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의 대중 민주주의
미국은 민주주의의 종주국이요 미국의 세계적인 사명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요 그리고 현재 미국이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형태를 갖춘 나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식민지 시대의 아메리칸들은 영국왕정의 폭정이 싫어 새 대륙을 찾아왔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극히 제한적인 민주주의였습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사상적 근간을 제공하였다는 퓨리탄들도 참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권리는 여자와 노예들을 제외한 백인 가장들에 제한하였고 영국 왕정에 저항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미 합중국을 선언한 미국 건국선조들도 토지를 소유한 남자들에게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였습니다.
건국 초기 40여 년은 엘리트 중심의 귀족정치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만큼 현재 우리들이 보고 생각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러한 미국민주주의에 18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반대중의 의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앤드류 잭슨의 대통령 취임과 함께 새로운 미국의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평가와 함께 그것을 잭슨의 민주주의라 부르는데 그 특징은 소위 민초(grassroots movement) 들에 의해 이루어진 대중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의 자리를 차지한 프랑스의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쓴 <Democracy in America) 는 1828년에 대통령에 취임한 잭슨의 민주주의 실험이 한창이던 1831년과 32년, 25세의 토크빌이 미국 전역을 돌며 보고 들은 것을 1835년과 1840년에 두 권으로 출판한 것으로 그가 미국의 민주주의라고 소개한 잭슨의 민주주의 실험은 후임 대통령들이 계승하였고 링컨 대통령을 통한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서 정점에 이르러 넓게는 이 기간을 통틀어 잭슨의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며 미국 민주주의의 특성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잭슨 대통령 취임식, 많은 서민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은 1828년에 취임한 미국의 7대 대통령입니다. 죠오지 와싱톤 대통령에서부터 전임 아담스(John Quincy Adams) 대통령까지 6명의 대통령은 미국 동부 대서양 연안(뉴 잉글랜드에서 뉴욕을 거쳐 버지니아까지)의 부유한 집안 출신들이었습니다만 잭슨은 출신성분부터가 달랐습니다. 남부인 캐로라이나주의 서쪽 국경지역 출신으로 어렸을 때에는 고아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후에 변호사로 활동할 때에도 지금의 테네시 주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후에는 인디안 토벌작전을 이끈 군인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소위 남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며 실은 아브라함 링컨보다 먼저 돈 많고 집안 좋고 학식 많은 사람이 아니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 장본인입니다. 잭슨은 대중들에게 호소하면서 대중들에 의해서 대중들과 함께 이러한 신화를 일궈내었든 것입니다.
인디안 토벌에 큰 공을 세우고 테네세주의 연방상원의원이 된 잭슨은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는 최고 득점을 하였으나 2위였던 아담스와 3위, 크레이가 야합하여 아담스가 대통령이 되고 크레이는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야합정치에 대한 일반대중들의 불평과 분노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아담스는 1차례 임기를 마치고 1828년 시행된 다음 선거에서 잭슨에게 패하자 드디어 잭슨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잭슨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동부의 대부분의 주들이 토지를 가진 남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안정된 기성세력 중심의 정책을 편대 비해 남부에서 새로 편입된 주들이 토지가 없어도 투표권을 허용하는 이주민 중심의 정책을 채택하면서 대중들이 서민 출신의 잭슨에게로 표를 몰아주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당선된 잭슨은 모든 백인 남자들에게 똑 같은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한다는 평등의 원칙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비록 땅을 갖지 못했던 새로운 이주자들이나 공장 노동자 등, 중하층 서민들에게까지 투표권을 허용하였고 이로 인해 지방의 유지나 부유층들로 이루어진 기존의 정치세력에 대항하여 대중들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대두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동등한 투표권은 미국민주주의의 특성으로 유럽인들에게는 경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득권층의 지원이 아니라 서민들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된 잭슨은 기존의 정치세력들을 배격하고 철저하게 서민층 백인들을` 위한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하였습니다. 취임식 날 백악관을 완전히 개방하여 서민들의 축제로 만든 것을 비롯하여 그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승자가 공직자들을 자기 사람들로 임명하는 것은 의무요 권리라며 공직을 평등하게 누구에게나 개방한다면서 직업공무원들이 아닌 보통사람들을 공직에 임명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서 한 자리에 오래 근무하는 공직자들의 ‘부패’를 막고 보다 낳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판사까지도 임명이 아니라 선거로 선출할 것을 요구하면서 의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대중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나갔던 것입니다.
잭슨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백인 남성 위주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미국의 백인들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전 미 대륙을 개발하여 정착할 운명을 가졌다는 신념 아래 적극적으로 서부개척을 장려하였고 백인들이 땅을 소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원주민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이주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흑인노예문제 등은 당분간 다루지 않는다는 밀약을 반대당과 체결하면서까지 인종적인 편견을 가지고 흑인노예들의 권리에는 눈을 가렸습니다.
잭슨의 민주주의는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은행을 직영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특히 당시의 연방직영 은행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그를 지지하는 서민들은 은행의 돈이 시장을 조작하고 인프레를 조장하여 불경기를 가져 왔을 뿐 아니라 땅값을 올려놓아 대지주들에게 이익을 안겨주면서 경제발전을 저해하였다고 하여 반대하였습니다. 잭슨은 이들의 지지를 업고 은행에 독점권을 주는 것을 종식시키기 위해 당시 Second Bank of America로 알려진 국립중앙은행과의 힘든 싸움을 시작하여 자신의 임기 중에는 이루지 못했으나 그가 퇴임 후 결국 문을 닫게 하였습니다. 잭슨이 퇴임 후 자신이 대통령으로 이룬 업적가운데 가장 큰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항상 “중앙은행을 죽여버린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경제에서도 특권층에 의한 횡포를 줄이고 그들이 누리는 혜택을 일반 서민들도 누릴 수 있게 하려는 민주주의 실험을 시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민주주의 실험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나타낸 것은 아닙니다. 대중의 지지를 배경으로 마구 휘둘러댄 대통령의 권한행사는 ‘독재자 왕’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게 하였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공직의 기회를 준다며 시행된 공직자 교체는 매관매직으로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무자비한 인디안 이주정책으로 수많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갔습니다.
1837년 잭슨이 8년 임기를 마치고 은퇴할 때에는 1829년 취임할 때 보다 더 대중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가 임기 중에 행한 여러 가지 정책들이 널리 인정을 받으면서 그 후 50여 년 동안 미국정치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829년 그가 취임할 때에는 잭슨의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와 도덕성에 의문을 표하는 소리들이 높았지만 그가 은퇴할 때에는 아무도 내놓고 그의 민주주의 원칙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임기 중에 잭슨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독재자 왕’을 몰아내자며 whig당을 창당하여 정책적인 대결을 함으로 그가 이임할 때에는 양당제도가 자리잡은 것도 미국민주주의 발전에 큰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의 후임 대통령들은 잭슨의 민주주의 이념들을 충실히 따랐고 대통령이 되려는 후보들은 그에게서 이상적인 후보상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변방에서의 생활을 경험하고 대중들과 가까이 접촉하면서 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한 그리고 가능하다면 군 경력도 갖춘 사람은 오늘날도 미국 대통령 후보로서는 이상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잭슨의 민주주의는 평등권을 주장 하는 데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백인 남성을 위한 평등권이었을 뿐 인종적인 차별과 여성에 대한 차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868년 수정헌법 14조가 인준되면서 그리고 여성에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920년 수정헌법 19가 통과되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잭슨의 민주주의를 돌아보면서 오늘 오바마 시대의 미국 민주주의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종이나 성에 관계 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잭슨 시대와는 진일보 한 것이지만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과정들이 그렇고 취임식 때의 일반 시민들의 흥분한 모습들이 그러하며 일반 서민들을 위한 정책들을 밀고 나가는 힘든 싸움이 그러하고 경제적인 recession을 가져온 금융기관들을 규제하려는 경제제재가 그러합니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싸움이기에 임기가 끝난 후 오바마 시대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엎그레이드 하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는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끝)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연재하였고 <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을 연재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
잭슨의 대중민주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