산 맑은 물을 마시면서 가슴이 열리며 하늘과 통하는듯 했다.

산세가 가파라지면서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우뚝 서서 우리를 제압했다. 금강문이라 불리는 좁은 바위틈으로 통과했다. 하늘처럼 맑고 푸른물이 흐르는 옥류동 구름다리! 잠시 멈추어서 표현할수 없는 아름다움에 젖어들었다. 주위에는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계곡은 절묘한 대반석을 깔아 놓은듯한 사이로 옥수가 흐른다. 1920년에 쓰여졌다는 육당 최남선이 쓴‘금강예찬’에 옥류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묘,웅장,밝음,화려,그윽함,현모함,원만함,빼어남,소리,색체,정신,기운 등의 일체의 미적 요소를 완전히 조화한 상태를 상상해보라!’

다시 우리를 기다리는‘연주담’그곳에 담겨있는 농익은 연초록 물빛을 보았다.
나의 가슴이 새색시처럼 설레었다. 그 가슴을 꼭 안고 오르면서 또 바위 절벽을 스치며 흘러 떨어지는 비봉폭포’를 만났다. 부푼가슴은 터질것만 같았다. 전망대에 올라 귀가 터져 나갈것 같은 폭포소리의 장관을 보았다. 바위에 부딪혀 내리는 폭포수를 흠뻑 맞으며 아홉마리의 용이 내려와 놀았다는 '구용폭포 구룡연’에서 신선이 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일행들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자리를 뜰수가 없었다.

급경사가 져서 일부관광객만 오르는 대열에 끼어‘상팔담’까지 오르기로 했다.
아직도 눈이 쌓여 있는 산길을 미끄러지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숨을 몰아쉬며 올랐다. 땀으로 흠뻑 젖어 헐떡거리는 나를 요란한 박수로 맞아주는 금강산 일만 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다는 금강산 봉우리에 둘러쌓여 그들이 뿜어주는 정기를 받았다.

얼마나 긴세월 그리워하던 금강산인가! 분단으로 멍든 이산가족들의 상처를 헤아리며, 나의 몸 속속들이 파고들며 깊은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듯 했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그리운 일만 이천봉 말은 없어도/이제야 자주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산 못 가본지 몇 해/오늘에야 찾을날 왔나/금강산은 부른다

‘그리운 금강산’을 산위에서 마음껏 부를수 있는 이감격의 순간 해가 서산으로 옮겨가도,이 산신령들과 오랜 대화는 끝이 없었다. 딸이 손을 잡고 끄는 바람에 다시 산을 내려갈수밖에 없었다. 그리운님을 만나본 여인처럼,산을 내려가는 나의 발걸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산을 오르내리면서 바위위에 새빨간색으로 새겨진 문구들과 김일성수령,김정일 등 이름을 자주 보게된다. 주로 기암절벽의 절경에 새겨놓았다. 어떤곳을 지날 때 산에 새겨진 거대한 김일성 수령이라는 글씨는 깊이가 2m되게 파놓았다 한다.정치적 목적으로 자연을 훼손한 그들의 무례함에 우울했다. 후세에 우리자손에게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중국도 마찬가지이니 공산주의자의 잔재라고나 해야할까?

3.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일포

산에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목란각에 갔다. 북한에 이름난 함흥냉면을 시켰다.퀑국물로 육수를 만들었다는데 단맛도 신맛도 없는 밍밍한 맛이다.국수만 몇가락 건져먹고 자리를 뜰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관동팔경의 하나라는 삼일포로 향했다.온정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고성읍으로 동해가 가깝게 삼십 분쯤 달리다가 낮은 산중턱에서 버스는 멈췄다. 작은바위들이 있는 산등성이로 올라서자 갑자기 앞이 환히 트이면서 하늘이 내려온듯한 둥근호수가 시야에 담긴다. 삼십 육개나 된다는 작은 산봉우리에 둘러쌓인 아늑하고 정다운 호수다. 호수위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작은 섬이 몇 개 떠 있어 그 정취를 더해준다. 섬에는 작은정자도 서있어 여유있고 한가로운 멋이 한폭의 그림이다.
호수라면 겨울눈 쌓인 캘리포니아의 레익타호가 항상 내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그러나 삼일포는 호수주위를 둘러싸고있는 작고 다양한 산봉우리, 주위의 소나무 숲,멀리 보이는 들판의 시원하게 트임이 호수의 여유로운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휴게소인 단풍관으로 들어가 호수를 바라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일행과북한막걸리로 축배도 하며 조개.멍게.문어를 안주삼아 풍유에 빠졌다

거울속 부용(芙蓉)같은 삼십육봉에
하늘과 맞닿은 일만 이천봉
호수안에 한 조각 돌섬 있어
바다를 찾는 객과 잠이 들었네.
-조선 명종 양사언(楊士彦)

4.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

온정각으로 돌아와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상설공연중인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을 감상했다. 진달래빛 한복에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사회자가 걸어 나왔다. 북한특유의 억양에 호소력이 넘치는 진한 음성으로 환영해 주었다.그 들의 환영은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했다.

공연은 십 오육세쯤 되어 보이는 남녀의 기계체조 같은 묘기였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하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여주었다. 감탄과 함께 한쪽마음에는 애틋한 슬픔을 느끼게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집단훈련으로 그 경지에 오기까지에 그들의 피눈물을 보는듯 했기때문이다.중국관광때도 같은 공연을 보고 슬픈마음때문에 별 감동을 느끼지 못했었다. 동포애로의 정 때문인지 진심으로 손이 아프게 손뼉을 쳤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우리는 하나"라는 글을 들고‘우리 다시 만납시다.’라고 마치는 인사말을 했다. 우리 모두는 기어코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역사속에서 중국의 속국으로 끈임없이 수난을 받아 오다가,이조말에서야 끝나는가 했더니 또 일본의 식민지로 나라의 주권까지 빼앗겨 버렸다.해방이 되는가?했더니,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았던가. 언제쯤 우리민족은 자주민주주의 기쁨으로 한민족이 함께 살 수 있을까.꿈을 갖는 민족은 죽지않는다 하였으니, 우리의 고난은 더 위대한 민족으로 태어나기위한 하느님의 끈질긴 단련일까.

저녁식사후 다시 온천장에 들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하늘을 보니, 금강산계곡에 진동하던 물소리가 금강교향곡으로 밤하늘을 울리는 듯 했다.

5. 만물상관광

아침은 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오월을 눈으로 느끼게하는 태양빛이 찬란하다.우리는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나와 버스에 실었다. 오전에는 금강산의 진수라는 만물상을 관광하고 오후에는 다시 남한으로 내려가는 날이다.

만물상코스는 층암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악미가 있는 곳으로 금강산의 절정을 이루는 곳이라 한다. 천선대, 망양대, 안심대, 절부암,귀면암,삼선암,만상정,육화암,관음폭포등 명소가 있다고 한다. 두 시간 정도 가파른 등산을 해야 한다기에 겁이 났지만 포기 할 수 없지않은가. 나는 일행과 멀어지지 않기위해 처음에는 비교적 빠른걸음으로 산기슭을 오르기 시작했다.산을 오르면서 온길은 자주 내려다보며 경치를 감상했다. 긴 행렬을 이루며 올라오고있는 여행객들이 금강산허리에 꽃띠를 두른듯 화려하게 산을 장식하고 있었다.

우리들도 금강산의 부분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어디서나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꿈도 꾸어보았다.가파른 산길을 지팡이를 짚어가며 빠른걸음으로 오르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숨이 멎을듯 몰아쉬었다. 젊어서 산을 많이 탔기때문에 이곳은 별로 힘들지 않다며 나를 앞질러 올라가신다. 이곳은 만가지 모양을 한 바위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해서 붙어진 이름이 만물상이다.귀신모습의 귀면암과 수없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괴석이 우뚝서서 우리를 놀라게했다. 금강산의 산신령의 힘으로 올라왔는지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서있는 바위들 사이에 험준 산령을 정복한 기분으로 섰다.앞을 내려다 보며 다시금 금강산 정상에 도전한 기쁨을 맛보았다. 어제 보았던 일만 이천봉이 저 멀리서 다시금 우리를 반기는 듯 했다. 가을 단풍으로 물들인 금강산을, 또 흰눈 덮인 모습도 그려보며 언젠가 다시 이 자리에 서고 싶었다.

6. 에필로그/북한안내원과 함께

대부분의 일행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몇 명의 안내원만 내 주위에 서서 내가 빨리 내려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갑자기 당황해진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내래 안내원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가게 되어서 영광입내다.”라고 능청을 떠니까, 그들은“차만 타고 다니시지 말고 좀 걸어 다니시야 되가시오.뒤에서 보니까 무릎에 힘이 없어보입내다.”“알가씨요,내래 고저 명심 하겠수다.”라고 말하면서 함께 웃었다.

산 위에는 아직 눈이 싸여있어 등산화를 신지 않은 나는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면서 어렵게 내려 왔다. 그중에는 남한의 응급처치요원과 안내원도 있었으나 산을 지키는 북한청년도 몇 명 있었다. 그중 한 북한 청년과 함께 걸었다. 그는 남한과 그리고 미국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미국정부는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묻기도했다. 나는 미국을 대변하듯 내 의견을 들려주었다.

국민은 굶어 죽어가는데, 그 돈으로 핵을 만들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태도를 대단히 위험하게 보고있다고 말했다. 나는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갖고 살아왔기때문에 이북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북사람들이 남한사람들보다 순수하고 서로 돕는 좋은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있다.범죄가 적고 도덕성이 높다는것을 듣고 사랑의 마음이 가득하다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국민이 굶어 죽어가고있고, 먹을것을 찾아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고, 탁아소에는 영양실조로 시체처럼 누워있는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 나는 견딜수 없는 울분을 갖는다고 말했다. 너희는 김일성수령님을 하늘님처럼 존경하지만 국민이 굶어죽는 김일성체제는 좋은체제라 말할수 없다고 말했다.

이십 살쯤으로 보이는 그 북한청년은 오늘은 대단히 기분나쁜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말한 북한의 실상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그 청년의 이름을 물으면서 내이름은 너의 위대한 김정숙여사와 같다고 말하자 “그 이름을 바꾸시야 대가시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웃으면서 내가 언젠가 평양에 갈텐데 그때 너를 꼭 다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남한 사람들이 매일 수많은 인파가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은 금강산관광보다는 반세기동안 밟아보지 못한 북한땅을 꿈에라도 밟아보고 싶었던 소망이 더 큰것이라 말해주었다.이 산행이 통일로 다가가는 급한 발걸음으로 우리는 믿고싶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버스에서 안내원이 전에 관광객이 김일성양반이라고 말해 반성문을 썼다면서 말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김일성 체제를 비판하는 심한 말을 내 딸이 들으면서 조마조마 했다고 했다. 나의 진심을 느꼈던지 그는 오랜시간 나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산을 다 내려와 헤어지면서 그의 마음은 알수 없으나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으면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흰색 고층건물이 김정숙휴게소라고 했다. 요즈음은 이곳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서로 알아볼 수도 없이 늙어버린 얼굴을 비비며 통곡하는 그들 모습들이 떠올라 나는 고개를 숙였다.

산에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마친후 선물센터로 들어갔다.집에 남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사기위해서다. 눈에 선뜻 잡히는 물건이 별로 없어 딸은 예쁘게 포장된 엿을 두상자 샀다.금강산관광이라고 수놓은 타월을 몇 장 사서 할머니 친구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설명해주고싶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온정리에 있는 북한측사무소에서 출국수속을 마쳤다. 다시 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통일전망대안에 있는 남한측사무소에서 입국수속을 마쳤다. 우리처럼 금강산으로 들어가기위해 기다리고있던 사람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박 삼일동안 금강산에 허용된 극히 일부 코스만 보았다. 내금강에는 장연사를 비롯한 아직도 여러곳에 남아있는 사찰과 만폭동과 비로봉등 수많은 절경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다. 가까운 시일내에 모두 개발하여 자유롭게 여러코스를 관광할수 있게되리라 믿는다.

딸은 금강산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기뻐했다. 이곳을 통해서 우리민족의 아픔을 느낄수 있었고, 우리나라의 명산을 가슴에 심고 한국을 떠날수있게 되었다고 했다.딸은 대학졸업후 한 직장에서 칠년을 일하고, 안식년을 외로운 할머니와 일년을 살았다

어두움이 내리면서 버스가 다시 복잡한 도심지로 들어서자, 불안한듯 나는 금강산의 감동을 더욱 가슴으로 껴않고 있었다.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라 나는 여러 나라 명산을 두루 돌며 그동안 입을 다물수도 없는 감탄사를 토해냈었다. 그러나 이곳 우리금강산의 바위 계곡과 수많은 산봉우리는 또 다른 독특한 모습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다른산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우리 작은 한반도에 세계 어느 명산에 빠질 수 없는 백두산과 금강산을 가졌다는 자랑스러움이 나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통일을 빨리 이루어 신비로운 우리의 성산을 자유롭게 방문하면 좋으련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한국도 외국인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줄 것이 있다는 뿌듯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통일을 향하여 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이 중단 없이 속력을 내야한다 생각하며 가까운 장래의 그 기쁨을 누리게 되길 고대한다.

2004년 5월 25일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