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2022년 8월 1일>

독교와 치유자(治癒者) 예수


Brandy Gunther Brown(인디아나대학교 종교학 교수)

1세기 갈릴리에서는 예수가 사람들의 병을 고쳤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유대경전에서는 하나님을 문둥병자들을 깨끗케 하시고(열왕기 하 5:1-15) 죽은 아이를 살리신(열왕기 상 17:17-24) 치유자와 동일시 하였다. (출애급기 15:26) 복음서들 역시 소경들이 예수께로 달려간 이야기(마가 10:46-52)나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소리지른 이야기(마가 7:31-37) 중풍병자가 집으로 걸어간 이야기(누가 5:17-26), 나병환자가 성전예배에 다시 참가한 이야기(누가 5:12-16, 7:12-19), 간질병에 걸린 소년이 마귀에게서 해방된 이야기(마태 17:14-18), 죽은 소녀가? 부모앞에서 다시 살아난 이야기(마가 5:21-24, 35-43), 혈류병 앓던 여인이 즉석에서 나은 이야기(마가 5:25-34)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이에 놀라고 감격한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기도 하였지만 어떤 비판자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도 하였다. 피치못할 상황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예수께서는 병을 고쳐주셨지만(마가 3:1-6) 그것이 예수의 적들에게는 분노의 불을 질러버리기도 하였다.

기도의 힘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내보내시면서 이 우선순위 곧 병자들을 고쳐주는 일들을 공유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병자들을 고치고 마귀들을 쫓아냄으로 가까이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희랍어의 sozo-“구원하다” “고치다” 또는 “이양하다”-란 단어는 신약성경에 110번 나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밖히신 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고쳐주었다. 베드로는 40년동안 절름발이였던 사람을 성전에서 뛰어다니게 함으로 소동을 야기시켰다(사도행전 3:1-11).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신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을 겨우 말린일도 있었다(사도행전 14장 8-18). 심지어 베드로의 그림자나 바울의 손수건까지도 치유의 기적을 가져왔다(사도행전 19:11-12).

제자들만이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좌하던 스데반과 필립도 악령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해 주었다. 고린도 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는 치유, 기적 그리고 영적인 분별력이었다. ?

처음 3세기동안 매 세대마다 50여만명의 새로운 개종자들이 교회를 찾았다. 그들 대부분이 치유나 퇴마를 목격하고 찾아온 자들로 그 치유는 기독교로 개종한 보통의 크리스천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때로는 투옥이나 처형을 각오하고 개인의 집에서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었다. 그렇지만 여하튼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가장 강력한 치유자라고? 확신하였다.

4세기에 와서 교회의 성장이 가속되었다. 그렇지만 치유는 한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콘스탄틴 대왕이 서기 312년 개종하고 313년 기독교를 허용하는 밀란칙령을 발표한 후 기독교는 핍박받던 종교에서 지원받는 종교로 변하였다. 한 세기 동안에 신도수가 5백만에서 3천 만으로 갑자기 늘어났다. 새로운 개종자들은 대부분이 돈이나 음식에 끌렸거나 높은 신분의 일자리나 결혼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또는 익숙한 부적이나 주문보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낳겠다고 생각한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이었다.??

명목상(名目上)의 기독교와 싸우기 위해서 교회지도자들은 어떤 크리스천들을 성자로 지명하여 그들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그들의 기도가 특별히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였다. ?5세기에는 이들 특별한 크리스천들의 일부가 도시의 부패를 떠나갔는데 치유가 특별히 필요했던 사람들이 이들 “사막의 교부들”의 기도를 받기위해 그들을 찾았다. 사막의 교부들은 그들이 성자라는 자만심을 갖지 않기 위해 치유를 위한 기도를 꺼려하였으며 도리어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죽은 성자들의 중재를 추구하도록 순교자들의 성지로 보내기도 하였다.

교회지도자들 가운데는 심지어 치유를 추구하는데 대해 그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신실한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금욕적인 영적관행을 행함으로 육체적인 건강을 희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크리스천들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신프라톤 사상에? 흡수되었다. ?금욕주의 수도사인 제롬(기원 347-420)이 성경을 희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할 때 그는 야고보 5:15의? sozo를 그가 누가 8장에 사용하였던 “치유”(sano) 대신 “구원”(salvo)으로 번역하였다.

개신교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크리스천들에게 제롬의 번역본 이외의 성경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성경이 지방 방언으로 번역된 이후에도 킹 제임스 번역과 가장 권위있는 번역본을 따라 “믿음이 있는자의 기도는 병자들을 구원한다”와 같이 육체적인 치유보다는 영적인 치유에 방점을 두게 되었다.? ?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서방유럽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치유는 흔치 않은것으로 생각하였다. 교회지도자들은 병자들이나 퇴마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제한하였다. 치유의 기본목적이 환자들에 대한 동정심에서 이러한 기도의 신성함을 입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야고보서 5장에서 강조한 환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은 성례전이 되었지만 지금은 신부들만이 집행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성례전이란 정의에 따르면 언제든지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기름발랐다고 다 육체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목적은 하늘나라를 위한 영적인 준비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환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을 12세기에 종부성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받은 죽음의 위험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행하는 마지막 의식으로 불렀다. 죄에 가해지는 고행은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어서 중세기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피하였고 신부들도 이를 양해하였다.

개신교 종교개혁중에 로마캐토릭 당국은 개신교도들에게 기적적인 치유로 그들의 교리의 신기함을 증명해 보라고 도전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이 새로운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기적적인 증거들이 필요없다고 거부하였다. 죤 칼빈(1509-1564)은 “중지론(cessationism)”의 교리를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사도시대가 지난 후에는 병고치는 일은 그만두고 그후로는 오직 말씀을 통한 복음전파만을 하셨다는 것이다. 자신이 종종 병에 걸렸던 칼빈은 캐토릭의 치유를 미신이나 사탄의 기만으로 평가절하해 버렸으며 병은 사탄의 도구로 맞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죄인들을 꾸짖기위해 병을 보내신다고 가르쳤다. 크리스천들은 그저 하나님의 뜻에 자신들을 맡겨야 한다고 하였다.

계몽사조가 유우럽과 미주대륙을 휩쓸었을 때 많은 서양의 크리스천들은 기적적인 치유와 자연법과의 양립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20세기 초에 일단의 회의주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그리고 신학자들이 일어나 치유와 퇴마에 대한 성경적인 이야기들을 재해석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기적적인 성경본문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암시의 능력이나 은유적인 기적과 같은 자연적인 치유의 메카니즘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문자적인 해석을 확인하면서도 치유는 하나님이 현대세계를 통치하는 법칙과는 다른 법칙으로 인간들과 상호작용하던 과거에 특별히 주어졌던 특권으로 한정하였다.

4중 복음??

그러나 치유는 결코 교회관행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이 병을 고쳐주었다는 이야기는 복음이 전파된 곳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어거스틴(354-430)에서부터 마틴 루터를 거쳐 요한 웨슬레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이야기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카톨릭 신도들은 종종 1858년 프랑스의 루르드에 설립된 치유성지 같은 곳을 순례한다

19세기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루터교 목사 요한 크리스토프 브럼하트와 평신도 여인 도로디 트루델의 치유와 퇴마 소식이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현장을 직접 보고 치유를 체험하고저 하는 많은 사람들이 먼곳에서부터 몰려왔다. 방문객들에게는 “치유의 집”이 성경의 치유약속을 공부하고 기도를 받을 수 있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소로 제공되었다. ?

유럽과 북미 그리고 오스트랄리아 등지에서 부흥운동이 널리 전파되고 선교사들이 여러 대륙으로 퍼져나가면서 19세기는 수많은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신나는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신생”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죄의 오염과 능력에서 자유롭게하는 성령으로 채워지는 성화의 “제2 축복”을 경험하였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만약 병이 죄의 결과라면 죄에서와 마찬가지로 병에서 자유로워짐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세계적으로 번져나갔던 신유운동의 지도자들은 “4중 복음” 또는 “순” 복음을 강조하였는데 그리스도는 구속자요, 거룩하게 하는자요 치유자요 곧 오실 왕이시라는 것이었다. 이사야 53장 5절에 예언한대로 예수는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그의 찟기심으로 우리가 치유를 받았다”는 말대로 우리의 죄와 병을 다같이 충분히 보상해 주셨다. 크리스천들은 야고보서 5장에서 강조한 대로 “믿음의 기도”로 이러한 축복을 얻게되었다. 19세기 카나다의 치유교사였던 심슨(1843-1919)은 치유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로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성경은 치유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므로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치유 약속을 지킬것을 주장하고 비록 병의 증상이 남아있드라도 그리스도가 주신 힘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다른사람들에게 증거하며 살라고 하였다. ????

이러한 이해는 많은 환자들이 경비나, 부작용 또는 실수 등 여러가지 이유로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의료치료에 의존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 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의 증상들이 신앙적인 행위 이후 사라졌다 하드라도 여전히 아픈사람들은 신앙이 부족하거나, 경건하지 못해 죽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세 차례의 성령물결-1900년대의 성령강림운동, 1960년대의 카리스마 운동 그리고 1980년도의 제3의 물결 등-등이 치유와 다른 성령의 은사를 위한 기도를 강조하였다. 바티칸 2의 결과의 하나로 캐토릭 교회는 육체적인 치유의 목적을 재확인하였으며 환자를 위하여 기름바르는 것을 본래의 이름으로 다시 회복하였다.

은사회복운동(Charismatic reneewal)은 카톨릭과 개신교도들이 화합한 것으로 치유를 주류교회에 들여와서 기도와 의료간에 긴장을 약화시켰다. “신앙”치유보다는 “신”의 치유를 말함으로 지도자들은 인간의 믿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로 초점을 바꾸고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에도 그 책임을 인간의 부족함 보다는 하나님과 사탄사이의 우주적인 전투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비록 19세기의 이러한 견해들은 1970년대의 믿음의 말씀운동과 대부분의 카리스마 운동이나 성령 물결운동에로 계속되면서 하나님은 의료기술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고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기도와 같은 심리적인 요법으로 신앙을 보다 융통성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Storefront Healing

치유를 위한 기도 역시 더욱 민중화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은 대대적으로 병자들을 위한 복음과 기도를 설교하였다. 그러나 보통의 크리스천들은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병원에 있는 낯 선 사람들과 침실과 식료품상을 위한 기도를 점차적으로 증가시켜 갔다. 치유소에서는 진료비를 받지 않는 대신 2,3명의 평신도 크리스천들이-개신교도와 카톨릭 들이 다같이-사람들을 위해 자원해서 기도해 주며 그 후에는 그들에게 의사에게 돌아가서 계속해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라고 상기시켜 주었다.

2000년경에 와서는 500여 만명의 교회에 속한 크리스천들이 성서적인 치유를 현대의 치유의 모델로 받아들였다. 특히 남반부의 크리스천들은 전형적으로 자신이나 가족들의 치유와 구원을 통해서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서구인들이 영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대부분의 세계에서는 어느 영이 가장 강하냐는 물음을 묻고 있었다. 병과 가난, 폭력과 불안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소식인 “복음”은 사후에 대한 확신을 제공할 뿐 아니라 건강과 재정적인 지원을 포함해서 실질적인 필요를 공급헤주는 것이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신의 치유관행은 알려진 것 보다도 훨씬 널리 퍼져있고 다양하다. 치유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은 번영을 약속하는 TV 설교자들이나, 스캔들을 뿌리며 화제가 되는 부흥사들, 주말마다 환자들을 줄세우고 치유의 현장을 생중계하는 텔레반제리스트 등이며 죽어가는 자녀들을 의사에게 데려가기를 거부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들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미국에서 발표한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사들의 73%가 하나님은 오늘날도 치유하신다고 믿고 있는데 그들은 종종 환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권하며, 의학적으로 놀랄만한 사례들을 연구하고 환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교회가 성장하면 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가장 능력있는 치유자라고 결론내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Candy Gunther Brown(인디아나대학교의 종교학 교수로 The Healing Gods and Testing Prayer 등 여러권의 저서들이 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