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드 니버의 <미국역사의 아이러니(Irony of American History)>
<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마치면서 라인홀드 니버의 <미국역사의 아이러니>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니버는 20세기 중반기에 미국에서 활동한 신학자입니다. 독일태생 목사의 아들로 미주리주에서 태어난 그는 Yale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젊은 시절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의 충돌이 격심하였던 데트로이트 공장 지대에서 13년간 목회를 하였으며 1928년부터 197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기독교윤리학을 강의 하면서 2차 대전 이후 한때 미국사회가 귀를 기울이던 시대의 양심이요 예언자의 소리였습니다.
그의 전공이 기독교윤리였기 때문에 미국 사회현상에 대한 윤리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자연히 미국역사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는 <인간의 본성과 운명>으로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 즉 선과 악이 공존하며, 창조적이며 동시에 파괴적인 인간이 가야 할 운명을 다룬 것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인 사회>라는 저서에서는 사회인으로서의 인간문제를 다루었고 비교적 후기라고 할 수 있는 1952년 <미국역사의 아이러니>를 출판하였습니다.
그의 역사에 대한 관심 역시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역사를 만드는 주체이면서도 생각대로 역사가 이루지지 않고 역사에 휘둘리는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과 운명이 미국 역사가운데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보았고 그것을 비극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로니칼한 것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아이로니란 말은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하는 감상적인 태도나 의도적으로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약점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비극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니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이로니란 것은 표면적으로는 우연인 듯 한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지 우연만은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되는 모순되는 상황으로서 예를 들면 강한 사람이나 나라가 강하다는 자만심 때문에 약하게 되는 것이나, 안전하다고 너무나 믿어버리다가 불안전한 상황에 빠지는 것 그리고 지혜의 한계란 것을 망각하고 자신의 지혜를 너무 믿다가 바보짓을 하는 것들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로니는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이로니의 희생자에게서 긍정적인 요소마저 무시해 버릴 정도로 적대적인 감정이 없어야 하며 그렇다고 부정적인 면을 눈감아 줄만큼 동정적이어서도 안 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어 이러한 해석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니버는 미국의 역사 가운데는 이러한 아이로니칼한 면을 계속 발견하면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타당성을 발견하고 미국역사에 대한 아이노니칼한 해석을 시도하였습니다.
니버에 의하면 인간의 상황에 대한 성서적인 해석은 감상적이거나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아이로닉(역설적)한 것입니다. 희랍고전에 의하면 인간상황은 근본적으로 비극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는 인간의 최종적인 요소는 비극이 아닙니다. 악이나 파괴는 인간의 창조성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결과가 아닙니다. 인간의 자유란 환상적이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자신의 자유를 과대평가하는 유혹을 받고 있으며 자신은 창조자일 뿐 아니라 피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종종 잊기 때문에 그 결과로 인간역사에는 악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니버의 아이로닉한 역사해석의 기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로니칼한 해석은 역설적인 요소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면서 아이로니를 야기한 인간의 약점에 이해의 미소를 보내고 아이로닉한 요소들을 재고하며 시정하도록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사에서 특히 현대사에서 미국의 꿈과 희망들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변질되는 아이로닉한 모습들을 많이 목격하였습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니버가 한창 활약하던 때 쏘련과의 냉전 중에 더욱 심하였으며 1971년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현재까지 더욱 두드러진 듯 합니다.
니버는 미국역사에서 보게 되는 주요 아이로닉한 상황은 자신들은 순결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휘두르는 무력사용에서 오는 긴장이라고 말합니다. ‘원죄’란 교리를 기피하는 현대문화 가운데서 미국은 전통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순결한(착한)나라’라는 생각을 간직해 왔습니다.
뉴 잉글랜드 퓨리타니즘의 종교적인 전통과 제퍼슨주의라고 알려진 버지니아의 이신교적 도덕적인 전통은 “미국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선택된 존재로서 유럽의 모든 악과 부패와 왕권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여야 한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순결하다’고 하는 환상은 역사를 거듭하면서 전 미주대륙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대량살상무기 관리자로서 그 도덕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인류를 멸절시킬 수 있는 이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도덕적인 제국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것인데 만약 미국이 이 무기를 사용하게 될 경우 미국은 주체할 수 없는 죄책감에 빠질 것이고 그것은 ‘순수한 나라’의 아이로니의 극치가 될 것이라고 니버는 우려하였습니다.
그리고 니버가 활동하던 냉전시대에는 공산국가들이 미국을 불의하고 불공정한 지본주의의 전형이라고 비난한 데 반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가운데서 순수하고 정의를 지키는 상징적인 국가가 미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로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은 그 역사가운데 초기부터 현재까지 대단한 메시야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미국의 건설은 그들이 추진하고 있는 완전한 세계의 전조로서 자신들은 완전에로의 순례길에서 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니버 시대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은 그들이 역사를 관리하고 있다는 환상을 공유하고 역사상 어느 나라 보다 더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 힘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이 자유세계 존립의 조건이라고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미국의 아이로니한 상황을 보게 됩니다. 니버에 의하면 “강력한 미국은 미 대륙에 갇혀서 신생국가로 비교적 약한 힘을 가졌을 때 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인 역활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니버는 “우리들의 도덕적인 위험성은 의식적으로 악의를 가지거나 들어내놓고 권력을 탐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만약 우리들이 덕성이란 너무 의지하다 보면 악성으로 변할 수 있는 아이로닉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만 하면, 그리고 지혜를 너무 의지하면 성가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들을 인지하면 이해할 수 있는 위험들입니다. 요약하자면 미국의 이상주의가 모든 인간의 노력의 한계, 인간지혜의 단편성, 역사적 권력구조의 불확실성 그리고 인간의 덕성가운데 혼재해 있는 선과 악을 이해하게 된다면 미국역사의 아이로니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신학자로서, 기독교 윤리학자로서의 처방을 내리고 있습니다. 겸손의 정신이 우리들이 관계하고 있는 투쟁가운데서 분노를 줄여줄 뿐 아니라 풍성한 수확을 방해하는 아이로닉한 부조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정황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니버는 현대의 낙관적인 역사해석을 강열히 비판하엿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과도 맞지 않는 것이며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능력의 한계를 솔직히 시인하는 겸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의 미국역사에 대한 아이로닉한 해석은 인간은 약하기는 하지만 악하지는 않다. 미국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좋지는 않지만 다른 나라들 보다는 좋은(선한) 나라이다. 미국정치 특히 외교정책의 동기는 항상 선하였으며 아이로니는 미국이 가진 힘의 한계를 인정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라는 미국사람들의 전형적인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는 하나님은 항상 역사 가운데 있으며 매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모든 의미의 원천이 되신다고 하였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미국사를 전공한 학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미국역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러나 잘못을 꼬집어 내는 혜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던 역사를 통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해석의 키를 찾아낸 것이 입니다.
한국의 함석헌 선생이 ‘고난 당하는 창녀’라는 키를 가지고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5000년 조선역사를 명쾌하게 풀이하였듯이 니버는 ‘아이로니’라는 키를 가지고 미국역사를 분명하게 설명하면서 반세기 전에 이미 21세기의 미국을 내다보듯이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망하게 된다면, 무자비한 적들은 멸망의 2차적인 원인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한다. 주된 원인은 거대한 힘을 가진 한 나라가 투쟁의 장애물들을 두루 다 보기에는 너무나도 눈들이 멀어버린(시야가 좁은) 지도자들에 의해 이끌려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눈은 자연이나 역사상의 어떤 우발적인 사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증오와 자만(허세)에 의해 멀게 될 것이다." (끝)
라인홀드 니버의 <미국역사의 아이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