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2021년 2월 1일>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rel)과 함께(15)

노먼 빈센트 피일(1898-1993)은 목사요 저술가로 월간지 <Guidepost>를 창간하였으며 그의 저서 <적극적인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으로 유명하다. Guidepost 재단은 <Plus-The Power of Faith>라는 격월간 소책자를 통해 피일 박사의 강연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15. 기도로 당신의 삶을 변화시켜라.

기독교의 첫 번째 목적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근본 이유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 번째 목적은 이러한 사람들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것이고 그것은 주 예수의 빛을 어느정도 반영하는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개인들이 도움을 받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방법, 기도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의 기도는 강력한 효과가 있다” 이 말씀은 <Good News for Modern Man>판 번역으로 <The King James> 번역본은 “의인의 효과적인 강열한 기도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번역이든 좋아하는대로 고를 수 있지만 저는 옛날 번역이 더 마음에 듭니다. 여하튼간에 “의인의 기도는 강력한 효과가 있다”는 의미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결과로 당신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십니까? 만약 없으시다면 여러분은 아직 깊이있는 기도를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어떻게 깊이 있는 기도를 하지? 하고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요.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십시요. 당신의 삶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십시요. 깊은 기도의 경지로 들어가십시요.그곳에서 강력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이러한 태도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상황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상황을 변화시키십니까? 은쟁반에 어떤 아름다운 해결책을 곱게 담아서 넘겨주십니까? 일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변화된 사람들이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서 어떤 것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마 당신은 당신이 껄끄럽게 생각되는 상황이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이 변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 주변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 주변을 자세히 돌아 보고 “내 안에 변화가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보세요.

저에게 편지를 보내신 한 여인의 예를 들어볼까요. 그녀의 집은 혼란하고 불행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분노와 연민으로 휩싸였고 신경질과 짜증이 심해져서 계속 잔소리하고 남편과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곤 하였습니다. 그녀가 잘 표현한대로 그녀의 마음은 “나의 잠재의식의 강을 떠내려가는 비참한 작은 악마들인 불행한 생각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에선 행복이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격렬한 언쟁을 벌인후 그녀는 침실로 가서 침대에 엎드려 실컷 울었습니다. 울면서 그녀는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내밀어 나잇테이블 위에 있는 티슈박스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글에 따르면 “휴지통 밑에 있는 당신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관한 책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빌려준 책으로 어머니가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 하였었다) 저는 이 책이 ‘무슨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무슨 뜻일까? 죽음만이 해결책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변화가 필요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여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상세히 적었습니다. “저는 기도를 시작했고 훈련을 실천해 보았습니다. 저는 계속하였더니 어느날 저 자신과 제 집이 전보다 행복해 진 것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싸우든 것을 중단하고 같이놀았습니다. 남편은 아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웃고 지냅니다.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미래를 설계합니다 그런것들은 우리집에서는 흔치 않던 일이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가 변화되니까 어떻게 모든 가족들이 변하였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후기에 이 여인은 자신이 지금은 동네 보올링 선수권자가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물론 제가 이야기하는 주제와는 관계가 없지만 제가 언급한 것은 위대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여러가지 다른 좋은 일들도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여인은 또한 무의식 속에 떠다니던 비참한 작은 악마들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변하면 상황들도 변하고 사태도 변하는 것입니다. 이런일들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전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때로 이러한 효력을 가진 변화를 만들기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의 기도는 강력한 효과를 낸다”고.

사람들은 종종 질문을 합니다. “기도는 물질적인 문제에도 효과를 내나요? 아니면 영적인 문제에만 적용되는 건가요?” 저는 의인의 기도는 물질적인 것에도 강력한 효과를 낸다고 믿습니다.만약 진심으로 기도하고 당신의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면 당신의 물질적인 조건들도 변할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제어하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그렇치 않습니까? 그리고 물질적이라는 것은 영적인 것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순전히 물질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들과 붙어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따로 떼어 물질적이라고 생각할 때 이중성을 띄게되는 것입니다.

Marble Collegiate Dhurdh에는 The Young Adults로 알려진 그릎이 있습니다. 수백명의 청년남녀들로 구성된 그릎인데 깊은 영적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경험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이 <Tune In On Life>란 소책자를 출간했는데 놀라운 영적경험을 한 개인들의 간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Harvey F. Guerin 이란 회원의 글이 실렸는데 소개하면 이 젊은이는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보다 몇 달 전에는 그의 아내가 딸아이, 캐디를 낳았습니다. 캐디는 blue baby(청색아)로 출생 6일만에 심각한 심장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얼마 후에 캐디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에 걸렸고 그 증상이 계속되어 하비 부부는 아이의 생명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몇 주가 지났지만 하비는 새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하비가 받는 실업자지원금에 의해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실업자 상태로 3개월이 지났을 때 그의 잔고는 정확하게 47달라라는 은행보고서가 배달되었습니다. 방세도 내야 하고, 아이는 병들었고 일자리도 없으며 가진 돈은 단돈 47달러.

그 젊은이는 그가 처한 곤경에 무척 애통해 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가 임시방편으로 허드레 일자리를 얻어야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사인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그는 쓰기를 “결국, 나는 잠시 자존심을 버리고 울면서 “주님, 저의 생명을 가져가십시요. 그리고 원하시는대로 하십시요. 복종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일 후 그는 변호사에게서 그의 먼 친척이 소액의 현금을 그에게 남겼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영화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일어난거예요.

다음 주일날, 하비는 신문의 채용섹션을 찾다가 우연히 한 광고를 보았는데 그것을 통해서 소시얼 워커 자리를 얻게되었고 지금은 장래가 촉망되는 직책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두어달 쯤 지나서는 어린 캐디의 열이 정상으로 내려가면서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은 원한다면 이 모든 것들과 악전고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런지를 아십니까? 의심스러운 것들을 열거하지 말고 그들의 삶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십시요. 그들은 안내를 받을 것이고, 지속하게 될것이며 돌봄을 받게될 것입니다.”의인의 기도는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놀라운 일은 기도가 당신의 삶을 기쁨으로 채워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삶이 모두 달콤하고 환할거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삶은 결코 언제나 달콤하고 밝기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위대한 것은 아무리 어려운 시련에 부딪혀도 깊은 경지의 기도를 한다면 당신도 계속해서 기쁨의 물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텍사스주에 있는 유전과도 같은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기름우물에서 기름이 솟아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갑자기 강력한 우르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땅 속 깊은곳에서부터 강력한 오일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기도의 깊은 경지에 다달았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대학교 신입생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늘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실제로 좌절하거나 불행한것이 무엇인지 잊고 지냈습니다. 최근에 와서 저는 우리 가족들이 가정에서 서로서로 떨어져서 살아간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저를 몹시 괴롭혀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저는 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중압감을 느껴왔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나 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일들도 이것 저것 해보고 무언가 선택하기를 원했지만 대학엘 가야겠다는 의무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저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당신의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을 읽게된 것도 그 도움의 하나가 아닌가 확신합니다. 그 책은 저로하여금 생각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몇 가지 영적인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고 놀랍게도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족들 사이에 새로운 이해가 형성되었고 이 세상은 제가 어렸을 때의 그랬던 것처럼 옛날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불안감이 없는 상태를 느끼면서 나를 기쁘게하는 평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의 부모님들과 나 자신을 재발견하였읍니다. 이제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앙이 몇 배 증가되었읍니다. 저는 종종 캄캄한 저의 방에 앉아서 행복하게 기도도하고, 사색도 하며 그의 놀라운 힘을 저의 마음과 영혼속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보셨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상하고 혼란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오셔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사람들의 기도는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깊은 기도를 시도해 보십시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Plus-the Power of Faith, Octobe/November 2020에서


 

14. 크리스마스 멧세지

-노먼 빈센트 필-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보라! 현자들이 와서 . . . “(마태복음 2장 1절)

물론 현자들이 왔습니다. 현자들은 항상 예수에게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진리를 소유한 분으로 지금까지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자들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았다 . . .”(마태 2:2)고 말했습니다. 직감적으로 그들은 별을 따라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별이 어떤 위대한 사건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별을 따라 왔고 구유안에 누인 아기를 발견하였으며 그의 위엄을 인정하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 별의 안내를 받은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에 양떼들을 지키던 목자들로 그 때 하늘에서 괭장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음악 소리와 노래 소리에 휩싸여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목자가 “베들레헴으로 가보세”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위대한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어느 드라마 작가도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러한 이야기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만약에 극작가가 이 세상에 오신 가장 위대한 인물에 대해서 각본을 썼다면 그들은 양들과 소가 있는 오양간에서 태어나서 천한 목동들이나 떠돌이 현자들의 경배를 받는 것으로 설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주 장엄하고 화려하게 탄생한 것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다 더 절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려고 원하셨을 때 그가 하신 것이란 세상의 문간에 아기를 눕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이 아기를 그들의 마음 속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 일은 우리들에게 올바른 것이 좋다는 것, 즉 진리가 항상 승리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난 과거의 세대들에게 말씀하신대로 오늘 우리 세대에게도 잘못된 것은 오래 가지 못하며, 잘못이 옳은 것이 되지 못하고 잘못은 항상 잘못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개인적인 생활과 세계의 삶에 있어서 그를 따르고, 그에게 진실하며, 의롭고, 바르고, 선함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아는 많은 사람들을 스스로 그려 보이셨습니다.

나는 얼마전에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영적인 옛 친구로부터 온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감리교회의 감독으로 랄프 와드라고 하는 분인데 위대한 중국 선교사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중국에 있는 동안 한 때 일본이 중국을 통치하였습니다. 와드 감독이 당시 가장 많이 알려진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그를 스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약 당신이 정당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당신이 당하는 비난은 놀라운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투옥되어 매일 고문을 당했습니다. 책임을 맡은 장교는 마치 증오와 잔인함의 화신인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와드가 고문을 받으러 끌려나갔을 때 한 간수가 가까이 오더니 “감독님, 기분을 누그려뜨리십시오.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만 기억하십시요”라고 속삭였습니다. 감독님은 그 간수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이제 감독님은 그의 편인 크리스천 형제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날 일본사람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의자위에 눕힌다음 채찍으로 그를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를 의자에서 밑으로 내린 다음 물을 그의 코에 부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담뱃불로 그의 몸을 지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나무 막대기로 그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욕을 그에게 가했습니다.

그는 결코 울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문을 끝내고 그가 일어서려고 애를 쓰고 있을 때 책임장교가 그에게 “너는 거짓말쟁이야! 너는 진실하지 못한 성직자라구”라고 말했습니다.

와드는 꼿꼿이 일어서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오. 나는 스파이도 아니고 성실하지 못한 성직자도 아니요. 나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셔서 고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을 따르는 사람이요. 그리고 나는 그의 도우심으로 그가 당하신 일들을 감당할 수 있소. 당신이 마음껏 해보시오! 나는 진리를 가지고 있소”라고

그 방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 장교는 감독을 빤히 쳐다보고 있더니 얼굴에 웃음을 띄웠습니다(와드가 그의 웃음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습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와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후부터는 와드 감독은 한번도 괴로움을 당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존경을 받았습니다. 왜냐구요? 그 장교는 그를 알아보는 감각과 강직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예수를 아는 사람들은 진리를 압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올바르고, 품위있으며, 착하고 신실합니다. 그것이 바로 베들레헴의 아기인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옳바른 생각을 하고, 옳바른 행동을 하며,항상 존경할만하고, 진리를 말하며, 진리를 행하고 진리로 사는 삶 말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당신이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께 부합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또한 위대한 새로운 원리 즉 사랑의 원리를 나타내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 세상에 사랑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직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는 귀족들만이 가치가 있었을 뿐 그 아래에 있는 하류계급들은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으로 황제는 사람을 죽일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배상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황제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생사권을 쥐고 잇었습니다. 그것은 노예들의 문명이었습니다. 고대의 모든 위대한 공공 건물들은 노동노예들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 가운데 병에 걸리거나 약한자가 생기면 그들을 끌어내어 죽였습니다. 또한 고대세계에서는 병원같은 공공시설이 없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공공복지시설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인간사회는 힘들고, 가혹하며, 무자비했습니다.

그러든 어느날 밤, 베들레헴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자라면서 ‘성령의 힘”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30여세의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그는 집을 떠나서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놀리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사랑을 깨우져 주었습니다. 그는 사랑에 기초한 왕국을 형성하였습니다.

오늘날의 회의론자들은 묻습니다. ”기독교가 2000년 이상을 계속되 왔는데 어째서 특별히 더 나아진 것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더 나아진 것이 없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유색인종과, 타 종교인들과, 다른 나라 국민들에 대한 존중심이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부터 나온 선의와 사랑에 의해 수혜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으나 그가 이룩한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인이 된 스위스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발트는 사람에 따라서는 현대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무뚝뚝 하지만 매우 지적인 신학자입니다. 한번은 그가 미국의 위대한 지성들을 만나보기 위하여 미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젊은 교수가 물었습니다. “발트 교수님, 기독교 신앙의 요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발트 교수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신학에 관한 많은 책들을 집필하면서 기독교종교의 진수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만 전에는 그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물어보시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한 문장은 옛날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옛 노래에서 인용할수 있습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가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옛 노래에서 인용한 그의 말은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였습니다. 박학다식한 위대한 신학자의 한 마디였기에 모든 사람들은 감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때면 제가 늘 인용하는 옛 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드윈 말캄의 시로 “어떻게 위대한 손님이 오셨는가?”(How the Great Guest Came.)”라는 시입니다. 이것은 콘라드라고 하는 구두수선공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무척 신앙심이 깊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콘라드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밤 그는 꿈을 꾸었는데 예수께서 다음날 그의 가게를 방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는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 가게는 아름다운 나뭇가지들로 장식하여 손님이 들어오실 때 이쁘게 보이도록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날이 다 저물어 가는데 한 늙은 거지가 왔습니다. 그의 신발은 낡아서 터덜거렸습니다.그의 발은 얼어서 피가 흘렀습니다. 콘라드는 동정심이 우러나서 그에게 가지고 있던 튼튼한 구두 한 켤레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한 늙은 여인이 장작을 잔뜩 짊어지고 지나가는데 몹시 배가 고프고 지쳐 있었습니다. 마음씨 착한 구두수선공은 그리스도를 위해 준비한 음식의 일부를 이 여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한 어린 아이가 길을 잃고 놀라서 길거리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콘라드는 이 아이를 안고 눈물을 닦아주면서 어디에 사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네 저편에 있는 아이의 집에 데려가 어머니를 찾아주었습니다. 이 모든것들이 그의 위대한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것입니다. 콘라드는 서들러서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땅거미가 짙게 깔리자 쿤라드는 슬퍼서 울었습니다.

“주님, 왜 당신의 발걸음이 지체되고 있습니까?
오늘이 오시겠다고 약속한 날인걸 잊으셨습니까?

그때 조용한 가운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마음을 돌아보고 기운을 내어라. 나는 내 약속을 지켰단다.
나는 피흘리는 발을 갖고 있던 거지였다.
나는 네가 먹을 것을 준 여인이었다.
나는 집을 잃고 울고 있던 아이였단다.”

“헤롯왕 때에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하셨을 때 동방의 현자들이 왔다. . . “ 그리고 그들의 삶과 모든 사회생활에서 예수의 진리와 사랑이 해답이라는 것을 아는 현자들이 지금도 여전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실행에 옮겨보십시요. 당신의 삶이 항상 즐거울 것입니다.

(끝)


노먼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rel)의 신앙강좌 시리즈(13)

조적인 기대
놀만 빈센트 피일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저에게 다가와서 자기 아들을 좀 도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 제 아들은 설흔 살인데 훌륭한 교육을 받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제 영향력을 동원하여 좋은 일자리를 얻게하였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그애는 실패했습니다. 다른 직장을 얻도록 도와주었는데 그곳에서도 실패하였지요. 그 아이는 어쩌면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듯 합니다.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합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심리학자가 이 젊은이를 몇 차례 만나서 종합적성검사를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이 청년은 훌륭하게 성공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이에 놀란 젊은이는 한 번 다시 시도해 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때 그 삼리학자는 저에게 “저 젊은이에게 ‘창조적인 기대.의 법칙을 가르쳐 주도록 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슨 법칙이라구요”라고 되물었지요.

“아니 당신이 즐겨 찾는 규정집이 있지 않소?” 그는 성경을 의미하였습니다. “마가복음 9장23절에 보면 ‘믿는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창조적인 기대의 법칙이지요. 이 젊은이의 문제는 그가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젊은이에게 자신있게 최상의 경우를 기대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지요.”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요지는 기대치가 크면 클수록 그 결과도 크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계속해서 최악의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선의 것을 기대하면서 계속 그렇게 기대하면 바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당신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의 결과를 얻으리라고 믿는 신앙을 가지면 당신은 창조적인 기대를 실천하는 사람이 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젊은이에게 창조적인 기대의 법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20년 후 저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그가 사는 도시에서 그의 사업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능한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되고 창조적인 기대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게 도와 준데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는 “저는 더 이상 최악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상황들을 고려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하면 실수할지 등을 생각합니다. 만약의 사태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최선의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삶을 살려고 시도합니다.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시도합니다. 저는 언제나 좋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합니다. 저는 열심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창조적인 기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당신 자신의 기대치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앞을 보고있습니까? 뒤를 보고 있습니까? 희망적인 태도로 보고 있습니까? 절망적인 관점으로 보십니까? 열망적인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습니까? 아니면 잘 안될거라는 암담한 생각을 가집니까? 신앙을 가지십시오. 믿으십시오. 앞을 보십시오. 이것이 비결입니다.

창조적인 기대는 자석과 같은 어떤 자극과 연결되는듯 합니다. 거기에는 활력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저는 유명한 영화 배우, 텔레비젼 스타인 데일 로벗슨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10대 때에 눈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장님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청각 역시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은 당황했습니다. 전혀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말을 탈 수도 없었고 운동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학교 다니는 것도 포기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오크라호마의 집 포치 앞에 앉아서 앞만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과였습니다. 그는 다른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는 삶에서 완전히 떠난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1년 동안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 한 분이 그곳에 왔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으로 별로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문자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병 고치는 기적들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성경책을 고정시켜 놓고, 항상 옆에 놓아 두었으며 재빨리 불러내었습니다. 만약 그가 다른 목사들과 같았더라면 데일 로벗슨은 아마도 아직도 그 포치에 그대로 앉아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사는 앉아서 이 소년을 바라보다가 “데일, 네가 다시 병이 낳으리라고 믿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데일은 비록 잘 듣지도 못하고 시력도 매우 약하지만 “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낳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의 친구인 이 목사는 그러면 같이 이 포치에서 데일이 지금 당장 고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났을 때 데일은 분명하게 볼 수 있었고 또렸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문제가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무엇이 문제였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조건이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설명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경향은 그것은 심리적인 문제였으므로 신앙이 개입할 수 있었다는 결론으로 거기에는 심리적인 문제라면 신앙이 그 삶에 무언가 해줄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습니다.

여하튼 데일 로벗슨에게 있어서 그 순간은 활기 차고, 건강하고, 창조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날 포치에서 일어난 일은 그에게 “우리가 충분히, 확실히 믿는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그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가르침을 주었다 고 말했습니다.

종교적 또는 정신적 생활에 있어서도 과학이나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사건들은 원인과 결과로 작용합니다. 만약 어떤 일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 그것은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최악의 것을 기대하기보다 최선의 것을 기대하면 대단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거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한 습관을 당장 집어치우고 최선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요. 창조적인 기대를 당장 습관화 하십시요.

저는 진심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어렵게 합니까? 당신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당신을 좌절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당신은 문제가 무엇인가, 왜 실패했는지,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저항하는 것들이 무엇이고, 방해물들이 무엇이며,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느라고 낭비하셨습니까? 그런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십시요. 하나님이 주실 무한한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하십시요. 성경은 말합니다. “믿는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성경은 지금까지 기록된 가운데 가장 믿을만한 책입니다.

이 말은 당신이 원하는 것들은 모두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 당신은 다 얻어야 합니까? 어쩌면 당신이 갖고저 하는 것들 가운데는 당신에게 적합치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창조적인 기대를 실천한다면 당신의 삶이 이룰수 있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고 다른 것을 하나 더 든다면 성실함(진실됨)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성실함에 관해 별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성실하여야만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 . ” 이것이 성실함의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은 그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거부합니다. 인생은 거부집단에게는 자신을 거부합니다. 어떤 유명한 카나다의 학키코치는 반항하는 선수들중에 유명한 선수가 된 자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선수는 전력을 다하는 선수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에-당신이 창조적인 기대를 하는 것에- 전력을 경주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듣기만큼 쉽지는 않읍니다. 이러한 원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때로는 무척 힘듭니다. 물론 복잡한 일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경험들을 서로 나누는 것도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설교에서 인용한 이야기 덕분에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언제 그 이야기를 들으셨지요?”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오! 아마 한 20년 됐지요”라는 그가 대답했습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 그는 공포로 가득 차서 Marble Collegiate 교회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큰 기회를 제안받고 있었지만 그 책임감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일 아침 제가 예화로 든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유명한 곡예사가 큰 야망을 가지고 있는 젊은 곡예사들 그릎에게 높은 곡예그네 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을 데리고 가장 쉬운 제일 낮은 그네에서부터 시작해서 제일 높은 곡예그네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들은 높은 그네에서 가장 고난도 연기를 보여서 그들의 훈련을 보여줄 것입니다.

한 학생만 빼고 모두가 성공을 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그네를 올려다 보자 한 발짝만 미끄러지면 서커스 천막의 딱딱한 마루바닥에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으로 경직되어서 그의 근육이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선생은 “짐, 지금 올라가서 그네를 잡고 한번 해봐. 너는 할 수 있다구.”라고 말했지만

소년은 “선생님, 못하겠어요. 저는 죽을까봐 무서워요.”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너의 마음을 그네 위로 던져 버려 그러면 몸이 쫓아 오를거야”라고 말하면서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비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들어본 가장 현명한 생각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어려운 것들 위로 던져버리십시요. 그러면 당신의 육체는 당신 마음속의 추진력과 스스로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두려움에 쌓인 젊은 곡예사 지망자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마음을 그네 저편으로 던져 버리고 아름답게 곡예를 완수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려움과, 위기와, 곤란에 직면합니다. 그들 앞에 우리는 얼어 붙습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태를 생각하고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신앙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인 창조적인 기대를 작동하고 그 어려움 너머로 당신의 믿음을 던져 덮으면, 장애물 너머로 당신의 확신을 던져 버리면 그외의 당신의 남은 것들은 따라올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따른 가장 단순하고 가장 기본적인 창조적인 삶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시대에 과학적인 삶을 사는 위대한 비결의 하나입니다. 창조적인 삶을 실천해 보십시요-그것은 반드시 작동합니다.

*PLUS_the power of faith, October-Novenber 2019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