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휴의 예언자들의 지혜   ▒  

2020/6/26(금)
33. 유다에 심판을 선포한 이사야 예언자  
<늘푸른나무/한상휴의 예언장의 지혜/2020년 6월>

33. 유다에 심판을 선포한 이사야 예언자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이사야는 신학자들에 따라서 한 사람으로 보거나 혹은 여러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까지와 40장 이하는 예언 활동의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그러므로 기원전 8세기 활동한 이사야를 첫 이사야라 부르고, 기원 전 6세기 이 후에 활동한 이사야를 제2 이사야 혹은 제3이사야라 부른다. 랍비들은 이들을 모두 이사야 예언자 그룹에 속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제일 먼저 활동한 이사야 이후에 그의 제자들이 예언활동을 계속하면서 예언서를 기록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글에서 이사야를 둘로 나누어, 유다나라가 바빌론에 망하기 전까지 활동한 이사야와 (기원전 740년 경부터 기원전 586년까지, 이사야서 1:-39),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올때부터 제2성전을 건축하는 중에 활동한 이사야(제2이사야로 부름)( 기원전 537년 경부터 기원전 516년 경까지, 이사야 40:-66:)으로 나누어 연구하려고 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기 삼년 전 쯤이다( 기원전 725년 경) 한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벽을 따라 서쪽으로 뚤린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이 길은 예루살렘 성 안으로 식수를 공급해 주는 수원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다. 그 곳에는 지금 유다의 왕이 신하들과 함께 나와서 예루살렘 성이 안전한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중동지역은 북쪽에 새로 등장한 앗시리아가 점점 강한 대국이 되어 아라비아지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프리카 일부(이집트)까지 침공하려고 했다. 그러자 남쪽의 이집트는 주변의 작은 나라들과 연합하여 앗시리아의 침공을 저지하는 한편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중동의 작은 나라들은 앗시리아편에 가담하거나 아니면 친 이집트편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다는 작은 나라였다. 본래 12지파가 연합하여 이스라엘 통일국가를 이루었으나, 그것도 잠간뿐이었다. 결국 솔로몬 왕이 죽자, 나라는 남북으로 나뉜다. 그래서 북왕국은 에브라임지파를 중심으로 10지파가 뭉쳐서 “이스라엘”( 혹은 사마리아, 또는 에브라임이라고 부름)나라를 이루고, 나머지 두 지파 ( 유다와 벤야민 지파)가 연합하여 “유다”나라를 이루었다. 유다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제사제도가 잘 유지되어있고 또 다윗왕의 전통이 잘 계승되어서 비교적 안전했으나, 땅도 작고 인구도 얼마 안되는 작은 나라 중에도 작고 약한 나라였으므로 힘이 없었다. 더구나 남쪽에는 역사가 오랜 강대국 이집트가 있어서 자주 충돌이 있고 북쪽으로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시리아(다메섹), 앗시리아. 바빌론 등이 끊임없이 침공하여 항상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서 고생하는 것과 비슷했다.

마침 앗시리아가 남쪽으로 쳐내려오자, 북왕국 이스라엘과 시리아(다메섹) 는 유다에게 자기들과 연합하여 앗시리아의 침략을 저지하자고 했다. 또한 이들은 남쪽의 이집트와 손을 잡고 반앗시리아 동맹을 맺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다 왕과 중요한 정치인들은 앗시리아에 항복하고 평화조약을 맺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등과 손을 잡고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앗시리아의 침략을 막아내자고 했다. 그러나 예언자 그룹에서는 친앗시리아도 친이집트도 아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현실적으로 유리한 편을 택했다. 즉 앗시리아에 항복하기로 했다. 그러자 반앗시리아 연합군은 무력으로 유다를 연합군에 가담하게 하려했다. 그래서 우선 이스라엘군과 시리아군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했다. 대부분의 유다땅은 반앗시리아 연합군에 의해 쉽게 점령 당하고 많은 유다인들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 만은 함락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연합군은 예루살렘성을 웨어쌓고, 자기들과 함께 연합하지 않으면 계속하여 성을 공격할 것이고, 성을 점령한 뒤에 현재 친앗시리아왕 대신에 다른 왕을 세울 것이라고 위협했다.

적군이 성을 포위하면 우선 성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당장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없어서 곤란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유다는 먼저 성밖의 물근원이 막히지 않게 성벽을 뚫고 성안에 있는 물 저장소로 모일 수 있도록 대비를 하여야 했다. 그리고 앗시리아의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다 왕은 많은 선물을 앗시리아 왕에게 보내면서 연합군의 침략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했다. 나라의 운명이 대단히 위태롭게 되었다.

그때 유대의 왕은 아하스였다. 그는 이십대의 젊은 왕이었다. 정치적으로도 미숙했다. 또한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실수가 많은 지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또한 이웃나라들이 섬기는 우상들도 섬겼다. 솔로몬 왕 말년에 했던 것처럼 정략적으로 이웃나라의 공주들과 결혼한 것 같이. 그는 유다나라 곳곳에 우상들을 세우고 섬겼다. 대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일부 문들을 없애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께서 금하신 인신제사까지 드렸다. 인신제사는 우상을 섬기던 나라들이 드리는 제사 중의 하나로, 나라에 전쟁이나 유행병 같은 위급한 일이 일어나면, 왕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불에 태워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 화를 면하려고 했던 나쁜 풍습이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아하스왕을 “믿음이 없고 악한 왕 중의 하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하 16장, 역대하 28장)

그리고 왕을 만나러 달려오는 아버지와 아들은 예언자 “이사야”와 그의 아들 “스알야숩” 이었다. 아마도 왕은 바른 말 만하는 이사야를 미워해서 만나기를 꺼렸던 것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마침 수원지를 찾아 나온 왕을 만나러 가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사야는 가장 악한 왕과 그를 추종하는 나쁜 그룹의 정치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설득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올바른 나라를 세워나가야할 사명을 갖은 예언자였다. 숨차게 달려온 이사야는 왕과 신하들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외친다.

“ 시리아의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르말리아의 아들)가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이사야 7:4)

이사야는 계속해서,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예루살렘성을 공격하여, 유다를 정복하려는 계획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은 얼마되지 안아서 망하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하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 (이사야 7:9)고 웨친다.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3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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