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글쓰기 교실(CSULB, OLLI)/2019년 10월 20일>

 

<CSULB, OLLI 글쓰기 교실>

 

결혼 50년

백 유니스

1969년 4월29일.

이 날은 우리가 서소문에 있는 서소문교회에서 하나님과 일가친척, 그리고 많은 교우들과 친구들 앞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날이다. 날씨도 쾌청하고 하객도 큰 교회가 가득 차게 오셨었다. 그 날은 꽤나 긴장했었나보다. 난 우리 결혼식이 아주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었다. 음악가의 결혼식답게 남성독창과 여성중창, 피아노4중주 등 음악순서가 많이 포함된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후에 결혼식 녹음을 들어보니 아이들 우는소리, 말하는 소리, 밖에 차 지나가는 소리 등등 참 어수선하다. 그런데도 그날 내 귀에는 하나도 안 들렸으니.... 시끄러운 소린 고사하고 지금은 작고하신 서금찬주례목사님의 말씀도 안 들렸는지 죄송하게도 지금까지 생각나는 말씀이 하나도 없다. 그래, 잔칫날이 시끌벅적 해야지 엄숙하기만해서야 되나? 하고 스스로 위안했었다.

결혼 50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날들을 함께 산 남편과 내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참 대견하다. 언젠가 행복한 가정생활 세미나에서 들었다. 결혼생활에 5가지의 시기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신혼 초의 황홀기, 두 번째는 상대방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실망기, 세 째, 상대방을 나에게 맞추려고 치열하게 싸우는 투쟁기, 그러고 나서 한 발 물러서는 체념기를 두루 거치고 나서야 바야흐로 성숙기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결혼에 실패하는 가정은 대부분 투쟁기에서 서로 양보를 안 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도 이 다섯 단계를 두루 거치며 살았다. 이제는 가슴 설레는 일도, 다툴 일도, 실망할 일도 별로 없다. 그저 무덤덤하더라도 아프지 말고 옆에 있어만 주면 고맙다.

지난 4월. 난 은근히 아이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지난 결혼25주년 때는 아이들이 돈을 모아 노천온천이 딸린 호텔을 예약하고 맛있는 것 많이 잡수며 쉬고 오시라고 해서 며칠 잘 쉬고 왔었다. 그러니 25년보다 배나 더 살아냈으니 이번엔 좀 더 크게 축하해 주겠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4월이 다 지나가도록 아무 소리가 없다. 전화가 와도 딴 소리만 하고 정작 우리 결혼 50년 이야긴 없다. 자존심 상하게 먼저 이야길 꺼내긴 싫고... 남편도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마침내 29일이 되었다. 아이들의 눈치만 보다 지친 우리는 우리끼리 드라이브하여 북쪽 벤츄라 카운티의 옥스나드에 가서 광어회나 먹고 오자고 의논을 모았다. 옥스나드에 가려면 아들네가 사는 아고라힐스를 지나가야 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아들에게 전화했다. 세 손주들은 봄방학이 끝나서 모두 학교에 갔단다. 우리는 심심해서 오랫만에 옥스나드에 가서 회나 먹고 오려고 한다고 했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잘 다녀오시란다. 점심시간에 잠시 나와서 같이 점심을 먹을 수는 없냐? 고 하니 옥스나드는 너무 멀어서 힘들단다. 우리는 운전하여 아들네 집을 지나고 아들네 회사도 지나 더 북쪽으로 향한다. 따우전옥스를 지나 카마리요에 가면 아주 큰 아울렛이 있다. 전에 몇 번 이 아울렛에 들려 옷을 산 적이 있다. 남편이 50주년 기념으로 제대로 된 옷을 사주겠다며 자꾸만 들어가자고 한다. 내가 측은하게 보였나 보다. 나는 있는 옷도 죽기 전에 다 못 입는다고 극구 사양하고 채널아일랜드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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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집에 가서 광어회와 매운탕을 맛있게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실비치 바닷가에 사는 우리에게 북쪽의 바닷가라고 새로울 것이 없다. 놀 줄도 모르는 우리는 달리 할 일도 없어서 그만 집으로 향했다.
아들네 회사가 가까워지니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 여기까지 왔으니 핑계 삼아 아들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겠다. 전화를 하고 회사에 도착하니 아들이 나와서 기다린다. 응접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근황을 묻는다.

결혼 후 세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그만 두었던 며늘아이의 새로운 직장생활의 고달픔, 큰 손주의 대학입학문제, (할아버지의 진을 물려받았는지 우리 큰 손주는 보스톤에 있는 뉴잉글랜드 콘솔바토리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는데 재즈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한다). 첫 아이를 멀리 있는 학교로 떠나보내는 일도 큰 스트레스겠다. 게다가 저희교회의 새 담임목사 청빙문제로 힘들어한다. 아들은 미국교회의 수석장로다, 담임목사가 없어 부목사들이 돌아가며 설교를 하는데 지난 주일엔 저도 설교를 했단다.

우리는 트래픽 걸리기 전에 서둘러 집을 향해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여 카포트에 막 차를 세우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구, 엄마, 내가 눈치를 못 채고 죄송해요. 요즘 정신이 없어서 못 챙겼네요....." 아마도 퇴근하여 돌아온 며늘아이가 알아채고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누나하고 통화했어요. 누나도 회사일이 많아서 잊어먹었대요. 정말 죄송해요...." 큰 미국회사의 오피스 매네저인 딸은 이번에 신입사원을 여러 명 뽑았는데 이 미국 새내기 친구들을 훈련시키느라 정신이 없단다. 요즘 젊은 애들은 편지 서식도 잘 모르고 스펠도 틀리는 애들이 있다고 한심해 했었다. 게다가 회사를 확장 이사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주말이 되면 작은 녀석이 축구를 제법 잘해서 키워본다고 부지런히 차에 싣고 운동장을 누비며 "바쁘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 지금 너희들 나이가 제일 힘들 때구나. 위로 양가 어른들 모시랴. 아래로 자식들 챙기랴. . .

우리 결혼 25주년 때는 너희들이 결혼 전이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챙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이야 아이들 뒷바라지 하며 살아가기 바쁜데 우리 결혼 50주년이 뭐가 대수겠니? 물색없이 기대하고 실망했던 우리가 아직 철이 덜 든 모양이다. 우리 두 사람이 건강해서 멀리도 운전할 수 있고 밥도 충분히 사먹을 수 있는 여유도 있으니 무슨 걱정이냐? 벌써 경험이 있으신 선배들 말씀이 금혼식은 부부가 챙기는 거라고들 하는구나."

(5.20.2019)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