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2021년 4월 15일>

제임스 케네디의 <그리스도와 문명> 마지막 회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드라면?

 

제 16장 마무리하면서, 어디로 갈것인가?

만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임을 알리라-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3장 35절)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사명

지면관계로 또는 필자의 무지로 기독교 신앙이 이 세상에 끼친 축복들을 언급하지 못하고 넘겨버린 것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원래 북 아메리카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대륙의 독자들에게는 미급한 것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다른 지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들이 나오기를 기원한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살펴본대로 오늘날 우리들이 향유하는 많은 좋은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에서 배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예수는 종종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떤 기관이나 개인들이 때때로 펜을 들고 앉아서 “우리들의 사명”에 대해 적어보면서 그들의 사명을 새롭게 다짐해 보곤 한다. 우리가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 우리들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명하신 사명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 째는 (문화적인 명령)으로 하나님이 구약의 창조초기에 주신 것이며 둘 째는 (위대한 사명으로)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던 때 주신 것으로 첫 번째 것은 창조 초기에, 둘째 것은 새로운 창조 초기에 주어진 것이다. 창세기 1장 26-28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첫 번째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것이다. 두 번째는 마태복음 28:19-20 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로 삼아 예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하신 것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대해서는 입으로만 때우고 말지만 고맙게도 복음전파에 아주 적극적인 소수자들이 늘 있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인 문화적 위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듯 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려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십자가 발아래 갖다 바친다. 이 세상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하며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기구들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결혼과 가정, 교회(교회라고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다), 국가,(분명히 항상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그것이 음악이건, 문학이건, 예술이건, 상업이건, 사업이건 건축이건, 정부건, 교육이건 무엇이든간에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남겨놓으신 가능성과 보화들을 끄집어내어 펼쳐보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공하여야 한다.

천우신조로 시대에 따라 많은 크리스천들이 문화적인 소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난 거의 한 세기동안의 교회들이 종종 문화적인 소명을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우리들은 왜 우리들이 세상에 끼친 영향력이 약화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는 현대사회에 적절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는 자신들을 적절치 않은 존재로 전락시켜 놓고 그 결과를 따먹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은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경건한자들의 거대한 빈민가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우리들은 기독교인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의 교육제도를 불신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 의해 세워진 과학을 많은 경우 믿지않는 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들은 수많은 언론들을 저급한 불신자들에게 넘겨주어 계속해서 그들의 신이 없는 사상과 이념에 의해 계속해서 폭격을 받게하였다. 우리는 정부의 통제력을 세상을 향해 악마의 하수인 노릇을 해온 불신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들은 뒤로 물러나서 더 이상 문화적인 사업을 추구하지 않았다.

세속화의 승리는 불가피한 것인가?

세속화란 불가피한 것인가? 하바드 대학부터 YMCA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관들이 크리스천들에 의해 기독교 목적을 위하여 시작되었으며 이를 위해 많은 희생과 경비를 담당하였는데 결국은 그들의 원래 설립취지에서 떠나 세속화를 부추기는 기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경향은 불가피한 것인가?

초기 퓨리탄의 지도자였던 코튼 매더는 필그림과 퓨리탄의 기독교가 사라지기 시작하자 17세기 후반에 “종교는 번영을 낳지만 딸은 어머니를 다 소진한다”고 한탄하였다.퓨리탄들은 뉴잉글랜드에 단지 3, 4 세대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이미 그들이 즐기던 번영의 근원인 기독교에서 떠나기 시작했다.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언제나 있는 위험이다. 그런 현상은 고대 이스라엘에도 있었으며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경고하셨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주는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주 너희의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살지라도, 또 너희의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과 금이 많아져서 너희의 재산이 늘어날지라도, 혹시 교만한 마음이 생겨저 너희를 에짚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 . . . 너희가 마음 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신명기 8장 11-14, 17-18)

이 말들은 예언이 되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그들이 번영하자 하나님을 떠났고 그러한 변절때문에 심판을 받았다. 물론 변절은 번영하면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것이 아니지만 가능성은 다분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경고를 받았으니 파숫군을 세워야 한다.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각성이다. 기관들을 시작한 우리들에게는 그 기관들이 계속 본래의 로선을 잘 따른다는 보장이 없다. 그 좋은 예가 하바드대학이다.
도리어 그와는 정 반대로 끝맺을 가능성이 있다. 죤 하바드 목사의 기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목사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하바드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왕국 발전에 반대되는 역할을 하고있다. 물론 우리들은 그러한 기관들이 그러한 배신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균형을 맞추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인 실레를 통해 경고했어야 한다. 아마도 어떻게 이러한 기독교 기관들이 그들의 원래 목적에서 이탈했으며 그러한 탈선을 막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들을 취해야 할런지를 연구 발표하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 생전에 그러한 배신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정도를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다

우리들은 신앙에서 정통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며 우리들의 행동에서 정통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은 "만일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괭과리에 불과하다(고린도 전서 13장 1절)"고 말한다.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켜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것이 사랑이다.

세상은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인지를 주시하고 있으며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지,아니면 인간이 만든 종교를 따르는지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찾고 있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자라면 그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당신의 생활가운데서 나타내 보여줄 것이다. 그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대부분이 그의 백성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으로 나타날 것이다.

위대한 삶의 비결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었느냐에 달렸다. 마지막 단계에서 당신의 삶을 돌아 볼때 삶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할 때는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내어주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사랑은 가장 위대한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릏 때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들이 네가 나의 제자인줄 알리라”(요한복음 13:35)고 하셨다.

믿든지 말든지 이 세상에는 3만 3천 8백여개의 분열된 기독교 교파들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서로 힘과 노력을 합치려하기 보다는 새로운 기구들을 출범시키려고 머리들을 짜내고 있다. 물론 빌리 그래함이나 빌 브라이트 같이 공동선을 위해 다른 성직자들과 힘을 합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는게 아니지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더욱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독교회가 쇄퇘해가고 있는 오늘날과 같은 때에 우리는 진리와 역사는 우리편이라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역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CCC의 설립자요 운영자였던 빌 브라이트는 "역사(History)는 그의 이야기(His Story)다"라고 하여 역사는 예수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하였다. 역사에서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시간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 사이의 시간인 것이다.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편 110편 1절에 보면 다윗이 예수보다 약 1000여년 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있어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늘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그의 발판으로 만들고 계신가! 당신은 그리스도의 편이 되든지 그의 발판이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것이다. 예수는 왕중왕이시요 주의 주이시다. 우리는 크리스천들이 이 지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칼을 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역사상 그런 비참한 시도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실패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국을 자신의 특정한 시간에 이루시며 그는 언젠가 그것을 완성하실 것이다.

역사에는 어떤 패턴이 있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판이 되도록 일하신다. 그것이 맑스건, 레닌이건, 스탈린이건, 히틀러건, 무쏠리니건 또는 모택동이건 간에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판이 되도록 역사하신다. 비록 그들이 잠시동안 번성할지라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한 그들은 파멸할 것이다. 여기에는 오늘날 십자가를 비방하는 모든 원수들과 현대 팦문화에서 볼 수 있는 수 백만명도 포함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러한 세력의 하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하라. 회개하고 믿을것인지 아니면 발판이 될것인지.

역사는 항상 쓰여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를 섬길 수 있는 위대한 특권을 부여해 주셨다. 정성을 다해 그를 섬김으로 우리들은 그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작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러한 도전에 참여하여 우리들의 사회와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고 상상해 보자. 하나님께서 보다 많은 크리스천들을 들어 쓰셔서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을 더 좋은 세계로 변화시키시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기원한다. 아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금까지 16회에 걸쳐서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가 편집한 저서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을 발취, 정리하여 계제하였다. Dr. D. James Kennedy는 프로리다에 있는 Coraal Ridge 장로교회의 수석목사로 Evangelism Explosion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고 Knox Theological Seminary의 학감 등을 지냈으며 50여권의 저서를 출판하였다.

 


 

제 15 장 잔인한 세계
-기독교의 억제력이 사라졌을 때에 일어난 일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모두가 썪어서 더러우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시편 14편 1절)

프랑스가 함락되고 미국이 개입하기 전 2차 세계대전중 가장 암담하던 때에 쳐칠은 우방과 적들에게 “영국도 항복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당시 그는 한 연설에서 “웨이간트 장군이 프랑스 전쟁이라고 부르던 것은 지나가 버렸다. 이제 영국의 전쟁이 시작되려고 한다. 이 전쟁에 기독교문명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하였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고 할 수 있는 이 위대한 정치가는 새로운 이교와 폭정과 대비되는 기독교와 정중함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한 것이다. 섭리에 따라 기독교문명이 승리하였다. 그러나 패배한 자리에는 온갖 폭력이 난무하였다.

앞장에서는 교회가 저지른 죄악들을 살펴 보았다. 이 장에서는 무신론 특히 20세기의 무신론이 저지른 죄악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20세기의 잔악한 행위들

인간이 동료 인간들을 학살한 점에서는 20세기를 능가한 때가 없었다. 20세기에 대략 1억 7천만명 이상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학살되었다. 그 가운데 1억 3천 만명 정도는 무신론 이데오로기 때문에 죽었는데 그 가운데는 유대인들을 인간박테리아로 보는 히틀러의 인종주의나 프로레타리아문화혁명(1966-1976)중 기독교를 정리해 버리려고 시도했던 모택동의 시도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현대의 기술문명이 이러한 대량학살을 가능케 했는가 하면 대부분의 20세기 잔학행위들은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거부한데서 발생한 것이다. 누군가가 언급한대로 “18세기에는 성경이 죽었다. 19세기에는 하나님이 죽었다. 20세기에는 사람이 죽었다. “

3세기 전 소위 계몽시대에는 성경의 권위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세기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었다. 예를 들면 니체가 처음으로 “하나님은 죽었다.”고 웨친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결실을 맺어 그 어느때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누군가가 낙서를 했다. “하나님은 죽었다.” 그 아래 “니체”가 싸인을 했다. 그 아래에는 “니체는 죽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싸인을 했다.

휴매니스트나 무신론국가에서 놀라운 사실은 그들에게는 호소할 곳이 인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를 건국한 선조들은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자에 의해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양도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권리는 마음대로 축소할 수 있는 국가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요 인간이나 국가를 초월하는 하나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휴매니스트들의 국가에서는 인간만이 존재한다. 휴매니스트 국가는 독재나 폭정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도스토에프스키가 말한대로 “하나님이 죽었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무신론의 목조르기

성경에 ”무릇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잠언 23장 7절)란 구절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불신앙과 무신론의 결과는 실제적이고 비극적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서서히 사상, 지식, 철학, 문화 등에 스며들어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한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때 그는 갑자기 물질주의적인 우주에 서게 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1886년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죽었다. 우리 모두가 죽였다.”라고 선언하여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게 하면서 유럽하늘에 처음으로 먹구름이 드리우게 하였다. 종교가 붕괘되면서 커다란 진공이 생겨났고 그 후의 20세기 역사는 이 진공을 메꾸는 과정이었다.

그 진공은 전체주의 국가로 채워지면서 수백만명의 자유를 빼았아 갔으며 집단수용소와 낙태, 동족상잔, 자살, 안락사, 각종 범죄 그리고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전쟁 등으로 채워졌다.

역사가 폴 죤슨은 현대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과학자들에 의해 공인된 1919년에 시작되었다고 하였는데 아인슈타인은 그것이 물리학에 적용되는 원리이지 윤리학과는 관계가 없다고 항변하였지만 그 이후의 대중들이 상대성 원리에 익숙해 지면서 20세기 역사는 상대성의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하였다.
무신론자들에게는 객관적인 도덕기준이란 없다. 진화적인 인본주의와 모든 다양한 무신론적 개념들은 오랫동안 도덕적 기준을 수립하려 하였지만 비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성경은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들은 끔찍한 일들을 행하였다”고 하였다.

무신론자들이 다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무신론자들 가운데 착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착함은 기독교에서 차용한 것으로 그들이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착한 것이 아니라 무신론자임에도 기독교의 영향으로 착해진 것이다.

비극적인 결론들

지난 몇 십년동안 우리 학교에서는 절대적인 도덕이란 없으며 아무도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고 가르쳐 왔다. 그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가치관을 선택하고 그들의 윤리를 선택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 사사기는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대로 하였다”(사사기 21:25)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러한 사태의 결과는 매일 매일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자녀들이 ‘도덕적인 맹목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무신론이 사회를 장악하면 도덕적 상대주의가 급속히 전파되고 도덕적 상대주의가 횡횡하면 신성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은 예수께서 오시기 이전처럼 값싼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나님의 가치가 떨어지면 인간의 가치도 떨어진다. 어떻게 히틀러가 6백만의 유대인들과 그외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은 1억명 이상의 백성들을 고문하고 죽일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끔찍한 짓들을 할 수 있었을까? 쥐 한 마리를 죽이는 것도 끔찍하지 않은가? 바퀴벌레를 밟아 죽이는 것도 섬뜻하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데! 인간은 이성적인 피조물인데. 미친 소리, 누구의 형상? 하나님? 우리가 니체와 함께 하나님을 죽여버린걸 모르나. 이성적이라구?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아. 모든게 부조리해(불합리해). 바퀴벌레를 밟아버려! 사람을 죽여봐. 백만명! 별거 아니야. 스타린이 한 말을 기억하는가.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1만명이 죽었다면 그것은 ‘통계”에 불과하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인간은 전능하신 분의 자녀이며 그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사명이 있고 삶의 목적이 있다. 그리고 파라다이스에서 영원히 창조자와 함께 할 운명을 가졌다. 이것이 하나의 대답이라면 또 다른 대답이 있다. 인간이란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진 짐승으로 우연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고대 바다에서 살다가 나무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살게되었다. 지금 여기에 우리가 있다. 가까운 4촌이 침판지이고 기니아 픽이나 쥐들도 사촌이다.

19세기에 널리 퍼졌다 20세기에 결실을 맺은 진화론은 지상에서의 인간의 삶을 무척 값싸게 하였다.

진화론적 무신론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인간관이란 어떤것인가? 인간은 고상한 기원을 가지고 고상한 운명을 갖고 고상하게 피조된 피조물인가? 아니면 별찮은 물질의 합에 불과한가?

인간성에 반대되는 범죄

일단 진화론적인 인간관이 적용될 경우 인간성에 반하는 끔찍한 범죄들이 시작되었다. 최악의 범죄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맑스는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키면 그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정부는 말라 없어진다고 예견하였다. 그리고 프로레타리아들은 원래 조화롭게 잘 살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폴 죤슨이 말한대로 “20세기의 경험에 의하면 지상낙원이란 조직폭력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여주었다.

공산주의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생명은 값싼것이 되었다. 나치독일의 유대인들과 같이 수 천만의 농부들이 짐차에 빽빽히 실려서 음식도 없이 열흘, 이십일 이상을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수 천 마일 떨어진 러시아로 수송되어 전국으로 분산되었다. 소비에트에서 집단수용되는 과정에서 천 만명이상이 죽었다.

여기에서 사상자들의 통계를 내면서 우리는 그저 경직된 마음으로 통계를 내고 있을뿐이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죽이고 불구자로 만든 사람들은 진짜 사람들이었다. 굶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감자를 도적질하다 잡힌 열 네살난 아이를 양쪽 발을 꺾어버렸다. 그러니 그 소년은 혼자 걸을 수도 없었다. 이런 아이들을 시베리아로 데려다가 방치해 버렸다. 이런 인간은 쓸 모가 없고, 가치가 없다는 인간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제어하는 영향력이 한 국가나, 문화에서 제거될 때 자연히 완전범죄가 이루어지며 그것이 20세기 후반에 반복되어 일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죽은 사람들이 그 어느 이름으로 죽은사람 보다도 많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맑스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죽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가장 추악한 범죄는 종교재판으로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철회하지 않은 이교도 3만여명이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스탈린의 숙청에서 죽은 사람은 4천 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스탈린은 교회를 박해하였을 뿐 아니라 1934년 전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시도했던 반 그리스도로 널리 알려졌다.

스탈린 못지 않게 하나님을 증오했던 힛틀러는 현대전체주의 국가의 효시이다. 그는 인간세균이라고 생각하는 인종들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 절대적인 인종주의자로 유대인을 죽이고 짚시, 스라브, 폴랜드인등은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나치는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까지 부려먹다가 마지막에는 총알도 아깝다면서 개스실에 넣어 증발시켜 버렸다. 집단수용소의 첫 번째 희생자들은 7만 여명의 ’불구자’들이었다 .이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용감하게 비난한 사람들이 기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래서 안락사로 시작한 것이 집단수용소의 개스실이었으며 결과 6백만 유대인들과 9백만의 다른 사람들(주로 기독교인들)이 소멸되어 버렸다.(이들에 대한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모택동이 7천 만명의 중국인들을 살해하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1948년 모택동이 중국을 장악한 이래 첫 10년 동안에 2천 4백만 이상의 중국인들이 숙청, 기근, 등으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어갔다. 1959년에서 1962년 사이에는 2천 5백만명이 집단화 과정에서 기아로 사망하였다. 1969년에서 1976년 중국의 “위대한 노동자문화혁명”때에는 2천 2백만 여명이 죽었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조직적으로 단일 국가가 기독교와 종교를 단절시키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모택동은 도합 7천 2백만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공산주의가 캄보디아를 장악한 후 인구 7백만의 국가에서 2백 내지 3백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상적인 국가건설에 관심을 가질뿐 사람이 죽는데는 관심이 없다. 인간의 고통이나 생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산주의의 교리나 교조에 헌신하는 것이 공산주의 역사에서 공통되는 것이다. 이 외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여러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나 공산주의 지원의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모택동 7천 2백만, 스탈린 4천 2백만, 여기에 힛틀러의 1천 2백만을 합치면1억 2천 7백만이 된다. 여기에 다른 무신론 이데오르기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합친다면 1억 3천만에 이른다. 여기에 20세기에 벌어졌던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합친다면 1억 7천만명을 훌쩍 넘는다.

결 론

한 세기 전 위대한 작가이며 동시에 미국의 영국담당장관이였던 제임스 러셀 노웰은 한 연회석에서 어떤 사람이 기독교를 비웃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기독교의 영향에 회의하는 사람에게 이 지구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없이도 평화롭고 안전하게 그리고 품위있게 살 수 있는 곳, 여성들이 대우 받고 어린이와 노인들이 존경받으며 그들의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는 곳을 한번 찾아보라고 도전합니다. 만약 그런곳을 찾는다면 저는 그들에게 그쪽으로 이민가라고 그리고 거기에서 그들의 불신앙을 주장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14장 교회가 저지른 죄악들
--기독교가 역사에 끼친 부정적인 면모들-

너희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로마서 2:24절-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선행들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기록된 교회의 부정적인 면모들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태만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교회의 죄악들” 때문에 교회의 신뢰성이 영원히 작살나기도 하였다.

교회는 완전해 본 적이 없다. 그와는 정반대다. 그러나 교회의 기록을 모두 세밀히 살펴 본다면 좋았던 것이 나쁜 것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외에도 크리스천들은 크리스천들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다. 교회가 그동안 하여 왔고 계속해서 하고 있는 모든 착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십자군, 종교재판, 마녀사냥과 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상기시킴으로 마치 그것들이 역사에 기록된 크리스천의 전체적인 모습인듯 부각되었다.

진정한 기독교는 명목상의 기독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면서도 나사렛 예수의 원칙과 가르침에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름과 현실을 구별하여 보면 진정한 기독교는 세계에 순수한 축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십자군 운동은 이슬람교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다. 모하메드의 종교가 7세기 칼을 휘두르며 퍼져나가자 수백만명의 크리스천들이 개종하거나 아니면 죽어 갔다. 실제로 모하메드 세력들은 유럽을 정복하려고 시도하였지만 732년 프랑스에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충돌이었던 투르(Tours) 전투에서 촬스 마텔(The Hammer)에 의해 제재를 당했다.

무슬림들이 7세기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처음에는 크리스천 순례자들이 성지를 순례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11세기 예루살렘으로부터 아주 광폭한 무슬림 터키인인 셀쥭족들에 의해 크리스천순례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그런데다 터키족들은 콘스탄틴노블 바로 건너편에 요새를 가지고 있어서 기독교왕국의 한 부분인 비잔틴의 황제가 위협을 느껴 이 지역의 터키인들을 쫓아내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기독교왕국의 수장인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95년 프랑스의 크레몽트에서 행한 감동적인 연설을 통해 성지의 불신자(불한당)들을 축출하기 위해 수 천명의 기사들과 용사들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4년 후 완전히 지쳐버린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수없이 많은 군사들이 죽고, 수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에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달하는데 성공하였다. 드디어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달하였을 때 완전히 악이 오른 “십자가의 군병”들은 수많은 주민들을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야만적인 방식으로 집단살육을 하였다. 그들은 모든 무슬림들과 심지어 유대인들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최고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성지는 “크리스천”들의 손에 돌아왔다. 그러나 2세기에 달하는 십자군 역사상 이것은 에루살렘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는 유일한 성공이었다.

50년 후 십자군이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만들었던 Edessa 요지가 무슬림들의 손에 함락되고 이를 계기로 제2차 십자군이 시작되었는데 이에 참가하였던 성 버나드에 의하면 이때 십자군에 참가한 “그리스도의 군병”들은 대부분이 유럽에서 범죄경력자들로 기피의 대상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명목상의 크리스천었을 뿐이었다. 그 후 계속된 십자군들은 더욱 비참하였다. 같은 기독교도시국가들 사이의 싸움에 동원되는가 하면 콘스탄티노블의 함락에도 기여한다. 아마도 이 군사작전중 가장 비극적인 것은 어린이 십자군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싸운다”는 지도자들의 말에 오도되어 죽거나 포로가 되거나 노예로 잡혀간 것이다.

호전적인 무슬림들이 개종자들을 폭력으로 회유하면서 한결같이 코란을 내세운 반면에 크리스천들은 이같은 무자비한 전쟁을 자행함으로 기독교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초대기독교에서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확장주의자들을 위해 무기를 들지 않았다. 그들은 제국의 군대에서 군사로 싸우지도 않았으며 지도자들로부터 참여하라는 격려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1000여년 후에 크리스천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무고한 사람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무슬림시민들 또는 그들의 동료인 콘스탄틴노블의 기독교인들까지 죽였다.

기독교왕국과 기독교
십자군 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천들의 지나친 행태들과 비기독교인적인 성격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군사적인 캠패인은 기독교왕국과 기독교의 차이점을 구별하도록 요구한다. 기독교는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구주로 믿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과거의 기독교왕국이란 진정한 크리스천들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경험하지 못한 명목상의 크리스도인들로 구성되었다. 기독교왕국의 구성원들 가운데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만약 갱생의 의지 없는 사람들-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된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경건치 못하고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를 경향이 있다. 그러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그러한 악한 행동으로 교회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교회에는 보이는교회(기독교왕국)과 보이지 않는교회(진정한 기독교)가 있다. 우리들이 예배보는 교회건물은 그리스도의 보이는 교회의 한 부분이다. 그러한 교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오는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그 구성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성경은 보이는 교회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진정으로 그에게 속한-성령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만으로 구성된다. 가롯유다는 보이는 그리스도회의 멤버였지만 보이지 않는 교회의 멤버는 아니였다.

중세기 유럽에서는 빈민가에 사는 유대인들이나 스페인의 무어족(무슬림들이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기독교왕국에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크리스천으로 간주되었는데 성경에 따르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 지역 전체가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는 갑자기 크리스천이 되어서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 행위가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로마황제 데오도시우스(347-395)는 로마제국을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로 선포하였는데 덕분에 수많은 비기독교인들이 하룻밤 사이에 “크리스천”들이 되었다. 크로스비(511년 경)는 프랑크를 오늘의 프랑스로 재편한 첫 번째 왕인데 그는 그의 군인들이 강으로 일열로 들어가게 하여 소위 말하는 도맷금 세례를 받도록 명령하였다. 이러한 처사들은 중대한 잘못으로 기독교는 그런식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은 구원을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집단적인 세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는 교회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독교는 수세기동안에 유럽을 기독교 왕국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기독교 왕국은 거기서부터 회개해야 할 많은 일들을 저질렀다.

기독교시대의 반 유대주의 -기독교시대에 믿을 수 없는 가장 모순된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반 유대주의 관행이다.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은 유대인을 숭배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얼마나 모순되는 관행인가? 중세기동안 유대인들은 종종 자연재해의 대속양으로 유럽 전역으로 내쫓기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면서 박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유대인들에 대한 악행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왕국의 한 부분이었던 비 크리스천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상 가장 악독한 반 유대주의자는 아돌프 히틀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캐톨릭배경을 가졌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의? 조상들이 믿던 고대의 이교를 선호하였다. 그의 사상은 반 기독교적이었다. 그는 “신은 죽었다”는 명제를 처음 만든 니체에게 경도되었고 의도적으로 성경의 하나님에 대항해서 싸웠다.

1930년대 중반, 나치가 독일의 철권을 장악하자 그들은 내놓고 반 기독교 정서를 고취시켰다. 독일지도자들은 “우리는 독일을 기독교의 치명적인 영향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라고도 할 수 있다. 설립자와 초기 추종자들이 유대인이었다.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25권이 유대인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반 유대주의의 씨가 신약성경에서 자랐다고 주장한다. 신약성경에서 우린는 유대인들과 크리스천 사이의 충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반 유대주의를 가르치거나 용납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초기에는 기독교가 유대교에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는사정이 바뀌어 기독교가 유대인들을 핍박하였다. 마틴 루터가 완고한 반 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권력이 크리스천들의 손에 쥐어졌을 때 많은 소위 말하는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와 같지 않은 방법으로 그것을 사용하곤 하였다.

반 유대주의의 기본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하나님을 죽인 유대인들 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유대인들의 문제는 역사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신학적으로는 다른것이다. 예수는 믿는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목밖히셨으므로 믿는 크리스천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예수게서는 자신하여 그의 생명을 포기하셨고 그러므로 그를 믿는 우리들은 영생을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예수를 죽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할 때 그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나와 너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 유대주의는 전적으로 비 기독교적인 것이며 그의 이웃들을 지극히 사랑하였던 그리스도의 뜻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종교 재판
종교재판은 의심의 여지 없이 교회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이단을 뿌리뽑고 정통을 확보하기위해 폭력을 사용한 것으로 1233년에 처음 설치되어 어떤 크리스천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재판소로 이단들이 회개하고 잘못된 신앙을 버리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단으로 선고받으면 일반적으로 화형에 처하였다.

종교재판이 유행하게된 배경에는 성직판매라고 하는 교회의 부패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와 권력을 위해 신부직에서부터 교황직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성직을 사고 파는 것이 유행하였고 이러한 부패상을 비판하는 평신도들이 늘어나면서 구원을 위해 교회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는 평신도들까지, 나아가 역사적인 기독교신앙을 거부하는 집단들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새로운 종교를 뽑아버리기 위하여 종교재판소가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종교재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추측건데 스페인종교재판에서만 1만 2천여명, 전체적으로는 3만 여명이 화형에 처한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종교재판의 정당성은 찾아 볼 수 없으며 기독교를 옹호하는 오늘날의 교회사가들 가운데 종교재판을 지지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어떤 역사가들은 종교재판에서 사용했던 고문이나 처형들은 당시 법죄자들에게는 일반적으로 가해지던 방식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으로 믿음이나 교리를 고치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이다. 버나드는 “신앙은 확신의 산물로 폭력으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이단은 논의로 극복되어야지 무기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특히 스페인의 종교재판은 그 잔인함과 야만적임에 있어서 가히 동물의 수준이었다. . 그것은 아주 끔찍하였다.??? 종교재판이 크리스천들이 비 크리스천들을 박해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재판을 한 집단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잊혀졌던 암흑시대에 살았으며 그들의 신앙은 너무나 왜곡되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과는 유사점이 없었다. 많은 경우 종교재판의 희생자들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복음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당시의 교황에 대한 미신을 거부하기 시작한 복음주의 개신교 신도들이었다. 이들은 종종 지독한 고문을 당했다. 종교재판 시대의 당국자들은 성경을 금하였다. 종교재판을 신성시하고 그에 참여하였던 권력자들은 백성들이 성경 읽는것을 금지시켰던 바로 그 권력자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방언으로 번역하는 것을 금하였으며 성경을 읽고 번역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화형에 처했으며 성경을 순교자들과 함께 불길에 던져버리기도 하였다. 끝으로 스페인 종교재판에는 사람들이 흔히 잊기 쉬운 정치적인 측면이 있다. 15세기 말 퍼디난도 왕과 이사벨라 여왕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지금의 스페인으로) 만드느라 분주하였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스페인의 종교재판은 “하나의 스페인을 만들기 위해 벌였던 한토막 연극이었다는 것이다.

종교전쟁-종교개혁이 끝나갈 무렵 불행하게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폭력적인 기폭제들이 불어났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는 부분적으로 종교전쟁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적인 교리문제로 벌어진 전쟁이라기 보다는 영토와 권력을 위한 것이었다.

많은 봉건시대의 영주들은 더 이상 교황에게 종속되기를 원치 않았으며 교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영지를 갖기 원했고 다른 사람들은 이들을 이단이라고 하였다. 종교전쟁의 극치는 몹시 맹열하였던 30년 전쟁(1618-1645)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캐톨릭과 개신교의 전쟁으로 시작하였으나 세속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30년 전쟁에서는 종교가 주요요인이었지만 그것이 유일한 요인은 아니었다. 전쟁은 웨스트파리아 평화조약으로 1648년 기독교 왕국안에서의 종교간의 전쟁은 종식되었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 캐톨릭과 개신교의 관계는 비교적 좋아졌다. 오늘날 많은 캐톨릭 지도자들은 더 이상 루터를 악당이라고 생각지 않고 당시 필요했던 개혁자라고 인정한다. 오늘날 개신교도들은 더 이상 이단이 아니고 “헤어졌던 형제들”이다. 오늘날 캐톨릭과 프로테스트간에 존재하는 충돌이란 말과 펜으로? 하는 것이지 칼과 대포로 하는 것은 더이상 없다.

크리스천 사이에서 교파들간의 폭력을 정당화할 성서적, 영적 정당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종교개혁 기간동안에 캐톨릭과 재세례파 사이에 벌어졌던 충돌은 부끄러운 것이다. 이때의 많은 범죄들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아니라 보이는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들이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그리스도를 몰랐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리라고 예언하셨다. 이 예언이 세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기독교를 말살시키려던 사울과 같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두번재는 크리스찬이라고 고백하는 5백만 이상을 알라의 이름으로 죽인 무슬렘들에 의하여, 셋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단들 (그 가운데 대부분은 복음주의자들)을 죽이는 기독교 왕국에 속해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살렘의 마술사 심판 중세기 후반 수 천명의 여인들이 마녀혐의를 받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다.?이 엄청난 미친짓에는 1486년에 출판된 야곱 스패너의 Malleus Maleficarum(마녀의 망치)라고 하는 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 미친짓이 일시적이나마 뉴잉글랜드의 예의 바른 퓨리탄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수백명의 혐의자들이 재판을 받았고 20여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마녀로 화형에 처해진 사람은 없다.
이런 미친짓을 종식시킨 것은 도리어 당시 퓨리탄의 지도자였던 Increase Mather와 그의 아들 Cotton Mather로 이들은 공개적으로 마녀재판을 반대하였다. 그리고 학살에 종지부를 찍게 하였다.

사회적인 죄악
이상의 것들 이외에도 기독교시대를 거치면서 때로는 크리스천들이 잘못된 편에 가담한 경우들을 볼 수 있다. 기독교왕국이 불의를 자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시류에 항거하여 정의를 왜치던 예례미아 선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실례를 든다면
기독교왕국에서는 무자비한 마녀사냥이 행해졌다. 이때에 유럽에서는? Frefrek von Spree가, 미국에서는 Increase Mather 목사가 잡혀갈 각오로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였다.

아프리카에서는 그리스도 왕국의 멤버들이 부패한 무슬림들과 함께 신대륙(아메리카)에서 노예무역을 시작하였다. 이에 맞서 기독교에서는 윌리암 울버포스와 그의 동지들이 영국에서 노예무역 폐지를 관철시켰고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미국에서 노예관행을 종식시켰다.

기독교왕국은 스페인 정복을 하면서 신대륙에서 수천명의 원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기독교에서는 재수잇 신부인 Bartholomew de las Casas가 나타나서 원주민들의 권리를 강력히 옹호하였다

기독교왕국은 제3세계를 식민지화 하면서 억압과 착취를 일삼았다. 기독교에서는 William Carey, Adorian Judson 그리고 David Livingstone같은 선교사들을 배출하여 어둠속에 살던 이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기독교왕국에서는 19세기 영국에서와 같이 빈민가가 생기고 어린 아이들을 혹사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기독교는 Shafterbury 경 같은 사람아 나서서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어린이 보호법을 만드는 등, 끊임없이 이들의 처우개선에 전력하였다.

이와같이 지금까지 보이는 교회의 지배 아래에서 많은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낫지만 그리스도는 진실된 소수의 삶을 통해 역사하셔서 균형을 이루실 수 있었다.

이외에도 대중정보화 시대를 맞아 TV부흥사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성직자들의 스캔들이 매스컴을 타면서 기독교의 이미지가 손상을 입고있다. 그들은 모두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들을 들어서 그의 목적을 달성하신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들을 군대와 같이 적절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교회의 잘못을 찾기위해 구태어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오늘날도 교회안에는 회개할 것들이 많이 있다. 이혼이나 혼전 성교 등이 기독교가정 안에서도 만연하고 있다. 또한 인종차별이 교회를 괴롭히고 있으며 여성들을 혹사하는 기독교 가정들도 적지 않다. 목회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황금율과는 반대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문제이고 돈과 명예를 밝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권력 또한 지도자들을 부패시키는데 그것이 교회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또 하나, 낙태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교회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낙태 반대가 대세이기는 하지만 목사들이나 기독교대학의 교수들중에도 낙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점잖게 안락의자에 앉아서 역사가운데 있었던 교회의 죄를 비판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날 교회의 행태를 어떻게 판단할런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미국에는 자칭 거듭났다(born again)는 교인들이 그렇게 많은데 도덕성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교회나 역사적으로나 현재에 행하는 죄악을 우리는 얼마든지 더 열거할 수 있다. 미남부의 크리스천들이 노에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했다던가 나치에 참가했던 크리스천들이 처음에는 히틀러를 아주 훌륭한 정치 지도자로 믿었다던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이 오랫동안 그 나라의 국교에 의해 정당화 되었다는 것 등등. 그외에도 신부나 목사들이 신도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그것도 어린아이들과 했다든가, 수많은 교회들이 아무것도 아닌것들 때문에 갈라지고 원수가 되는 일등을 열거할 수 있다.

결론
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교회는 과거의 많은 죄악들로부터 교훈을 얻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십자군운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단이라고 해서 그들을 정통으로 만들기위해 고문을 하지 않는다. 마녀라고해서 화형을 하거나 교수형에 처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역사>와 <기독교 역사>를 집필한 영국의 역사가 Paul Johnson은 그가 기독교의 역사릏 연구하면서 역사상 교회가 저지른 그많은 죄악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크리스천으로서의 믿음은 더 강화되었다고 고백하였다.

“기독교 역사는 크리스천 지도자들의 어리석고 사악한 행위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건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기독교때문이 아니라, 기독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를 지었음을 알게 되었다. 즉 기독교가 인류가 잘못을 저지른 중요 요소가 아니라 도리어 최고의(또는 유일한) 억제제였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함께 잘못을 저지른 인류의 기록은 주늑들기에 충분하지만 만약 기독교의 제재가 없었더라면 지난 2000여년의 역사는 얼마나 더 끔찍한 것이었을가 를 생각하게한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edit.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제13장 놀라운 은총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된 삶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린도 후서 5장 17절)

19세기 유명한 무신론자인 촬스 브래드로는 한 크리스천에게 기독교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논하는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크리스천 휴 프라이스로는 런던의 빈민촌에서 영혼구원사업을 열심히 하는 분이었다. 휴는 브래들리에게 한 가지 조건만 승락한다면 기꺼이 토론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휴는 말하기를 “우리가 믿는 믿음의 타당성을 분명하게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의 가르침에 크게 감동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고 죄의 생활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 남녀 100명을 데려 올테니 그쪽에서도 그렇게 하여 주기를 바란다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휴는 만약 브래드로가 100명을 데려 올 수 없다면 50명도 좋고, 20명도 좋으며 단 한 명이라도 좋다고 하였다. 이제 브래드로가 할 일은 무신론자의 가르침을 통해서 삶이 증진된 사람 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이미 100명을 확보한 휴는 언제든지 토론에 응하겠다고 동의하였지만 브래드로는 자신의 제안을 철회하고 말았다. 만약 오늘 그러한 토론제의가 있다면 아마 비슷한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무신론으로 사람들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사람들은 개선되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한다. 그가운데에는

*파리의 바람둥이/ *4세기 육욕에 따라 살던 회의주의자/ *육욕에 따라 살던 20세기의 회의론자/*일곱 마귀에 걸렸던 여인/ *살인 공모자/ *출세을? 위해서는 더러운 모략도 마다않던 파염치 정치가/ *술주정뱅이/ 노예밀매업자/*노예사냥꾼/ *증오심에 자신을 불사른 전쟁포로/*진주만 폭격을 지휘했던 일본군 대위 등이 들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느라면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회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내면에서터 나온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기원 1세기부터 지금까지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해왔다. 그가 살아있을 때 사캐오라고 하는 부정직하고 욕심 많은 세리가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사람을 아주 관대한 사람으로 변화시켰다(누기복음 19장 1-9) 세리인 그는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웃을 착취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가 회심하자 예수께서는 “인자는 잃은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누가복음 19장 10절)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아주 평판이 좋치 않은 여자의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었다. 그리고 선교의 동역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처음 볼 수 있었고 사회에 아무 의미가 없고 해가 될뿐인 그녀의 삶을 의미있는, 도움이 되는 삶으로 변화시켰다.

예수께서는 한 살인공모자의 삶을 세계 역사에 특히 서양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사도 바울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업적은 바울이 처음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사람이요 첫 번째 순교자인 스테반을 죽이는데(사도행전 7장 58절) 보조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것이다. 바울은 회심 이후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옛것은 지나갔으니 모드 것이 새것이 되었다”라고 하였다.(고린도 후서 5장 17절)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마음 속에 기록된 진기한 이야기들은 홍해가 갈라지던 옛날도 옛날, 머나먼 곳에서만 일어났던 일들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예수의 이야기는? 여러 세기에 걸쳐 계속되었고 오늘날도 일어나고 있다. 만약 예수께서 오시지 않앗더라면 수많은 생명들이 죄가운데서 마약과, 알콜과 자살과 갱 단원으로 죽거나 헤메고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구원의 역사란 방정식을 통해 부채가 자산이 되게 하셨다.

히포의 어거스틴(354-430)
히포의 어거스틴은 라틴 교부들 가운데 최고의 인물로 고대의 마지막 사상가요 중세기의 첫 번째 철학자요 신학자였다. 그는 새 사람이 된 후 육신의 욕심을 따라 방탕하던 크리스천 이전의 삶을 고백하는 ‘참회록’를 저술하였다. 그는 로마서 13장 14절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극적인 회심을 하였다. 어거스틴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상가요, 작가요, 철학자요 신학자가 되었다.

프랜시스 사비에르(1506-1552)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던 생활에서 기독교 지도자로 변신한 또 다른 예가 프란시스 사비엘이다. 귀족집안에서 태어나서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세상적인 삶에 실망하고 싫증을 느끼던 가운데 캐톨릭 지도자 로욜라와의 대화가운데 “만일 천하를 얻고도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태복음 16장 26절)라는 말씀에 회심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바쳐 역사상 카톨릭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다.

뉴톤(1725-1807)
‘어메이징 그레이스”란 유명한 찬송을 작시한 뉴톤은 원래 노예들을 잡아다가 파는 노예무역상이었다. 1747년 광풍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후로 그는 회심하여 노예무역도 던져버리고 목사가 되어 당시 영국의회에서 노예폐지 운동을 주도하던 윌리암 윌버포스와 함께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하였으며 윌버포스가 포기하지 않도록 고무, 격려하였다. 그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우리의 죄가 중해도, 아무리 우리가 순결하여도 오직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기독교의 진수가 담긴 찬송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였다.?

멜 트롯터
멜 트롯은 아무 쓸모가 없는 쓰레기였다. 가족들을 학대하고 자녀들을 방치하였으며 직장에서는 쫒겨났다. 거기에 술주정뱅이로 술만 생긴다면 무엇이든 하였다. 하루는 미시간 호수에 빠져죽으려고 시카고 거리를 걷고 있는데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며 전도하는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그는 “나같은 사람도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니 그게 말이 돼?”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 사랑의 멧세지에 감화 받고 술중독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그는 미시간주의 그랜드 래피드에 중독자를 위한 선교센터를 세운것을 필두로 전 미국에 50여 선교센터를 세웠으며 수만여명의 중독자들이 트롯터를 통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렇다고 기독교는 부랑자들을 위한 종교라고만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이다.

C.S. 루이스(1898-1963)
루이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하나로 옥스포드와 캐브릿지의 교수였다.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개신교 집안에 태어난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젊은 개인교사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회의적이 되어서 어린나이에 회의론자 내지 무신론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부상을 당한 후에는 그의 회의론이 더 강화되엇다.
그러나 그의 동료 작가들 가운데는 진실한 크리스천들이 있었고 그들의 영향으로 30대에 크리스천이 되어 금세기 뿐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도 그의 저서들은 베스트셀러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그에게로 인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가 루이스를 훌륭한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기독교 신앙이 그의 저서들에 영원한 의미를 주었고 가장 고상한 주제들을 다루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관 야곱 디사저와 대위 미수오 후지다??? ??
야곱 디쉐이저 상사는 특공대 폭격수로 2차 대전때 일본을 폭격하다 대공포에 추락, 일본군에 포로가 되었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일본군에 대한 증오심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의 존재목적은 일본 고문자들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어느날 감옥에 성경책이 한 권 들어와서 디쉐이저 상사에게 주어졌다. 그는 성경을 읽었고 계속 읽어가는 동안에 누가복음 23장 34절의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희들이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못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을 읽게되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디쉐이저 상사의 마음 속에 자리한 산같은 복수심을 족여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를 채워주었다. 그는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고 하였다. 그 이후로 일본경비원들이 아무리 잔악하게 고문할지라도 반항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만을 생각하곤 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디쉐이저는 일본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복수를 하려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디쉐이저의 회심 이야기가 전도지로 만들어져서 일본에게 배포되었다. 어느날 상한 마음으로 낙담하여 희망이 없는 한 일본사람이 모르는 미국사람으로부터 이 전도지를 받았다. 그는 이 전도지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그는 선교사를 찾아가 성경을 얻었다. 그 역시 회심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미쯔오 후지타 대위였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폭격을 지휘하면서 “토라, 토라, 토라”를 웨쳤던 일본 장교였다. 그가 자신의 마음과 삶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기로 하고 복음을 일본과 미국에 전파한 것이다. 그는 진주만 폭격 25주년 기념식에 누가복음 23장 34절 “아버지여, 그들을 용서하십시요.그들이 그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 새겨진 생존자들을 위한 선물을 들고 참석하였다. 후지다는 25년전 그들이 도덕적으로 무지하여 범한? 행동들을 사과하였으며 후찌다의 이야기는 <God’s Samuray>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타리리 추장
50여년 전 뉴욕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특별한 손님이 초대되었다. 남미 페루비아의 식인종 부족의 추장인 타리리 추장이다 그는 아주 잔인하여 부하 추장들을 직접 참수하는가 하면 정글의 원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같은 부족들 간에 무서운 존재였고 심지어 페루비안 군대들도 그를 두려워하여 그가 자리하고 있는 숲으로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페르시아 정글에 위크리프성서번역자인 로레타 앤더슨과 도리스 코스가 성서번역기구인 연필과 펜과 성경만을 가지고 들어가 타리리 추장을 찾았다. 어쩌면 단숨에 목이 날아가고 그들의 식탁에 오를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였던지 이 추장은 이들에게 호의를 보였다. 물론 그들이 전혀 그에게 위협이 안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잇었던듯 하다. 그들은 그부족의 말을 배워서 추장에게 이 세상을 사랑하셨던 분에 관하여 이야기 하여주었다.

결국 이 사람백정의 완악한 마음이 녹아져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삶을 주님께 바쳤다. 그는 200여명의 자기 부족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고 1964년에는 뉴욕국제박람회에서 세계의 빛,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점화하여 자기 안의 어둠을 밝히고 그의 삶을 변화시킨 빛과 기쁨을증거하였다

척 콜슨
척 콜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덕분에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된 놀라운 실례이다. 닉슨의 ‘하수인”으로 그는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닉슨팀에 가담한 유능한 변호사였다. 당시 그는 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닉슨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나. 어떤 일이나 할 수 있었다. 그는 미국대통령을 위해 더러운 술수를 수없이 모의했고 대통령은 그것 때문에 결국 사임하였다. 그는 회심 후 <Born Again>이란 책을 통해 모든 진상을 밝히고 있다. 그의 동료에 의하면 척 콜손은 음모를 꾸미는데 명수로 워터게이트가 불가피하게 그리고 가능하게 분위기를 몰아간 책임자”였다

오늘 이 사람은 수 천명, 수 만명의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그의 Prison Fellowship은 세계적인 기구로 매년 수 십만명의 죄수들을 돕고 있다. 그리고 저서와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예수를 전파하고 있다. 악한 음모의 천재에서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천재가 된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언급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하신 일들을 만약 당신이 원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한다면.당신에게도 일어나게 하실 수 있다. 만약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더라면, 위에서 언급한 변화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오지 않앗더라면 삶이 무의미할 수도 있었다. 영원하시고 삶에 의미를 주시는 하나님 없이 삶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변화시킴으로 사람들은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앗던라면 죄에 대한 용서란 없다. 만약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죄책감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난날의 죄책감을 제거할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현재와 미래의 죄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실 수 있다. 그리스도는 죄의 족쇄를 부셨고 죄인들을 자유롭게 하셨다.

어거스틴은 기원후 첫 천년동안에 가장 위대한 지성이었다. 그는 일급 웅변가였고 설교자며 철학자였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그의 모든 학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욕을 다스리고 삶을 통제하는 크리스천들의 단순한 삶이 부럽다고 하면서 자신은 정욕의 노예라고 한탄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그를 자유케 하셨다.

나아가서 만약 그리스도가 안 오셨더라면 예수께서 삶과 불명성에 불을 붙이셨으므로 영생에 대한 소망도 없을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이 있다.? 얼마나 중요한 약속인가? 복음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삶에서 즉각적으로 주님 앞으로 나갈것이다.?그리고 그곳에는 더 이상 고통이나, 고난, 슬픔과 눈물이 없다. 모든 옛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 만약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이? 깜깜하고 신비와 죽음과 소망없음에 싸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탄생하셨다. 그가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드셨는가? 그가 오셨으므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나의 삶이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 세상을 구속하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역자라는 것을 안다.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안다. 내 죄가 심연에 묻혀져서 다시는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에서 죄의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음을 안다. 나는 어느 날, 영광의 순간에 완전해 질 것을 안다. 그리고 끝없는 영원가운데서 그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결 론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이 어디선가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언젠지, 어디에서 인지 그리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분명치가 않다면 어떻게 잘못을 고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새로히 시작하는 훌륭한 장소를 발견할 수가 있다. 어거스틴이나 콜손과 같이 당신 역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당신의 삶을 시작할 수가 있다.

나의 친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기까지 당신을 사랑하셨다. 그는 자신이 당신의 죄와 최책감과 벌들을 짊어지셨고 그 대가를 치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받게 그의 은총으로 그는 우리에게 풍성하고 영원한 삶을 허락하셨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보다는 교회의 멤버가 되거나, 도덕적인 생활을 함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물론 그러한 삶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삶을 얻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 6장 23절은 “죄의 값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생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만이 하늘나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16장 31절)고 가르친다.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우리 삶의 통치자요 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도를 하라. 신실한 기도를 하라 그리고는 성경을 읽어라. 그 다음에는 성경을 믿는 교회에 참가하라. 일단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게되면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우리 삶 가운데서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의 삶은 물론, 언급하지 않은 수 천만의 삶이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변화들이없었더라면?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사실은 그리스도께서는 오셨고 우리는ㅊ예수를 인격적으로 알게되고 그의 사랑에 의해 변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킴으로 이 세상에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 그것은 계속 진행중인 작업으로 그에 동참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를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도록 한다면 당신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는 일, 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다. ????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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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위대한 예술에 영감을 넣어주다.

-기독교가 예술과 음악에 끼친 영향.-

모세는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주께서 그 마음에 지혜를 더하여 주신 기술 있는 모든 사람 곧 타고난 재주가 있어서 기꺼이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불러모았다. (출애급기 36: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상한 주제들을 예술의 테마로 제공해 주셨다. 어떤 작가가 언급한대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살려두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그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는 생각은 좀체로 하기 어려운 발상으로 유명한 대작가운데 많은 작품들이 기독교를 주제로 하거나 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기독교역사가운데 교회는 특히 로마캐톨릭교회는 예술의 주요 후원자였다. 유럽의 위대한 성당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가 예수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었다. 바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작곡한 음악가로 그는 서양음악을 변화시킨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예술은 단지 일시적인 유한한 것들만을 다루었을 것이다. 화폭이나 돌에 무한한 것을 담아보려는 노력은 아에 시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이 세상은 비록 예술이나 음악의 영역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빈약하리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순수예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쉐퍼가 언급한대로 “현대인들은 평범한 것에 중독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온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침잠되어야 한다. 우리들은 왕의 이름으로 정복자가 되기 위하여 부름받았다. 우리는 이 세상을 정복하여야 할 정복자이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정복자가 되어야하며 그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들을 견디며 그것들을 그의 영광을 위하여 바쳐야 한다. 그것은 어느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과 신약성경은 모두 위대한 예술의 주제들을 제공하였다. 기독교 이전의 유대인들은 십계명의 제2계명을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들에게 시각예술이 희귀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위대한 영감의 근원이 되는 예수

1930년대 신디아 펄 마우스는 예수에 관한 훌륭한 그림과 시와 음악 그리고 이야기들을 모아 <그리스도와 예술(Christ and the Fine Art)>이라는 제목의 문집을 출간하였는데 그 서문에서 “인류역사상 그 누구 보다도 많은 이야기들이, 그림들이 그리고 음악들이 예수에 관하여 만들어졌는데 그것들이 누구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의 경이로우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간이 되셨고 이 무한하신 분이 일시적으로 유한한 존재가 되어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셨다. 경이중의 경이로 그 분 이래 예수는 변하였다.

초기 3세기 동안에는 교회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예술품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이 당시 교회들은 적대적인 박해를 견디어 내며 생존하는데 신경을 쓰느라고 예술작품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고 이때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들은 로마의 카타콤에 있는 그림들 정도였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합법화하고 비잔틴(현재의 터어키 이스탄불)으로 수도를 옮긴 후 비잔틴 예술이 번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건축에 있어서 교회건축이 급격히 발달하였다. 수많은 위대한 성당들이 그리스의 신전들을 능가하였다. 희랍신전들이 유한한 신과 여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위한 건물인데 비해 기독교의 건물들은 천상천하에 거주하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위한 건물이었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 수많은 성당들이 건축되었고 첫 1천여년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훌륭한 성당들이 건축되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대표적인 것이 이스탄불에 있는 Haggai Sophia이다.

중세기 전 고딕, 고딕, 후 고딕풍의 위대한 대성당들은 가장 위대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돌과 유리로 지은 이 건물들은 오늘날에도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1000년 경부터 1200년 사이에 건축된 이들 대성당들은 ‘로마네스크”풍으로 알려졌다. 서방의 전역에 걸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위대하고 인상적인 대성당들이 건축되었다. 더 이상 목재가 아니라 석재로 만든 성당들은 아주 정교하게 만든 건물로 두차례 세계대전을 격으면서도 오늘날까지 건재하고 있다.

그 후 1200-1400년 사이에 고딕풍의 시대가 왔는데 이때에는 정교하게 지은 대성당들이? 더욱 더 아름다움을 더하였다. 르네상스는 예술의 황금시대이며 성서의 주제들이 가장 압도적인 시기였다. 이 시대를 ‘새로운 이교도’들이 판치던 시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고전적인 철학과 기독교가 화합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도 건축은 이교도의 신전이 아니라 성당건축이 주류였다.

이때의 위대한 예술가는 미켈란젤로로 성서의 인물들 , 다윗, 모세, 피에티 등이 그의 대표작이며 시에스타채플의 천정화와 벽화는 그의 불후의 대작으로 꼽힌다. 화가요, 건축가요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경건한 신앙인이었으며 그의 작업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목표였다.

미켈란젤로 이외에도 라파엘, 레오나도 다 빈치, 등이 <최후의 만찬>,<세례 요한>, <동방박사들의 경배>, <마돈나오 아기 예수> 등 기독교의 영감을 받은 명작들을 남겼다.

기독교 이후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현대예술에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부한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예술은 생명을 반영하고 있는데 만약 예술가에게 생명이 무의미하면 그의 예술도 무의미 할 것이다. 현대예술은 의도적으로 예술에 대한 기독교적인 영향을 거부한다. 그러나 4세기에서 20세기 사이 기독교와 예술은 서로 연관되어 왔었다. 심지어 ‘후기 기독교 예술”과 지난 200여년 동안의 서구문학은 기독교에 뿌리하여 발생하였다.

그리스도와 문학

그리스도는 문학에도 위대한 주제와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가 이야기 한대로 “문학과 복음은 절친한 친구이다.” 단테에서 쵸서에 이르기까지, 죤 돈에서 피오도르 도스도에프스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앙은 문학에 영향을 끼쳤고, 문학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작가 죠셉 넬슨 그린은 “ 영국문학은 기독교에 크게 빛지고 있다. 우리 문학의 정수들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주제나 테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기원했거나 영감을 받았다.”고 하였다.

세계적 문호로 꼽히는 쉐익스피어는 기독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가이다. 빅토르 휴고는 “영국은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영국이 만든 책이고 하나는 영국을 만든 책이다. 그것은 바로 쉐익스피어와 성경을 말한다”고 하였다. 쉐익스피어는 성경을 알고 있었고 그의 작품에 인용된 것을 보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죤 번연은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s Progress)>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이야기 책을 저술한 사람인데 한 크리스천의 삶을 비유적으로 서술한 이 책은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 셀러이다. 그는 단순한 우리 언어를 감동적인 능력을 가진 위대한 언어로 바꾸어 놓았으며 생생한 이미지와 실제적인 설교로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였다.

또다른 영문학의 거장은 <실낙원>과 <복낙원>의 저자인 죤 밀톤으로 그는 이 세상에 죄를 가저온 첫 번째 아담과 새로운 창조를 시작한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다. 그의 감동적인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였다.

촬스 딕큰스는 영문학의 또 다른 거장으로 예수의 비유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감동적이다. 탕자의 귀환을 내용으로 한 <크리스마스 캐롤>은 크리스천의 회심을 다뤄서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그의 마지막 작품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는 어린 독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치려고 집필한 것으로 신학적인 문제들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구세주를 향한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들 이외에도 서양문학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을 받아 명작을 남긴 크리스천 작가들을 얼마든지 거론할 수 있다.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 엘리오트, 테니슨 , 쏠체니첸 같은 유럽과 러시아의 문호들은 물론 미국의 작가들 가운데 헐만 멀빌의 <billy Bud> 나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 역시 그리스도를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데 일치한다.

이러한 점에서 서양 문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한다면 그 문학의 가치는 한참 떨어져 버릴 것이 분명하다.

크리스천들이 음악에 끼친 영향.

왜 서방세계에서는 지구상의 다른지역과는 다르게 음악이 발전하였나? 이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모든 문화권에서 음악은 신에 대한 예배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스와 로마문화가 서방의 조각과 미술과 문학 그리고 연극의 기초를 놓은 반면에 유대문화는 서양음악의 기초를 놓았다. 비록 아폴로 신전을 중심으로 소고를 뜯으며 노래를 하였다고 하지만 오늘날까지 권위있는 로마나 그리스의 음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직 연주를 묘사하거나 음악이론 또는 철학이 전해져 올 뿐 음악자체가 전해져 오는 것이 없어 우리는 그것이 어떤것인지를 알 수 없다.

초기 교회의 음악은 뿌리와 형태와 전통이 유대인들의 회당예배-히브리 회당의 시편과 송가 등-에 근거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음악은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고린도 후서 5장 12-14절에 솔로몬성전 헌당식에서 음악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무엘 전서 18장 6-10에서도 다윗이 어떻게 거문고를 타면서 초조한 자신의 마음을 달랬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수 역시 제자들과 함께 시편을 노래하였다. 선택된 성경구절들을 음악에 맞추어 단독으로 또는 응답송으로 그리고 주고 받으면서 불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형태의 음악이 수세기동안 교회에 그대로 전수되었고 그레고안 찬트의 기초가 되었다. 서방음악의 역사는 기독교의 교회음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레고리안 시대는 서방음악에서 첫 번째 “고전음악시대”이다. 기독교의 예배의식은 로마교회에 의해 제정되었는데 그때 살아남은 것이 그레고리안 찬트로 기원 590-604년 사이에 교황이었던 그레고안 1세에 의한 예배의식과 송가의 개혁을 가져왔다. 그는 다양한 예배의식들을 만들었고 교회는 거기에 맞추어 기독교문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었다. 그레고리안이 성령의 감동으로 직접 만든 음악들은 중세기에 널리 사용되었고 교회음악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때 음악은 그 기능으로 판단하였는데 영혼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능력을 가졌을 때 높이 평가하였으며 음악의 기능은 말씀을 돕는 역활이었다.

11세기 수도승 Guido of Arezzo 는 서방음악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베네딕트 수도승이였던 그는 현대음악 표기법의 아버지로 오늘날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음계를 만들고 표기법을 만들어냈다. 당시 교회밖에도 음악이 있었지만 교회음악이 주종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서방음악이란 것은 주로 교회의 산물이었다.

Guido of Arezzo 덕분에 11세기는 다른음악들과는 다른 교회음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중요한 변화는 작곡이 가능하게 되었고 표기법에 따라 질서와 규칙이 생겨났으며 동시에 여러음을 낼 수 있는 화음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시작된 서양미술은 서서히 발전하면서 중세기를 거쳐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장족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교회는 여전히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다양한 합창곡들을 소화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뮤지컬 류의 세속음악이 발전, 13세기에는 세속음악이 많이 발전하엿다.

르네상스기에 접어들면서 복음서의 가사와는 격리된 음악이 발전하였으며 기악과 세속음악이 널리 유햏하면서 민족적인 음악이 발달하였다. 이때에는 세속음악과 교회음악이 별 연관이 없었지만 이미 서방음악은 교회에 깊이 뿌리하고 있었다.
종교개혁과 함께 많은 음막들이 교회로 들어왔다. 마틴 루터는 노래부르기를 좋아했고 음악을 사랑했다. 그는 기악도 직접 연주했으며 회중들이 노래하기를 독려하였다. 루터 자신이 작사, 작곡하기도 하였는데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유명한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세속노래를 교회로 가져와 성가사를 부쳐 부르기도 했다. 루터는 회중들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으며 기독교 교리를 음악을 통해 익히도록 하였다.

요한 세바스천 바흐와 죠지 프레드릭 헨델과 더불어 바로크 시대가 절정에 이르렀다. 이들은 모두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그들의 대작들은 예수 그리스도영광을 위하여 작곡하였다. 헨델은 1741년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메시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는데 25일 동안에 작곡한 그는 신의 계시 가운데 작곡하였다고 하였다.

캐톨릭신부였던 안토니오 비발디는 이태리 바로크음악의 거장이다. 붉은 머리칼 때문에 “붉은 신부”라고 불렸던 그는 천식때문에 신부역활을 하기가 힘들어지자 음악에 전심하기로 하였다. 지휘자로, 작곡가로 교사로 바발디는 지대한 공헌을 하엿으며 그의 오케스트라는 혁명적이었다. 비발디는 요한 세반스찬 바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많은 음악비평가들이 바흐를 역사상 가장 위대하 음악가라고 평가한다. 그는 현대음악의 아버지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현대음악이란 지난 수세기 동안의 악을 의미한다. 그가 특별히 음악계를 위해 발명한 것은 없지만 훈련생들을 위한 교재와 노트북은 오늘날 까지도 교범이 되고 있다. 바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한 음악가였다. 그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재능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바치지 않는다면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바흐에 의하면 음악은 하나의 예배행위였다.

그의 영향력은 너무나 커서 베토벤을 위시해 하이든, 멘델스죤, 모찰트, 쇼팡,와그너, 브라함스 등이 그를 깊이 연구하였다. 바흐는 바로크 음악의 정상으로 “문학에 쉐익스피어가 있다면 음악에는 바흐가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들이 위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두 사람은 또한 진정한 크리스천들이기도 했다.
음악의 변화는 때로는 수 세기를 거치면서 천천히 진행된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세상에 위대한 음악의 풍성한 유산을 남겨주었다.

만약 예수께서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음악은 우리가 익숙해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일 수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지 않앗더라면 오늘의 음악은 어쩌면 우리가 중동이나 극동지방에서 듣는 것과 유사한 것 일수도 있다. 칸타타, 콘첼토 또는 심포니 같은 음악은 아에 나타나지 않앗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세속적이라고 하는 영화에 있어서도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세계적으로 위대한 예술에 영감을 주어 하나님을 영광돌리는 경우가 있다. 크리스천 테마나 인물을 주인공으로 강력한 인상과 감명을 준 작품들로 Ben-Hur, it’s Wonderful Life, On the Waterfront, The Sound of Music, A Man for All Seasons 그리고? Chariots of Fire 등이 있다.

제작자가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가장 위대한 예술의 테마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감명한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ed.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제11장 야만인들을 개화시키다.

-기독교가 도덕성에 끼친 영향-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맞게 생활하십시요(빌립보서 1장 27절)

지난 세기 런던 타임스에는 외국선교사들을 크게 공격하는 글이 실렸었다. 경험이 많은 한 여행자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교사들의 미개인들인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가 가혹했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야만인들을 개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개화된 미개인들의 태도는 대부분이 결국은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서구세계에서 개화되지 못한 종족들과 백성들과 국가들을 보다 개명한 인간으로 변화시킨데에는 기독교적인 신앙의 방법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후에 프랑스, 앵글로 색슨, 악명 높은 바이킹 등으로 알려진 프랑크를 위시해서 오늘날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기준을 적용하는데서도 알 수 있다. 역사상 어느 새력보다도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도덕의 기준을 높여 왔다.

유대교 발판

기독교가 윤리관을 만들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으나 구약성경의 윤리관을 널리 퍼트린 것은 사실이다.(마태복음 5장에서 7장사이에 나오는 산상수흔을 보라) 기독교의 윤리코드는 유대주의와 십계명에 근거하였고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면서 우리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을 주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언급한대로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로 성경 없이는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유대주의는 이 세상에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어느것 보다 더 고상한 도덕성을 주었으며 예수께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그것을 더욱 확장하고 전 세계로 전파하였다. 만약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은 지금보다 훨씬 저급한 도덕성 아래 살런지도 모른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옳고 그름에 대한 높은 기준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그것을 널리 퍼트려 많은 문화들을 좋게 변화시켰다. 역사상 수많은 야만인들과 잔인한 종족들이 그리고 문화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적극적인 영향으로 개화된 것이다.

고대 유대인들은 몰록, 바알, 아쉬토레스, 아나스 등과 같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이방인 사회에 둘러쌓여 있었다. 특히 몰록 신은 잔인하여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요구하였다. 바알신은 성(性)을 밝히는 신으로 제단에는 남창과 여창을 불러들였다. 고대 가나안의 신전들은 비행의 온상이었다. 그에 반해서 십계명은 히브리인들은 도덕적으로 고상한 민족임을 보여 주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크리스천들의 하나님이시요 고대이방인들의 신과는 대립되는 분으로 그는 거룩하시고 죄를 심판하는 분이시다. 고대 이방인들의 도덕적 기준은 최저의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의 도덕기준이 최악이라 한다면 다른 문화권의 도덕기준 역시 좋지 않앗던 것이 사실이다. 흔히 당시 문명국이었던 그리스의 도덕 기준은 다르지 않았느냐?고 질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리스 문명이 인류문명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도덕성에 관한한 그들은 고상한 실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스나 그 이후 로마의 신들은 무한하지도 않았고 절대적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개념이 없었고 그저 한계가 있는 그런그런 신들이었다. 그들의 신은 공포의 대상이요 협상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나 법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이교도들의 신들은 제멋대로 명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그들에게 규칙이나 법이란 것은 없었다. 사람이나 신이 지켜야 할 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쏘크라테스가 독배를 든것은 아데네의 법보다 더 높은 인간이 지켜야 할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교도 시대의 철학과 종교가 가져온 것은 회의주의와 불가지론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음산하고 암울한 것이었다.

야만인 군주와 잔인한 독재자들이 통치하던 거치른 시대에는 통치자들이 최고의 이교도철학을 교육받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인간으로 타락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네로황제의 소행을 통해 좋은 실례를 볼 수 있다.

예수가 오시다.

암울하고 사치스러우며 음탕하고 비도덕적인 세계속으로 흠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셨다. 초대가독교인들의 도덕성에 끼친 기독교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무엇보다도 간부급 신도들은 그들이 예수를 믿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장 알기때문에 그들은 신실하였다. 황제에 따라 강온의 차이기 있었지만 네로황제 때부터 예수 믿는 것은 교수형으로 규정되였다. 당시 크리스천의 도덕성은 어느 이교도들 보다 매우 높았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늘날 아무도 예수와 같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삶을 산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수 백만명, 수 천만 명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그들의 삶에는 변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초대교회에서는 딜레마에 처했던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 로마통치자들은 신자들은 그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아내나, 아이들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들을 데려와서는 그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을 때에는 비참하게 그들을 죽여버렸다. 초대교회의 도덕적인 확신은 너무나 강해서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 보다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야만인들을 교화함

기독교는 그리스와 로마뿐 아니라 로마를 공격하였던 이교도 사회에 까지도 퍼저나갔다. 이들 야만인들을 교화시키는데 직접 간여한 사람들이 크리스천 선교사였던 로마인들이었다. 이 야만인들의 다수가 게르만 종족으로 고드, 프랑크, 색슨족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 야만족들은 강인하고 호전적이었다. 로마가 몰락하기 전에 그들은 로마의 외곽을 공격하면서 제국의 변방을 계속 압박하였다. 이들은 타 민족을 ?정복하면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두 학살하였다. 그리고 적군의 무기와 장비까지도 파괴해 버려다. 이들의 철저한 학살과 파괴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의 보복은 또한 복수로도 이어져서 친척들에 대한 보복으로까지 철저히 행해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살해를 당하면 그 친척들은 그 사람의 먼 친척까지도 살해하여 보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야만인들의 생활과 문화속으로도 기독교는 서서히 퍼져들어가기 시작했다.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종족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하였다.

야만족인 영국의 앵글로 색슨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가운데 하나가 오거스틴이다. 오거스틴은 영국에 복음을 전파하러 떠나기 전에 그들의 야만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무척 망설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악함은 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되었고 그의 선교는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그것은 매우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이었지만 야만인들의 교화는 놀라운 위업이었고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승리였다.

우리는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실례를 특별히 험악했던 바이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칸디나아인들의 선조인 바이킹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자 약탈행위들을 중지하였다. 예수께서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들이 잔악한 행위들을 중단했을런지 장담할 수 없다. 9세기와 10세기에 바이킹들은 사냥꺼리들을 찾아다니는 모험가들로서 유럽의 연안들을 누비고 다니며 약탈을 일삼았다. 그들은 봄에 곡식을 심고 노략질을 다니다가 가을에 와서 추수하는 생활을 하였다. 약탈지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바이킹의 손에서 구원해 주십시요”하는 기도를 입에 붙이고 살았다. 수도원과 같은 종교기관들은 종종 보물이 쌓여있고 방위가 허술하기 때문에 이들의 좋은 약탈 대상이었다. 바이킹 전사들은 전투에서 너무 잔인햇끼 때문에 ‘미친듯이 날뛰는 놈’이란 뜻으로 berserk라고 불렀다. 무엇이 이러한 끔찍한 골치거리 인간들을 바꿔놓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변화시키셨다. 물론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새로운 개종자들이 옛 습관들을 못버리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복음이 바이킹들 속에도 침투하여 들어갔다. 결국은 언젠가 다수의 스캔디나인들이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리고 바이킹들은 잔인한 공격을 중단하였다. 사실 지금의 노르웨이, 덴막, 스웨덴 그리고 영국사람들의 많은 부분들이 이들 잔인하고 전쟁을 좋아했던 ?바이킹들의 후손이다. 기원 1020년에 놀웨이인들은 그들의 역사상 처음으로 첫 번째 의회를 소집하였는데 여기에서 Olav 왕은 기독교가 그 나라의 법으로 선포하엿으며? 동시에 피의 제사나, 흑마술, 유아제물, 노예제도와 다처제(多妻制) 등 “옛 관행들을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기독교는 많은 나라와? 문화와 종족들에게 고도의 윤리성을 고양시킴으로 세계문명에 큰 기여를 하였다. 물론 그들이 완전한 크리스천들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복음이 스며들어서 어느곳에서나 높은 도덕성을 고양시켰다.

근대의 선교운동

유럽대륙에서 기원 1000년 경을 전후해 ?우리의 선조들(백인들을 지칭)들이 ?야만적인 생활을 버리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갔던데 비해 지난 200여년 동안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러한 현상들이 벌어졌다. 교회와 선교기관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크리스천들을 세계 방방곡곡에 보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람을 잡아 먹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종족들이 사는 지역에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갔으며 이들 선교사들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성취하였다. 물론 이들은 교회가 모금한 돈으로 선교를 하였지만 이들의 88%는 영어권 사역자들로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다. 나는 이때의 선교운동이 인류역사상 가장 뚜렸하고 성공적인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윌리암 캐리나 리빙스톤이나 허드슨 테일러 같은 선교사들은 잘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못지 않게 수많은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사실 수많은 선교사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변화시킨 이야기들로 한 가지만을 예로 들려고 한다.

스코트랜드에 매리((Mary Slessor of Calabar,1848-1915) 가 있었다. 그녀는 10대에 개종하여 던디의 빈민가에서 일을 하다가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1876년 그는 나이제리아로 떠났다. 카라바 근처 오코영 오지에는 4백만명의 고약한 야만인들이 있었는데 얼마나 지독하던지 정부군들도 그 지역을 지나가기를 겁낸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식인종으로 극도로 타락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습관은 아주 비열하였다. 무당과 술주정뱅이들이 판을 치고 성이 난무하며 쌍둥이는 귀신의 작품이라하여 숲속에 짐승의 먹잇감으로 던져버려 죽게하였다. 주민의 절반은 노예로 혹사당했으며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은 노리개로 마음대로 강간, 고문,사형을 할 수 있고,특히 여성의 경우 그들의 수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이들의 경우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그저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매리는 죽도록 내버려두는 쌍둥이들의 어려움에 특별히 마음이 움직여 그들을 볼 때마다 데려다 보호하였다.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쌍둥이들은 만지기만해도 죽는다고 믿었었는데 매리가 죽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매리는 여러해 동안 아이들을 거두어 돌보아 주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랑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매리를 받아주었고 그녀의 주위에 몰려들었으며 처음 보는 백인인 그녀에서 손을 대어 만져보기도 했다.

그녀는 이렇게하여 그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했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그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원했고 하나씩 하나씩 각 존장의 수장들이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다. 오래동안 이 부족들을 괴롭히던 무서운 관습들(쌍둥이 살해, 유아제사, 아내와 노예 살해, 독극물과 끓는 기름으로 살해하는 것 등)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계속되던 타인종들과의 전쟁이 수세기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한번은 그녀가 한 종족의 전사들이 타 종족을 공격하러 출정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독충을 가진 뱀이나 풀들이 우굴거리는 숲을 맨 발로 달려가 그들이 조우하기 전에 이들 식인종들에게 전쟁을 멈출 것을 호소하였으며 그녀의 정성에 감복한 이들이 전쟁계획을 중단한 일도 있었다. 그녀의 목숨을 건 선교활동으로 수 천명의 이교종족들이 크리스천이 되었으며 그들의 나쁜 습관들을 버렸다. 사실 이 세상 많은 부분에서 도덕적 기준들이 기독교 때문에 극적으로 높아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드라면 카라바의 매리 스레서도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를 거부하는 현대

몇 년 전에 타임잡지는 “미국에서 윤리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하는 의문을 제게하였다. 그러한 의문은 미국의 신문, 잡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횡횡하는 범죄가 종업원들의 도적질로 15%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세일즈택스 1% 오르는 것과 주류에 붙이는 15%의 sin tax에 대해서 불평한다. 미국 사회 즉, 정부나, 상가나 은행 및 교회 등지에서 우리들이 찾아 볼 수 있는 스캔들은 내적인 도덕적 부패로 생겨나는 표면적인 뾰록지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역사상 다른 어느 세력보다도 도덕적인 기준을 고양하는데 기여하였다. 예수가 오지 않았더라면 십계명이 유대인들 밖으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수가 오지 않았더라면 앵글로색슨족인 우리의 대부분도 그의 조상들이 그랬드시 해골에다 술을 부어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스캔디나비아 사람들은 아직도 약탈하러 나서서 그의 조상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을 사로잡을 때까지 그랬드시 이웃들인 바이킹들을 약탈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예수가 오시지 않았더라면 식인종이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많은 인종들이 아직도 게걸스럽게 인륙을 먹고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게서 오셨다. 그리고 그는 도덕성을 높이고 이 지상의 생활을 그 어느때 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리셨다.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에서 발취, 정리

*Dr. D. James Kennedy 프로리다에 있는 Coraal Ridge 장로교회의 수석목사로 Evangelism Explosion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고 Knox Theological Seminary의 학감 등을 지냈으며 50여권의 저서를 출판하고 활발하게 라디오와 TV방송을 하고 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