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휴의 예언자들의 지혜   ▒  

2019/2/28(목)
17. 국가의 분열과 예언자  
<늘푸른나무/지혜로운 삶/2018년 2월>

17. 국가의 분열과 예언자

솔로몬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르호보암은 비 정상적인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르호보암은 많은 의붓어머니들( 솔로몬의 후궁들과 첩들)과 의붓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 왕궁은 많은 여자들의 시기와 질투와 음모 등으로 가득했고 이방나라에서 온 왕비들이 세운 신전들과 우상숭배 등으로 르호보암은 하나님에 대해서 배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르호보암의 어머니 나마는 밀곰을 섬기는 암몬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계약(모세의 법)에 대해서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즉 모세의 정신을 이어받은 큰 나라의 지도자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기원 전 925년에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 백성들은 솔로몬왕의 잘못된 일들, 즉 무거운 세금과 타락한 생활 등을 반복하지 않도록, 왕에게 짐을 덜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오히려 짐을 더 무겁게 하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왕권을 더욱 더 강화하는 것이 통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같다. 결국 백성들의 형편을 잘 몰랐다.

그러자 북쪽지파들에서 불길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받을 몫이 무엇인가? 이새의 아들에게서는 받을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저마다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가라.다윗아, 이제 너는 네 집안이나 돌보아라.“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은 저마다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열왕기 상 12:16)

북쪽의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새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했다. 그리고 남은 두 지파 (유다와 벤야민)만이 다윗의 전통을 이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나라 이름은 유다라 했다. 결국은 사울이나 다윗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통일되었던 이스라엘은 둘로 나누어젔다. 랍비들은 나라가 나누어진 이유를 솔로몬이나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모세의 법대로 교육받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모세의 법이란 이웃에게 정의와 자비를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예언자가 필요하다. 나라가 갈라지자 르호보암과 유다의 지도자들은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다시 통일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예언자 스마야를 시켜, 유다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벤야민의 모든 가문들과 그 남어지 모든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한다.

“나 주가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된것은, 내가 시킨 것이다. 너희는 올라가지 말아라. 너희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언자 스마야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그만두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남북왕국의 기본 구성은 달랐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계속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비교적 부유하고 더 세속적이었다. 가나안과도 좀더 문화적으로 교통이 빈번했다. 결과적으로 쉽게 타락헀다. 반면에 남왕국 유다는 비교적 단순하게 살았다. 그들은 광야가 아닌 산악지대에서 살고 조상들처럼 주로 양치기나 가축을 기르며 살았다. 또한 성전을 지키며(레위족속이 돌보았음) 가나안의 영향을 덜 받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다.

두 나라는 세월이 갈 수록 점점더 멀어졌다. 점차적으로 나누어져, 외국과 각기 다르게 동맹을 맺기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과 북이 서로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피흘리는 전쟁을 치르기도하고 서로 미워하며 불행하게 살았다. 결국 점점 더 약한 나라들이 되었다. 동시에 남북의 국민들은 모두 고통을 당하며 살았다. 북왕국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선택한 여로보암왕이 자기들이 배반한 르호보암왕보다 낮지 못한 것을 알았다.

특히 북왕국은 주로 농사를 지었으므로 가나안의 농경신의 영향을 쉽게 받았다. 점점 바알종교로 기울어졌다. 즉 자연종교적인 이해가 그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적은 씨앗이 싻이 터서 크게 자라고, 동물들이 종족을 버식시키는 일들을 항상 신비하게 생각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모든것을 창조하고 주관한다고 믿으나, 자연종교는 많은 신들이 있어서, 이 모든것을 만들고 다스린다고 이해해서 많은 신들을 섬기며 살았다. 그러므로 계절과 결실들에 따라서 , 특히 기근이나 병충해 같은 것, 바알신의 조화를 믿으며 살게 되었다. 이는 모세가 엄격히 금했던 길로 가게 되었다.

한편 북왕국의 왕위는 항상 불안했다. 약 50년간 두 왕조가 바뀌고, 여러 왕들이 바뀌었다. 주로 오므리 왕조가 계속되었다. 특별히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시돈 여자 이세벨과 정치적인 결혼을 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가 섬기던 페니키아의 바알신을 섬기도록 강요했다.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 “멜카트”를 세웠다. 450명의 바알신전 사제들과 400명의 아스다롯의 여사제들을 데려다가 섬기게 했다(열왕기상 16:33) 아합은 앞장서서 하나님 대신 바알신을 섬겼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바알신 섬기기를 거부했다. 특히 예언자들은 강하게 거부했다. 예언자들은 무리지어 광야를 떠돌며 백성들을 가르쳤다. 왕비 이세벨은 이들을 찾아 무참히 죽였다. 결국 많은 예언자들은 순교하거나 유다로 도망했을 것이다. 이세벨과 바알의 추종자들을 대항해서 누가 싸웠나? 당시 이스라엘에는 오직 한 사람이 있었다. 한사람 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가 누구일까?

*한상휴 님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은퇴목사로 신학대학에서 한때 구약을 강의하면서 구약과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지난 7년 반동안 <늘푸른나무>에 '탈무드에서 배우는 유대인의 삶의 지혜'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으며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바꾸어서 <예언자들의 지혜>란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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