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2019년 10월 15일>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13)

노먼 빈센트 피일(1898-1993)은 목사요 저술가로 월간지 <Guidepost>를 창간하였으며 그의 저서 <적극적인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으로 유명하다. Guidepost 재단은 <Plus-The Power of Faith>라는 월간 소책자를 통해 피일 박사의 강연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창조적인 기대
놀만 빈센트 피일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저에게 다가와서 자기 아들을 좀 도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 제 아들은 설흔 살인데 훌륭한 교육을 받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제 영향력을 동원하여 좋은 일자리를 얻게하였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그애는 실패했습니다. 다른 직장을 얻도록 도와주었는데 그곳에서도 실패하였지요. 그 아이는 어쩌면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듯 합니다.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합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심리학자가 이 젊은이를 몇 차례 만나서 종합적성검사를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이 청년은 훌륭하게 성공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이에 놀란 젊은이는 한 번 다시 시도해 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때 그 삼리학자는 저에게 “저 젊은이에게 ‘창조적인 기대.의 법칙을 가르쳐 주도록 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슨 법칙이라구요”라고 되물었지요.

“아니 당신이 즐겨 찾는 규정집이 있지 않소?” 그는 성경을 의미하였습니다. “마가복음 9장23절에 보면 ‘믿는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창조적인 기대의 법칙이지요. 이 젊은이의 문제는 그가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젊은이에게 자신있게 최상의 경우를 기대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지요.”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요지는 기대치가 크면 클수록 그 결과도 크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계속해서 최악의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선의 것을 기대하면서 계속 그렇게 기대하면 바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당신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의 결과를 얻으리라고 믿는 신앙을 가지면 당신은 창조적인 기대를 실천하는 사람이 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젊은이에게 창조적인 기대의 법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20년 후 저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그가 사는 도시에서 그의 사업분야에서 가장성공한 사람이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능한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되고 창조적인 기대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게 도와 준데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는 “저는 더 이상 최악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상황들을 고려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하면 실수할지 등을 생각합니다. 만약의 사태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최선의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삶을 살려고 시도합니다.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시도합니다. 저는 언제나 좋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합니다. 저는 열심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창조적인 기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당신 자신의 기대치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앞을 보고있습니까? 뒤를 보고 있습니까? 희망적인 태도로 보고 있습니까? 절망적인 관점으로 보십니까? 열망적인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습니까? 아니면 잘 안될거라는 암담한 생각을 가집니까? 신앙을 가지십시오. 믿으십시오. 앞을 보십시오. 이것이 비결입니다.

창조적인 기대는 자석과 같은 어떤 자극과 연결되는듯 합니다. 거기에는 활력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저는 유명한 영화 배우, 텔레비젼 스타인 데일 로벗슨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10대 때에 눈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장님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청각 역시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은 당황했습니다. 전혀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말을 탈 수도 없었고 운동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학교 다니는 것도 포기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오크라호마의 집 포치 앞에 앉아서 앞만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과였습니다. 그는 다른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는 삶에서 완전히 떠난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1년 동안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 한 분이 그곳에 왔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으로 별로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문자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병 고치는 기적들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성경책을 고정시켜 놓고, 항상 옆에 놓아 두었으며 재빨리 불러내었습니다. 만약 그가 다른 목사들과 같았더라면 데일 로벗슨은 아마도 아직도 그 포치에 그대로 앉아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사는 앉아서 이 소년을 바라보다가 “데일, 네가 다시 병이 낳으리라고 믿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데일은 비록 잘 듣지도 못하고 시력도 매우 약하지만 “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낳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의 친구인 이 목사는 그러면 같이 이 포치에서 데일이 지금 당장 고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지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났을 때 데일은 분명하게 볼 수 있었고 또렸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문제가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무엇이 문제였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조건이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설명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경향은 그것은 심리적인 문제였으므로 신앙이 개입할 수 있었다는 결론으로 거기에는 심리적인 문제라면 신앙이 그 삶에 무언가 해줄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습니다.

여하튼 데일 로벗슨에게 있어서 그 순간은 활기 차고, 건강하고, 창조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날 포치에서 일어난 일은 그에게 “우리가 충분히, 확실히 믿는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그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가르침을 주었다 고 말했습니다.

종교적 또는 정신적 생활에 있어서도 과학이나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사건들은 원인과 결과로 작용합니다. 만약 어떤 일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 그것은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최악의 것을 기대하기보다 최선의 것을 기대하면 대단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거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한 습관을 당장 집어치우고 최선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요. 창조적인 기대를 당장 습관화 하십시요.

저는 진심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어렵게 합니까? 당신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당신을 좌절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당신은 문제가 무엇인가, 왜 실패했는지,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저항하는 것들이 무엇이고, 방해물들이 무엇이며,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느라고 낭비하셨습니까? 그런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십시요. 하나님이 주실 무한한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하십시요. 성경은 말합니다. “믿는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성경은 지금까지 기록된 가운데 가장 믿을만한 책입니다.

이 말은 당신이 원하는 것들은 모두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 당신은 다 얻어야 합니까? 어쩌면 당신이 갖고저 하는 것들 가운데는 당신에게 적합치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창조적인 기대를 실천한다면 당신의 삶이 이룰수 있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고 다른 것을 하나 더 든다면 성실함(진실됨)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성실함에 관해 별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성실하여야만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 . ” 이것이 성실함의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은 그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거부합니다. 인생은 거부집단에게는 자신을 거부합니다. 어떤 유명한 카나다의 학키코치는 반항하는 선수들중에 유명한 선수가 된 자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선수는 전력을 다하는 선수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에-당신이 창조적인 기대를 하는 것에- 전력을 경주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듣기만큼 쉽지는 않읍니다. 이러한 원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때로는 무척 힘듭니다. 물론 복잡한 일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경험들을 서로 나누는 것도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설교에서 인용한 이야기 덕분에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언제 그 이야기를 들으셨지요?”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오! 아마 한 20년 됐지요”라는 그가 대답했습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 그는 공포로 가득 차서 Marble Collegiate 교회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큰 기회를 제안받고 있었지만 그 책임감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일 아침 제가 예화로 든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유명한 곡예사가 ?큰 야망을 가지고 있는 젊은 곡예사들 그릎에게 높은 곡예그네 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을 데리고 가장 쉬운 제일 낮은 그네에서부터 시작해서 제일 높은 곡예그네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들은 높은 그네에서 가장 고난도 연기를 보여서 그들의 훈련을 보여줄 것입니다.

한 학생만 빼고 모두가 성공을 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그네를 올려다 보자 한 발짝만 미끄러지면 서커스 천막의 딱딱한 마루바닥에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으로 경직되어서 그의 근육이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선생은 “짐, 지금 올라가서 그네를 잡고 한번 해봐. 너는 할 수 있다구.”라고 말했지만

소년은 “선생님, 못하겠어요. 저는 죽을까봐 무서워요.”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너의 마음을그네 위로 던져 버려 그러면 몸이 쫓아 오를거야”라고 말하면서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비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들어본 가장 현명한 생각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어려운 것들 위로 던져버리십시요. 그러면 당신의 육체는 당신 마음속의 추진력과 스스로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두려움에 쌓인 젊은 곡예사 지망자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마음을 그네 저편으로 던져 버리고 아름답게 곡예를 완수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려움과, 위기와, 곤란에 직면합니다. 그들 앞에 우리는 얼어 붙습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태를 생각하고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신앙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인 창조적인 기대를 작동하고 그 어려움 너머로 당신의 믿음을 던져 덮으면, 장애물 너머로 당신의 확신을 던져 버리면 그외의 당신의 남은 것들은 따라올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따른 가장 단순하고 가장 기본적인 창조적인 삶의 법칙입니다. 그고 과학적인 시대에 과학적인 삶을 사는 위대한 비결의 하나입니다. 창조적인 삶을 실천해 보십시요-그것은 반드시 작동합니다.

*PLUS_the power of faith, October-Novenber 2019

 


긴장이 없는 삶

노먼 빈센트 피일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긴장을 치유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23편의 명 구절안에 들어있습니다. “주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조용한 물가), “그는 나의 영혼을 소생케 하시며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도다”(의로운 생각, 의로운 행동)

저는 세계에서 긴장의 수도라고 부를 수 있는 씨끄럽고, 분주하고, 쉴 줄 ?모르는? 뉴욕에 살기때문에? 종종 긴장에 관하여 설교를 합니다. 그렇지만 긴장은 큰 도시건, 작은 도시건, 어느곳에서나?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어느곳에서든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크리스천들의 역할입니다.

한번은 전국약사회의 모임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미국에서 매일 밤 6백만 정 이상의 수면제가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든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요 서글픈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보를 듣기 전에도 저는 다른 보고서에 의해 이러한 수치가 매우 소극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그 통계는 훨씬 높아졌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훨씬 위협적인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긴장에 관한 설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주제를 가지고 설교한다고 했습니다만 사실은? 대부분 제가 저에게 하는 설교임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항상 저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해 여름 저는 배를 타고 하와이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장이 저에게 주일아침 예배시간에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승객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둘러보았습니다. 대부분이 미국의 간부급 사업가들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을 극복하고 편안하게 사는 방법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일요일 아침, 제가 설교할 시간이 되어 저는 급히 객실에서 엘레베이터가 있는곳으로? 달려갔는데 막 문이 닫히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미끄러지듯이 에레베이터 속으로 들어가자 엘레베이터 걸인 하와이안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선생님,, 진정하세요. 호노루루에 닿으려면 아직 닷새가 남았습니다.”?

저는 종종 이 긴장의 원인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한 저명한 의사가 최근 잡지에 기고한 글을 보았습니다.? 그는 어느날 아침 신문 부고란에서 42세 밖에 안된 자신의 환자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그 환자는 몇 주 전에 그 의사를 찾아와서 잠도 잘 수 없고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조사들을 해 보았으나 이상을 발견할 수 업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한 시간 동안을 환자의 사무실에 있으면서 그 환자의 습관을 관찰하였습니다.? 한 시간쯤 지낸 후에 의사는 “빌, 당신은 전화기, 시계,? 그리고 달력 때문에 죽어가고 있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뭐라고요, 그것들이 없으면 나는 내 일을 할 수가 없는데요?”라며 그 환자는 응수했습니다.

의사는? “그것들이 ?당신을 죽이는 세 개의 작은 탄환들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들이 사람을 죽입니다. 이 이야기가 나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생활에서의 전화기, 시계,? 칼렌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장 전화기를 집어 던져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그것은 사실입니다. 전화기는 사람이 만든? 것들 가운데 가장 무례한 기구입니다. ?목소리는 무례하고 명령조입니다. 전화는 마치 “지금 하는 일들을 다 중단하고 전화 받어”합니다. 전화기는 마치 다양한 방해꾼의 상징으로 서있습니다.

당신은 전화기의 방해 없이는 정신을 자극하기 위해서 또는 영혼의 고양을 위해서 더 이상 가만 앉아서 독서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지적 또는 영적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훌륭한 책을 보려는 당신의 노력은 당신과 이야기 하려는 사람이나, 더 나쁘게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팔려는 사람들에 의해 여지없이 패배하고 맙니다.

어느날 저녁 저는 아파트에 혼자 있게됐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전화가 와도 받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밤 11시 반쯤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냥 냐버려 둬, 아무도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 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어. 나는 전화에서 독립했으며 나는 나의 독립을 선언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노련하게 전화를 물리친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누가 전화를 걸었지?”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화를 들었습니다.? 그게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잘못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이 세상 삶에서의 방해꾼들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시계의 장애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시계는 하나님이? 낯과 밤, 계절들 이외에는? 우리에게 재어보지 않고 준 것들을? 측정해 보는? 뻔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원주민 노인을 만나서 마국문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저는 미국문명을 별로 좋게 생각지 않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문명이 위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단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당신은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면서 저의 팔목시계를 가키며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은? 시계의 희생자입니다. 당신은 시계가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지금 저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산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위대한 정령과 교제합니다. 저는 영원가운데 살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 세 번째 방해물을 생각해 보십시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시간이 없다면서 다가올 일들에 대해 걱정합니다.? 현자는 “한 번에 하루만 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에게 오늘만 있습니다. 오늘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 하십시요. 오늘이 지나가거든 잊어버리십시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들이 남아있는지 걱정하지 마십시요.

물론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개의 긴장 제조기들, 시계, 전화, 칼렌다들은 피상적인 것들에 불과합니다.? 극심한 긴장은 이들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긴장에 좋은 약은 “그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신다”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푸른 초장은 필요한 것들은 모두 공급되는 풍요로움을 의미합니다.?그것은 풍성함, 기회, 신의 자비로움 등을 의미합니다. 1년 전쯤 어떤 목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두 번이나 심장마비에 걸리셨습니다. 대화가운데 한심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목사님의 봉급이 형편 없이 적었으며 사모님은 교인들의 비협조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방식 과 그들의 생활 양식들을 비난하면서 분개하였습니다. 사모님에 의하면? 교인들은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저축도 없으며 크리스천다운 태도를 가진 사람들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남편이 매주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사모님의 할 일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사모님은 자신이 모범을 보이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이들 다른 사람들의? 불완전함을 다 지적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당신이 할 일이 아니구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지쳐버리고 말것입니다.”

사모님은 계속해서 “우리교회 사람들은 힘들어요. 제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요?”라고 남편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재촉에? “그럼요,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대답했지만 아내만큼 비판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왜 두 번이나 심장마비에 걸렸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긴장과 좌절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같이 기도하십시다”라고 이야기하고 함께 기도하였으며 몇 가지 제 의견을 말해 주었습니다.

지난 여름 그분들은 영성 수련회에 휴가차 왔었습니다.? 그 얼마 전에 저는 그들로부터 고무적인 편지를 받았는데? 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제 아내는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아주 건강합니다. 의사는 육체적으로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 진단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훌륭한 교인들과 함께 이 좋은 교회에 계속 있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부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푸른 초장으로 인도됨으로 그들의 긴장이 사그러 진 것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긴장의 원인을 그들이 살고 있는 상황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어려운 일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느긋해지는 법을 배운다면 그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이 푸른 초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쁨과 평안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느 곳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푸른초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음 문장을 보십시다. “주께서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어느 해 가을 저는 아내와 함께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있는 아들 쟌을 방문하려고 매샤츄세츠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아들에게 11시 쯤 그곳에 도착할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하고는 ???위풍도 당당하게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지역을 시간에 맞추어 달렸습니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가을 경치를 뚫고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아내가 “여보, 당신 저 아름다운 언덕길을 보았어요?”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떤 언덕길?”하고 되물었습니다.

“방금 지난 길 저쪽에 있던 언덕말이에요, 저 아름다운 나무들을 보세요?”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무슨 나무?” 이때 저는 이미 한 마일 이상을 지나쳐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 오늘 아주 예뻣어요. 아주 행복하게 해 주었어요”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경치를 완전히 지나쳐 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차를 세우고 4분의 1 마일을 뒷걸음질해서? 언덕을 배경으로 하고있는 호수가로 갔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모든 경치를 흠뻑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재주와 기술로 모든 계절가운데서 봄,겨울, 여름을 빼고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다양한 색갈들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으셨습니다.?? 그 호수의 잔잔한 물속에는 그의 영광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내가 “주께서는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말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이러한 침묵속에서 그 말씀이 어떤느낌을 주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호기심, 그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잔잔한 물기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 아마도? 그곳은 우리들이 쉬기에 좋은? 곳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고요함 가운데서 우리는 어떠한 우리들의 삶의 상황가운데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시인 에드위 마캄이 말한대로 “ 하늘을 찢는 안전한 대피소의 중심에는 가장 중심되는 고요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심장과 마음과 육체 속에 이 중심의 고요함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면 당신은 영원히 푸른초장에서 계속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PLUS The Power of Faith vol, 70 No 5에서


 

긍 정적인 사고방식은 과연 효과가 있는가?>

노먼 빈센트 피일

사람들은 종종 과연 긍정적인 사고의 힘이 항상 효과를 내느냐?고 묻습니다. 저의 대답은 예외없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는 긍정적인 사고를 시도해 보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 할 분이 계실것입니다. 누가 모든 것이 옳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였습니까? 그리고 여기에서 “옳은 결과”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을 의미합니까? 당신이 원하는 그 아이디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아이디어와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우리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조화시키려 한다면 우리 자신의 방법을 고집스럽게 밀어부치지 않아야 옳바른 결과를 얻게 되리라는 것이 거의 겸손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사고를 시도했지만 계속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토를 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긍정적 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으로 고통이 사라집니다. 저는 그러한 경우를 간증하는 편지들을 수 백장 받아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개인은 고통을 극복해서 고통이 그를 더 이상 지배하지 않고 그가 고통에 숙달해져서 긍정적인 사고가 다시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것은 고통이 더 이상 없는척 해서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전적으로 실제적인 사고입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것들을 보지만 그 부정적인 것에 머물러 그것을 배양하여 그것이 마음을 지배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부정적인 사고를 적절한 수준으로 붙잡아 놓고 긍정적인 사고가 크게 자라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사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평정과 힘을 갖도록 합니다.

쩌면 긍정적인 사고를 시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반박할 분이 계실겁니다. 죽음은 인간경험의 한 부분입니다. 긍정적인 사고가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들로 하여금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위대한 영혼들과 같이?? 용감하게, 당당하게 죽도록 도와줍니다.

복음서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위대한 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시고, 매장되고, 3일만에 죽음에서 살아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로 우리들은 우리의 죄에서 구원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것들을 믿으며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수동적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믿음으로 우리들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산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대한 장애물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너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에서 저기로 옮길 수 있으리라”

그것은 쉽게 믿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믿기 어려운 많은 사실들(진실)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것이 성공하지 못 한듯한 실례들을 얼마든지 들 수 있을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었이 실패고 누구가 실패한 것입니까? 그 이론 자체입니까? 긍정적인 사고의 원리입니까? 아니면 그 원리를 사용한 사람입니까? ?

빌이라고 하는 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빌은 새로운 경영진이 올 때까지는 회사에서 아주 좋은 직책에 있었습니다. 새로운 경영진들이 종종 그러듯이 이 경영진은 마치 어떤 특별한 경영원리를 가진듯이 그동안의 모든 경영원칙을 뒤집어 놓고는 추진해 나갔습니다. 새로운 경영진은 미묘한 용어를 구사하여 빌을 쫒아냈습니다.

이것은 빌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진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수렁에 빠진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화가 났습니다. 자신을 해고한 사람들에게, 친구들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가엽게도 자신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는 모든 것들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연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연민괴 비탄에 빠져 신세한탄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자포자기로 그의 마음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직책을 찾으려 하였지만 이때쯤엔 그에게 좋지 않고 역겨운 부정적인 분위기가 차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피하였습니다. 어느날 저녁 빌은 너무나 처참한 기분이 들어서 마음의 위로가 될 책이 혹시 있나해서 서재를 뒤지다가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제가 쓴 책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그때 빌이 뽑은 책이 바로 이책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그 책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에서는 그에게 그의 문제들을 주님의 손에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해고한 사람들에게 대한 분노의 마음을 씼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그에게 이 분명히 나쁜 상황가운데서 창조적인 선을 발견하도록? 노력하라고 하였으며 어딘가에는 그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빌은 이러한 원리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자신에게 적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친절하고 부드러워 졌으며 그의 생각하는 능력이 증가되었습니다. 그는 상냥해졌고 세련되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길을 가다가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빌에게 “빌, 너 좋아보이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하고 물었습니다. 빌은 “어, 해고당했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아주 좋아. 그것도 괜찮아.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실테니까. 그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있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화가 안난단 말이야?”하고 물었습니다. 빌은 “아니. 사람마다 자기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을테니까. 난 괜찮아.”라고 대답하자 “걱정이 안돼?” 그는 물었고 나는 ?“아니, 하나님이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리라고 믿고 있으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일 후에 빌은 이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회사에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월급이 자네가 지난번에 받던 자리만은 못하지만 가능성이 많은 자리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일해 볼 생각이 있나?”라고 물었습니다. 빌은 즉석에서 “그럼 일하고 말고, 내일 아침 사무실로 출근하도록 하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로운 직장에서 그는 누구에게도 친절하였으며 무척 사교적이었고 다른 어떤 직장에서 보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가 빌에 관하여 마지막 들은 이야기는 그는 일을 잘 할뿐 아니다, 훨씬 더 행복해 하였고 자신의 능력을 비로소 발견하였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저에게 하여준 말씀 가운데 하나는 “놀만, 만약 문이 네 앞에서 닫히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아라. 네가 열심히 찾아 보면 하나님이 다른 열린 문으로 너를 인도하려 하신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빌에게 긍정적인 사고가 효과를 냈는지 물어보십시요. 긍정적인 사고는 항상 작동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최악의 상황가운데서도 그것을 찾아보려고만?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한다면 주님의 도움으로? 그것을 당신의 생활가운데서 증명할 수 있을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큰 문제는 항상 그들을 막아버리는 커다란 빌딩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왜 그들이 무엇을 할수 없었는지 그 이유들을 이야기 하거나, 왜 이거나, 저것을 완수할 수 없엇는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겸손하고 이기적이 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의 은혜로 “너희는 능력을 받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사태가 당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면 너에게 반대하는 빌딩을 당장 중단하고 성령이 네 안에 거하도록 하십시요,

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으로 시카고에서 강연회를 했을 때 저를 찾아왔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오늘의 강연을 마치려고 합니다.

간 무례한 태도로 그는 저에게 “당신은 정말 소위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효과가 있다고생각하십니까? 정말로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맞 받아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저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가 좀 무례하고 버릇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쩐히 호감이 갔습니다.

는 그가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가서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글 쓰는 일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멍청이가 되었습니다. 전처럼 글을 쓸 수도 없구요. 그전처럼 글들이 잘 팔리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잘 안돼요.” 우리들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이 문제를 종교적인 각도에서 한번 짚어보는게 좋을듯 한데요 . . “라고 이야기 하자 그는 “아,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점에서는 문제가 없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는 잘 나가십니까?”라고 묻자 “아니요, 저는 교회에 자주 가지는 않습니다. 저는 목사가 맘에 안들어요. 그는 너무 딱딱해요”말했습니다. 나는 “그래요. 그러면 다른 일들로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그에게 “윤리생활은 어떻습니까?” 혹시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하는 일은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제 목사의 본색을 들어내시는군요”라고 말하면서 “제가 사업차 밀워키에 갈때마다 어떤 여자를 만났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 ‘총각이 아니신가요?”라고 묻자 그는 “총각이 아닙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물론 그건 잘못이지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에요. 제 삶이 아주 억망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더 이상 글을 쓰지못하는 것이 그때문이라고 저에게 말하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저는 “그것이 원인의 한 부분일 수 있지요. 조직적이고 통합적인 인격의 창조적인 능력을 흡수해 버리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증오와 후회와 비열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례하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투로 이야기 할 것입니다. 이미 그것은 ?당신의 투가 되어버렸으니까요.”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그때에야 아주 겸손하게 도와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우리는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서 밀워키에 있는 여인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그의 어깨를 팔로 감싸고 말했습니다. “모든 관계들을 바르게 유지하십시요.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고 확신합니다. 당신이 여전히 원고들을 파는데 계속 어려움이 있다고 하드라도 옳은것은 옳은것입니다. 비록 옳은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 않드라고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계속하십시요. 그것이 옳은 일이기에 그 자체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장기적으로 보아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

리는 긍정적인 사고의 능력을 이기적인 이득을 얻는데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비록 저쪽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를 듣는 마지막 도전에서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모든 과정을 마치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로서 용감하게 전진하는 우리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위엄있고, 위대하고 강력하게 살 수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적이고 강력한 마음에 조율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이 있을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생명이다.>

부활절 설교


부활절이 되면 우리들은 소위 인간의 영혼이 불멸이라고 하는 놀라운 생각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은 후에도 확실히 살런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성경은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산다면 당신은 그와 함께 영원히 산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육체적인 죽음이라고 알려진 행위를 통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 자신은 죽지 않을것입니다.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맞 대면하여 정복한 거대한 마지막 원수입니다. 성경의 가장 위대한 멧세지는 생명입니다. 그것은 대문자 생명(LIFE) 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아있겠다.”(요한 14:19)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 1:4) “”내가 온 것은 그들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한 10:10).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생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멧세지의 핵심입니다. 예수 시대의 사람들은 무덤에서 나와서 세계를 향하여 “그리스도가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속해 있으므로 살았습니다. 살아 나서 부활을 믿읍시다! 부활한 사람과 같이 행동하십시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활을 믿어왔습니다. 몇 년전 나는 아주 작은 시골 공동묘지에서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요, 아버지의 어머니의 시신을 매장하는 자리에 아버지 바로 옆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아주 측은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날 아버지는 무척 슬퍼하셨고 저 역시 슬펐습니다. 기다란 코트를 입은 나이 많은 시골교회 목사님은 무덤 옆에 서 있었습니다. 다부진 그의 얼굴은 무척 평화스러웠던 것으로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는 부활이다. 그리고 생명이다.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믿고 내 안에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영생의 말을 계속 반복하였습니다.

나는 소년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의 눈은 눈물로 보이지 않았고 나의 가슴은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지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논쟁이나, 설명, 입증의 여지 없이 나의 마음 속에 깊은 확신이 생기는 그런 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철학자 헨리 벌그송이 말했던 소위 직감이라고 하는 진리에의 정확한 길 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후 지금까지 그 진리를 가르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늙었거나, 젊었거나, 당신의 삶이 어떤 상황에 있던지 간에 이것 즉 “하나님의 대답은 죽음이 아니고 생명이다”라는 것을 당신의 의식 깊은 곳에 묻어 두고 당신의 무의식 속에, 당신의 영혼 그 속에 깊이 채워두시기 바랍니다.

이미 말했드시 우리는 죽을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육체적으로는 죽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통과하여야 할, 우리들이 무섭다고 생각하는 경험들을 이미 통과했습니다. 아무도 죽음의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실입니다. 우리들이 사랑하던 사람이 말없이 누워있는 것을 내려다 볼 때 거기에는 지금까지 가졌던 지상의 관계가 끝장을 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기 어렵고 참혹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신비롭고 역동적인 우주에서의 자연적인 과정의 한 부분을 너무 오래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삶에서 삶에로 이어지는 하나의 위대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 전 우리는 태중(胎中)의 아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데 있어서도 다음 세계에 관한한 우리들은 여전히 태중의 아기들입니다. 만일 아기가 아직 태어나지 않고 어머니의 심장아래 자리 잡고 있다면 어쩌면 “이곳이 따뜻하네, 누군가 나를 돌보아 주는가봐, 이곳은 안전하고 나는 이곳이 좋은데”라고 생각하며 말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너는 이곳에 그냥 있을 수 없어. 너는 다른 세상으로 가야돼”라고 말한다면 아기는 “나는 여기 그냥 있고 싶어. 나는 이곳이 좋아. 나는 이곳이 안전하고, 이곳이 어떤곳인줄 알아”라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들의 세상으로 나와야 할 때가 옵니다.

아기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기는 사랑스러운 팔과 부드러운 손에 안겨져서 요람에서 흔들거립니다. 친절하고 상량한 얼굴이 내려다 보고 있으며 아기는 그 얼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감탄하며 바라봅니다. 아기는 자신이 조망하는 세계의 왕입니다. 그리고 성장해 가면서 이곳에서의 삶이 좋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물론 아이는 그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어려움과 투쟁을 겪기도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은 그를 사랑합니다.

결국은 그도 늙어서 “당신은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는 “나는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한다. 나의 얼굴을 비추는 따스한 햇볕이 좋고 시원한 비도 좋아한다. 나는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들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는게 좋고 이미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으니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서는 죽고 다음 세상에서 태어납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인격과 우주의 법칙들이 너무나 변해 버려서 사람들이 폭력과 침울한 세상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이 왜 가당치도 않은 생각입니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죽게되어 사망의 골짜기을 조심스럽게 찾아다닐 때 그는 놀라서 “만약 이것이 죽음이라면 그것은 사는 것보다 쉽구나”라고 소리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드신 자연적인 과정 어느 하나라도 끔찍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그가 행하시는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하십니다. 어느날 저는 제가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인 헐버트 클락를 방문해 달라는 전화를 병원으로 부터 받았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건 의사는 “목사님이 클락씨와 절친한 친구로 알고 있는데 . 그분이 몇 시간 안에 세상을 떠날듯 합니다. 심방해 주시겠습니까?”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클락 씨가 전혀 반사신경이 없어서 그의 맥박이 거의 제로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그의 옆에 앉아서 기도하고 그리고는 나왔습니다. 클락씨는 의식을 잃은채 이틀 동안을 지냈습니다. 그리고나서 의사가 다시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놀랍습니다. 이 분이 회복이 될듯 합니다"고 말했습니다

후에 클락씨는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아주 멀리 가서 가장 아른다운 곳에 거의 다다렀는데 주위가 온통 빛으로 둘러쌓여 있었습니다.(이것은 가사상태를 체험한 사람들이 늘 하는 이야기다, 그들은 빛을 말한다.) 그리고 음악이 들려왔습니다(그들이 실제로 음악을 들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그리고 거기에는 언제나 음악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얼굴들이 나타나는데 행복한 얼굴들이었지만 누군지는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여하튼 그들은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에게 ‘내가 죽는구나’라고 말했고 그 다음에는 “아니야,나는 이미 죽었어’ 그런데 너무 멋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원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아니, 아니에요. 저는 돌아오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돌아오니 좋군요. 저는 다시 가고싶지는 않지만 다시 간다고 하드라도 두렵지는 않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때때로 나의 아버지가 죽음을 두려워 하였나? 아마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주위에서 아마도 아버지만큼 죽음에 저항했던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나한테 “놀만, 나는 백 살까지 살거야”라는 말을 종종 하였습니다. 그는 85세에 몇 차례의 스트로크 끝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마지막 몇 달 동안에는 더 이상 죽음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승리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와 같이 있었던 새 어머니는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그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거야?”하는 듯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 어머니는 솔직하게 “그래요 크리포드, 이제 끝이에요”라고 말하자 만족한듯한 미소가 그의 얼굴을 스쳐갔는데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하고 생각하는듯 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의사가 병실에서 나오면서 “이성의 빛이 내가 그의 눈을 감겨줄 때까지 그의 눈에서 빛나고 있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이성적인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합리적인 것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철학적이고, 학문적이었으며 무척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후 어느 날 저의 새 어머니가 저에게 “놀만, 내가 해줄 이야기가 있는데 나를 바보라고 생각지는 말아줘, 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어머니의 이야기 가운데 아직까지 바보같은 이야기는 없었는데요. . .”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새 어머니는 계속해서 “몇 일 전에 아버지가 나에게 온 듯 했어.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라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대답하기를 “물론이지요. 이 세계와 다음 세계의 경계선은 매우 좋은 상태에 있으니까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는 그의 말을 들은 것 같애. 그런데 그것이 이상했었어. 청각은 귀안에 있는듯 했는데 정확하게 옛날 아버지의 목소리의 억양 그대로였어.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육체적인 두뇌의 틈새에 매달여 있던 목소리의 억양들이 재생된 것인지 아니면 회복된 것인지?

그리고 어머니는 계속해서 “너의 아버지가 한 말은 ‘만약 내가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고 내가 얼마나 잘 지내는지를 당신에게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히 다시 죽겠다’고 말하면서 죽음에 대하여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더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다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말하던 투 그대로였습니다. 아버지는 말하자면 결론을 내리면서 꼼꼼하게 숙고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에서 아버지는 그것이 심각한 고통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혹심한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을 때 당신은 당신의 한 부분을 짤라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는 그점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우리가 최후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우리들을 받아들이실 때 전과 똑같은 사랑과 친절과 선의가 넘쳐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을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결합 시키고 그들과의 기쁨과 평화 가운데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그곳의 다른 쪽에 우리들을 데려가십니다

나는 이것을 자신있게 펼쳐 보일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나, 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본 근거에 바탕해서, 우리를 결코 잘못 인도하지 않는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 자신의 본성과 인격에 기초해서, 인간성의 위대함에 근거해서, 그리고 우주의 논리적인 구성에 맞추어 보아서- 이것이 옳바른 것임을 압니다.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안에 산다면, 여러분이 옳바르게 산다면,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르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그의 원리에 충실한다면 당신은 영원한 별무리들이 영원한 하늘에서 매일 밤 빛나는 별들과 같이 확실하게 아름다움과 빛으로 넘치는 곳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절 시즌에 밖으로 나아가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을 위한 열정

당신은 열정적인 사람입니까? 당신은 매사에 너무 열심이어서 어쩌면 무언가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 마저도 싫어 하지는 않습니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아침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가 힘들지는 않습니까?이 순간에도 당신의 일자리로 가고 싶어 안달이지는 않습니까? 사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져야할 자세입니다. 삶은 연속적으로 흥미로워야 합니다. 저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열정을 갖도록 운명지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이 말을 할 때 저는 인간은 그의 삶 동안에 언제나 연속적인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라고 믿습니다. 저는 인간은 모든 것이 달콤하고 밝기만하다고 거짓된 가정속에서 사는 물러빠지고 지나친 낙천주의자며, 피상적이고 실없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 실존의 어려움과, 슬픔과, 문제들을 인식해야 하며 그에 대한 동정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고무하고 돕는 일에 깊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은 삶에 대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역동적이고 살아 넘치는 기쁨과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는 슬픔의 사람이었고 비애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삶에 관하여, 삶에서의 불의와, 불평등과 어려움 들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멧세지는 사람들을 영원히 새롭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운타운 남쪽의 조그만 주유소에 차를 세웠는데, 길 건너에 “당신의 운명을 보장하는 운명(점)집”이라는 간판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유원에게 그 집에 관해 묻자 주유원은 그곳에는 늙은 노파가 있는데 이 근처에서는 유명인사라며 “그녀가 접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신바람이 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실의에 빠진듯 했지만 점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듯한 이 여행자는 길을 건너가서 복채를 냈습니다. “손을 내밀어 보시오, 하니”라는 말에 그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늙은 노파는 손금을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하니, 당신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돈을 내고 들은 것은 이 한마디 뿐이었습니다. 속았다는 기분으로 차의 발동을 걸고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노파의 한 마디가 계속 그의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계속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점점 이 생기찬 생각이 그의 우울증 속으로 스며 들어와서 새로운 희망과 낙관주의를 갖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삶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들의 눈을 보면 그들의 정신이 흐릿하고, 생기가 없으며, 희망이 없고, 무관심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은 이미 “끝났다”, 그래서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그들의 삶에서 남아있는 영광이란 거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당신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던간에, ,그들이 누구이든간에, 그들은 더 좋아질 수 있고 무한히 향상될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는 계시록에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란 훌륭한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삶 가운데는 퇴보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늙어갑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사람들의 정신에는 초라함이 오게 마련입니다. 교회와의 접촉을 끊음으로 이러한 현상이 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로 돌아오십시요. 성경으로 돌아오십시요.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하신 말씀을 믿으십시요. 그리하면 그날 하루의 일 때문에 당신의 마음 속에 스릴을 느끼면서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활기찬 아침을 맞이할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이것이 가능할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할 것은 당신의 생각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올바르고 영적인 생각의 효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침울하고 우울하며 지쳐 있고 낙담과 불안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삶이 어떤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마도 자신이 당신의 생각을 다스릴 수 없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그렇치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통치하는 자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훈련하고 그에 첨가되는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서 당신이 생각하고저 원하는 생각의 종류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매일 당신을 우울하게 하는 생각들을 빼내버리십시요. 만약에 당신의 배우자가 병에 걸렸다면 그와 함께 앉아서 그날 당신이 겪을 긴장감, 좌절감 그리고 힘든 일들을 다 털어놓으십시요. 아니면 혼자 앉아서 하든지. 거대한 사업체를 이끌었던 한 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매일 두 번씩, 한번은 점심 식사후에, 다른 한 번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좌절감과 , 실망들을 뽑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오랫동안 빈상태를 유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건강하지 못한것들을 청소한 다음에는 거기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갖기를 원하는 생각들로 곧 채워야 합니다. 스코트랜드의 부흥사였던 헨리 드로몬드는 만약에 한 사람이 매일 1분씩만 예수를 생각한다면 그의 하루는 완전하 달라질 것이라는 말로 설명하였습니다. 성경을 집어 들고 그리스도에 관한 기사들을 큰 소리로 읽어보십시요. 하나님의 모습을 당신의 마음에 그려 보십시요. 하나님에 관해 생각하십시요. 바꾸어 말하자면 당신의 생각을 영적으로 재생하십시요.그리고 당신의 문제들이 청소되는 것을 지켜보십시요.

몇 년전에 저를 찾아왔던 한 부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개인상담에 관한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여인이 늘어놓는 문제들에 압도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여인에게 솔직하게 “저는 당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런지를 당신에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5분 동안만 가만히 앉아있다가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십시다.”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여인의 문제들에 관해서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여인에게 제가 소년으로 성장하던 오하이오의 옛 교회에 관해 이야기 했습니다. 거기에는 설교제단 위에 커다란 눈을 그려서 붙여놓았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눈이라고들 했습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위해 그랬던것 같습니다. 한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하나님의 눈이 너를 내려다 보고 있단다”라고 말하곤 했지요. 저는 그 여인에게 "하나님을 생각할 때면 저는 아직도 그 눈이 보인답니다"라고 이야기 하였지요.

그랫더니 그 여인은 자기가 하나님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면서 매우 고무적인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여인은 금방 “그런데요, 저는 이제 저의 문제들을 대처해 나갈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 여인은 갑자기 낙관적이 되었을까요? 왜 그 여인은 기분이 좋아졌을까요? 그것은 5분 동안에 그 여인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향권 아래로 돌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당신의 마음에 모셨을 때 당신은 하나님의 두뇌를 당신의 두뇌에 모신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의 문제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옛 명구가운데 “우리는 프라토의 두뇌속에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생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두뇌속에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생각하십시요. 그러므로 먼저 우울증을 뽑아내는 훈련을 하시고 나서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십시요.

열정을 계속 유지하는데는 다른 도움이 또 필요합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생동력 있는 철학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정신적인 습관을 개조하여 자신에 관하여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십시요. 대신에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하십시요. 아침에는 오늘도 하나님을 위한 놀라운 일들을 하게 되었다는 기분으로 일어나십시요. 저는 어떤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공부도 많이 하지 못했지만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데 호텔을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즐거움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모든 직원들-벨맨, 웨이터, 방치우는 사람 등- 이 즐거운듯 했습니다. 어느날 나는 그와 함께 걷다가 ‘철학자의 산책로’라고 적혀 있는 길을 따라 걷게되었습니다.

그는 “저는 이길 산책하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시카고에 있는 커다란 호텔의 주방에서 일하던 가난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교육도 별로 받지 못했지요. 그렇지만 저는 말쿠스 아렐리우스, 윌리암 제임스, 에머슨, 소크라테스, 프라토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저서들을 읽으며 배웠지요. 호텔경영에는 정말 짜증스러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만약 내가 나의 마음을 이들 위대한 분들의 가르침과 사상으로 채운다면 나는 내 일을 잘 할 수 있고 그것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지요.”

몇 일 후에 한 손님이 욕조의 물이 넘치게 하는 바람에 로비의 아름다운 천정으로 물이 흘러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철학자의 산책로에서 서성대는 매네저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금 물이 넘쳐 흐르게 한 레이디를 만나서 이야기 하려고 제 자신을 추스리는 중입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껄껄 웃으면서 그 사람은 자신도 닷새에 한 번 정도는 자신이 당하는 어려움 때문에 철학자의 산책로를 걷는다고 하였습니다. 천정을 말리기 위해 매일밤 그들은 받침대를 만들었다가 아침에는 뜯어내는 작업을 강행한 끝에 일주일만에 페인트칠까지 잘 마쳤습니다.

그 여인은 호텔을 떠나면서 자기는 어디에서도 그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다면서 내년에 다시 와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고양함으로 골치아픈 일이 산적한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개발하면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동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명예로운 것은 강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역동적인 사상을 훈련하면 생명의 영예가 사라질 필요가 없다고 강론하는 것입니다.

열정을 유지하는데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신기해서 눈이 동그래진 어린 아이가 열정이 없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영광이 사라지는 때가 옵니다. 그리고 꿈은 사라집니다. 영국의 작가요 철학가인 알더리 헉슬리는 “천재의 핵심은 어린아이의 정신을 늙어서까지 보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알려드리지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께로 나아가 그의 십자가 발아래 엎드려 그에게 말씀하십시요. “저는 현재 내가 살아온 방법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 앞에 지금까지 귀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습니다. 모든 것들을 포기하겠습니다. 당신과 논쟁하지도 않겠습니다. 이론을 따지지도 않겠습니다. 변명하지도 않겠습니다. 여기에 제가 있습니다. 제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고 저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당신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이제 여러분은 “그렇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들이 나쁘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무척 예의 바르게 살아왔습니다”라고 항의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당신의 태도라면 당신은 다시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절대적으로 신실하기를 원하며 당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당신에게 주실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거듭남을 통하여 당신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옛 것들은 지나가 버립니다. 당신은 새롭게 살아날 것입니다. 당신의 두뇌가, 당신의 심장이, 당신의 붉은 혈관이, 당신의 근육이 그리고 당신의 존재 전체가 새로이 살아 날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죽을 필요도, 따분해 할 필요도, 무력해 질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의 삶은 열정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 있을 것입니다.(김상신 역)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8)

새 날, 새 해, 새로운 출발

새 해는 항상 새로운 시작을 하는 때로 보여집니다-그러나 사실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이 사실이 어제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이나 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이러한 주장은 그저 희망적인 생각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확고하고 실제적인 권위에 근거한 것입니다. 시편 90편 14절에 의하면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는 흥미롭고, 훌륭한, 긍정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태가 나빠져서 당신의 삶이 엉망이 되었다 하드라도 하나님은 항상 당신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밤을 생각해 보십시요. 왜 우리는 밤을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천체의 움직임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뒤에 있는 의미로 왜 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천체들 보다는 영원한 영혼들이 거하고 있는 인간의 몸체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밤을 만드시고 어둠으로 빛을 가리기 위해서 그것을 낮과 구별하셨습니다. 밤은 낮을 가리는 커튼을 내리우고 그것을 과거로 돌립니다. 기나긴 밤은 당신이 (어제를) 잊어버릴 수있는 기회를 줍니다. ??

하나님께서는 약 8시간의 밤을 주셔서 어제를 과거로 사라지게 하시고 준비된 사람에게 오늘을 전적인 새로움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준비된 사람이란 “아침에 한결같은 주의 사랑에 만족하여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노래할 수 있는자”를 말합니다.

얼마전 저는 LA에서 열린 전국주지자 회의에서 강사로 참석하는 기쁨과 특권을 가졌습니다. 그곳에는 거의 모든 50개주의 지사들과 두 개의 영토 지사들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것은 조찬기도회였었는데 은밀하고 영적인 분위기의 모임이었습니다. 주지사들과 그 부인들 외에는 아무도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주지자회의에서 이런 모임을 가져보기는 처음이라고 하는데 미국의 모든 주들을 통치하는 책임을 진 이들 지도자들과 한방에서 같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아주 이상한 질문을 저에게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그의 질문으로 보아 분명 그는 철학자인듯 했습니다. ?

저는 “보세요, 주 지사님. 저에게 던져주신 질문은 거대한 철학적인 질문같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소크라테스가 종종 그리고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방법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그 질문을 한 분에게 되돌려 준 것입니다. “지사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놀랍게도 그는 “제 생각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리들이 우리들의 어제(과거)에서 떠나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에 저는 이 분이 수많은 개인적인 갈등 등을 견디어내고 사는동안에 심각한 위기들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으며 3선 주지사로서 위대한 주지사가운데 한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제는 우리에게 집착합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실패를 한다든지 무엇이 잘못되면 우리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우리의 어제에서 정신적으로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사전에서 ‘어제’란 단어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막 지나가 버린 날”이라고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어제는 불쾌한 기억으로, 어제 일어났던 패배주의적 사건으로 우리가 다시 끌어들이지 않는한 다시 돌아오지 않을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어제를 지나가 버리셨으며 더 이상 관심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어제를 우리 마음 속에 품고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불쾌한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십시다. 경기에 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슬픈 일이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고 크게 실망할 일이 생겼다고 합시다. 내일 아침,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은 어제를 잊어버리고 어제들로부터 걸어나오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그것들이 말로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어떠한 영적인 승리도 실제보다는 쉬운듯이 들리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고된 훈련과 깊은 영적 전념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제 생각에는 미국이 배출한 가장 현명한 사람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는 무엇이 가장 가치있는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왈든 호수라고 하는 좁은 공간에서 삶의 의미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기 전에 소로우는 자신에게 자신의 말로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소식들”을 이야기 합니다.

하루를 자신에게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소식들을 이야기 하면서 시작하다니!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생기있게 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밝게해 줄런지를 생각해 보십시요! 그래서 묻겠습니다. 아침에 어떤 종류의 뉴스를 당신은 자신이나 이웃에게 처음 전하고 싶습니까? 그것은 좋은 소식입니까?

침대에 누워서 당신은 자신에게 “오늘 아침에도 살아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좋은 소식입니다. 당신은 또한 “아침에 입맛이 이렇게 좋다니! 그리고 오늘도 나의 삶을 위한 하루가 있다니.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고, 내가 열심히 일할 일자리가 있다. 나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을 알고 있으며 우리 나라가 , 위대한 우리 나라가 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 위에다가 진정으로 좋은 소식인, 지금까지의 소식중 최고의 좋은소식을 더 보탠다면 그것이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소식이란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주시요 구속자이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하나님의 아들이 당신과 같이 하시며 하루종일 당신과 같이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저는 하루를 자신에게 이 좋은 소식을 이야기하며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좋은날들을 갖게되리라고 보장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는 나쁜 소식도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나쁜소식들을 접하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이지 않은 삶이란 없는법이니까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자신에게 매일 아침 좋은소식을 이야기하면? 당신은 나쁜소식들을 창조적으로 다룰수 있는 능력을 얻게될 것입니다.

당신이 바보같이 행동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이 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합시다. 당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합시다. 당신이 무언가를 부셔버렸다고 상상합시다. 당신이 낙담하는 일이 생겼다고 합시다. 괜찮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일들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바로잡기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요 그리고 거기에서 떠나십시요.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인 것 같이 어제에서 떠나십시요. 그것이 바로 매일 아침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삶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옛사람으로 있다면 당신은 매일 옛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당신이 새사람이 되지않고는 새로운 삶을 갖는게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수정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하면, 만약 당신이 고쳐져서 새사람이되면 당신의 내일은 완전히 다르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편지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주리주의 컬럼비아에 사는 한 여인에게서 온 편지인데 그녀는 제가 쓴 <긍정적 사고의 능력>이라는 책을 읽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된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기억하는한 저는 열등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패배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저는 목사님이 책에서 가르쳐주신 원리를 실천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계속해서 “저는 전에는 신앙의 실용적인 유용성을 알지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신앙을 실천하는 법을 발견하였으며 그 결과 저는 신나는 관점을 가졌습니다. 옛날의 원수들을 새로운 친구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나 자신외에는 아무도 나에게 맞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지난밤, 저는 재미로 세탁소에서 조그마한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세탁소에는 재밋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첫째로 저는 세탁소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전의 마음을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세탁은 그저 해야만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니 상항에 따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랫더니 제 얼굴에 웃음이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었드니 그들도 저에게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사용하던 세탁기 하나가 작동을 멈추었을 때는 한 여인이 들어와서 세탁기를 고치는데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캔디머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애를 먹는것을 보고 어쩌면 동전이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가지고 있던 다른 동전과 바꿔 주었는데도 여전히 머신은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내가 다른 일을 하는동안 내가 마시다 놓은 음료수 빈깡통을 나 대신 쓰레기 통에 갖다버렸습니다. (보시다시피? 한 행동은 다른 행동을 유발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 젊은 아빠가 9달 된 딸아이를 세탁소에서 돌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집에 오는길에 불쾌한 운전자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사고날 가능성들을 차단했습니다. 저는 기분이 무척 좋아진 것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습니다. “

“그 여인은 “저는 나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잊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그들에게 어떠한 친절이라도 베풀고저하는 바람으로 채웠습니다. 저는 드디어 나의 딱딱한 껍대기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저는 한때 제가 가지고 있던 자기연민과 자기혐오 대신 제가 지금 느끼는 행복을 적절히 표현할 수가 없군요.

이 여인은 그녀의 어제에서 걸어나왔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격이 고쳐지면 새로운 인격이 될 수 있다는 원리를 적용하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그녀의 삶이 변화되었으며 새로이 발견한 그녀의 감사가운데서 그 여인은 “당신의 끝없는 사랑으로 아침에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가 모든 날들에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소서”라고 말하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공식입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당신은 할 수 있으며 매일 아침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PLUS-The Power of Faith December/January 2019에서 ?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7)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받을것인가?

당신의 손안에 당신 앞으로 되어있는 1만 달라짜리 수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 손에 1만 달러짜리 수표가 있다니, 그것이야말로 매력적인 가정이 아닙니까? 상상이라고 치고 다같이 당신들 앞으로 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만들어 보십시다. 물론 그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싸인을 하고 당신이 믿을만한 은행에서 발행한 것이어야 되 겠지요.

이제 당신이 그런 수표를 갖게되어 무척 기뻐서 그것을 현금으로 바꾸는대신 안전한 장소를 찾아 그것을 보관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당신은 가끔 그것을 꺼내어 경외의 마음으로 보면서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얼마나 멋있어!” 그리고는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들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그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 에이,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있어?”라고 당신은 말하시겠지요?
그런데 그 대답은 “내가 그런 사람이다”는 것입니다. 저는 감히 여러분도 그럴 가능성이 많고 그와 유사한 바보짓을 계속해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안되는데”라고 말하실 것입니다.

이제 분명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이라고 알려진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싸인하시고 우주의 가장 큰 은행이 발행한 자기 앞 수표의 수혜자로 여러분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 책은 당신과 저에게 우리들의 고통과 병 , 슬픔과 패배, 죄절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훌륭한 것들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삶의 문제들에 대한 모든 해답들이 그 안에 있는데 제가 생각컨데 성경에 익숙한 사람들은 결코 많지 않으며 성경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러한 축복들을 우리에게 가지라고 주셨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받느냐? 우리가 그것을 현금으로 바꾸느냐? 우리가 수표에 적혀져 있는 무한한 부(富)를 받느냐?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어느날 태양이 내려쬐는 한 낮에 예수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잠시 멈추셨습니다. 그가 그곳에 서있는 동안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이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서로 불신하고 있었으며 서로 접촉하는 것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것들을 초월한 분이셨기 때문에 그 여인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넷다는데 놀랐습니다. 예수는 예의와 존경심을 갖춘 목소리로 그 여인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놀라는 표정을 짓자 예수는 그 여인에게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당신에게 물을 청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생수를 요구했을 것이고 그는 당신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 4장10)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은 이 여인이 네 남편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남편이 아닌 남자와 살면서 그녀의 삶이 메마르고 무미건조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말하노니 내가 주는 물은 그들 안에서 샘물이 되어 영원한 생명이 솟아나게 하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한 것이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입니다. 시시한 삶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입니다. 그것은 가지라고 당신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당신은 수표를 가졌습니다. 당신이 할 일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일뿐입니다. 그의 제안에 손을 내밀어 믿고 받아서 절차를 밟으면 당신은 그것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들에게 불어닥칠 수 있는 거대한 충격의 하나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귀중한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는데 대해 생각해 보십시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과 심장을 예리한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경험으로 견디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독교 신앙에는 슬픔에 대한 해독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발견했으리라고 믿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수표를 현찰로 바꾼다면 이러한 끔찍한 경험들도 견뎌낼 수 있는 거대한 힘을 보유하게 됩니다.

저는 젊은 목사로 저의 생애에서 두 번째로 장례식을 주례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브루크린에서였습니다. 여섯살 밖에 안된 어린 소녀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관에는 핑크 리본의 하얀옷을 입은 그 여아의 시체와 여아의 사진이 누워있었습니다. 마치 어느 순간엔가 소녀가 일어나 앉으면서 “마미”, “대디”하고 부를 것만 같았습니다.

나 자신은 아직 젊었기 때문에 제가 부성(父性)을 느끼기에는 아직 멀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은 저의 마음을 비탄에 잠기게 했습니다. 젊은 부모에게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무척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서서 어린 아이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아주 이상한 짓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아이의 부모님이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아이 어머니의 손이 남편의 손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쪽으로 가서 나의 팔로 그들을 감싸 앉고 말했습니다. “두 분께서는 이 어린 딸을 사랑하셨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아이를 사랑했던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아이를 여러분과 똑같이 사랑하시며 그의 팔로 이 아이를 감싸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그분의 사랑에 맡기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저는 저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보는 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나중에 그 순간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저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거대한 아버지의 팔이 자신들을 감싸안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 사람(아버지)을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랑에 의존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준 것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받는 방법은 그것이 있다는 것을 믿고 당신의 필요에 맞춰 이용하는 것입니다.

기억해야할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을 주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로 시작합니다. 무슨말입니까? 당신의 생각을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같이하지 말라는 말은 그들은 진리의 길에서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의 생각을 따르라는 것은 그들은 하나님 과 주피수를 맞추고 있기때문입니다.

이제 계속해서 시편을 들어보십시다. 우리는 사악한 자들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조롱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겠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싶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착한 삶을 사십시요. 그러면 당신은 번영할 것입니다. 그말은 당신이 반드시 부자가 되고, 먹을 것이 풍성하며 집에 자동차가 네 대나 가질수 있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삶은 보람있는 삶이 될것이며 모든 일들이 형통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악한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다음 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악한 자들은 항상 돌아올 수는 있지만 돌아오기 까지는 항상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대로 가지 않으면 어쩌면 당신은 사악한 자들의 길에서 나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조롱하는 자들의 길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잘못된 삶을 산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잘못을 가져오리라는 것 밖에 달리 기대할 것이 무엇입니까? 잘못은 잘못을 부를뿐입니다. 비슷한 것들은 비슷한 것끼리 모입니다. 만일 당신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당신은 자신에게 두려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의(義)로 채워져 있으면 당신은 의를 불러오고 있는것입니다. 의로운 삶은 가장 중요한 축복의 가치를 증가시키는 삶입니다. 착한 삶에 의존하면 당신의 삶의 하루하루가 당신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당신은 힘과 이해와 그리고 슬픔과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철학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성경에서 수많은 선을 뽑아낼 수 있으므로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어려움 없이 번영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책에서 생명을 추출해 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입니까? 생명!생기, 능력, 열정, 열성 등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열성이 쇠약해 진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종종 우리는 65세밖에 안됐는데 완전히 체념한듯 곧 65세란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글세, 당신은 내가 늙었다는 것을 알지 않아? 늙어간다니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그러면서 늙어가는 것에 슬픔을 느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나이 드는 것은 슬픈 것이 아니라 안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꺼내 쓸 수 있는 커다란 영적인 은행잔고가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늙거나, 피곤하거나, 걱정하거나 실망하고 냉소적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은 계속되고 있으며 당신의 때는 계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계산하는 것과 늙어가는 것은 다릅니다. 언제가 늙은때인지 아십니까? 알려드리지요. 성경의 전도서에 보면 12장 5절에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 할 것이며 길에서 놀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서는 얼마나 많은 날들이나, 해들을 살았느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이 점심을 사겠다고 해서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해가 쨍쨍 나는 날이었는데 식탁에 앉자마자 초대한 분이 “밖의 푸른 하늘을 보세요. 저 햇빛이 커튼을 거쳐서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세요! 저는 삶을 사랑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는 “하워드, 당신은 무척 놀라운 분이시군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그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분명히 저의 삶을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무례한 질문인줄은 알지만 정말 궁금해서 “도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제 실제 나이가 궁금하다면 저는 75세입니다.”

저는 그를 쳐다보면서 “만약 제가 당신이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저는 당신 말을 믿지 안았을 겁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확인해 볼까요? 여하튼 75세면 어떻게 보여야 되는거지요? 저는 하나님을 발견했을 때 삶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몸(시스템)에 넣을때 우리는 생명도 우리 몸에 넣는 거지요”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신앙을 그렇게 설명하는 것을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분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의 눈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으며 그의 지적인 힘과 이해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과 같이 있기때문에 느껴지는 행복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어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수표를 현금으로 찾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 결론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충만하고 풍성하고 아름다움이신 분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소유하는 방법입니다.

*Plus-The Power of Faith(October/November)에서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6)

어떻게 예수를 당신의 최고 친구로 만들 수 있을까?

1. 예수님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려 한다면 첫번째 단계가 그 분에 관해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에 관해 아는 것은 즐거운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인물이요, 지상을 활보했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분이시며, 인류 역사가운데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우리 가운데서 존재한 분들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없는 성품을 가진 분이십니다.

우리 가운데서 사셨고 우리와 같이 걸으셨던 분인 예수를 알려고 하는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나는 그들이 예수께로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몇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께로 향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이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전적인 이유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다”(요한복음 3:16)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께서는 컴퓨터나 텔레비젼, 비행기나 또는 폭탄도 보신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늘날 그는 우리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며 그의 멧세지는 그가 살아계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진리입니다. 그 멧세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개개인은 컴퓨터나 텔레비젼이나 비행기나 폭탄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개개인들을 사랑하시고 심지어는 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로 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들의 인간경험가운데서 예수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여러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은 전적으로 훌륭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죄를 짓지 말고, 심술 굳은짓 하지 말며 복수하지 말고 ,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겁쟁이가 되지 말라고 . 예수께서는 그런 것들은 우리가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이 아니니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당신이 마땅히 되어야 할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패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가는 세 번째 이유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의 삶가운데서 부딪치는 어떤 비극이나, 어려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문제들에 직면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나 몇가지 기본적인 인간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께로 향하십시요. 그분께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실것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되면 거기에는 예수를 아는데서 오는 절대적인 힘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피상적으로만 따르기 때문에 피상적인 결과만을 얻게됩니다. 그러나그와의 깊은 관계에 들어가면 엄청난 힘이 가능해집니다.

한번은 제가 많은 교육자들 앞에서 연설을 한 다음 한 젊은이가 찾아와서 악수를 하면서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감사하지요?”하고 묻자 “박사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고등학교 교장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했는데요? 그리고 어디에서였던가요?”라고 묻자

그는 “오래전이지요. 제가 월남전에 출전해서 모래주머니로 둘러쌓인 전방 진지에 주둔하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박사님께서 우리를 방문하셨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기억하다 마다요.”

”그래요. 그때 부대원들을 다 모아놓고 뉴욕에서 오신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특사로 오셨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베트남으로 가기 전에 저는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저의 교수님은 저에게 능력이 없다고 하시면서 ‘D’급 이상의 학생은 될 수 없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3학년을 마친후 퇴학을 했습니다.”

“박사님께서 베트남의 저의 부대에 오셨던 날, 저는 무척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연에 참석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참석하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모래주머니 위로 나타나시더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사님은 우리들이 유대인인지, 개신교도인지, 아니면 캐톨릭인지,흑인인지 백인인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듯 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각자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기억이 나세요?”

“그래요, 저는 그곳에서의 미국의 젊은이들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거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멀리서 폭탄터지는 소리를 들었지요.”

“맞습니다. 그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 하실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저는 저의 삶을 그분에게 바쳤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나에게는 미래가 있다. 나는 ‘D’급 학생이 아니다'.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대학에 돌아가 졸업하였지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커다란 고등학교의 교장입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하는지 아세요? 저는 저의 학생들에게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위대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그들이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 앞에 서있는 이 사람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나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 저는 왜 교회들이 많은 다른 이야기들을 중지하고 예수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새롭게 시도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해답입니다.

*<How To Make Jesus Your Best Friend By Norman Vincent Pearle(Guidepost Outreach Publication)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5)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비결

우리들에게는 에너지와 활력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비결이 있습니다. 나이기 들어서도 불굴의 에너지와 인상적인 활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예기치 못한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활력이 넘치는 삶이란 우선 오래 살되 활력과 에너지와 열정과 정열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자신이 사라져 버리고서는 경건하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의도하신 방법이야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내가 만약 증오심을 없애고, 걱정과 긴장감을 줄이며 자신을 잊고 영적인 생활을 하는 등의 원칙을 잘 활용하면 나의 삶은 분명히 증진되고 수명도 연장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저의 친구 크리스티(Howard Chandler Christy)는 위대한 미국인이며 예술가로서 놀라운 개성과 위대한 영혼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는 한 겨울에도 코트나 모자 없이 돌아다녀서 그의 백발의 머리는 그의 이웃 누구에게나 잘 알려졌습니다. 그의 건강한 얼굴과 웃음이 가득한 얼굴은 항상 번들거렸습니다

그는 거의 죽는날까지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80세에 어떻게 그러한 활력과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거야 간단하지요.“라고 대답하면서 “저는 제가 하나님의 어린애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에게 건강, 활력, 행복, 웰빙 등의 놀라운 축복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하나님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페인팅에 사용하는 나의 마음과 손을 통해 나에게 부어주실뿐 아니라 나의 몸과 영혼에 채워주심을 확인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음의 성경구절을 들려주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편 31절) 여기에는 어려운 말 없이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쪼개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주님을 기다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기다린다”라는 단어는 천천히 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박자(pace), 우리가 가는 속도(tempo) 때문에 우리의 에너지를 파괴해 버립니다.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속도, 하나님의 박자에 맞추어야 합니다. 당신의 삶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삶의 속도에 맞추십시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한 속도로 가고 하나님은 다른 속도로 간다면 당신은 찢어져버릴 것입니다.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가 “하나님의 방아간은 천천히 갈지만 아주 조그맣게 간다”고 했드시 우리들은 하나님의 리듬에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친구 한 사람이 최근에 그녀의 현명한 나이 많은 아버지에 관하여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오늘날과는 무척 다른 옛날의 교제하는(구애하는) 방법에 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옛날에는 젊은 남자가 저녁에 구애하러 와서 사랑하는 여자와 응접실에 앉았지. 할아버지 시계가 톡탁거리면서 시간이 지나가면 시계추의 톡탁거리는 소리가 마치 “시간은 많이 있어, 시간은 많이 있어”라고 말하는듯 했어. “ 그는 계속해서 그런데 요즈음 시계는 너무 빨리 가. “일을 시작할 때야, 일을 시작할 때야. 일을 시작할 때야” 더한 것은 그들이 계속해서 흥얼거린다는거야.

모든것들이 속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항상 피곤한 이유입니다. 여하튼 당신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에게 시간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 한가지 방법은 어디엔가 가서 혼자 있는것입니다. 잔디밭에 누워있든지, 땅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당신의 귀를 땅위에 대고, 당신은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을겁니다. 당신은 자연은 우리들의 복잡한 거리에서는 듣기 힘든 분명한 속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니면 오래된 기구인 교회에 가 보십시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찬송가를 불러보세요. 당신을 옳바른 속도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이 문제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항상 피곤한 사람들은 자신들 이외에는 특별한 관심사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면 동료에게는 관심이 없게될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피상적인 것 이외에는 전쟁이나 평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고 그와 관계있는 사람은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유감이지만 왜 그에 신경을 쓰는가? 평화를 위해 신경을 쓴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비현실적이고 이론적인 것으로만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 선거에 누가 당선되든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누가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정산적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픈것만 생각하고 자신에게 닥쳐오는 좋지 못한 것들만 의식합니다.. 그런사람들은 자신을 사라지게(소멸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주님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 있는것들에 관심을 가진다면, 어떤것이든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가운데 그 무엇보다 열심히 그 일에 몰두하여 일한다면 당신은 에너지로 넘쳐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너무 일을 많이 하기때문에 에너지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무언가 자신의 밖에서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보다 많은 에너지들이 당신에게 되돌아 올 것입니다.

나는 그날 여러차례 연설을 한 한 하원의원과의 대화를 기억합니다. 나는 “의원님, 그렇게 여러 차례 연설을 하시고도 어떻게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절대적으로 내가 한 말들을 모두 믿기 때눈이지요.”

보셨지요? 그는 무엇에 대해 불이 붙어있었습니다. 피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무엇에 관해 관심을 가지십시요. 무언가에 전적으로 사로잡히십시요. 그것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던지십시요. 자신을 던져버리고 자신을 잊어버리십시오. 다른 사람이 되어서 무언가를 하십시요.

나 역시 모든 사람들은 때때로 우리들이 젊은시절에 생기로 가득차게 하였던 영광스러운 이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번은 제가 뉴욕주의 시라큐스에서 강연약속을 하였는데 그날이 저의 결혼 34주년 기념일과 우연히 일치했습니다. 시라큐스는 아내 루스와 제가 결혼한 곳입니다. 우리가 그곳으로 출발하기 전 작은 딸애 엘리자베스가 “대디,시라큐스에 가시거든 결혼식한 교회에 찾아가셔서 무언가 생각해 보시는게 어때요?”라고 말했습니다.

제 아내도 나와 함께 그것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해서 강연을 한 다음날 우리는 만났습니다. 결혼기념일날 아침 우리는 우리가 결혼식을 올린 시라큐스에 있는 대학감리교회에 갔습니다. 그곳은 내가 항상 기억하려는 곳이었습니다.

내가 처음 나의 아내를 만났을 때 나는 이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잘 그날을 기억했겠습니까? 나는 그날 예배후에 위원회 모임을 주재하였는데 문이 열렸고 한 발랄한 소녀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다른것들을 생각해야 했었는데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이 여자는 내 여자야”하는 말을 나 자신에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와 내가 우리 결혼기념일에 이 교회에 들어섰을 때 그곳에는 다른사람은 없었고 올개니스트만 있었는데 그가 앉아있는 자리에서는 우리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루스에게 “루스, 저 뒤로 가서 다시 한번 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그대로 했습니다. 여러분들, 저를 믿으시지요. 저 역시 모든 것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들은 옛날 우리가 같이 무릎을 꿇었던 제단 바로 앞에 있는 좌석에 앉았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교회당이었습니다. 벽들은 거의 모두가 스테인그라스 창문으로 되어있았습니다. 거기에는 높이 솟은 기둥이 아치형 천정에까지 솟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앉아 기도하고 아주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루스가 “이 통로를 같이 걸어나가 볼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운데 통로를 걸어나오면서 남편과 아내라는 주례자의 선언을 듣고 교회를 걸어나올때에 느꼈던 감회를 기억해 보았습니다. 그날 교회는 꽉 찼었습니다. 그 교회당에 그렇게 많은 하객들이 모인것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다음에 루스는 그녀가 목사의 부인으로 늘 앉았던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나는 설교대에 올라가서 밑에 앉아있는 아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34년 전에 가졌던 꿈과 이상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대로 때때로 피로를 느꼈든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강단에 다시 서서 저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러한 꿈과, 이상과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여주세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았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저의 존경과 사랑과 헌신을 절대로 잃지않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길이요 영원한 생명이심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그리고는 우리는 교회를 나와서 차를 타고 뉴욕주의 고속도로를 통해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는 길에 저는 아내에게 “기분이 어땠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전과 같이 눈을 반짝이며 “미래가 경이로워 졌어요(환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말들을 반복해 보았습니다. 나는 다시 생기가 솟아나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이상을 단단히 붙드십시요.그리고 당신이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시고 당신이 필요한 모든 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것들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으십시요. 당신이 활력이 떨어져가고 있다고 느낄 때에는 주님께 “주님, 당신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에너지가 조금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저에게 좀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그것을 주신다고 확신하십시요. 에너지를 받으십시요.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받은 것처럼, 곧 받을 것처럼 행동하십시요. 그 비결은 이와 같이 간단합니다.

*PLUS The Power of Faith August. September 2018 에서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4)

마음의 평안, 당신도 가질 있다.

어느 사업하시는 분이 그분의 종업원의 개인적인 문제에 관하여 상담하려고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저의 반응을 물어왔습니다만 제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미리 말해버렸습니다. “ 제 생각에는 이 여자분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업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나는 그분에게 이 부인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제안들이 있는지를 물어보자 “첫째로 그 부인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하며, 둘째는 평온의 기법을 훈련해야 하고 셋째로 그 여인의 가슴 속에 있는 많은 잡동사니들을 치워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해서 제가 오늘 설교하려는 멧세지의 개요가 잡히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중요한 내용의 기본이 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니, 그것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라. 그러니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요한복음 14장 27절)

그러므로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는 노력이나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로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러한 내적인 안정을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세 가지 요점을 가지고 한번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첫째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법을 배웁시다. 물론 이것은 종교에서는 잘 알려진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본적인 생각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끌려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당신의 가까이에 계셔야 합니다. 그 분이 당신 가까이 계실 떼 당신은 진실로 그 분을 알게 되고 당신이 그분에게 의지하고 믿게 될 때, 그 분 안에서 신앙을 단련할 때, 당신은 이상하면서도 심오한 내적인 확신과 평온과 자신감을 얻게됩니다.

내가 다행히 사귈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훌륭한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브록클린 야구팀의 핏쳐였던 칼 엘스킨을 들 수 있습니다. 얼마전 칼은 수많은 젊은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관중들에게 위대한 운동선수가 되는 비결은 품위있고, 단정하고, 남자다우며, 정직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이 살아야하며 그래서 당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평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월드시리즈 게임에서 “a secret inside pitch”를 가지고 어떻게 열 네명의 타자들을 스트라익 아웃시켰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야구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입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inside pitch”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칼은 그것은 그가 게임전에 언제나 하는 명상, 적극적인 사고,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 등을 통해 얻게되는 그의 “내적인” 자제력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게임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그것은 별 가치가 없는 기도라는 겁니다. “저는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해주십시요”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항상 최선을 다한다면 당신의 삶은 승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

한번은 그가 아주 중요한 게임을 하는데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는 핏처박스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공을 장갑에 던지면서 왔다갔다 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마음은 그가 낚시를 가곤하던 인디아나주의 한 계곡으로 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친구와 고기를 잡던 특별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른 아침 수면위로 3피트 정도로 안개가 깔려있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잘 아시지요. 낚시하러 간다는게 고기를 잡기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친구와 같이 한다든가, 아름다운 자연을 본다던가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그 아침이 내가 알기로는 가장 평화로운 아침이었지요, 우리들은 호수위에 있었고 들리는 소리란 노가 움직이는 소리뿐이었습니다.”

“갑자기 찬송가를 부르는 음악소리가 들려왔어요. 어떤 사람들이 언덕위에서 아침예배를 드리고 있었어요. 그들은 노래하였습니다. “사랑의 주님 그리고 인류의 아버지,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 그 순간 나는 나에게 임했던 평안을 결코 잊지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그것은 어떤 위기에서도 나의 마음에 평안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

그것이 바로 게임 중간에, 마음의 평안이 필요할 때, 칼 에락슨이 되살려 보는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나의 인디아나로의 정신적 여행에서 돌아와서 볼 게임에 다시 섰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예외 없이 직구를 던질 수 있었지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라는 생각은 비 실재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생각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업에서나, 집에서나, 직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 때, 압력이 심하고, 긴장이 높아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해 보십시요. 실제로 그분이 당신에게 평안을 준다고 믿으십시요. 그분이 주시는대로 받으십시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주는 나의 평안을 내가 네게 주노니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

두 번째 중요한 요점은 평온의 기법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평화라고 하는 훌륭한 감정을 우리들이 종종 거부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항상 너무 서두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차를 몰고 다닙니다. 우리는 항상 앉아서 걱정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 지고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는 지를 생각하는듯 합니다. 그러나 삶이란 또한 조용히 있는 기술을 연습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어슬렁거림의 심리학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떻게 쉬는가?를 배우는 것입니다.”고 했습니다.저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에 그의 말은 나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6월의 어느날 나는 화이트 마운틴에서 짧은 휴가를 보냈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보스톤 헤랄드를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운 신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필자들 가운데 한 분이 직접 야외로 나가서 그 안에서 어슬렁거려 보지 않고는 뉴 잉글랜드 시골풍경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쓴 칼럼을 보았습니다. 그 분은 “낡은 의자를 하나 가지고 나가세요. 책도, 연필도, 종이도 가지지 말고, 원한다면 돋보기나 하나 가지고. 그렇지만 그냥 들판으로 나가세요. 의자에 앉아서 앉는 연습을 하세요. 눈은 크게 뜨고, 귀는 할짝 열고 그리고 될 수 있는대로 많은 것들을 찾아보세요. 그것들을 어떻게 도와줄까?하는 생각일랑 하지 말고 그냥 쳐다 보고 귀로 듣고 그냥 앉아있어 보세요.”

저도 그렇개 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나는 낡은 의자를 하나 들고 초원으로 나갔습니다. 얼마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데”하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나는 우연히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에머슨의 “하늘은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다”란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눈과 같이 하얀 구름을 보았는데 그것은 산록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초록의 숲으로 덮인 산 위에 떠있는 배들과도 같았습니다. 그때 조그마한 새가 나를 보러 종종 걸음으로 달려 왔고 우리들은 잠시동안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지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내가 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새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새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나는 왜 새가 날아갔는지를 알게되었습니다. 커다란 회색 고양이가 잔디밭을 건너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새가 있는쪽으로 뛰어갔으나 새는 두 날개로 가볍게 피해갔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둣한 초원에도 싸움과, 전쟁과 먹이 낚기 등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경계하고 준비할 때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배우면서.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나의 입에서는 “내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이 어디서 오는가?(시편 121편 1절)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

우리는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늘에서 와서 하늘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나 평화나 웅장함은 에머슨이 말한대로 영혼을 위한 일용양식입니다. 그것들을 먹음으로 당신은 고요함의 기술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나에게 이 제목과 요지를 준 사업가가 자신의 종업원에게 필요한 세 번째 것으로 마음 속에서 쓸데없는 잡동사니들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아주 오래된 표현입니다. 사실은 그녀의 가슴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심장은 가슴 아래 있으면서 불안하거나 잘못되면 부담감을 느끼는게 사실입니다. 만약 잘못하여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으면 그것들이 당신이 죽을 때까지 당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유감스럽지만 저도 좋아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행한 잘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들을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그것들이 용서받고 제거될 때까지 우리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받자 못했기 때문에 내적인 평화가 없읍니다.

예를 들면 1년, 또는 2년 전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하면서 자신은 내적 평화를 얻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했다고 말했는데 아직도 초조한 기색이 있다(평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모든 상황속으로 들어가 보고, 무척 술을 많이 마셨던 학창시절로 되돌아 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쫒겨나 다른 대학으로 가기도 했고 거기에서도 문제가 생겨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만회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장황한 설명을 중단했습니다. “나는 이미 기분이 좋아진 겁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왜 기분이 좋아졌즌지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런 모든 이야기들을 다 나에게 털어놓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그것들이 당신의 마음에서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면 그것들이 다시 당신에게 되돌아 올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은 그런것들에 익숙하도록 자라왔기 때문이지요.”라고 제가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가 지은 잘못들을 하나하나 들먹이면서 진지하게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는 그에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그들에게 행한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요. 진정으로 뉘우칩니다. 다시는 그러한 일들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어떤 위대한 작가는 우리는 깊고, 무거운 잘못된 일이라는 장애가 우리의 어깨에서 치워지기 전에는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 가지 일들을 우리는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고, 침묵의 기술을 훈련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우리의 모든 쓸대없는 잡동사니들을 우리 가슴속에서 없애버리십시오.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주는 나의 평안을 받아 무서워 하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바로 여기에 훌륭한 내적 평안의 감정을 누리는 비결이 있습니다.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3)

<분노를 조절하는 법>

한번은 미국 중서부에 있는 한 호텔에서 입실수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11시쯤이었고 마침 그 도시에서 컨벤션이 진행중이어서 로비에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등록창구를 향한 움직임이 무척 더디게 움작였습니다. 그리고 앞을 보니 창구직원이 어떤 화난 여인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연방 “댄단히 죄송합니다. 손님의 이름을 대기자 명단에 기록해 놓았으니 아마 2시나 3시쯤이면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방이 손님을 위해 준비될겁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분명히 기억해 두게, 젊은이”라는 말과 함께 듣기 거북한 장광설이 간간히 직원의 “예, 고객님” 그리고 “대단히 죄송합니다”란 말과 섞여서 들려왔습니다.

나는 그 젊은이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는 얼굴색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 화난 기색도 없었으며 목소리도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여인을 직접 쳐다보면서도 친절하였고 상냥하였으며 능란하게 다루었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그 직원 앞에 갔을 때 나는 “내가 줄곳 봐왔는데 그렇게 평상심을 잃지 않는데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요?”라고 몰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박사님이나 저는 다같이 크리스천이 아닙니까? 저는 단지 나의 직장에서 크리스천의 원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할뿐이지요.“ 그러면서 누가복음 21장 19절의 말씀 “너희의 인내로 너의 영혼을 얻으리라”(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생명을 얻어라)를 외웠습니다.

이 사람은 기독교적인 삶의 기술이 화를 다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미 그것을 터득했던 것입니다. 그는 후에 이 호텔의 부 지배인이 되었습니다. 적건 크건간에 감정을 조절해서 상황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항상 이기게 마련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들이 발견하는 지혜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심리적으로도 건전한 것입니다. 호텔 직원이 사용했던 성경구절을 한번 분석해 보십시다. “참고 견디는 가운데 또는 인내로. ..”란 말에서 인내란 성숙함, 지적 건강, 철학적인 이해심 그리고 기본적인 영적 성장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어떻게 분노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인내할 때 당신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냉정하게 만드는 당신의 삶의 철학을 개발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감정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머리로 삶의 자극제에 반응합니다. 당신은 단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반응합니다. 당신은 철학적인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바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짜증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매일 매일 주변에 얼마나 짜증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교통체증, 계산대 앞의 긴 행열, 씨끄러운 이웃 등 온갖 종류의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이러한 짜증나는 일들을 어떻게 견디며 지내십니까?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그것은 적응하는 것입니다.

한 의사가 저에게 청각보조기를 쓰면서 잡음이 크게 난다고 불평하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여인은 “나는 그걸 견딜 수 없을것 같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의사는 그 여인에게 “만약 훈련을 하면 더 이상 그 잡음이 들리지 않는 때가 옵니다. 인간의 두뇌에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기능이 있으니까요.”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영적인 인내심을 훈련함으로 그러한 변하지 않는 골칫거리들을 막아버릴 수가 있습니다. 당신이 그 골칫거리들 위에 올라서서 그것들을 당신의 지적인 조정 아래 둘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것을 성취할 수 있는 인격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골칫거리에 마음을 집중시키면 그것들은 계속해서 당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기도를 통한 인내는 당신의 마음이 어떤 종류건 짜증나는 일들을 막아낼 수 있게 하는 처방약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보조물이 있습니다. 즉 사람이나 사물들에 대해 과학적이고 냉철하면서 객관적인 태도를 갖도록 배우는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객관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영적인 인내의 법칙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당신을 괴롭힐 때 당신은 전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을것입니다. 당신은 과학자가 될 것입니다.

과학자는 상황의 원인을 알기 원하는 객관적이고 지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과학자와 같이 행동한다면 당신을 귀찮게 구는 사람에 관해 “나는 그들이 어떤 정서적인 갈등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활 속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좌절을 겪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의 반응은 감정적인 열정이라기 보다는 과학적인 객관성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그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반응에는 위대한 영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런 반응이란 한대 차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다른 사람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그로인해 개인적인 분노를 조절했을 때 그것은 무척 만족스러운 경험이 됩니다.

제가 가끔 밤을 새우며 장거리 여행을 할 때면 이용하는 기차의 웨이터가 있었습니다. 그와 저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만났던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음식값을 지불하려고 체크를 내밀자 그는 내 앞으로 머리를 숙이면서 “잠시 후에 직접 찾아뵈어도 괜찮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물론이지요, 언제든지 오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휴식시간에 저에게 와서 제 객실에 마주 앉았습니다. “박사님, 저는 얼마나 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운을 띄웠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절망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모든 사람들에게서 짜증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계속했습니다. “저는 잘 참아오고 있습니다만 요즈음 와서는 언젠가 폭발해서 나를 파멸시킬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될런지 모르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문제가 무엇이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웨이터는 “글세요, 제가 손님에게 그가 적어준 주문대로 음식을 가져다 주었는데 자신은 그것을 주문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식당의 규율에 의하면 나는 무조건“예, 선생님 , 미안합니다”하고 음식을 도루 가져가는 것입니다.” 웨이터는 그가 가지고 온 쟁반을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에 그러한 손님에게 이 쟁반을 한번 씌워주려고 했었지요.” 그의 목소리는 그의 말보다는 부드러웠다.

“당신이 가져온 주문에 불평하였다는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지요.” 나는 진정으로 이 웨이터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그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손님의 머리를 쟁반으로 한대 치는 대신 그를 한방 멕일 수 있고 효과도 좋은 방법을 하나 알려드리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웨이터 친구는 무척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나의 친구 프랭크 라우버흐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프랭크는 그의 전성기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도슈팅(발사)를 영적으로 수행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양심의 수준에서는 잘 알지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웨이터에게 이야기한대로 “당신도 그렇게하면 당신이 기도를 쏜 사람들은 변하여 당신에게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고 말하자 이 친구는 참으로 관심을 가지고 “한번 시험해 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시간에 나는 그를 주목해 보았습니다. 그 역시 그가 서브하는 노부인의 불평을 들으면서 나에게 윙크를 해주었습니다. 그 웨이터는 내 옆을 지나면서 몸을 숙여 “저 손님이 웃기까지는 기도 몇 방은 계속 날려야 할 것 같군요.”라고 속삭였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짜증에 화를 내는 대신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저의 주장의 정당성이 바로 입증되었습니다. 내가 기차에서 내리려고 현관에 서 있는데 아침의 그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은 나를 부르더니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이애미로 가는 길이라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후에 그 웨이터에게 그 말을 전하자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나는 박사님은 백성들의 시련이나 어려움은 결코 모를거라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짜증남과의 전쟁에서 좋은 출발을 하였습니다. “당신의 인내 가운데서 네 영혼을 얻으리라.“ 호텔직원과 같이 자신의 주인이 되며, 웨이터와 같이 한대 내려치기 보다는 기도를 날리기 시작하십시요.

끝으로 인내가 안정과 평정으로 흐를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 양질의 요소들은 성급함에 의해 방해받지 않습니다. 그러한 평정을 방해하는 것은 불의와 죄악일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안정을 가진다면 당신의 평안의 깊은 곳에서 맞서 싸울 수 있는 대항할 힘이 나올것입니다.

이런 단어들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안정, 평안, 침착함. 그것들은 무척 조화롭지 않습니까?”

이것이 이 지상의 위대한 인물들이 계발한 마음의 태도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 직에 취임한지 4주 밖에 안되었을 때 당시의 국무장관인 윌리암 .H, 시워드는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시워드는 기량이 뛰어나고 교양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뉴욕 주지사를 지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 기대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일리노이 주의 시골뜨기 링컨이 대통령이 되고 시워드는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국무장관 시워드는 대통령에게 “이제 행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국무장관으로서 그러한 정책들을 써가지고 왔습니다. 그것들을 시행하기를 바랍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혀 링컨을 화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 읽어보고 “장관님, 아주 훌륭한 보고서입니다."고 말하면서 “제 생각에는 이 단어를 바꾸고 이 문장은 약간 돌려서 표현하고 . . .”하면서 고쳐나갔습니다. 링컨이 그 문서에 대한 편집을 마치고 돌려주었응 때 아주 명석하였던 시워드는 그것을 보고. “대통령 각하.이것은 아주 훌륭한 국무부 문서입니다”고 말했습니다.
후에 국무장관 시워드는 뉴욕트리뷴에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습니다. “대통령은 미 행정부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다”라고.

보다시피 아브라함 링컨은 짜증을 부리기에는 너무나 큰 그릇이었기 때문에 시우드가 적대심을 높일 때에도 그를 국무장관으로 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링컨이 다루어야 할 사람은 국방부 장관 에드윈 M. 스탠튼으로 당시 위대한 인물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링컨에 관하여 ”일리노이주에서 온 포획되지 않은 원숭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링컨이 이에 대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저도 모릅니다. 저는 나 자신이 원숭일까 아닐까를 생각해 본 적이 업없으니까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누가 왜 그 사람을 해고하지 않느냐?고 묻자 링컨은 퉁명스럽게
그는 미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방장관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왜 내가 그를 해고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을 판단하는데는 인간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링컨이 죽었을 때 스탠튼은 그의 침상옆에서 울면서 “그는 역사에 남을 영원한 인물이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이 나라가 배출한 그 어느 사람보다도 그를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신앙과 기도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단련한 오랜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침착함의 미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의 영혼을 얻은것입니다.

(김상신 역)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2)

노만 빈센트 피일의 <왕의 오심>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는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하였던 인물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지명도에 있어서나 지속적인 영향력에 있어서 그에게 버급가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그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친절하며 가장 꿰뚫는듯한 인격을 소유한 분이였습니다.

우리들은 왕의 오심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 오심인지요. 인류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이 그와 같이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것은 유례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성지를 방문하기 원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젊은?목사로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은 성지에 가는 것이며 젊은이의 감수성과 열정을 아직 보유하고 있을 때 성지에 가서 그 거룩한 들판들을 걸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성지를 방문한 것은 50이 넘어서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성지순례는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내가 베들레헴에 올라갔던 그때를 결코 잊지못할 것입니다. 저는 평생동안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을 들어왔습니다.“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흥분되어 오던 내 마음의 상태를 기억합니다만 드디어 유대의 베들레헴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작열하는 태양과 견디기 어려운 이글이글 뿜어내는 지열, ?눈을 멀게 하는 눈부신 태양빛을 뚫고 유대사막을 지나 생명체가 전혀 없는 알카리성의 들판을 따라 매마르고 돌이 많은 꾸불꾸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올라갔습니다

그곳은 마리아와 요셉이 옛 날 그 어느날 걸었던 바로 그 길입니다. 그리고나서 목자들이 있는 들판으로 들어섰습니다. 그곳은 아직도 '목자들의 들판'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목자들의 들판위로 굽이굽이 펼쳐진 길위에서 저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자들이 경험한 놀라운 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신비와 영광을 목격한 바로 그 하늘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순진하고 배운것이 없는 이 하늘아래서 그들의 양들과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이 일어난 일들을 보자”(루가복음 2장 15절)고 말했습니다.

베들레헴은 언덕위에 있기때문에 한눈에 모든 것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차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사막에서 우유와 꿀이 흐르는 들판으로 들어갔습니다. 초원은 푸르렀고 올리브 나무들과 석류나무 숲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고대의 의미로는 베들레헴이 ‘빵집” 또는 “과일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이 제 앞에 펼쳐져 있다니!

지금도 이렇게 보잘것 없는 환경에서 역사상 어느 인물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헌신을 이끌어내고 20세기 동안 문명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던 인물-세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동안에 수천만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랑하고 따랐던 인물이 태어났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저는 가끔 프랑스 파리에 갑니다. 그리고 주로 Place Vendome이라는 호텔에 유숙합니다. 그곳은 고풍의 광장에 세워진 3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건물입니다. 이 광장의 중앙에는 나폴레옹 기념탑이 있습니다. 커다란 동판축대 꼭대기에 나폴레옹의 동상이 서있는 모습입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유우럽의 군주가 되어있었습니다. 그의 마력적인 인간성 아래서 위대한 군대가 생겨났으며 그는 온 대륙을 통치할 때까지 유럽대륙을 정복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제국은 무력으로 세워진 대륙의 다른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붕괴되었습니다. 그의 제국의 종말도 워터루라는 곳에서 끝이 났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그 높은 축탑은 오스트라리아 전투, 마렌고 전투, 모스코 전투, 워터루 전투 등을 뒤흔들어 놓았던 나폴레옹의 대포들을 녹여서 만든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축탑의 밑부분에 새겨놓은 조각들은 이들 전투의 장면들입니다. 축제, 장관, 팡파르, 악기들, 깃발들, 홀 등이 나폴레옹을 위대하게 만든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나폴레옹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아기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시저, 샬메뉴, 그리고 나는 위대한 제국들을 건설하였다.우리들이 가졌던 것이 무엇인가, 무력이다. 예수는 사랑위에 자신의 제국을 세웠다. 그럼에도 지금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기꺼히 죽으려 할것이다”라고 그는 갈파했습니다.

그의 말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을 제공하는 시의적절한 이야기입니다. 유럽의 수상들이나 와싱턴의 국무성에서 현대문명을 구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나라들의 순수한 시민들의 마음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것입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그것이 승리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나는 종종 당신의 책이나 글들을 읽고 있는데 당신은 기독교가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인상을 갖게합니다. 기독교는 실패하였습니다. 기독교가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불쌍한 사람은 왜 역사를 읽지 않았을까요? 오늘 우리는 고대인들이 갖지 못했던 인간의 가치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있습니다. 기독교의 영향때문에 개체의 인간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자유란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란 이상을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저보고 낙관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비관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할 권리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비관론자가 될 수 있습니까? 복음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좋아서 나쁠것은 없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왕이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묘한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저 서로 미워하는 것을 그치고 사랑하기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은 그들에게 저항하지 말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서로 싸우는대신 친절하게 대하라고 말하십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저항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과 화목하는 길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저의 아버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만약 사람들이 너를 비판하거나 못되게 굴면 그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사랑하라” 물론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저의 아버님의 장례식에서 행한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위대한 인간이 있습니다. 그에게 아주 큰 망신을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후에 그 사람을 통해 승진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느냐?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왜? 그 사람은 능력이 있었거든.그는 승진할 자격이 있었어.”

만약 당신이 사람들을 이렇게 사랑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당신의 사랑은 선이라고 하는 강력한 힘을 증폭시킬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실제적인 환상가가 아닙니다. 그의 가르침은 실제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젊은 목사가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나는 그에게 “교회는 잘 되어가고 있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을 “글세요,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 밑에 있는 침레교회 역시 별로 잘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는 별로 잘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 덕분에 침례교회도 나보다 잘 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침례교회의 목사님은 좋은 분이신가요?”하고 묻자

“글세요, 그 목사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내 생각에는 그러나. .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설교를 잘 하시나요?” “그래요, 아주 잘해요. 그는 많은 말들을 사용하지만. . .”

“그는 좋은 사람인가요?” “그래요, 괜찮아요, 그렇지만 . . .”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과의 대화가운데 그렇게 ‘그렇지만’이라는 토를 다는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젊은이, 당신이 그 침례교 목사를 싫어하는게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횡설수설하면서 철학적, 심리학적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니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당신은 지금 그 목사를 미워하고 있군요”라고 결론내렸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는 도리어 화를 내면서 “저는 그래도 목사입니다”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당신도 역시 사람입니다. 수세기의 문명 덕분에 우리에게는 일종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습니다만 그밑에는 여전히 옛 아담이 그대로 있습니다. 당신이 목사이기는 하지만 안에는 옛 아담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요.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지혜를 구하십시요.”

“그렇지만 사랑이 해결책이니 사랑을 당장 시작하라고는 말하지는 마십시요.”

“그것이 바로 해결책입니다.”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 당신이 할 일들이 있습니다. 매일 저녁과 아침에 침례교회가 신자들로 넘쳐나도록 기도하십시요. 그리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침례교 목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지도록 기도하십시요.”

“그러면 제가 얻는것은 무엇인가요?”

“더많이 퍼주면 퍼줄수록 더 많은 것을 얻게될 것입니다.”

이 젊은 목사는 기본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는 "노력해 보지요”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후 그는 진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심하였습니다. 그가 열심이 기도하여 침례교회가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그의 교회도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들 두 목사가 서로 사랑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왕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의 복음이 잘 가동하기 때문이죠. 그것은 모든 인간들의 관계에서 작동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서 작동하게 한다면 2천명 사이에서도, 2백만 명 사이에서도, 2억만명 사이에서도 작동하게 될 것입니다. 원리가 건전하니 실제에 옮기면 그것은 팽배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왕인 이유입니다. 그의 위대하심을 통해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에 당신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그의 능력을 믿으시고 충만히 받으시기 바랍니다.(김상신 역)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1)

감사함에서 평안을 찾아라

놀만 빈센트 필

위대한 영화 배우인 왈터 휴스톤은 그의 생각에 가장 훌륭한 영어로 된 문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것은 옛 흑인 영가에 나오는 것인데 ‘아무도 내가 당한 고난을 알지 못한다. 영광 할렐루야’”란 문장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은 우리들은 분명히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그 대답은 “영광, 할렐루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쁘다, 저것은 나쁘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대신 우리가 할 일은 당신이 받은 축복들은 계산해 보고 당신의 마음에 좋았던 것들, 당신이 가진 기회들에 고정시키고 단순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는 “그래요, 당신이라면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 하는게 쉽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내가 당하는 어려움들을 알지 못합니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구요? 당신은 내가 매일 받는 편지들을 한번 읽어보셨나요?

그렇지만 때때로 나는 매우 훌륭한 감동적인 편지들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얼마전에 뉴욕 북부지역에 사는 한 부인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안에는 열 네살난 소녀가 쓴 글이 들어있었습니다.이 소녀는 다른 14세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생기발랄한 소녀였습니다만 여섯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불구가 되어 육체적으로 그 소녀는 앉지도 못하는 상태로 손만 조금 움직일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열 네 살에 10학년 학교 과정들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편지를 보낸 그 부인은 그 소녀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 소녀가 영웅의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녀는 나쁜 일들만을 차곡차곡 기억해 두었다가 자기연민에 가득 차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소녀가 쓴 글을 들으면서 당신이라면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조그마한 의심도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들을 여기에 적어 보면:

나는 가장 놀라운 생명이란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어제의 모든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으며 내일의 가능성들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두 개의 귀를 선물받음으로 시냇물의 아름다운 소리들과 봄날 아침 울새들의 행복한 노래소리 그리고 목마른 대지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적셔주어 새로운 생명을 갖게하는 빗소리 등을 들을 수가 있다.

나는 시각을 선물받음으로서 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푸른 하늘과 가장 푸른 녹지대와 가장 찬란한 태양을 가진 아름다움이 풍성한 나라에 태어난 행운을 가졌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나의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미음으로도 본다. 나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내 주위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꽃송이들에서, 모든 풀잎들에서 그리고 잔디위에 날려 쌓이는 눈송이들에서 하나님을 보기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이해심이 많은 부모님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가 오늘 행한 잘못을 후회할지라도 거기에는 언제나 내일이라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다른 선물이 있다.‘나는 내일에는 보다 이해심 있고, 보다 친절하게 처신해서 더 잘 할거야 그리고 나 자신 하나님이 고맙게도 나에게 부어 주신 많은 축복들에 걸맞는 내가 될거야’라고 몰래 마음속에 다짐한다.

아마도 여러분은 왜 이러한 재앙이 그 소녀에게 내렸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어떤 형태건 커다란 시련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어떤 시련이 닥치느냐?가 아니라 당신에게 임하는 시련에 당신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업적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우리를 속상하게 만드는 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주위의 사람들을 그냥 봐서는 일반적으로 그들의 내면적인 갈등이 외면으로 나타난 증거들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얼굴들은 침착하고 평화스럽지만 사람들은 속으로 울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신사가 제 사무실에 들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미국의 비지니스계에 관한 웬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분입니다. 그는 거대한 산업제국을 이룬 분입니다. 그는 강력한 성격의 타고난 탁월한 지도자입니다. 그는 의자에 앉자 나에게“내 짐을 목사님께 좀 내려놓아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주저하지 마시고 마음대로 풀어놓아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나는 그가 풀어 놓을것이 많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같이 하였습니다. 내 앞에는 강력하고 유명한 사람이 앉아 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은 무척 심란한 불쌍하고 애처로운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속을 뒤집어 놓고, 그들의 자제력을 방해하며, 마음의 평화를 침범하고, 효과적인 노력을 파괴해 버리는 위기에 직면하는 대다수의 인간들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예수님이 어떻게 그를 도와주실수 있는지를 이야기 해 주기를 원해서 나를 찾아온 것입니다. 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속상할 때 치유책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훌륭한 성경구절 욥기 34:29에서 발견합니다. 이것을 읽고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숨으신다고 하여 누가 골치거리를 만들 수 있겠느냐?”

이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고요함을 주셔서,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당신의 삶의 기초로 삼으면 아무도 당신을 내적으로 어렵게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당신을 어렵게 만들려해도 다를게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당신이 그들이 힘들게 만들도록 허용할 때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깊은 내적인 고요함(안정)을 가지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하려는 어려움은 흡수되어 버려서 당신을 압도할 힘을 상실하고 맙니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깊은 내적 고요함을 받을 때 당신을 힘들에 하는 어려움들은 증발하여 사라져 버리고 말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깊은 고요함 가운데로 상실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이 뒤틀릴때 비결은 하나님의 고요함에 의지해서 그의 고요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안정과 질서와 건전한 생활철학을 갖게될 것이다.

이러한 영적 고요함을 이루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설교 초두에 인용한 소녀의 글에서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감사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꺼리란 대부분 모든 나빳던 기억들을 우리의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그렇게 반사되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우리에게는 전혀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요함을 주시는데 누가 우리를 힘들게 할것입니까? 그저 감사하라 그리고 속이 뒤틀릴 때 하나님의 평안을 실천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평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시행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려움과 짜증과 분노가 당신을 공격할 때 그것을 실행하여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깊은 하나님의 내적 평화속으로 그것들을 용해시켜버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평안은 높은 산간지대에 있는 아주 맑은 호수와도 같습니다. 거기에 당신이 돌을 던지면 순간적으로 물이 출렁이지만 잠시 후에는 다시 고요해 집니다. 깊은 호수가 흡수해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평안은 삶의 어려움들을 흡수해 버리고 개개인들을 평화로운 통솔상태에 두는 것입니다.

만약 어려운 가운데 있다면 반 시간쯤 시간을 내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시편이나 마태복음이나, 마가, 누가, 요한 등을 열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고요함을 주시도록 하십시요. 그러면 당신을 어렵게 하는 것이 누구든지 간에,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들이 더 이상 문제거리가 되지 않고 당신은 그것을 극복하고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제 설교를 몇 번 들은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세요? 목사님은 오직 하나의 설교밖에는 없어요. 설교할 때마다 이 주제를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 하는데 멧세지는 똑 같아요.”라고

그래서 제가 “그것이 무엇인데요?”라고 묻자

그는 “그것은 문제가 무엇이든간에 당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라” 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나는 그것에 만족합니다. 그게 바로 해답이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할 때 하늘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자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보다 더 위대하고 강력한 힘이 없이는 잘 다룰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루는 시카고의 커다란 호텔, 커피샾에서 몇몇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탁에 앉아있는데 10여명의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일행에서 빠져나와 우리 테이블 앞으로 오더니 실례한다는 소리도 제대로 안하고-너무 흥분했던듯- 옆 테이블의 의자를 하나 빼와서는 나와 우리 일행 사이에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말씀드릴게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더니 나를 향해서 “저는 목사님과 여기 계신 친구분들에게 제가 저의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신 목사님의 제안에 따름으로서 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는 것을 간증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가졌던 문제가 무엇이였는데요?” 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었지요. 저는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그렇지만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상당한 죄책감을 갖게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거칠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었지요. 제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때때로 연설을 해야 될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더듬으면서 연설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거에요. 나는 자신감을 잃기시작했지요. 나는 무척 실망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목사님의 책을 한 권 주어서 거기에서 너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맡기라는 말씀을 읽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내가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이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는 동시에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선량한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나에게 오셔서 그의 손으로 나의 발성기관에 손을 대는 것 같았습니다. 내 연설을 가로 막았던 것은 혀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예수님이 내 마음에 막힌 것을 뚫어주셨습니다. 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나의 삶을 예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의 길을 따라 걸어갈 작정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악수를 나누고 동료들에게로 갔습니다.

어려움들과 조건들 때문에 여전히 속이 상하십니까? 삶 자체가 짜증스럽습니까? 치유책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평안을 실천하고 당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김상신 역)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