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북한의 집단구치소 이야기/2021년 2월 1일>

‘이 지옥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북한의 구치소에 수용되었던 한 기독교인의 이야기-

지난 60여년 동안 세계적으로 억압받는 기독교인들의 사정을 세상에 알리고 지원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해온 선교단체 ‘Open Doors’는 기관지 <Presence> 2021년 1,2월 호에서 북한에서 억압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생활을 특집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계제된 한 기독교인의 북한집단구치소 생활을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그들이 당신에게서 제일 먼저 빼았아 가는 것은 당신의 이름이다.
그 다음에는 당신의 자유를 빼았아 가고
그 다음에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빼았아 가며
그 다음에는 당신의 옷을. 그리고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끝으로 그들은 당신의 햇빛을 빼앗아 가 버린다.
서서히 말라버리는 수도꼭지와 같이 마음과 육체 이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 둘 마저도 결국은 여기에서 뭉개져 버릴것이다.

나의 이름은 ‘42번 죄수’, 물론 이것이 나의 진짜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북한의 이 형무소에 들어왔을 때 나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아침 8시만 되면 그들은 ‘42번 죄수”를 부른다. 내가 일어설 때 나는 간수들을 보면 안된다. 나는 일어나야 하지만 나의 두 손은 뒤로 하고 그들을 따라 취조실로 가야 한다. 나는 죄수들의 그림자를 볼 수 있지만 결코 내가 그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비록 똑같은 일이 매일 벌어지지만 나는 매일 여전히 두려움에 쌓인다. 그들이 “42번 죄수”를 불러낼 때마다 그들은 나를 때리고 발로 찬다. 피해가 가장 심할 때는 나의 귀를 때렸을 때인데 그런때는 종소리같은 울림이 몇 시간 내지 때로는 몇 일씩 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그래도 살아 있다.

끝없는 취조

나는 매일 아침 1시간씩 취조실에서 취조를 받는다. 매일 아침 그들은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중국에 갔는가?”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는가?”
“교회에 갔었는가?”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가?”
“남조선 사람들을 만난적이 있는가?”
“당신은 기독교인인가?

이러한 취조를 마친 다음 그들은 나를 감방으로 데려다 준다. 나의 감방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다. 그리고 겨울과 여름에는 온도가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다. 감방은 너무 좁고 나는 거의 누울수가 없을 지경이다.
거기에다가 사실 나는 누워있을 시간이 별로 허용되지 않앗다. 나는 주먹을 쥐고 무릎을 꿇고 앉아있어야만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안된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곳은 사람살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간수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동물만도 못했다. 나는 장속에 갖혀 있었고 육중한 문들이 등뒤에서 쾅하고 닫히면 불빛마저 어두워지고 더는 밝아지지 않았다.

그들이 진실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들은 취조실에서 내가 부인하는 것들을 통해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기독교인이냐고? 그렇다. 그렇지만 아닌척 해야 한다. 만약 내가 어떤 기독교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시인하면 나는 빨리 죽든지, 천천히 죽든지 여하튼 죽기 마련이다.

비밀스런 신앙유산

내가 알고 있는 첫 번째 기독교인은 나의 할아버지였다-그 당시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일요일이면 할아버지는 나에게 집에 있지 말고 멀리 밖에 나가서 놀다오라고 아야기 하셨다. 나는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지만 그는 억지로 나를 내보내셨다.

내가 기근때문에 북한에서 중국으로 도망갔을때 다른 기독교인들을 처음 만낮고 그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때 어느날 밤 나는 꿈에 할아버지를 뵈었는데 다른사람들과 함께 둥그렇게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 가운데는 성경책이 있었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꿈에서도 저는 “저도 신자에요”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나의 목숨을 주님께 바쳤다.
여하튼, 신비스럽지만 나는 북한의 기독교 가정 출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는 중국의 어떤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검은 차가 내 옆에 와서 섰다. 나는 길을 물으려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운전수와 다른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나를 붙잡았다. 나는 반항했지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를 차안으로 집어넣자마자 발동을 걸고 급히 달렸다. 나는 죽었구나 생각했다.

중국유치장에서 몇 주를 지낸 후 나는 북한당국에 인계되었다. 그들은 나를 유치장으로 데려가더니 나의 옷들을 완전히 벗기고 혹시 무엇이 특히 돈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지 철저하게 뒤졌다. 그들은 나의 머리칼을 완전히 밀어버린 뒤 이 형무소의 감방으로 데려왔다.

그들은 나에게 전혀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다른 옷을 입으라고 주었다. 아마도 이방에 있던 지난번 죄수의 것인듯 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내 이름이 나온듯 ‘42번 죄수’라는 이름이 운동복에 찍혀 있었다. 나는 ‘42번 죄수’ 반열의 또 다른 참가자가 된게 아닌가 생각했다. 지난번 ‘42번 죄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죽었을까? 처형되어서? 굶어서? 아니면 매맞아서. 그것도 아니면 말라버린 수도꼭지와도 같이 그저 말라비틀어진걸까? 나는 그녀가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의 구치소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지 그곳에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영웅적인 이야기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혼자서 그리고 결코 혼자만이 아닌?

나는 이곳에서는 혼자 있다. 너무나 외롭다. 물론 이곳에 다른 죄수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보는 것은 간수들의 그림자뿐이고 그들이 내 감방의 작은 창문앞을 지나갈 때 비치는 달빛과 햇빛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기도뿐이다.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노래하는 것 뿐이다. 결코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오직 마음속으로만 가능하다. 나는 내 머리에 적혀져 있는 노래를 부른다.

이 감방에서 내 마음은 나의 아버지를 갈망합니다
비록 진리에의 길이 거칠고 좁아도
계속한다면 밝은 미래가 보일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재난이 이 길을 때릴것이니
저로 하여금 튼튼한 요새로 가게 하옵소서.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는지요?
나의 마음은 눈물로 이 감방에서 아버지를 열망하고 있습니다.다
아버지, 이 죄 많은 딸을 받아주시고
당신의 산같은 요새와 방패아래 저를 보호해 주소서.
당신의 평화의 날개 아래 저를 품어주시고
하늘에서 들려 오는 당신의 목소리로
매일 매일 당신의 축복속으로 저를 인도해 주옵소서.

이미 1년이 지났다. 내가 얼마나 오래 견디어 낼런지 나는 모른다. 어느 날, 그들이 나를 부르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이 어둠 가운데서 죽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의 시체를 던져버리고 새로 들어온 죄수에게 나의 죄수복을 입히고 그 새로 들어온 죄수는 새로운 ‘42번 죄수’가 되어 나의 죄수복들을 입을 것이다.
이러한 지옥을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의기소침해진 이곳에서 그들도 의기소침해질까?
그들도 이곳에게 우리에게 무슨 일이 행해지고 있는지 알고 계실 유일한 분 하나님께 울부짖을까? 그들도 나와 같이 죽어갈까?

*그러나 ‘42번 죄수’는 죽지 않았다. 그녀는 살았다. 그녀의 삶은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었지만 그녀는 살아남아 감방에서 불려나가 법정에 서게 되었다.
법정에 간다는 것은 승리한 것이다. 정치적인 ‘범죄’ 때문에 또는 예수를 따른다해서-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진 사람들은 결코 판사에 의해 선고받지 않는다. 그저 감방에서 사라질 뿐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곳에 있다. 내가 끈질기에 부인한것이 효과를 본 것이다. 그들은 내기 기독교인이란 증거를 찾아낼 수기 없었던 것이다.

법정에는 나를 변호해주는 변호사는 없었다. 나는 간수가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장 앞에 섰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었다. 나의 남편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내가 늘 보던 아주 슬픈 눈으로 나를 처다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울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고 그 역시 그러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한 마디도 서로 나눌 수 없었다.
재판장은 남편에게 나와의 이혼을 원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의 대답은 나의 마음을 찢어버렸지만 그의 결정은 우리 가족들 특히 우리 아이들을 위해 내린 것이었다. 만약 그가 나와 이혼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벌을 받을것이었다.
나는 교화소에서의 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곳이 바로 내가 지금 있는곳이다.

이 수용소에서 나는 하루 12시간씩 일을 한다. 때로는 더 많은 시간을 할 때도 있다. 하루하루가 긴 악몽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더이상 독방에서 혼자 있지는 않는다. 꼬박 일년 동안 격리수용소에서 지냈기 때문에 나의 피부는 한 줄기 햇볕도 쬐이지 못했다. 감방에서 나와서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운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우리만치 굉장한 것이었다.

처음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언가 움직이는 것들을 보았다. 그것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어떤 사람들은 등이 굽어지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팔이나 다리가 없기도 하였다. 있는 팔, 다리 마져도 너무나 가늘어서 성냥개비와 같았다. 나 자신도 다른 죄수들과 별 다르지 않았다.

수용소 교회?

한 달쯤 전에 나는 병에 걸려서 막사에 남아 있게 허락을 받았다. 나는 나 혼자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한쪽 구석에 있는 담요가 눈에 띄었다. 그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담요 밑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뒷금치를 들고 담요 가까이 가서 귀를 기울여 보았다. 목소리는 알아듣기 어려웠으나 귀에 익숙한 어조였다.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을 알게되었다. 거기에는 한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은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내 침낭이 있는 자리로 돌아와 그 후 몇 일동안 그 여인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한 일주일 후 우리들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가까이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여인 근처로 걸어가서 “여보세요, 예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라고 속삭였다.
그 여인은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여인은 누가 이말을 엿들었다면 두 사람 모두 즉석에서 처형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 여인은 나에게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수용소 안에 비밀교회를 만들었다. 우리들이 만나서 안전하다 생각될때면 주기도문을 같이 기도했고 성경을 암송하고 사도신경을 함께 외웠다.
그 여인은 나보다 훨씬 용감하였다. 그 여인은 다른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하기까지 하였다.

아마도 그때문에 어느 날 차가 와서 그 여인을 싣고 간듯 하다. 그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를 죽음의 캠프인 관리소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 여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다.

나는 지금 수용소 막사에 있다. 하나님은 매 일, 매 시, 매 분 그리고 매 초마다 나와 같이 하여 주셨다. 어제 내가 석방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2년밖에 복역하지 않았다.
내가? 출소하면 처음 할 일이 남편과 아이들을 찾아 보는 것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무척 컷을 것이다. 지난 몇 년동안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켜보아 주셨다. 감정이 막 터져나오려 할때도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주셨다. 나는 단지 말라버린 수도꼭지가 아니라 예수게서 생수를 부어주셔서 내가 낙담하려 할 때 계속할 수 있도록 하셨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을 지켜주셨고 그에게 기도하고 소리지르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아이들도 매 일, 매 시간, 매 분, 매 초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며 믿고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다.

*이 수기는 실화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42번 죄수’의 이야기는 북한에는 매일같이 일어나는 실화란 것을 밝힌다. <Open Doors>에 의하면 현재 5만명 내지 7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북한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