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교회사 산책 15/2020년 5월 15일>

<교회사 산책 15>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유 재 덕

기원 64년부터 4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신앙을 가지려면 그에 앞서 목숨을 잃어도 좋다는 각오를 해야 했다. 기원 250년 이전까지의 박해는 제한적이고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유대교’라는 용어에 맞서 ‘기독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of Antioch)나 서머나의 폴리카르프스감독, 그리고 블란디나,페르페투아, 펠리키타스 를 비롯하 수많은 여성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했다. 순교를 겨우 모면한 젊은 여성들은 사창가로 팔려가야 했다

그러나 이런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늘어갔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교회와 함께 하기 때문이란 게 그리스도인들의 해석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지중해 일대 사람들에게 이전의 전통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영적 관심과 삶의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높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 역시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시민들에게 제시한 다음과 같은 새로운 종교 교훈을 빼놓는다면 급속한 성장의 배경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에 일종의 도덕적 지침을 제시했다. 2세기 중반이 되자 로마 당국은? 유대인과그리스도인을 배격하지 않았다. 기독교의 도덕법을 접한 적이 없는 시민들도 그랬다. 시민 가운데 유대교가 주장하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추종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은 할례의 끔찍한 고통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정식으로 유대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회당에 재정적 도움을 베푸는 선에서 만족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기독교는 그 틈새를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방인들이 보기에 기독교는 유대교와 달리 고통스러운 할례의식을 거치지 않고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커다란 매력이었다.게다가 그리스도인들의 우월한 도덕적 행동은 법이나 관습, 혹은 계급에 근거한 윤리보다는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일반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태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존의 종교는 상류층 사람들에게 도시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려면 빵과 서커스에 돈을 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교회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게 마땅하다고 가르쳤고 그대로 실천했다.

게다가 그리스도인들은 평등을 실천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던 여성에 대한 견해는 로마인들의 그것과 분명히 달랐다. 로마인 가장들은 가족 모두에게 체벌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을 갖는 것은 물론, 장애자처럼 원하지 않는 아이기 태어나면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은 채 내다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달랐다. 기독교 교회를 이끌어가는 남성들은 여성에게 호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자기 집을 예배 장소로 할 정도로 부유한 여인들이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기독교 공동체가 여성을 존중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성을 존중하던 예수님의 교훈과 삶을 그대로 실천했다.

실제로 예수님은 여성을 열등하게 간주하는 유대인 남성들의 편견에 적극적으로 도전했다. 이것은 당시 유대교 랍비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랍비들은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직접 대화하고 가르쳤다. 여성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자리를 뜨지 않았고,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접했을 때도 역시 누구보다 먼저 믿고 사람들에게 전했다. 세얼이 흐르고 교회의 직제가 강화되면서 서서히 변질되기는 했지만,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처럼 여성을 존중했을 뿐 아니라 동역을 허락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인격적인 신을 제시했다. 로마의 신들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비인격적 존재였다. 반면에 기독교는 신적존재와의 직접적인 교제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무엇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고 고통에 동참하는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간주했다. 이것은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골의 리옹에서는 블란다나(155?-177)라는 장애인 여성 노예가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고문을 당했다. 그녀는 황제에게 분향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반항한 것이다.병사들은 그녀를 경기장으로 끌고 가 벌겨벗긴채 십자가에 매달고 굶주린 맹수를 풀어놓았다. 그런데 맹수들이 그녀를거들떠 보지 않았다. 병사들은 그녀를 채찍질하고불에 달군 석쇠에 올려놓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황소우리에 내동댕이 쳐 황소들에게 들이 받치고 말았다. 블란다나는 결국 이렇게 순교했다. 숨죽이고 지켜보던 그리스도인들은 불란다나의 죽음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예수를 목격했다. 자신들처럼 야유를 당하고, 고통을 겪고, 슬퍼하시던 예수님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진 신체의 고통은 오히려 용기로 바뀌었다.

아프리카 카르타고에도 3세기 초반에 박해가 몰아닦쳤다.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145-211 재위)의 칙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페루페티아를 비롯해 다섯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투옥되었다. 로마 당국은 연료한 아버지를 내쉐워 이들이 신앙을 포기하도록 종용했다. 이때 페르페투아는 자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죽음이 기다리는 원형경기장으로 걸어 나가서 서툰 검투사의 검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댔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가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그래서 고통의 강도가 심해지면 질수록 그만큼 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한 예수님과 하나됨을 극적으로 경험했다. 극심한 신체적 고통은 그들과 예수님을 잇는 매개와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테르투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유재덕 지음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브니엘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