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세상을 바꾼 위대한 인물들/2023년 7월 15일>

새로운 눈으로 보기

-마약중독자가 회심한 기적같은 이야기-

 

마이클 크린지(Michael Creange)


나는 오랫동안 마약중독자였다. 나의 어머니는 허리케인 샌디로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뒤 저의 집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일곱 자녀중 하나였는데 나의 어머니는 나의 집을 택하셨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그것은 어머니가 제가 걱정이 되셔서 취한 조치였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의 한 친구와 나는 그의 계부의 지하실에서 맥주를 훔쳐다 마시곤 했으며 결국 학교를 빼먹기 시작했다. 열 살 때 한번은 어머니가 나의 담임선생님에게 보내는 결석계를 위조한 적이 있었다. 스펠링도 맞지 않고 말도 안되는 병명이었지만 마지막에 “Love, Mom.”이란 싸인을 보았더라면 누가보아도 누가 쓴 것인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20대에 나는 엘리베이터 기술자로 일을 하였다. 나는 결혼도 하였고 아름다운 딸애도 하나 있었다. 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살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했던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엘레바이터에서 떨어졌으며 그것 때문에 여러 차례 허리 수술을 받았고 계속해서 중독이라는 암흑의 길로 빠져들었다. 여러해 동안 통증관리소들은 나의 밀매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면 옥시코돈이던, 모르핀이든 무엇이든 주었다. 나는 마치 사탕가게에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통증을 구실로 계속 용량을 높여갔고 통증관리센터들은 기꺼이 협조하였다. 나의 삶은 점점 더 불법적인 약품들에 빠져들면서 약으로 몽롱해진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나는 히로인을 사기위해 주머니에 현금뭉치를 집어 넣고 뉴저지의 뉴왁 도심지를 배회하곤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딸을 보기 위해 집으로 갈 시간이 없었다. 또한 나의 약들을 위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딸에게 줄 돈도 없었다. 중독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 할 구실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중독자들은 항상 자신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수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나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딸에게 나로서는 가능한한 최고의 사랑을 주었다. 나는 기쁠때나 슬플 때나 딸애와 같이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딸 애는 나에게는 온 세상이었고 이 어린 딸애는 항상 사물들을 천진난만한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아내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나의 거짓들을 보았으며 음모들을 보았다. 아내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마약-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지쳐있었다. 만약 아내가 통증진정제를 사용하거나 어디에 숨겨 놓은 것을 알게되면 나는 즉각적으며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며 “허리가 아파서 그래, 그게 필요하다구”하였다.

내 딸이 네 살 때 나는 뉴저지의 피터슨에서 일했다. 마약중독자들, 마약 중개자들 집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있는 지역으로 총격사건이 다반사로 일어난 곳이다. 폐허가 된 건물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필요하면 언제나 아주 싸게 마약을 구해줄 수 있다고해서 하루는 일을 마친후 딸을 데리고 피터슨으로 돌아와? 어둠침침한???????????????????????????????????? ?????????????????????????폐허 사이의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잠가 놓고 딸에게는 곧 돌아오겠다고 이르고 빌딩안으로? 들어거 경비원 친구를 만났다.

그러나 마약취급자가 늦게 도착했다. 25분 후에 나는 네 뭉치의 히로인을 가지고 빌딩을 떠났다. 차있는데 도착했을 때 칠흙같이 깜깜하였다. 나의 딸은 잔뜩 겁에 질려 앉아 있었다. 그녀는 떨고 있었으며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내가 차에 올라탔을 때 구세주를 만난것 처럼 나를 꼭 껴안았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는 어떤 남자가 차로 가까이 와서 창문을 뚜드리며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고 이야기 하였다.

이와같은 사건들이 나자신을 증오하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나는 일어나서 절망적인 모습으로 거울을 보곤하였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너무나 압도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떠났다.””나는 어느날 집에 와서 당신이 죽어있는 것을 보고싶지 않아.”라고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무언가를 가족들보다 더 사랑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미위한다고”도 하였다.

그녀는 옳았다. 나는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여기서 헤어져 나갈 방법을 찾을 길이 없다고 믿으면서 더욱 더 깊은 슬픔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딸까지도 밀어내면서 아무에게도 나의 슬픔을 하소연하지 않았다.

나의 아름다운 딸이 훌륭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을 때 나는 서로를 향한 그들의 사랑을 보았다. 그리고 내 딸이 내가 결코 줄 수 없는 돌봄을 받게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어머니를 방문하러 올때면 기분이 좋지않았다. 나는 침실에 들어가서 그들이 갈 때까지 기다리곤 하였다. 나는 그저 혼자 있기를 바랐다. 그들이 떠난후에는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나 있는 상처를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기에는 미흡 했다. 나의 침실은 나의 무덤이 되었다.

그러다가 18개월쯤 전에 나는 지금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일이 발생하였다.? 내가 침실에서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어떤 존재(Presence)가 방을 채웠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커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이 사랑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수치심들이 사라져 버렸다. 나의 자신과,과거, 최책감, 실패감에 대한 거대한 혐오심들도 하나씩 사라져 버렸다. 그 방에 남아있는 것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나 뿐이었다. 하나의 짧은 단어- 사랑을 경험한 그것이 모든것을 변화시켰다.

그 순간 이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년 반동안 나는 아주 깨끗하였었다. 물론 자진철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허함이나 외로움 보다는, 지금 내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맞아주고 저녁에 내가 침실에 들어갈 때 사랑이 그곳에서? 이불을 덮어주었다.

한 낮에 내가 주위를 돌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와 함께 있으며?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나의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며 내가 그로하여금 사랑을 그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하고 끝없는 사랑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내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그 사랑을 느껴오곤 한다. 물론 지금도 어려운 길을 갈때면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나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체험을 한지 3개월 후 딸애가 손녀를 출산하였다. 나는 병원에 가면 애기를 안아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딸애는 정중하게 “아버지, 애기가 지금 무척 피곤하니, 제가 안고있을께 애기손을 잡아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딸애는 나에게서 완전한 신뢰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딸애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직 시간과 하나님의 사랑만이 그녀에게 신뢰를 보여줄 것이다.? 6개월 후 내가 딸애의 집에 도착했을 때 딸애가 보자마자 “아버지
애기 좀 봐주실래요? 가게 좀 갔다 오게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꼬마를 팔로 안고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에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매일 매일 기적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이란 나의 눈과 마음을 활짝 열고? 그 기적들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나의 딸과 내가 그렇게 가까웠던 때는 없었던 듯 하다.

두 달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던 어느날, 늦은 오후,우리는 단 둘이 있게 되었다. 일곱 자녀에 20명이 넘는 손주들을 가진 어머니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어머니가 나에게 이야기 할 때 그녀의 눈은 어두웠고 움푹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 모르는 사람들이 어머니한테 와서는 파랗고, 웃을때마다 반짝이는 나의 눈이 아름답다고 이야기 하곤 했다고 회상하였다. 그런데 그후 몇 년동안에 그 눈들이 퀭하니 동공으로 변했고 어머니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지금 그 눈들이 살아나고 있다고. 이번에 어머니의 눈에 맺힌 눈물은 행복의 눈물이었다.

어머니는 임종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내가 어머니가 나를 위해 그동안 해주신 일들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겨우 마치자 어머니는 곧 운명하실 모양이었다. 나는 소리내어 울기를 시작했고 눈물을 흘리면서 겨우 “어머니, 나 때문에 받으신 고통과 염려때문에 너무나 죄송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으시고 두 눈을 나에게 맞추시드니? “마이클, 너는 나의 모든 기도의 응답이야.? 이제 너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갈 수 있어. 너는 결코 옛날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라고 말씀하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가족들과 친구들,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나 단체로, 심지어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마도 어쩌면 내가 겪었던 아픔이-비난이나 고적감까지도-일종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매일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배워가며 강력한 방법으로 체험해 가고 있다. 끝으로 나는 새로운 눈으로 보고 있으며 새로운 마음,?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생수로 씻겨져 새로워진 새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Michael Creange from <Divine Interventions by Guideposts)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