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2020년 2월 15일>

제임스 케네디의 <그리스도와 문명> 제 2 회

-예수가 태어나지 않앗드라면?

 

제2장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의 가치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창세기 1장 27절)

“광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100여년 전 프랑스의 한 엔지니어가 자기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이 여러가지 중요한 광물들의 이름들을 들먹이자 그는 학생들의 대답을 교정해 주었다. “광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광부들이다.”나는 그의 대답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인간생명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깊이 뿌리박고 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의 생명이란 무척 값 싼 것이었다. ?기독교의 영향이 있기 전에는 목숨(생명)이란 소모품에 불과하였다. 심지어 오늘날도 그리스도나 기독교의 복음이 깊숙이 스며들지 못한 곳에서는 생명은 무척 값 싼 것이다. 그러나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계시록 21장 5절)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인간의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였다. 더구나 기독교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신의 계시를 처음 받은 유대인들과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이교도를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기독교후기 시대 서구에서 보듯이 우리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무시하고 생명을 다시 값싼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린이들

고대에는 어린아이들을 신전에 제물로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현상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교도 신전 근처에 있는 묘지에서 어린아이들의 사체를 발굴하곤 하였다.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 고대 가나안의 바알 신전의 사제들은 그들의 제사의식의 일환으로 어린아이를 제물을 드리곤 하였다. 20세기 초만 해도 시카고대학교의 동방학연구소에서는 아합시대의 사마리아를 발굴하였는데 신전에서 별로 멀지않은 묘지에서 항아리에 보관된 아이들의 사체를발견하였다. 바알과 아스트롯의 사제들이 이들의 공식 살인자였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근동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린 생명의 값이 무척 쌌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고대 로마나 희랍에서는 임신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으며 그래서 낙태는 흔한 일이었고 특히 가난한 부모들은 여자아이이를 낳을 경우 여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유아기를 넘긴 아이들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소유물로 죽일수도 있고, 노예로 팔 수도 있으며 결혼과 이혼을 명령할 수도 있고 재산을 몰 수 할 수 있었다.

여하튼 고대사회에서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생명은 무척 값싼 것이었다.

그런 세상에 예수께서 오셨으며 그는 처녀의 몸에 임신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임으로 자기를 낮추시었다. 그 이후로 크리스천들은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겼다. 고대로마에서 크리스천들은 많은 아기들의 생명을 구했고 신앙으로 길러 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낙태가 유행되는 생명경시의 세상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낙태는 사라져 버렸다. 유아살해나 유기도 사라졌다. 어린아이들을 교회로 데려오라는 웨침이 크게 퍼졌다. 양육원, 고아원, 육아원 등이 어린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생명을 중시하여 생겨난 이러한 새로운 기관들이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서구문명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간다. 만약 예수께서 이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보는 이런 변화를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대 로마와 희랍, 중국 그리고 인도의 어린이들에게는 우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헤롯은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죽였다. 그러나 예수의 오심은 어린아이들의 승리로 마감하였다. 예수는 어린아이들을 모으시고 “어린이들이 내게 오도록 하고 나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태 19:14)고 하였다. 그의 말씀은 새로운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권위를 부여하였다. 예수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 부른 후 이것은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를 급격히 바꾸었을 뿐 아니라 아주 다른 형태의 아버지 개념과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의 교회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결국 유아살해를 종식시켰고 그의 영향으로 인간의 생명의 귀중함을 증식 시켜 유아살해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서구에서 통용되는 많은 아이디어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 더라면 이야기는 달라 졌으리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의 가치는 아직도 무척 값싸게 다루어 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자들

기독교의 영향이 있기 전에는 여인들의 목숨은 아주 값싼 것이었다. 고대문화에서 아내는 그저 소유물에 불과했다. 인도나 중국, 로마나 그리스에서 사람들은 여자들은 독립할 만한 능력을 갖지못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틀은 여자는 남자와 노예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고대에 노예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여자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프라토는 만약 남자가 비겁한 삶을 살면 그는 여자로 환생할 것이고 여자가 비겁하게 살았다면 새로 탄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대 로마에서의 여자의 운명 역시 별로 나은것이 없었다. 소년들보다 소녀들이 훨씬 많이 내버려 졌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여자라고해서 어린 소녀들을 죽이고 방기한 것은 옛날에도 그랬고 최근까지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못한 이방인들에게서는 다반사로 행해졌다.

1776년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는 중국의 큰 도시에서는 매일 밤 여자아이들을 애완동물과 같이 강속으로 던져버리는 의식들이 행해졌다”고 기술하였다. 그것은 바로 200여년 전 일이지만 기독교의 영향이 중국에 배어들기 전에 다반사로 행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여년 동안 선교활동이 세계적으로 활발히 추진되면서 여러 나라의 수 백여 종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자 여자들의 생활은 급격히 향상되었다.

인도에 기독교의 영향이 미치기 전 과부들은 ‘착한 아내’라는 평을 받기 위해서는 남편을 화장하는 장작더미위로 자발적이건, 강제로건 올라가 같이 타죽어야 했다. 이 의식을 그들은 suttee라고 불렀는데 ‘착한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죽음에까지 따라가는 아내가 착한 여자라고 믿었던 것이다. 서방에서 선교사들이 인도에 오면서 이러한 의식과 여아살해 습관이 얼마나 비인도적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인도에게 그러한 관행은 19세기에 와서야 선교사들의 반대운동으로 폐지되었다.

인도에는 또한 신전에서 창녀 노릇을 하도록 키우는 ‘어린이 과부’가 있었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서양의 선교사들이 이것을 폐지하기 위하여 이들을 빼돌려 크리스천 컴뮤니티에서 기르도록 하였다. 19세기에 인도 선교사였던 스펄죤은 한 힌두교도 여인한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선교사님, 성경은 아무래도 여자가 쓴 것 같아요?””왜요?” “성경에는 여자들에게 친절한 기록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요?” “우리 힌두교 승려들은 여자들에게 야단만치지 친절한 말 한마디도 안하거든요.”

아프리카에서도 기독교의 영향이 들어오기 전에는 인도의 suttee와 같은 관습이 계속되었다. 추장의 아내나 첩들은 추장이 죽으면 합장하여 같이 죽도록 하였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밭을 가는데 암소와 여인이 같이 끌도록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여인들의 지위를 높여주었으며 그 어느때 보다도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게 하셨다.

더구나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부다처제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오늘날 여성민권운동가들이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공헌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것은 아이로니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기독교가 여성들을 억압해 왔다고 주장한다. 사실 기독교만큼 여성들의 인권을 향상시킨 곳은 없다고 하겠다. 예수가 오지 않았더라면 여권이 지금만큼 향상되었을까?

노인들

중국인이나 일본사람들이 연장자에 대한 존경심이 뛰어나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종족들이 원하지 않는 아이들을 죽이듯 노인들을 죽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방법들은 문화에 따라 달랐지만 그리스도 이전에 노인들의 가치는 그 종족들의 특별한 문화에 따라 달랐다. 조상제사를 드리는 부족이 있었는가 하면 고려장으로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 몬 부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모든 인간의 생명은 귀한 가치를 갖게 되었고 거기에는 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항상 오늘날보다 높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1892년까지만 해도 100명 가운데 1명만이 65세를 넘길 정도였다. 그래서 노인들의 건강이 문제가 된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다. 최근에 와서는 노인들의 병원치료와 안락사 같은 문제들이 화제가 되지만 유대-기독교의 고귀한 생명관을 내버리고 저급한 가치관으로 대체하는 것이 유감이다.

노 예

로마제국의 인구가운데 반이 노예였다. 아덴의 인구중 4분의 3이 노예였다. 노예들의 목숨은 주인의 기분에 달려 있다. 수세기동안 기독교는 노예폐지에 앞장 서 왔다. 물론 고대세계에서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 영국의 복음주의자 윌버 포스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서다 그것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노예소유자들 가운데도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있었지만 기독교인들은 2천 여년동안 인류의 염병같은 노예제도 폐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고대세계에서 노예들의 상황은 지옥같은 것이었다. 로마에서는 한 집안의 주인이 살해당하면 그 집의 노예들은 어떤 법적심문 없이 죽일 수 있었으며 여자노예들은 손님이 오면 손님 대접으로 하루 밤을 배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고대에는 같은 인종 끼리도 노예로 삼았다. 신들도 노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노예는 아무런 권리도 없었고 사회와도 무관했으며 국가나 신 과도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변화되었다. 신약성경의 빌레몬 서를 보면 바울은 노예를 소유한 부자 빌레몬에게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그의 편지와 함께 지금은 바울과 감옥생활을 같이하는 오네시모(도망친 빌레몬의 노예)을 빌네몬에게 보낸다. 바울은 두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편지에서 빌네몬에게 말한다 “(오네시모)를 받아주어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라”고 말한다.

오늘날 수백만의 미국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으며 별로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가 들어 본 가장 혁명적인 개념이다.’살아있는 도구’인 노예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라구?’절대로 상상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말이다. 크리스천 형제애라는 개념과 함께 그러한 말은 노예의 족쇠들을 고드름 녹듯이 녹여버렸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에서는 노예제도를 제거하려는 직접적인 도전이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한다. 2세기, 3세기에 크리스천 지도자들은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 지도자들은 마음의 개혁을 위해 애썼지만 사회질서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가 처음부터 노예제도의 폐지를 들고 나왔다면 초대교회에서 그렇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일단 복음이 널리 퍼지자 결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마음을 개혁함으로 때가 되면 사회질서를 개혁하였다.

폴튜갈과 스페인 사람들의 손에서 노예들은 정말 추악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들여 노예로 팔아먹었다. 여기에는 영국의회의 의회의원이었던 복음주의자 윌버포스가 ?동지들을 규합하여 노예무역 폐지운동에 앞장 섰다. 25년 동안의 폐지운동의 결과 영국의회는 그의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실제로 노예들을 영국영토에서 완전히 없애기까지 또 다른 25년이 걸렸다.

그리고 30여년 후 미국에서 남북전쟁과 북부의 강단에서의 설교 덕분으로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졌다. 1835년 미국의 노예제도폐지 협회의 회원가운데 3분의 2가 개신교 목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Underground Railroad라는 탈출노예 지원단체의 지도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퀘이커 교도였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 노예제도 폐지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링컨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기독교 신앙과 노예제도는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검투사

권투가 잔인한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고대에 사람들은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였다. 사람들의 피가 군중을 흥분시켰던 것이다. 로마는 잔인하였다. 노예였던 검투사들은 죽기까지 싸우곤 하였다. 검투사들은 칼로 상대방을 제압하게 되면 황제를 바라보게 된다. 황제가 엄지를 내려 보이면 이 검투사는 적의 목을 내려치고 군중들은 흥분한다. 이 경기가 절정에 이르렀었던 트로얀 황제때에는 단지 4개월 동안에 1만 여명의 검투사들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 또한 초기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경기장에서 사자들과 온갖 야생동물들에 의하여 찢겨 나갔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퍼져가면서 검투사들의 경기는 점점 시들해졌고 교회사가 라투렛에 의하면 콘스탄틴 황제는 검투사 경기를 금지시켰다. 수만명의 크리스천들이 죽어간 콜로세움에는 지금은 커다란 십자가가 세워져서 그때의 비극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자살

자살이 라는 것은 성경에서 다섯번 언급되어 있다.4000여년의 성경역사 가운데 오직 다섯 사람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들은 모두가 가롯 유다와 같이 사악한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의 역사와는 달리 로마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본디오 빌라도와 부르투스, 안토니, 크레오파트라,네로 황제 세네카, 하드리안 황제, 등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크리스천들의 영향이 퍼지게 전에는 고대로마에서 자살이란 보편적인 것이었다.

기독교는 고대사회나 현대사회에서나 자살에 대한 적이었다. 오늘날 새로운 이교세계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 요즈음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어떻게 자살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사랑한다’)잠언 8:36)라고 하였다.

결 론

어떤 사회의 도덕성은 그 사회가 주장하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견해로 쉽게 판단할 수 있다. 1844년에 해스팅이 휘지 아일랜드를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생명의 값이 매우 싸다는 것과 그래서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서 사람 하나을 7달라면 살 수 있었다. 그것은 암소의 값보다 싼것으로 그렇게해서 사람을 산 다음에는 마음대로 일도 시키고, 때리기도 하고 마음내키는대로 먹이기도 하고 굶기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먹였다. 그는 몇 년 후에 그곳에 돌아가 인간의 가치가 굉장이 오른 것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때리거나 먹일려고 7달러에 사람을 살 수 없었다. 사실 사람을 7백만 달러에도 살 수가 없었다. 왜냐고? 그때 후지아일랜드에 1200여개의 교회가 있어서 그곳을 통해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 주고 산 자들로서 그것은 은이나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값진 존재라는 것을 배워왔다.

세계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해 보라 생명의 가치는 “생명? 피! 그건 가치가 없어. 값싼것 가운데서도 제일 싼거야.” 이 책을 읽는 당신은 만약 그리스도가 태어나지 않았드라면 아마도 오늘의 당신은 더 비참할 것이다..

*James Kennedy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Thomas Nelson Publisher

 


제1장 그리스도가 세계사에 키친 영향 개관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 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그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되며,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마태복음 13장 31-32)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생활이나 학문에 놀라운 변혁을 가져오는 일을 함으로 그들의 이름이 인류역사에 길이 빛나며 인구에 회자된다. 그러나 예수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인간의 생활 곳곳에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비극은 그것의 상업화가 아니라 그것의 진부함에 있다. 사람들이 가장 크게 득을 보고 있음에도 그를 잊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예수님은 계시록 21장 5절에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손을 댄 것들은 전적으로 변화되었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시간과 접촉하셨을 때 그의 출생은 우리들이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 전 세계는 시간의 흐름을 예수 이전(BC) 과 예수 이후(A.D.)로 나눈다. 불행하게도 요즘 세대들은 무식해서 A.D.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anna Domini로 “주님의 해”라는 의미이다.

무신론 주창자건, 무신론을 강요하는 공산주의 국가이건 다같이 예수의 탄생을 원년으로 하는 ?A.D.를 사용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는 작지만 충분히 자랐을 때는 많은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개인들에게 적용되지만 세계속의 기독교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기독교의 뿌리는 이스라엘 변방 시골에서 3년동안 설교하고 기적을 행했던 랍비에 의해 시작된 작고 볼 것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18억 이상의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며 1천만 명 이상이 성직자로 봉사하고 있다.

예수 시대에 황제와 총독들은 권력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육신은 썩어졌고 영혼은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그들을 따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그들을 경배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예수의 경우는 다르다. 나폴레옹은 “나는 역사가운데서 예수와 유사한 사람을 찾았으며, 그의 복음과 같은 것들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국가들은 사라져 버리고 왕좌들은 없어져 버렸지만 교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였다.

개 관

볼 것 없이 출발했음에도 교회는 역사상 어떤 운동이나 세력보다도 이 지상에 좋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독교가 그동안 끼친 긍정적인 기여를 열거한다면:

*중세기에 시작된 병원
*중세기에 시작된 대학들 특히 대부분의 우수한 대학들이 크리스천들에 의해 기독교의 목적을 위해 설립되었다.
*대중 교육과 문맹퇴치 사업
*자본주의와 자유기업
*특히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대의정치
*정치권력의 분산.
*시민의 자유
*고대와 현대에서의 노예제도 폐지
*현대 과학의 발전
*컬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女權 향상
*선한 사마리아인 정신을 계승한 자선사업
*간음, 동성애, 그 외 성적 문란에 대한 반대
*정의에 대한 높은 기준 설정
*일반인에 대한 지위향상
*인간생명 중시사상
*야만인들과 원시문화에 대한 계몽
*세계적으로 많은 언어들을 위한 문자 제정
*예술과 음악의 급격한 발전
*수많은 영혼들의 구원

기독교의 기본적인 목표는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지만 위에 언급한 것들은 그 부산물로 나타난 것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형상을 입었을 때 그는 인류에게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였다.

인간의 삶에 예수께서 무슨 영향을 끼쳤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하는 것들을 살펴볼 것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1946년에 상영된 영화 <It’s Wonderful Life>에서 지미 스튜얼트는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주변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장면들을 보게 된다. 프랭크 카프라가 감독한 이 영화의 요지는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들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부재로 인한 공백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누구보다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만약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빈자리는 커다란 계곡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향은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영향이 분명한 것부터 시작해서 한번 측량해 보려고 한다.

반 기독교 주창자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예수의 오심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한 19세기의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기독교가 전 세계를 오염시켰다고 하였다. 그는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수는 너무 일찍 죽었다. 만일 그가 훌륭하게 성숙하게 될 때까지 살았더라면 그는 자신의 교리를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니체는 또한 역사는 로마(이방인)와 이스라엘(유대인들과 기독교이) 간의 싸움이었는데 이스라엘이 이기고 있고 십자가가 고상한 덕성을 가진 다른 모든 것들을 정복하고 승리했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라고 하였다.

니체나 후에 나타난 히틀러는 튜톤의 용사들을 부패 시킨 것이 기독교라고 하였다. 니체에 의하면 예수가 이 세상에 오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에게 “노예의 도덕성”으로 부패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니체의 많은 생각들을 그의 철학적 제자인 히틀러가 실행에 옮겼는데 그 결과는 1천 6백만 이상의 죽음이었다.

히틀러는 그의<나의 투쟁 Mein Kampf>에서 교회는 유대인들의 사상과 법을 퍼트렸다고 주장하면서 일단 유대인들의 뿌리를 뽑은 다음에는 기독교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리기 원한다고 하였다.

니체와 히틀러는 다같이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사람들은 이 둘만이 아니다. 스타린과 모택동도 그의 통치하에서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천 만명 이상의 크리스천들을 학살하였지만 그들이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는데는 실패하였다.

나는 이 글에서 역사적으로 정치가들이나, 철학자들 그리고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이 계속해서 반 기독교 적인 선전들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삶이 이 지구상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며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먼저 기독교가 세계문명에 끼친 중요한 공헌들을 살펴 보고 그 다음에 기독교 역사상 교회가 저질렀던 부정적인 영향을 다루려고 한다. 우리는 십자군과 종교재판, 교회의 반유대주의 등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다루면서 교회의 죄를 다룰 것이다. 그 다음에는 무신론자들의 죄를 다루어 보겠다. 또한 후기 기독교 사회인 서방에서 더욱 잔학한 전쟁이 자행됐는가? 하는 의문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어느곳에서보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신화같은 이야기들도 다루어 보겠다. 그리고 결론으로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

교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시대별로 기독교의 영향을 정리하지만 여기서는 기독교의 영향을 문제별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변화시킴으로 개인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온 지구가 같이 공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정적인 영향이다.

이제 James Allan Francis 의 예수의 생애와 영향에 관한 글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떤 고독한 삶

그는 별 볼일 없는 시골에서 가난한 여인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다른 동네로 옮겨져서 자랐으며 30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목수로 지냈다. 그리고는 3년 동안 그는 떠돌이 설교자였다. 그는 책을 쓴 것도 없으며 어떤 공직에 오른 적도 없다. 그는 가족도 없었고 자신의 집도 없었다. 그는 대학에도 가보지 않았고 큰 도시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는 그가 태어난 곳에서 2백 마일 밖을 가보지 못했다. 그는 특별히 위대한 일을 한 것도 없다. 그는 어떤 공로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고 오직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민중들의 여론이 그를 등졌을 때 그는 단지 서른 세살에 불과했다. 그의 친구들은 도망쳤고 그중 한 사람은 그를 부인하기 까지 하였다. 그는 적들에게 넘겨졌고 재판에서 조롱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두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밖혔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갈 때 그를 처형한 군사들은 그가 이 세상에서 소유했던 유일한 재산인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았다. 그가 운명했을 때 그는 친구의 선의로 그에게서 빌린 무덤에 눕혀졌다, 그 후 20여 세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오늘 그는 인류사에서 중심 인물이 되었다.

보무 당당하던 장군들과 해양을 넘나들던 제독들과 의사당을 차지했던 의원들 그리고 천하를 지배하던 왕들 그 누구도 고독한 삶을 살았던 이 사람보다 지구위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다.

*D.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에서 발취, 정리

*Dr. D. James Kennedy 프로리다에 있는 Coraal Ridge 장로교회의 수석목사로 Evangelism Explosion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고 Knox Theological Seminary의 학감 등을 지냈으며 50여권의 저서를 출판하고 활발하게 라디오와 TV방송을 하고 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