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글쓰기 교실(CSULB, OLLI)/2019년 10월 20일>

 

<CSULB, OLLI 글쓰기 교실>

 

현대판 고려장

이 성 춘.

어머님은 전날 밤 조그마한 보따리와 핸드백 보다는 조금 큰 가방에 당신이 드시던 약과 화장품 몇 개를 놓으시고 아침에 떠나실 준비를 하셨다. 옷 보따리라야 내의 몇개와 위에 걸칠 옷 한벌이 전부였다. 기나긴 일 세기를 지낸 백세 어머님은 등굽은 조그마한 새우 처럼 왜소하셨지만 아직도 그 뚜렷한 기억력과 기계처럼 생활 하시는 모습에 우리 자녀들은 경탄하였고 한때는 요양원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냐는 동생의 말에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는 분이 이제는 스스로 들어가겠다고 하신단다. 거의 40년을 한국의 좁은 아파트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70에 가까운 동생이 몇번 밤중에 응급실로 모시고 가는 것이 미안한 맘이 드셨던 모양이다.

동생의 말을 듣고 한국으로 나가 짧은 시간을 모시고 있었다. 이왕이면 아들 집에서 죽어 나갔으면 좋겠지만 아들이 요양원으로 모시겠다는 말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섭섭함을 나타내기도 하셨다. 양로원으로 들어가면 이제는 죽어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또는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될 때가 왔다는 듯한 어머님의 표정에는 백년의 세월이 창밖 가을의 낙엽 진 고목 마냥 쓸쓸이 지나고 있었다. 정말 보잘것없는 옷 보따리와 가방을 당신 침대 옆에 놓고 앉아 계시는 모습에 나는 변소로 가서 수돗물을 크게 틀어놓고 울음을 삼켜야 했다. 지난 며칠을 가능한 어머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집 주의와 성당을 거닐면서 옛날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 그렇게 행복해 하시는 모습에 멀리서 온 자식의 가슴엔 더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
평생 한 번도 부모님을 모셔 보지 못하고 먼 곳에서 그냥 안부만 묻던 지난 40여년의 시간 속에서 아버님은 뇌출혈로 쓰려지셨고 그 후유증으로 거의 전신이 마비되신 아버님을 칠년 동안이나 간호 하시며 족창 하나 생기지 않게 대소변을 받아가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셨던 어머님이 이제는 본인이 스스로 자식들의 고생 부담을 덜으시겠다는 한없는 자애심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오랫동안 어머님을 모신 동생의 효심이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몇 번의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것을 이해 하시고 이제는 자식들에게도 더이상 짐을 지우시지는 않겠다는 어머님이 결단과 용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존경의 눈으로 보았다.

꼭 요양원에 모셔야 만되는 지 깊은 자괴감이 나를 억누르고 억누른 다 . 동생 집에서 차로 1시간 정도면 되는 거리란다. 늦은 가을 밖은 쌀쌀하고 그리도 많은 낙엽들은 아파트 길을 메우고 있었고 아직은 여러가지의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여기저기 조금씩 남아 있었다 .

지는 낙엽들은 얼마나 고은 빛깔을 띠고 있는가. 지는 황혼의 해가 황홀하고 채색은 극치를 이루 듯 우리들 생의 마지막도 저렇게 휘나래를 맺을 순 없을까.

허리가 아프시다는 어머님을 뒷자석에 눕게 하시고 우리 형제들은 집을 떠났다 . 고속도로 옆 멀리 높은 산에 계절을 추스리는 햇빛이 평화롭게 만 내려 쬐고 있었다 .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그렇게도 사모하고 그리워했던 나의 어머님을 삐걱거리는 철 침대와 현재도 미래도 없고 오직 과가만 있는 곳에 어머님을 남겨두고 떠난다는 슬픔과 걱정이 우리를 엄싼다. 지금 들어가시면 언제까지 사실까

옛날 고려장이 생각났다

나뭇가지를 꺾어 돌아갈 자식의 길을 만들 필요도 없고 길을 못 찾아 헤멜 필요도 없는 문명의 혜택이라는 이 고속 도로도 옛날 언젠가는 어느 가난한 한 농부가 고려장할 어머니를 지게 등에 지고 와서 노모를 산 속에 내려놓고 갔겠지 .그래도 그는 마지막 몇시간이라도 어머니와 이런저런 정담을 나눌 수 있었으니 나와 같이 가슴을 치는 회한은 없었겠지. 나는 조금 있다가 또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리면 어머님의 임종을 지킬 수나 있을까.

1시간 운전하여 다 다른 곳은 3층으로 된 요양원이다. 낮은 산자락과 근래 지은 듯한 아파트 군락으로 둘러싸여 있고 잘 가꾸어진 장미화원과 앞뜰 화단에 심어놓은 꽃들도 계절의 끝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수속을 마치고 몇 사람이 겨우 끼어 숨도 쉴 수 없이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 층에 있는 배당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병실은 2 인용이다. 어머니의 룸메이트가 되실 할머니 한 분이 침대에 누워 계신다. 온 사지가 오그려져 있고 말도 잘 못하신다. 여기 누워 계시는 이 할머니도 누군가의 사랑스런 어머님 일텐데 마음이 아프다.
태생때부터 장님으로 또는 귀머거리로 심한 중증 장애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잘못이냐고 우리는 신에게 묻고 있지만 이렇게 늙어가면서 오는 후천성 고통과 질병은 전적으로 우리의 죄 때문인가요. 신의 자비는 꼭 고통을 통해서만 오는 것인가요.

요양사와 간호사가 와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나갔다. 침대에 멍한 표정으로 계시던 어머님은 피곤하시다면서 누우신다. 우린 몇마디의 말로 어머님의 당황스럽고 불안에 찬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릴려 했지만 어머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알았다고만 대답하는 말 뒤엔 깊은 애수의 기운이 깃들고 있었다.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형님 갑시다 라는 동생의 말에 우리 모두가 일어났고 어머님도 일어나 앉으셨다. 한평생 가족을 떠나 먼 곳에서 혼자 계셔 본 경험이 없는 어머님이 아닌가.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또 올게요 하고 어머님을 안정시키려고 말들을 했지만 노쇠한 어머니의 분리불안감(seperation anxiety)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너무 오래 있는 것도 새 환경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지않으니 모든 감정을 자제하고 가능한 짧게 있다가 나오라는 여러분들의 충고와 경험을 되새기며 요양사를 불렀다


한 요양사가 들어와서 어머니를 부축하여 엘리베이터 앞까지 모시고 왔다 .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녕히계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한 손을 흔들며 작별의 말씀은 건네신다. 평소 "잘가라"고 하시던 어머니가 자식들 앞에 허리를 굽히며 존대말을 하신다. " 잘 가세요" 라고.아마도 순간적으로 참기 힘든 심한 감정의 동요가 있었을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자식 하나 하나의 얼굴을 흩어 보시자 문은 닫혔다. 눈물이 저절로 빰위를 흘러내린다.

존경하고 사랑스런 어머님 저희들의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현대판 고려장은 우리 모두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되겠지.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