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노년의 즐거움/2022년 12월 1일>

 

노년의 즐거움-김열규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禁)과 5권(勸)

1勸 유유자적, 큰 강물이 흐르듯 차분하라.

노년에 삼가야 할 것들을 살펴보다 보니 마음이 조금은 힘겨워진 것 같다. 이제는 마음을 풀 겸 해서 노년에 해봄 직한 일들, 해보면 보람 있는 일들, 마음에 내키는 일들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나이 들기를 잘했다!” 아니면 “나이 먹기를 잘했어!”라고 우쭐댈 수 있도록.

첫 번째로 유유자적(悠悠自適)을 들 수 있다. 유유는 서두르거나 안달하지 않는 느긋함이고 자적은 자연스럽게 일이 되어가는 대로 행동하거나 마음을 내맡기는 것이다. 한편 순적(順適)이라는 말은 순탄하게 고분고분 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순적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유유자적을 줄여서 유연(悠然)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때 ‘유(悠)’는 ‘멀 유’라고도 하고 ‘한가할 유 라고도 하는데, ‘유연하다’고 할 때 이 ‘유’는 말할 것도 없이 ‘한가할 유’이다.

그런데 유유는 참 묘하게도 근심하는 모양새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엉뚱하게도 아득하게 멀거나 끝도 없이 넓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큰 강물이 유유하게 흐르는 것도 나타낸다. 그중 ‘근심할 유’는 유유자적의 ‘유’, 즉 침착하고 차분하고 여유만만한 유와는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는 유가 지닌, 모순되는 두 가지 의미에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근심이 짙을수록 걱정이 많을수록 마음을 크고 넓게, 그리고 너그럽게 가져야 한다. 그래서 만사에 한결같이 유유도일(悠悠度日)하고 유유범범(悠悠泛泛)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유유도일은 잔일이나 말썽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세월을 보낸다는 뜻이다. 유유범범도 비슷한 말인데 ‘범(泛)’은 강물이 넓고 시원하게 흘러가는 모양을 가리킨다. 그러니 노년의 삶은 큰 강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야 할 것이다.

그러가 하면 유유자적은 태연자약(泰然自若)과 좋은 짝이 될 수 있다. 벼락이 쳐도, 난리가 일어나도 까딱하지 않는 게 태연자약이다. 이렇게 태연자약 할 수 있다면 유유자적한 강물 같은 노년은 거기에 더해서 거대한 바위 같고, 또 태산 같아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노년은 드넓은 강가에 유유히 솟은 암벽 같을 것이다. 그게 노년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의 궁극이다. 드높은 이상이다.

하긴 살다보면, 그것도 노년으로 살다 보면, 별달리 한스럽고 애통한 일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얇은 물기운이 어리고 한숨을 크게 토해내는 일인들 왜 없겠는가! 그럴 때는 혼잣말 하듯이 이런 시를 가만 가만 되뇌는 것도 좋을 것이다.

외로워서 힘이 들 때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혼자 앉으세요

혼자 앉아 이름을 부르세요
그리고 외롭다고 말하세요

외롭다고 말하면
슬퍼질 거예요
슬퍼서 눈물이 나거든
그냥 흘리세요
목놓아 울고 싶거든
그렇게 하세요

그런다고 외로움이
가시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나아질 거예요.

외로움이 슬픔이 되고
슬픔을 하염없이
슬퍼하고 나면
긴 한숨이 나올 거에요
그러면 한결
수월해질 거예요

외로워서 힘이 들 때는
이름을 부르세요
그리고
외롭다고 말하세요.

(예창해, <외로워서 힘이 들 때는>),

그렇게 서러움이며 슬픔에 한껏 젖고 나면, 마치 그새 자신도 모르게 흘린 눈물을 받아서 영근 듯이 마음의 고요가 깃들 것이다. 그런 아린 고비를 아프게 넘기는 것도 일종의 마음 다스림이 될 수 있다. 그래서는 조용히 가만히 눈감고 앉아 바위가 될 것이다.

노년에는 세상만사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그 모든 것, 그 자질구레한 것들을 아주 멀리 남의 일로 떼어놓고 사는 게 좋다. 자기 일도 그게 죽자 살자하는, 다급하고 긴요한 일이 아닌 이상 딴전을 피우며 모르는 척하는 게 좋다. 그렇게 꽃을 스쳐가는 봄바람처럼 살아가면 된다. 그러러면 절로 진중하게되고, 행동이나 자세에 무게가 붙을 것이다. 백두산의 천지연처럼 , 한라산의 백록담처럼 시원하고 육중할 것이다.

영화 <워낭 소리>에서 소를 몰고 가던 노인처럼 노년에는 그렇게 살고? 싶다. 넉살 좋게 야금야금 흙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 마는 듯하는 소를 따라 노인이 차분하다 못해 고분하게 발을 옮기던 그 장면, 그 정경. 나이 들어서는 매사 그렇게 하고 싶다.

*김역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비아북 간행>에서


5禁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지나간 날에 마음을 주지마라.

“그때 난 이렇고 저렇고 했는데 . . .”
“내가 한창일 때는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 . “
“내가 소싯적에는, , , ,”

이런 투의 말을 삼가야 한다. 어제를 빛나게 하려고 우쭐대다 보면 뜻하지 않게 오늘을 꼴사납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마음속으로 어제의 보람을 되짚어봄으로서 오늘의 생기를 찾을 수도 있다. 회상 속에 떠오르는 멋진 장면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어제를 두고 우쭐대다 보면 끝에는 큰 한숨이 따라 붙기 마련이다.

“어젠 이랬었는데 오늘은 왜 이 꼴이지?”

그리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과거를, 마치 잃어버린 물건, 도둑받은 보물을 찾듯이 뒤적거리게 되면, 소중한 오늘의 노년이 파리해지고 초췌해진다. 가버린 시간때문에 현재의 시간을 꼴사납게 만들진 말아야 한다. 그렇게 흘러 보낸 오늘은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잃어버린 시간, 도둑맞은 시간이 된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는가!

물론 노년에 삼가야 할 일이 여기 열거한 다섯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가령 자식들을 원망하는 일, “우리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구질구질한 소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키우긴! 태어나게 했으니까, 당연히 키운 것뿐이지, 자식들이 낳아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다. 그저 부모가 좋아서 낳은 것뿐이다. 그러니 마땅히 책임지고 키워야 했던 것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기에, 그러니 자식들에게 빚진 것을 받아내듯이 조르지도 말고 은근히 뭔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 그저 저희들끼리 잘살면, 그게 오죽 고마운 일인가 말이다.

또 있다. 앉을때에는 웅크리거나 쪼그리지 말아야 한다. 바른 자세로 곧추 않는게 가장 좋다. 힘들어도 그렇게 떳덧하게 앉아야 한다. 괜히 얼굴을 찡그리고 허리가 꺾인듯이 죽치고 앉았지는 말아야 한다. 한 시대 전에 대청마루에 장죽을 비스듬이 물고는 양반다리로 앉아 “으흠!”하고 큰기침을 해대던 노장들을 본받아야 한다.

이러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지켜야 할 것, 가려야 할 것들이 늘어만 간다. 그러니 삶을 대하는 태도도 노년에 들어서 더한층 다부지고 야무져야 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잠시 차치하고라도 오금(五禁)만은 명심하고 지키는 것이 좋다.

*김열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비아북에서

 


4禁 노탐(老貪)을 부리지 마라

그런데 참 묘하게도 노년이 되면 투덜대고 구시렁대면서 기가 꺾이는 한편, 허욕이나 탐욕이 많아지기도 한다. 나이 든 사람의 허황된 욕심을 노탐(老貪)이라 하는데, 그런데 참 묘하게도 노년이 되면 투덜대고 구시렁대면서 기가 꺾이는 한편, 허이건 여간 악덕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은 줄여야 하는데, 거꾸로 그걸 더 돋우는 것이 노탐이다.

그래서 노년에 지켜야 할 오금으로 ‘노탐을 부리지 마라’를 들 수? 있다. 그런데 노탐은 흔히 허욕(虛慾), 이를테면 허망하고 헛된 욕망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탐스러운 구석이라고는 단 한 곳도 없는게 노탐이기 마련이다. 아무 보람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나 부작용만 불러올 허욕으로노탐은 버글거리게 한다.

음식이나 옷가지 등에 대한 노탐도 문제에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식탐(食貪)이 제일 말썽이기 마련이다. 많이는 못 먹는데도 이것저것 챙기고,또 맛이 있느니 없느니 투정 부리는 그 고약한식탐은 필경 건강까지 해칠지도 모른다. 게닥 인품까지 엉망이 될 게 뻔하다.

봄 산 어느 곳엔들 녹음방초 없으리오만
상제와 가까운 천왕봉이 있어서 사랑스럽네
빈손으로 와서 무얼 먹고 살것인가
은하수 십 리에 뻗어 있어 먹고도 남겠네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자신의 산천재(山天齎) 기둥에 써붙인 시로, 조식의 전기를 쓴 한수연이 번역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무얼 먹고 살것인가?” 라고 하면 그건 가난에 찌들 대로 찌들고 쪼들릴대로 쪼들린 소리가 되기 마련이다. 탄식이고 한탄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개 높은 선비중의 선비로, 차라리 신선에 가까왔던 조식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은하수 십 리에 뻗어 있어 먹고도 남겠네”라는 그 호언장담이, 그 큰 소리가 그렇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고고한 선비는이 노래를 지을 당시 나이가 이미 예순 안밖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노인으로 섬겨질 처지였다. 그런데도 은하수 물을 마시고 그 별을 먹겠다니 밥 따위는 관심 밖이다. 가진 것도, 먹을 것도 없는데도 스스로 자족할 줄 아는 그 허심탄회(虛心坦懷)가 놀랍다.

오늘의 노년에 이를 그대로 실천하기는 힘겨울 것이다. 하지만 마음가짐만이라도 그 근처에 다다르고 싶다. 그러면 게걸스럽게 식탐을 부리는 것만은 면할지도 모르겠다. 한껏 바람을 마시고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한때나마 배부를 수 있는 게 노년이다. 그래야만 노년이 더한층 노련해질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있다. 적은 것을 탐내다가 큰 이득을 놓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노탐대실’할 수도 있다. 건강을 놓치고,인품을 잃고, 결국 인심까지 잃고는 미움덩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줄이고 줄여서 마음을 비울 수 있어야 한다.

무심과 무욕과 무탐, 그것은 노년의 세 가지 ‘무의 미덕’이다. 그 미덕들을 지키지 못하면,노년에 무리가 간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해코지하게 된다. 그건 일종의 자해(自害)이다.

*김열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 비아북 간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禁)과 5권(勸)

3禁 기죽는 소리는 하지마라

노년에는 되도록 기가 죽고 풀이 죽는 소리를 삼가야 한다. 기가 죽을 짓이나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푸념은 무당이 귀신을 핑계로 다른 사람들을 몰아치는 소리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에 박힌 상처며 가슴에 품은 불만을 구중중하게 늘어놓음으로써 스스로 기죽은 꼴을 내보이는 것은 노년으로서는 차마 할 짓이 못된다.

“아이고 더 살아서 뭐 해!”

“이 꼴 보고, 이 지경 겪으려고,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았나?”

이렇게 기죽는 소리는 본인의 기운을 빼았기 마련이다. 말이 힘을 잃고 소리가 기운을 놓치면 생기가 덩달아서 빠져 나간다.

안 초시는 그 날카로워진 이를 빈 입인 채 빠드득 소리 나게 한 번 물어보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천 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 저기 널렸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 빛이 눈이 부시다. 안 초시는 이내 자기의 때묻은 적삼이 생각이 났다. 소매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날래 돌리지 않는다. 거기는 한 조박의 녹두 빈자나 한 잔의 약주로써 어쩌지 못할, 더 슬픔과 더 고적함이 품겨 있는 것 같다. 흑, 혹 소매 끝을 불어보고 손끝으로 투겨보기도 하다가 목침을 세우고 눕고 말았다.

이태준의 <복덕방>에서 거처가 마땅치 않아 친구인 서 참의(參議)의 복덕방에서 잠을 자곤 하는, 안 초시를 묘사한 대목이다. 그는 딸이 부러진 안경다리를 바꿔 끼라며 준 40전을 토막내어서는 야금야금 담배를 사 피우는 그런 처지이다. 그러다 보니 흰 구름이 떠 있는 천 리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눈길과 자기의 찌든 옷소매를 내려다보는 눈길이 다를 수밨에 없다.

거기에는 “슬픔과 고적함이 품겨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작가가 소매를 내려다보던 안 초시의 눈이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게 했다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소매 끝과는 대조적으로 천 리같이 트인 맑은 하늘이 더 한층 슬픔과 고적함을 줄 수 있었을 테니.

이처럼 별 것도 아닌 것들, 굳이 소맷자락이 아니라도 무시로 주위의 자질구레한 것들에서 슬픔과 고적함을 느끼는 게 노년이다. 슬픔과 고적함이 사방팔방에 널려 있는 셈이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노년일수록 이런 상태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기가 죽고 기운이 꺾여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게 된다.

그렇다. 안 초시가 옷소매를 뿌리치고 일어서야 했듯이 노년은 누구나 자질구레한 일로 기가 죽는 상황을 떨쳐내야 한다. 헛기침을 해도 좋고 “으흠! 으흠!” 소리를 연발해도 좋다. 뒷짐을 지고 먼 하늘을 바라보아도 좋고, 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해도 좋다. 기가 죽으면 생기도 덩달아서 시든다. 기고만장(氣高萬丈)까지는 아니라도 ‘기고백장’ 정도는 괜찮다.

*김열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에서

 

2禁 노하지 마라

오금 가운데 둘째는 노년의 ‘노老’가 노기怒氣의 ‘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기老氣와 노기怒氣는 사돈의 팔촌보다 더 멀어야 한다. 노여움을 머금는 것까진 몰라도 그게 밖으로 펑 하고 터져 나오면 흉측하다. 힘껏 안으로 누르거나 감추어야 한다.

한 집안의 큰 어른이 되었다면, 노발대발怒發大發은 평생에 한두번이면 족하다. 마땅히 노발대발해야만 할 때는 위풍 있고 권위 있게 상대방을 압도해야 한다. 다이너마이트가 장소나 시간을 잘못 골라 터지듯이 아무 때나 노기를 터뜨리면 정말 꼴사나워진다. 찡그린 얼굴의 주름살이 더욱 민망하게 쪼글쪼글해질 것이다. 시뻘겋게 염색된 낯빛은 개의 엉덩이 뒷문 같아 보일 것이다.

노기충천怒氣衝天, 이를테면 노여움이 하늘을 찌를 때라도 높이 솟구치게 하는 대신 뱃속 깊은 곳에 가라앉혀야 할 것이다.

노발대발!
노기충천!

어느 것이나 경우에 맞고, 그럴 법해야 하고, 그래서 마땅해야 한다. 위엄에 차고 권위가 높아 보일 때만 노기도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된다.

그렇지 못해서 품위 없고 상스러우면 노기는 그만 악이 되고 만다. 악쓰기의 악이 되고 악지 부리기의 악이 될 것이 뻔하다. 악이 아니라 아예 악독한 악다구니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 지경이면 노기충천해 노기를 부린 노인 스스로가 영영 승천昇天해버릴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노기는 뇌경색이나 뇌출혈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발끈하여 악을 쓰기 마련이었다.
“맨날, 천날 죽는다 카면서 외 몬 죽을꼬.쪽박 들고 동냥질 댕기도 똑 맞을 그 잘사는 딸네집에 갈라 카모 어서 가소. 평생 딸네집 뒤만 봐줬는데도 딸네는 이날 이때까지 와 제 발도 몬 닦는고,”
이제 고모까지 들고 나서는 어머니의 빈정거림이었다.

앞서? 인용된 <미망>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욕과 악을 내뿜으며 화풀이하는 것은 서술자인 ‘나’의 어머니이다. 이미 예순을 넘긴 어머니가 욕을 퍼부어대는 상대는 나이 팔순에 가까운 ‘나’의 할머니이다. 한 시대 전의 우리 사회에서라면 며누리는 중늙은이고 시어미는 아주 극한까지 다다른 노인인 셈이다.

그런 나이, 그런 인간관계인데도 이런 악담을 내뱉다니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전통 사회에선 생각도 못 할 일이다. 며느리가 시어미에게 발악을 하고 저주를 퍼붓다니 망조가 들어도 보통 든 게 아니다.

이처럼 노기를 부리는 것은 듣기 딱하고 보기 민망하다. 세상이 막 되어 먹고 인간도 막 되어먹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 그러니 노년들은 더욱 노기를 꾹꾹 참아야 한다.

*김열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 에서


1禁 잔소리와 군소리를 삼가라

‘나이를 먹는다’는 이 말, 누구나 자주 쓰는 이 말은 정말 근사하다. 나이를 뭔가 보람찬 것으로 떠 받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가 먹어서 나쁠 것은 없다. 본래 그렇게 되어 있다. 가끔 독을 먹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건 예외다. 그래서 독은 ‘못 먹을 것’이 된다. 그러고 보면 ‘먹을 것’은 다 좋은 것이다. 아이들은 군것질을 좋아하고 어른들은 술이며 안주를 즐긴다.

따라서 ‘나이를 먹는것’도 나쁠 것이 없고, ‘드는 나이’ 또한 나무랄 것이 없다. 맛있는 음식을 탐내듯이 나이도 탐낼 법하다. 품에 들고 주머니에 들어서 나쁠 것이 별로 없듯이 ‘드는 나이’ 또한 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을 언짢아할 이유는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먹는 걸 즐긴다면, 나이 또한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아, 배불러!’

잘 먹고 나서 누구나 내뱉는 한마디! 이럴 때 인생이 부르고 또 만복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 마음 불러”라고도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를 먹으며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나이 먹어서 마음이 부를 수 있도록 삶을 가꾸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노년에 비로소 누리게 되고, 그래서 나이가 더욱 돋보일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노년이라서 귀하고 소중한 것들, 부디 이것만은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것들, 여기서는 그들 중 다섯 가지만 따로 세우고 ‘노년의 오권(五勸)’이라 부르고자 한다.

하지만 그늘이 양지를 더더욱 빛나게 하듯이, 노년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지켜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 말아야만 노년이 한층 고와 보이는 일들, 노년이라서 더 삼가고 가리고 멀리해야 할 일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그것들을 ‘노년의 오금(五禁)’이라 부르면 어떨까.

오금 가운데 첫째는 투덜대지 말라는 것이다. 투정부리기, 삐쭉거리기, 구시렁대기,중얼대기, 넋두리하기 등등에서 노년은 되도록 멀어져야 한다. 일그러진 얼굴, 둔한 칼자루를 내민 듯이 비죽대는 입술, 상대방을 해꼬지하는 날카로운 말버릇을 노년들은 피해야 한다. 그악한 말, 그악한 행동은 무엇보다 본인 자신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곤 필터가 반쯤 타서야 담배를 재털이에 부벼 껐다. 핢머니는 기침을 콜록이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 복, 서방 복, 자슥 복 다 없는 이 늙은이를 저승사자는 왜 안데불고 갈고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서럽은 내 팔자야 , 그저 자는 잠에 꼴깍 숨 거두고 마 좋겠구마는 . . .”

할머니가 세운 무릎에 얼굴을 묻더니 소리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박완서의 <미망>에서 시어미가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이다. 평생을 가난하고 외롭게 산 것도 뭣한데 엎친데 덮친 꼴로 이제는 죽음을 앞 둔 나이에 며누리에게도 박대당하는 처지가 되고 만 노파의 중얼댐이 딱하고 안스럽다.

이것은, 이를테면 ‘팔자 한탄’으로 ‘한풀이’의 전형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애틋한 동정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가뜩이나 처연한 시어미의 몰골을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김열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Via Book 에서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