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2021년 1월 15일>

제임스 케네디의 <그리스도와 문명> 제 13 회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드라면?

 

제13장 놀라운 은총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된 삶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린도 후서 5장 17절)

19세기 유명한 무신론자인 촬스 브래드로는 한 크리스천에게 기독교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논하는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크리스천 휴 프라이스로는 런던의 빈민촌에서 영혼구원사업을 열심히 하는 분이었다. 휴는 브래들리에게 한 가지 조건만 승락한다면 기꺼이 토론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휴는 말하기를 “우리가 믿는 믿음의 타당성을 분명하게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의 가르침에 크게 감동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고 죄의 생활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 남녀 100명을 데려 올테니 그쪽에서도 그렇게 하여 주기를 바란다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휴는 만약 브래드로가 100명을 데려 올 수 없다면 50명도 좋고, 20명도 좋으며 단 한 명이라도 좋다고 하였다. 이제 브래드로가 할 일은 무신론자의 가르침을 통해서 삶이 증진된 사람 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이미 100명을 확보한 휴는 언제든지 토론에 응하겠다고 동의하였지만 브래드로는 자신의 제안을 철회하고 말았다. 만약 오늘 그러한 토론제의가 있다면 아마 비슷한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무신론으로 사람들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사람들은 개선되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한다. 그가운데에는

*파리의 바람둥이/ *4세기 육욕에 따라 살던 회의주의자/ *육욕에 따라 살던 20세기의 회의론자/*일곱 마귀에 걸렸던 여인/ *살인 공모자/ *출세을? 위해서는 더러운 모략도 마다않던 파염치 정치가/ *술주정뱅이/ 노예밀매업자/*노예사냥꾼/ *증오심에 자신을 불사른 전쟁포로/*진주만 폭격을 지휘했던 일본군 대위 등이 들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느라면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회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내면에서터 나온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기원 1세기부터 지금까지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해왔다. 그가 살아있을 때 사캐오라고 하는 부정직하고 욕심 많은 세리가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사람을 아주 관대한 사람으로 변화시켰다(누기복음 19장 1-9) 세리인 그는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웃을 착취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가 회심하자 예수께서는 “인자는 잃은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누가복음 19장 10절)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아주 평판이 좋치 않은 여자의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었다. 그리고 선교의 동역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처음 볼 수 있었고 사회에 아무 의미가 없고 해가 될뿐인 그녀의 삶을 의미있는, 도움이 되는 삶으로 변화시켰다.

예수께서는 한 살인공모자의 삶을 세계 역사에 특히 서양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사도 바울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업적은 바울이 처음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사람이요 첫 번째 순교자인 스테반을 죽이는데(사도행전 7장 58절) 보조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것이다. 바울은 회심 이후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옛것은 지나갔으니 모드 것이 새것이 되었다”라고 하였다.(고린도 후서 5장 17절)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마음 속에 기록된 진기한 이야기들은 홍해가 갈라지던 옛날도 옛날, 머나먼 곳에서만 일어났던 일들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예수의 이야기는? 여러 세기에 걸쳐 계속되었고 오늘날도 일어나고 있다. 만약 예수께서 오시지 않앗더라면 수많은 생명들이 죄가운데서 마약과, 알콜과 자살과 갱 단원으로 죽거나 헤메고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구원의 역사란 방정식을 통해 부채가 자산이 되게 하셨다.

히포의 어거스틴(354-430)
히포의 어거스틴은 라틴 교부들 가운데 최고의 인물로 고대의 마지막 사상가요 중세기의 첫 번째 철학자요 신학자였다. 그는 새 사람이 된 후 육신의 욕심을 따라 방탕하던 크리스천 이전의 삶을 고백하는 ‘참회록’를 저술하였다. 그는 로마서 13장 14절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극적인 회심을 하였다. 어거스틴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상가요, 작가요, 철학자요 신학자가 되었다.

프랜시스 사비에르(1506-1552)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던 생활에서 기독교 지도자로 변신한 또 다른 예가 프란시스 사비엘이다. 귀족집안에서 태어나서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세상적인 삶에 실망하고 싫증을 느끼던 가운데 캐톨릭 지도자 로욜라와의 대화가운데 “만일 천하를 얻고도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태복음 16장 26절)라는 말씀에 회심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바쳐 역사상 카톨릭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다.

뉴톤(1725-1807)
‘어메이징 그레이스”란 유명한 찬송을 작시한 뉴톤은 원래 노예들을 잡아다가 파는 노예무역상이었다. 1747년 광풍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후로 그는 회심하여 노예무역도 던져버리고 목사가 되어 당시 영국의회에서 노예폐지 운동을 주도하던 윌리암 윌버포스와 함께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하였으며 윌버포스가 포기하지 않도록 고무, 격려하였다. 그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우리의 죄가 중해도, 아무리 우리가 순결하여도 오직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기독교의 진수가 담긴 찬송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였다.?

멜 트롯터
멜 트롯은 아무 쓸모가 없는 쓰레기였다. 가족들을 학대하고 자녀들을 방치하였으며 직장에서는 쫒겨났다. 거기에 술주정뱅이로 술만 생긴다면 무엇이든 하였다. 하루는 미시간 호수에 빠져죽으려고 시카고 거리를 걷고 있는데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며 전도하는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그는 “나같은 사람도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니 그게 말이 돼?”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 사랑의 멧세지에 감화 받고 술중독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그는 미시간주의 그랜드 래피드에 중독자를 위한 선교센터를 세운것을 필두로 전 미국에 50여 선교센터를 세웠으며 수만여명의 중독자들이 트롯터를 통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렇다고 기독교는 부랑자들을 위한 종교라고만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이다.

C.S. 루이스(1898-1963)
루이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하나로 옥스포드와 캐브릿지의 교수였다.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개신교 집안에 태어난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젊은 개인교사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회의적이 되어서 어린나이에 회의론자 내지 무신론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부상을 당한 후에는 그의 회의론이 더 강화되엇다.
그러나 그의 동료 작가들 가운데는 진실한 크리스천들이 있었고 그들의 영향으로 30대에 크리스천이 되어 금세기 뿐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도 그의 저서들은 베스트셀러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그에게로 인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가 루이스를 훌륭한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기독교 신앙이 그의 저서들에 영원한 의미를 주었고 가장 고상한 주제들을 다루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관 야곱 디사저와 대위 미수오 후지다??? ??
야곱 디쉐이저 상사는 특공대 폭격수로 2차 대전때 일본을 폭격하다 대공포에 추락, 일본군에 포로가 되었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일본군에 대한 증오심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의 존재목적은 일본 고문자들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어느날 감옥에 성경책이 한 권 들어와서 디쉐이저 상사에게 주어졌다. 그는 성경을 읽었고 계속 읽어가는 동안에 누가복음 23장 34절의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희들이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못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을 읽게되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디쉐이저 상사의 마음 속에 자리한 산같은 복수심을 족여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를 채워주었다. 그는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고 하였다. 그 이후로 일본경비원들이 아무리 잔악하게 고문할지라도 반항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만을 생각하곤 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디쉐이저는 일본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복수를 하려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디쉐이저의 회심 이야기가 전도지로 만들어져서 일본에게 배포되었다. 어느날 상한 마음으로 낙담하여 희망이 없는 한 일본사람이 모르는 미국사람으로부터 이 전도지를 받았다. 그는 이 전도지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그는 선교사를 찾아가 성경을 얻었다. 그 역시 회심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미쯔오 후지타 대위였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폭격을 지휘하면서 “토라, 토라, 토라”를 웨쳤던 일본 장교였다. 그가 자신의 마음과 삶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기로 하고 복음을 일본과 미국에 전파한 것이다. 그는 진주만 폭격 25주년 기념식에 누가복음 23장 34절 “아버지여, 그들을 용서하십시요.그들이 그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 새겨진 생존자들을 위한 선물을 들고 참석하였다. 후지다는 25년전 그들이 도덕적으로 무지하여 범한? 행동들을 사과하였으며 후찌다의 이야기는 <God’s Samuray>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타리리 추장
50여년 전 뉴욕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특별한 손님이 초대되었다. 남미 페루비아의 식인종 부족의 추장인 타리리 추장이다 그는 아주 잔인하여 부하 추장들을 직접 참수하는가 하면 정글의 원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같은 부족들 간에 무서운 존재였고 심지어 페루비안 군대들도 그를 두려워하여 그가 자리하고 있는 숲으로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페르시아 정글에 위크리프성서번역자인 로레타 앤더슨과 도리스 코스가 성서번역기구인 연필과 펜과 성경만을 가지고 들어가 타리리 추장을 찾았다. 어쩌면 단숨에 목이 날아가고 그들의 식탁에 오를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였던지 이 추장은 이들에게 호의를 보였다. 물론 그들이 전혀 그에게 위협이 안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잇었던듯 하다. 그들은 그부족의 말을 배워서 추장에게 이 세상을 사랑하셨던 분에 관하여 이야기 하여주었다.

결국 이 사람백정의 완악한 마음이 녹아져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삶을 주님께 바쳤다. 그는 200여명의 자기 부족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고 1964년에는 뉴욕국제박람회에서 세계의 빛,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점화하여 자기 안의 어둠을 밝히고 그의 삶을 변화시킨 빛과 기쁨을증거하였다

척 콜슨
척 콜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덕분에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된 놀라운 실례이다. 닉슨의 ‘하수인”으로 그는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닉슨팀에 가담한 유능한 변호사였다. 당시 그는 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닉슨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나. 어떤 일이나 할 수 있었다. 그는 미국대통령을 위해 더러운 술수를 수없이 모의했고 대통령은 그것 때문에 결국 사임하였다. 그는 회심 후 <Born Again>이란 책을 통해 모든 진상을 밝히고 있다. 그의 동료에 의하면 척 콜손은 음모를 꾸미는데 명수로 워터게이트가 불가피하게 그리고 가능하게 분위기를 몰아간 책임자”였다

오늘 이 사람은 수 천명, 수 만명의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그의 Prison Fellowship은 세계적인 기구로 매년 수 십만명의 죄수들을 돕고 있다. 그리고 저서와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예수를 전파하고 있다. 악한 음모의 천재에서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천재가 된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언급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하신 일들을 만약 당신이 원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한다면.당신에게도 일어나게 하실 수 있다. 만약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더라면, 위에서 언급한 변화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오지 않앗더라면 삶이 무의미할 수도 있었다. 영원하시고 삶에 의미를 주시는 하나님 없이 삶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변화시킴으로 사람들은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앗던라면 죄에 대한 용서란 없다. 만약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죄책감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난날의 죄책감을 제거할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현재와 미래의 죄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실 수 있다. 그리스도는 죄의 족쇄를 부셨고 죄인들을 자유롭게 하셨다.

어거스틴은 기원후 첫 천년동안에 가장 위대한 지성이었다. 그는 일급 웅변가였고 설교자며 철학자였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그의 모든 학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욕을 다스리고 삶을 통제하는 크리스천들의 단순한 삶이 부럽다고 하면서 자신은 정욕의 노예라고 한탄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그를 자유케 하셨다.

나아가서 만약 그리스도가 안 오셨더라면 예수께서 삶과 불명성에 불을 붙이셨으므로 영생에 대한 소망도 없을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이 있다.? 얼마나 중요한 약속인가? 복음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삶에서 즉각적으로 주님 앞으로 나갈것이다.?그리고 그곳에는 더 이상 고통이나, 고난, 슬픔과 눈물이 없다. 모든 옛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 만약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이? 깜깜하고 신비와 죽음과 소망없음에 싸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탄생하셨다. 그가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드셨는가? 그가 오셨으므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나의 삶이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 세상을 구속하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역자라는 것을 안다.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안다. 내 죄가 심연에 묻혀져서 다시는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에서 죄의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음을 안다. 나는 어느 날, 영광의 순간에 완전해 질 것을 안다. 그리고 끝없는 영원가운데서 그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결 론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이 어디선가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언젠지, 어디에서 인지 그리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분명치가 않다면 어떻게 잘못을 고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새로히 시작하는 훌륭한 장소를 발견할 수가 있다. 어거스틴이나 콜손과 같이 당신 역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당신의 삶을 시작할 수가 있다.

나의 친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기까지 당신을 사랑하셨다. 그는 자신이 당신의 죄와 최책감과 벌들을 짊어지셨고 그 대가를 치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받게 그의 은총으로 그는 우리에게 풍성하고 영원한 삶을 허락하셨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보다는 교회의 멤버가 되거나, 도덕적인 생활을 함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물론 그러한 삶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삶을 얻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 6장 23절은 “죄의 값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생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만이 하늘나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16장 31절)고 가르친다.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우리 삶의 통치자요 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도를 하라. 신실한 기도를 하라 그리고는 성경을 읽어라. 그 다음에는 성경을 믿는 교회에 참가하라. 일단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게되면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우리 삶 가운데서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의 삶은 물론, 언급하지 않은 수 천만의 삶이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변화들이없었더라면?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사실은 그리스도께서는 오셨고 우리는ㅊ예수를 인격적으로 알게되고 그의 사랑에 의해 변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킴으로 이 세상에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 그것은 계속 진행중인 작업으로 그에 동참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를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도록 한다면 당신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는 일, 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다. ????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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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위대한 예술에 영감을 넣어주다.

-기독교가 예술과 음악에 끼친 영향.-

모세는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주께서 그 마음에 지혜를 더하여 주신 기술 있는 모든 사람 곧 타고난 재주가 있어서 기꺼이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불러모았다. (출애급기 36: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상한 주제들을 예술의 테마로 제공해 주셨다. 어떤 작가가 언급한대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살려두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그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는 생각은 좀체로 하기 어려운 발상으로 유명한 대작가운데 많은 작품들이 기독교를 주제로 하거나 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기독교역사가운데 교회는 특히 로마캐톨릭교회는 예술의 주요 후원자였다. 유럽의 위대한 성당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가 예수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었다. 바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작곡한 음악가로 그는 서양음악을 변화시킨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예술은 단지 일시적인 유한한 것들만을 다루었을 것이다. 화폭이나 돌에 무한한 것을 담아보려는 노력은 아에 시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이 세상은 비록 예술이나 음악의 영역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빈약하리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순수예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쉐퍼가 언급한대로 “현대인들은 평범한 것에 중독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온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침잠되어야 한다. 우리들은 왕의 이름으로 정복자가 되기 위하여 부름받았다. 우리는 이 세상을 정복하여야 할 정복자이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정복자가 되어야하며 그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들을 견디며 그것들을 그의 영광을 위하여 바쳐야 한다. 그것은 어느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과 신약성경은 모두 위대한 예술의 주제들을 제공하였다. 기독교 이전의 유대인들은 십계명의 제2계명을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들에게 시각예술이 희귀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위대한 영감의 근원이 되는 예수

1930년대 신디아 펄 마우스는 예수에 관한 훌륭한 그림과 시와 음악 그리고 이야기들을 모아 <그리스도와 예술(Christ and the Fine Art)>이라는 제목의 문집을 출간하였는데 그 서문에서 “인류역사상 그 누구 보다도 많은 이야기들이, 그림들이 그리고 음악들이 예수에 관하여 만들어졌는데 그것들이 누구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의 경이로우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간이 되셨고 이 무한하신 분이 일시적으로 유한한 존재가 되어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셨다. 경이중의 경이로 그 분 이래 예수는 변하였다.

초기 3세기 동안에는 교회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예술품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이 당시 교회들은 적대적인 박해를 견디어 내며 생존하는데 신경을 쓰느라고 예술작품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고 이때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들은 로마의 카타콤에 있는 그림들 정도였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합법화하고 비잔틴(현재의 터어키 이스탄불)으로 수도를 옮긴 후 비잔틴 예술이 번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건축에 있어서 교회건축이 급격히 발달하였다. 수많은 위대한 성당들이 그리스의 신전들을 능가하였다. 희랍신전들이 유한한 신과 여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위한 건물인데 비해 기독교의 건물들은 천상천하에 거주하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위한 건물이었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 수많은 성당들이 건축되었고 첫 1천여년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훌륭한 성당들이 건축되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대표적인 것이 이스탄불에 있는 Haggai Sophia이다.

중세기 전 고딕, 고딕, 후 고딕풍의 위대한 대성당들은 가장 위대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돌과 유리로 지은 이 건물들은 오늘날에도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1000년 경부터 1200년 사이에 건축된 이들 대성당들은 ‘로마네스크”풍으로 알려졌다. 서방의 전역에 걸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위대하고 인상적인 대성당들이 건축되었다. 더 이상 목재가 아니라 석재로 만든 성당들은 아주 정교하게 만든 건물로 두차례 세계대전을 격으면서도 오늘날까지 건재하고 있다.

그 후 1200-1400년 사이에 고딕풍의 시대가 왔는데 이때에는 정교하게 지은 대성당들이? 더욱 더 아름다움을 더하였다. 르네상스는 예술의 황금시대이며 성서의 주제들이 가장 압도적인 시기였다. 이 시대를 ‘새로운 이교도’들이 판치던 시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고전적인 철학과 기독교가 화합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도 건축은 이교도의 신전이 아니라 성당건축이 주류였다.

이때의 위대한 예술가는 미켈란젤로로 성서의 인물들 , 다윗, 모세, 피에티 등이 그의 대표작이며 시에스타채플의 천정화와 벽화는 그의 불후의 대작으로 꼽힌다. 화가요, 건축가요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경건한 신앙인이었으며 그의 작업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목표였다.

미켈란젤로 이외에도 라파엘, 레오나도 다 빈치, 등이 <최후의 만찬>,<세례 요한>, <동방박사들의 경배>, <마돈나오 아기 예수> 등 기독교의 영감을 받은 명작들을 남겼다.

기독교 이후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현대예술에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부한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예술은 생명을 반영하고 있는데 만약 예술가에게 생명이 무의미하면 그의 예술도 무의미 할 것이다. 현대예술은 의도적으로 예술에 대한 기독교적인 영향을 거부한다. 그러나 4세기에서 20세기 사이 기독교와 예술은 서로 연관되어 왔었다. 심지어 ‘후기 기독교 예술”과 지난 200여년 동안의 서구문학은 기독교에 뿌리하여 발생하였다.

그리스도와 문학

그리스도는 문학에도 위대한 주제와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가 이야기 한대로 “문학과 복음은 절친한 친구이다.” 단테에서 쵸서에 이르기까지, 죤 돈에서 피오도르 도스도에프스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앙은 문학에 영향을 끼쳤고, 문학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작가 죠셉 넬슨 그린은 “ 영국문학은 기독교에 크게 빛지고 있다. 우리 문학의 정수들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주제나 테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기원했거나 영감을 받았다.”고 하였다.

세계적 문호로 꼽히는 쉐익스피어는 기독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가이다. 빅토르 휴고는 “영국은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영국이 만든 책이고 하나는 영국을 만든 책이다. 그것은 바로 쉐익스피어와 성경을 말한다”고 하였다. 쉐익스피어는 성경을 알고 있었고 그의 작품에 인용된 것을 보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죤 번연은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s Progress)>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이야기 책을 저술한 사람인데 한 크리스천의 삶을 비유적으로 서술한 이 책은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 셀러이다. 그는 단순한 우리 언어를 감동적인 능력을 가진 위대한 언어로 바꾸어 놓았으며 생생한 이미지와 실제적인 설교로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였다.

또다른 영문학의 거장은 <실낙원>과 <복낙원>의 저자인 죤 밀톤으로 그는 이 세상에 죄를 가저온 첫 번째 아담과 새로운 창조를 시작한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다. 그의 감동적인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였다.

촬스 딕큰스는 영문학의 또 다른 거장으로 예수의 비유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감동적이다. 탕자의 귀환을 내용으로 한 <크리스마스 캐롤>은 크리스천의 회심을 다뤄서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그의 마지막 작품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는 어린 독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치려고 집필한 것으로 신학적인 문제들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구세주를 향한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들 이외에도 서양문학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을 받아 명작을 남긴 크리스천 작가들을 얼마든지 거론할 수 있다.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 엘리오트, 테니슨 , 쏠체니첸 같은 유럽과 러시아의 문호들은 물론 미국의 작가들 가운데 헐만 멀빌의 <billy Bud> 나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 역시 그리스도를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데 일치한다.

이러한 점에서 서양 문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한다면 그 문학의 가치는 한참 떨어져 버릴 것이 분명하다.

크리스천들이 음악에 끼친 영향.

왜 서방세계에서는 지구상의 다른지역과는 다르게 음악이 발전하였나? 이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모든 문화권에서 음악은 신에 대한 예배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스와 로마문화가 서방의 조각과 미술과 문학 그리고 연극의 기초를 놓은 반면에 유대문화는 서양음악의 기초를 놓았다. 비록 아폴로 신전을 중심으로 소고를 뜯으며 노래를 하였다고 하지만 오늘날까지 권위있는 로마나 그리스의 음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직 연주를 묘사하거나 음악이론 또는 철학이 전해져 올 뿐 음악자체가 전해져 오는 것이 없어 우리는 그것이 어떤것인지를 알 수 없다.

초기 교회의 음악은 뿌리와 형태와 전통이 유대인들의 회당예배-히브리 회당의 시편과 송가 등-에 근거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음악은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고린도 후서 5장 12-14절에 솔로몬성전 헌당식에서 음악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무엘 전서 18장 6-10에서도 다윗이 어떻게 거문고를 타면서 초조한 자신의 마음을 달랬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수 역시 제자들과 함께 시편을 노래하였다. 선택된 성경구절들을 음악에 맞추어 단독으로 또는 응답송으로 그리고 주고 받으면서 불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형태의 음악이 수세기동안 교회에 그대로 전수되었고 그레고안 찬트의 기초가 되었다. 서방음악의 역사는 기독교의 교회음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레고리안 시대는 서방음악에서 첫 번째 “고전음악시대”이다. 기독교의 예배의식은 로마교회에 의해 제정되었는데 그때 살아남은 것이 그레고리안 찬트로 기원 590-604년 사이에 교황이었던 그레고안 1세에 의한 예배의식과 송가의 개혁을 가져왔다. 그는 다양한 예배의식들을 만들었고 교회는 거기에 맞추어 기독교문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었다. 그레고리안이 성령의 감동으로 직접 만든 음악들은 중세기에 널리 사용되었고 교회음악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때 음악은 그 기능으로 판단하였는데 영혼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능력을 가졌을 때 높이 평가하였으며 음악의 기능은 말씀을 돕는 역활이었다.

11세기 수도승 Guido of Arezzo 는 서방음악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베네딕트 수도승이였던 그는 현대음악 표기법의 아버지로 오늘날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음계를 만들고 표기법을 만들어냈다. 당시 교회밖에도 음악이 있었지만 교회음악이 주종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서방음악이란 것은 주로 교회의 산물이었다.

Guido of Arezzo 덕분에 11세기는 다른음악들과는 다른 교회음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중요한 변화는 작곡이 가능하게 되었고 표기법에 따라 질서와 규칙이 생겨났으며 동시에 여러음을 낼 수 있는 화음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시작된 서양미술은 서서히 발전하면서 중세기를 거쳐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장족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교회는 여전히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다양한 합창곡들을 소화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뮤지컬 류의 세속음악이 발전, 13세기에는 세속음악이 많이 발전하엿다.

르네상스기에 접어들면서 복음서의 가사와는 격리된 음악이 발전하였으며 기악과 세속음악이 널리 유햏하면서 민족적인 음악이 발달하였다. 이때에는 세속음악과 교회음악이 별 연관이 없었지만 이미 서방음악은 교회에 깊이 뿌리하고 있었다.
종교개혁과 함께 많은 음막들이 교회로 들어왔다. 마틴 루터는 노래부르기를 좋아했고 음악을 사랑했다. 그는 기악도 직접 연주했으며 회중들이 노래하기를 독려하였다. 루터 자신이 작사, 작곡하기도 하였는데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유명한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세속노래를 교회로 가져와 성가사를 부쳐 부르기도 했다. 루터는 회중들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으며 기독교 교리를 음악을 통해 익히도록 하였다.

요한 세바스천 바흐와 죠지 프레드릭 헨델과 더불어 바로크 시대가 절정에 이르렀다. 이들은 모두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그들의 대작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작곡하였다. 헨델은 1741년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메시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는데 25일 동안에 작곡한 그는 신의 계시 가운데 작곡하였다고 하였다.

캐톨릭신부였던 안토니오 비발디는 이태리 바로크음악의 거장이다. 붉은 머리칼 때문에 “붉은 신부”라고 불렸던 그는 천식때문에 신부역활을 하기가 힘들어지자 음악에 전심하기로 하였다. 지휘자로, 작곡가로 교사로 바발디는 지대한 공헌을 하엿으며 그의 오케스트라는 혁명적이었다. 비발디는 요한 세반스찬 바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많은 음악비평가들이 바흐를 역사상 가장 위대하 음악가라고 평가한다. 그는 현대음악의 아버지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현대음악이란 지난 수세기 동안의 음악을 의미한다. 그가 특별히 음악계를 위해 발명한 것은 없지만 훈련생들을 위한 교재와 노트북은 오늘날 까지도 교범이 되고 있다. 바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한 음악가였다. 그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재능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바치지 않는다면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바흐에 의하면 음악은 하나의 예배행위였다.

그의 영향력은 너무나 커서 베토벤을 위시해 하이든, 멘델스죤, 모찰트, 쇼팡,와그너, 브라함스 등이 그를 깊이 연구하였다. 바흐는 바로크 음악의 정상으로 “문학에 쉐익스피어가 있다면 음악에는 바흐가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들이 위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두 사람은 또한 진정한 크리스천들이기도 했다.
음악의 변화는 때로는 수 세기를 거치면서 천천히 진행된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세상에 위대한 음악의 풍성한 유산을 남겨주었다.

만약 예수께서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음악은 우리가 익숙해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일 수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지 않앗더라면 오늘의 음악은 어쩌면 우리가 중동이나 극동지방에서 듣는 것과 유사한 것 일수도 있다. 칸타타, 콘첼토 또는 심포니 같은 음악은 아에 나타나지 않앗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세속적이라고 하는 영화에 있어서도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세계적으로 위대한 예술에 영감을 주어 하나님을 영광돌리는 경우가 있다. 크리스천 테마나 인물을 주인공으로 강력한 인상과 감명을 준 작품들로 Ben-Hur, it’s Wonderful Life, On the Waterfront, The Sound of Music, A Man for All Seasons 그리고? Chariots of Fire 등이 있다.

제작자가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가장 위대한 예술의 테마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감명한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ed.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제11장 야만인들을 개화시키다.

-기독교가 도덕성에 끼친 영향-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맞게 생활하십시요(빌립보서 1장 27절)

지난 세기 런던 타임스에는 외국선교사들을 크게 공격하는 글이 실렸었다. 경험이 많은 한 여행자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교사들의 미개인들인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가 가혹했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야만인들을 개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개화된 미개인들의 태도는 대부분이 결국은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서구세계에서 개화되지 못한 종족들과 백성들과 국가들을 보다 개명한 인간으로 변화시킨데에는 기독교적인 신앙의 방법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후에 프랑스, 앵글로 색슨, 악명 높은 바이킹 등으로 알려진 프랑크를 위시해서 오늘날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기준을 적용하는데서도 알 수 있다. 역사상 어느 새력보다도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도덕의 기준을 높여 왔다.

유대교 발판

기독교가 윤리관을 만들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으나 구약성경의 윤리관을 널리 퍼트린 것은 사실이다.(마태복음 5장에서 7장사이에 나오는 산상수흔을 보라) 기독교의 윤리코드는 유대주의와 십계명에 근거하였고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면서 우리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을 주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언급한대로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로 성경 없이는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유대주의는 이 세상에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어느것 보다 더 고상한 도덕성을 주었으며 예수께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그것을 더욱 확장하고 전 세계로 전파하였다. 만약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은 지금보다 훨씬 저급한 도덕성 아래 살런지도 모른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옳고 그름에 대한 높은 기준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그것을 널리 퍼트려 많은 문화들을 좋게 변화시켰다. 역사상 수많은 야만인들과 잔인한 종족들이 그리고 문화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적극적인 영향으로 개화된 것이다.

고대 유대인들은 몰록, 바알, 아쉬토레스, 아나스 등과 같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이방인 사회에 둘러쌓여 있었다. 특히 몰록 신은 잔인하여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요구하였다. 바알신은 성(性)을 밝히는 신으로 제단에는 남창과 여창을 불러들였다. 고대 가나안의 신전들은 비행의 온상이었다. 그에 반해서 십계명은 히브리인들은 도덕적으로 고상한 민족임을 보여 주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크리스천들의 하나님이시요 고대이방인들의 신과는 대립되는 분으로 그는 거룩하시고 죄를 심판하는 분이시다. 고대 이방인들의 도덕적 기준은 최저의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의 도덕기준이 최악이라 한다면 다른 문화권의 도덕기준 역시 좋지 않앗던 것이 사실이다. 흔히 당시 문명국이었던 그리스의 도덕 기준은 다르지 않았느냐?고 질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리스 문명이 인류문명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도덕성에 관한한 그들은 고상한 실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스나 그 이후 로마의 신들은 무한하지도 않았고 절대적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개념이 없었고 그저 한계가 있는 그런그런 신들이었다. 그들의 신은 공포의 대상이요 협상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나 법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이교도들의 신들은 제멋대로 명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그들에게 규칙이나 법이란 것은 없었다. 사람이나 신이 지켜야 할 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쏘크라테스가 독배를 든것은 아데네의 법보다 더 높은 인간이 지켜야 할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교도 시대의 철학과 종교가 가져온 것은 회의주의와 불가지론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음산하고 암울한 것이었다.

야만인 군주와 잔인한 독재자들이 통치하던 거치른 시대에는 통치자들이 최고의 이교도철학을 교육받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인간으로 타락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네로황제의 소행을 통해 좋은 실례를 볼 수 있다.

예수가 오시다.

암울하고 사치스러우며 음탕하고 비도덕적인 세계속으로 흠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셨다. 초대가독교인들의 도덕성에 끼친 기독교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무엇보다도 간부급 신도들은 그들이 예수를 믿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장 알기때문에 그들은 신실하였다. 황제에 따라 강온의 차이기 있었지만 네로황제 때부터 예수 믿는 것은 교수형으로 규정되였다. 당시 크리스천의 도덕성은 어느 이교도들 보다 매우 높았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늘날 아무도 예수와 같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삶을 산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수 백만명, 수 천만 명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그들의 삶에는 변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초대교회에서는 딜레마에 처했던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 로마통치자들은 신자들은 그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아내나, 아이들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들을 데려와서는 그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을 때에는 비참하게 그들을 죽여버렸다. 초대교회의 도덕적인 확신은 너무나 강해서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 보다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야만인들을 교화함

기독교는 그리스와 로마뿐 아니라 로마를 공격하였던 이교도 사회에 까지도 퍼저나갔다. 이들 야만인들을 교화시키는데 직접 간여한 사람들이 크리스천 선교사였던 로마인들이었다. 이 야만인들의 다수가 게르만 종족으로 고드, 프랑크, 색슨족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 야만족들은 강인하고 호전적이었다. 로마가 몰락하기 전에 그들은 로마의 외곽을 공격하면서 제국의 변방을 계속 압박하였다. 이들은 타 민족을 ?정복하면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두 학살하였다. 그리고 적군의 무기와 장비까지도 파괴해 버려다. 이들의 철저한 학살과 파괴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의 보복은 또한 복수로도 이어져서 친척들에 대한 보복으로까지 철저히 행해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살해를 당하면 그 친척들은 그 사람의 먼 친척까지도 살해하여 보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야만인들의 생활과 문화속으로도 기독교는 서서히 퍼져들어가기 시작했다.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종족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하였다.

야만족인 영국의 앵글로 색슨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가운데 하나가 오거스틴이다. 오거스틴은 영국에 복음을 전파하러 떠나기 전에 그들의 야만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무척 망설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악함은 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되었고 그의 선교는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그것은 매우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이었지만 야만인들의 교화는 놀라운 위업이었고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승리였다.

우리는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실례를 특별히 험악했던 바이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칸디나아인들의 선조인 바이킹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자 약탈행위들을 중지하였다. 예수께서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들이 잔악한 행위들을 중단했을런지 장담할 수 없다. 9세기와 10세기에 바이킹들은 사냥꺼리들을 찾아다니는 모험가들로서 유럽의 연안들을 누비고 다니며 약탈을 일삼았다. 그들은 봄에 곡식을 심고 노략질을 다니다가 가을에 와서 추수하는 생활을 하였다. 약탈지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바이킹의 손에서 구원해 주십시요”하는 기도를 입에 붙이고 살았다. 수도원과 같은 종교기관들은 종종 보물이 쌓여있고 방위가 허술하기 때문에 이들의 좋은 약탈 대상이었다. 바이킹 전사들은 전투에서 너무 잔인햇끼 때문에 ‘미친듯이 날뛰는 놈’이란 뜻으로 berserk라고 불렀다. 무엇이 이러한 끔찍한 골치거리 인간들을 바꿔놓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변화시키셨다. 물론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새로운 개종자들이 옛 습관들을 못버리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복음이 바이킹들 속에도 침투하여 들어갔다. 결국은 언젠가 다수의 스캔디나인들이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리고 바이킹들은 잔인한 공격을 중단하였다. 사실 지금의 노르웨이, 덴막, 스웨덴 그리고 영국사람들의 많은 부분들이 이들 잔인하고 전쟁을 좋아했던 ?바이킹들의 후손이다. 기원 1020년에 놀웨이인들은 그들의 역사상 처음으로 첫 번째 의회를 소집하였는데 여기에서 Olav 왕은 기독교가 그 나라의 법으로 선포하엿으며? 동시에 피의 제사나, 흑마술, 유아제물, 노예제도와 다처제(多妻制) 등 “옛 관행들을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기독교는 많은 나라와? 문화와 종족들에게 고도의 윤리성을 고양시킴으로 세계문명에 큰 기여를 하였다. 물론 그들이 완전한 크리스천들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복음이 스며들어서 어느곳에서나 높은 도덕성을 고양시켰다.

근대의 선교운동

유럽대륙에서 기원 1000년 경을 전후해 ?우리의 선조들(백인들을 지칭)들이 ?야만적인 생활을 버리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갔던데 비해 지난 200여년 동안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러한 현상들이 벌어졌다. 교회와 선교기관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크리스천들을 세계 방방곡곡에 보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람을 잡아 먹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종족들이 사는 지역에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갔으며 이들 선교사들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성취하였다. 물론 이들은 교회가 모금한 돈으로 선교를 하였지만 이들의 88%는 영어권 사역자들로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다. 나는 이때의 선교운동이 인류역사상 가장 뚜렸하고 성공적인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윌리암 캐리나 리빙스톤이나 허드슨 테일러 같은 선교사들은 잘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못지 않게 수많은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사실 수많은 선교사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변화시킨 이야기들로 한 가지만을 예로 들려고 한다.

스코트랜드에 매리((Mary Slessor of Calabar,1848-1915) 가 있었다. 그녀는 10대에 개종하여 던디의 빈민가에서 일을 하다가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1876년 그는 나이제리아로 떠났다. 카라바 근처 오코영 오지에는 4백만명의 고약한 야만인들이 있었는데 얼마나 지독하던지 정부군들도 그 지역을 지나가기를 겁낸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식인종으로 극도로 타락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습관은 아주 비열하였다. 무당과 술주정뱅이들이 판을 치고 성이 난무하며 쌍둥이는 귀신의 작품이라하여 숲속에 짐승의 먹잇감으로 던져버려 죽게하였다. 주민의 절반은 노예로 혹사당했으며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은 노리개로 마음대로 강간, 고문,사형을 할 수 있고,특히 여성의 경우 그들의 수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이들의 경우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그저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매리는 죽도록 내버려두는 쌍둥이들의 어려움에 특별히 마음이 움직여 그들을 볼 때마다 데려다 보호하였다.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쌍둥이들은 만지기만해도 죽는다고 믿었었는데 매리가 죽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매리는 여러해 동안 아이들을 거두어 돌보아 주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랑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매리를 받아주었고 그녀의 주위에 몰려들었으며 처음 보는 백인인 그녀에서 손을 대어 만져보기도 했다.

그녀는 이렇게하여 그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했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그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원했고 하나씩 하나씩 각 존장의 수장들이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다. 오래동안 이 부족들을 괴롭히던 무서운 관습들(쌍둥이 살해, 유아제사, 아내와 노예 살해, 독극물과 끓는 기름으로 살해하는 것 등)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계속되던 타인종들과의 전쟁이 수세기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한번은 그녀가 한 종족의 전사들이 타 종족을 공격하러 출정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독충을 가진 뱀이나 풀들이 우굴거리는 숲을 맨 발로 달려가 그들이 조우하기 전에 이들 식인종들에게 전쟁을 멈출 것을 호소하였으며 그녀의 정성에 감복한 이들이 전쟁계획을 중단한 일도 있었다. 그녀의 목숨을 건 선교활동으로 수 천명의 이교종족들이 크리스천이 되었으며 그들의 나쁜 습관들을 버렸다. 사실 이 세상 많은 부분에서 도덕적 기준들이 기독교 때문에 극적으로 높아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드라면 카라바의 매리 스레서도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를 거부하는 현대

몇 년 전에 타임잡지는 “미국에서 윤리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하는 의문을 제게하였다. 그러한 의문은 미국의 신문, 잡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횡횡하는 범죄가 종업원들의 도적질로 15%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세일즈택스 1% 오르는 것과 주류에 붙이는 15%의 sin tax에 대해서 불평한다. 미국 사회 즉, 정부나, 상가나 은행 및 교회 등지에서 우리들이 찾아 볼 수 있는 스캔들은 내적인 도덕적 부패로 생겨나는 표면적인 뾰록지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역사상 다른 어느 세력보다도 도덕적인 기준을 고양하는데 기여하였다. 예수가 오지 않았더라면 십계명이 유대인들 밖으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수가 오지 않았더라면 앵글로색슨족인 우리의 대부분도 그의 조상들이 그랬드시 해골에다 술을 부어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스캔디나비아 사람들은 아직도 약탈하러 나서서 그의 조상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을 사로잡을 때까지 그랬드시 이웃들인 바이킹들을 약탈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예수가 오시지 않았더라면 식인종이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많은 인종들이 아직도 게걸스럽게 인륙을 먹고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게서 오셨다. 그리고 그는 도덕성을 높이고 이 지상의 생활을 그 어느때 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리셨다.

*D.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에서


 

제 10장 병자들을 고치다.
-기독교가 건강과 의료에 끼친 영향-

그리고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르니 예수께서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복음 12장 15절)

근대 기독교 선교 역사는 의료 보급의 역사라고 할만큼 선교사들이 가는곳마다 새로운 의술들이 소개되고 현대적인 의료시설 등이 세워지는 등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사회적인 의료발전에 끼친 공헌은 다대하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주장하는 생활습관이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기독교는 역사가들이 지적하듯이 병원과 같은 의료시설들을 설립하는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 세상에서의 생활이 목사들이나 신부들, 수녀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수많은 평신도들에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의료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넣어주었다. 서구의 의학이 종종 기독교의 선교사들을 통해 제3세계에 소개된 것을 보게된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더라면 의술이 지금같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같은 동정어린 사회가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대 유대인들은 성경(특히 레위기)에서 보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당시 이방인들보다 높은 수준의 위생법규를 지키도록 지시받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마술적인 조술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히브리 성경(구약)을 물려받은 기독교는 경전에 나타난 위생규범들을 적용,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는 아픈사람들에게 손을 얹져 고쳐주셨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지역에 있는 환자를 “원격조정”으로 고치기도 하였다.(마태 8장 5-13)? 그의 치유활동으로 예수는 병과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주님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예수께서는 너희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돌보아 주라는 뜻이었다. 지난 2천여년 동안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와같이 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소경과 귀머거리들을 만져주시니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병원들이 생겨났고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던 문둥병자들을 만져주시니 라병환자치료시설 들이 생겨났다. 모두가 에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실천 덕분이었다.

병원

예수 이전에도 환자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로마군인들을 위한 병원, 고대희랍신전의 에스쿨라피우스 같은 시설들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미신이 난무하였고 잔인한 자연환경 가운데서 치료보다는 불필요한 인력의 처리를 위해 죽음을 기다리는 시설에 불과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병원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실천이 환자들을 돕는 일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게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초기의 병원들은 병자들을 고치는 곳이라기 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수용소였다. 17세기의 프랑스 사전에 의하면 병원은 달리 생활수단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연명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잘한다해도 병원은 지저분한 곳이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크리스천인 루이스 빠스띠유가 세균학을, 역시 크리스천인 죠셉 리스터가 방부외과수술을 발전시키면서 병원이 보다 안전한 곳이 되었고 일반시민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빠스띠유는 “나는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믿는 퀘이커 교인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그당시 병원들이 아무리 더럽더라도 개의치 않고 현대식 병원 운동을 제기하였다. 예수를 빼어버린다면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현대식 병원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4세기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크리스천들은 성지를 순례하는 순레자들을 위해 심지어 오지에 까지도 병원(hospital)들을 설립하였는데 그것은 순전히 “자원한” 크리스천들의 관용에 의한 것으로 수용소만도 아니고 환자를 치료하는 곳만도 아니었다. 기원 325년 삼위일체 교리를 채택한 니케아 회의에서는 의료역사에 중요한 결의를 하였는데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병원도 적절하게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 바질(329-379)은 환자들을 돌보는데 초점을 맞춘 첫 번째 크리스천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성 제롬의 제자로 부유한 여성 크리스천이었던 파비올라는기원 400년 경 로마에 서방세계로는 첫 번째 병원을 설립하였다.

지금까지도 기능을 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병원은 기원 600년 경 성 랜드리에 의해 건림된 파리에 있는 Hotel Dieu(God)이다.? 이 병원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도 메디칼 센터라고 부를 수 있는 곳으로 환자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였다.

신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나사렛 예수 병원으로1524년에 콜테즈에 의해 설립되었다. 참으로 환자를 돌보는 건강에 끼친 크리스천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

미국에서도 첫 번째 병원들은 대부분 크리스천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병원(1751년 필라델피아에 세워진 The Pensylvania aHospital)이 생기기 이전에 구호소가 있었다. 크리스천들에 의해 세워진 이곳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위한 난민보호소와 같은 곳이었다. 미국에서는 18세기에 세워진 보호소들이 병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구호소는 1713년 퀘이커 교도인 윌리암 펜이 필라델피아에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가난한 퀘이커 신도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으나 1782년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나 돕기로 하였다.

<The Rise of America’s Hospital System> 이란 책을 저술한 로젠버그 교수는 초기의 미국병원들은 크리스천들의 소명의식에서 나오는 책임감에서 세워졌다고 하였다. 구제소라는 곳은 병균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들은 중세기의 병원들과 유사하였다. 대부분의 그곳 주민들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반면에 주로 크리스천이었던 개혁주창자들은 구제소와는 구별되는 가난한 환자들을 돕는 병원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기독교가 전파되는 곳에서는 언제나 환자들을 방문하고 고쳐주는 것이 첫 번째 의무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초기 미국의 병원에서는 육체적인 웰빙뿐 아니라 영적인 웰빙도 똑같이 중요시하여 성경을 모든 병동에 비치할 뿐 아니라, 예배참석을 의무화하고 음주나, 도박, 무절제 등을 일삼으면 가차없이 병원에서 쫓아내었다. 1888년 어떤 목사는 구호소나 병원 같은 기관에서 매일 하는 일은 단지 기독교 사상과 신앙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병원들이 안전하고 위생적인 시설이 되는데에는 “간호의 전문화”가 큰 역할을 하였는데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명받은 여인들이 수녀원 등에 들어가 오늘날의 간호사들의 전신이 되었다는데 큰 영향을 받았다. 캐톨릭 개혁자 성 빈센트 폴(1581-1660)은 성 루이스와 함께? <Daughters of Charity>를 설립하였는데 이때 수녀들에게 “여러분들은 가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찾아 도아주십시요.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 ..예수님께서 동네마다, 마을마다 찾아다니시며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들 크리스천 여성들은 병원에 약국을 운영하고 수술을 익히고 여자 병동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의사들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회의론자였던 볼테어도 이들 헌신적인 크리스천 여성들에 관하여 “이 지상에서 이들의 희생과 봉사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격찬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젊음과 성적인 아름다움을 병원에서 온갖 더러움을 제거하는데 바쳐 인간의 고귀함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현대 간호술의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 나이팅게일(1820-1910)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녀는 정통적인 신학을 갖지는 않았지만 신실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행동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왔으며 인류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17살 때 하나님이 불러 하나님의 사업을 하도록 자신을 부르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30대 초반까지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그녀는 1850년대 초 독일의 루터란 목사인 데오돌 프리드너(1800-1864.)가 설립한 카이젤월스의 공동체에 들어가 처음으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되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간호를 시작했고 1854년에는 크리미안 전쟁중 간호사들을 조직 출정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신학에 관계 없이 다양한 크리스천그릎의 여성들을 선발하였다. 전쟁터에 나간 나이팅게일은 간호라고 하는 고상하고 위대한 업무를 수행하였고 그녀는 ‘램프를 들고 있는 여인”으로 전설적인 국민영웅이 되었다. 1860년대 그녀는 런던에 성 토마스 간호학교를 설립하였고 이는 현대 간호학의 효시가 되었다.

여기서도 에수 그리스도가 없엇다면 나이팅게일도 없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요약하면서 “하늘나라는 내 안에 있지만 우리들은 그것이 밖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적 십자사- 19세기 중엽? 한 복음주의자였던 헨리 듀난(1828-1910)은 인류역사상 가장 인도주이적인 자선단체 국제적십자사를 설립하였다. 일찍부터 국제적으로 기독청년단체(ymca)를 설립하고 국제적인 기구로 발전시켰던 듀난트는 1859년 사업차 이태리에 갔다가 이태리의 통일전쟁을 목격하였다. 전투가 끝난후 그는 자원하여 근처 교회들에 수용되어 있는 부상자들의 치료에 참여하면서 조금만 미리 준비되었더라면 많은 사람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면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1862년에 <Memory of Solferino>란 책을 발간하였는데 여기에서 중립적으로 평상시에는 준비만 하고 전장에서는 순전히 전상자들의 치료만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국제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적극적인 호응에 힘입어 1864년에 16개국의 참여하에 국제적십자가 설립되었다. 인류역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진 것이다. 그후 적십자사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살려냈는데 이 기구 역시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적십자사의 상징이 가지는 의미는? 항상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 위대한 국제적 인도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145개국이 여기에 가입하였다.

듀난은 한때 사업이 부진하여 많은 빚을 지고 어려움에 처했었으나 1901년 첫 번째 노벨 상을 받는 등 명예를 회복하였다.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적십자가 현재 존재할 수 있을까?

현대선교사업
기원 33년의 평균수명은 28세였으며 1990년에는 62세 그리고 지금은 80이 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분야의 발전에 기인한 것으로 지난 한, 두세기동안 세계적으로 번져나갔던 의료선교진들에 의해 퍼져나갔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수만명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제3세계에서 수백만명에게 기본적인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때문에 크리스천들은 온 세계 오지에까지 수많은 병원들을 세우고 나환자 선교, 시각장애자 선교, 각종 불구자들을 위한 선교를 펼치고 있다. 수많은 크리스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선교사들이 각종병원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가면서 병들을 정복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런 의료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인간건강에 끼친 영향은 아무도 수치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발전된 나라에서들도 초기에는 병원이나 학교 그리고 공공의료시설 등은 기독교회의 관심과 활동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루스 터커는 의료선교는 예수그리스도를 가장 잘 증거해 왔다고 하였다. 20세기 기독교의 의료선교는 세계가 경험한 유례가 없는 가장 위대한 인도주의적 사업으로서 기독교 선교를 반대한 사람들도 비난할 수 없엇던 것이다.터커는 1935년 중국의 병원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었다고 하였다. 미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의료인들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기독자의 동기에서 의료를 선택했는지 정확히는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은 대단한 비율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스도은 가장 위대한 인도주의적 충동을 사람들에게 부어주셨다.

예방의학:신앙적인 크리스천의 생활

“최고의 약은 예방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는 수 억의 사람들에게 흡연, 음주, 난잡한 성행위 등으로 육체를 오용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성경은 우리의 육체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린도 전서 6:19)라고 하여 우리의 육체를 잘 관리할 것을 명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예방에 실패하는 것이 흡연으로 매년 40만명 이상이 흠연으로 인한 암이나, 스트로크, 뉴모니아, 독감, 결핵 등 각종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흡연으로 죽는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을 앞지르고 있다. 나는 수 천만명의 미국사람들이 크리스천이라는 신앙때문에 금연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수 천명의 사람들이 지금 예수를 믿고 금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의 영향을 받아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목사의 생각만이 아니라 의료진들도 동의하는 일이며 연구발표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의사는 “건강하려거든 교회에 나가라”고 권면한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를 따라서 위대한 의사들과 크리스천들이 의료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인도주의적 발전을 촉진하였다.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by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제9장 성적인 아름다움

기독교가 성(性)과 가정((家政)에 끼친 영향-

모든 혼인은 귀하게 여겨야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음란한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히브리 13:4)

 

<폼페이의 최후>라고 하는 역사소설에서 한 작중인물이 “이오네는 비행이 없었어-그녀는 너무나 순결했지”라고 이야기 한다. 이 한 문장가운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 사람들이 성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기독교가 성에 끼친 영향은 누구에게 물었느냐에 따라서 그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 고대나 현대의 쾌락주의자들은 기독교신앙이 성문제에 관한한 아주 끔찍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볼 때 성은 결혼이라는 구조안에서 거룩한 의식으로 승화되었다. 여기에서 일탈하면 그것은 잘못이었다. 교회가 성을 반대하는 이단들과 공존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고 교회의 중요 지도자들 가운데 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교회는 성에 관하여 전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기독교는 가정이 사회의 기본단위라는 관념을 지켜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교회는 수 백만의 사람들을 성병으로부터 지켜냈다.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서의 가르침에 순종하도록 하여 많은 불행을 예방하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결혼할 때까지 동정을 지킴으로 수많은 질병과 슬픔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성적인 질병이 만연하는 성적혁명의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이 옳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물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에 대하여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사랑만 한다면 어떤 행동도 허용된다”는 생각으로 그들은 인간은 드디어 밝고 따뜻한 성적 자유의 햇살을 받게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성이 금지된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에 관한한 더 이상 도덕적인 기준이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쩔것인가? 하나님은 죽었는가? 우리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제하실 권리가 없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도덕적인 계명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셨을 뿐 심판은 반드시 있다. 어느 시대에나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적 표준은 한결 같다.

성경은 성은 결혼이란 제도안에서 거룩하다고 가르치며 그래서 생명은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는 혼전 성생활과 간음, 강간, 동성연애, 수간, 근친상간 그리고 외설물 등을 정죄한다. 이러한 기준들은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우리 모두를 만드신 창조주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이러한 기준을 우리의 순간적인 향락을 위해 무시해 버릴 때 우리는 영생을 잃게된다.

사탄의 궤교와 역사의 교훈

사탄은 언제나 인간들에게 “내가 가르치는대로 하면 기쁨과 만족이 있고 성취와 기쁨으로 충만한 사랑”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처음부터 하던 이야기로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을 듣지 말라. 하나님은 인간을 좌절하고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한 입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하였으나 결국은 수치심과 죄책감과 병과 죽음을 얻게 되었다. 사탄은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해서 인간들을 유혹해 왔다.

사람들은 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믿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우리들은 “채찍을 거두고 모든 것들을 허용하라”고 지난 50여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범죄가 창궐한 세상을 만들고 말았다. 욕구를 억압하지 않고 허용하는 세계는 강간과 학살이 창궐하는 세상을 가져온 것이다.

역사가들은 위대한 문명들은 두 단계를 거치는데 첫 번째는 정상에 이르기까지 상승의 길을 오르다가 정상에서 잠시 지체한 뒤 하락의 길을 시작해서 결국은 망각으로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상 위대했던 제국들이 다같이 겪어온 길이다.

역사가들은 상승의 기간에는 이들 나라나 왕국들이 도덕적으로 무척 엄격하여 난잡한 성행위에 눈쌀을 지푸리며 심지어 법으로 제한하기도 하였다. 국민들의 엄격한 도덕적 규범 덕분에 국민들은 강하게 성장하고 국가들은 번성하였다. 일단 번영과 성공을 이룬 다음에는 도덕적 규범이 해이해지고 무시되었으며 결국은 폐지되었다. 사람들은 성적인 자유와 부도덕과 혼잡에 빠져들었고 국가는 망각의 심해로 빠져들었다. 하나의 예외도 없이 고대국가들은 이러한 길을 걸엇다

로마제국의 멸망사를 쓴 위대한 역사가 기본은 로마제국의 와해의 기본원인으로 제국안에서의 가정의 해체를 들고 있다. 가정은 국가의 근간이다. 야만족들이 로마제국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노략질하고 강간하여 가정이 붕괴되었을 때 가정은 개인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공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가정이 건강할 때 나라도 건강한 것이다.

고대의 향락적인 사랑

기독교 이전의 고대사회는 성적부도덕과 도착이 극에 달하였다. 간음,강간, 집단성교, 동성애와 근친상간, 수간 그리고 온갖 부도덕과 문란이 낙태와 유아살해와 함께 고대사회에는 넘쳐나고 있었다. 고대에서는 유아제물의 결과 신전은 “악덕의 장소”로 변하였다. 시리아에서는 여신숭배라는 명목아래 남창과 여창이 인정되었으며 그리스나 에짚트에서는 동성애가 성행했고 그들 종교의 일부가 되었었다.

고대 로마 역시 성적으로 죄가 관영하였는데 동성애가 성행했을뿐 아니라 남자들끼리 돈을 주고 남자를 사서 남창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간음은 너무 흔해서 별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실제로 잘사는 여자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 이혼경력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이런 사악한 세계에 태어나셨다

이러한 더러운 세계에 그리스도가 탄생하였으며 제자들은 그 복음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나아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선포하였다. 지금까지 이방종교의 가르침과는 다른 새로운 멧세지였다. 지금까지의 종교들은 사람들의 악행을 비난하거나 금하지 않았다. 도리어 신전창기와 같은 의식으로 문란을 조장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방세계를 향해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멧세지를 전파하엿다. 그리고 사람들도 거룩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완전히 혁명적인 멧세지였다. 현대의 쾌락주의자들이 기독교는 성을 억압한다는 말을 즐겨하는데 실은 부도덕을 억압하는 것은 사실이며 그점에서는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겠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을 때 그는 성의 신성성을 보호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지상에서의 가장 거룩한 관계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의 신성성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셨다. 그것은 생명의 출산을 순화하고 보호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결혼이란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이므로 결혼은 어떤 형태의 공격으로부터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이 계명은 단호하다. 간단하면서도 바꿀 수 없고 절대적이다. 논쟁의 여지가 없다. 구차한 이유도 없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는 이 계명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간음이 죄일뿐 아니라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도 죄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음란한 마음으로 여인을 보는자는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다”라고 하셨으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몸과 마음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고대의 문란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초기 교회들은 대체로 흑암가운데 봉화와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도덕적인 혼란가운데서도 크리스천들은 대체로 순수하였다. 서기 125년 기독교인이 아데니아의 철학자 아리스티데스는하드리안 황제에게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변호하는 글을 쓰면서

“그들은 간음이나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으며. . .그들의 아내들은 처녀같이 순결하고 그들의 딸들은 얌전합니다. 남자들은 내세에서의 보상을 바라보며 법에 어긋나는 성적인 접촉이나 불결한 행동을 자제합니다.” 라고 하였다.

윌 듀란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성습관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크리스천들은 유대인의 도덕적인 엄격함을 계속 지키고 있다. 독신이나 처녀성을 이상으로 삼고 있으며 결혼은 난혼을 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허용되고 있다. 그리고 고대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동성애를 엄격하게 비난한다."고 하였다.

성에 반대했던 이단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교회는 성에 반대했던 이단들에 만족해야 했었다. 교회안에서는-비록 결혼한 사람들의-성생활 자체를 비난하는 종파들이 생겨났다. 초기의 교회들은 이들에게 만족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잘못된 가르침은 대부분이 그 당시 사회의 타락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던 것이다. 즉 성이 너무나 문란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초기의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며 3세기 경에는 독신이 거룩함의 표시로 평가받기도 하였고 금욕을 위해 거세를 하는 것이 복음서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추는 방향을 바꾸었다. 방탕과 금욕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은 아니었다. 물론 교회 안이나 밖에 언제나 성은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성을 창조한 분이 하나님이시고, 창조하신 후 좋다고 하셨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들은 성은 더럽고, 악하고, 밥맛 없으며 선남, 선녀들은 그것을 생각지도 않고 입밖에 내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늘날도 그런 생각을 하며 그것이 크리스천의 태도라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성을 신성화하는 이교도의 생각에서 성을 비난하는 이교도의 생각으로 바뀐것일 뿐 크리스천의 바른 자세는 아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무지하거나 오해에서 성서적인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플라톤 사상에 근거한 이교도들의 견해를 받아들여 육은 악한 것, 그리고 영혼의 무덤일뿐, 모든 성적기능들은 악한 것이요 혼란과 혼돈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런가하면 현대인들은 또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 육신은 무덤이 아니라 온갖 즐길것이 가득찬 태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육신은 무덤도 아니고 태번도 아닌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말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성에 관해서는 쉬, 쉬하면서 점잖은 자리에서는 언급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성에 관한 지식은 어깨너머로 알 수 밖에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추가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면서 성에 관한 것은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갈 것이냐? 그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성에 관하여 매우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셨다. 남자와 여자의 성은 하나님의 창조물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좋다고 하셨다. 솔로몬의 애가를 보라. 성은 신성한 것이다. 성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것을 신성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식 날의 잠자리가 더렵혀지지 않게하기 위해서다.

간음이란 인간의 영혼에 거역하는 죄로서 그 결과 인간의 정신생활에 충격을 주는 죄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에 거역하는 죄이다. 그것은 부부간의 약속을 깨고 자녀들에게도 죄를 짓는 것이다. 그것은 이혼의 명백한 조건이 되고 수 백만 어린이들을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없는 결손가정에서 자라게 하면서 그들의 성장에 큰 문제를 제기한다. 간음과 그 결과는 국가와 사회에도 큰 해를 끼친다. 이 나라는 가정에 기초해서 세워졌으며 가정이 파괴되면 나라도 약하게 된다.

게이 혁명(gay)은 어떤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동성애는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요즈음 성경을 뒤집어서 그렇지 않다고, 예수는 동성애들을 결코 정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이 정죄한 것은 동성애적인 정욕이지 동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은 간통하는 정욕이나 사통하는 정욕(결혼 전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다같이 정죄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간음하는자, 사통하는자, 동성애자 들은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였다. 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받은 사람은 예외이며 2000여년 동안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러한 경험을 하였으며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를 증언하고 있다.

게이들의 주장가운데 하나는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심리학자들의 주장은 그러한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렸을 때의 인간관계에 어려움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치료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낳기에 바꿀 수 없다” 또는 “한번 게이면, 영원한 게이”라는 주장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그들 덕분에 지금도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변하고 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동성애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태도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들을 사랑하신다. 당신은 그들을 싫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사랑하거나 받아주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을 받아주되 그들의 행동은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덫에 걸려 꼼짝못한다는 기분들이다. 그들은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우리들이 그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끌어들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물론 회개가 따라야 한다 . 예수께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가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성적 혁명의 결과

동성애와 성적혼란을 받아 들인 성의 혁명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이 무었인가? 사회적, 심리적 피해 이외에도 오늘날 스물-여섯개의 성과 관련된 병들(STDs)이 번지고 있다. 미국인 5분의 1이 바이러스성 성병을 가지고 있다. 2001년 발표에 의하면 1천 2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성병에 감염되어 있다고 하였다. 세계적으로는 1억명 이상이 성병(gonorrhea)을 가지고 있으며 그외에도 syphilis, chlamudia, herpes같은 성병에 걸린 사람들이 1백만을 넘겼고 AIDS와 21가지 성과 관계된 병들이 퍼져있다고 했다. AIDS가 처음 나타났을 때 동성애자들과 사회를 놀라게 한 것은 우리도 목격한 대로다. 동성애자들의 수명이 일반 미국인들이 절반 정도라고 하였을 때 하나님이 분명히 피하라고 한 이상한 행동의 자연적인 결과가 비극적인 사실에 경악하엿다. 물론 하나님은 이러한 벌을 내리는 괴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인간의 삶을 제한하고 약화시킬 수 있다.

오늘의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사랑과 성욕을 혼동하고 거의 반대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성욕의 본질은 다른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욕망이다. 사랑은 그 반대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신 이 사랑의 원리"는 결혼에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였으며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만들려는 욕구를 촉진시켰다. 남편을 사랑하는가? 아내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의식적으로 바라는 것은 상대자가 가능한한 최선의,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부부들이 그들의 최고의 성경험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고 모든 것을 집중할 때 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신다 그러나 현대의 개화된 세속주의자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억압받아 왔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성적자유도 없었고 삶에서 성을 즐기지도 못하고 그래서 주님과 그의 방식을 빼어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Redbook 이라는 여성잡지에서 “현대의 ‘자유로워진’ 미국에서의 성생활에 관한 여론조사를 하였는데 10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참여하여 성생활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밝혔다. 놀라운 것은 성적으로 가장 자유로워진-가장 자유로운 현대여성이라 할 수 있는 여권주의자들이 성적으로 가장 불만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불만이 많은층이 색정녀라고 부르는 남자들이 보기에 가장 성을 밝히는 여자들인데 그녀들이 성적으로 불만이 많아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만족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종교적인 여인들은 그들의 삶에서 성적인 만족을 갖는다고 하였다. 좀 더 종교적이라하여 미국의 개화된 남성들이 성적으로 억압받고 산다고 생각하는 여인들이 미국에서는 가장 절정의 성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이 조사결과를 믿을수 있는가? 누가 당신의 행복을 관리하고 있는가? 악마인가? 악마는 당신이 각종 성병에 걸렸을 때, 16세 소녀가 임신했을 때 가장 좋아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의 길은 억압이 아니라 성취의 길이다.

이 장에서 결혼의 신성함을 논했고 잠자리의 거룩함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가 가정에 끼친 기여를 논했다. 무엇보다도 크리스천의 삶은 가정생활에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었고 그것은 미국의 수백만의 행복한 가정들이 증언하고 있다. 성경에 명시된 행복한 가정의 원리는 사랑스러운 가정의 청사진이다. 이러한 가정에서 그리스도를 제거한다면 많은 가정들이 붕괴될 것이다. 많은 결혼생활들이 예수께 대한 헌신과 상대방에 대한 헌신으로 치유되고 있다.

예수가 오시지 않았더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교도들과 같이 그들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할것이다. 만약 성병이 창궐해서 많은 인구들이 죽어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 마디로 만약 그리스도가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당신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by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제8장 기독교가 경제에 끼친 영향

-자유기업체제와 직업의식-

" 도적질 하지 말라, . . . 탐내지 말라"(출애급기 20:15,17)

피델 카스트로는 어떤 자리에서 별로 내켜하지는 않으면서도 큐바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을 존경한다고 시인하였다. 그들은 시간에 맞추어서 출근하고 직장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에는 전적으로 반대하지만 이 공산주의 독재자는 크리스천들이 지키고 있는 직업윤리의 유용적인 가치만은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이 직업윤리가 바로 그가 비난해마지 않던 미국에 번영을 가져온 직업윤리였다.

만약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수 억 미국인들에게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번영을 가져다 준 자본주의와 자유기업체제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장에서는 기독교신앙과 서방세계, 특히 미국이 누리는 번영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보려고 한다. 챔벌린은 그의 <자본주의의 뿌리>에서 “기독교는 그렇지 않은 환경가운데서도 자본주의 경향의 생활태도를 만들어내는 경향을 가졌다”고 하였다.

왜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구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왜 서구의 경제이념을 채택한 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는가? 만약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들을 살펴본다면 성경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잠언 23장 7)란 말씀대로 그들은 그들이 믿는대로 된것이다.

인도는 몇 천년동안 경제적으로 무척 침체되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믿고있었기 때문이다.인도의 힌두교는 현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다. 외적인 보이는 세계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비현실적인 현상의 세계를 변화시키려 하지 마라. 현실을 도피하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로 진보가 사라져 버렸다. 북 아프리카의 경우도 수세기동안 빈곤과 미신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력이란 무용한 것이요, 알라만이 할 수 있다는 이슬람교의 운명론은 그들의 발전을 가로막고 계속 침체상태에 머물게 했다. 인생은 고해로 악을 벗어날 수 없으며 해탈만이 희망일뿐이라고 가르치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동양의 국가들도 그들의 목표는 이 세상에서의 더욱 풍요로운 삶이 아니었다.

경제의 성서적인 기반

그러나 기독교에 기반을 둔 국가들은 특히 성서적인 경제해석을 적용한 지역에서는 확실히 달랐다. 래리 벅케트는 성경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경제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돈에 관한 언급만도 700여곳에 이른다고 하였다.
돈이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비유가운데 3분의 2에서 돈의 사용법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것만 보아도 경제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성경은 경제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0계명만 봐도 모든 선한 경제의 근본이 되는 자유재산에 관해 건전한 보증을 하고 있다. “도적질하지 말라”(출애급기20:15)는 계명은 사유재산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이다. 당신이 가진 것이 없다면 당신에게서 도적질 할 수가 없다. 나아가 십계명에서는 “네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고 네 이웃의 그 무엇도 탐내지 말라”(출애급기 20:17)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또 다시 자유재산에 대한 분명한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사유재산을 반대하는 사회주의를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가 땅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바칠 때 판 돈의 일부를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들고 있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이 이 이야기와 초대교회에서 자금을 모집한 이야기를 예로 들며 성경은 사회주의를 가르친다고 이야기 한다. 성경은 사유재산을 부인했을까요 아니면 가르쳤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그 땅이 그대로 있을때는 네것이 아니었더냐”(사도행전 5:4)라고 묻습니다. 팔기 전에는 네 소유였는데 판 후에는 네것이 아니드냐?고 묻는데서 베드로는 팔기 전에도 네것이었고 판 후에도 네것으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는데 기여한 또 다른 성서적인 기반은 노동이란 하나님이 주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일(노동)이란 피해야할 저주가 아니며 필요할 때에만 찾아서 할 여가활동이 아니다. 하나님은 타락 이전에 인간에게 일을 맡기셨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가 아니었다. 아담은 타락 이전에 에덴동산을 관리하라는 책임을 맡았다. 타락후에도 에덴동산을 관리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였다.

그리스도 이전의 고대국가들에서는 일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고 그것은 노예들에게 맡겼다. 아데네 인구의 3분의 2와 로마제국 인구의 반이 노예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노동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톱과 망치를 들고 노동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였다. 수 세기를 지나는 동안 복음이 전파되어 노예와 하녀들이 노동자 계급으로 변하였다. 어느 누구든지 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완수할 수 없다.

자유기업체제의 뿌리

서구문명에 번영을 가져다 주었던 개신교의 직업윤리는 주로 요한 칼빈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자유기업 역시 그 기원이 제네바의 칼빈에게로 돌아간다. 잘 아는대로 요한 칼빈은 지본주의의 기초자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맑스 웨버는 1904-1905년에 그의 유명한 책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위 정신 “을 출판하였는데 그는 사업가들이나 잘 훈련받은 일꾼들 그리고 자본주들 대부분이 개신교도라는 관찰에서 시작하여 칼빈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추적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기를 콘트롤하고 자신의 생활을 진지하게 통제하는 기본 동기는 비관적인 칼빈주의 교리를 신봉한 자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웨버는 또한 ”칼빈주의는 경건주의보다 강직한 율법주의와 자본주의 사업가의 속물적인 능동적 기업활동이 보다 밀접하게 연관된듯 하다”고 하였다. 칼빈주의자들은 웨버가 말하는 “세상적인 금욕주의”을 실천하였고 그것은 자본주의 혁명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칼빈주의의 추종자였던 퓨리탄들은 부(富)의 달성을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로 소명에 따른 노동의 대가라고 보았다.

언스트 트러엘치 역시 모든 자본주의는 요한 칼빈 때문이라고 보았다. 웨버와 트로웰치같이 자본주의외 칼빈주의에 반대한 역사가들은 요한 칼빈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보았다.

칼빈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가 이태리의 북부 도시들과 독일의 남부 도시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칼빈은 처음으로 물질의 중요성을 인정한 신학자였다. 그는 돈이란 무익하고 비생산적이라는 아리스토틀의 철학이나 캐톨릭의 주장에 반대하여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실 돈은 무척 생산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캐톨릭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고액의 이자를 부과하는데 반대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이자로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황금율을 업무거래의 기준으로 삼으라고 제시하였다.

칼빈은 수세기동안 속박되어 있던 돈을 자유롭게 하였고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돈의 위력을 촉발시켰다. 미국에서 자유기업제도가 세계가 만들어진 이래어느나라들보다도 더 높은 생활수준으로 향상시켰다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미국에서는 복지헤택을 받는 사람들도 세계 어느나라 사람들 보다도 잘 산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미쳐 모르고 있다.

칼빈은 개인의 재산권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서적인 청지기 개념을 가르쳤는데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돈을 관리할 뿐 아니라 언젠가는 그 돈에 대한 정확한 계산을 하게 된다고 가르쳐 책임의식을 높였다.

개신교회의 직업윤리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되면 그들은 종종 번영하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첫째로 불안해 하지 않게된다. 사람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제한하는 걱정이 사라진 것이다. 성경은 “걱정하지 말라”(빌립보 4:6)고 말씀하신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들이 과업을 수행하는데 가외의 힘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지지와 도움을 받게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로운 지혜와 아이디어를 얻게된다. “만약 지혜가 부족하거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께 요구하라(야고보 1:5)
넷째는 구속자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죄절할 때에도 계속 참아내며 계속할 힘을 주신다.
다섯째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것이 장로교회의 모토이다.

이상의 다섯가지가 퓨리탄 직업윤리, 개신교 직업 윤리, 기독교 직업윤리라는 것이다.

구속자께서 이런 능력을 주시니 믿는 사람들은 실제로 보다 생산적이 된다. 그들은 이 세상의 어느 것 보다도 좋은 것들을 생산할 수 있다. 그들은 보다 많은 것을 줄 수 있고 저축할 수 있으며 투자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건립된지 100년만에 이세상 어느 국민보다도 더 많은 저축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미국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투자를 많이 한다. 미국의 노동자나 농부들은 농기구에 많은 투자를 하여 그것들을 잘 활용함으로 어느 국민들보다도 많은 생산율을 올리고 세계에서 최고수준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국부론

아담 스미스는 미국이 탄생한 1776년에 <국부론>을 집필하였다. 특히 칼빈을 위시한 종교개혁자들은 자유기업이 지켜야 할 원칙들 몇 가지를 강조하였는데 그에 기초하여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집필하였다. 아담 스미스의 주요이론은 “보이지 않는 손”이란 단어에 요약되어 있는데

모든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능한한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하여 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만을 얻으려고 의도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그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는 어떤 목적을 촉진하도록 이끌려 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서 그는 종종 그가 실제로 의도했던 것 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시장경제는 계획경제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스미스의 관찰의 진실성을 경험할 수 있다. 계획경제는 인간의 죄악성을 고려하는데 실패함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유재산권과 자유기업은 오늘날 대 기업이 그러하듯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자유기업의 결실

몇 세기 전에는 프랑스 사람의 5분의 4가 그들의 수입 90%를 식료품을 사는데 소비하였다. 유럽 역시 수천년 동안을 그러한 형태로 유지되었다. 현대 아프리카 역시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1780년 독일에서는 1000명 미만이 연수입이 $1000 이상이었다. 드디어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재점화되고 아담 스미스에 의해 분명해진 성서적인 원칙이 미국에서 실현되었다.

최대의 성장은 1776년 이래 시작되었는데 1800년부터 1850년 사이에 인프레이션으로 임금이 4배나 올랐다. 그리고 1850년부터 1900년 사이에는 인프레이션이 끝나고 다시 4배가 올랐다. 그 결과 19세기에는 실제로 부와 수익이 16배가 늘어났다. 세계는 그러한 성장을 경험한 적이 없다.? 이것은 영국에서 실현되었고 미국에서는 더 높아졌다. 이것은 자유기업이 가장 자유로히 작용되던 때이다.

한 국가의 자본형성을 방해하는 것은 그 나라를 역경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그곳에는 중세기와 같이 사람이 장기를 끌면서 겨우겨우 연명해 나간다.
예수께서는 ”너희 가운데 위대하게 되고저 하는 자는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태복음 20:26)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재능에 관한 비유에서 예수게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들의 능력과 의욕에 따라 일정량의 부를 주셨는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경제공황가운데서도 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최고의 물질적, 경제적 문명을 이룩한 우리들(미국이)이 계속적으로 일반인들의 생활수준을 계속 하락시키는 사회주의 제도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사회 복지: 기독교의 이단자

20세기에 들어와서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기독교의 이상을 강제로 수행하도록 하여 우리들의 번영을 잠식하는 것을 보게된다. 우리들은 이런 조치는 번영을 잠식하고 생산성을 저해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해치는 것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믿는다.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는 인간성과 경제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아주 잘못된 실패작이라고 믿는다. 우리나라는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갖고 있다. 메시야콤프렉스 때문에 오늘날 정부는 교회가 할 일을 선점해서 빈곤의 문제를 정부보조 프로그램으로 대처하려고 하였다. 위대한 사회는 위대한 부채를 창출하였다. 이 프로그램들은 막대한 경비가 필요하고 비능율적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그들이 불우하고 속수무책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도와야 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품고 있다. 그런점에서 우리들은 사회복지는 “기독교 이단”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돈을 내거나 희생해서 도와주기 보다는 법을 통과시켜서 정부가 다른 사람들의 돈을 걷어들여 이러한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에 충당하기를 원한다. 로빈훗은 기독교세계에서 나온 전설이다. 부자들에게서 뺏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준다는 로빈 숫의 행동은 기독교의 이단이다. 복지국가는 비대하여 비능율적인 로빈 훗이다.

우리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물론이다. 개체교회들과 개인자선기관, 가족들이 이런 사람들에 관심을 가졌고 지역의 자선기관들이그런사람을 도아왔다. 이런 방법이 미국이 지난 300여년 동안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온 방법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정부개입의 사회주의적 방법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로 결정하였다.

성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하였을 때 그것은 세금으로 내는 “기부”가 아니라 항상 교회안에서의 자발적인 기부를 말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제가 주일아침 설교에서 “성경은 사회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자 예배후에 한 여인이 저에게 “저는 목사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세요, 어떤것에 동의하지 않으시지요?”하고 되묻자
그분은 “저는 우리 형제들은 지키는 자라고 믿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도 그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같은 믿음을 공유하고 있군요. 다른 것은 저는 “우리는 우리 형제를 지키는 자들”이라고 믿는데 자매님은 “정부가 우리 형제들을 지키는 자”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점이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다른점입니다.

버울은 한걸음 더 나가서 ”일하기 싫은자는 먹지도 말라.(데살로니카 후서 3:10)고 하였다. 요즈음 그런 말을 들어본지가 오래됐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인간들은 죄성이 있어서 누구나 게으름의 경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공동체가 가난을 벗어버리고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 말씀은 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성경은 절름발이나, 소경이나, 환자나 노약자, 유약자들에게는 특별한 배려를 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구절의 본의는 “일하기를 원치 않는자는 먹지도 말라는 것이다. “

사회주의 실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이미 사회주의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아이로니하게도 자유기업의 땅인 미국이 사회주의로 시작되었다.
윌리암 브랫포드가 프리머스에 도착하여 필그림 농장을 시작했을 때 그배의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자본을 댄 상인들이 만들었던 사회주의적 원칙을 따르게 되었다. 그 규정은 호의적인 아이디어로 되어있었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는 처참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공동체 소유로 하였고 사람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일했으며 그것은 행복과 만족과 번영을 가져다 주었으나 그것은 1620년 시작할 때만이었다. 첫 해에 흉년이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사하였다. 다음해에도 흉년이 계속되어 이주민의 반 이상이 사망하였다.

1623년 브랫포드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사회주의적 실험을 포기한다고 선언하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량의 농토를 지급하여 농사를 지어 가족들을 부양하도록 하였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말라”는 원칙이 적용된 것이다. 밭에 활기가 넘쳐났다. 아프다며 꾀부리던 사람들이 밭으로 나가고 여자를 밭에서 일하게 하는 것은 폭군이라는 전통을 깨고 여자들이 밭으로 나가 일하고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밭에 나가 일하자 그해 농작은 풍년을 이루었다. 풍성한 수확으로 풍성한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들이 사유기업으로 변화하지 않았더라면 필그림들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사회주의를 폐기했을 때 감사절이 생겨났고 미국에 사회주의가 다시 생겨날 때 미국의 감사절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이다.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대부분은 그저 보통의 경제수준을 근근히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D.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ed.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Thomas Nelson Publisher

 

 


 

7장 기독교가 과학에 끼친 영향

하나님을 탐구하며 그의 사상을 사유하기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셨다. (창세기 1장 28)

이 시대는 과학이 세계를 지배하는 과학의 시대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들은 증기기관차나 전기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이야기 한다. 보다 적절하게 이야기 한다면 지금은 핵의 시대이며, 원자의 시대이고, 전기 시대이며 컴퓨터 시대이고, 정보화 시대요 우주 시대이다.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서 한 마디로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가 세계에 물려준 축복을 언급하는 책에서 과학에 관하여 한 장을 배당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종교는 항상 과학의 적(敵)이지 않았든가?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17세기에 큰 진전을 보인 과학혁명은 대부분이 부분적으로 개혁기독교에 의해 시작되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만약 예수게서 태어나지 않았드라면 과학은 아마도 태어나지 못했을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이 과학혁명에 의해 발전한 방법들을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드라면 어쩌면 당신은 이 책을 전기불 밑에서 읽을 수도 없고,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이나, 텔레비젼, 라디오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컴퓨터, 마이크로칲, 비행기나 로케트도 없었겠지요. 만약 그리스도가 태어나지 않앗드라면 우리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사고방식을 생각하기”시작했을 때 나타난 과학적인 혁명을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어떻게 기독교가 현대과학을 출생시켰는가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프랜시스 쉐퍼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와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현대과학은 기독교세계관에서 태어났음을 강조하였다. 화이트헤드는 널리 알려진 수학자요 철학자이고 오펜하이머는 1947년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at Princeton에서 디렉터가 된 후 과학과 연관된 많은 주제들에 관해 저술한 학자이다. 화이트헤디는 (1925년에 집필한 Science and the Modern Worlld에서) 기독교는 “중세기에 하나님의 합리성에 관해 주장함으로” 현대과학의 어머니”가 되었다라고 언급하였다.

과학은 무엇이고 과학에 대한 기독교의 견해는 무엇인가? 라틴어에서 과학은 단지 “지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연역과 추론,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종합하여 16세기에 이르렀고 과학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는?

한동안 회의론자들과 다양한 불신론자들에 의해 과학과 기독교는 상반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과학과 기독교는 반대되는 것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크리스천과 같은 미신적인 종교인이 되든지 과학자가 되든지 하나를 선택하여야 할 뿐, 둘을 같이 공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 십년 동안에 생태학의 출현과 1960년 70년대의 새로운 히피세대의 출현을 거치면서 과학은 우주를 파괴하는 프랑켄스타인으로 지탄을 받게되었다. 이들에 의하면 과학은 신성한 암소로 존경받기 보다는 모든 것들을 파괴해 버리는 옹기장이 점포의 황소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환경론자들은 인간들의 모든 질병들을 과학의 탓으로 돌렸다.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견해 역시 변하였다. 필자가 탐구해본대로는 불신자로서 생태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쓴 책들은 대부분이 우리가 지금 과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기독교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과학은 기원전 600년 경 생명의 존재와 자연계의 질서에 관해 비신학적 해답을 추구하기 시작했던 희랍철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 희랍인들은 현대과학이나 기원전 100년 경의 핵시대나 우주시대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희랍인들은 자연세계를 장대한 희랍의 이성에 맞도록 단순하게 보는데는 성공했지만 세계를 이용하거나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들은 자연이나 우주의 흥미로운 사실들이나 법칙을 단순히 이해하는데는 도달했으나 “과학적인 시대”를 열지를 못했다는 말이다.

말콤 지비스 박사는 그의 <The Scientific Enterprise and the Christian Faith>에서 희랍적 사고와 특별한 기독교의 흐름-소위 말하는 개혁신앙-이 합쳐져서 현대과학을 탄생시켰다고 하였다.

과학은 희랍에서 발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히브리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에게 자연세계는 시편저자의 말대로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내고 궁창은 하나님의 솜씨를 보여준다.”(시편 19:1)하여 단지 창조자를 찬양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과학은 무슬림 종교의 진원지인 아랍인들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다. 물론 북 아프리카의 아랍권에 의해서 아리스토틀의 저서들이 보존되어 오다가 기원 1100년대와 1200연대에 유럽에 다시 소개되기는 했지만 아랍사회가 실제적인 과학을 만들어내지는 않앗다. 왜냐하면 무슬림 종교를 지배했던 운명론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운명론적으로 결정이 되어 있으므로 자연세계 안에는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바꿀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중남 아프리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정령 숭배자(애니미스트-우주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들은 자연세계를 실험의 대상으로 감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과학이 태어날 수가 없었다. 힌두교도들의 인도나 불교도들의 중국에서도 과학은 생겨날 수 없었는데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다같이 물질적인 세계는 비현실적인 것이고 오직 진정한 현실은 세계의 영혼으로서 가장 위대한 깨달음은 물질적 세계는 실재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재가 아닌 것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과학은 기독교가 나타나서 몇 차례 다른 시련을 거쳐서 16세기에 현대과학으로 알려진 현상을 만들어 내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과학으로 발전하는데는 몇가지 기독교의 기본 가르침이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합리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었다. 이것은 과학적 법칙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과학은 오늘날 유행하는 철학적 견해에서는 생겨날 수가 없다. 그동안 실존주의 철학이서양에서는 유행하였는데 그것은 비 이성적이었다. 과학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비 이성적인데서는 발전할 수가 없다. 과학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합리적인 분이시고 합리적인 세상을 만드셨다는 기독교적 개념에서 파생되었다.

기독교가 각광을 받게 한 또 다른 개념은 창세기에 나오는 “문화적 위임”으로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크리스천들은 16세기에야 처음으로 지상의 모든 영역들을 지배하는 그리스도의 주권의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그리스도가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시요, 왕이시면,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와 이웃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해를 위한 대상이 아니요, 경배의 대상만이 아니며 동양사상에서와 같이 부정되어야 할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위대한 창조자의 창조물로 여기에 있으며 그의 영광과 선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 다음 과학으로 이끈 기독교의 기본 개념은 죄에 관한 것으로 죄관(罪觀)이라 하겠다.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이 분명해졌고 인간의 죄성과 타락은 처음으로 심각하게 파악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마음을 포함해서 인간의 모든 기능들이 타락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은 희랍인들이 자랑스럽게 자랑했드시 모든 진리를 깨닫기에 믿을만한 것이 못됀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자신의 욕망에 유리하게 왜곡하는 인간의 죄성이나 성향은 실험을 통해 그것을 도와줄 이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잘 아는대로 과학은 이성과 실험과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합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합리주의는 실험에 의해 입증되면 된다. 그러나 크리스천들, 특히 칼빈주의 크리스천들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에 특히 민감하여 인간의 실험마저도 죄악된 결론으로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항상 성경의 빛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고 하였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책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는데 하나는 자연이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이라는 책이다. 이것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라고도 한다.

과학적 방법론을 개발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내 앞에는 두 권의 책이 놓여 있는데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성경이라는 책을 보고 다음은 그의 능력을 표현해 주는 창조라는 책을 연구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 두 권의 책들을-창조와 창조자의 기록된 말씀- 깊이 연구함으로 현대과학이 생겨나게 되었다.

현대과학의 뿌리, 기독교

프랜시스 쉐퍼는 현대과학은 아리스토틀의 우주관에 대한 과학적인 의문이 제기되었을 시작되었다고 본다.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에서 성패가 걸려있던 것은 무엇인가? 많은 현대의 세속주의자들은 그것은 성서적인 우주론이라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코페르쿠스에 의해 흔들렸던 핵심은 아리스토틀의 우주론이었다. 아리스토틀의 생각을 성경에 대입함으로 교회는 1632년에 갈릴레오를 잘못 이해하고 견책하였다. 쉐퍼는

“로마 교회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1564-1642)를 공격했을 때 그들의 가르침에 실제로 성경과 상반되는 주장이 포함돠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물론 교회당국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리스토틀의 기본요소들이 정통교회의 한 부분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며 갈릴레오의 생각이 그들과 분명히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와 성경의 양립을 옹호하면서 그래서 재판을 청구했던 것이다. “라고 하였다.

최근 로마캐토릭교회는 갈릴레오를 파면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교황은 과학은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것이라고 확인하였다.

개신교회가 현대과학의 발흥에 기여하였다는 분명한 증거들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루터교인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De Revolutionibus> 출판에 보조금을 주고, 보급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무어 교수에 의하면? 16세기 루터교인들 가운데는 과학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이 많으며 17세기에는 과학의 발전을 이룬 사람들 가운데 칼빈주의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과학의 발전을 선도한 기구가운데 하나는 1660년 설립된 런던의 왕립자연과학증진소사이어티로 대부분의 이 기관 멤버들은 크리스천들이었다.

무어는 왜 프로테스탄티즘이 “현대과학의 탄생을 촉진하였는가?에 대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떤 역사가들에 의하면 개신교는 모든 믿는자들의 사제직을 강조하는데 그것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과학개척에 앞장섰던 크리스천 과학자들

이때의 위대한 크리스천 과학자로 요하네스 키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를 들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사상을 생각했던” 과학자였다. 한 과학자가 자연을 탐구할 때 그는 하나님은 자연에 어떤 법칙을 심어 놓으셨는지를 찾아보았다. 키플러는 “우리 천문학자들은 자연의 책에 관한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사제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다음 경건한 과학의 개척자로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을 들 수 있다. 그는 수학과 확율과학을 쇄신하고 처음으로 작동기압계를 발명했을 뿐 아니라 특히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프랑스의 쟌센파의 독실한 신자였다. 파스칼의 명상록 “팡세”는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책이다. 파스칼은 그의 과학적인 마음과 탐구정신으로 기독교를 변증하려고 하였다. 파스칼은 “신앙은 감성이?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발견한 것들과 상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상충되지 않았고 단지 초월할 뿐이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사상을 생각했던 위대한 과학자로 아이삭 뉴톤(Issac Newton, 1642-1727)을 들 수 있다. 그는 한때 회의론에 빠지기도 했지만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였고 과학과 함께 수많은 신학서들도 저술하였다. 그는 유니타리안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을 고백한 신자였다. 그는 그의 저서 <Principia>에서 태양과 항성과 행성들로 이루어진 이 가장 아름다운 기구들은 강력한 지능을 가진 존재의 도움과 인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고 고백하였다. 뉴톤은 또한 “나는 성경은 영감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본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나는 성경을 매일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무신론자들이란 분별없는 자들로 태양계만 보아도 지구와 태양이 적당한 양의 열과 빛을 받기위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우연히 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크리스천이면서도 위대한 과학자로 마이클 파라데이(Michael Faraday, 1791-1861)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전기분야에서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전자감응을 발견하고 발전기를 발명하였다. 그는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에는 우리도 이야기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에는 우리도 침묵한다”고 할 정도로 성경중심의 교회에서 깊은 신앙생활을 하던 과학자였다. .

창조와 진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 고로 창조론자들은 과학자가 아니라고 하는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한다. 사실은 창조론자들은 이 세상에 과학을 가져다 주었고 창조론자들은 과학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과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과학자가 아니다? 창조론자들이 과학을 발명했다! 그러므로 창조론자들은 과학자가 아니라거나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된 주장일 뿐 아니라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창조론은 진화론이 그러하듯이 과학의 법칙을 범하지 않고 그것들과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성경이란 거울을 던져버린 과학자들.

칼빈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은 장관(壯觀)으로서 만약에 우리가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인 자연의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불행하게도 현대과학과 오늘날 사이에서 많은 과학자들은 성경이란 거울을 집어던지고 많은 왜곡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처음에는 과학이 신학의 시녀로 간주되었으나 창조의 연구는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경배하게 하였다. 수많은 과학적인 발명을 한 아이삭 뉴톤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과학과 신앙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며 신학에 관한 많은 저술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대로 지난 세기 특히 진화론이 출현한 후로 과학은 기독교신앙에 적대적인사람들의 손에 들어 갔고 기독교에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전락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기독교신앙에 치명적이었던 진화론이 빅토리아시대 영국에서 증명되었다. 다윈의 이념적인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영국에서는 복음주의가 번성하였다. 선교사들은 전 세계로 퍼졌다. 다윈주의가 나타나면서 수많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이 그들의 복음주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였는데 그것은 과학이냐? 아니면 성경이냐? 하는 잘못된 이분법때문이었다. 기독교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영국의 기독교가 큰 타격을 받은데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다윈의 이론이 가장 큰 요인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기독교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과학은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간주한다. 왜 성경을 믿지 않는가고 물으면 그들은 성경은 거짓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론의 중심에는 인간의 창조, 세상의 창조 등 생명의 창조에 관해 성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진화론이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진화론이 창조론을 뒤집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성인 과학자들은 성경은 진실이 아니라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데 성경과 과학에 관해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들은 상충되는 것인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과학과 성경의 완전한 조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데 그것은 과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시와는 달리 과학은 항상 진리를 찾기위해 진보해 나가는 것이다. 과학에서는 최종적인 또는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항상 더 알기위해 추구하며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가설로 그 가설을 대치하는 탐구의 연속인 것이다.

지난 150여년 동안 과학의 각 분야에서 제시되었던 다양한 가설과 이론들을 추적해 보는 것이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며 지난 50여년 동안에 쓰여진 책들 가운데 반 이상이 지금은 폐기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많은 이론들과 가설들이 진리인듯 제시되었다가는 다른 이론의 대두와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이 과학이다.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종교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신앙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믿으려고 한다. 그러나 역사나 과학분야에 관해서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은 그 시대나 자신의 한계안에서 이야기 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설명은 그럴듯 하지만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역사와 신학을 흔히들 지식의 3분야로 구별하지만 실은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것은 신학적인 문제인가? 역사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과학적인 문제인가. 이것은 3가지에 다 걸리는 문제이다. 목격자들이 증언한 역사적인 문제인 동시에, 생리적으로 입증하여야 할 과학적인 문제이며 동시에 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과학적, 역사적 면을 빼어버린다면 남은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교과서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만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것은 과학교과서도 아니고 종교교과서도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러나 아주 초보적인 형태로 과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독교와 과학에서의 창조론 사이의 연관성을 보지 못하는 주요 이유는 기원에 대한 오해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진화는 입증된 사실이라고 들어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거짓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들은 과학적 방법의 기본교리는 관찰할 수 있고 확인할 수 있고 반복될 수 있으며 위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화론도 창조론도 과학의 엄격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것도 객관적인 과학의 영역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장에서 다루려 한 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이 아니라 기독교와 현대과학의 창조론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결 론

예수가 오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과학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잠시 책을 내려 놓고 주위를 둘러 보라. 방을 환희 밝히는 전깃불, 전기 시계, 스테레오, TV, 컴퓨터. 예수가 오시지 않았드라면 이러한 것들은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위성도 없고, 비행기도 없고, 일하러 가려면 어쩌면 걸어가던지 당나귀나 낙타를 타고 갈런지도 모른다.전기난로나 전자레인지로 아침을 준비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것들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가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과학의 이기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헤택을 보지못하고 살런지도 모른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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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기독교가 시민들의 자유에 끼친 영향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유-

주는 영이시니, 주님의 영이 거하는 곳에 자유함이 있나니라.-사도 바울(고린도 후서 3:17)

나는 기독교가 인간의 자유와 시민들의 자유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으셨드라면 자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혹시 존재했다 하드라도 그것은 엘리트들의 전유물로나 존재해 왔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방자이시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자유는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 “주의 영이 거하는 곳에 자유가 있다” 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이 말씀이 들어간 곳에서는 독재자들이 떨고, 폭군들이 권좌에서 쫒겨났으며 백성들은 자유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향유하고 있는 대단한 자유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앤드류 잭슨은 “이 책(성경을 의미)이야 말로 우리의 공화국이 세워져 있는 반석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책이 사라지면 당신들이 즐기고 있는 자유 역시 사라진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성경의 주제는 자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가 자유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구약성경은 인간이 타락하여 노예가 된 이야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한 이야기, 에짚트에서의 노예생활 그리고 430년의 노예생활에서 구원받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약속의 땅에서 우상숭배에 빠져버렸다가 바빌로니아에 끌려가 70여년동안 노예생활을 하다 다시 구원받은 이야기가 계속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위대한 구원자요 해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억압에서, 노예생활에서, 갇힌데서 자유케 하려고 오심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나라가 보유한 기독교 유산의 흔적들에 반기를 드는 소위 “교회의 심판관”들인 ‘시민자유주의 지상론자’들의 아이로니는 시민의 자유는 기독교 신앙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기독교에 기초한 나라의 시민들만이 누리는 시민의 자유라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유대-기독교 신앙은 종종 우수꽝 스러운 것으로 미디어에 의해 비하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운운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의 선물을 받은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인 전통덕분에 아랍권이나, 이스라엘이나, 중국 등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언론의 자유, 정확히 말해서 시민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시민자유 옹호자였다. 기독교가 시민의 자유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히브리인의 역사를 다룬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들과 계약을 맺음으로 그들 가운데 들어와 그의 명령을 내리셨다. 이 명령가운데 시민의 자유가 포함된 것이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생명을 보호하였다. 도적질 하지 말라는 명령속에 사유재산을 보장하라는 명령이 들어있으며 간음하지말라는 명령가운데 결혼을 보장하고 그것을 제도로 보호하라는 명령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히브리인들에게는 자유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 세계의 인구와 비교할 때 극소수에 불과하였고 이방세계에 의하여 무시되어 왔었다. 그리스도가 이러한 자유를 확장하셨고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소유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는 지상의 모든 나라에 퍼져나갔다. 순수한 그리스도의 멧세지가 세계를 정복하게 되었을 때 자유가 꽃피고 넘쳐나게 되었던 것이다.

계약과 자유의 역사

역사가 울프 박사는 헌법적인 정부와 자유는 아브라함과의 계약에서 시작하여 미국헌법에서 그 절정에 이른 하나님에게서 전수되어온 전승이라고 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과 히브리민족 사이에 계약을 맺었을 때 그것은 정치적 자유의 시작이었다. 예를 들면 출애급기 19장 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네가 진실로 내 목소리에 순종하고 계약을 지키면 너는 어느민족보다도 나에게는 귀한 보배가 되리라” 고 하였다. 8절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은 여기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과의 계약과 율법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것은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부르짖고 칼빈이 그에 기여한 이후였다. 1555년 칼빈은 성경적인 계약과 율법에 관한 그의 지식을 제네바시의회의 규약을 만드는데 적용하였다. 그 후 칼빈의 수제자였던 쟌 낙스는 그가 제네바에서 배운 것을 그의 고향인 에디바라로 가져가 스카트랜드인들의 종교적인 자유를 옹호하는 일련의 계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낙스 이후 필그림과 같은 독실한 신도들에 의해 성서적 계약이 시행되었으며 1620년 그들의 교회계약으로 시작해서 메이플라워계약이라는 정치계약이 만들어졌다. 필그림으로부터 계약개념이 미국의 건국선조들에게 전해졌다.
기독교는 먼저 사람들을 죄의 족쇄로부터 자유롭게 하였다. 그리고나서 영적인 자유를 경험하게 하였으며 거기에서 시민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제기하였다. 기독교가 큰 영향을 끼친 미국에서 우리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보지 못했던 형태와 강도의 시민의 자유를 경험해오고 있다. 죤 퀸시 아담스는 “미국혁명의 최고가치는 시민정부의 원리와 기독교의 원리를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접합시켰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미국에서의 자유

미국인들의 자유에의 길은 많은 부분이 뉴 잉글랜드의 강단에서 닦아졌다. 식민지시대 설교들은 “독재자에게 저항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아메리칸들에게 심어주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엘리스 산도즈 박사는 <미국국가 수립기(1730-1805)의 정치적인 설교들>이라는 저서에서 성직자들 특히 뉴 잉글랜드의 성직자들은 “검은 군단(Black Regoment)”이라고 불렸는데 그것은 검은 사제복을 입고 독재자에 반대하여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미국독립전쟁은 뉴 잉글랜드의 렉싱턴에 있는 요나스 클락 목사의 집에 모였던 애국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렉싱턴에서 발사된 한 발의 총성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던 것이다.

자유와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위대한 선언 등과 미국혁명과 헌법의 기본이 되엇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 등도 뉴 잉글랜드의 강단에서 울려퍼졌던 것들이다.

또한 아이로니한 것은 국가의 기초가 세워지기전 미 식민지에 있는 기독교인들 간에 있었던 교파간의 다툼이 이 나라에서 지금 즐기고 있는 절대적인 종교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양심의 자유를 신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퓨리탄에 반기를 들고 로드아일랜드 주를 설립한 침례교 목사 로저 윌리암과 퀘이커 교도인 윌리암 펜이다. 로저 윌리암은 양심을 억압하는 데 절대 반대함으로 시민의 자유 신앙에 큰 기여를 하였다. 윌리암 펜 역시 시민의 자유신앙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18세기 미국의 건국조상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지만 한 교파가 다른 교파들을 억압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독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한 독립전쟁에 참여하였던 퓨리탄들이나 필그림들 가운데는 식민지가 영국에 질 경우 그들의 종교가 영국국교회 감독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두려움도 작용하였다.

전쟁이 승리로 끝났을 때 애국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였다. 그래서 주(州)가 공식으로 인정하는 교파를 허용하지 않았고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였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시민자유옹호론자’들은 제1개정헌법의 종교적인 조항들을 전적으로 왜곡하여 공공의 영역에서 종교적인 흔적들을 찾아내어 말살하려고 한다.

건국선조들은 기독교 원칙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제도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는데 거기에서는 무신론자나, 무슬림이나, 유대인, 기독교인들, 불교도 누구나 그들의 생각에 따라 길거리나, 지붕위, 어느곳에나 교회를 짓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으며 서적을 출판하고 기독교 국가로부터 정부의 억압을 받는 일이 없이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건국선조들은 시민의 자유란 기독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도리어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의 원리가 시민들에게서 활짝 피어났다고 느꼈다. 실제로 그러한 종교의 자유는 아네네에서는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 도리어 1620년 미대륙에서 피어나 그 후 160여년 동안 발전하여 미합중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종교의 자유가 그 절정에 이른것이다.

미국의 노예제도와 자유

그렇다면 미대륙의 노예제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수만명의 미국사람들이 그들의 피부색깔 때문에 노예로 억압을 받았다. 미국의 건국과 헌법제정 과정에서 이 문제에 관해 상당한 논란의 과정이 있었다. 북쪽의 많은 사람들은 노예제도를 헌법에 명시하는 것을 반대한 반면 남부의 많은 사람들은 헌법에 명시하여 인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도를 폐지하게 되었지만 남북전쟁이 없었더라면 통일된 나라는 불가능하였을지도 모른다. 미합중국을 보존하고 만들어내기 위해 건국선조들은 협상하고, 노예제도를 당분간 존속하기도 하였으며 계몽의 과정에서 8년간의 전쟁을 겪기도 하였다. 결국 흑인들도 백인과 동등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헌법이 바뀐후에도 미국인들의 생활에서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었다. 그것이 해소되는데는 또다시 100년 이상이 걸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을 통해 진전이 이루어졌으나 흑인대통령령을 배출한 지금까지도 차별에 대한 시비는 그치지 않고 있다.

완전한 자유나, 완전한 진리란 인간사회에서는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전이나, 이후에도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영감을 주었으며 크리스천들의 양심을 자극하였다. 또한 수 세기에 걸쳐 성장한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지혜를 쌓아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차이점

1830년 미국을 방문하여 신생 아메리카를 관찰하였던 토크빌은 미국사람들은 매우 종교적인데도 또한 아주 자유롭다고 하는 인상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는 기독교와 자유의 개념이 잘 결합되어서 어느 하나를 빼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에서는 항상 종교정신과 자유정신이 거의 언제나 반대방향을 추구하는 것을 보아왔는데 미국에서는 그것들이 밀접하게 결합되어서 같은 나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된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시민의 자유 등에 관한한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토크빌이 지적한대로 프랑스에서 종교와 자유는 상반되는 것이다. 자유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종교의 족쇄를 부셔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혁명에서는 교회를 부셔버리고 교회재산을 탈취하였다. 그들은 노틀담 성당꼭대기에 이성을 상징하는 나체여인상을 달아놓고 제단을 모욕하였다. 그들은 또한 “주후(the year of the Lord)”라는 연호를 없애버리고 1792년을 공화국의 원년으로 정하는 등 하나님 없는 공화국을 시도하다 혼란스럽고 무정부적인 과정을 거쳐 폭정으로 막을 내렸다.

늘 그렇듯이 종교가 사라진 자리에는 폭정이 들어섰으며 2만여명이 혁명의 테러가운데서 학살당하였다. 거리는 피로 물들었고 시민들은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폭군이요 나라는 절망적인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신앙과 자유를 공유함으로 위대한 자유를 얻게되었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서는 178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죄악의 냄새가 풍기고 도덕이 기반을 잃어가고 있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그들이-죄를 지을수 있는- 자유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유를 면허증으로 바꿔버렸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면허증으로 아무도 자신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하는데 반대하고 나섰다. 여기에서 현대의 향락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자유가 아니라 억압의 도구로 생각한다.

시민의 자유는 기독교가 세계에 가져다 준 선물이며 오늘날 이러한 시민의 자유를 많이 향유하는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복음이 가장 깊숙이 퍼져있는 대륙들이다. 이 나라에 기독교적인 정초가 이루어졌을 때 그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핍박받는 사람들과 탄압받고 가난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제5장 기독교가 미국 건국에 끼친 영향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

정의는 나라를 높이지만, 죄는 민족을 욕되게 한다.(잠언 14:34)

1992년 말 미시시피 주지사 포디스(Kirk Fordice)는 미국은 “기독교국가”라고 공식석상에서 이야기 했다가 구설수에 올라 사과하는 소동을 벌렸다. 당시 어떤 신문은 “’기독교국가’란 명명이 논란의 초점이었다”고 구설수의 성격을 요약하였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한 지도적인 저명인사가 뱃짱 좋게 포디스 주지사와 유사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나는 거룩한 책, 성경과 성령이 처음부터 우리의 안내자였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버지니아의 첫 번째 헌장과, 뉴 잉글랜드의 헌장 또는 마사츄세츠 주의 헌장 그리고 헌법의 기본질서 등에 들어 있는 동등한 목적 즉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통치되는 기독교국가라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고 믿는다.

이 이상한, 정치적으로 부정확한 언급을 한 사람은 제리 파웰이나, 빌리 그래함 또는 댄 퀘일 같은 보수주의자들이 아니라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얼 와렌(Earl Warren)으로 그가 1954년에 한 말이었다. 그는 후에 대법원장이 되어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인지,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젊었을 때 동경하였던 미국의 기독교적 유산을 제거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정확히 말해서 미국은 얼마나 “기독교 국가”인가 이 장에서는 기독교 신앙이 미합중국의 발전에 얼마나 활력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세계에 선한정부의 위대한 모델을 보여주었는가 하는 것을 다루려고 한다.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으셨드라면 아메리카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나라에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떼어버린다면 우리들은 이 나라를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든 그 뿌리를 끊어버릴 것이다.

세계 역사상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란 관점에서 미합중국과 같은 나라는 결코 없었다. 또한 미국과 같이 전 세계에 그들과 유사한 대의 정부를 수립하도록 도움을 준 국가도 없었다. 아메리카는 세계를 비추는 봉화불이었다. 심지어 오늘날도 자유를 얻기위해 투표소를 찾아가 투표를 한다는 것이 목숨을 거는 위험인 곳이 많이 있다. 기독교를 제거해 버리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는 다른 나라들의 정치적 모습을 개선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지만 이장에서는 지난 200여년 동안 세계의 최고 희망이요 최고의 자유의 모델로 부각된 미국에 초점을 맞추어서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날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 터를 닦아왔다”는 말에 거품을 물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무시해 버릴수는 없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란 어구만 보더라도 이것은 14세기의 옥스포드의 교수였던 종교개혁자요 처음으로 성경을 영어로 전부 번역한 죤 위크리프가 처음 사용한 말로 “이 성경은 백성들의, 백성에 의한 그리고 백성들을 위한 정부를 위한것입니다”라는 선언에서 나온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존재했던 모든 국가들은 유신론적이나 무신론적 원칙위에 설립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도의 힌두교, 중국의 유교, 이스라엘의 유대교,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슬람 교, 그리고 소비엣 유니온의 무신론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메리카는 예수와 그의 말씀에 기초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진정한 요소들은 최근에 와서 대부분 세속주의라고 하는 해로운 안개에 의해 덮여버렸다. 당신의 생각에 역사상 누가(물론 단수가 아닐 수 있다) 미국의 자유와,정부와, 경제, 교육 그리고 일반적인 사상에 가장 위대한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하는가?

역사는 스위스 제네바의 종교개혁가 죤 칼빈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아메리카를 위대하게 만든 원리를 되찾으려면 죤 칼빈의 사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실 그는 성경 해설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설명한 사람으로서 정확하게 말해서 그가 그러한 사상의 창시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이 나라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많은 다른 요소들이 스며들었고 그 과정에서 죄많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 많이 더렵혀지긴 했다.

수많은 역사가들이 칼빈주의가 아메리카 건국에 그리고 아메리카가 현재 즐기고 있는 공화정 형태의 정부형태 탄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하고 선언하였다.

19세기의 미국의 위대한 역사가 뱅크로프트(George Bancroft)는 칼빈을 ‘아메리카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칼빈의 영향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국인들의 자유가 어디에서부터 온것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칼빈의 영향을 장로교회에 끼친 그의 영향으로 축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의 종교개혁의 영향은 필그림, 앵그리칸, 에피스코파리안, 회중교회, 침례교회 퓨리낱, 홀랜드, 독일, 스위스 의 개혁교회들과 프랑승의 유구노에까지 널리 퍼져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칼빈의 영향은 아메리카의 독립전쟁때에는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1776년 혁명”은 “장로교인들의 봉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립군들 가운데는 장로교회의 장로들이 장교와 사명으로 출전에 참가하였다.

그들이 독립군에 적극 참가한 이유는 거기에는 장로교회가 발전시켜온 장로제도형태의 정부형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정부 형태에서 독재체제가 붕괴되자 시민들의 정부형태 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독재에 반대하고 어떤 형태의 왕정에도 반대하는 제도로서 장로제도가 관심을 끌었고 영국의 왕 제임스 1세도 분명히 양해하였다.

칼빈주의의 정치적 특징은 공화주의라고 할 수 있는 왕정으로서 그것은 1776년 독립선언 75년 전부터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장로교회를 통해 시행되어 오던 제도였다.

아메리카 정부는 공화제이다. 장로제도는 어디에서나 득세하였고 공화제를 만들어 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공화제 국가들은 장로제도와 칼빈주의의영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교회안에서는 평신도들에게 교회를 다스리는 권리가 주어졋다.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교회에는 자유가 주어졌다. 보트너(Boettner)는 “칼빈주의는 공화제 정부의 주요 요소였다”고 말했다.

칼빈주의와 공화주의는 서로 원인과 결과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 나라는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에 의해 법에 따라 통치되는 공화당과는 전혀 무관한 공화정 형태의 정부이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바로 그런 형태의 정부이다.

메이프라워 계약

현대세속주의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로 시작되었다. 메이프라워 호를 타고 프리머스에 처음 정착하였던 이주민들이 처음 작성한 “아메리카의 출생증명서”로 알려진 ‘메이프라워 협정서’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증진시키기 위하여”라고 그들의 이주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이들 필그림들은 1606년 영국 노팅험에 있는 스크루비란 동네에서 비밀리에 구성된 한 교인집단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주목할만한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지도자는 죤 로빈슨 목사로 여러모로 많은 도움으 주었으나 불행하게도 신대륙에는 가보지 못했다.

이들은계약서에 동의하고 시작한 지하 결사집단으로 그들은 스크루비 계약서(Scrooby Covenant)라는 협약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들은 이렇게하여“하나님과 그의 법에 복종하기를 맹세하고 크리스천의 우애를함께 나누는” 지방자치교회를 위한 계약서 가운데 하나를 만든 사람들이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네델란드로 갔다가 홀랜드에서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자 아메리카로 떠났다. 그러나 다함께 움직이지 못하고 첫번째그릅만이 1620년 메이프라워 를 타고 미국으로 향했다. 이들이 신세계에 도착하여 상륙하기 직전에- 자발적으로 <메이플라워협정서>를 작성하여 크리스천 자치구를 만들기로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 아래 서명한 절대군주이신 제임스왕의 충성스러운 종인 우리들은. . . 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신앙의 전파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왕과 나라의 명예를 위하여 버지니아주 북쪽에 있는 첫 번째 식민지에 농장을 만들기 위해 항해를 하였다.

1991년 세계연감은 <메이플라워 협약을> 자신들을 통치하도록 자발적으로 동의한 미국의 첫 번째 문서로 된 헌법이라고 하였다. 메이플라워 협정서가 우리의 헌법적인 정부형태에 끼친 의미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필그림들의 직계 후손이요 <The Pilgrim Way>란 저서를 집필한 바트레트(Robert Bartlet)박사는 “이 협약은 미국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소수의 특권을 주장한 귀족주의를 비판하였고, 스스로 서명하고 서로 동의한 것에 기초한 조그마한 공동체를 수립하였다”고 하였다.

필그림들이 처음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온 이후 계속하여 필그림들이 대서양을 건너왔다. 1628년 첫 번째 퓨리탄들이 도착하였다. 퓨리탄들은 영국에 그냥 머물면서 교회를 안에서 정화하려고하였으나 그들의 소망이 실현되지 않았다. 필그림들과 퓨리탄들을 증오하였던 제임스왕 1세는 모든 종교적인 반체제인사들에 대하여 “나는 그들이 동의하게 만들던지 아니면 이땅에서 쫓아내든지 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메이플라워가 대양을 건넌 후 수십년 동안 수많은 필그림들과 퓨리탄들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정착하였고 그들은 서로 생각을 교환하면서 많은 퓨리탄들이 필그림들의 생각들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퓨리탄들이 수적으로 필그림들을 압도하면서 필그림들은 퓨리탄사회에 완전히 융화되었고 그후 이 두 그릎사이에는 차이점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메이플라워협약> 이후 150여년 동안 뉴 잉글랜드의 수많은 크리스천 그릎들이 100개도 더 되는 협약, 계약, 규약들을 만들었다. 이들은 <메이플라워협약>과 같이 이들 초기 아메리칸들의 기독교적인 동기를 반영하였다. 예를 들면 1643년에 처음으로 제정된 뉴잉글랜드 연맹에서 그들은 “우리는 모두가 한가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 아메리카로 왔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들 초기 이주자들이 작성한 규약, 계약, 규칙 등은 미국에서 우리가 즐기고 있는 헌법에 규정된 정부형태의 길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가 울프(Wolf) 박사가 언급한대로 칼비니스트들의 교회법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도 퓨리탄들과 필그림들의 기독교적 특성에 관해서는 이의를 달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특성과 그것이 우리 국가 형성에 끼친 공로를 찬양하는 대신 현대의 세속주의자들은 크리스천들이 보여준 특성들을 인정하기는커녕 단지 비웃고 있다. 그들은 옛 세계를 떠나 어려움이 산적했던 대륙의 광야에서 만난을 극복하고 아메리카를 세운 그들의 강인함과 철저한 신앙사이의 연관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필그림과 퓨리탄들은 우리가 감사할 대상이지 조롱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하루하루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오늘날의 세속주의자들은 필그림들과 퓨리탄들의 유산을 과소평가하면서 미국이 독립할 당시에는 기독교의 영향은 사라져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세속주의자들은 그때의 건국선조들은 세속주의자들로서 세속적인 정부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고 주장한다.

1776년이 나라를 세운 선조들은 세속적인 국가라는 말이나 생각을 들어보지 못했다. 아메리카가 건립된 얼마 후에 프랑스에서 세속적인 국가나 나타났을 때 미국의 건국선조들은 경악하였다. 국가에서 종교를 완전 제거해 버리려던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에 놀랐던 것이다. 그 결과는 피흘리는 폭력의 연속이었다.

대각성 운동이 끼친 영향

1730년과 40년대에 부흥회운동이 식민지를 휩쓸었다. 대각성운동이라고 부르는 부흥회는 이질적인 식민지들의 유대를 강화하고 한 정신으로 통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아메리칸들의 생활에 성경의 중요성을 강화시켜 주었다. 더구나 대각성 운동은 식민지 시대 사람들이 성경에서 보았든 것과 같은 공화국 형태의 정부조직을 재확인 시켜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뉴 잉글랜드에서와 같이 대부분의 강단에서는 자유가 울려퍼졌고 그것은 독립전쟁의 불씨를 붙였다.

당시의 미국 지도자들의 기독교인으로서의 행동은 당시 지도자들과 선거구민들의 종교를 살펴보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헌법의회에 참가한 55명 가운데 50명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크리스천이라고 하였고 달라스 대학교의 브랫포드 박사는 미국의 출생증명서에 서명한 56명 가운데 50명은 분명한 크리스천이고 어쩌면 그 숫자는 52명 까지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1776년 유권자들의 종교성향을 보면 98%의 아메리칸들이 개신교도였고 1.8
%가 캐톨릭이였으며 0.2%가 유대인이었다. 인구의 99.8%가 크리스천이라고 밝힌 1776년 상황에서 과연 역사에 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감히 당시에 아메리칸들이 설립한 나라가 기독교국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건국조상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책이 성경이고 그 다음으로 인용된 것들이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이신론자나 철학자들의 저서가 아니라 크리스천이였던 보수적인 법율가나 정치사상가들의 저서였다고 한다.

성경과 헌법

세속주의자들은 헌법이나 권리장전을 만드는데는 크리스천들이 별 영향을 못끼쳤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잘못된 주장으로 ‘헌법에 의한 정부’라는형태는 필그림이나 퓨리탄과 같은 크리스천들의 교회 계약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중요 사실을 망각한데서 나온것이다. 미국헌법은 이 나라의 정신적인 신념인 기독교 전통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역사가 H.G. Wells는 “미국헌법이 기독교적이라는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

헌법을 만든 사람들의 대다수가 실천적인 크리스천으로 그들의 정치철학이 성경이나 다른 기독교문헌에서 나왔다. 몇가지 중요한 예를 열거하면

1. 미헌법은 사람이 아니라 법에 의해 통치되는 정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것을 대표하는 시민들과 공직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는 근본적인 법에 의해 통치되야 한다는 생각이다. 헌법의 입안자인 매디슨을 포함해 건국조상들은 이러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2.미 헌법은 법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에 기반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신다”(사도 10장 34)고 하였다. ?독립선언서가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고 하였을 때 이 진리를 표명한 것이다. 이 원칙이 미국에서 충분히 실현되는데는 또 다른 100년이 걸렸지만 이미 헌법에서는 실현되었던 것이다.

3. 헌법은 “창조자에 의해 주어진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선언한 독립선언에 근거하고 있다. 그 권리가 처음 선포된 곳이 어디인가? 바로 10계명이다.

4. 미 헌법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데 적극적이다. 크리스천인 헌법 기초자들은 “성령이 거하는 곳에 자유가 있다”(고린도 후서 3:17)는 것을 믿었다.

5 미 헌법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기안자들의 인간 이해위에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권력을 분산하여-입법부와 행정부를 분리하고, 사업부와 입법부를 분리하는 등- 어느 한 기관이 다른 기관들을 지배할 수 없게 하였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본성을 가졌다는 기독교 신앙은 헌법에서 권력의 분산을 채택하였고 한 사람이나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았다. 기초자들은 이사야 33장 22절의 말씀 “주께서는 우리의 재판관이시며 ,우리에게 법을 세워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왕이시다”라는 말을 알고있었기에 그들은 정부의 기능을 이에 따라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로 나누었다.

6. 미국 헌법은 세습적인 왕정은 진정한 기독교형태의 시민정부가 아니라는 확신에 기초하고 있다. 기초자들은 아무도 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왕이시다. 여기서 독립전쟁 당시의 슬로간의 하나였던 “예수만이 유일한 왕”이라는 구호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새 나라를 건설한 이들은 첫 번째 의회의 첫 번째 동의안으로 상,하원의 의회 개회전기도를 주재할 채플린을 선정하도록 하였으며 계속해서 국가적으로 금식, 기도, 감사일 등을 제정하였다. 의회는 혁명전쟁 기간동안에만? 16번의 이러한 특별기도일을 제정하였으며 제퍼슨이나 매디슨 등도 재임중 금식과 기도의 날들을 제정한 것은 건국선조들이 새국가를 건설할 때 그들이 의도했던 것은 분명한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권리장전에 첫 번째 수정헌법을 채택한 첫 번째 의회는 “종교, 도덕, 그리고 지식은 좋은 정부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기본적인 것으로 그것들은 교육을 통해 증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학교는 종교, 도덕, 그리고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세속화

그런데 미국의 종교적인 기초들이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삭제되어 버렸다. 필자는 현재 사용되는 교과서에서 왜곡되고, 삭제되고, 도착돼었으며, 과소평가된 부분들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교과서에서는 마리린 몬로를 7페이지로 다루면서 죠지 와싱톤에 대해서는 한 페이지도 배당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지금 우리 어린이들은 역사에 관해서는 물론 기독교의 유산에 관해서는 전혀 배우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제1차 수정헌법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다루고 있는데 “의회는어떤 종교기구를 우대하는 법을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행사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선 안됀다”고 하였다. 전통적으로 이 조항은 미국에서는 유럽에서와 같이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되었으며 역사적으로는 교회와 국가는 기능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오늘날까지 이해되고 있다.

1947년 이후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나왔는데 그것은 제퍼슨이 대버리침례교회에 보낸 편지 “교회와 국가 사이에는 분리의 벽이 있다”는 문구에서 유래한 것으로 미국 헌법은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공공분야에서 종교의 흔적들을 찾아내어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세속주의자들은 건국선조들이 의도했던 것은 순수한 세속적인 국가로 그러한 국가에서는 국가는 종교에 “중립(적대로 번역)’을 지키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수많은 증거들은 묵살한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바침할 수 있는 몇몇 문장들을 찾아내어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바드의 법학과교수로 대법관까지 올랐던 죠셉 스트롱(Joseph Strong)은 1851년 그의 저서에서 “제1 수정헌법은 기독교의 특권을 박탈하고 다른 종교들을 고무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분파들의 경쟁을 제어하고 국가기관의 옹호자로서의 국교회를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결 론

미국의 기독교 뿌리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적절한 때 개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많이 있다. 신대륙을 열어준 콜럼부스의 경우 그는 자신의 항해는 이교도들을 참된 하나님에게로 돌이켜 놓으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믿었다. 콜러부스의 목숨을 내건 항해는역사의 이정표였다. 과연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 대륙에 올 수 있었을까?

오늘 미국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금 이 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되도록 기도로, 노력으로 복음화에 힘써서 우리 선조들이 우리나라의 주요 문서들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준 위대한 원칙들에 다시 충실해야 한다. 이러한 원리들을 팽개쳐 버림으로 모든 질병과 유행병과 문제들이 이 나라에 창궐하였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근본으로 돌아가서 이 나라를 위대하게 하였던 기독교 유산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인 동시에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 . 그리고 성경에서 알려주고 역사에서 입증된 숭고한 진리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주로 모시는 나라만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Dr.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의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4장 대중 교육-기독교가 교육에 끼친 영향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쳐라. -모세(신명기 6장 6절-7절)

미국에서는 학교건물을 보면 공립학교건 사립학교건, 초등학교건 대학교건, 교회학교건 일반학교건 간에 기독교회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기독교회가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의 대중교육 현상은 기독교에 뿌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기독교 이전에도 교육이 있었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엘리트 교육이었을 뿐 대중을 대상으로, 모든 사람들을 교육한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목적을 위하여 크리스천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비록 오늘에 와서는 대학들이 기독교 신앙에 적대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소위 말하는 옥스포드, 캠브릿지, 하버드, 에일, 프린스턴 같은 학교들은 크리스천들의 땀과 희생에 의해 지금과 같이 발전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전통에 뿌리박은 교육

기독교는 시작때부터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쳐왔던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해 왔다. 크리스천들은 흔히 ‘책의 사람들’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더그라스 박사는”성경을 중요시하는 종교는 항상 교육에 중점을 두었고 .. . .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보다 정규적인 교육이 발전하였다”고 하였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암흑시대에도 기독교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에 의해 고대의 고전들과 이교도의 고전들이 필사되었고 그들의 학문이 전수되었다.

세계의 수많은 언어들이 성경을 읽히려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문자화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것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위크리프 성경번역 선교기관은 2025년까지는 오지의 소수 부족들의 언어로도 성경들을 번역하여 세계의 전 부족이 자기네 언어로 된 성경을 읽게 한다는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노력은 부산물로 언어나 방언을 문자화 하는 한편 문맹을 줄이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육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라는 개념은 물론 16세기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종교개혁에서 나온 것이다. 9세기 샤를마뉴(Charlemagne)대제는 신성로마제국의 국민들을 교육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시들해 졌다가 기독교가 성경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종교개혁에서 대중교육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인쇄술의 발명이 한 몴 한 것이 사실이다. 학문의 발달과 함께 구텐버그의 성경이 프린트되어 나왔다. 책의 다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교회사가인 샤프(Schaff)는 “종교개혁을 위해 신이 ?준비하신 것 가운데 하나인 프린트 기술은 개신교와 현대문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대중교육의 뿌리는 종교개혁으로 올라가며 특히 죤 칼빈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종교개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이-평신도들- 성경을 직접 읽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미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현대교육의 아버지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의 신학자 보트너는 “역사는 칼빈과 교육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칼빈주의가 가는 곳에는 어디에나 그와 함께 교육이 따랐고 강력한 대중교육의 열기를 더하였다”고 하였다.

칼빈은 훌륭한 교육이론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제네바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실행에 옮김으로 미국에서 퓨리탄과 그의 후예들에 의해 수립된 초기 대학과 대학교들의 모델이 되었다.

칼빈은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우리들의 직업과 삶 안에서 영광 돌리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육의 내용은 하나님의 첫 번째 책인 성경을 공부하는데서 시작하여 모든 진리는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두 번째 책인 자연에 나타난 진리를 공부하는 것이다.

제네바에서 칼빈은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을 증진시켰고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오늘날의 교육패턴이 되었다. 즉 모든 것은 성경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원리는 미국에서도 필그림과 청교도들에 의하여 그대로 전수되었다.

칼빈은 또한 교육은 도덕적인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쏘크라테스처럼 지식은 곧 덕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타락과 죄악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가르침 즉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롭게 하는 능력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칼빈은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그것은 국가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며 부모라고 분명히 대답하고 있다고 하였다. 성경은 어린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으로 부모들은 잘 교육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녀들을 주님의 책망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로 자녀들을 가르쳐야 한다.

칼빈과 루터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 덕분에 보다 나은 교육이 시행되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조사한 결과 성경읽기를 강조한 개신교 계통 국가들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았고 성경읽기와는 무관하였던 중국이나 인도 등지의 문맹율이 가장 높았으며 기독교지만 성경읽기를 별로 권장하지 않은 카톨릭이 그 중간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의 교육

필그림과 퓨리탄들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교육은 최우선 과제였다. 1642년 퓨리탄들은 모든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1647년에는 공립하고 설치법을 제정하였다. 1630년에 미국에 온 퓨리탄들이 정착 20년도 되기 전에 자녀들을 교육시키도록 법으로 규정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되겠다는 신앙이 작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미국공립교육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퓨리탄 어린이들은 알파벳과 함께 주기도문을 배웠으며 이러한 초기의 기독교와 교육의 관계는 식민지 시대가 지나 독립국가로서의 아메리카에서도 계속되었다. 1787년 첫 번째 미 의회에서는 “종교, 도덕, 그리고 지식은 좋은 정부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라는 성명을 채택하였다.

필그림이 도착한 1620년부터 1837년까지 217년 동안 실제적으로 미국에서의 교육은 개인들이나 크리스천들의 몴이었다. (공립학교 교육제도는 그 후 20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크리스천들의 교육의 성과는 어떠하였던가? 당시 영국의 교외지역에서의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48%에서 75%였었는데 미국식민지에서는 70% 내지 거의 100%에 이르렀다고 한다. 퀸시 아담스는 1800년대 미국에서의 문맹자는 1000명 가운데 4명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맥거피의 읽기교재(McGeffey’s Readers)>라는 책이 있다. 장로교 목사인 맥거피가 쓴 책으로 1억 2천여 만권이 팔렸다는 이 교재는 수 십년동안 미국초등학교교육의 근간이 되어 왔다. 초판본들은 특히 기독교 적인 냄새가 강했으나 후에 나온 것들은 기독교도덕을 기반으로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지난 한 세기동안 이 <읽기교재>의 영향력은 대단하였으며 미국의 수백만 어린이들을 기독교신앙으로 키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매거피 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비록 이 교재는 같은 이름으로 계속 발간되어 읽혔으나 무척 세속화 되었다.

초기 미국에서의 교육은 기독교 적인 것이었고 무척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초등교육만이 아니라 학문의 영역인 대학교육도 기독교교회에서 나온 현상이다. 대학은 중세기 후반까지도 없었다. 하이드(Hyde) 교수에 의하면 기원 1200년을 전후해서 옥스포드, 파리, 볼로나 세곳에서 전형적인 대학이 생겨났는데 옥스포드와 파리에서는 신학을 주로 가르치고 다음으로 아리스토틀의 사상을 가르쳤다. 볼로나에서는 교회에 관한 것들을 주로 가르치고 다음으로 민법을 가르쳤다. 물로 고대 희랍이나 중세 이스람에서도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의학을 가르치는 전문학교와 같은 것이었다. 그후 중세기 유럽에서 생겨난 대학들은 교구장들이 ?명성이 있는 훌륭한 교사들에게 교부들의 교리나 중요한 기독교 교리, 그리고 아리스토틀이나 희랍철학을 강의하도록 하였는데 결국은 크리스천들에 의해 기독교의 필요를 위해 설립된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조직적, 철학적으로 깊이 탐구하기 위해 세계의 대학들이 생겨났으나 여하튼 고등교육이라는 개념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미국 건국초기의 대부분의 대학교들은 목회자들을 교육시킨다는 기독교의 목적을 위해 크리스천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하버드, 윌리암 앤 매리 등이 그러하였고, 달트머스는 인디안 원주민들에게 전도할 선교사 양성기관으로 설립되었다. 브라운, 프린스톤, 뉴욕, 노스웨스턴 대학들은 철저하게 기독교에 뿌리내리고 있다. 윌리암 앤 매리는 “기독교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컬럼비아 대학의 전신으로 1754년에 설립된 킹스 카레지는 “”이 학교의 주 목적은 어린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 학교들의 대부분은 오늘날 세속화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독교 신앙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고 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캠퍼스의 건물들을 보면 기독교에서 기원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이러한 기관들이 신앙을 저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오늘날 크리스천들의 땀으로 설립된 대부분의 미국고등교육 기관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조롱을 당하고 있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국교육의 세속화

현대식 공립교육은 1837년 마샤츄세츠 주에서 호레이스 만(Horace Mann)에 의하여 생겨났다. 그는 유나터리안 신도로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로서 성서의 권위와 영감설도 거부하였다. 미국의 어린이 교육이 교회의 손에 있는 것을 개탄한 그는 그러한 상황을 고치기 위하여 주(州)에 의해 운영되고 조정되는 주 주도교육을 해답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서부터 어린이들을 기독교로부터 구해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현대식 공립교육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Mann의 계획은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죤 듀이가 나타나서 미국에서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주립대학과 사범대학의 철학적 기반을 놓음으로 그의 “혁신적인 교육”이 미국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듀이는 미국휴매니스트협회의 초대회장으로 기독교는 미국의 공립교육제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100여년 전 보통사람들은 미국공립학교제도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프린스톤의 핫지(Hodge) 박사는 이 점을 예견하고 종교와 분리된 주의 공립교육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무신론적이며, 반기독교 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제도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초기 200년 동안의 기도교교육은 문맹율을 .04%까지 낮추었으나 세속화된 교육은 어떤 성공을 거두었던가? 수 천억 달라를 교육에 투자하고 얻는 것은 무엇인가? 문맹자가 32배나 증가하여 오늘날 4천만명이상이 문맹이며 그 위에 5천만명 이상이 겨우 문자를 해득하는 수준이다.

미국교육의 세속화와 그 결과인 교육의 질 저하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다. 학교들이 직면한 도난, 폭력, 강간, 십대임신, 낙태, 자살, 살해 등 심각한 도덕적 문제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교육의 기독교 적인 뿌리이다.현대교육을 키워온 주요원인은 이 나라 설립자들을 키워온 기독교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미국과 서구의 교육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지난 2세기 동안 주로 기독교선교사들을 통하여 제3국가들의 수많은 사람들을 교육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크리스천들은 오지에 학교를 세웠을 뿐 아니라 문자가 없는 언어들을 표기할 수 있게 하고, 읽고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식민지 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교육을 담당했던 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결론

어떻게 기독교가 전 세계를 교육하여 읽고 쓰게 하였는가? 18세기 후반 영국의 레이커스(Robert Raikers)에 의해 시작된 주일학교(Sunday School) 운동을 보면 그 목적은 달리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데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도 기독교는 대중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갖게 하였다.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직도 죄의 어둠과 무지의 어둠에 처해 있을 것이다. 대중들에게는 교육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서방에서는 사람들이 복음의 빛에서 뛰쳐나옴으로 죄와 무지의 어둠속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edit.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제3장 동정심과 자비심-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

이웃을 멸시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 사람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잠언 14장 21절)

성 로렌스는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주 관대하였던 교회의 장로였다. 그는 3세기에 로마제국의 아라곤이란 곳에 살았다. 박해가 심하던 때 그는 “교회의 보물”들을 로마당국에게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때 그가 데려온 것은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그리고 발을 절뚝거리는 사람들로 그는 “이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보물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행동때문에 그는 석쇠에 꼬여서 화형 당해 죽었다.

오늘날 프로리다주의 로더데일 지역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성 로렌스 로더데일이라고 부르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수용소가 있다. 이 수용소는 집 없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연락처를 제공하고 직업을 알선해주며 목욕시설과 예배 처소, 전화 등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가난이란 항상 인간의 삶의 한 부분으로 계속되어 온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역사상 어떤 다른 기관들 보다도 가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구호노력은 세계적으로 구호패턴을 제시해 왔다. 제3세계의 고아원에서부터 도시 한복판에 있는 구세군 선교센터에 이르기까지, 또는 갑자기 불이 나서 집을 잃어버린 가족들을 돕기 위하여 크리스천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24시간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먼저 우리들에게 그러한 모본을 보여준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는 우리 더러 그와 같이 하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상황

기독교 이전의 세계는 러시아 동토(凍土) 와도 같이 매우 춥고 살기 힘든 곳이었다. 마티니라고 하는 학자는 역사적인 문헌들을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고대에는 조직적으로 자선사업을 한 기록을 찾을 수기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고대에는 사심이 없는 자비심이란 아예 알지못했다.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경이 알려지면서 자선과 선행이란 것이 꽃피게 되었다.

역사가 윌 듀란트는 고대문명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고대로마제국에 관하여 기술하면서 “이러한 검소한 생활가운데서도 자선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친절은 여관들이 멀리 떨어져 있고 조악할 때 상호 편리함을 위해서만 존재하였다. 동정심이 많은 폴리비우스도 ‘로마에서는 가능하더라도 아무도 아무에게나 그냥 호의를 베풀지는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예수는 가난한 사람,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돌봐 주는 좋은 실례를 직접 보여주었고 그와 같이 하라고 명하셨다. 제사장과 레위사람이 그냥 지나쳐 버린 도움이 필요한 강도당한 사람을 도와 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기복음 10:25-37)는 좋은 실례이다. 이 비유는 서구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수께서는 소자중 가장 적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서 그리스도의 가난”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자들에게 관대 할 것을 권고하셨고 세기를 지나면서 어떤 크리스천들은 이것을 소명으로 알고 거기에서 큰 기쁨을 경험하였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예수를 본받아 복음을 위하여 자신이 가난의 길을 자초하였으며 거기에서 큰 기쁨을 경험하였다. 반면에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희사함으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서 기쁨을 얻은 사람들도 있다.

초기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에게는 물론 비신자들에게도 관대함으로 역사를 만들어 갔다. 에일 대학의 유명한 교회사가인 라투렛 교수는 “일반적인 복지를 위하여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 기독교는 다섯가지의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 왔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는 기부는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능력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의무라는 생각의 변화라고 하였다.

또한 기부의 동기 역시 새롭게 바꾸었다. 기부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는 부유하시지만 우리들을 위하여 가난을 자초하셔서 우리가 부유하게 되었다.(고린도 후서 8:9) 따라서 크리스천 공동체의 기부의 대상이 과부와 고아들,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여행자들, 기아나 핍박으로 어려운 타지의 교회인들 등 형재애를 폭넓게 강조하였다.

크리스천들의 기부는 집단적이기 보다는 개인에게서 개인에게로 번져가는 인격적인 것이었다.

또 다른 변화는 자선을 교회멤버들에게 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자선을 베풀므로 기독교의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했던 로마의 쥬리안 황제까지도 어떻게 크리스천들이 이교도들 뿐만 아니라 적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놀랐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초기의 교회들은 로마의 폭정가운데서 개종자들을 끌어들였는데 그것은 로마와의 전쟁을 웨치며 가혹하게 억압해서가 아니라 전례 없는 사랑으로 평화를 전파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Fox 교수는 또한 이교도들의 기부행위와 크리스천의 기부행위를 비교하면서 이교도들은 시민들에게만 식량을 주었지만 크리스천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나누어 주었으며 이교도 황제들이 생명을 부지할 만큼의 최저의 식품을 나누어준데 반해 크리스천 황제인 콘스탄틴 부터는 자선의 폭을 확대시켜 가능한한 많이 나누어 주고 조건 없이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중세기의 자선

중세기에 수도승들은 정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자신들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윌 듀란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자선이 중세기 후반에 와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실제로 개인, 단체, 정부, 교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다. 부호들의 저택 앞에서는 일주일에 몇 번씩 빈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상류층 유부녀들이 자선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교회들도 십일조의 4분의 1을 따로 떼어 빈자와 병자들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중세기에는 교회의 자선행위가 너무나 널리 행해졌기 때문에 십자군이나, 종교재판, 그리고 마녀사냥 등 교회에 의해 저질러진 악행들도 그저 덮고 지나갈 정도였다고 역사가 리키는 말했다

퓨리탄들의 자선

퓨리탄들 가운데는 길가에 나서서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고 또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때그때 도움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시대에 자선가들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그들의 활동도 활발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퓨리탄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고 하였다.

19세기의 기독교 자선활동

그리고 산업혁명기에도 계속되었다. 19세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선을 베풀었던 크리스천들의 실례는 얼마든지 있다.

*영국에 있었던 죠오지 뮬러와 그의 고아원 사업은 수 천명 어린이들을 돕고 그와 같은 사업의 불씨를 뿌리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1844년에 시작된 YMCA 운동, 1855년의 YWCA운동은 세계적으로 도시지역에 사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돕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 윌버포스가 아프리카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의해 한 것과 같이 새프터베리 경이나 안도니 애슬리 쿠퍼는 영국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오늘날의 자선사업

오늘날 미국과 서구에 있는 많은 자선기관들은 크리스천들을 기반으로 시작되어 오늘에는 세속화 되었다. 그들은 오늘에 와서는 그들의 기독교적인 뿌리를 언급하지 않거나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기독교와는 관계없는 이름을 가지고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마리아인”이라는 이름으로 모금을 하고 자원자를 모집하는데 결국은 그들의 뿌리가 예수의 비유에서 시작되었음을 은연중 밝히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자선기관은 구세군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조직으로 재난을 당하여 집 잃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즉각적으로 도와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사하는 기관으로 1887년 윌리암 부스에 의해 시작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구세군 활동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뒷받침 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빈자들을 돕는 일은 각 교파에 속한 선교기관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World Relief Corporation이 그런 기관들 가운데 하나이며 World Vision, Internationaal:Samaritan’s Purse, Foof for the Hungry; Christian Childrens' Relief Fund 그리고 Compassion International 같은 기관들이 있다.

미국에서도 많은 교회들과 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간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입을 것을 제공하는 기독교 구호사업은 가난한 동네에서는 어디서나 시행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해 전 세계에서 매주 신약성서의 가르침을 듣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수 천만이 될 것이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방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며, 도시 빈민가에 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 등,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종교적인 사람들은 더 자비로우며,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 보다 비교적 많이 기부하고 종종 자선은 “과부의 엽전”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미국생활에서의 종교”라고 하는 여론조사에 의하면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자선행위에서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며 “교회나 회당은 미국의 사회사업기관에 다른 비정부기관이나 회사들 보다도 많이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Christianity Today>에 의하면 “시간과 돈을 기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예배에 매주일 참석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른 그릎의 사람들과 비교할 때 가장 관대한 기부자임에 틀림없다.”고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수입의 보다 많은 부분을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결론이 놀라운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현대교회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여인가운데 하나인 테레사 수녀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독교적인 이상을 구현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된 그녀는 칼카타 거리의 극빈자들을 도와주었다. 그녀는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님을 보내셨던 그 세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위해 보내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모든것을 희생하는 큰 희생을하신것 처럼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희생하여야 했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제거한다면 테레사 수녀도 없다.

무신론과 구제사업

아주 세속적이고 무신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크리스천 정신에 가득 차 있기때문에 그점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왜 무신론자의 견지에서 길을 건너는 노인네를 도와주어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고 대답해 보라고 도전해 본다. 까뮤나 사르트르 같은 대표적인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리에서 사람을 치든가, 아니면 돕든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봐주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봐주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한 대답이 무신론자들에게는 없다. 하나님을 없애버리면 , 내세라는 것이 없고, 미래의 심판이 없다면 왜 내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이야기 할 것이다 “내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어쩌면 형무소를 방문하는 것 보다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기분 좋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이니까.”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당신이 이 말을 마피아 보스에게 했다면 "사회? 도대체 그 사회를 돕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크게 웃어버릴 것이다. 사회란 단지 그가 상대하는 그 무엇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회는 자선이 없는 사회이다.

결론

모든 자선이란 사람들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예수 그리스도에게 로 돌아가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나눔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교도들도 기독교도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에 대해 “저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가를 눈여겨 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그들에게는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 크리스천 문명권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놀라움 자체였던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실천하든 못하든간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 이교도 문명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기전 까지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만약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지금 태어나지 않았드라면 하고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고대 이방인 세계와 같이 매우 험악한 세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기독교 역사는 “교회의 보석”인 가난한 사람들과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돌봄과 사랑"을 보여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 되었다.

*James Kennedy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Thomas Nelson Publisher


제2장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의 가치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창세기 1장 27절)

“광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100여년 전 프랑스의 한 엔지니어가 자기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이 여러가지 중요한 광물들의 이름들을 들먹이자 그는 학생들의 대답을 교정해 주었다. “광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광부들이다.”나는 그의 대답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인간생명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깊이 뿌리박고 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의 생명이란 무척 값 싼 것이었다. ?기독교의 영향이 있기 전에는 목숨(생명)이란 소모품에 불과하였다. 심지어 오늘날도 그리스도나 기독교의 복음이 깊숙이 스며들지 못한 곳에서는 생명은 무척 값 싼 것이다. 그러나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계시록 21장 5절)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인간의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였다. 더구나 기독교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신의 계시를 처음 받은 유대인들과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이교도를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기독교후기 시대 서구에서 보듯이 우리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무시하고 생명을 다시 값싼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린이들

고대에는 어린아이들을 신전에 제물로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현상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교도 신전 근처에 있는 묘지에서 어린아이들의 사체를 발굴하곤 하였다.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 고대 가나안의 바알 신전의 사제들은 그들의 제사의식의 일환으로 어린아이를 제물을 드리곤 하였다. 20세기 초만 해도 시카고대학교의 동방학연구소에서는 아합시대의 사마리아를 발굴하였는데 신전에서 별로 멀지않은 묘지에서 항아리에 보관된 아이들의 사체를발견하였다. 바알과 아스트롯의 사제들이 이들의 공식 살인자였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근동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린 생명의 값이 무척 쌌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고대 로마나 희랍에서는 임신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으며 그래서 낙태는 흔한 일이었고 특히 가난한 부모들은 여자아이이를 낳을 경우 여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유아기를 넘긴 아이들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소유물로 죽일수도 있고, 노예로 팔 수도 있으며 결혼과 이혼을 명령할 수도 있고 재산을 몰 수 할 수 있었다.

여하튼 고대사회에서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생명은 무척 값싼 것이었다.

그런 세상에 예수께서 오셨으며 그는 처녀의 몸에 임신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임으로 자기를 낮추시었다. 그 이후로 크리스천들은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겼다. 고대로마에서 크리스천들은 많은 아기들의 생명을 구했고 신앙으로 길러 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낙태가 유행되는 생명경시의 세상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낙태는 사라져 버렸다. 유아살해나 유기도 사라졌다. 어린아이들을 교회로 데려오라는 웨침이 크게 퍼졌다. 양육원, 고아원, 육아원 등이 어린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생명을 중시하여 생겨난 이러한 새로운 기관들이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서구문명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간다. 만약 예수께서 이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보는 이런 변화를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대 로마와 희랍, 중국 그리고 인도의 어린이들에게는 우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헤롯은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죽였다. 그러나 예수의 오심은 어린아이들의 승리로 마감하였다. 예수는 어린아이들을 모으시고 “어린이들이 내게 오도록 하고 나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태 19:14)고 하였다. 그의 말씀은 새로운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권위를 부여하였다. 예수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 부른 후 이것은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를 급격히 바꾸었을 뿐 아니라 아주 다른 형태의 아버지 개념과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의 교회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결국 유아살해를 종식시켰고 그의 영향으로 인간의 생명의 귀중함을 증식 시켜 유아살해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서구에서 통용되는 많은 아이디어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 더라면 이야기는 달라 졌으리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의 가치는 아직도 무척 값싸게 다루어 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자들

기독교의 영향이 있기 전에는 여인들의 목숨은 아주 값싼 것이었다. 고대문화에서 아내는 그저 소유물에 불과했다. 인도나 중국, 로마나 그리스에서 사람들은 여자들은 독립할 만한 능력을 갖지못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틀은 여자는 남자와 노예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고대에 노예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여자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프라토는 만약 남자가 비겁한 삶을 살면 그는 여자로 환생할 것이고 여자가 비겁하게 살았다면 새로 탄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대 로마에서의 여자의 운명 역시 별로 나은것이 없었다. 소년들보다 소녀들이 훨씬 많이 내버려 졌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여자라고해서 어린 소녀들을 죽이고 방기한 것은 옛날에도 그랬고 최근까지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못한 이방인들에게서는 다반사로 행해졌다.

1776년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는 중국의 큰 도시에서는 매일 밤 여자아이들을 애완동물과 같이 강속으로 던져버리는 의식들이 행해졌다”고 기술하였다. 그것은 바로 200여년 전 일이지만 기독교의 영향이 중국에 배어들기 전에 다반사로 행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여년 동안 선교활동이 세계적으로 활발히 추진되면서 여러 나라의 수 백여 종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자 여자들의 생활은 급격히 향상되었다.

인도에 기독교의 영향이 미치기 전 과부들은 ‘착한 아내’라는 평을 받기 위해서는 남편을 화장하는 장작더미위로 자발적이건, 강제로건 올라가 같이 타죽어야 했다. 이 의식을 그들은 suttee라고 불렀는데 ‘착한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죽음에까지 따라가는 아내가 착한 여자라고 믿었던 것이다. 서방에서 선교사들이 인도에 오면서 이러한 의식과 여아살해 습관이 얼마나 비인도적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인도에게 그러한 관행은 19세기에 와서야 선교사들의 반대운동으로 폐지되었다.

인도에는 또한 신전에서 창녀 노릇을 하도록 키우는 ‘어린이 과부’가 있었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서양의 선교사들이 이것을 폐지하기 위하여 이들을 빼돌려 크리스천 컴뮤니티에서 기르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인도 선교사였던 스펄죤은 한 힌두교도 여인한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선교사님, 성경은 아무래도 여자가 쓴 것 같아요?””왜요?” “성경에는 여자들에게 친절한 기록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요?” “우리 힌두교 승려들은 여자들에게 야단만치지 친절한 말 한마디도 안하거든요.”

아프리카에서도 기독교의 영향이 들어오기 전에는 인도의 suttee와 같은 관습이 계속되었다. 추장의 아내나 첩들은 추장이 죽으면 합장하여 같이 죽도록 하였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밭을 가는데 암소와 여인이 같이 끌도록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여인들의 지위를 높여주었으며 그 어느때 보다도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게 하셨다.

더구나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부다처제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오늘날 여성민권운동가들이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공헌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것은 아이로니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기독교가 여성들을 억압해 왔다고 주장한다. 사실 기독교만큼 여성들의 인권을 향상시킨 곳은 없다고 하겠다. 예수가 오지 않았더라면 여권이 지금만큼 향상되었을까?

노인들

중국인이나 일본사람들이 연장자에 대한 존경심이 뛰어나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종족들이 원하지 않는 아이들을 죽이듯 노인들을 죽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방법들은 문화에 따라 달랐지만 그리스도 이전에 노인들의 가치는 그 종족들의 특별한 문화에 따라 달랐다. 조상제사를 드리는 부족이 있었는가 하면 고려장으로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 몬 부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모든 인간의 생명은 귀한 가치를 갖게 되었고 거기에는 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항상 오늘날보다 높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1892년까지만 해도 100명 가운데 1명만이 65세를 넘길 정도였다. 그래서 노인들의 건강이 문제가 된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다. 최근에 와서는 노인들의 병원치료와 안락사 같은 문제들이 화제가 되지만 유대-기독교의 고귀한 생명관을 내버리고 저급한 가치관으로 대체하는 것이 유감이다.

노 예

로마제국의 인구가운데 반이 노예였다. 아덴의 인구중 4분의 3이 노예였다. 노예들의 목숨은 주인의 기분에 달려 있다. 수세기동안 기독교는 노예폐지에 앞장 서 왔다. 물론 고대세계에서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 영국의 복음주의자 윌버 포스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서다 그것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노예소유자들 가운데도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있었지만 기독교인들은 2천 여년동안 인류의 염병같은 노예제도 폐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고대세계에서 노예들의 상황은 지옥같은 것이었다. 로마에서는 한 집안의 주인이 살해당하면 그 집의 노예들은 어떤 법적심문 없이 죽일 수 있었으며 여자노예들은 손님이 오면 손님 대접으로 하루 밤을 배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고대에는 같은 인종 끼리도 노예로 삼았다. 신들도 노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노예는 아무런 권리도 없었고 사회와도 무관했으며 국가나 신 과도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변화되었다. 신약성경의 빌레몬 서를 보면 바울은 노예를 소유한 부자 빌레몬에게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그의 편지와 함께 지금은 바울과 감옥생활을 같이하는 오네시모(도망친 빌레몬의 노예)을 빌네몬에게 보낸다. 바울은 두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편지에서 빌네몬에게 말한다 “(오네시모)를 받아주어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라”고 말한다.

오늘날 수백만의 미국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으며 별로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가 들어 본 가장 혁명적인 개념이다.’살아있는 도구’인 노예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라구?’절대로 상상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말이다. 크리스천 형제애라는 개념과 함께 그러한 말은 노예의 족쇠들을 고드름 녹듯이 녹여버렸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에서는 노예제도를 제거하려는 직접적인 도전이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한다. 2세기, 3세기에 크리스천 지도자들은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 지도자들은 마음의 개혁을 위해 애썼지만 사회질서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가 처음부터 노예제도의 폐지를 들고 나왔다면 초대교회에서 그렇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일단 복음이 널리 퍼지자 결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마음을 개혁함으로 때가 되면 사회질서를 개혁하였다.

폴튜갈과 스페인 사람들의 손에서 노예들은 정말 추악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들여 노예로 팔아먹었다. 여기에는 영국의회의 의회의원이었던 복음주의자 윌버포스가 ?동지들을 규합하여 노예무역 폐지운동에 앞장 섰다. 25년 동안의 폐지운동의 결과 영국의회는 그의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실제로 노예들을 영국영토에서 완전히 없애기까지 또 다른 25년이 걸렸다.

그리고 30여년 후 미국에서 남북전쟁과 북부의 강단에서의 설교 덕분으로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졌다. 1835년 미국의 노예제도폐지 협회의 회원가운데 3분의 2가 개신교 목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Underground Railroad라는 탈출노예 지원단체의 지도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퀘이커 교도였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 노예제도 폐지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링컨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기독교 신앙과 노예제도는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검투사

권투가 잔인한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고대에 사람들은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였다. 사람들의 피가 군중을 흥분시켰던 것이다. 로마는 잔인하였다. 노예였던 검투사들은 죽기까지 싸우곤 하였다. 검투사들은 칼로 상대방을 제압하게 되면 황제를 바라보게 된다. 황제가 엄지를 내려 보이면 이 검투사는 적의 목을 내려치고 군중들은 흥분한다. 이 경기가 절정에 이르렀었던 트로얀 황제때에는 단지 4개월 동안에 1만 여명의 검투사들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 또한 초기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경기장에서 사자들과 온갖 야생동물들에 의하여 찢겨 나갔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퍼져가면서 검투사들의 경기는 점점 시들해졌고 교회사가 라투렛에 의하면 콘스탄틴 황제는 검투사 경기를 금지시켰다. 수만명의 크리스천들이 죽어간 콜로세움에는 지금은 커다란 십자가가 세워져서 그때의 비극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자살

자살이 라는 것은 성경에서 다섯번 언급되어 있다.4000여년의 성경역사 가운데 오직 다섯 사람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들은 모두가 가롯 유다와 같이 사악한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의 역사와는 달리 로마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본디오 빌라도와 부르투스, 안토니, 크레오파트라,네로 황제 세네카, 하드리안 황제, 등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크리스천들의 영향이 퍼지게 전에는 고대로마에서 자살이란 보편적인 것이었다.

기독교는 고대사회나 현대사회에서나 자살에 대한 적이었다. 오늘날 새로운 이교세계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 요즈음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어떻게 자살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사랑한다’)잠언 8:36)라고 하였다.

결 론

어떤 사회의 도덕성은 그 사회가 주장하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견해로 쉽게 판단할 수 있다. 1844년에 해스팅이 휘지 아일랜드를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생명의 값이 매우 싸다는 것과 그래서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서 사람 하나을 7달라면 살 수 있었다. 그것은 암소의 값보다 싼것으로 그렇게해서 사람을 산 다음에는 마음대로 일도 시키고, 때리기도 하고 마음내키는대로 먹이기도 하고 굶기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먹였다. 그는 몇 년 후에 그곳에 돌아가 인간의 가치가 굉장이 오른 것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때리거나 먹일려고 7달러에 사람을 살 수 없었다. 사실 사람을 7백만 달러에도 살 수가 없었다. 왜냐고? 그때 후지아일랜드에 1200여개의 교회가 있어서 그곳을 통해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 주고 산 자들로서 그것은 은이나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값진 존재라는 것을 배워왔다.

세계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해 보라 생명의 가치는 “생명? 피! 그건 가치가 없어. 값싼것 가운데서도 제일 싼거야.” 이 책을 읽는 당신은 만약 그리스도가 태어나지 않았드라면 아마도 오늘의 당신은 더 비참할 것이다..

*James Kennedy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Thomas Nelson Publisher

 


제1장 그리스도가 세계사에 키친 영향 개관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 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그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되며,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마태복음 13장 31-32)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생활이나 학문에 놀라운 변혁을 가져오는 일을 함으로 그들의 이름이 인류역사에 길이 빛나며 인구에 회자된다. 그러나 예수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인간의 생활 곳곳에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비극은 그것의 상업화가 아니라 그것의 진부함에 있다. 사람들이 가장 크게 득을 보고 있음에도 그를 잊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예수님은 계시록 21장 5절에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손을 댄 것들은 전적으로 변화되었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시간과 접촉하셨을 때 그의 출생은 우리들이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 전 세계는 시간의 흐름을 예수 이전(BC) 과 예수 이후(A.D.)로 나눈다. 불행하게도 요즘 세대들은 무식해서 A.D.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anna Domini로 “주님의 해”라는 의미이다.

무신론 주창자건, 무신론을 강요하는 공산주의 국가이건 다같이 예수의 탄생을 원년으로 하는 ?A.D.를 사용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는 작지만 충분히 자랐을 때는 많은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개인들에게 적용되지만 세계속의 기독교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기독교의 뿌리는 이스라엘 변방 시골에서 3년동안 설교하고 기적을 행했던 랍비에 의해 시작된 작고 볼 것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18억 이상의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며 1천만 명 이상이 성직자로 봉사하고 있다.

예수 시대에 황제와 총독들은 권력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육신은 썩어졌고 영혼은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그들을 따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그들을 경배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예수의 경우는 다르다. 나폴레옹은 “나는 역사가운데서 예수와 유사한 사람을 찾았으며, 그의 복음과 같은 것들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국가들은 사라져 버리고 왕좌들은 없어져 버렸지만 교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였다.

개 관

볼 것 없이 출발했음에도 교회는 역사상 어떤 운동이나 세력보다도 이 지상에 좋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독교가 그동안 끼친 긍정적인 기여를 열거한다면:

*중세기에 시작된 병원
*중세기에 시작된 대학들 특히 대부분의 우수한 대학들이 크리스천들에 의해 기독교의 목적을 위해 설립되었다.
*대중 교육과 문맹퇴치 사업
*자본주의와 자유기업
*특히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대의정치
*정치권력의 분산.
*시민의 자유
*고대와 현대에서의 노예제도 폐지
*현대 과학의 발전
*컬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女權 향상
*선한 사마리아인 정신을 계승한 자선사업
*간음, 동성애, 그 외 성적 문란에 대한 반대
*정의에 대한 높은 기준 설정
*일반인에 대한 지위향상
*인간생명 중시사상
*야만인들과 원시문화에 대한 계몽
*세계적으로 많은 언어들을 위한 문자 제정
*예술과 음악의 급격한 발전
*수많은 영혼들의 구원

기독교의 기본적인 목표는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지만 위에 언급한 것들은 그 부산물로 나타난 것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형상을 입었을 때 그는 인류에게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였다.

인간의 삶에 예수께서 무슨 영향을 끼쳤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하는 것들을 살펴볼 것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1946년에 상영된 영화 <It’s Wonderful Life>에서 지미 스튜얼트는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주변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장면들을 보게 된다. 프랭크 카프라가 감독한 이 영화의 요지는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들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부재로 인한 공백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누구보다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만약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빈자리는 커다란 계곡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향은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영향이 분명한 것부터 시작해서 한번 측량해 보려고 한다.

반 기독교 주창자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예수의 오심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한 19세기의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기독교가 전 세계를 오염시켰다고 하였다. 그는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수는 너무 일찍 죽었다. 만일 그가 훌륭하게 성숙하게 될 때까지 살았더라면 그는 자신의 교리를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니체는 또한 역사는 로마(이방인)와 이스라엘(유대인들과 기독교이) 간의 싸움이었는데 이스라엘이 이기고 있고 십자가가 고상한 덕성을 가진 다른 모든 것들을 정복하고 승리했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라고 하였다.

니체나 후에 나타난 히틀러는 튜톤의 용사들을 부패 시킨 것이 기독교라고 하였다. 니체에 의하면 예수가 이 세상에 오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에게 “노예의 도덕성”으로 부패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니체의 많은 생각들을 그의 철학적 제자인 히틀러가 실행에 옮겼는데 그 결과는 1천 6백만 이상의 죽음이었다.

히틀러는 그의<나의 투쟁 Mein Kampf>에서 교회는 유대인들의 사상과 법을 퍼트렸다고 주장하면서 일단 유대인들의 뿌리를 뽑은 다음에는 기독교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리기 원한다고 하였다.

니체와 히틀러는 다같이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사람들은 이 둘만이 아니다. 스타린과 모택동도 그의 통치하에서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천 만명 이상의 크리스천들을 학살하였지만 그들이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는데는 실패하였다.

나는 이 글에서 역사적으로 정치가들이나, 철학자들 그리고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이 계속해서 반 기독교 적인 선전들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삶이 이 지구상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며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먼저 기독교가 세계문명에 끼친 중요한 공헌들을 살펴 보고 그 다음에 기독교 역사상 교회가 저질렀던 부정적인 영향을 다루려고 한다. 우리는 십자군과 종교재판, 교회의 반유대주의 등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다루면서 교회의 죄를 다룰 것이다. 그 다음에는 무신론자들의 죄를 다루어 보겠다. 또한 후기 기독교 사회인 서방에서 더욱 잔학한 전쟁이 자행됐는가? 하는 의문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어느곳에서보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신화같은 이야기들도 다루어 보겠다. 그리고 결론으로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

교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시대별로 기독교의 영향을 정리하지만 여기서는 기독교의 영향을 문제별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변화시킴으로 개인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온 지구가 같이 공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정적인 영향이다.

이제 James Allan Francis 의 예수의 생애와 영향에 관한 글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떤 고독한 삶

그는 별 볼일 없는 시골에서 가난한 여인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다른 동네로 옮겨져서 자랐으며 30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목수로 지냈다. 그리고는 3년 동안 그는 떠돌이 설교자였다. 그는 책을 쓴 것도 없으며 어떤 공직에 오른 적도 없다. 그는 가족도 없었고 자신의 집도 없었다. 그는 대학에도 가보지 않았고 큰 도시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는 그가 태어난 곳에서 2백 마일 밖을 가보지 못했다. 그는 특별히 위대한 일을 한 것도 없다. 그는 어떤 공로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고 오직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민중들의 여론이 그를 등졌을 때 그는 단지 서른 세살에 불과했다. 그의 친구들은 도망쳤고 그중 한 사람은 그를 부인하기 까지 하였다. 그는 적들에게 넘겨졌고 재판에서 조롱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두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밖혔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갈 때 그를 처형한 군사들은 그가 이 세상에서 소유했던 유일한 재산인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았다. 그가 운명했을 때 그는 친구의 선의로 그에게서 빌린 무덤에 눕혀졌다, 그 후 20여 세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오늘 그는 인류사에서 중심 인물이 되었다.

보무 당당하던 장군들과 해양을 넘나들던 제독들과 의사당을 차지했던 의원들 그리고 천하를 지배하던 왕들 그 누구도 고독한 삶을 살았던 이 사람보다 지구위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에서 발취, 정리

*Dr. D. James Kennedy 프로리다에 있는 Coraal Ridge 장로교회의 수석목사로 Evangelism Explosion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고 Knox Theological Seminary의 학감 등을 지냈으며 50여권의 저서를 출판하고 활발하게 라디오와 TV방송을 하고 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