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논설과 간증/2020년 10월 1일>

 

<어느 과학도(박윤수 박사)의 신앙고백>

제 11회 교회와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

박 윤 수박사 (Ph. D.)

집필자의 사정으로 과학도 박윤수 박사의 신앙고백(과학과 신학)은 이번으로 연재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그동안 연재되었던 글들은 <과학과 종교>에 들어가시면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 아랫 부분에 주소가 있습니다.

미국에 건너온 한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민의 삶을 시작했다. 100년의 이민역사는 바로 기독교의 역사이다. 1903년 1월 13일에 하와이 호노루루에 도착한 한인 이민들은 사탕수수밭에 발을 붙이면서 바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 1903년 11월 10일에는 첫 감리교회가 출범이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을 기도로서 시작하고 기도로서 끝내기로 결정하고 워싱턴 지역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첫모임으로 워싱턴 지역 한인교회협의회와 공동 주최로 조찬기도회를 지난 2002년 4월 20일에 워싱턴 한인 교회에서 가졌다.

워싱턴 근교에는 10만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미국연방정부, 대학, 경제기관에 종사하고 있고, 수도의 경제를 좌우하는 사업체를 형성하고 있고, 300여 개의 교회를 통해 신앙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 교포 10 만 명의 80 퍼센트가 교회생활을 영위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 산재한 한인 이민들을 200만으로 본다면 그 80퍼센트의 160 만 명이 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숫자로 봐서도 이민 100주년 사업은 전 미국에 산재한 기독교인의 축전이 되어야한다.

초기 이민교회는 이민들의 정신적 안식처였고 신앙생활을 통해서 서로 친교 하는 가운데 이민생활의 고달픔을 감소했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교회를 통해서 한국의 문화를 보존해 왔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언어와 전통을 이어줄 수 있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초기 이민교회는 두고 온 조국의 독립운동의 산실이였고 그 어려운 생활가운데서도 품삯의 몇 푼을 독립운동기금으로 바쳤다. 이런 역사를 더듬어 보면 초기 한국교회는 현재 이민교회의 신앙생활의 선도자였고 우리 신앙의 유산을 계승해 준 곳이다. 그리고 자주의식과 독립정신과 두 문화의 교류와 융합을 양육한 보금자리인 것이다.

근대에 와서는 조국에 있는 한국교회가 남북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해 이북 기근문제 해결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도 이 사업을 확장 또는 더 창의적인 시안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 또 이민교회는 미 주류사회에 대한 한민족의 책임과 소수민족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미주 한인 이민교회는 인종간의 화해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조국과 미국정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수행은 어디까지나 확고한 신앙과 기독정신에 입각하여 시행되어야한다. 우리의 믿음은 하루 밤에 이루어진 것 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은 기독교의 전승이 한국에서 이루어졌고 또 저 초라하고 누추하고 이름없는 사탕수수농장에 까지도 전승되었다. 그들의 확고한 믿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뿌리 박혀 있는 것 이다. 이민 100주년을 맞이하여 100년을 두고 육성된 믿음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조상의 믿음생활을 살펴본다는 것은 얼마나 뜻 있는 일일까?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고향 우르를 떠나 새 땅을 개척한 것과 같이 우리의 선조들도 불안과 희망의 착잡한 심정으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따라 먼 태평양을 건너 새 땅으로 건너왔다. 울분과 눈물로 가득찬 사탕수수밭의 고달픈 생활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믿음의 삶을 이룩하였다. 이런 초기이민 신앙생활을 조명하고 본받아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비하고 새롭게하여 차후 100년 후에 또 우리가 이룬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우리 후손들이 돌이켜 보며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이 기념사업회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의 순례자이다. 순례자는 목적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고 낯설은 이역땅에서 그의 뜻을 전파하는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한국땅에서 키운 신앙생활을 이 새천지에 와서 더욱 더 강건하게 하고 이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 이민순례자의 참 모습?이다.

우리는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마지 하여 우리 신앙의 뿌리를 찾고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를 보존하면서 미 주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세계평화유지와조국통일에 이바지하는 이민 순례자가 되어야 하겠다. 이제 이민 100주년을 맞이하여 워싱턴 지역에 산재한 온 한인 교회가 이민 100주년 기념 사업에 동참하여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정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전 기독교인이 이민기념사업에 앞장서서 주도역할을 해야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또 교회는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이민 기념사업도 선교사업이다.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의초빙교수
전서울대학교. Johns Hopkins 대학초빙교수역임
전 Office of Naval Research 물리학자
서울대문리대물리학과졸업
Univ. of Alberta 석사
Univ. of Cincinnati 박사

전북대학교명예이학박사  

현재는 은퇴하여 캘리포니아 주 실 비치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윤수 박사님의 이전 글들은 홈 페이지의 <a href="http://www.webegt.com/cgi-bin/egt/main.cgi?board=Science"target="mainFrame" class="style65">과학과 종교</a>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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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회 교회와 사회

박 윤 수 박사(Ph.D.)


 “교회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정의 기원, 근거, 본질, 목적 등등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들의 교회 생활 태도를 살펴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역할 또는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등에 관한 문제점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느낌이 들어 이글을 써 보기로 한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 

먼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대망 하면서 이 세상속에서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러 나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집단이라고 해도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회가 놓여있는 사회속에 뿌리박게 됨으로서 자연히 교회가 사회속에 동화하게 되며 그가  놓여있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받게 됨을 피할수가 없다.

역사가 짧은 초대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을 하 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의 전도에 힘쓰도록 장려하는 것 만으로라도 교회 의 생명을 다하는 것으로 여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교회같이 긴 역사를 가지고 사회속에 뿌리를 내린 상황속에서는 당연히 교회의 사회적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회는 정치적, 경제적,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증언하고 토론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그러 나 교회가 시대의 조류에 따라 피상적인 발언을 하여서는 안된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 같이 현실을 통찰하고 모순을 지적하고 정의와 부정 을 가리고 부정을 시정하기 위한 메시야적 증언 을 선포하여야 한다.

교회의 사회운동의 한계성

그러나 교회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여러가지 구체적인 문제에 관하여 기독교적 입장에 서서 발언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고 발언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가령 지금 이나라에서 문제되고 있는 경제 부진에 대해서는 이것이 우 리 생활에 절실히 관련된 문제일지라도 이것은 순수한 경제적 문제이고 기술론적 문제이지 성서로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경제부진으로 인해서 인심에 끼쳐지는 영향때문에 먼저 취급되어야 될 문제들은 기술론적인문제 가 아니고 가치 판단에 속하는 것임으로 성서 기독교 윤리에 깊이 관계가 되어 있다. 

정치면에도 마찬가지로 기술적인 측면과 가치 판단에 속하는 측면이 있다.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관여할 때는 정치 그 자체의 실태와 그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정치가들이 아 무리 좋은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해도 권력이 없이는 그 이념을 실현할 수가 없다. 권력을 잡기 위 해서는 투표를 얻어야 한다. 투표를 얻기 위해 서는 흔히 인간의 윤리가 파괴되고 변질될 때가 많다. 이러한 정치의 측면은 가치 판단에 속하 는 것임으로 기독교인이 정치에 관여할 때는 기 독교 윤리에 입각하여 올바르고 그릇된 것을 똑 바르게 판단하여 참여해야 한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도 먼저 우리가 유의할 것 은 정책 목표와 정책 수단의 구별이다. 만일 기독교가 관여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정책 목표에 관한 것이지 정책 수단에 관한 것은 아 닐 것이다. 정책 목표를 논의할 때는 가치 판 단이 개입될 것이고 사회 철학이나 사회 윤리가 개입됨으로서 당연히 기독교 사회 윤리학이 개 입될 영역이 된다. 그러나 정책 수단에 대한 연구는 정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적 지식 을 추구하는 것으로 사회 과학의 영역이지 기독 교 사회 윤리학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교회의 참된 사명

필자는 어디까지나 교회의 사회적, 정치적 사명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의 첫째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인계할 하나님의 백성 으로서 한사람이 라도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의 백성의 일원으로 만드는 것 즉 전도하는 것이다. 

교회자체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해석하고 그 자체에 궁극적 목적을 둔다면 교회에 한사람 또 는 두사람씩 전도하여 교인의 수를 증가시켜 나간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지상에 세워질 것 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교회를 자기자족주의로 이끌어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집단은 자칫하면 세상과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화하는 사명에서 멀어 지게 될 경향이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는 하나님 의 백성의 집단이지 ”하나님의 나라’ 그자체가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을 증가시켜나가면 ”하 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위로 부터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 에 들어 가 는 하나님의 백성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고 “하 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대망하면서 이 지상에서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항상 종말의 희 망 속에 사는 공동단체이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