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2020년 4월 15일>

제임스 케네디의 <그리스도와 문명> 제 4 회

-예수가 태어나지 안았드라면?

 

4장 대중 교육-기독교가 교육에 끼친 영향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쳐라. -모세(신명기 6장 6절-7절)

미국에서는 학교건물을 보면 공립학교건 사립학교건, 초등학교건 대학교건, 교회학교건 일반학교건 간에 기독교회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기독교회가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의 대중교육 현상은 기독교에 뿌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기독교 이전에도 교육이 있었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엘리트 교육이었을 뿐 대중을 대상으로, 모든 사람들을 교육한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목적을 위하여 크리스천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비록 오늘에 와서는 대학들이 기독교 신앙에 적대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소위 말하는 옥스포드, 캠브릿지, 하버드, 에일, 프린스턴 같은 학교들은 크리스천들의 땀과 희생에 의해 지금과 같이 발전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전통에 뿌리박은 교육

기독교는 시작때부터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쳐왔던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해 왔다. 크리스천들은 흔히 ‘책의 사람들’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더그라스 박사는”성경을 중요시하는 종교는 항상 교육에 중점을 두었고 .. . .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보다 정규적인 교육이 발전하였다”고 하였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암흑시대에도 기독교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에 의해 고대의 고전들과 이교도의 고전들이 필사되었고 그들의 학문이 전수되었다.

세계의 수많은 언어들이 성경을 읽히려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문자화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것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위크리프 성경번역 선교기관은 2025년까지는 오지의 소수 부족들의 언어로도 성경들을 번역하여 세계의 전 부족이 자기네 언어로 된 성경을 읽게 한다는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노력은 부산물로 언어나 방언을 문자화 하는 한편 문맹을 줄이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육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라는 개념은 물론 16세기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종교개혁에서 나온 것이다. 9세기 샤를마뉴(Charlemagne)대제는 신성로마제국의 국민들을 교육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시들해 졌다가 기독교가 성경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종교개혁에서 대중교육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인쇄술의 발명이 한 몴 한 것이 사실이다. 학문의 발달과 함께 구텐버그의 성경이 프린트되어 나왔다. 책의 다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교회사가인 샤프(Schaff)는 “종교개혁을 위해 신이 ?준비하신 것 가운데 하나인 프린트 기술은 개신교와 현대문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대중교육의 뿌리는 종교개혁으로 올라가며 특히 죤 칼빈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종교개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이-평신도들- 성경을 직접 읽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미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현대교육의 아버지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의 신학자 보트너는 “역사는 칼빈과 교육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칼빈주의가 가는 곳에는 어디에나 그와 함께 교육이 따랐고 강력한 대중교육의 열기를 더하였다”고 하였다.

칼빈은 훌륭한 교육이론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제네바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실행에 옮김으로 미국에서 퓨리탄과 그의 후예들에 의해 수립된 초기 대학과 대학교들의 모델이 되었다.

칼빈은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우리들의 직업과 삶 안에서 영광 돌리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육의 내용은 하나님의 첫 번째 책인 성경을 공부하는데서 시작하여 모든 진리는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두 번째 책인 자연에 나타난 진리를 공부하는 것이다.

제네바에서 칼빈은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을 증진시켰고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오늘날의 교육패턴이 되었다. 즉 모든 것은 성경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원리는 미국에서도 필그림과 청교도들에 의하여 그대로 전수되었다.

칼빈은 또한 교육은 도덕적인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쏘크라테스처럼 지식은 곧 덕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타락과 죄악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가르침 즉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롭게 하는 능력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칼빈은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그것은 국가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며 부모라고 분명히 대답하고 있다고 하였다. 성경은 어린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으로 부모들은 잘 교육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녀들을 주님의 책망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로 자녀들을 가르쳐야 한다.

칼빈과 루터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 덕분에 보다 나은 교육이 시행되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조사한 결과 성경읽기를 강조한 개신교 계통 국가들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았고 성경읽기와는 무관하였던 중국이나 인도 등지의 문맹율이 가장 높았으며 기독교지만 성경읽기를 별로 권장하지 않은 카톨릭이 그 중간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의 교육

필그림과 퓨리탄들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교육은 최우선 과제였다. 1642년 퓨리탄들은 모든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1647년에는 공립하고 설치법을 제정하였다. 1630년에 미국에 온 퓨리탄들이 정착 20년도 되기 전에 자녀들을 교육시키도록 법으로 규정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되겠다는 신앙이 작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미국공립교육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퓨리탄 어린이들은 알파벳과 함께 주기도문을 배웠으며 이러한 초기의 기독교와 교육의 관계는 식민지 시대가 지나 독립국가로서의 아메리카에서도 계속되었다. 1787년 첫 번째 미 의회에서는 “종교, 도덕, 그리고 지식은 좋은 정부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라는 성명을 채택하였다.

필그림이 도착한 1620년부터 1837년까지 217년 동안 실제적으로 미국에서의 교육은 개인들이나 크리스천들의 몴이었다. (공립학교 교육제도는 그 후 20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크리스천들의 교육의 성과는 어떠하였던가? 당시 영국의 교외지역에서의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48%에서 75%였었는데 미국식민지에서는 70% 내지 거의 100%에 이르렀다고 한다. 퀸시 아담스는 1800년대 미국에서의 문맹자는 1000명 가운데 4명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맥거피의 읽기교재(McGeffey’s Readers)>라는 책이 있다. 장로교 목사인 맥거피가 쓴 책으로 1억 2천여 만권이 팔렸다는 이 교재는 수 십년동안 미국초등학교교육의 근간이 되어 왔다. 초판본들은 특히 기독교 적인 냄새가 강했으나 후에 나온 것들은 기독교도덕을 기반으로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지난 한 세기동안 이 <읽기교재>의 영향력은 대단하였으며 미국의 수백만 어린이들을 기독교신앙으로 키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매거피 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비록 이 교재는 같은 이름으로 계속 발간되어 읽혔으나 무척 세속화 되었다.

초기 미국에서의 교육은 기독교 적인 것이었고 무척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초등교육만이 아니라 학문의 영역인 대학교육도 기독교교회에서 나온 현상이다. 대학은 중세기 후반까지도 없었다. 하이드(Hyde) 교수에 의하면 기원 1200년을 전후해서 옥스포드, 파리, 볼로나 세곳에서 전형적인 대학이 생겨났는데 옥스포드와 파리에서는 신학을 주로 가르치고 다음으로 아리스토틀의 사상을 가르쳤다. 볼로나에서는 교회에 관한 것들을 주로 가르치고 다음으로 민법을 가르쳤다. 물로 고대 희랍이나 중세 이스람에서도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의학을 가르치는 전문학교와 같은 것이었다. 그후 중세기 유럽에서 생겨난 대학들은 교구장들이 ?명성이 있는 훌륭한 교사들에게 교부들의 교리나 중요한 기독교 교리, 그리고 아리스토틀이나 희랍철학을 강의하도록 하였는데 결국은 크리스천들에 의해 기독교의 필요를 위해 설립된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조직적, 철학적으로 깊이 탐구하기 위해 세계의 대학들이 생겨났으나 여하튼 고등교육이라는 개념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미국 건국초기의 대부분의 대학교들은 목회자들을 교육시킨다는 기독교의 목적을 위해 크리스천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하버드, 윌리암 앤 매리 등이 그러하였고, 달트머스는 인디안 원주민들에게 전도할 선교사 양성기관으로 설립되었다. 브라운, 프린스톤, 뉴욕, 노스웨스턴 대학들은 철저하게 기독교에 뿌리내리고 있다. 윌리암 앤 매리는 “기독교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컬럼비아 대학의 전신으로 1754년에 설립된 킹스 카레지는 “”이 학교의 주 목적은 어린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 학교들의 대부분은 오늘날 세속화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독교 신앙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고 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캠퍼스의 건물들을 보면 기독교에서 기원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이러한 기관들이 신앙을 저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오늘날 크리스천들의 땀으로 설립된 대부분의 미국고등교육 기관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조롱을 당하고 있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국교육의 세속화

현대식 공립교육은 1837년 마샤츄세츠 주에서 호레이스 만(Horace Mann)에 의하여 생겨났다. 그는 유나터리안 신도로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로서 성서의 권위와 영감설도 거부하였다. 미국의 어린이 교육이 교회의 손에 있는 것을 개탄한 그는 그러한 상황을 고치기 위하여 주(州)에 의해 운영되고 조정되는 주 주도교육을 해답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서부터 어린이들을 기독교로부터 구해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현대식 공립교육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Mann의 계획은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죤 듀이가 나타나서 미국에서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주립대학과 사범대학의 철학적 기반을 놓음으로 그의 “혁신적인 교육”이 미국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듀이는 미국휴매니스트협회의 초대회장으로 기독교는 미국의 공립교육제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100여년 전 보통사람들은 미국공립학교제도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프린스톤의 핫지(Hodge) 박사는 이 점을 예견하고 종교와 분리된 주의 공립교육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무신론적이며, 반기독교 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제도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초기 200년 동안의 기도교교육은 문맹율을 .04%까지 낮추었으나 세속화된 교육은 어떤 성공을 거두었던가? 수 천억 달라를 교육에 투자하고 얻는 것은 무엇인가? 문맹자가 32배나 증가하여 오늘날 4천만명이상이 문맹이며 그 위에 5천만명 이상이 겨우 문자를 해득하는 수준이다.

미국교육의 세속화와 그 결과인 교육의 질 저하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다. 학교들이 직면한 도난, 폭력, 강간, 십대임신, 낙태, 자살, 살해 등 심각한 도덕적 문제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교육의 기독교 적인 뿌리이다.현대교육을 키워온 주요원인은 이 나라 설립자들을 키워온 기독교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미국과 서구의 교육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지난 2세기 동안 주로 기독교선교사들을 통하여 제3국가들의 수많은 사람들을 교육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크리스천들은 오지에 학교를 세웠을 뿐 아니라 문자가 없는 언어들을 표기할 수 있게 하고, 읽고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식민지 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교육을 담당했던 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결론

어떻게 기독교가 전 세계를 교육하여 읽고 쓰게 하였는가? 18세기 후반 영국의 레이커스(Robert Raikers)에 의해 시작된 주일학교(Sunday School) 운동을 보면 그 목적은 달리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데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도 기독교는 대중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갖게 하였다.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직도 죄의 어둠과 무지의 어둠에 처해 있을 것이다. 대중들에게는 교육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서방에서는 사람들이 복음의 빛에서 뛰쳐나옴으로 죄와 무지의 어둠속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edit.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제3장 동정심과 자비심-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

이웃을 멸시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 사람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잠언 14장 21절)

성 로렌스는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주 관대하였던 교회의 장로였다. 그는 3세기에 로마제국의 아라곤이란 곳에 살았다. 박해가 심하던 때 그는 “교회의 보물”들을 로마당국에게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때 그가 데려온 것은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그리고 발을 절뚝거리는 사람들로 그는 “이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보물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행동때문에 그는 석쇠에 꼬여서 화형 당해 죽었다.

오늘날 프로리다주의 로더데일 지역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성 로렌스 로더데일이라고 부르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수용소가 있다. 이 수용소는 집 없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연락처를 제공하고 직업을 알선해주며 목욕시설과 예배 처소, 전화 등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가난이란 항상 인간의 삶의 한 부분으로 계속되어 온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역사상 어떤 다른 기관들 보다도 가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구호노력은 세계적으로 구호패턴을 제시해 왔다. 제3세계의 고아원에서부터 도시 한복판에 있는 구세군 선교센터에 이르기까지, 또는 갑자기 불이 나서 집을 잃어버린 가족들을 돕기 위하여 크리스천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24시간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먼저 우리들에게 그러한 모본을 보여준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는 우리 더러 그와 같이 하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상황

기독교 이전의 세계는 러시아 동토(凍土) 와도 같이 매우 춥고 살기 힘든 곳이었다. 마티니라고 하는 학자는 역사적인 문헌들을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고대에는 조직적으로 자선사업을 한 기록을 찾을 수기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고대에는 사심이 없는 자비심이란 아예 알지못했다.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경이 알려지면서 자선과 선행이란 것이 꽃피게 되었다.

역사가 윌 듀란트는 고대문명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고대로마제국에 관하여 기술하면서 “이러한 검소한 생활가운데서도 자선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친절은 여관들이 멀리 떨어져 있고 조악할 때 상호 편리함을 위해서만 존재하였다. 동정심이 많은 폴리비우스도 ‘로마에서는 가능하더라도 아무도 아무에게나 그냥 호의를 베풀지는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예수는 가난한 사람,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돌봐 주는 좋은 실례를 직접 보여주었고 그와 같이 하라고 명하셨다. 제사장과 레위사람이 그냥 지나쳐 버린 도움이 필요한 강도당한 사람을 도와 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기복음 10:25-37)는 좋은 실례이다. 이 비유는 서구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수께서는 소자중 가장 적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서 그리스도의 가난”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자들에게 관대 할 것을 권고하셨고 세기를 지나면서 어떤 크리스천들은 이것을 소명으로 알고 거기에서 큰 기쁨을 경험하였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예수를 본받아 복음을 위하여 자신이 가난의 길을 자초하였으며 거기에서 큰 기쁨을 경험하였다. 반면에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희사함으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서 기쁨을 얻은 사람들도 있다.

초기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에게는 물론 비신자들에게도 관대함으로 역사를 만들어 갔다. 에일 대학의 유명한 교회사가인 라투렛 교수는 “일반적인 복지를 위하여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 기독교는 다섯가지의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 왔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는 기부는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능력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의무라는 생각의 변화라고 하였다.

또한 기부의 동기 역시 새롭게 바꾸었다. 기부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는 부유하시지만 우리들을 위하여 가난을 자초하셔서 우리가 부유하게 되었다.(고린도 후서 8:9) 따라서 크리스천 공동체의 기부의 대상이 과부와 고아들,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여행자들, 기아나 핍박으로 어려운 타지의 교회인들 등 형재애를 폭넓게 강조하였다.

크리스천들의 기부는 집단적이기 보다는 개인에게서 개인에게로 번져가는 인격적인 것이었다.

또 다른 변화는 자선을 교회멤버들에게 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자선을 베풀므로 기독교의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했던 로마의 쥬리안 황제까지도 어떻게 크리스천들이 이교도들 뿐만 아니라 적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놀랐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초기의 교회들은 로마의 폭정가운데서 개종자들을 끌어들였는데 그것은 로마와의 전쟁을 웨치며 가혹하게 억압해서가 아니라 전례 없는 사랑으로 평화를 전파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Fox 교수는 또한 이교도들의 기부행위와 크리스천의 기부행위를 비교하면서 이교도들은 시민들에게만 식량을 주었지만 크리스천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나누어 주었으며 이교도 황제들이 생명을 부지할 만큼의 최저의 식품을 나누어준데 반해 크리스천 황제인 콘스탄틴 부터는 자선의 폭을 확대시켜 가능한한 많이 나누어 주고 조건 없이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중세기의 자선

중세기에 수도승들은 정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자신들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윌 듀란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자선이 중세기 후반에 와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실제로 개인, 단체, 정부, 교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다. 부호들의 저택 앞에서는 일주일에 몇 번씩 빈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상류층 유부녀들이 자선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교회들도 십일조의 4분의 1을 따로 떼어 빈자와 병자들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중세기에는 교회의 자선행위가 너무나 널리 행해졌기 때문에 십자군이나, 종교재판, 그리고 마녀사냥 등 교회에 의해 저질러진 악행들도 그저 덮고 지나갈 정도였다고 역사가 리키는 말했다

퓨리탄들의 자선

퓨리탄들 가운데는 길가에 나서서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고 또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때그때 도움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시대에 자선가들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그들의 활동도 활발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퓨리탄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고 하였다.

19세기의 기독교 자선활동

그리고 산업혁명기에도 계속되었다. 19세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선을 베풀었던 크리스천들의 실례는 얼마든지 있다.

*영국에 있었던 죠오지 뮬러와 그의 고아원 사업은 수 천명 어린이들을 돕고 그와 같은 사업의 불씨를 뿌리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1844년에 시작된 YMCA 운동, 1855년의 YWCA운동은 세계적으로 도시지역에 사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돕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 윌버포스가 아프리카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의해 한 것과 같이 새프터베리 경이나 안도니 애슬리 쿠퍼는 영국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오늘날의 자선사업

오늘날 미국과 서구에 있는 많은 자선기관들은 크리스천들을 기반으로 시작되어 오늘에는 세속화 되었다. 그들은 오늘에 와서는 그들의 기독교적인 뿌리를 언급하지 않거나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기독교와는 관계없는 이름을 가지고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마리아인”이라는 이름으로 모금을 하고 자원자를 모집하는데 결국은 그들의 뿌리가 예수의 비유에서 시작되었음을 은연중 밝히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자선기관은 구세군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조직으로 재난을 당하여 집 잃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즉각적으로 도와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사하는 기관으로 1887년 윌리암 부스에 의해 시작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구세군 활동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뒷받침 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빈자들을 돕는 일은 각 교파에 속한 선교기관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World Relief Corporation이 그런 기관들 가운데 하나이며 World Vision, Internationaal:Samaritan’s Purse, Foof for the Hungry; Christian Childrens' Relief Fund 그리고 Compassion International 같은 기관들이 있다.

미국에서도 많은 교회들과 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간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입을 것을 제공하는 기독교 구호사업은 가난한 동네에서는 어디서나 시행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해 전 세계에서 매주 신약성서의 가르침을 듣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수 천만이 될 것이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방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며, 도시 빈민가에 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 등,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종교적인 사람들은 더 자비로우며,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 보다 비교적 많이 기부하고 종종 자선은 “과부의 엽전”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미국생활에서의 종교”라고 하는 여론조사에 의하면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자선행위에서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며 “교회나 회당은 미국의 사회사업기관에 다른 비정부기관이나 회사들 보다도 많이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Christianity Today>에 의하면 “시간과 돈을 기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예배에 매주일 참석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른 그릎의 사람들과 비교할 때 가장 관대한 기부자임에 틀림없다.”고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수입의 보다 많은 부분을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결론이 놀라운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현대교회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여인가운데 하나인 테레사 수녀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독교적인 이상을 구현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된 그녀는 칼카타 거리의 극빈자들을 도와주었다. 그녀는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님을 보내셨던 그 세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위해 보내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모든것을 희생하는 큰 희생을하신것 처럼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희생하여야 했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제거한다면 테레사 수녀도 없다.

무신론과 구제사업

아주 세속적이고 무신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크리스천 정신에 가득 차 있기때문에 그점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왜 무신론자의 견지에서 길을 건너는 노인네를 도와주어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고 대답해 보라고 도전해 본다. 까뮤나 사르트르 같은 대표적인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리에서 사람을 치든가, 아니면 돕든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봐주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봐주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한 대답이 무신론자들에게는 없다. 하나님을 없애버리면 , 내세라는 것이 없고, 미래의 심판이 없다면 왜 내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이야기 할 것이다 “내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어쩌면 형무소를 방문하는 것 보다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기분 좋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이니까.”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당신이 이 말을 마피아 보스에게 했다면 "사회? 도대체 그 사회를 돕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크게 웃어버릴 것이다. 사회란 단지 그가 상대하는 그 무엇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회는 자선이 없는 사회이다.

결론

모든 자선이란 사람들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예수 그리스도에게 로 돌아가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나눔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교도들도 기독교도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에 대해 “저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가를 눈여겨 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그들에게는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 크리스천 문명권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놀라움 자체였던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실천하든 못하든간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 이교도 문명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기전 까지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만약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지금 태어나지 않았드라면 하고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고대 이방인 세계와 같이 매우 험악한 세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기독교 역사는 “교회의 보석”인 가난한 사람들과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돌봄과 사랑"을 보여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 되었다.

*James Kennedy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Thomas Nelson Publisher


제2장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의 가치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창세기 1장 27절)

“광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100여년 전 프랑스의 한 엔지니어가 자기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이 여러가지 중요한 광물들의 이름들을 들먹이자 그는 학생들의 대답을 교정해 주었다. “광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광부들이다.”나는 그의 대답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인간생명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깊이 뿌리박고 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의 생명이란 무척 값 싼 것이었다. ?기독교의 영향이 있기 전에는 목숨(생명)이란 소모품에 불과하였다. 심지어 오늘날도 그리스도나 기독교의 복음이 깊숙이 스며들지 못한 곳에서는 생명은 무척 값 싼 것이다. 그러나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계시록 21장 5절)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인간의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였다. 더구나 기독교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신의 계시를 처음 받은 유대인들과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이교도를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기독교후기 시대 서구에서 보듯이 우리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무시하고 생명을 다시 값싼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린이들

고대에는 어린아이들을 신전에 제물로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현상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교도 신전 근처에 있는 묘지에서 어린아이들의 사체를 발굴하곤 하였다.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 고대 가나안의 바알 신전의 사제들은 그들의 제사의식의 일환으로 어린아이를 제물을 드리곤 하였다. 20세기 초만 해도 시카고대학교의 동방학연구소에서는 아합시대의 사마리아를 발굴하였는데 신전에서 별로 멀지않은 묘지에서 항아리에 보관된 아이들의 사체를발견하였다. 바알과 아스트롯의 사제들이 이들의 공식 살인자였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근동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린 생명의 값이 무척 쌌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고대 로마나 희랍에서는 임신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으며 그래서 낙태는 흔한 일이었고 특히 가난한 부모들은 여자아이이를 낳을 경우 여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유아기를 넘긴 아이들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소유물로 죽일수도 있고, 노예로 팔 수도 있으며 결혼과 이혼을 명령할 수도 있고 재산을 몰 수 할 수 있었다.

여하튼 고대사회에서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생명은 무척 값싼 것이었다.

그런 세상에 예수께서 오셨으며 그는 처녀의 몸에 임신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임으로 자기를 낮추시었다. 그 이후로 크리스천들은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겼다. 고대로마에서 크리스천들은 많은 아기들의 생명을 구했고 신앙으로 길러 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낙태가 유행되는 생명경시의 세상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낙태는 사라져 버렸다. 유아살해나 유기도 사라졌다. 어린아이들을 교회로 데려오라는 웨침이 크게 퍼졌다. 양육원, 고아원, 육아원 등이 어린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생명을 중시하여 생겨난 이러한 새로운 기관들이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서구문명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간다. 만약 예수께서 이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보는 이런 변화를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대 로마와 희랍, 중국 그리고 인도의 어린이들에게는 우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헤롯은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죽였다. 그러나 예수의 오심은 어린아이들의 승리로 마감하였다. 예수는 어린아이들을 모으시고 “어린이들이 내게 오도록 하고 나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태 19:14)고 하였다. 그의 말씀은 새로운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권위를 부여하였다. 예수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 부른 후 이것은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를 급격히 바꾸었을 뿐 아니라 아주 다른 형태의 아버지 개념과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의 교회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결국 유아살해를 종식시켰고 그의 영향으로 인간의 생명의 귀중함을 증식 시켜 유아살해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서구에서 통용되는 많은 아이디어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 더라면 이야기는 달라 졌으리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의 가치는 아직도 무척 값싸게 다루어 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자들

기독교의 영향이 있기 전에는 여인들의 목숨은 아주 값싼 것이었다. 고대문화에서 아내는 그저 소유물에 불과했다. 인도나 중국, 로마나 그리스에서 사람들은 여자들은 독립할 만한 능력을 갖지못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틀은 여자는 남자와 노예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고대에 노예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여자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프라토는 만약 남자가 비겁한 삶을 살면 그는 여자로 환생할 것이고 여자가 비겁하게 살았다면 새로 탄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대 로마에서의 여자의 운명 역시 별로 나은것이 없었다. 소년들보다 소녀들이 훨씬 많이 내버려 졌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여자라고해서 어린 소녀들을 죽이고 방기한 것은 옛날에도 그랬고 최근까지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못한 이방인들에게서는 다반사로 행해졌다.

1776년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는 중국의 큰 도시에서는 매일 밤 여자아이들을 애완동물과 같이 강속으로 던져버리는 의식들이 행해졌다”고 기술하였다. 그것은 바로 200여년 전 일이지만 기독교의 영향이 중국에 배어들기 전에 다반사로 행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여년 동안 선교활동이 세계적으로 활발히 추진되면서 여러 나라의 수 백여 종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자 여자들의 생활은 급격히 향상되었다.

인도에 기독교의 영향이 미치기 전 과부들은 ‘착한 아내’라는 평을 받기 위해서는 남편을 화장하는 장작더미위로 자발적이건, 강제로건 올라가 같이 타죽어야 했다. 이 의식을 그들은 suttee라고 불렀는데 ‘착한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죽음에까지 따라가는 아내가 착한 여자라고 믿었던 것이다. 서방에서 선교사들이 인도에 오면서 이러한 의식과 여아살해 습관이 얼마나 비인도적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인도에게 그러한 관행은 19세기에 와서야 선교사들의 반대운동으로 폐지되었다.

인도에는 또한 신전에서 창녀 노릇을 하도록 키우는 ‘어린이 과부’가 있었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서양의 선교사들이 이것을 폐지하기 위하여 이들을 빼돌려 크리스천 컴뮤니티에서 기르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인도 선교사였던 스펄죤은 한 힌두교도 여인한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선교사님, 성경은 아무래도 여자가 쓴 것 같아요?””왜요?” “성경에는 여자들에게 친절한 기록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요?” “우리 힌두교 승려들은 여자들에게 야단만치지 친절한 말 한마디도 안하거든요.”

아프리카에서도 기독교의 영향이 들어오기 전에는 인도의 suttee와 같은 관습이 계속되었다. 추장의 아내나 첩들은 추장이 죽으면 합장하여 같이 죽도록 하였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밭을 가는데 암소와 여인이 같이 끌도록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여인들의 지위를 높여주었으며 그 어느때 보다도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게 하셨다.

더구나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부다처제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오늘날 여성민권운동가들이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공헌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것은 아이로니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기독교가 여성들을 억압해 왔다고 주장한다. 사실 기독교만큼 여성들의 인권을 향상시킨 곳은 없다고 하겠다. 예수가 오지 않았더라면 여권이 지금만큼 향상되었을까?

노인들

중국인이나 일본사람들이 연장자에 대한 존경심이 뛰어나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종족들이 원하지 않는 아이들을 죽이듯 노인들을 죽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방법들은 문화에 따라 달랐지만 그리스도 이전에 노인들의 가치는 그 종족들의 특별한 문화에 따라 달랐다. 조상제사를 드리는 부족이 있었는가 하면 고려장으로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 몬 부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모든 인간의 생명은 귀한 가치를 갖게 되었고 거기에는 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항상 오늘날보다 높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1892년까지만 해도 100명 가운데 1명만이 65세를 넘길 정도였다. 그래서 노인들의 건강이 문제가 된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다. 최근에 와서는 노인들의 병원치료와 안락사 같은 문제들이 화제가 되지만 유대-기독교의 고귀한 생명관을 내버리고 저급한 가치관으로 대체하는 것이 유감이다.

노 예

로마제국의 인구가운데 반이 노예였다. 아덴의 인구중 4분의 3이 노예였다. 노예들의 목숨은 주인의 기분에 달려 있다. 수세기동안 기독교는 노예폐지에 앞장 서 왔다. 물론 고대세계에서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 영국의 복음주의자 윌버 포스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서다 그것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노예소유자들 가운데도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있었지만 기독교인들은 2천 여년동안 인류의 염병같은 노예제도 폐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고대세계에서 노예들의 상황은 지옥같은 것이었다. 로마에서는 한 집안의 주인이 살해당하면 그 집의 노예들은 어떤 법적심문 없이 죽일 수 있었으며 여자노예들은 손님이 오면 손님 대접으로 하루 밤을 배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고대에는 같은 인종 끼리도 노예로 삼았다. 신들도 노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노예는 아무런 권리도 없었고 사회와도 무관했으며 국가나 신 과도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변화되었다. 신약성경의 빌레몬 서를 보면 바울은 노예를 소유한 부자 빌레몬에게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그의 편지와 함께 지금은 바울과 감옥생활을 같이하는 오네시모(도망친 빌레몬의 노예)을 빌네몬에게 보낸다. 바울은 두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편지에서 빌네몬에게 말한다 “(오네시모)를 받아주어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라”고 말한다.

오늘날 수백만의 미국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으며 별로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가 들어 본 가장 혁명적인 개념이다.’살아있는 도구’인 노예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라구?’절대로 상상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말이다. 크리스천 형제애라는 개념과 함께 그러한 말은 노예의 족쇠들을 고드름 녹듯이 녹여버렸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에서는 노예제도를 제거하려는 직접적인 도전이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한다. 2세기, 3세기에 크리스천 지도자들은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 지도자들은 마음의 개혁을 위해 애썼지만 사회질서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가 처음부터 노예제도의 폐지를 들고 나왔다면 초대교회에서 그렇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일단 복음이 널리 퍼지자 결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마음을 개혁함으로 때가 되면 사회질서를 개혁하였다.

폴튜갈과 스페인 사람들의 손에서 노예들은 정말 추악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들여 노예로 팔아먹었다. 여기에는 영국의회의 의회의원이었던 복음주의자 윌버포스가 ?동지들을 규합하여 노예무역 폐지운동에 앞장 섰다. 25년 동안의 폐지운동의 결과 영국의회는 그의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실제로 노예들을 영국영토에서 완전히 없애기까지 또 다른 25년이 걸렸다.

그리고 30여년 후 미국에서 남북전쟁과 북부의 강단에서의 설교 덕분으로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졌다. 1835년 미국의 노예제도폐지 협회의 회원가운데 3분의 2가 개신교 목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Underground Railroad라는 탈출노예 지원단체의 지도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퀘이커 교도였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 노예제도 폐지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링컨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기독교 신앙과 노예제도는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검투사

권투가 잔인한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고대에 사람들은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였다. 사람들의 피가 군중을 흥분시켰던 것이다. 로마는 잔인하였다. 노예였던 검투사들은 죽기까지 싸우곤 하였다. 검투사들은 칼로 상대방을 제압하게 되면 황제를 바라보게 된다. 황제가 엄지를 내려 보이면 이 검투사는 적의 목을 내려치고 군중들은 흥분한다. 이 경기가 절정에 이르렀었던 트로얀 황제때에는 단지 4개월 동안에 1만 여명의 검투사들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 또한 초기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경기장에서 사자들과 온갖 야생동물들에 의하여 찢겨 나갔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퍼져가면서 검투사들의 경기는 점점 시들해졌고 교회사가 라투렛에 의하면 콘스탄틴 황제는 검투사 경기를 금지시켰다. 수만명의 크리스천들이 죽어간 콜로세움에는 지금은 커다란 십자가가 세워져서 그때의 비극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자살

자살이 라는 것은 성경에서 다섯번 언급되어 있다.4000여년의 성경역사 가운데 오직 다섯 사람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들은 모두가 가롯 유다와 같이 사악한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의 역사와는 달리 로마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본디오 빌라도와 부르투스, 안토니, 크레오파트라,네로 황제 세네카, 하드리안 황제, 등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크리스천들의 영향이 퍼지게 전에는 고대로마에서 자살이란 보편적인 것이었다.

기독교는 고대사회나 현대사회에서나 자살에 대한 적이었다. 오늘날 새로운 이교세계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 요즈음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어떻게 자살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사랑한다’)잠언 8:36)라고 하였다.

결 론

어떤 사회의 도덕성은 그 사회가 주장하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견해로 쉽게 판단할 수 있다. 1844년에 해스팅이 휘지 아일랜드를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생명의 값이 매우 싸다는 것과 그래서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서 사람 하나을 7달라면 살 수 있었다. 그것은 암소의 값보다 싼것으로 그렇게해서 사람을 산 다음에는 마음대로 일도 시키고, 때리기도 하고 마음내키는대로 먹이기도 하고 굶기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먹였다. 그는 몇 년 후에 그곳에 돌아가 인간의 가치가 굉장이 오른 것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때리거나 먹일려고 7달러에 사람을 살 수 없었다. 사실 사람을 7백만 달러에도 살 수가 없었다. 왜냐고? 그때 후지아일랜드에 1200여개의 교회가 있어서 그곳을 통해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 주고 산 자들로서 그것은 은이나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값진 존재라는 것을 배워왔다.

세계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해 보라 생명의 가치는 “생명? 피! 그건 가치가 없어. 값싼것 가운데서도 제일 싼거야.” 이 책을 읽는 당신은 만약 그리스도가 태어나지 않았드라면 아마도 오늘의 당신은 더 비참할 것이다..

*James Kennedy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Thomas Nelson Publisher

 


제1장 그리스도가 세계사에 키친 영향 개관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 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그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되며,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마태복음 13장 31-32)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생활이나 학문에 놀라운 변혁을 가져오는 일을 함으로 그들의 이름이 인류역사에 길이 빛나며 인구에 회자된다. 그러나 예수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인간의 생활 곳곳에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비극은 그것의 상업화가 아니라 그것의 진부함에 있다. 사람들이 가장 크게 득을 보고 있음에도 그를 잊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예수님은 계시록 21장 5절에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손을 댄 것들은 전적으로 변화되었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시간과 접촉하셨을 때 그의 출생은 우리들이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 전 세계는 시간의 흐름을 예수 이전(BC) 과 예수 이후(A.D.)로 나눈다. 불행하게도 요즘 세대들은 무식해서 A.D.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anna Domini로 “주님의 해”라는 의미이다.

무신론 주창자건, 무신론을 강요하는 공산주의 국가이건 다같이 예수의 탄생을 원년으로 하는 ?A.D.를 사용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는 작지만 충분히 자랐을 때는 많은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개인들에게 적용되지만 세계속의 기독교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기독교의 뿌리는 이스라엘 변방 시골에서 3년동안 설교하고 기적을 행했던 랍비에 의해 시작된 작고 볼 것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18억 이상의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며 1천만 명 이상이 성직자로 봉사하고 있다.

예수 시대에 황제와 총독들은 권력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육신은 썩어졌고 영혼은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그들을 따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그들을 경배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예수의 경우는 다르다. 나폴레옹은 “나는 역사가운데서 예수와 유사한 사람을 찾았으며, 그의 복음과 같은 것들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국가들은 사라져 버리고 왕좌들은 없어져 버렸지만 교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였다.

개 관

볼 것 없이 출발했음에도 교회는 역사상 어떤 운동이나 세력보다도 이 지상에 좋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독교가 그동안 끼친 긍정적인 기여를 열거한다면:

*중세기에 시작된 병원
*중세기에 시작된 대학들 특히 대부분의 우수한 대학들이 크리스천들에 의해 기독교의 목적을 위해 설립되었다.
*대중 교육과 문맹퇴치 사업
*자본주의와 자유기업
*특히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대의정치
*정치권력의 분산.
*시민의 자유
*고대와 현대에서의 노예제도 폐지
*현대 과학의 발전
*컬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女權 향상
*선한 사마리아인 정신을 계승한 자선사업
*간음, 동성애, 그 외 성적 문란에 대한 반대
*정의에 대한 높은 기준 설정
*일반인에 대한 지위향상
*인간생명 중시사상
*야만인들과 원시문화에 대한 계몽
*세계적으로 많은 언어들을 위한 문자 제정
*예술과 음악의 급격한 발전
*수많은 영혼들의 구원

기독교의 기본적인 목표는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지만 위에 언급한 것들은 그 부산물로 나타난 것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형상을 입었을 때 그는 인류에게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였다.

인간의 삶에 예수께서 무슨 영향을 끼쳤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하는 것들을 살펴볼 것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1946년에 상영된 영화 <It’s Wonderful Life>에서 지미 스튜얼트는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주변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장면들을 보게 된다. 프랭크 카프라가 감독한 이 영화의 요지는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들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부재로 인한 공백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누구보다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만약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빈자리는 커다란 계곡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향은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영향이 분명한 것부터 시작해서 한번 측량해 보려고 한다.

반 기독교 주창자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예수의 오심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한 19세기의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기독교가 전 세계를 오염시켰다고 하였다. 그는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수는 너무 일찍 죽었다. 만일 그가 훌륭하게 성숙하게 될 때까지 살았더라면 그는 자신의 교리를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니체는 또한 역사는 로마(이방인)와 이스라엘(유대인들과 기독교이) 간의 싸움이었는데 이스라엘이 이기고 있고 십자가가 고상한 덕성을 가진 다른 모든 것들을 정복하고 승리했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라고 하였다.

니체나 후에 나타난 히틀러는 튜톤의 용사들을 부패 시킨 것이 기독교라고 하였다. 니체에 의하면 예수가 이 세상에 오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에게 “노예의 도덕성”으로 부패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니체의 많은 생각들을 그의 철학적 제자인 히틀러가 실행에 옮겼는데 그 결과는 1천 6백만 이상의 죽음이었다.

히틀러는 그의<나의 투쟁 Mein Kampf>에서 교회는 유대인들의 사상과 법을 퍼트렸다고 주장하면서 일단 유대인들의 뿌리를 뽑은 다음에는 기독교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리기 원한다고 하였다.

니체와 히틀러는 다같이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사람들은 이 둘만이 아니다. 스타린과 모택동도 그의 통치하에서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천 만명 이상의 크리스천들을 학살하였지만 그들이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는데는 실패하였다.

나는 이 글에서 역사적으로 정치가들이나, 철학자들 그리고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이 계속해서 반 기독교 적인 선전들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삶이 이 지구상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며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먼저 기독교가 세계문명에 끼친 중요한 공헌들을 살펴 보고 그 다음에 기독교 역사상 교회가 저질렀던 부정적인 영향을 다루려고 한다. 우리는 십자군과 종교재판, 교회의 반유대주의 등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다루면서 교회의 죄를 다룰 것이다. 그 다음에는 무신론자들의 죄를 다루어 보겠다. 또한 후기 기독교 사회인 서방에서 더욱 잔학한 전쟁이 자행됐는가? 하는 의문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어느곳에서보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신화같은 이야기들도 다루어 보겠다. 그리고 결론으로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

교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시대별로 기독교의 영향을 정리하지만 여기서는 기독교의 영향을 문제별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변화시킴으로 개인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온 지구가 같이 공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정적인 영향이다.

이제 James Allan Francis 의 예수의 생애와 영향에 관한 글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떤 고독한 삶

그는 별 볼일 없는 시골에서 가난한 여인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다른 동네로 옮겨져서 자랐으며 30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목수로 지냈다. 그리고는 3년 동안 그는 떠돌이 설교자였다. 그는 책을 쓴 것도 없으며 어떤 공직에 오른 적도 없다. 그는 가족도 없었고 자신의 집도 없었다. 그는 대학에도 가보지 않았고 큰 도시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는 그가 태어난 곳에서 2백 마일 밖을 가보지 못했다. 그는 특별히 위대한 일을 한 것도 없다. 그는 어떤 공로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고 오직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민중들의 여론이 그를 등졌을 때 그는 단지 서른 세살에 불과했다. 그의 친구들은 도망쳤고 그중 한 사람은 그를 부인하기 까지 하였다. 그는 적들에게 넘겨졌고 재판에서 조롱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두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밖혔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갈 때 그를 처형한 군사들은 그가 이 세상에서 소유했던 유일한 재산인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았다. 그가 운명했을 때 그는 친구의 선의로 그에게서 빌린 무덤에 눕혀졌다, 그 후 20여 세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오늘 그는 인류사에서 중심 인물이 되었다.

보무 당당하던 장군들과 해양을 넘나들던 제독들과 의사당을 차지했던 의원들 그리고 천하를 지배하던 왕들 그 누구도 고독한 삶을 살았던 이 사람보다 지구위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에서 발취, 정리

*Dr. D. James Kennedy 프로리다에 있는 Coraal Ridge 장로교회의 수석목사로 Evangelism Explosion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고 Knox Theological Seminary의 학감 등을 지냈으며 50여권의 저서를 출판하고 활발하게 라디오와 TV방송을 하고 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