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2019년 9월 15일>

나의 삶과 신앙

미 복음주의 계열의 월간잡지인 Christianity Today는 다양한 각계 인사들의 신앙고백을 매달 싣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적과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기독교 신앙에 관한 이해와 생활을 알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번역, 소개합니다.


한 MIT 교수가

모든 지식의 저자(著者)되시는 분을 만나다.

-로잘린드 피카드

-나는 종교인들은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좀더 똑똑해지자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소학교에 다닐 때 나는 아주 열심히 독서를 하는 올 A 학생이었다. 나는 똑똑한 아이로 알려졌다. 그리고 나는 똑똑한 사람은 종교가 필요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선언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교육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고등학생 때 나는 클래스에서 무신론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토론팀의 리더였는데 “이것은 과학”이기 때문에 우리 편이 이기리라고 확신히였다. 그런데 우리 클라스에서는 투표로 창조팀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나는 놀라서 할말을 잃었다. 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학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우리반에서 가장 인기있는 계집애의 수영장파티 공세에 지나치게 휘둘렸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나는 아이를 봐주면서 용돈을 벌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가정은 젊은 부부의 가정이었다. 남편은 의사였고 그 아내는 매우 영리한 여자였다. 어느날 밤, 일한 값을 계산하고 나서 나를 교회로 초청하였다. 나는 잠시 멍멍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다니? 일요일 아침이 오자 나는 배가 아프다고 핑게댔다. 그들은 다음주에도 나를 초대했지만 그때에도 다른 꾀병을 핑계로 그들의 초대를 거부해 버렸다. 그들이 계속 초대하자 나는 새로운 핑게거리를 만드느라고 애를 먹었다(의사에게 꾀병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 보라)

결국 이 부부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중요한 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 하는건데 성경을 읽어 봤어?”하고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교육받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언제나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차지하는 성경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의사 남편은 잠언부터 시작해서 매일 한 장씩 읽어보는것이 좋을거라고 제의하였다. 내가 성경을 처음 펼쳤을 때-그것은 킹 제임스 번역본이었는데- 나는 엉터리 기적들이나, 만들어낸 괴물 이야기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횡설수설 등이 들어 있을거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잠언은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읽으면서 생각하기 위하여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소문내지 않고 슬쩍 <The Way> 라고 하는 현대어 번역 성경을 사서 성경 전체를 읽었다. 나는 실제로 어떤 소리를 들어 본 적이나 신경정신과 의사를 부를만한 이상을 전혀 경험한 적이 없었음에도 누구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갖게되었다. 그것은 불안한 면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매력적이기도 하였다. 나는 과연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경험은 성경을 처음 읽은 독자들에게는 공통적인 것일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내 방식으로 성경을 다시 한번 공부해 보기로 작정했다. 이번에는 한 걸음 물러나서 좀더 주의깊게 성경을 읽기로 하고 만약 거기에서 잘못된 것들을 발견하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한 성경의 기원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종교들에 관해서도 좀더 공부하기로 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아니면 유대인인 나의 문화때문에 기독교에서 더 매력을 느낀다고도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유대인 선생님이 “영재”프로그램으로 매 학기 한 과목씩 내가 원하는 과목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나는 불교, 힌두교 그리고 그외 여러 종교들에 관해 공부할 수 있었으며 불교사원, 유대교 시나고그, 이스람 모스크 그리고 다른 성지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종교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이 “종교”의 단계가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 마음 한쪽에서는 점점 더 성경의 하나님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는 생각이 있는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에서 떠나면 다시 행복해 지리라는 주장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성경에는 나에게 특별히 걸리는 구절들이 두 개 있었다. 마태복음 10:33(“그러나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부인할 것이다.”)과 마태복음 12:30(“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의 말씀이었다. 나는 환영하지 않는다는 최후통첩으로 느껴지는 이 구절들에 분노하였다. 나는 하나님을 믿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지만 무시해 버릴 수 없는 특별한 사랑과 임재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나는 대학 1년때 여름특별프로그램에서 만난 친구와 연결이 되었다. 그 학생은 올 A에다 농구와 미식축구에서도 우수선수였다. 나는 그만큼 스마트하면서도 운동을 잘하는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내가 어려운 물리학 숙제들을 하는걸 도와주었고 나를 그의 교회로 초대하였다. 이번에는 초대에 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교는 즉각적으로 많은 의문들을 제기하였다. 나는 목사님이 한창 설교하시는데 손을 들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나는 친구의 옆구리를 찔러 “질문해도 돼?”라고 물었더니 그는 나에게 조용하라고 하였다. 질문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 설교가 끝난 후에 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얻으려고 하였지만 사람들은 사람들과 교제하는데만 관심을 가진듯 했다. 나는 주일학교 성경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거기에서는 선생들이 질문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따르는 것의 차이점에 관해 이야기 하셨다.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예수와 관계된 어떤 것이든 피하려고 노력해 왔던것이다.-나는 예수의 이름에는 광적이라는 단어가 붙어 다니는 것을 들어왔다. 그러나 목사님이 “당신의 삶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을 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사님은 “인간인 당신이 자신을 보좌위에 올려놨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런지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나의 배의 선장이었다. 그러니 하나님이 실제로 나를 인도할 수가 있었을까? 거기서부터 나는 예수를 믿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깊은 이해를 하게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직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면서 이에 대해 기도한다는 것이 무의미한듯 했다. 그러나 파스칼의 도박 정신에 따라 나는 믿으면 잃는것 보다도 얻는게 많다는 믿음으로 실험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이 나의 삶의 주님이 되시기를 청합니다”라는 기도를 한 후 나의 세계는 극적으로 변하였다. 흑백의 존재가 갑자기 총천연색의 삼차원의 세계로 변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겠다는 나의 강력한 의욕에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세계가 작동하는가?하는 어려운 문제에 까지도 질문을 할만큼 간이 커 있었다. 나는 기쁨과 자유를 느꼈다. 그와 함께 책임감과 도전정신도 더 커졌음을 느꼈다.

배움과 탐험

기계들을 조립한 경험이 있는가? 그것은 어떠한 종류의 일이었는가? 어쩌면 바퀴를 돌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부드럽게 돌지 않는다. 그때 당신은 부속 하나가 빠진것을 발견한다. 당신이 그것을 찾아 모든 부속들을 바르게 제 자리에 집어넣자 바퀴가 스무스하게 돌아간다. 이런것이 바로 내가 나의 삶을 하나님께 맞겼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나는 전에는 모든게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고치고 난 다음에 보니 기하급수적으로 더 잘 돌아갔다. 그렇다고 나쁜일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그와는 정반대다. 그렇지만 좋건, 나쁘건 모든 일에서 나는 하나님의 안내와 위로와 보호하심에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나는 나의 전공분야에서는 첫 번째로 꼽히는 MIT 대학의 교수다. 나의 연구실 연구결과들을 가지고 간질병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도움이 된 스마트 시계등을 포함해 많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믿을 수 없으리만큼 훌륭한 동료들이 주변에 있다. 나는 또한 건강문제로 씨름하며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과 자녀들의 건강문제로 걱정하는 사람들과도 밀접하게 일을 하고있다. 나는 모든 고통에 대해 설명해 줄만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유로히 오셔서 한없는 위대함과 사랑으로 관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한때 나는하나님을 믿기에는 너무나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모든 과학과 수학과 예술과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의 저자가 되시는 우주의 가장 위대하신 지성(마음)을 향해 큰소리를 치던 교만한 바보였다는 것을 알고있다. 오늘 나는 가장 과분한 은총을 받은 자로서 겸손하게 걷고있다. 나는 계속 공부하고 탐험하려는 욕구로 가득 차서 어느 누구도 얻기 어려운 가장 놀라운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쁨으로 걷고있다.

*Rosalind Picard 는 MIT의 the Affective Computing Research Group 의 설립자요 관리자이다.


 

중환자 외과전문의가 만난 위대한 의사

캐드린 버틀러(Kathryn L. Butler)

“나는 의학적인 기적을 목격하기 까지는 하나님은 곳에 계시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의 눈은 심장박동기의 향방을 쫓고 있었다. 환자의 심장박동의 간격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느릿느릿 들려오는 리듬은 깨진 두개골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그의 뇌를 밀어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환자는 22세의 젊은이였다. 그가 자는 동안에 누군가가 야구방망이로 그를 때려눕혔다. 그 옆에서 자고 있던 아내는 즉석에서 생명을 잃었다. 그리고 네 살난 아들이 이 모든 것들을 목격하였다.

나는 그 혼란속에서도 응급실에서의 긴급한 사항들을 잘 수습하였다 그러나 환자의 가운데 정맥을 맞출 때 나는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나는 잠옷을 입고 있는 네 살박이 아들과 그가 평생 잊지 못할 참혹한 상황들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괴로워 하고 있을 때 응급요원들이 총상을 입고 죽어가고 있는 15살 난 소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은 산소가 많이 든 피를 소년의 뇌에 주입시키기 위해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흐릿한 형체의 아드레나린? 가운데서 나는 수술칼을 움켜쥐고 그의 가슴을 잘라냈다. 나는 그의 정지된 심장을 꺼내어 떨리는 손가락으로 경계선들을 찾아보았다. 내 손을 크게 벌어진 구멍으로 넣었을 때 나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총알이 대동맥을 찢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생명을 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으며 악몽들이 계속 떠올랐다. 다른 열 다섯살 난 소년. 총상이었지만 이번에는 총알이 소년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나는 그 소년의 상처에는 가급적 손을 적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 소년의 상처들을 깨끗하게 닥아주고 가족들에게 그들이 사랑했던 아들의 모습이나마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 문이 열렸다. 내가 눈을 들었을 때 그 소년의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순간 경직돼었다가 소리를 지르더니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피묻은 장감을 벗고 그 방에서 뛰처나가 내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돼다.

다음날 아침 근무시간을 마쳤을 때 나는 실신한 사람같이 멍해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명이란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느끼며 좌절하였다. 나의 환자들은 각자가 그들을 보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고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러한 죄악을 허용하시는지?

나는 명색이 크리스천으로 성장하였다. 우리 가족들은 기독교 전통들을 지켜왔으나 성경을 읽거나 복음에 관해서 서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나는 기독교를 선행과 동의어로 생각했을 뿐이다.

일을 마친 다음에 나는 여러 시간 걸려서 몇 백 마일을 달린 후에 커네티커트 강을 건너지르는 다리위에 차를 세웠다. 다리 주위에는 산들이 있었다. 그리고 10월의 태양은 보석과도 같이 불꽃같은 지평선을 만들고 있었다. 밑으로는 강이 잘 닦은 강철과도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다리의 난간을 잡았다.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기도하기 위해 입술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것을 느꼈다. 나는 비록 하나님이 존재하실지라도 주님은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불가지론에 빠져들었다. 의심은 절망으로 이끌었고 절망은 자포자기로 이끌었다. 나는 영원한 수면을 꿈꾸었고 무감각과 소멸을 꿈꾸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매일매일 나를 괴롭혔다. 나는 커네티커드 강을 가로 지른 다리로 돌아가서 난간을 뛰어넘는 충동과 씨름하곤 하였다. 남편 스카트에 대한 사랑이 매일 저녁 내 발길을 집으로 향하게 하였다.

몇 달 후에 스카트가 일자리를 잃었다. 내가 악의 문제와 씨름하는 동안에 그는 교회를 찾았고 처음으로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다. 스카트는 나에게 그와 함께 교회예배에 참석할 것을 권했지만 나는 여전히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결국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 교회에 나갔을 때 예배실이나, 노래들, 의식들이 외국에 온듯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남편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할 때에도 나는 앞만 바라보면서 내 생각만 하였으며 벽만 바라보면서 반항하였다.

가슴이 미어지다.

얼마 후에 나는 ICU로 직장을 옮겼다. 환자들 가운데 란(Ron, 가명)이란 중년의 남자가 있었는데 고관절 대치수술 후에 심장마비에 걸린 환자였다. 그는 마비중에 산소결핍으로 인해 뇌에 심힌 손상을 입어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 이러한 식물인간 상태에서 란은 눈을 뜨곤 했으나 주위에 대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신경전문의들은 그는 회복할 수 없다고 전망하였다.

란의 아내와 딸들은 매일 그의 침대 옆에서 떠나지 않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였다. 그 가족들은 이 활기차고, 풋볼을 좋아하고, 핏자를 좋아하며 배를 흔들면서 웃어대던 명랑한 아버지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느날 아침 ICU는 1980년대의 값싼 노래들을 갑자기 틀어댔다. 나는 란의 아내가 남편의 침대 옆에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로 다가가자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어제 밤 저는 밤새 계속 기도했는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모든것이 잘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라고 그는 말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남편이 곧 나을것이라고 했어요”라고 선언하였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그녀의 확신과 희망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니 그녀 남편의 병상일지들은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다음 주 내내 그녀는 남편 옆에서 맴돌면서 그들이 좋아하였던 노래들을 불렀다. 때로는 그녀가 커다랗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병동에 있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큰 소리로 왜쳐대기도 하였다. 동료들과 나는 우리들의 걱정을 숨기느라고 애를 먹었다. 우리들은 서로 만나면 고개를 내젓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가슴이 메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어느날 오후 그녀와 딸들의 고함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는 그방으로 달려갔다.

란의 아내는 “남편이 우리가 요구하는대로 발을 움직였어요”라고 이야기 하였다.

나는 란의 귀에 가까이 대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발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하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미안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반사작용이었든듯 하군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아내는 “아니에요, 보세요”라고 하면서 그녀의 손을 그의 어깨에 얹고 귀에다 대고 오른쪽 발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소리를 지르자 그는 그대로 움직였다.

다음날 그 환자는 머리를 가족들 쪽으로 돌렸고 그리고는 시키는대로 눈동자를 움직였으며 두 주만에 의식을 회복하고 3주 만에 일어나 앉았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기껏해야 가끔 사물을 둘러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아무도 이러한 상태로 극적으로 회복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의학은 그의 회복을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들의 고통을 지닌채

나는 기적을 목격한 것인가?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여전히 고통을 허용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축복을 허용할 수 있는지?

스카트는 나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나는 복음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마서까지 계속 읽었다. 말씀이 친숙하게 느껴졌고 새로히 열려진 나의 마음에 성경읽기는 내가 탐험해본 적이 없는 붓질하듯 그리스도의 사랑을 펼쳐 보여주었다.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가 당했다는 고통은 나로 하여금 숨을 쉴 수 없게 하였다. 그리스도는 또한 심령의 고통을 참으셨고 악과 맞대결하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위해 그러한 고통-우리의 고통-을 뚫고 나갔다. 로마서 5장 1-8에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놀라운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고통을 알고 계셨다. 주께서는 나의 실망을 대신 지시고 그의 완전한 과업을 위한 그림을 만드셨다.

그리스도가 나사로를 살림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믿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고통-총상과, 슬픔,실직, 다리 난간옆에서의 허탈감 등-을 상환하여 주셨다. 그의 자비로 그는 우리들을 들어올리기 위하여 내려오셨고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적을 완성하기 위해 이 세상으로 오셨다. 그는 우리에게 가을의 보석과도 같이, 어려운 한밤중에도 그리고 우리들이 들이키는 한 숨, 한 숨 사이에도 매일 축복을 부어주신다.

*캐드린 버틀러(Kathryn L. Butler)는 외상과 특수외과 전문의로 최근 자녀들의 가정학교 교육을 위해 임상업무를 떠났다. 그녀는 하바드의과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며 Oceans Rise: Musings on Faith, Medicine, and Motherhood.라는 블락을 운영하고 있다.


기적:80세에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나를 구해 주신 이야기

By 진루(Jinru)

나는 84살의 크리스천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권위를 인정하며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감사하고 있다. 내가 갑자기 병에 걸려서 목숨이 일각에 달려 있을 때 나를 죽음의 골짜기에서 끌어내셔서 나로 하여금 그의 사랑과 구원을 찬양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셨다.

2014년 8월 어느날 갑자기 배가 아팠다. 나는 주사나 한 방 맞으면 괜찮으려니 생각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몇 일동안 주사를 맞았는데도 배 아픈게 낳지를 않고 더욱 심해졌으며 먹지를 못하고 먹으면 곧 토했다. 나는 겁이 났으며 아이들을 나를 급히 동네 병원으로 데려갔다.

CT검사를 한 후 담당의사는 아이들에게 “검사결과에 의하면 당신의 어머니는 직장암에 걸린 것 같은데 연세로 봐서 수술을 견뎌내시기는 힘들 것 같으니 재래식으로 투약치료를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되면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고 건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것입니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어떻게해야 될런지 암담하였다. 딸애는 의자에 주져앉아서 마구 울어댔다. 아이들은 시험결과를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의사가 처방하는대로 약을 먹으면서 주사도 매일 한번씩 맞으라고 하였다.

카운티 병원에서 10여일을 치료를 받았는데도 전혀 낳지를 않고 계속 붇고 종종 토하기도 하였다. 물도 전혀 마실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걱정이 되어서 나는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병이며, 낳을 수는 있는거야?”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엄마, 걱정마세요. 우리가 이렇게 옆에 있지않아요,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하였다. 딸 아이는 나의 귀에다 대고 “엄마,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주 능력있는 의사시다!. 병에 속한 사람은 아프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건강할 것이다. 숨이 한올만 남았서도 하나님은 너를 죽도록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 그러니 걱정 말아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요" 라고 속삭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래, 하나님이 나의 방패신데 두려울게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무척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러나 전혀 차도가 없는 것을 보자 아이들이 나를 도시의 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그곳에서 CT스캔을 한 다음에 직장암은 오진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담당의사가 “당신 어머니는 사실은 탈장수축이었는데 치료가 너무 지연되었기 때문에 대장에 구멍들이 생겼고 배설물들이 위에 20일 이상을 지체하여 폐에 염증이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수술에 적당한 시기를 놓쳤고 언제 세상을 떠날런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만약 수술을 원하신다면 연세도 있으시고 심장도 불규칙하기 때문에 회복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수술을 안받으면 죽음을 기다리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의논들 하셔서 빨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80이 넘었는데, 수술에서 내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렇지만 수술을 안받는다면 죽음을 기다리는 일밖에 없다니?” 그 순간, 나는 죽음에 아주 가까이 왔다는 생각에 극도로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할찌 모르겠습니다. 수술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음을 기다리는 일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의 운명이 당신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지 죽을지는 당신뜻대로입니다. 저는 당신의 절대주권과 처분에 저를 맡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 “지금부터 나는 모든 백성들로 나를 알게 할 것이니-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오셨지만 그들이 거부하고 중상한 그 분, 그는 모든 것들을 책임지신 왕이요 우주를 관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시요 인류의 생사를 관리하시고 천국과 지옥의 열쇄를 가지고 계신 분이심을 알게 하리라” 하나님은 우주와 모든 생물들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진정한 하나님으로 모든 사람들의 생사는 모두 그에 의해 지배된다. 내가 살지?, 죽을지?는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것이다. 주 예수께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실 때 장면이 떠올랐다. “나사로야, 일어나라”(요한 11:43) 나사로는 그때 무덤에서 나왔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은 우주나 지역의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요 물질세계나 영적세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손에 나를 맡기기로 작정하였다. 후에 아이들은 의논끝에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였다.

그 순간 나의 아들이 나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말하시기를 ‘욥이 시험받을 때 그가 증인이 되셨고 끝에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가 증인으로 선 다음에야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 만약 네가 심판을 받으면서 자신의 육신을 저주하면서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던 욥과 같이 그의 말로 불평하거나 죄를 범치않으면서도 자신의 육신을 혐오하였던 욥과 같다면 그것이 바로증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욥이 시련에 직면했을 때 그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잠잠할 수가 있었고 그는 하나님께 불평하면서 나날을 저주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는 하나님을 증언하고 사탄을 격퇴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어요. 오늘 질병에 걸려서도 우리들은 욥을 본받아 하나님을 증거해야 해요. 하나님께 불평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기도하고 그에게 보다 의지하고 우리들의 생사를 그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아들과의 교제가 나로 하여금 확신을 갖도록 하였고 우리 둘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후 깨어났을 때 나는 온몸에 많은 튜브들을 꽂고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진심으로 계속해서 감사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행위였기 때문이다. 내가 응급실에 있는 동안에도 병이 악화되거나 수술의 후유증으로 몇 사람이 죽어나갔다. 나는 그 가족들을 통해 응급실에서 살아 나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상황은 매일 매일 좋아졌다. 3일 후에는 의사가 일반 회복실로 옮길 수 있다고 하였다. 응급실에서 퇴원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환자의 가족들은 무척 놀랐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응급실을 나가게 되어서 축하한다”고들 하였다. 아이들과 나는 삶과 죽음의 테스트를 통과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기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건강상태가 점점 좋아지면서 몸에 붙어있던 튜부들을 다 떼어내었다. 의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머니를 잘 돌보셔야 합니다. 가래를 잘 받아내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관을 넣어 빼내야 하니까요. 그 나이에 그런 과정을 겪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라고 하였다. 의사의 말을 들은 후에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나를 간호해 주었다. 나는 수술후에 잘 회복되었고 체중도 늘었다.

그런가운데 어느날 저녁 갑자기 어지럽고 숨이 가빠졌다. 나는 “합병증이 생긴게 아닌가? 합병증이 생기면 무척 힘들고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데, 나같은 늙은이는 감당하기 어려울텐데, 그러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과 함께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 기분이 별로 좋지않습니다. 또 수술을 받는다면 깨어나기 힘들텐데 하는 두려움이 떠오릅니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주권과 조치에 전적으로 따르려고 합니다.”

나의 상태를 본 아이들이 곧 의사에게 연락하여 의사가 모니터를 본 후에 응급실로 가도록 조치하였다. 후에 의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심장이 심각할 정도로 약해졌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구조되었지만 언제 갑자기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이야기 하였다고 한다.

내가 일반병동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조용히 말했다. “엄마, 이번에도 위험을 피했고 또 다른 테스트를 통과했어. 하나님은 항상 우리편이 되셔서 우리들을 감시하시고 보호하셔"라고 말했다. “언젠가 큰 시련이 올 때,다른 사람들은 너머지나 너는 여전히 굳게 설것이다.너에 대한 값을 이미 지불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를 보호하시고 너는 너머지지 않고 굳게 서리라.”

이러한 경험들을 되돌아 보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기이한 보호하심을 볼 수가 있었다. 동네병원에 있을 때 오진을 하여서 치료받을 수 있는 적기를 놓쳤다. 그러나 이곳에서 수술을 함으로 위험에서 탈출했다. 응급실에 있을 때에도 다른 환자들은 합병증으로 죽어가는데 수술에서 회복되어서 일반병동으로 갈 수 있었으며 이번에도 갑작스런 심장마비가 왔지만 때를 잘 맞추어 구조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면했다. 이것들이 놀라운 하나님의 행동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목격하였다. 비록 의사들은 아직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믿었다. 의사들이 한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나 죽음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복종을 계속하는 한 그의 주권과 섭리에 진정으로 복종하는 한 하나님은 역경가운데서도 우리를 도와주실것이다.

"요즈음 우리들은 어머니 걱정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대로 그의 권위와 통치를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신앙을 갖습니다. 이제 병에 직면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수 없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우리들은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도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구원받았어. 그리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았어. 그리고 그의 특별하신 권위를 감사하지." 이러한 관문들을 다 통과한 후에도 나는 내가 이 나이까지 살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 때문이 아니라면 나는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런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뿐이다.

*CHRISTIANITY TODAY . 2019년 2월 호에서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