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논설과 간증/2020년 6월 1일>

 

<어느 과학도(박윤수 박사)의 신앙고백>

제 8 회 기쁨과 창조의 기독교
박 윤 수 박사 (Ph. D)

기독교는 기쁨과 희망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셔서 이 우주를 정복케 하시고 다스리고 삶을 즐기도록 하셨다. 창조는 삶의 선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치심이고 주제가 되어야한다. 삶은 아름답고 선택의 자유. 질서. 출산의 기쁨. 축재를 내포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삶은 사랑과 관련 되어 있고 자기 생명에 대한 사랑. 이웃의 생명에 대한 사랑. 이웃의 사랑의 존 음성에 대한 책임과도 관련 되어있다.

하나님은 이 삶의 기쁨을 우리들에게 부여하셨고 이 기쁨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셨다. 그런데 교회는 타락과 속죄의 교리를 통해 죄의 의식을 강조하고 죽음의 공포를 심어 주었다. 타락과 속죄의 교리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 영혼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 그럼으로 이 교리를 강조하는 신학자들은 세속적인 것을 멸시하고 배타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한인교회는 죄의식 때문에 통곡하고 울부짖는 신자들을 많이 산출돼고 있다. 고함지르고 울어야만 믿음이 강하다고 본다. 기쁨보다도 슬퍼할 때가 더 많다. 교인소식도 병든자와 죽은 자에 대한 소식이 빈번하지만 기쁜 소식과 경축하는 소식은 드물다.

우리가 장례식에 가서 그의 삶을 기억하고 슬퍼하여야 하겠지만 그가 살아있을 때 그의 삶의 기쁨을 같이 나누고 우리 삶의 축복을 같이 나누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더 기뻐하였을까?

기독교는 슬픔의 종교가 아니고 경건함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엄숙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예배에 임하기를 권면하는 종교가 아니다. 밝은 얼굴로 하나님을 대할 때 그는 더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실 것이다.

기독교는 원죄(original sin)에서 시작한 종교가 아니다. 아담과 하와 이전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가 이미 시작되었고 창조의 경륜이 진행되어온 것이다. 기독교는 창조의 축복(original blessing) 의 종교이다. 기독교를 죄의 종교로 시작하여 어둠의 종교를 만드는 신학적 사고에서 벗어나 밝은 종교, 축복의 종교, 창조의 종교로서 받아드릴 때 우리의 기쁨은 더 클 것이고 더욱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타락과 속죄의 신학체계에서는 영적 세계의 중심이 죄의 인간성이였다. 그러나 축복의 신학에서는 축복과 은총을 이미 받은 우주가 출발점이다. 창조의 축복은 죄에 앞서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으로 가득한 이 우주와 세상을 사랑하고 이 인간 생활을 너무 죄악시하지 말고 그 속에서 선을 찾고 즐거이 살아 나가야 할 것이다. 창조의 기쁨. 창조의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부여한 최대의 특권이다.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의초빙교수
전서울대학교. Johns Hopkins 대학초빙교수역임
전 Office of Naval Research 물리학자
서울대문리대물리학과졸업
Univ. of Alberta 석사
Univ. of Cincinnati 박사

전북대학교명예이학박사  

현재는 은퇴하여 캘리포니아 주 실 비치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음

*박윤수 박사님의 이전 글들은 홈 페이지의 과학과 종교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 7 회 재림의 신학적 의미

박 윤 수 박사 (Ph. D)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요한계시 록 21:3-4)

 

우리는 지금 온 인류가 당면하고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의 공포 속에 살고있다. 특히 우리 기독교 신자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할과 재림에 대한 논쟁 속에서 살고있다. 이 상황은 동구라파 공산권을 위시한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동 또 걸프전쟁의 발생으로 인하여 “1992년 10월에는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여 휴거(Rapture) “가 일어나고 7년동안 대환난이 계속되어 99년에는 마침내 세상이 멸망할 것이다" 라는 종말론이 갑자기 대두하여 교계를 어지럽히고 있던 때를 상기하게 한다. 이런 항간의 종말론을 들으면서 나자신의 "예수님의 재림" 에 대한 신앙을 다시한번 정립해 보았다.

재림신앙은 기독교신앙의 중요한 요소이고 기독교신앙의 본질이다. 그러나 신약성서 시대이래 재림신앙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설이 나타났고 오늘에도 재림에 대한 이해에 많은 혼란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한편에서는 재림을 전혀 부정하는 자들이 있는 가하면 또 일부에서는 재림만을 강조하고 거기에 열중하는 신자들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신약성서에 나타난 재림신앙의 기원과 발전을 탐구하고 성서에 나타난 근본적 신앙을 찾아 재림신앙이 나타내고 있는 현대적 의미를 다시 한번 고찰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재림신앙과 종말론

재림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선교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있다. 예수의 선교의 중심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 라는 종말론적인 것이 라는데는 오늘의 모든 학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떤 의미에서 "종말의 도래" 함을 말씀하는가에 대해서는 세가지 해석이 있다.

1. 미래적 종말론 (Future Eschatology, Consistent Eschatology)
마태복음 10장 23절에 근거하여 A. Schweitzer 는 예수는 절박한 종말을 기대하고 계셨다고 주장하였다. 예수는 제자들을 선교하러 파견하여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게 하였으나 그들이 이스라엘 모든 동네를 다 다니기 전에 예수는 초자연적인 인자의 모습으로 변하여 내림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이 선교를 마치고 돌아 왔어도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신 메시아의 고통을 인수하여 종말이 도래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Schweitzer 와 같이 예수의 종말론을 해석하면 예수는 그 죽음과 부활 후 곧 인자로서 변하여 구름을 타고 내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많은 학자들이 수긍하지 않았다.

2.?실현된 종말론 (Realized Eschatology)
이 견해의 대표자는 C.H. Dodd 이다. 그는 "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 라는 저서에서 이 견해를 강력히 전개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선교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 는 점을 강조하였고 예수의 선교가운데서 미래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일 Dodd 와 같은 종말론의 입장에 선다면 재림의 신앙은 부정된다. Dodd 는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그러므로 “인자” 가 오신 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왔고 그리고 지금 인류의 보이지 않는 왕으로서 그 영광의 자리에 이르렀다. 이것이 신약성서의 신앙이고 이후 계속된 교회의 신앙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3.선취적 종말론 (Proleptic Eschatology)
이 종말론은 이상 두가지 종말론의 중간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그 자신의 출현과 활동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고 말할 정도로 가까이 왔고 그 표적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결정적인 사건은 미래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R.H. Fuller 에 의하면 하나님의 지배는 다가올 미래에 있으나 이미 현재에 부닥치고 있고 벌써 선취적으론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이 이른 새벽의 엷은 빛속에서 아직 오르지는 않았지만 벌써 그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입장은 예수의 선교의 미래의 요소를 인정한다. 그러면 예수가 생각하고 있던 미래의 결정적인 사건이란 무엇일까? 그 결정적인 사건은 예수의 죽움이다. 그것은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한 죽음이다. 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지배 를 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재림의 신학적 의미

신약성서에 있어서 재림의 문제를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언제 그것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출발하지 않으며 그것을 첫째 문제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림의 지연이라는 사실로서 재림신앙 그 자체를 부정한다든지 또 정 반대로 일시의 계산과 현상의 징조에 열중한다든가 재림 대망에만 열광한다는 것은 신약의 재림신앙을 오해한데서 생기는 것이다.

신약의 근본적 주장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롤 통해서 벌써 결정적인 구제의 사역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와 부활로서 결정적인 승리가 달성된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주어져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친아들 예수를 통해서 이루신 사업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통해서 구속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속죄의 사업을 성취한 것이다.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밝히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사역하고 계시며 이 하나님의 사업의 완성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재림이다.

그후에 종말이 오고 하나님이 직접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는 계시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하나님께 면접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아들 되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일체됨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 인간에 대해서 사역하기를 원하는 하나님,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까지는 계시의 때이고 우리들은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계시된 하나님으로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 아다.

재림을 대망하는 우리의 태도

아들 예수는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주로서 지배하고 계신다. 아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맡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시기이다. 그러나 외면적으로는 낡은 질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교회는 이 가운데 있으며 죄의 힘과 싸우고 이 세상에 대해 예수가 주가 되심을 밝히고 예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이세상에 존재하여 가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빌 2:11)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서 참된 종말이 오고 다음 약속이 성취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찾고 느끼고 아픔과 공포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저자 소개: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의 초빙교수
전 서울대학교. Johns Hopkins 대학 초빙교수 역임
전 Office of Naval Research 물리학자
서울대 문리대 물하과 졸업
Univ. of Alberta 석사 .Univ. of Cincinnati 박사.전북대학교 명예 이학박사

현재는 은퇴하여 캘리포니아 주 실 비치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음

 

제 6 회 욥 의 재난 과 축복

박 윤 수 박사(Ph. D)

“우리의 주이시고 아버지 이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 속에 어떻게 고난이 존재할 수 있을까?" 특히, “하나님은 왜 우리가 당하고 있는 비합리적인 고통 의 체험을 허용하고 계실까?" “그러한 하나님은 과연 자비와 전능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욥은 이러한 절실한 운제의 풀이를 우리들에게 던져 주고 있는가? 욥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수 있을까?

욥의 재난과 축복

창세기가 쓰여진 무렵(600 to 450 B. C.) 욥기는 하나님의 악과 선의 문제를 다룬 최고의 문서가운데 하나라고 부를 수 있다. 욥기는 하나님에 관한 시이고 정의와 재난의 의미에 관한 시이다.

욥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사탄의 천상에서의 논쟁으로부터 전개된다. 여호와께서는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가 세상에 없었는지라" (욥1 :8). 사탄은 여호와에게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 을 경외하리까?"하고 도전하였다. 사탄은 하나님을 부귀와 축복과 모든 소유물을 욥에게 베풀었다 고 비난하였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하였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되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다. 욥은 이어 극심한 재난을 계속 겪기 시작하였다.

그의 모든 재산은 파괴되고 그의 자녀들이 죽고 그 의 피부는 염증으로 터지고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지고 몸을 긁을 정도로 되었다. 욥은 그 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저주하였다.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욕하는 것을 강력히 거부하였다.

욥의 세 친구-옐리바스, 벌닷, 소발-이 찾아와서 조상들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죄를 지은 까닭이라고 하면서 욥에게 하나님께 용서함을 구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욥은 그의 결백함을 주장하고 자기가 범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사죄를 거부하였다. 욥과 그의 친구들 사이에 일어난 대화는 세상의 악에 대한 전통적인 이유를 다 포함하고 욥은 하나님께 왜 악한 사람은 성하고 선한 사람은 재난을 받아야 하는가 알려 달라고 외친다. 욥은 하나님이 그를 정당 하게 취급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계속 하나님을 욕하는 것을 강력 히 거부했다. 드디어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나타나서 욥에게 대답한다. 여호와는 욥에게 그의 권능과 주권에 대 하여 상기케 하고 욥에게 명한다. “너는 대장부 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네가 내 심판을 피하려 하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하며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 (욥40:7,8) 욥은 그의 어리석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진리를 말하지 않은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고 그들에게 번제를 드릴것을 명령한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시고 축복하셨다.

욥의 멧세지

욥기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욥의 질문-왜 선한자가 재난을 당하고 악한자는 번영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하나님도 욥의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결코 해답을 하시지 않으셨다. 욥의 저자도 42장의 욥기를 통해서 아무런 회답을 주지 않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우리들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적과 악의 궁극적 원인은 하나님께만 알려진 신비다. 그 신비는 욥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욥기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우리가 알고 싶었던 의무-“왜 선은 재난을 받고 악은 성하는가"-에 대한 회답은 속 시원하게 얻지를 못하였다.?욥기에 있어서 고난의 문제만이 핵심이 아니며 욥기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1. 힘 없는 선함
서곡과 종곡은 물질 주의에 항거하면서 선한 생활이 성공대신에 실패와 비극을 가져오더라도 신앙과 성실로써 살아가는 개인들을 찬양하고 있다.

2. 인과 응보(cause and effect) 원리의 절대성 부
의로운 자는 복을 받고 악한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일반 법칙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의는 반드시 축복을 동반하고 악은 반드시 저주를 동반한다는 피상적인 절대성을 고집하지 않는다.

3. 만남으로 인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서 사람을 만나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논리적인 하나님,또는 자기의 개인적인 경험을 합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의 지식을 표명하고자 하는 태도를 욥의 저자는 배척한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써 인간의 의문도,인간이 요구하는 영화도 다 문제성 을 상실해 버린다.

4. 하나닙의 절대성
인간은 참 신이신 하나님 앞에 서야하며 하나님은 인간의 정의 속에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가 규정하고 정의하는 하나님이시다.

5. 신앙의 영웅
욥은 신앙의 영웅이다. 욥의 의로움은 참신앙의 반영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욥이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환상이나 순수한 환상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인생 영역 안에서 하나님은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6. 하나님의 은혜
의인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은혜로써 인간은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욥은 어느 누 구보다도 의로웠고 충실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죄인이었다. 무엇보다도 의롭다고 인정받고 싶어한 욥과 같은 사람이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함으로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은혜로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얻은 교훈

고난의 문제에는 옛날부터 인과응보 설이 따른다. 고통은 죄에 대한 형벌이라는 사상이다. 만일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면 고난의 존재는 비합리적인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인간에게는 축복을 주고 악한 인간은 형벌로서 보복된다고 설명을 한다면 합리적인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러나,문제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고난은 반드시 이런 각도에서만 이해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이 불행하고 고통을 받으며 악한 인간이 부해지고 성하고 있다는 현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결코 합리적으 로 보이지 않는다.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은 그가 받는 고난의 의미를 필사적으로 추궁한다. 그러나 결국 욥은 자기의 의를 하나님을 향하여 주장하는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의로 삼는 것으로 끝내버린다. 끝끝내 욥은 하나님의 신비를 신비로 인정하는 겸허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고난의 문제는 역사를 통해서 많은 신학자,철학자들이 논의해왔다. 신학자가 아닌 나는 이 문제를 깊게 다룰 역량이 없고 다만 최근 높이 평가 되어 있는 두 신학자의 책을 여러분들이 읽기를 권면한다.

유대교 랍비 Harold S. Kushner는 그 저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들이 생길때-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라는 책에서 “궁극적인 분석에 있어서 왜 나쁜 일이 선한 사람들에게 생기는가 하는 의문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질문 보다도 오히려 어떻게 우리가 응답하여야 하는가? 이 일이 생겼으니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의문들로 변형된다”고 말하고 있다.

독일의 신학자 Dorothee Soelle은 그녀의 저서 “고난-Suffering19"에서 고난을 통한 배움의 가능성,고난의 변질의 가능성 그리고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깊게하는 고난의 힘을, 또 고통을 당한자와 함께 관심과 동정을 같이 하는 공동체에 살 수 있게 하는 고난의 힘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은 뒤를 돌아다보며 지난날의 죄와 현재의 고통을 연결해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서는 희망 속에서 앞을 바라보고 원인 보다도 목표에서 설명을 구하려고 한다. 고난의 목적은 원인에서 보다도 결과에서 찾는다. 우리의 존재의 일부 는 어떤때는 수 세기를 요하는 긴 역사의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정의의 외적 작업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결과를 보려면 인내하여야 하고 그리고 결과를 보지 못해도 믿음으로 삶을 계속하여야 한다. 우리가 만일 쇠약해지지 않는다면 적당한 계절에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욥은 하나님이 그를 영원히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노염 속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욕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처참한 그의 외침에 대한 회답을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는 신앙의 영웅이다.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을 비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거부한 것 같이 인간에 대한 최종적 가혹이다.

욥의 친구들은 그들의 최대의 견식으로 욥의 영적회복을 기도하였으나 그에게 아픔을 더 가하였다. 욥이 필요했던 것은 동정 (compassion) 이지 충고(advice) 가 아니었다.

나의 기도

우리가 항상 안이하고 평온할 때에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임재함을 부르짖는 저희들이 되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어려움이나 괴로움이나 슬픔이나 어떤 역경에 처하여서라도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을 청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불운을 당할때 “왜 당신이 저에게 이 아픔을 주십니까”하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 제가 당하고 있는 이 현실을 살펴 보시고 저를 구해주시고 도와주십시오”하고 부르짖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당신에게 심판 받고 용서를 받기 위해서,또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 당신을 대면하는 저희들 되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통해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기 위해서 당신을 찾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자 소개: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의 초빙교수
전 서울대학교. Johns Hopkins 대학 초빙교수 역임
전 Office of Naval Research 물리학자
서울대 문리대 물하과 졸업
Univ. of Alberta 석사 .Univ. of Cincinnati 박사.전북대학교 명예 이학박사

현재는 은퇴하여 캘리포니아 주 실 비치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음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