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한국의 인물들/2019년>

좌절된 밀사(密使)의 꿈, 이 준(李儁)(1859.-1907.) 

들어가는 말

 

네델란드의 수도 헤이그 교외 뉴우에크뒤덴묘지에 있는 한 무덤앞에는 <이준, 1858년 한국 북청에서 태어나 1907년 헤이그에서 서거하다>라는 비문에 덧붙여 <이곳에 묻혔던 한국의 애국자는 1963년 9월 26일 독립된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다>라고 적혀 있다. 

쓰러져가는 조국을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하여 수만리 이역(異域)에 찾아와 분투하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한채 비통하게 순국한 이준 열사의 무덤이다. 그의 유해는 일제의 지배하에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에 묻혀있다가 1963년에야 조국으로 돌아와 그해 10월 4일 유해봉영국민장이 전국민의 추모가운데 거행되었고 수유리 묘소에 안장되었다. 일제의 침략음모를 전 세계에 알리려는 큰 뜻을 가지고 고국을 떠난지 57년만이었다.

생 애

 

이준은 1859년(철종 9년)함경남부 북청에서 이병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구 열강들이 동양으로 야욕의 손길을 뻗치든 때였다. 이준은 겨우 3살 때 부모님을 모두 잃고 할아버지 이명섭과 작은 아버지 이병하 밑에서 자라며 수학했다. 이준은 할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듯 학문에도 뛰어나고 불의 앞에서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한번은 이준이 북청읍 향시(鄕試)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불합격이 되었다. 분개한 이준은 남문루에 올라서 “나이가 어리다고 합격 안되는 법도 있느냐?”고 성토연설을 하여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게 하였다고 한다. 겨우 12세 때였다. 

17살 때 이준은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때부터 그는 조야의 인사들과 교제하기 시작하여 대원군, 최익현, 형조판서 김병시 등을 만나보았는데 특히 김병시는 이준을 총애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과의 교우를 통해 이준은 나라의 어려운 형편을 파악하게 되었으며 정치인들과 불꽃튀는 담론을 통해 암운이 깃든 조국을 위해 싸울것을 다짐하였다. 

이준은 29세 때인 1887년 북청에서 초시(初試)에 합격하고 다음해 고향에 경학원을 세워 교육에 노력을 기울이든 가운데 35세때 김병시의 중매로 이화출신 이일정과 결혼하고 이듬해인 1894년 함흥 순봉참봉으로 임명되었다. 

당시는 갑오경장 등으로 나라가 어수선한 때였다. 이준은 지방의 순릉참봉에 만족할 때가 아니라 새로운 사조에 맞추어 무엇인가 나라를 위해 일할 때라고 생각하고 서울에 올라와 새로 설치된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제1기 졸업생이 되었으며 졸업후 한성재판소 검사보가 되었다. 강직한 성격의 이준은 부패한 조신들의 불법과 비행을 가차없이 파헤치든 가운데 윗사람들의 압력으로 한 달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아관파천이 일어나 친노파 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개혁세력들이 쫒겨나게 되었다. 이준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와세다 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국제정세를 파악한 후 “나라를 위해서는 죽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각오를 다짐하며 귀국하였다. 

활동사항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11월의 만민공동회에서 가두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부 탄핵에 앞장을 섰다. 1902년 이상재(李商在)·민영환(閔泳煥)·이상설(李相卨)·이동휘(李東輝)·양기탁(梁起鐸) 등과 비밀결사인 개혁당(改革黨) 운동을 추진,적당한 시기가 오면 부패한 내각을 무너트리고 유능하고 참신한 정치를 실현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이상재 등이 옥고를 치렀다.

1904년 일제가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체결하고 내정간섭을 자행하면서 침략정책을 강화하자, 이에 대한 반대시위운동을 일으키는 데 주동적 구실을 하였다.

같은 해 일본이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자, 송수만(宋秀晩)·원세성(元世性) 등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대한보안회(大韓輔安會)를 결성해 총무를 맡고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등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는 강압적으로 보안회를 해산하였다.

 

보안회가 해산되자 이준은 후속단체로 이상설과 함께 대한협동회(大韓協同會)를 조직해 부회장을 맡고, 다시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를 강력히 반대해 결국 이를 저지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1904년 12월 일제가 친일분자들로 일진회(一進會)를 조직해 매국활동을 시작하게 되자, 이준은 이에 대항해 윤하영(尹夏榮)·양한묵(梁漢默) 등과 공진회(共進會)를 조직하여 회장직을 맡아 일진회 규탄대회를 종로 한 복판에서 여는 등 맹열히 반 일진회 투쟁을 전개하다 해산명령을 받고 체포되었다. 그 결과 철도(鐵島)에 6개월간 유배당하였다.

민영환의 주선으로 석방된 뒤에도 그의 투쟁은 그치지 않았다. 1905년 5월 윤효정(尹孝定)·양한묵 등과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를 조직해 다시 일진회에 대한 공격을 벌이며 항일국민운동을 벌였다. 같은 해 평리원 검사를 거쳐 특별법원 검사로 임명되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상동교회(尙洞敎會)에 모인 전덕기(全德基)·최재학(崔在學)·정순만(鄭淳萬)·이동녕(李東寧) 등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을사조약폐기 상소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준이 상소문을 짓고 대한문(大漢門) 앞과 서울 시내에서 일본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며 격렬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이준은 “이제 나라를 구하는 길은 국민을 계몽시켜 인격을 도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민중을 계몽하고 독립정신을 높이는 교육사업에 관심을 쏟기시작했다. 1906년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을 목적으로 전덕기·유성준(兪星濬)과 함께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를 조직해, 회장으로 교육구국운동을 시작하고 보광학교(普光學校)를 설립하였다. 또한, 설태희(薛泰熙) 등 동지들과 고향인 함경도의 애국계몽운동단체로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를 조직, 지도해 함경도지방의 교육구국운동의 발흥에 큰 발판을 마련하였다.

한편 쓰러진 나라를 일으키는 다른 방법의 하나는 일본에서 차입한 국채를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는데 있다고 하여 1907년 1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이준은 전국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서울에 국채보상연합회의소(國債報償聯合會議所)를 설립하고 소장이 되어 모금운동을 벌였다. 같은 해 4월 양기탁·안창호(安昌浩)·전덕기 등이 중심이 되어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로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헤이그 세계평화회의와 이 준

같은 해 6, 7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세계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준은 전덕기·이회영(李會榮)·박상궁(朴尙宮) 등의 도움을 받아 고종을 만나 이 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해, 을사조약이 고종의 의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조약이므로 무효라는 것을 세계 만방에 선언하고, 한국독립에 관한 열국의 지원을 요청할 것을 제의해 고종의 동의를 받았다.

그리하여 이준은 헤이그특사단의 부사가 되어 1907년 4월 22일 서울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정사 이상설과 합류하고, 다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스부르크로 가서 이위종(李瑋鍾)과 합류,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세계평화회의 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하고 평화회의장에 한국대표로서 공식적으로 참석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일본대표와 영국대표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에 세 특사는 일제의 한국침략을 폭로, 규탄하고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控告詞)를 작성해 평화회의 의장과 각국 대표에게 보냈다. 또 신문에 이를 공표해 국제여론을 환기시켰다. 신문기자들과 언론들은 세 특사의 활동에 호의적이었으나, 열강의 대표들은 냉담하였다. 결국 평회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할 수 있는 기회마저 얻지못한채 우울하고 침통한 세월을 보내던 이준은 울화를 다스리지 못한채 병을 얻어 1907년 7월 14일 이역 헤이그에서 순사(殉死)하고 말았다. 향년 49세였다. 

이준의 죽음에 관하여 회의장에서 만국의 대표들이 보는 가운데 활복하였다느니, 자결하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지만 회담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것으로 보아 사실이 아닌듯 하고 회의가 끝나고도 얼마의 기간이 지나 사망한 것으로 보아 자결보다는 분을 누르지 못하고 병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1906년 안중근이 이준을 찾아와 쓰러져가는 나라를 바로 잡을 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이에 이준은 국권을 회복하자면 우리 몸을 희생하는 것밖에 없다며 “죽음을 각오한다면 뭣이 무섭겠소”라고 대답하자 안중근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평생 잊지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았다고 한다. 다음해 이준은 헤이그에서 나라를 위해 애쓰다가 분을 누르지 못해 순국하였고 안중근은 3년 후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 이등박문을 사살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준의 유해는 동료들의 주선과 네델란드 정부의 호의로 헤이그에 있는 뒤덴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1963년 헤이그에서 유해를 옮겨와 국민장으로 서울 수유리에 안장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으며. 1964년 장충단공원에 동상이 건립되었다.

산다 함은 무엇을 말함이며 죽는다 함은 무엇을 말함이냐?
살아도 살지 않음이 있고, 죽어도 죽지 않음이 있나니,
살아도 그릇살면 죽느니만 못하고,
죽어도 곧게 죽으면 오히려 영생하도다
삶과 죽음이 모두 나에게 달렸나니
모름지기 죽고 삶을 힘써 알지어라.

*이 글은 신구문화사 간 <한국의 인간상 6권 근대선각자 편>에 실린 송병기 ‘돌아오지 않는 밀사, 이준'을'을 요약(要約), 첨삭(添削)한 것입니다.(정리 김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