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한국의 인물들/2018년 12월>

하르빈에 울린 총성 안중근(1879-1910)의사

들어가는 말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들은 다양할 수 밖에 없으며 막상 자신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확신하여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람은 쉽지 않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일본의 초대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시(伊藤博文)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현장에서 사살한 안중근은 어떻게 보면 피압박민족의 일개 자객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나름대로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한국인으로서 나라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기의 명예와 욕망에 집착되지 않고 나라사랑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고스란히 조국에 바쳤던 ‘조국애’의 화신이라고 하겠다. 

그의 이토 히로부시 사살은 나라잃은 한 젊은이의 감정적인 울분이 폭발한 만용이 아니라 조국을 사랑하는 그의 평소의 소신에 자신의 전생애를 고스란히 바쳐서 이룬 것이었기에 비록 ‘폭력’을 사용하였지만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고 세계적으로도 뭇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거사를 수행하기까지 

안중근 의사는 1879년(고종 16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읍에서 진사 안태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순흥(順興) 안씨로 고려말의 유학자 안향(安珦)은 그의 26대조이며, 할아버지는 진해현감을 지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허리에 검은 사마귀 일곱개가 박혀 있었기 때문에 북두칠성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에서 응칠(應七)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안중근의 할아버지 안인수는 대지주에 미곡상으로 재산을 많이 축적하였으며 진해현감을 지내는 등 관직에의 진출도 시도하였으나 아버지 안태훈이 개화파에 어울리는 바람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낙향(落鄕), 안중근은 황해도 신천군 천봉산 밑 청계동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큰 부자였으므로 어렵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집에 서재를 두고 집안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을 모아 글공부를 시켰다.

 

안중근은 재능이 있어 사서를 통독하는 등 신동이라고 불리었으나 글공부보다는 말타기와 사냥에 더 관심이 많아 열 두살에 백발백중의 묘기를 보여 사람들이 ‘대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가 열 여섯 살 되던 해에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일부 폭도들이 동학의 이름으로 양민을 괴롭히자 안중근의 아버지가 이들을 정벌하기 위해 수백명의 장정들을 모집하였는데 이때 안중근이 이들을 이끌고 나가 폭도들을 정복함으로 집안과 이웃에서 그에게 큰 기대를 걸게 되었다.

열 일곱살 되던 해(1876년), 그는 신천읍에 있는 천주교회를 찾았다. 그는 프랑스 신부 홍석구를 만나 인생문제를 토론한 끝에 천주교를 믿기로 하였다. 그는 신앙이 없이는 올바르게 살아 갈 수 없으며 , 큰 일을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는 민족국가의 독립과 자유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천부의 권리이며 그것을 수호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된다고 깊이 믿었다. 이때 그는 천주교에 귀의하였으며 세례를 받고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그가 해외에서 활동할 때에는 세례명 안다묵(安多默)을 사용하였다. 그는 같은 해에 같은 읍에 사는 김홍섭의 딸 아려와 결혼하였으며 뒤에 1남 2녀를 두었다. 

동학혁명 당시 아버지 안태훈을 도와 동학군을 정벌하는데 참여한 안중근은 스무 살 무렵부터 민족의식을 강렬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한국역사와 세계역사를 공부하면서 당시 발간되기 시작한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같은 일간신문들을 통해 민족사상과 자유독립사상, 배일 사상 등을 키워 갔다.

1904년 그가 26세 때 노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군의 횡포를 보면서 안중근은 울분에 차서 고향을 버리고 진남포로 떠났다. 우선 장사를 하면서 대세의 변화를 지켜보고 탈출구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다음해 보호조약이라는 이름 아래 나라가 일본의 손으로 넘어가 버리자 그는 인내와 모색의 소극적인 자기수양을 떠나 저항과 투쟁의 적극적인 생존방식을 택하기로 하였다. 그때 부친의 부음이 전해왔다. 그는 일단 고향에 돌아가 부친의 장레를 치르고 다음 행동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그때 도산 안창호가 미국으로부터 돌아와 신채호, 이승훈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학교들을 세워 육영사업을 벌리고 있었다. 안중근은 평양으로 가서도산을 만나 그의 지도를 받고 육영사업, 산업진흥, 항일투쟁의 결의를 굳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안으로부터 독립을 얻을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하던 석탄가게를 처분하고 진남포에 돈의학교를 세우고 독립정신이 투철한 젊은이들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가 29세되던 1907년 한일신조약이 체결되고 고종황제가 헤이그에 대표를 보낸 책임을 지고 강제로 양위되었으며 해산에 저항하던 군대 2개 대대가 장열한 최후를 마쳤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은 통분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당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던 의병활동에 가담하여 매국노 척결에 앞장서다가 본격적으로 의병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마침내 조국을 떠나 연해주로 향하였다. 

그는 먼저 러시아로 갔다. 불라디보스톡과 엔치아를 중심으로 하발르프스크 , 아지미, 소오녕 그리고 북간도 등 대륙을 누볐다. 그는 러시아의 여러곳을 돌면서 교포들을 찾아가 “국권을 회복하기까지 각자 직업에 충실하면서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자”고 권면하면서 “특히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의 시정방침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될것이니, 젊은 사람들은 일어나 나와 총을 들고 싸웁시다”라고 연설하였다. 어쩌면 이때 이미 이토 사살의 목표가 세워졌었는지 모른다.

그는 이듬해 1908년 7월 전제덕(全齊德)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겸 특파독립대장(特派獨立大將) 및 아령지구(俄領地區) 사령관이 되어 엄인섭(嚴仁燮)과 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경흥군 노면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공격하여 전멸시켰다. 그러나 일본군 포로를 임의로 석방했다가 기습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것 때문에 의병대에서의 신임이 떨어지자 1909년 (융희 3) 초, 안중근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 11인과 함께 러시아영 카리에 모여 무명지를 절단하여 혈서를 쓰면서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고 의병활동에 매진하기로 결의를 다짐하였다. 안중근은 이때 왼쪽 손의 약손가락(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독립자유> 넉자를 썼는데 그것은 조선침략의 원흉 이또오를 저격하기 위한 ‘피의 서약’이었던 것이다 그때 안중근은 “두고 보시오! 내가 3년안으로 이토를 죽이고 말겠소”라고 자신의 결의를 밝혔다. 

그해 10월 22일, 신문 1면 톱기사에 이또오의 사진과 러시아 정부 재무대신 코코제르의 사진이 실려있었고 두 사람이 동양 전체에 대한 현안의 제반문제들을 의논하기 위해 만난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안중근은 보던 신문을 움켜쥐고 동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를 만났다. 이들은 이 절호의 기회에 국적(國賊) 이토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거사가(擧事歌)를 지었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참이여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분개히 한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도적 쥐도적이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꼬
어찌 이에 이를줄을 헤아렸으리오 사세가 고연하도다.
동포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만세 대한동포로다. 

그는 곧 대동공보사 주필인 동지 이강에게 거사할 것을 알렸으며 우덕순, 조도선에게 관성자 역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하르빈 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흘 후인 10월 26일 아침 안중근은 하르빈 역 구내다방에서 중국복장을 하고 초조하게 이토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러시아의 호위병과 일본의 헌병들의 발걸음이 부산한 가운데 9시 30분, 특별열차가 서서히 들어왔다. 이또오가 노일청 관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서서히 의장대 앞을 지났을 때 군중을 뚫고 권총을 쥔 사나이가 이또오를 향해 달려오면서 “쾅” 권총을 발사하였다.

 

이토가 가슴을 안고 휘청거리자 이 사나이는 총을 던져버리고 가슴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안중근의 총탄에 이토는 살해되고 하르빈 총영사와 궁내대신, 만주철도의 이사 등이 중상을 입었다. ?안중근은 현장에서 서슴치 않고 손을 내밀어 포박을 당하였다.

그의 거사는 즉시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금치 못했다.

안중근은 러시아 헌병의 손에 묶여 이틀을 지낸후 일본 헌병대에 인계되었고 뒤이어 동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도 검거되었다.

의사는 여순감옥에서 여섯달 동안 옥중에서 고초를 당하였다. 

공판정에서 더욱 의연했던 의사 안중근

의사 안중근의 생애와 나라사랑은 이토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해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5개월동안 공판정을 중심으로 그가 보여준 의연한 모습과 명쾌한 대답들은 이토를 향해 발사된 총알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여순관동도독부 지방법원 법정에서 재판관 마나베의 심리로 6회에 걸친 재판을 받았다.

그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이토 살해목적을 분명하고 당당하게 밝혔다. 

“한국의 독립을 회복하며 동양의 평화를 유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의 큰 적이요, 만고의 역적인 이토를 없애버려야만 된다고 나는 확신하였고, 또 나라가 욕을 당하면 백성은 죽어야 하는 것이 가장 당연한 일이니 , 죽어도 아무 한될 것이 없다고 결심하고 이 한 몸을 제물로 바칠 각오를 가지고 대의에 나온지 오래됐다. . . . 이번의 의거는 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하르빈에서 열어 적장 이토를 쳐서 그 흰머리를 아군에 바치려 함이었고, 결코 개인의 자격으로 취한 행위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의병 참모중장이 적과 싸우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여기서 나를 형사 피고인의 하나로 다루는 것은 만부당한 처사이다. 마땅히 만국 공법에 의해 처리하도록 하라.

내가 하르빈에서 이토를 살해한 것은 이토가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빼았은 때문이니, 이것은 한국 독립운동의 한 부분이요 일본 법정에 서서 일본 재판을 받는 것은 전쟁에 패배하여 포로가 된 때문이요, 내지의 의병들이 항상 일본군과 충돌하는 일도 역시 독립전쟁의 한 부분이다. . . . . .
나는 4천년 우리 조국을 위하여 , 또한 2천만 우리 동포를 위하여, 동양 대국의 평화를 교란하는 간악한 적을 죽였으니 나의 목적은 이와같이 바르고 크다. 나는 국민된 의무로 내 몸을 죽여 어진 일을 이루고저 한것 뿐이다. 내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결행한 바이니 아무 한됨이 없다. 나의 염원은 오직 조국의 독립, 이 한 일 뿐이다.” 

그는 거사 다음해 1910년 2월 14일 사형언도를 받았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은 후에도 전혀 마음의 동요가 없었으며 판결에 불복할 의사가 있으면 5일 이내에 공소하라는 재판장의 말에 “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안지 이미 오래다. 내 구차스럽게 명을 살릴 필요가 없으니 공소를 포기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극심한 형(刑)은 없느냐?”라고 재판부를 비웃기까지 하였다.

안중근은 법정에서의 의연한 태도 못지않게 감옥에서의 수형기간에도 괴로워하는 기색 없이 마음이 편안하고 의기충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감옥생활중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는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였으며 옥중에서 2백여 폭이나 되는 글을 썼는데 주로 법원의 직원, 취조관, 감옥의 형리들의 요청에 의해 써준것들로 비록 저들의 원로 정치가를 죽인 사람이기는 하나 그 고매한 인격, 탁월한 정치사상이 저들을 위압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므로 저들은 다투어 의사의 글씨를 받았을 뿐 아니라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그것들을 한국에 돌려주기까지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을 몇 일 앞두고 <평화통일론>을 쓰기 시작하여 사형집행 2일 전에 서론을 끝내어 그 논문의 완성을 위하여 15일간의 형집행 연기를 청원하였다. 일제는 어떠한 의도에서였던지 형집행 15일을 연기하여 주었으나 결국 장대한 원고를 마감하지는 못하였으며 그 원고가 일본외무성에 보관되어 있다는 말은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형집행을 하루 앞둔 3월 25일에 취조관의 한 사람인 사카이 경시란 사람이 <동양평화론>의 미완을 애석하게 여겨 <동양평화론>의 결론만을 써 주기를 간청하였다. 이에 안중근이 붓을 들어 쓴 글이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코 어둡거니
뜻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들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침략전쟁 안 고침은 참으로 가엽도다. 

동양평화의 비결은 침략 정치를 하지 않는데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안중근은 3월 26일 오전 10시에 32세를 일기로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내준 새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 여순 감옥 형장에서 조용히 순국하였다. 

그는 사형 직전에 2천만 동포들에게 보내는 유언을 적어 내보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구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

그는 아우들에게는 자신의 시체를 대한독립이 회복될 때까지는 하르빈 공원부근에 매장하였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의사의 시체를 내어달라는 가족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여순공동묘지에 강제로 매장, 지금도 그의 시체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채 한국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소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신구문화사 간 <한국의 인간상 6권 근대선각자 편>에 실린 김양선의 ‘하르빈에 울린 총성 안중근'을 요약(要約), 첨삭(添削)한 것입니다.(정리 김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