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서양인이 본 한국/2021년 8월 1일>

서양인들이 본 개화기 조선과 조선사람들

'서양인들이 본 조선과 조선인들'이라는 시리즈는 이조말 특히 개화기에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직, 간접으로 조선의 개화에 일조를 하면서 남긴 기록들을 찾아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란입니다.이미 번역, 출판된 것들은 가능한한 그대로 소개하려 합니다.


 

James Gale:Korean Sketches(현암사 간행)에서

이달에는 제임스 게일의 코리언 스케치(Korean Sketches, 현암사 간행)에 실린 '한국인의 심성과 미신'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조선사람들에 관한 인상을 비교적 솔직하게 피력하면서도 조선인들의 착하고 성실한 심성에 대한 칭찬과 함께 허황한 미신숭배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J.S. 게일 목사(1868-1937, 한국명 기일奇一)는 미국의 선교사요 신학박사로 한국어 학자이기도 합니다. 1889년에 처음 한국에 와서 당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정신생활 면에서 역사상 가장 참담한 시련을 겪고있던 이조말기의 현황을 직접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대로 스케치 한 것이 <Korean Sketches>입니다.

변환기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풍습 등에 관한 관심과 연민을 가지고 이 책을 썼으며 후에 <한영사전>을 비롯해서 한국문화에 관한 많은 저서들을 출판하였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종교

조선인의 심성과 미신-제임스 게일

우리들이 고국에서 상상할 때는 ‘미개인’이란 말이 인간의 본성에 깃들어 있는 악한 것과 가증스러운 것 전부를 포함하는 말이었지만, 이런 개념은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이 만약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들을 찾아보고 싶어 한다면, 미국에서는 싱싱교도소 안에서 그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조선이 인도에 못지 않다고 생각하고 독일의 종교학자 막스 밀러가 힌두교도들의 진실한 성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믿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내가 ‘조선의 마음’에 관한 대목에서 언급한 것 처럼 때로는 그들에게 진실이 결여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 대목에 가서는 대단한 미덕의 실체가 아주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조선 평민들의 조용하고 단순한 생활-특히 촌락 공동체의 생활-에서, 그들이 비록 미개한 우상 숭배자들일지라도 아무튼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들의 친절한 접대는 가장 뚜렸한 특징이다. 조선에는 거지가 없다. 거지가 있는 곳은 다만 외국인 거주지 주변뿐이다. 허기진 길손은 양반의 집 사랑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는 공짜로 얻어먹고 그밖의 다른 편의를 제공받는다. 무슨 수상적은 데가 없는 길손인 경우에는 돈 한푼 없이 반도의 끝에서 끝까지 여행할 수 있는데, 어느 곳에 가거나 친절한 대접을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자급자족하는 농가의 생활

단순하고, 가장의 지배아래 있는 생활은, 우리들의 복잡다단한 체제보다도 더 용이하고 정적인 행동으로 이끈다. 누구건 나와 함께 농가에 가면, 시골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알게 된다. 거기에는 그들이 목화를 재배하는 밭이 있다. 그들이 사는 집의 안채에서는 여자들이 실을 뽑고, 나중에는 그것으로 옷감을 짠다. 그밖에도 누에는 뽕잎을 먹고 고치를 짓기에 바쁘다. 이 고치들 역시 사람의 손에 다루어져서 실이 되고 옷감이 된다. 그러므로 어느 집 주위에서나 옷감의 원료가 눈에 띤다. 널따란 삿갓은 사람의 손으로 짜는 것이긴 하지만 갓과 댕기는 대개 판매되고 있다. 짚신 역시 각 가정의 남자들이 손으로 삼는다. 조선인은 한 다발의 푸석푸석한 짚으로 여러가지 놀라운 물건을 만들어 낸다. 그는 우리들이 아무 쓸모없다면서 내버리는 것으로 신발, 밧줄, 방석 등 갖가지 아름다운 것을 짜낸다. 또 거기에는 논이 있고 메밀밭이 있다. 벼는 단으로 묶어서 문 앞에 있는 통나무에 대고 두들기면 낱알이 멍석 위로 떨어진다. 이것을 다시 흐르는 물의 힘을 이용하는 물레방아나 큰 절구공이로 찧는다. 곡식을 오목한 구멍에 넣고, 껍질이 다 벗겨질 때까지 공이로 찧는 것이다. 멧돌은 두 여자가 같이 사용하는데 한 여자는 맷손을 쥐고 윗돌을 돌리고 다른 여자는 윗돌의 구멍에 낳알을 넣는다. 그들의 음식과 옷은 이렇게해서 생겨난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사 들여야 할 것이 거의 없으므로 돈은 전혀 들지 않는다.

미국 사람보다 더 신뢰할 만한 사람들.

어떻게 보면 조선인들은 대단히 신뢰할만 하기도 하다. 개화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보다 오히려 더 신뢰할만 하다. 내가 전에 사귄 한 미국여인은 서울에서 혼자 두 어린애를 데리고 살았다. 그녀는 빗장이나 문 같은 것을 제대로 만들어두지 않은데다 그녀의 집에는 그곳 주민들을 유혹하는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된 우리들은 그 거리에 사는 장정 한 사람을 그 여자 침실 문 옆에 있는 난로 옆에서 자게해 주었다. 그는 그 불안한 시간에 줄곧 그곳에서 담요로 몸을 감고 잤지만 스코트랜드에서 양을 지키는 개만큼이나 충실했다. 필요하다면 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내 던지기도 했을 것이다.

언젠가 동해안에서 갑자기 돈이 필요해졌으므로 특별한 시중꾼 편에 돈 1백 달러를 요청했다. 그것이 목요일 밤이었는데 서울에서 그곳까지 거리는 180마일이었다. 월요일 아침 식사 때에 진흙투성이의 심부름꾼이 모습을 나타내더니 종이에 싼 1백 달러를 내게 내 놓았다. 그는 조선에서 가장 험한 길을 하루 60마일씩 달려서 그 돈을 무사히 나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에게는 단 1달라어치의 재산도 없었고, 1백 달러로는 몇 년을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 돈을 가지고 도망치지도 않고, 또 강탈당했다고 속이지도 않았을까? 딴 이유란 없다. 그는 사나이답고, 신용이 있고, 자존심이 강했다는 것 뿐이다.

증서보다 신용있는 남아(男兒)의 일언(一言)

조선사람들은 또 질서가 정연하다. 장터나 그밖의 다른 집회에는 우리들의 경우와 달리 경찰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들은 무슨 거래관계를 갖게 되건 공정하게 처리해 나간다. 거래상의 신용은 우리들에게도 대단히 높은편이지만 그들끼리도 대단히 높다. 또 거래 관계로 남자가 한 번 말한 것은 미국의 경우보다도 더 잘 지켜진다. 만약 당신이 토지를 사게되서 돈을 지불한다면, 당신이 증서를 가지고 있건 않건간에 세상은 당신을 그 토지의 소유자로 인정해 준다.

도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각 가정에서 부리는 종들의 믿음직한 모습이다. 돈과 귀중품들을 아주 마음 놓고 그들의 손에 맡겨 둘 수 있다. 몇 년이 가건 단 한번이나마 부정적인 행동은 저지르지 않는다. 이런 일은 이미 여러 외국인이 체험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처벌받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두려움이란 것이 꼭 인간을 바르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란 사라지는 것이고, 인간의 참된 모습은 우리들이 그를 시험하는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8년간의 완전 무결한 생활

나는 8년동안 한 젊은이를 고용하였는데 좀 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배운 것이 별로 없는 젊은이였다. 그는 글방에서 한문을 배우며 세월을 보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것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해변의 어느 오두막에서였다. 그는 내 기분에 맞는 매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더러 나를 따라가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는 부산에 처음으로 같이 갔다. 다른 조선사람들이 그가 나쁜패들과 어울리기 쉽다고 나에게 귀띰해 주었고 어느정도 그게 사실인듯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년 동안, 그는 단 한번도 나를 속이지 않았고, 실망시키지도 않았다. 그는 나를 위해서 자기의 안락이나 편의를 다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었고, 내가 잘 먹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기 식탁의 특별한 음식들도 나에게 주었으며 자기가 가진 보물이 무엇이든지간에 내게 소용된다고 생각하면 내 놓았고, 나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제아무리 힘든 일도 서슴치 않았다.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대해서나, 내 주위의 다른 일에 대해 8년 동안 모든 점에서 충실했던 그의 생활은, 내가 알기에 다른 어떤 사람에 비하더라도 가장 완전무결한 생활이었다.

원래 조선사람들은 우리들 못지않게 훌륭하다. 아니, 내 생각으로는 조선인이 더 낫다. 그들은 복음서에 대한 준비로 서구식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고 어떤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들은 이미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에게 아무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또한 그러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대체로 그들은 아내에게 선량하고, 자식들에게는 너그럽다. 하지만 종교세계에서는 잘못 투성이므로 여기서 우리는 사신(邪神) 숭배의 특질을 발견하게 된다.

사신(邪神)의 소굴

그들의 오두막은 사신 숭배의 소굴이었다. 그들은 각 방마다 갖가지 혼령이나 신을 모시고 있고, 부엌에도, 바깥 사랑채에도 따로 모시고 있다. 이 주물(呪物)숭배의 대부분은 남자들에 의해 시인되고 여자들에 의해 존속된다. 그들은 용(龍)을 달래기 위해서 샘물에 쌀을 던져 넣고, 천연두의 신이나 그밖의 다른 불결한 혼령에게는 제물을 바친다. 그들은 뱀, 족제비, 돼지 따위들도 숭배한다. 그래서 어떤 짐승의 혼령에 비위맞추지 않고 그냥 보내는 날은 하루도 없다. 밤에 사람의 잠을 깨우는 소리는 거의 다 야만적인 신앙과 관계가 있다.

“아이고! 아이고!”하는 소리는 누가 죽었기 때문에 그처럼 울부짖으며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마다 이상한 쇳소리를 내는 징은 가끔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것은 다른 세상으로 떠나가는 영혼에 대한 일종의 위로 또는 진혼(鎭魂)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내친구가 죽게되었다. 이 사실이 주민들에게 알려지자마자 노파 두엇이 징을 들고와서 울타리 밖에 앉더니 내 친구가 죽을 때까지 징을 치고 있었다. 서울 거리에서 밤낮 들리는 아주 이상야릇한 고함소리는, 많은 손님을 맞이한 점쟁이들한테서 나는 소리다.

길을 가다 보면 사람이 이빨을 활짝 드러내 놓고 웃는 모습을 새긴 장승들이 서있는데 해로운 혼령들을 막기 위해서 거기 세운 것이다. 1895년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에, 우리들은 주위에 있는 모든 장승한테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톨레라 귀신을 쫓는 장군(將軍)이다.”

또 이 장승 옆으로는 도랑 하나가 행길을 가로질러 가게 파였는데 이는 귀신이 지나가지 못하게 하기위한 조치였다.

우상숭배의 또 하의 특징은 참수(斬首)된 시체를 버려두는 것이 악행(惡行)을 예방해 준사는 사상이다. 어느 날 동대문 밖의 사형장을 지나가던 나는 여러 사람의 머리가 길바닥에 흩어져 있어서 말발굽에 짓밟히고 주위 풀은 피에 얼룩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좀더 가니까 까마귀들이 잔뜩 몰려들어 파먹는 시체들이 보였다.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골고다를 지나가는 유대인들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싸움터의 병정은 명예롭게 죽지만 형장의 송장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시골로 여행하던 어느 추운날, 나는 몸을 따뜻하게 하느라고 말앞에 서서 걷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길가에 깔린 한 거적에 이르렀는데 그 밑에서 사람의 손발이 쑥 빠져나와 있는것이 보였다. 나는 하인에게 이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조선사람 시체입니다. 나으리.” 하였다.

그 시체는 산기슭에 새겨진 2개의 거대한 귀신들(장승을 말함) 밑에 버려져 있으면서, 그날 오후 내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귀신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들이 숭배하는 바위로 된 귀신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제임스 게일 저<코리언 스키치>(현암사 간)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