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위대한 음악가들의 영성/2019년 11월 15일>

위대한 음악가들의 영성(Spiritual Lives of the Great Composers)-17

(Patrick Kavanaugh 지음, 김상신 역)

 

<위대한 음악가들의 영성> 을 마치면서

저자 패트릭 캐배노(Patrick Kavannaugh)

창간이래 지금까지 17회에 걸쳐 ‘위대한 음악가들의 영성’을 번역 계재하였다.마지막으로 저자의 <후기>와 함께 그동안 다룬 음악가들의 이름들을 <목차>로 소개하고 저자에 관한 소개도 간단히 곁드리려고 한다. 그동안 실렸던 전문을 Home Page 왼쪽에 있는 ‘위대한 음악가들의 영성’에서 찾아 볼 수 있음을 알려드리면서 그동안 관심을 갖고 읽어준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후 기

위대한 음악가들의 생애에 관한 연구는 학문적인 노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전기(傳記)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주려는데 목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의문은 “이러한 유명한 음악가들이 하나님에 대한 공통된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오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부분적으로는 개인적인 것이다. 필자에게 있어서 나 이전에 살았던 저명한 작곡가들의 신앙에 관하여 알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격려가 된다. 이 책을 쓰기위해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필자는 이브스의 애타심과 베토벤의 결단력에 큰 도전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리스트의 신비로운 신앙과 와그너의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신앙체계의 매듭들을 풀어보려 노력하는 가운데 크리스천 신앙이 일상생활에 연계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가들에 관한 것들을 발견하려는 필자의 개인적인 여정 저편에는 그들의 신앙에 관해 배우지 않으면 안돼겠다고 하는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여기에서 소개한 20여명 이외에도 10여명의 위대한 음악가들의 생애를 연구한 후에 발견한 것은 그들은 분명히 깊은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에 선정된 음악가들만이 영적인 확신을 가진 대가들이 아니다. 비발디나 슈만, 팔레스트리나, 차이쿠프스키, 코렐리, 림스키-콜사코프, 마즈넷 등,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할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사정상 빠졌다.

전기에 따른 많은 자료들에 근거해서 내린 결론은 이들 음악가들은 그릅으로 뭉뜽그려 말한다면 놀라우리만치 깊은 종교성을 가졌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비록 언제나 매우 세속적인 생활양태를 보여준 음악가들도 신에 대한 진지한 존경심-일상을 초월하는 그들보다 위대한 분을 갈망하는-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들에게 그것이 중요한가? 그것은 특별히 감성적이어서인가? 그것은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작곡가의 신과 같은 내적 충동에서 생겨난 것인가? 필자는 “물리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점점 더 형이상학에 빠져든다”고 한 다른 창조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났다. 아마도 작곡가나 창조적인 천재들은 다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넘겨버렸던 영적인 현상을 감지하는듯 하다.

이러한 대가들의 감수성이 그들로 하여금. “세계를 만드는 것은 화음을 내는 원자들의 운좋은 만남이 아니다. 만약 질서와 미가 우주의 형성에 반영되어 있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한 베토벤에 의해 잘 요약된 공통적인 결론으로 인도하였다. 항상 자신의 진가를 가장 잘 이해해줄 청취자는 그들이 죽은 다음 오래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던 이들 작곡가들은 피상적인 이 세상에서의 삶이나 물질주의에 만족하지 않았다.

시대를 망라해서 그들의 신앙은 크리스천의 경험이 진정한 것이고, 확인된 증거에 기초한 것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된 것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40대에 기독교로 개종한 스트라빈스키에게 한 질문을 기억하는가? 그는 신학자들이나 교단의 행동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복은서를 읽는 가운데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인간들은 타락하여 구원이 필요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에 대한 벌금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셔서 우리는 예수를 믿어야 하며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은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근본적인 소을스인 예수님의 본래 가르침에 직접 접근하였다. 이 작곡가가 그의 삶의 근거가 될 수 있었던 진리를 여기에서 발견한 것이다.

우리들은 종종 모든 것들을 연관시키며 종교를 이런 교회나 저런 교회, 어떤 운동이나 교파와 동일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정통적인 교인었다고 할 수 있는 바흐 자신도 어떤 한 교회로서는 포용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교리를 믿었다. 이러한 음악가들의 신앙의 기초는 외적인 구조가 아니라 그들과 그리스도 사이의 내적이고 인격적인 관계이다. 그들의 신앙은 부모나 교회 지도자들이 가르쳐 준대로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깊이 찾고, 암중모색하고 그들을 위한 진리를 분별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였다.

이들 음악가들에 의해 보여진 진정한 기독교신앙의 다양성 그 자체는 다른 크리스천들이 나와 똑같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되겠다고 하는 도전을 나에게 하였다. 다른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 다른 종파의 교인들 또는 다른 형태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오류에 빠지기가 무척 쉽다. 여기에 소개된 음악가들은 다양한 종파에 속하였을뿐 아니라 다른 배경을 가진 크리스천들에게도 존경을 표했다.

끝으로 이들 음악가들의 인간적인 과오에 관한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비판에 대해 한가지 지적하려고 한다. 언젠가 모찰트의 신앙에 관하여 강연한 다음에 어떤 크리스천이 모찰트가 젊었을 때 쓴 몇 장의 편지에 대해 비난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편지에는 쌍스러운 욕설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히 저질스러운 내용에 대하여 모찰트를 변호하는 대신 나는 “당신은 전에 당신이 쓰거나 한 말들이 출판되어서 후대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하였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우리들의 말과 행동과 감정의 영향을 느끼는 ?우리의 ‘전기작가’들이 우리 주위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다. 우리보다 수세기 전에 살았던 작곡가들의 생애에 관해 우리들이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번쩍 정신들게 하는 리마인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과연 우리들의 신념과 일치하는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수년동안 이들 음악가들이 무엇을 믿었는가를 찾아내기 위하여 그들의 삶을 검토한 후 나는 “만약 어떤 전기작가가 언젠가 나의 삶을 조사한다면 나의 신앙을 분명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이 무엇일까?” 하는 나 자신과 우리 모두에 대한 진지한 문제에 부딪쳤다. 아마도 우리가 이들 음악가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교훈은 실패했을 때나 성공하였을 때나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가 무엇을 이해했느냐에 비추어서 자신을 검토해보는 것이다.

이들 작곡가들은 그들의 삶에 목적을 부여해 주신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신앙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재능을 최상으로 사용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미 본대로 그들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 그들의 문제는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그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게 하였고 여러 세대를 걸쳐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명곡들을 만들게 하였다. 그들의 신앙을 이해함으로 그들의 음악과 인품에 대한 공감을 증대시키고 그에 대한 인간적인 반응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독교경험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신앙이라는 공통적인 실은 300년이라는 연대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곡가들을 하나하나 연결하고 있다. 다행히도 그들의 영적 경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까지도 계속될 수 있다. 그들의 신앙은 나의 신앙에 영감을 주었고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의 신앙에도 영감을 주게 되기를 바란다.

저자 패트릭 캐배노(Patrick Kavannaugh)에 관하여

<Spiritual Lives of the Great Composers>의 저자 패트릭 캐배노는 작곡가, 지휘자, 연설가 그리고 Christian Performing Artists’ Fellowship의 사무총장으로 잘 알려졌다. Asaph 앙상블의 지휘자로 미국의 주요 연주장에서 연주를 하였으며 1993년에는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에서 오페라를 지휘하였다.

<The Spiritual Lives of Great Composers>, <Raising Musical Kids>, <Spiritual Moments with the Great Composers> 그리고 <Music of the Great Composers> 등의 저서가 있으며 대학과 교회 등지에서 위대한 작곡가들의 영적생활에 관한 강연을 주로 하였다.

1954년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태어난 그는 매릴랜드 대학에서 Doctor of Musical Arts 학위를 받았고 작곡가로 오케스트라에서 실내악까지, 오페라에서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합창곡 'Quartet for the End of Time'을 작곡한
올리비에 메시엥(Olivier Messiane 1908-1992)


실레시아에 있는 Stalag 8A 수용소에 있는 죄수들은 또다시 춥고 음산한 하루를 맞기위하여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1941년 1월 15일이었다. 그러나 누더기를 걸치고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이 사람들은 달력을 보거나 날짜를 기억하는 사치는 잊으지 오래되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이후 굶주림과 학대와 죽음 이외에는 기대할게 없었다.

그러나 오늘만은 그들의 비참한 일상생활에 무언가 색다른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수용소 당국자들이 몇 몇 죄수들이 함께 음악회를 열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문화에 목말랐던가 아니면 무언가 좀더 좋았던 때를 회상해 보려는 5천 여명의 뷸쌍한 남자들이 가설무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무대위에는 몇 명의 죄수들이 앉아있었다. 줄이 세 개밖에 없는 낡은 첼로를 들고 있는 첼리스트, 그리고 크라리넷 주자와 바이올린 주자. 그 옆에는 다 부셔져가는 낡은 피아노가 한대 서 있는데 보나마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괴상한 수리를 낼것이 틀림없어 보였으며 그나마도 부러진 키들이 보였다.

피아니스트가 입장하자 그가 오늘의 연주를 위해서 새 곡을 작곡하였다는 안내광고가 있었다. 그 곡은 수용소에서 작곡한 것으로 이라는 따분하고 음울한 제목을 갖고있었다. 많은 청중들에게는 이곡이 그들이 들은 마지막 음악이 되었다. 다행히 이곡을 작곡한 올리비에 메시앵은 다음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의 연주회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으며 종종 자신의 음악이 몹시도 추웠던 Stalag 8A 수용소에서의 연주회만큼 주의를 끌며 공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위대한 음악가일뿐 아니라 시대를 통털어 가장 거리낌없이 기독교신앙을 강조하던 크리스천 음악가였다. 신앙에 관한 것을 찾아보려고 수 백권의 문서들을 뒤적이는 것 보다도 메시엥의 그리스도 신앙에 관한 구체적인 일화 몇 개를 보는 것이 낳을것이다.

그의 음악은 너무나 혁신적이고 복잡해서 충분한 평가를 받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메시엥의 음악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신자들과 비신자들에게 여러차례 퇴자를 맞았다, 신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그의 현대음악시도에, 불신자들은 메시앵이 전달하려고하는 신앙적인 진리에 호감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긴 생애의 말년에 가서 작곡자와 그의 여러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았다.

그는 1908년 12월 10일에 애비뇽에서 출생하였다. 메시앵의 부모님들은 신실한 캐토릭 신도로 그의 창조적인 재능은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부모님들-아버지는 세익스피어 학자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다-의 영향을 많이 받은듯하다. 라는 피아노독주곡을 아홉 살때 작곡하였고 1919년에는 파리음악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가 22살 때 파리에 있는 La Saite Trinite 성당의 올개니스트로 임명되었고 거기에서 수십년 동안을 성실하게 봉직하였다. 그는 “매주일 나는 세번의 미사와 저녁미사에 연주하였고 때로는 주중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에도 연주하였다”고 회상하였다.

5년 후 메시앵은 바이올린 연주자인 Claire Delbos 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그로 하여금 첫번째 연작가곡을 작곡하도록 격려하였으며 이곡은 결혼의 영적 의미를 찬양한 것이다. 첫번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는 부모에 관한 연가곡 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프랑스가 2차세계대전에 휩싸였을 때 군에 입대하였는데 낡은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다가 독일군에 붙잡혔다. 가 Stalog 8 수용소로 끌려갈 때 가져간 소지품은 바흐의 브란덴버그 악보와 베토벤, 라벨, 버그 그리고 슽라빈스키 등의 악보였다. 2년간 수용소에 있는동안 메시엥은 을 작곡하였으며 그것은 20세기 최고의 실내음악의 하나로 꼽히고있다.

귀환한 후에 그는 파리음악학교의 하모니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오랫동안 스탁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이나 부레츠(Peere Boulez) 같은 차세대 젊은 음악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였지만 작곡에서는 자유롭게 탐구하도록 격려하였다. 그는 이 ‘자유’라는 것은 공상, 무질서, 반항 또는 무관심같은 것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적극적인 ‘자유’로 자신을 조절하고 다른사람들을 존경하며 창조물에게 경외심을 가지며 신비로운 것들을 묵상하고 진리를 찾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훌륭한 자유는 천국의 자유를 미리 맛보는 것과 같은것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될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이야기하면서 이것을 우리들에게 약속하였다.

그의 작곡가로서의 생애가운데 전환점이 된것은 1945년 여성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 초연된 때였다. 그것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적인 의미가 충만한 가사들은 세속적인 비평가들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청중가운데 크리스천들은 불협화한 음악에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고 난 후 메시앙의 명성은 확고해졌고 그 이후로 그의 작품들은 늘 명작으로 평가되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그의 강한 신앙을 증언하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1949년 메시앙은 미국의 탱글우드음악제에서 음악을 가르치도록 초청을 받았다. 버른슈타인, 쿠사비스키 같은 저명한 음악가들이 그의 천재성을 인식하고 그의 음악을 옹호하였던 것이다. 드디어 그의 작품들이 세계적인 연주자들에 의해서 세계 전역에서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1978년과 1979년에 메시앵은 미국의 주요도시들을 돌며 연주여행을 하였고 그의 70세 생일에 뉴욕링컨센터에서 ‘메시앵주간’ 연주로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1992년 4월 27일 그가 사망했을 때는 온 세계의 음악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메시앵의 열열한 캐토릭신앙은 아주 잘 알려졌다. 그의 전기를 쓴 새무엘(Claude Samue)l 이 “당신은 당신의 청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어떤 인상을 주기원합니까?”라고 메시앵에게 묻자 그의 대답은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첫번째 아이디어는-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선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캐톨릭신앙에는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캐토릭 신자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 나는 모태신앙을 가졌고 어렸을 때부터 성경은 나에게 영향을 끼쳤다.” 는 것이었다.

메시앵은 후에 <올리비에 메시앵이 영적세계에 끼친 공헌(Contribution s to the Spiritual World of Olivier Messiaen>이라는 훌륭한 책을 쓴 로블러(Almut Robler)는 두 차례에 걸쳐 신앙에 관하여 인터뷰를 하였다. 저자는 자신의 구주에 관하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 시간과 공간에 매인것이 없는 분으로 그래서 모든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며 자기안에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우리들을 위해 고난당하기 위해 오셨다는 놀라운 지식이 우리들에게 전해졌다. “고 하였다. 또 매시엥은 “부활은 우리 희망의 원인이요 뿌리”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는 불신자들이 그들의 불신앙에서 직면하는 장애물들을 분명하게 보았다. 한 인터뷰에서 메시앵은 “불신자들에게 힘든 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신앙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예수가 베드로롤 불러 물위를 걸으라고 하였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그것이 우리들이 매일매일 하여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빠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새롭게 힘써야 한다. 우리들은 우리의 시선을 저 세상으로 곧바로 향하게하고 이 세상의 삶을 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메시앵의 배경은 캐토릭 교회였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기독교안에 풍성하게 들어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나는 크리스천이다. 우리는 모두가 크리스천이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교회연합의 시대에는 ?어느시대나 마찬가지지만- 종교적인 차이점에 너무 치중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는 모든 기독교 신앙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오셔서 자신을 우리의 언어로, 우리들의 감각으로 그리고 우리들의 심적 태도로 그를 이해할 수 있께 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화육(化肉)의 신비, 그것이 내가 크리스천인 이유이다. 이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나는 정교회 신자들이나, 개신교도, 캐톨릭 교인들 사이의 차이점을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란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고 하였다.

메시앵의 음악은 그의 인간됨과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재능을 교회는 물론 세상의 연주장을 위해서도 사용하면서 그는 “나는 하나의 예배행위를 완수하기 원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연주장을 신의 사무실로, 연주회를 일종의 공동체의 찬양으로 바구는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의 음악스타일이 다양한 것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그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을)나타내 보이시는 분이다. 그리고 거룩한 음악에 대한 나의 개념은 이러한 확신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모든 것 가운데 임재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음악들은 매우 다양할 수 있고 또 다양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분명한 신학을 가졌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요행성의 또는 ‘우연한’ 음악에 대해서도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크리스천이기때문에 ‘우연’이란 것을 믿지않는다. 나는 섭리를 믿으며 모든 일어나는 사건들은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건의 자유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모든 것들을 동시에 보시는 하나님에게는 우연이란 없다”고 하였다.

메시앵은 자신의 콘서트 음악과 신앙을 결합하면 반대가 따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첫번째 논란에 관하여 “나는 신앙의 진실을 연주장에 도입하였지만 그저 예배의식이란 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요종교연주곡을 Trois petites Liteurgies라고 이름붙였다. 나는 이 이름을 그저 아무생각 없이 붙인 것이 아니다. 나는 예배의식을 연주한다고 생각하였으며 그것은 일종의 예배를, 일종의 조직된 찬양행위를 연주장으로 옮겨서 하는 것이었다. 되풀이하지만 그것이 어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였지만 원래 내가 의도했던 것은 캐톨릭예배의전을 종교적인 예배를 위해 지은 석조건물에서 그러한 음악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건물로 옮겨보려는 것으로 결국은 좋은 평판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특히 기독교신앙을 언급하고 있다. 그의 Couleurs de la Cite celeste는 계시록에서 언급된 색깔들을 해석한다. 올갠곡인 La Nativite de Seigneur은 하나님의 말씀과 아기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 초점을 맞추었다.
The Quartet for the End of Time은 계시록에 나오는 두 손을 하늘을 향하여 들고 ‘더 이상 시간이 없으리라’고 웨친 천사에게 헌정한 것이다. 이 오페라의 주제는 “그리스도를 가장 닯은 성자로 선정된 아시시의 성 프랜시스이다.

이전의 많은 크리스천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엥은 자신의 신앙을 악보의 모서리 등에 적어놓았다. La Nativite du Seinneur의 “Desseins eternals”란 장면에서 그는 성경구절 에베소 1장 5절과 6절의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에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성구를 적어 놓았다. le tombeau resplendissant의 오케스트라 악보에는 “나는 신이 주신 선물, 예수 그리스도의 몸, 그의 살과 피에 감사한다”로 시작되는 메시앵의 시가 적혀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많은 음악소재에서 원용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메시앵이 “귀중하면서 표현력이 풍성한 마르지 않는 멜로디의 샘물”이라고 불렀던 교회의 일반찬송가들도 들어 있다. 자연에 대한 예찬-특히 새소리와 같은-들이 그의 작품가운데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사랑 다음으로 자연을 사랑하였다. “성 바울과 같이 나는 자연에서 신의 다른 한 면을 보고있으며 하나님의 창조물은 하나님 자신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메시엥은 전 세계의 다른 문화들의 복잡한 리듬들을 연구하고 수용하였다. 특히 힌두의 리듬을 많이 받아들였는데 그래서 어떤 음악가들은 그가 동양종교로 기울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오해를 받게되지 메시엥은 분명히 말했다.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소. 나는 힌두 리듬을 매우 존경하지만 단지 리듬뿐이지 인디안 철학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요. 나는 그들의 리듬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을 공부하였지만 나는 힌두교도나 시바신도는 아니요. 불교에 관한한 그것은 공(空)의 이론이요 소극성의 이론이다”고 하엿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존경을 보낸 메시앙의 삶의 한 측면은 다른사람들과의 평화로운 평정심과 다른사람들에 대한 사려깊은 배려이다. 새무엘은 메시엥의 주거지가 복잡한 파리의 한 복판에 있어서 불편하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메시엥은 “당신 생각이 옳을거요. 내 생각이 옳치못했고.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하는데 . . .”라고 말했다.

21세기가 되면 메시앵의 음악이 시간이란 테스트를 잘 치뤄냈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이미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겸손함은 그의 현재의 성공에 근거해서 그가 장기적인 성공을 거둘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헌신적인 크리스천 음악가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곡을 기념하는 한 글에서 그는 “성령과 더불어 어둠의 세력과 싸우는 우리들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서, 육신의 감옥의 문을 가로막은 산을 들어올리기 위해서, 우리들의 세기에 갈한 목을 축여 줄 우물을 찾아주기위해 훌륭한 예술가인 동시에 위대한 크리스천인 위대한 예술가들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메시엥에 대한 단상들:대담함

메시앵은 거의 신앙을 찾아보기 어렵던 한 시대와 사회를 살았다. 물론 그는 생의 많은 부분을 교회봉사로 바쳤지만 그의 작품들과 걸출한 생애는 세속적인 음악세계 한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그의 신앙에 대해 침묵을 지키려는 유혹이 엄존하였고 특히 그의청중들이 그의 천재성에만 관심을 가질 때 그런 유혹은 더욱 심했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작품이나, 강연이나 강의, 저술, 대담 등을 통해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증거하였다.

암스텔담에서 행한 전형적인 개회사를 들어보자. “나는 종종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사랑하며 무엇을 희망하는가와 같은 나의 신앙고백을 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는 삼위일체를 믿으며 성령을 믿는다((성령님께 나의 작품 “Messe de la Pentecote”를 헌정하였다.) 그리고 그 아들, 육신이 되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나의 작품들의 많은 부분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헌정하였다.)
청중들 가운데 이와같은 스스럼없이 신앙이야기를 하는 크리스천에게 언잖아하는 사람들은 없었는가? 있었다 하드라도 메시앵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교회에서 대화하듯이 음악비평가들 한테도 같은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그의 전혀 주저함이 없는 확신때문에 청중들은 그를 존경하였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들은 비록 그와 같은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한결같이 그의 인간성과 음악이 주는 타협없는 멧세지에 대해서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의 담대함은 그의 인격의 한 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성실한 신앙에서 나온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음악적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신앙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죽음에 임하여서 후회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일에 대해서 가장 숭고하면서도 전혀 의심이 없었던 것으로 그것들은 가장 유용하고 가치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올리비어 메시앵은 뛰어난 작곡가 그 이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세속적인 환경가운데서 크리스천으로서 걸어가야 할 훌륭한 모범을 남겨주었다. 그의 삶 가운데 각인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증언은 그가 하나님께 영광드리기 위하여 작곡한 작품들 가운데 계속 살아있다.

그의 작품들:
오케스트라 곡들: Chronochromie; Seven Hailai;Colrs of the Heavenly City; Turangalila-Symphomie: Et exspecto rresurrectionen mortuorum
실내악 곡들: Quartet for the End of Time
합창곡들: 쏟 Transfigur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키보드 음악: meditations on the Mystery of the Sacred Trinity(for organ); Catalogue of Birds(for piano)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