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노년의 즐거움/2021년 9월 15일>

노년의 즐거움-김열규


위인의 초상, 노년의 얼굴

왼쪽부터 퇴계 이황, 강세황,니콜라에비치 톨스토이,알베르트 슈바이쳐

모두 노안(老顔)이다. 그래서 멋진 인상을 풍기고 있다. 조선왕조의 존경할 만한 선비 중의 선비들, 크나큰 대인들의 면모는, 풍모는 그야말로 신선이다. 그분들은 나이든 얼굴로 인해 더한층 빛나고 있다. 그 주름살이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 같다. 그분들의 백발은 이른 봄 , 얼음 바람 속에 핀 매화요,백설이다. 그분들의 수염은 동지 섣달 나무가지 끝에 늘어진 눈이다. 우리나라의 노친(老親)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서양의 노친들도 마찬가지다.

지상지고(至上至高), 주어진 분야에서 더 오르고자 해도 더 오를 데가 없는 인간성숙의 지상에 다다른 어른들, 노년들의 얼굴이 사뭇 눈부시다. 인간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뜻이 더 없이 거룩하고, 더없이 착실하게 여문 어른들의 용모가 여기에 매우 덩그렇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들 위인의 용모를, 이들 대인의 풍모를 굳이 노년의 초상화에 담으려 했을까? 젊은 시절의 사진이나 그림은 남겨진게 없어서? 아니면 중장년기의 사진으로는 뭔가 좀 모자랐던 것일까?

앞의 물음을 묻고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당연히 뒤의 물음을 묻고 답을 찾아야 옳을 것 같다. 이치에 맞을 것 같다. 젊은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기의 사진이나 초상화로는 이들 거인, 거물들이 이룩해낸, 그리고 그들이 다다른 완성과 성취를 말하기가 모자랐던 것이다. 중장년기만으로는 아직도 무엇인가 미성(未成)하고 미숙했던 것이다.

노년의 초상이라야만 했던 것이다. 거기 비로소 성숙이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청년이, 그리고 중장년이 까마득하게 못 미칠, 거룩하고 성스러운 지상지고의 경지, 그나마 지성과 정신, 혹은 영혼이 다다를 최절정의 경지가 노년의 초상에 비로소 깃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그 더없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노년의 초상에는 거의 하나같이 부드러움과 우아함이 말갛게 어려 있다. 더 이를 데 없는 엄숙한 그 지엄(至嚴), 더 바랄 데 없는 그 숙연함, 바로 그 속에 단아(端雅)함이, 다소곳함이 은은히 여운을 피워내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나이 예순에 이순(耳順)하고 나이 일흔에 마음먹은 대로 해도 구(矩)를 넘지 않는다”고 한 대목을 생각나게 한다 예순과 일흔의 나이는 기로라고 한다. 공자가 살아 있던 당시로는 최고령이다.
그런데 나이 예순이 되어서야 남들 말하는 이치가 고분고분 귀에 들어오고, 그래서 세상이며 인생, 그리고 사물의 이치가 순하게 받아들여 지는 것이 ‘이순’이다. 그런가 하면 ‘구’란 ‘법도’, ‘법칙’이란 뜻인데 나이 칠십이 되고 보니 뭐든 마음먹은 대로 해도 규범이나 법칙에 척척 들어맞더라고 했다. 세상의 옳은 이치며 인생살이의 바른 법도와 맞아떨어지더라는 것이다. 결국 ‘이순’이나 ‘구를 넘지 않는 것’이나 순리를 따라 곱게 느긋하게 산다는 뜻이고, 앞의 노년의 초상을 보아도 그걸 느낄 수 있다.

노년의 얼굴은 이렇게 멋지다. 이토록 귀하다. 그건 남들보다 먼저 노년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차려야 한다. 또 그렇게 되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가을이 되어 인생이란 과수원에 농익은 과일들, 그 모습, 그 향이 노년의 초상에는 자우룩하다. 우리 노년들 누구나 그렇기를 마음먹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늙으면 죽어야지!”라느 말은 당치도 않다. 그런 넋두리는 내뱉지 말아야 한다. 그게 말버릇이 되면 노망기가 말썽을 피우게 된다. 대신 , “이제 사는 것처럼 더 살아야지!”라고 호쾌하게 장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가하면 “아이구! 이 나이에 뭐?”같은 푸념은 잠고대로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아이고! 이 나이니까, 뭐든 해야지”라고 떳떳이 큰소리쳐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노년의 초상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얼굴이 그 초상들을 닮도록 마음을 다지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 초상화 속의 노년과 맞먹음 직한, 멋쟁이 노인네 얘기를 소개해 볼까 한다.

고려 말기의 삼은(三隱), 곧 새로운 조선조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세상을 피해서 살아간 세 명의 선비중 한 명인 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과 , 고려 말과 조선 초 성리학의 대가인 양촌(陽村) 권근(權近)과, 조선왕조 창건에 큰 보탬을 준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당시로는 천하의 대학자요,선비들인 삼걸(三傑)이 자리를 같이하고 담소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정도전이었다.

“나는 북쪽 국경 지대에 첫눈이 내리면 담비 가죽옷을 입고는 준마로 산하를 내달리면서 사냥을 하고 싶소.”

이 말을 이숭인이 받았다.
“나는 말이오.산집의 작고 깨끗한 방 안에 고운 책상을 들이고는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면서 스님과 마주 앉아 시를 지었으면 하오.”

끝으로 권근이 말했다.
“난 그렇지 않소. 난 말이오, 한겨울 흰 눈이 뜰에 가득할 때를 맞아서 창가에 자리 잡을거요. 아침 햇살이 비치는 방에 병풍을 둘러치고는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화롯가에 길게 누을거요.”

정도전만 해도 예순이 넘도록 살았으니 이들은 노인으로서 대담을 주고 받은 셈인데, 이 가운데 누구의 말이며 취향이 앞에서 본,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초상화와 어울릴까? 말할 것도 없다. 정도전만 빼면 된다. 앞서 본 대성(大聖)들의 초상화도 도은과 양촌처럼 티 없이 말고 정갈한 마음을 풍기고 있을 것이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