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2022년 1월 15일>

Martin Luther King, Jr.의 "I Have a Dream"(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틴 루터 킹 목사의 이 연설은 1963년 8월 28일 와싱톤 D.C.에 있는 링컨 메모리알 광장에 모인 100만 청중들 앞에서 한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명 연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흑인들의 비참했던 상황과 킹 목사의 비폭력 사상이 잘 표현된 이 연설은 후발 이민자들인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금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게 힙니다. Martin Luther King Day(1월 17일)를 맞아 일독을 권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 나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유의 행진으로 기록될 이 데모에 여러분과 같이 참가하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 위대한 미국사람이 백여년전 노예해방선언에 서명을 하였으며 우리는 그를 기리는 상징인 이 건물의 그림자 아래 지금 서 있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선언은 시들어져 가는 불의의 불길속에서 타들어 가던 수백만명의 흑인노예들에게 위대한 희망의 횃불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노예생활의 긴긴 밤의 종식을 고하는 즐거운 아침 햇살과 같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흑인들은 여전하 자유롭지 않습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니그로들의 생활은 슬프게도 인종분리와 차별대우의 쇠사슬에 매여 쩔뚝거리고 있습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니그로들은 큰 바다와도 같은 물질적인 풍요속에서도 가난의 외로운 섬에서 살고 있습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니그로들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기운을 잃고 자신의 땅에서 추방당한 유랑자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수치스러운 조건을 극적으로 보여주려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고 우리나라의 수도에 몰려운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설계한 사람들이 위대한 헌법과 독립선언문을 기초하였을때 그들은 모든 미국 사람들을 상속자로 지정하는 하나의 약속어음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이 어음은 모든 사람에게, 물론 여기에는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흑인들도 포함됩니다,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약속입니다. 오늘날 미국은 유색인종 시민들에 대한한 이 약속 어음에 부도를 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는 대신 미국은 흑인들에게 "잔고가 불충분함"이라는 도장을 찍은 쓸모 없는 수표만 주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은행은 결코 도산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기회라는 위대한 금고에 자금이 고갈되리라고는 절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풍성한 자유와 안전한 정의를 우리에게 줄 이 약속어음을 현금으로 바꾸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또한 미국에게 바로 지금이라는 절박감을 상기시켜 주려고 이 신성한 광장에 모였습니다. 지금은 땀을 식히거나 진정제를 먹으며 천천히 하자며 여유 부릴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할 때입니다. 지금은 어둡고 황폐한 인종분리의 계곡에서 일어나 햇빛이 환희 비추는 정의로운 인종화합의 길로 나설때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급조한 불의한 인종정책이란 모래위에서 부터 형제애라는 견고한 바위 위로 올려 놓을 때입니다. 지금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 순간의 절박성을 간과해 버린다면 이 나라에 큰 치명상이 올수도 있읍니다. 자유와 평등의 상쾌한 가을이 오지 않는한 흑인들의 합법적인 불만으로 찌들은 여름은 지나가 버리지 않을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닙니다. 시작일뿐입니다. 흑인들이 분노의 증기를 빼어버리고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이 나라가 평상으로 되돌아 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잠이 덜 깬것입니다. 흑인들이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회복하기 전에는 이 나라에 안정이나 평안이 없을것입니다. 정의가 환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반란의 소용돌이가 계속되어 우리나라의 기초를 뒤흔들것입니다.

정의의 궁전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에 서 있는 나의 백성들에게 꼭 해주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과정에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죄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유에로의 목마름을 쓰라림과 증오의 잔으로 달래려고 하여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높은 품위와 규율을 지키며 투쟁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창조적인 항거를 물리적인 폭력으로 타락시켜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합니다. 우리들은 물리적인 힘이 영적인 힘과 만나는 고상한 높은 경지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흑인사회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놀라운 새로운 호전성 때문에 모든 백인들을 불신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수많은 우리의 백인 형제들이 오늘 이자리에 같이 참석한 것으로도 입증이 되었지만 우리들과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유는 우리들의 자유와 떼어놓을수 없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다는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홀로 걸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을 걸으면서 항상 앞으로만 나아갈것임을 다짐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되돌아 갈수는 없읍니다.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가야 만족하겠는가?"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흑인들이 경찰들의 말로 표현할수 없는 잔악한 폭력에 희생되는 한 우리들은 결코 만족할수 없습니다. 오랜 여행으로 지친 우리들의 몸이 하이웨이 근처의 모텔에서나 도심의 호텔에서 잠자리를 구할수 없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백인전용'이라는 간판아래서 인격이 찟겨지고 존엄성이 박탈당하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수 없습니다. 미시시피주의 흑인이 선거를 할 수 없고 뉴욕의 흑인이 선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수 없습니다. 절대, 절대 만족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의가 물같이 흐르고 공의가 하수와 같이 흐를때"까지는 우리는 결코 만족할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은 시련과 고통가운데서도 이곳에 왔다는 것을 잘 압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좁은 감방에서 바로 나왔다는 것도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요구했다해서 경찰의 무자비한 푹력에 의해 박해를 받고 얻어 터지는 그러한 지역에서 온것을 압니다. 여러분들은 창조적인 수난의 베테란들이였습니다. 부당한 고난은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신앙을 가지고 계속 노력하십시요. 여하간에 이러한 상황이 변화될 수 있고 변화될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으시고 미시시피로 돌아 가십시요. 알라바마로 돌아 가십시요. 사우스 캐로라이나로 돌아 가십시요. 죠지아로 돌아 가십시요, 루이지아나로 돌아가세요. 북부의 큰도시들의 스럼가나 게토로 돌아가십시요.

오늘 저는 우리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절망의 계곡에서 딩굴지 마십시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 우리들이 어려움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꿈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꿈입니다.
나는 이 나라가 분연히 일어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임을 주장한다"고 한 그 신조를 그 뜻 그대로 실천하는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죠지아의 붉은 언덕위에서 전에 노예였던 사람들의 자녀들과 전에 그 주인이였든 사람들의 자녀들이 식탁에 같이 앉아 형제의 우애를 나누는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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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열기로 인해 지쳐버린 미시시피주와 같은 곳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화될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나의 어린 네 자녀들이 그들의 피부 색갈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인격에 의해서 평가 받는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악질적인 인종주의자들과, '중재'와'거부권'을 행사하는 주지사가 있는 알라바마주에서도 나이 어린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함께 자매들로, 형제들로 서로 손을 잡을수 있는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모든 골짜기들이 솟아 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들이 낮아지며, 울퉁 불퉁한 곳이 편편하게 되며 굽은곳들이 바르게 되고 "주의 영광"이 밝히 들어나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그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소망이며, 내가 남부로 돌아갈때 고히 가지고 갈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가지고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을 찾아낼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앙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들을 형제애의 아름다운 심포니로 변화시킬수 있을것입니다. 이 신앙을 가지고 우리들은 언젠가 우리들이 자유케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같이 일할수 있고, 같이 기도할 수 있으며, 같이 투쟁할수 도 있고 감옥에도 같이 갈 수 있으며 자유를 위해 같이 일어설수 있습니다.

바로 그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의미를 새롭게 깨달으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게 될것입니다.
나의 조국 '당신의 나라, 달콤한 자유의 땅'을 노래하자.
나의 선조들이 죽은 곳, 필그림들이 개척한 자랑스러운 땅
모든 산들에서 자유가 울려퍼지게 하라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그것이 실현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자유가 뉴 햄셔어의 광활한 언덕에서 부터 울리게 하라
뉴욕의 준엄한 산들로부터 자유가 울려퍼지게 하라
펜실바니아의 알레가니 산맥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라
눈덮힌 코로라도의 록키산맥에도 자유가 울리게 하라
캘리포니아의 굴곡진 계곡에도 자유가 울리게 하라
그뿐만 아니라
죠지아의 스토니 마운틴에서도 자유가 울리게 하라
테네시의 룩아웃 산에서도 자유가 울리게 하라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들과 둔덕들에도 자유가 울리게 하라
모든 산에서 자유의 종이 울려 퍼지게 하라.

그때, 모든 자유의 종이 울리게 될때, 모든 동네와 부락에서, 모든 도시와 주에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개신교도건 캐토릭 신자건 가리지 않고 손을 맞잡고 옛 흑인들의 영가를 같이 부를수 있는 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드디어 자유케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마침내 자유케 되었습니다.
(김상신 번역)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