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2021년 1월 1일>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rel)

"긍정적인 삶" (17)

노먼 빈센트 피일(1898-1993)은 목사요 저술가로 월간지 <Guidepost>를 창간하였으며 그의 저서 <적극적인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으로 유명하다. Guidepost 재단은 <Plus-The Power of Faith>라는 격월간 소책자를 통해 피일 박사의 강연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디모데 후서 1장 7절)” 이 말씀은 가장 지혜로운 선언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능력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무슨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능력 곧 믿음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애매모호한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실질적인 믿음의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서 또 다른 강력한 능력은 두려움의 능력으로 인류에게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수 억이 넘는 위대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두려움은 인간을 통제합니다. 그것은 강력한 능력, 두려움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두려움과 불안을 경험하고 그들의 악령에 의해 여러 해 동안 시달려 보았다면 하나님이 그것들을 당신에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에게 두려움이라고 알려진 인간에게 서서히 퍼지는 마음과 감정의 병을 주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선택했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주었든지, 아니면 세상살이 가운데서 습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두려움에 의해 겁에 질리거나 방해를 받거나 훼방을 받는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그 해답은 쉽지는 않지만 간단합니다. 더욱 믿음을 가지십시요. 깊은 믿음을 가지십시요. 당신의 믿음에 더욱 의존하십시요. 바꾸어 말하자면 하나님과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십시요 그러면 그것이 아무리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더라도 당신의 삶에서 두려움을 쫒아낼 수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이 저희 <종교와 심리학을 위한 종교재단>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신경이 쇠약해지고 불안하고 항상 피로를 느낀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는 잠을 잘 수가 없고 휴식의 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동료들을 대할 때 자주 화를 낸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건강하고 활기가 넘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상담원들은 피로나 긴장 그리고 화를 잘 내는 것 등은 육체적인 조직의 병으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육신은 마음을 잘 다스리면 기계와? 같이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상담원들이 몇 번 인터뷰를 해 본 결과 이 사람은 매우 중요한 ‘어휘패턴’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는듯 하다, 나는 일 속에 파묻혀 있다는 느낌이다, 내 머리 속은 일들로 꽉 차있다. 나는 물에 빠져서 점점 더 심해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며 그것은 계속 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경우 상담자는 고 브랜톤(Smiley Blanton) 박사로 통찰력이 깊고 절묘한 마음의 소유자로 인간 감성의 급작스런 변화나 병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 분입니다. 그는 이 사람안에는 어떤 초기의 두려움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결국 아주 어린 소년이었을 때 어느날 큰 아이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호수로 나갔을 때의 두려움이라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아이들은 보트에서 제멋대로 난장을 부리다가 보트가 뒤집혀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수영을 할 수 있었는데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파도가 그의 머리를 덮고, 앞이 깜깜해지더니 숨이 막히고 다른 아이들이 그를 구조해 줄 때까지 두 번이나 물속으로 잠겼던 기억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제가 그를 상담하던 날까지 그는 다시는 물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경험으로 치명적인 심적 테러를 당한 것입니다.

그 분은 그 사건 자체는 잊고 있었지만 디른 두려움들이 떠오르게 되었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중년이 되어 이제 성숙한 열정을 가지고 일해야 할 때인데 미국정부의 요직에 있으면서도 무기력하고 비능율적인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고 있었고 성경을 믿고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적인 믿음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믿음을 지적인 믿음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깊이 헌신하는 믿음응 갖게되었습니다. 그는 “나의 삶을 예수님께 맡기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한 심리학자가 그와 함께 한쪽은 깊고, 한쪽은 얕은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브랜톤 박사는 그와 함께 앉아서 하나님에 대해, 신앙에 관해, 그리고 수영하는게 얼마나 좋은지 등에 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가드와 여러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그를 제일 깊은 끝까지 가도록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사람은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점차적으로 물에 대한 공포심이 줄어들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혼자서 어렸을 때 경험하였던 그 호수에 가서 더 이상 발이 닿지 않는곳까지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옛 두려움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이란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는 당신과 함께 이 호수를 헤엄쳐 건너려고 합니다. 저는 공포심을 영원히 종식시키려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오래된 두려움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고 이 말씀에 언급된 놀라운 능력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능력을 주셨습니다”라고 한 말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이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수년동안 당신을 뒤쫒고 있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당신에게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러한 두려움을 갖도록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이 스스로 자취한 것으로 깊은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과 대면하여 전능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에게서 떠나라고 명령하십시요. 당신은 당신의 새로운 능력으로 두려움의 능력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두 번째로 사랑을 개발하십시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 곧 사랑의 능력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랑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를 신뢰할 수 있으며 신뢰에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물리침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위대한 인격을 가졌던 위대한 인물 고 프랜시스 대주교 스펠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로마캐톨릭의 로마대교구의 추기경이었던 그 분을 가까이서 사귈 수 있는 영예를 가졌었습니다. 그는 겸손한 분으로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데서 나온 겸손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분과 함께 있는데 어떤 분이 오더니 ‘추기경 님’, ‘교회의 위대한 왕자님’ 등과 같은 최고위 명칭으로 그를 부르면서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때 추기경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우리들이 참고 견디어야 하는거지요. 사람들은 이것이 친절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유혹이 심합니다. 교회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하나님의 단순한 '사제’로 죽어야 합니다”라고

마지막으로 본문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준 것이 아니라 사랑과 건전한 마음의 능력을 주셨다” 이 성경구절이 아주 현명하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할 세 번째 위대한 요인은 건전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건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건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왔고 거기에서 결코 헤아날 수 없을 정도로 얼켜있는 아이디어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것들은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영향을 끼치는 별난 성격이나. 관념, 귀신들 그리고 마음속의 그림자들입니다. 건전하고 깨끗하고 건강한 마음은 모래가 들어있지 않고 기름칠이 잘 되어 있어 정밀하게 작동하는 정신적인 기계입니다.

당신이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질 때 힘을 전달하는 정신적인 엔진을 갖게됩니다. 당신이 수년 동안에 걸쳐 수집한 강박적인것들 즉 강박적인 선입관, 강박적인 증오심, 강박적인 생각, 강박적인 두려움, 강박적인 긴장, 강박적인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어려움들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시작할 때, 예수 사랑하는 것을 배울 때, 그 때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보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패배주의자의 요소들을 던져버리게 됩니다.

당신이 교회에 가면, 당신이 깊은 기도 속에 빠지면 거기에는 당신을 철저히 아는 사람이 계십니다. 그는 당신에게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훌륭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모순들과 이러한 마음 속의 강박관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니 그것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한 발 더 나가서 그분은 당신의 마음에서 그것들을 제거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두려움을 가게하십시요. 그분은 당신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두려움을 쫓아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건전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크리스마스 날 이 세상에 오셨으며 우리를 가르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 죽으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입니까? 우리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고, 약한 패배자인 자아로부터 구원하며, 우리의 생각, 강박관념, 편견, 증오, 두려움 등으로부터 구원하여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가장 위대한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시지 않으셨으므로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습득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것들을 쫒아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의 영, 사랑의 영, 건전한 마음의 영”을 주셨습니다.

오늘 , 이 시간 당신은 당신의 믿음을 깊게하여 새로이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탈피하는 과정들을 완성할 수가 있습니다.

*<PLUS-The Power of Faith / December/January 2021>에서 ????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하실것입니다.


목사의 임무를 이야기하자면 하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요,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아주 절망적이고 힘든 순간에 그들의 경험가운데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나는 목사는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해동안 이러한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저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역경속에서도 그에 맞서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승리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잊혀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준 사건들을 목격했습니다. 위대한 진리를 마음 속에 간직한 사람은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패배하지 않고 비록 깊은 물속에 빠져 허우적 거릴지라도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본것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앙입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당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혼자가 아니라며 이 믿음을 가질 때 거부당하지 않고 버려지지 않으며 혼자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같이 하신다,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의 원천입니다.

모든 세대의 필요에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오래된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마지막 절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이 진리라는 확신을 가질 때, 하나님이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같이 하신다고 확신할 때 당신은 인간이 경험하는 어떠한 도전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당신의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이 믿음 없이 우리가 어떤 좋은생각을 마음 속에 가진다고 해도 그것은 효과를 내지 못하며, 우리의 생각은 적절한 것이 되지못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로 이끌어 우리의 목적을 이를 수 없으며 그러한 생각들은 우리를 패배로 이끌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비참하고 우울한 때를 통과합니다. 저는 자기는 너무 늙었다고 이야기하는 어떤 노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전 아주 허약한 , 낡아빠진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약한 늙은 육신에 아무리 강인한 정신을 가졌다 한들 무엇을 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글세요. 하나님께 당신의 육체가 더욱 강건하게 도와달라”고 기도해 보는것이 어떨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해보지요”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랫드니 그의 몸에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났습니다.

그 후 저는 한 10대 소녀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마음에 온갖 갈등들을 품은채 세상과 적응하려고 애쓰는 소녀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불만들을 듣고 있다가 그녀에게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수 있습니까?”고 물었습니다.
“먼저 기도를 해보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제가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니 주님께서 저를 가까이 끌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아뢰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쉽게 “그렇게 힘써 보겠습니다”며 동의하였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증 한 구절을 소개하면 “저는 모든 10대들이 저와 같은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저는 짧은 기간동안에 하나님을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이상한 무엇인가를 제 안에서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저의 삶을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습니다.”였습니다.

여러분은 한 노인과 한 10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은 인격적인 좌절의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다는 간단한 처방으로 문제들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지식이 인간의 의식의 배경이 될 때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삶의 온갖 문제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온갖 지침을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물론 가장 절망적인 문제에 직면해서도 저의 말에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제문제에는 해결책이 없어요.”하면서 반박할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의심치 않습니다. “ 들어보세요. 저는 당신의 문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해결책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세 가지로 응답하십니다. 그것은 예스나 노 그리고 기다리라 입니다. 물론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도에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무응답이 가르쳐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십시요. 하나님은 때로는 올바른 열린 문으로 당신을 인도하기 위해서 앞의 열린 문들을 꽝하고 닫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어려움과 고난을 경험하였다면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과는 다른 것을 원하신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이든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당신은 해답을 얻을 것입니다. 올바른 해답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인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제 아내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제가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스물 한살 로 시라큐스 대학원생이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나이가 좀 많았는데 오하이오주에 있는 웨슬레안 대학교를 졸업하고 보스톤대학교와 보스톤대학의 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아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그녀보다 4년이나 대학원 교육을 더 받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저는 그녀가 속한 교회의 담임목사였습니다. 이쯤되면 제가 그녀보다는 더 지혜로울 것이라고 인정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결혼했을 때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진정한 지혜의 원천은 분명해졌습니다. 그러한 문제가운데 하나가 극심한 재정문제였습니다.저는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재정적으로 아무런 대책이 없을 때 기분이 어떠하였는가를 저는 압니다. 하루는 밤중에 침대에서 일어나서 옷을 입고 집을 나와 시라큐스의 한 공원에 가서 우리들의 재정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공원을 50바퀴나 돌았습니다. 저는 이 상황때문에 곤란했을 뿐 아니라 약간 겁이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계란과 베이콘을 프라이하면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산보가 즐거웠어요”하고 물었고 저는 “아니, 전혀 즐겁지 않았어”라고 대답했지요.

“앉아서 계란과 베이콘과 커피하고 토스트를 좀 드세요”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자 아내는 저를 응접실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여보,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제가 당신에게 하나님에 관해 가르치려고 하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저는 그녀의 담임목사이고 신학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신학교에서 이론을 잔뜩 배워가지고 나왔지만 저는 사실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 당장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버립시다. 주님께 우리들은 왜 주님께서 이러한 어려움을 우리에게 겪게 하시는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지만 주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려요.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신다면 어려움과 맞서서 싸울 의도가 있다'고 기도하세요”라고

그리고 아내는 아주 진지하게 “여보, 다시 말하는데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들의 문제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주께서는 우리를 죽을 때까지 돌보아 주실거라고 저는 보장할 수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스물 세살밖에 안된 아내를 바라보면서 어린아이같은 믿음과 신뢰를 보았습니다. 저는 지적인 신앙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적인 믿음보다 더 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에 근거한 건전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아내는 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 하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내가 저에게 보장한 만약 당신이 당신의 문제들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그를 신뢰하고 그분에게 해답을 강요하지 않고, 그의 응답을 전적으로 따르려고 한다면 주님은 당신을 이끌어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죽는 그날까지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당신에게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온갖 좋은 방법으로 돌보아 주실것입니다. 그분은 “세상 끝날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그래, 그 말이 실제적이고, 논리적이기는 한데 나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것은 유감입니다. 제가 아는 분이 한번은 저에게 “하나님이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느껴져”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껴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이나 다른 목사들이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들 늘 들어왔지만 느껴본 적이 전혀 없거든요. 어떻게 하나님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기도로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기도 하지요. 또 다른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느끼기도 하고요. 또 다른 사람들은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으로 마음으로 하나님을 느끼지요. 저는 당신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런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주 하나님을 찾으라. 그러면 그를 만날 것이요 너의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찾으면 그를 찾게되리라는 것입니다.(신명기 4:29)”

그런일이 있은지 얼마 후에 그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주 춥고 습기찬 어느 날 밤에 그는 밖에 나가 산책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너무나 추워서 한기가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그런 밤이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칼러를 목에까지 잔뜩 치켜올리고 그가 살고있는 교외의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한밤의 정적가운데서 자기발이 빠져들어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때 그곳에는 나만 있었기 때문에 “저는 큰 소리로 ‘주님, 당신이 계시다면 오셔서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저는 당신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내가 목사님께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제가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던 순간입니다. 저는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누군가가 저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그리고 눈물이 제 얼굴에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저의 곁에 오셔서 같이 하셨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이 마음과 삶에서 우리들의 말과 행동과 존재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한다면 그래서 그분이 우리와 가까이 하신다면 하나님은 당신과 저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하겠다”는위대한 진리의 말씀을 지금은 물론 미래에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Plus The Power of Faith? August/September 2020


 

평안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놀만 빈센트 필-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의 평안을 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이 뿌리하고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항상 원하는 내적 평안을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을 통해서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네게 평안을 주노니 그것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주는 평안이다. . . . 마음에 불안해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의 말 가운데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문장가운데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이해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내적 평안, 마음의 평화, 또는 영혼의 평온함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할때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쁘다고까지 이야기하며, 그것은 현실도피라고 말하기도 하고 , 부드럽고 조용한 삶은 살기 바라는 사람들을 마취시키는 마약을 준다고까지 말합니다.

이것은 진리와는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평안은, 그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인데, 현실도피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이 세상에서의 책임들에서 도피하려는것도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책임을 지고 그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의 근원인 것입니다. 나는 먼저 내적인 안정 없이 진정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면이(마음 속이) 분열된 사람은 초점이 없고, 힘도 없으며 활기도 없습니다. 에너지와 힘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심에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내적으로 듬직한 사람은 강하고 효율적인 사람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해서 피상적인 것, 거짓된 것, 환상적인 평안을 움켜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성취하는데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그들은 심지어 스포츠나 사교칼럼 이외에는 신문을 읽는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살고 있는 조그마한 사적인 세계에만 관심을 가지고 외부세상에 대해서는 그들 마음대로 돌아가라고 무관심합니다. 사회 문제나 국가적인 문제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는 잘못된 방법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삶의 긴장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에는 결코 없었던 평안을 추구하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자신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갈등과 증오와, 두려움과 죄, 그리고 당신의 진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릴 때 그가 약속한 평안을 참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께서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주는 평안“이란 말씀을 하셨을 때 의미했던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려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저는 세상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저는 자연세계에는 무수한 평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봄철에 여러분들은 활짝 피는 꽃들과, 푸르게 자라는 잔디, 무성한 나무들에 맺힌 이슬방울들과 햇볓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면 가을이 오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로 만드신 자연의 경관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한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와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평화로 채우셨습니다. 왜냐하면 세계는 그가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한 도구는 아니며 가장 깊은 평화로 인도하는 길도 아닙니다. 조만간 우리는 모두가 자연세계의 경이를 통해 우리가 얻게되는 평안보다 더 깊은 평안이 필요하게 됩니다.

한번은 제가 비행기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승무원이 와서 “저 뒤에 계신 어떤 신사분이 선생님과 대화하기를 원하시는데 선생님이 바쁘게 일하시는 것을 보고, 저에게 혹시 비행기가 착육하기 전에 대화할 시간을 내 주실수 있을런지 좀 알아봐 달라고 하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물론이지요. 당장 오시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신사가 와서 자신의 명함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 회사의 부사장이었습니다. 제가” 부사장님이시군요”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사장 바로 다음자리가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는 “부사장이란 사장이 낚시하러 갈때 모든 것을 맡아하는 자리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는 말인가요?”

이 한 마디는 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내 옆 빈자리에 앉아서 15분 동안이나 그가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의 직업과 싸우고 있는 한 불쌍한 사나이의 처량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직업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건 힘든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모든 어려운 일들을 감내합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 신사는 “저는 매일 밤 서류가방을 챙겨 가지고 집으로 가지요.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휴가도 한 번 못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휴가도 못갔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싸인입니다. “그리고 요즈음은 신경이 너무 과민해져서 잠도 잘 못자고, 아내와도 자주 싸우게 됩니다”

의자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연히 창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저는 “혹시 오늘 아침 밖을 내다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고 그 사람은 “아니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지금 한번 내다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수정과도 같이 맑게 개인날이었습니다. 하늘은 짙은 하늘색이었으며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내다 보이는 날개의 끝 부분에서 짓푸른 하늘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좀 멀리 떨어진 곳에 하늘을 배경으로 부드럽게,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적운이 거대한 눈덮인 산과도 같이 세상을 뒤덮듯이 하고 있었습니다. 구름가운데 한 조각이 마치 배와도 같이 보였습니다. 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구름배라,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는 랄프 왈도 에머슨이 모든 사람들은 하루중에 반드시 시간을 내어 하늘을 올려 보라고 이야기 하엿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에머슨의 “하늘은 영혼의 일용양식이다”란 문구를 언급하였습니다.

저의 손님은 자신의 의자에 깊숙이 들어앉으면서 “무척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낚시를 갔을 때 본 물줄기를 역류하는 송어들에 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자연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은 무척 침착해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박사님, 무척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평온해 지는군요.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래 가지는 않을것입니다. 옛 걱정꺼리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으니까요. 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피상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는 괘면쩍은 얼굴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으시지요, 아닌가요?”

그는 그렇다고 하였으며 과연 예수를 믿고 있었다.

‘혹시 당신이 지은 어떤 죄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하고 묻자

그 사람은 살피는듯한 눈초리로 저를 잠시 쳐다보너니 “예, 저는 어떤 형태로든 풀어버려야 할 짐이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으로부터 도망쳐 버린듯 합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에 관하여 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저는 복음서의 훌륭한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시작했습니다. 별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둘만이 있었지만 우리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평안을 주리라고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아무도 그리스도에 관해 그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저는 그에게 기도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가 한 기도는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고 더 낳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요. 저를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저에게 평안을 주셔서 보다 강건하게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였습니다.

후에 저는 이 사람의 마음과 영혼이 보다 깊은 평안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산을 만드는 구름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속으로 자신이 깊숙이 들어갔읍니다. 문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답에 이른다면 당신은 그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활절 멧세지

-놀만 빈센트 필-

나는 여러 나라에서 온 50여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이슬에 젖은 채 햇빛을 받으며 맞이했던 그 평화로운 아침을 잊지 못 할 것입니다. 나는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있는 한 공원에서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바로 앞에는 바위를 파내서 만든 무덤이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유대 산헤드린의 멤버였던 니고데모의 무덤으로 나사렛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세상을 떠나신 후 잠시 그의 시체를 안치하였던 곳입니다.

우리는 잠시 예배 드리기 위해 앉아있으면서 돌이 치워진 채 열려져 있는 무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꽃 향기와 함께 부드러운 미풍을 맞으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만일 저더러 제가 이 세상에서 완전한 평안을 느꼈던 때를 열거해 보라고 한다면 그때 그곳을 하나로 꼽을 것입니다.

그날 아침 설교한 분은 우락부락하고 다부지게 생긴 몸매에 산전수전 다 겪어본 듯한 군목이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신앙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의 언어는 교회에서 듣기에는 약간 거칠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교훈을 전적으로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부활을 주제로 설교하였는데 열려진 무덤 양편에 있던 광채나는 흰옷을 입은 인물들을 묘사하면서 이곳이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곳이라고 말할 때 저는 갑자기 영존하는 신앙의 도약을 느꼈고 그것은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부활절 아침에 실제로 일어난 일에 관하여 깊은 평안을 가져다 주는 만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몇일 후 우리는 베다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사로가 죽어 누워있었고, 거기에서 예수께서 나사로를 불러 다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무덤 옆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가능하다면 예수께서 서 계시던 바로 그 지점에 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느 지점에서는 내 발이 예수께서 서 계시던 바로 그 지점을 밟을 수도 있겠지? 생각하면서 그 일대를 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꺼내어 아내와 함께 예수께서 그 날 하신 말씀을 읽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갑자기 저는 흘러내리는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저는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떠남을 애도하며, 그들의 존재의 신비를 꿰뚫어 보려고 할 때 인류의 구세주이신 이 분의 감미롭고 아름다운 이 말씀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 말씀이 달리 있을까요?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는 이 우주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주는 매우 파괴적입니다. 이 우주는 아름다웠습니다만 또한 문제도 많고 슬픔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우주에 홀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크리스마스의 멧세지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뜻이라(마태 1:23)” 입니다. 그는 인간의 형상을 입으시고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겪으셨읍니다. 결국 그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절의 멧세지는 아무도 그를 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움도 그를 파괴하지 못하고 그에게서 위협을 간파했던 제사장들의 어떠한 음모도 그를 파멸시키지 못했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무가치한 정치가들의 배신도 그를 파괴하지 못했으며 죽음 마저도 그를 파멸로 몰아 넣치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그를 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절의 단순한 멧세지입니다. 그는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여기에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주적인 장대한 외로움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늙어갈 때,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하나 작별을 고할 때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할 수 없고 볼 수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사라져버린 손과 귀에 쟁쟁히 남아 있는 그들의 목소리들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저는 오하이오 주 남부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습니다. 가끔 저는 그곳을 방문하여 옛 친구들을 만나곤 합니다. 미시즈 루 모리스라고 하는 미망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저의 어머니의 절친한 친구로 어렸을 때 저는 그녀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웃음 소리는 물 흐르는 듯 음악과도 같아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 지역에 갈 때마다 그녀의 조그마한 집을 방문하곤 합니다. 그녀는 우리 어머니의 사진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나의 형제들과 저의 사진 등 우리 가족 모두의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혼자 사는 생활에 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글세, 여기 나하고 같이 있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지. 주님이 여기, 나와 같이 계시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마지막 날 아름다운 강가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잘 아는 찬송이기에 그녀와 함께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오래 전에 같이 불렀던 “저 강 언덕에서 다시 만나리”와 같은 찬송들을 같이 불렀습니다. 인간의 삶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것 가운데 하나는 시간과 영원과 생명에 대한 신앙의 근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깊고 다정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앙이요 그들이 강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들의 사랑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리라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절의 신앙입니다.

저는 우리가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영원과 불멸의 물줄기를 타고 있습니다. 육신이 무덤으로 들어갈 때 당신은 단지 지상에서 영혼을 담고 있던 육체적인 도구를 흙속에 묻는 것 뿐입니다. 이 복잡하고 매우 신비로운 우주를 만드신 좋으신 하나님은 이 우주를 죽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우주는 아주 신비로운 곳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죽음 후의 삶>이라고 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전에 쓴 어떤 글들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편지로 반응을 보여주었으며 그 가운데는 어떤 주제의 글 보다도 더 감동적인 글들이 많았습니다. 한 여인은 여러 해 전 몹시 아파서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럿을 때의 경험을 적어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잿빛의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나의 침실의 문간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할머니 마저도 그 층게들을 걸어 올라 오셨다. 그들은 모두가 나의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나만 혼자 남았다. 나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합류했는데 -그들은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나는 밖이 보이도록 좀 더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에서 나는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 아래 하얀 데이지 꽃들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정원을 보았다. 그리고 그 정원에는 아주 예쁜 어린 소녀가 꽃들 사이에 앉아서 꽃들을 따고 있었다.

“그때 빛을 배경으로 커튼이 떨어지더니 Mama needs me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때 잠이 깼는데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를 처밖고 있었다. 엄마는 조그만 소리로 나를 계속 부르면서 ‘애야, 우리에게 돌아 오렴’하고 소근거리고 있었다. 그 후 병세가 호전되었고 지금 이 나이까지 살고 있다.”

그 여인은 어디에 갔다 온 걸까요.

그리고 다른 편지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저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할머니의 25살 난 아들 엘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엘머는 장티브스로 열이 있었는데 당시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엘마는 쌍둥이 여동생 에바에게 아주 헌신적이었는데 그녀가 1년 전에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의 삼촌인 엘마는 여러 날 동안 코마상태에 있으면서 너무나 쇠약해서 꼼짝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뻗고서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행복의 광채가 빛났고 확실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에바!’라고 부르더니 사망하였다.”

우리는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삶과 닿아 있습니다. 편지 하나만 더 소개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이것은 저의 계모에게서 온 것입니다. 최근 제 아내와 저는 아주 크고, 무겁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여 어떤 문제건 해결의 유일한 방법인 주님의 손에 맡기기로 하고 기도로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먼저 저의 아버님의 이름은 Clifford이고 제 아내의 이름은 Ruth라는 것을 밝힘니다.)

저의 계모는 저의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말했습니다. “어제 밤, 의자에 앉아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루디(Ruthie)는 괜찮을거야, 걱정하지마 ‘라는 생각이 떠 올랐다. 너도 잘 알고 있드시 나는 너를 루디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Ruthie는 아명으로 성인의 경우 호칭과 함께 Ruth라고 부른다. 결혼 후 만난 사이기에 시어머니와 며누리가 아명을 불렀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역자 주)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너를 루디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어(당시에 이미 사모님 존칭을 받던 며누리었다). 그렇지만 크리포드는 너에게 친절하게 애정을 표현할 때면 종종 너를 언급하면서 그저 루디라고 불렀었지. 그런데 어제 저녁 왜 갑자기 ‘루디는 괜찮을거야, 걱정하지마”란 말들이 나에게 떠올랐을까?

우리에게는 저 세상에서 우리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돕기 위해 일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제가 믿고 있는 나의 확신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친절하였던 사람들을 결코 상실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도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적이고 영원한 불멸 가운데서 함께합니다. 우리들은 불멸의 상태로 죽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게 아닙니다. 불멸의 조건은 우리들의 본질인 인간의 삶 속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육신과 피가 아닙니다. 육신은 당신과 내가 잠시 사용할 도구입니다. 더 이상 그것이 필요 없을 때 우리는 육신을 떠납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영적 삶의 일부인 하나의 영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끝이 없습니다.

*Plus-The Power of Faith(April-May 2020)에서


 

어떻게 염려를 털어낼까?

노먼 빈센트 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가운데서 계속 염려를 하기 때문에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정당한 이유 없이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를 해 본 어떤 분은 우리의 염려의 대부분이 초점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연구자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들의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염려들의 30%는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염려의 12%만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는 건강에 관한 것인데 건강문제는 염려할수록 더욱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염려의 8%만이 가능성이 있는 염려로 타당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당신이 보통 하는 모든 염려의 극소수만이 걱정할 이유가 있는 실제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염려할 이유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실제적으로 염려에 대한 해독제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독제란 믿음입니다. 믿음은 염려나 두려움 보다도 훨씬 강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위대한 것 가운데 하나는 문제가 아무리 냉혹하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으며 깊은 신앙을 연마함으로 그와 연관된 걱정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가 가져다 주는 모든 병폐들에 관해 잘 언급한 성경구절을 베드로 전서 5장 17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에 관해 언급하면서 성경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 그는 너의 모든 염려를 돌보시는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종교가 주는 위대한 멧세지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외면하시는 하나님과 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아 두려워 말아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염려를 내려 놓게 하는 위대한 방법입니다.

이제 저는 묻겠습니다. 염려를 털어버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점차로 염려가 당신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염려와 두려움과 불안은 인간의 안녕에 가장 파괴적인 원수들입니다. 우리는 영어단어의 어원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염려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십시다. 이 단어의 어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옛 앵글로 색슨의 단어인 wyrgan에서 왔습니다. ‘윌간’은 목 졸라 죽이다. 목을 조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의 목을 잡고서 힘껏 눌러서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한다면 저는 당신에게 당신이 오랫동안 걱정했던 염려의 희생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문자 그대로 자신을 목 졸라 죽입니다.

유명한 의사 한 분이 나쁜 감정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좋은 감정은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나쁜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글쎄요. 화내는 것은 나쁜 감정의 하나입니다. 만약 화를 내면 그것은 당신의 육체가운데 명치를 먼저 치게 됩니다. 거기에 있는 신경은 화를 내는 바람에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아픔을 느끼고 활기를 잃게 됩니다.

증오는 또한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나쁜 감정입니다. 몇 년 전 한 여름 주일에 저는 뉴 져지에 있는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배 후에 한 여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무척 감사했습니다만 온 몸이 가려워졌습니다.”

저는 “그래요, 저는 설교 후에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봤지만 설교때문에 몸이 가려워졌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보는 군요. 정말 몸이 가려워 지셨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은 소매를 팔굼치까지 밀어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어디 한번 보세요.” 피부가 약간 붉은 듯 하기는 했지만 나의 상상력때문에 그렇게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별다른 증상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계속해서 “그것은 가려움증이 아니라고 말하지 마세요. 저는 그게 가려움증이라는 것을 알아요.”그리고는 그 여인은”이상한 것은 제가 교회에 올때에만 가렵다는 것이에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교회의자에 뭐가 있는 게 아닐까요” 라고 물어보기도 했으나 저는 이미 흥미로운 케이스를 하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여인과 그의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뒤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하였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저는 가려움증만 있는 게 아니라 항상 100.5도를 유지하는 미열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하는데 저는 목사님과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호기심이 생겨서 후에 그녀의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는 제가 ‘내적 습진’이라고 부르는 증상을 가지고 있지요. 물론 제가 아는 한 그런 이름의 병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은 안에서 자신을 계속 긁어 대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증오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매를 미워하기 때문이지요. 그 여인은 그의 자매가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남겨준 유산을 빼았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여인은 오랫동안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만약 목사님께서 이 여인이 자매에 대한 증오를 중지시키신다면 아마도 이 여인은 속에서 자신을 긁어 대는 것을 중지하고 그렇게 되면 외부의 신체를 긁어 대는 것도 중지하리라고 생각합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교회에 오면 더 가려워지는 것은 교회에서는 죄책감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반사적인 가려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불쌍한 여인은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그 여자는 나쁜 감정때문에 오랫동안 병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손을 그 여인의 손에 얹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에서 증오심을 뽑아 내셨습니다. 그 여인은 자매와 화해하였고 그의 내면에서의 가려움증과 외면에서의 가려움 증이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저는 이 케이스를 건강하지 못한 생각유형이 육체에 끼치는 비극적인 영향의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과 염려는 틀림없이 당신을 병들게 합니다. “걱정이 많아서 아퍼” 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병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습니까? 새로운 내성을 개발해야 합니다. 즉 새로운 내적 자세입니다. 염려는 천천히 온 마음으로 흘러 퍼지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하는 가장 나쁜 것은 물과 같이 이런 염려가 계속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 속에 커다란 도랑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당신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세상이나, 직장에 관해 생각하는 당신의 모든 생각이 이 공포와 걱정의 통로로 흘러가버려 더 큰 불안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을 없애기 위한 방법은 다른 통로 즉 신앙의 통로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통로가 마음 한 가운데를 지나면서 점점 더 깊어 지게 되면 얼마 후 신앙의 위대한 강은 당신의 마음을 관통하여 모든 생각들이 명철하고 눈부시고 낙관적이며, 희망적으로 바뀌어 버리고 삶은 아주 좋아질 것입니다. 신앙의 통로를 당신에게 필요한 깊은 안전을 줄 수 있도록 개발하십시요. 하나님을 돌보십시요. 그는 당신을 돌보실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불안에서 구해 줄 것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본질적으로 사람의 외적인 상황은 불안정합니다. 인간은 꽃과도 같이 자라서는 꽃을 피우고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지금 여기에 있던 것들이 내일엔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들은 유한합니다. 우리들은 육체와 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들은 불안정합니다. 우리는 인간존재라는 불안정한 덧없는 삶의 한 부분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외적으로는 우리에게 안전이란 보장이 없습니다. 진정한 안전이란 내적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내적으로는 매우 안전합니다. 내적으로 우리는 매우 안전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제가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군에게 설교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병원의 부상자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루에 일곱 번 설교를 했습니다. 제 일생에 지금까지 하루에 그렇게 많은 설교를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러한 상황아래서 설교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몇 번의 설교는 위치가 노출된 채 적군들이 침투해 오는 전쟁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설교하는 가운데 때로는 비행기들이 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보고 폭파음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제가 설교하는 곳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진 곳 즉 제가 1000여 명 군인들에게 설교하려는 언덕에 군인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은 모래주머니로 둘려있었습니다. 저는 “장군님, 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장군은 “그 사람들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대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쪽에는 적군들이 있고 이쪽에는 천 여명의 군인들이 집결 해 있습니다. 적들이 공격할 목표가 되기 십상이지요. 우리는 그러한 기회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 그러더니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미 해병대를 믿으십시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곳에 앉아서 그 군인들을 바라보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들은 아무런 안전막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장군님, 저는 민간인 목사이고 이런 호위망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병사들은 어떤 안전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는 “그들의 안전망은 훈련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훈련을 받지도 않았고 무기도 없습니다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저의 안전을 걸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그곳에 앉아있으며 스스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과연 나는 죽던지 살던지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알고 나의 마음속에 평안함과 침착함을 가지고 인간실존의 위험에 과감히 뛰어 들 준비가 되었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저는 장군을 향하여 “성경에서 안전에 관해 언급한 성경구절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어떤 성경말씀 말인가요?” 저는 성경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저는 “너의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그는 당신을 돌보는 분이시다.”란 구절을 읽어주었습니다.

장군은 무척 감동한 듯 “목사님, 앞에 있는 이 병사들을 사랑하시지요? 민간인 목사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 하신다고 말해 주세요.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으시지요?” 그래서 저는 전력을 다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였습니다.

신앙만이 진정한 유일한 안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믿을만한 안전입니다. 신앙으로만 당신은 패배와, 저항과 증오와 공포와 폭력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염려는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당신을 위대하게 만들며 이것이 내적인 안전입니다. 이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삶의 영고성쇠를 감당할 수 있게 합니다.

*<How to Turn Off Worry by Norman Vincent Peale> Plus The Power of Faith-February/March 2020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