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글쓰기 교실(CSULB, OLLI)/2019년 10월 20일>

 

<CSULB, OLLI 글쓰기 교실>

 

결혼기념일

조 춘

바쁘게 지나는 세월 속에서 두 사람으로 시작하여 열세명의 대 가족을 이루고 보니 가족들 생일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멀리 사는 세 아들의 가족들 생일 전화 걸어주는 일 을 가끔은 잊기도 한다. 물론 적어 놓긴 했으나 기록한 노트를 일일이 찾아보는 일도 만만치 않다.

나이 드는 만큼 아픈데도 많고 기억할 일도 많은데 깜박이가 켜지면 안개 속을 지나듯 놓쳐버리고는 혼잣말을 하기가 일쑤다. ‘어제가 생일 이였구나, 또 잊었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여기에 분명 키를 두었는데.’ ‘오늘 약을 먹었나? 안 먹었나?’ 후배들 에게 이런 일로 말을 해 보면 이구동성으로 위로를 해 준다.“선배님 그 정도는 준수한 거예요, 젊은 우리도 깜빡깜빡 하는 걸요.“한다.

나는 항상 잊고 지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결혼기념일이다. 결혼기념일은 꼭 챙기는 남편 오늘도 화사한 서양 란 화분 하나를 들고 왔다.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오늘이 오늘이지요.”
“당신하고 내가 결혼 행진곡에 맞춰 손잡고 행진 한 날이야.” 꽃 화분을 내게 전 하면서 남편이 이 무심한 아내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어마, 그렇구나! 이 꽃 정말 우아 하네요… ” 칭찬을 하면서 오랜만에 남편에게 허그를 해 주었다.

큼직하게 활짝 핀 꽃 여덟 송이에 필 듯 말듯 한 봉오리가 네 개나 달린 우람스러운 양란이다. 우리집 벽에 걸린 포도밭 그림 앞에 놓고 보니, 더욱 예뻐 보인다. 나는 화분사진을 찍어서 세 아들에게 카톡 카톡 하며 보냈더니, 다들 감탄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일주일을 기다려도 봉오리가 피어날 기미가 없다. 남편에게 봉오리가 피질 않는다고 하니, 밖에서 볕도 보고 물도 줘야 할 거 아니냐고 한다. 맞다! 그날부터 열심히 물을 주었다. 3 주가 지나도 여전히 처음 그대로다. 드디어 나도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봉오리를 잘못 만지면 뭉개진다지만 어찌 더 참을쏘냐. 큰마음 먹고 살살 만져보니 딱딱하다. 줄기를 들춰보니 뿌리 대신 철사 받침목이다 . 진짜 같은 조화였다. 속았구나, 남편도 속았단다. 양난이 많이 장식한 속에서 유난히 소담스럽고 눈에 띄게 예뻐서 샀다는 거다. 조화면 어떠랴.

결혼기념일 날 남편이 선물 한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오래도록 잊고 물을 안 줘도 시들 지 않으니 편하게 나를 해주는구나. 세상이 속였지 사람이 속인 것인가! 지금도 거실 창문 앞에서 화사하게 서 있는 그 꽃을 볼 때마다 나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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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