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문화산책/2020년 8월 1일>*<이달의 시-8월 한낮-홍석하 시인 >*<이야기 미국사(31)-멕시코 전쟁>*<김준자 작가의 영미문학산책-영국의 버지니아 울프(1882-1941년)>*<한 여름의 시-혹서일기-박재삼 시인>*<이야기 미국사(30)-스미소니안 박물관>*<책소개-이윤모 박사의 '믿음에 관한 종교-사회학 논고'>

<이달의 시>

8월 한낮 -홍 석 하


밭두렁에 호박잎
축 늘어져 있는데

사철 맨발인 아내가
발바닥 움츠려 가며
김장밭을 맨다

느티나무 가지에 앉아
애가 타서 울어대는
청개구리

강물에 담긴 산에서
시원스럽게 우는
참매미

구경하던
파아란 하늘도
하얀 구름도
강물 속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홍석하 시인(1936- )- 강원도 안흥 출신. 1980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현대시학> 추천 등단.
제천문학회장.소백의 사람들 고문. 한인문인협회, 제천문학 창립회원

<이야기 미국사 31>

멕시코 전쟁(Mexican War)

1846년부터 1848년 까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벌어졌던 멕시코 전쟁은 미국의 서진(西進)정책이 일단락을 짖고 미국의 영토를 지금의 형태로 확정지은 미국역사상 중요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 현재 미국의 서남부 지역인 칼리포니아, 네바다, 유타주와 뉴, 멕시코, 아리조나, 텍사스 주 등의 일부가 미국에 양도되었다.

1845년 가을 미국대통령으로 새로 당선된 폴크(James K. Polk,1795-1849)는 멕시코에 특사를 보내어 멕시코가 미국에 지고 있는 3백만 달러의 빛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를 2천 5백만 달러에 매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에 멕시코는 멕시코 국가에 대한 모독이라면서 거부하였다. 그러자 다음 해 1846년 봄 폴크는 국경을 침범하는 멕시칸들의 공격을 방어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들어 수 천명의 미국군대를 텍사스로 파견하였다. 국경지역에서 두 나라 군대사이에 격전이 벌어졌고 폴크는 이때란듯이 의회에 전쟁선포를 요구하였다.

당시만해도 이 전쟁은 영토를 확장하기위한 전쟁으로 미국안에서는 반대여론들이 팽창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는 전쟁을 지지하는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세금납부를 거절하여 감금되었으며 당시 일리이출신 하원의원이였던 아브라함 링컨도 전쟁선포에 반대표를 던졌다.

군사적으로 이 전쟁은 미국이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나약했던 멕시코정부는 쟈카리 테일러 장군이 이끄는 침략자들에 맞서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 미국 군대가 멕시코 시를 점령하자 멕시코 정부는 1848년 초 Guadalupe Hidalgo 조약에 동의하였고 이 조약에 따라 멕시코는 1천 500만 달러에 이미 언급한 모든 지역들을 미국에 양도하였다. 그것은 1845년에 폴크 대통령이 멕시코에 제시했던 제안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이었다.

멕시코 전쟁 이전의 영토 분활지도.

전쟁에서의 완전한 승리로 테일러는 영웅이 되었고 1848년 폴크가 재선출마를 포기한 가운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남북전쟁에서 명성을 떨친 로버트 리 장군이나 유리시스 그랜트 장군등은 멕시코 전쟁에서 동료로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1848년에 대통령 선거에서 테일러와 맞섰던 윈필드 스칵 역시 멕시코 전쟁의 전쟁영웅이었다.

멕시코는 이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국토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게 빼았겼으며 그로 인해 국가적으로 복구불가능한 손상을 입고 말았다.

 

<김준자 작가의 영미문학산책 >

김준자 작가의 스물 두 번째 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꽃을 사러 가야겠어. 테이블엔 스위트피가 어울리겠지. 상쾌한 아침이다! 신난다! 흥분돼! 이런 생각을 하며 런던사교계의 중요행사 중 하나인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 준비는 시작된다. 우연히 길에서 소꿉친구 휴와 마주치게 된 댈러웨이 부인은 문득 피터가 그를 몹시도 싫어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래, 피터 월쉬! 모험을 사랑하고 위선을 혐오했던 사람, 열정적인 키스로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남자. 그런데 왜 나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댈러웨이 부인은 쇼핑을 하러 런던에 왔다. 그녀가 꽃 가게에 들어 갈 때 밖에 호화스런 리무진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커튼으로 가려 안 보이는 차 뒤에 앉은 사람을 상상한다. 어디를 가던 리무진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댈러웨이 부인도 뒷자리에 앉은 여왕을 상상했는데 차가 버킹 함 궁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그녀의 추축이 맞다 고 생각한다.

런던의 풍경과 소음이 댈러웨이 부인에게 많은 생각을 더한다.

어릴 때 생각도 나고, 결혼 전의 날들, 남편, 또 딸 생각도 난다. 딸은 정말 말썽꾸러기였다. 특별이 딸이 미쓰 킬만의 친구였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미쓰 킬만은 광신자로 댈러웨이 부인이 호화스럽게 사는 것에 대해 비웃으며 가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은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녀는 샐리를 사랑했다. 그때 샐리는 마룻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날 저녁 클라리사는 줄곧 샐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커다란 검은 눈에,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그녀의 자유분방함이 늘 부러웠다. 무슨 말이든,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특질을 지닌 사람. 그날 밤, 둘은 밤새도록 성()에 관해, 사회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모든 주제는 물론 샐리로 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클라리사 자신도 샐리 못지않게 되었다.

아침 식사 전에 플라톤을 읽고, 모리스를 읽고 몇 시간이고 셸리의 시를 읽곤 했다. 샐리에 대한 클라리사의 감정은 그녀의 순수함과 성실함이었다. 그것은 남성에 대한 감정과는 달랐다. 오직 성숙한 여자들 사이에서만 존 재 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그녀의 남편 리처드도 사랑한다. 피터 월쉬도 사랑한다. 그녀가 리처드와 결혼하자 피터는 인도로 떠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피터는 배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그녀는 행복하다. 이제 전쟁도 끝나고 오늘은 파티 하는 날이다.

댈러웨이 부인이 쇼핑 할 동안 스미스 부부는 공원에 앉아 있다. 이들 부부는 이태리에서 만나 부인은 고향과 친척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이곳에 온 것이다. 지금은 남편의 행동이 좀 이상하고 자살 이야기를 자주 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다. 그러나 의사는 남편의 몸에 이상이 없으니 걱정 할 것 없다고 그녀를 안심시킨다. 미스터 스미스는 셰익스피어의 나라인 영국을 구하기 위해 1차로 지원해 전쟁에 나간 이테리인 전쟁 영웅이다. 전쟁에서 돌아오자 그는 좋은 사무실 직장과 좋은 하숙을 얻어 부인과 행복하게 지내면서 다시 셰익스피어를 읽기 시작한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옳게 생각되지 않아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다.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은 집에 돌아오고 Mr.댈러웨이는 레디 부르톤의 점심초대에 갔다. 잠시 후, 피터 월시가 방문한다. 뜻밖에 그를 보게 된 클라리사는 어리벙벙하다. 그녀의 첫사랑 피터 월쉬! 30년 전 실연의 상처를 갖고 인도로 떠난 피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머 이럴 수가! 온종일 당신을 생각했는데’ 30년만의 재회인데도 그가 그리 낯설지 않다. ‘어쩜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불안할 때 주머니칼을 만지작거리는 습관까지 똑같네.’댈러웨이 부인은 자신의 선택을 뒤돌아본다. ‘만약 그때, 리처드 댈러웨이 대신 피터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파티 준비로 하루를 보내는 동안, 클러리사는 마음속을 스쳐가는 소녀 시절의 추억, 죽음과 육체의 소멸, 그리고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파티의 세계와 고독한 인간의 광기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한번은 클러리사가 분수 옆에 있을 때 피터가 그녀에게 화를 내면서

리처드에게 결혼 할 것이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 ‘지금은 리처드가 하원 의원이지만 그때는 아니었는데 그와 결혼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내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을 거야!

피터는 조금도 변치 않았구나. 옛날과 다름없는 묘한 표정, 옛날과 다름없는 체크무늬 양복. 댈러웨이 부인은 그를 몹시 반가워하며 딸 엘리자베스에게 소개한다. 피터는 클라리사에게 그동안 행복 했느냐고 묻는다. 이 여자는 지금도 옷을 꿰매고, 놀러 다니고, 파티도 다니고 혹은 하원(下院) 사무실로 달려갔다 돌아오는 따위를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피터는 점점 초조해지고 흥분된다. 클라리사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가 떠날 때 저녁 파티를 잊지 말라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들으면서 피터는 그녀의 저녁 파티! 그녀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 한다.

그날 저녁 댈러웨이의 파티는 성공적이다. 처음에는 망칠 것 같아 걱정했으나 자기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이 오면서 파티는 절정에 달했다. 피터도 파티에 왔다. 그가 여러 사람을 만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 클라리사의 딸 엘리자베스가 들어오자 피터는 그녀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한참 후에, Dr. 윌리암 브리도셔 경과 그의 부인이 들어온다. 그들은 늦은 이유가 그의 환자 한사람이 자살을 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를 달래어 시골로 데리고 가는 길에 환자가 유리창 밖으로 뛰어 내렸다는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그 말을 듣고 스미스를 생각하면서 몹시 당황한다. 사람이 죽다니! 그녀는 자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 불쌍한 젊은이가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자신을 버린 것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클라리사의 친구인 샐리와 피터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들은 클라리사와 리처드가 행복했을 까하는 어설픈 이야기를 나눈다. 샐리는 리처드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며 피터를 떠나 리처드에게 가서 말을 건다. 피터는 기분이 좀 우울해지고 왜 갑자기 흥분되는지를 알 수 없다.

클라리사 때문이야!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클라리사 때문이라구!

*?비고:

1925년도에 발표된 울프의『댈러웨이 부인』은 20세기 현대문학에서 울프가 차지하는 독보적 위치를 보여주는 그녀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책은 199610월 뉴욕타임스 북 리뷰에서 지난 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그레이트 북스에 추천되었다.

이 소설은 울프가 전통적 글쓰기 수법을 탈피하고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댈러웨이 부인과 주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의식을 묘사하고 그들의 내면을 자세히 표현한 작품이다.

 

<한 여름의 시>

혹서일기 -박 재 삼-

잎 하나 까딱 않는
30 몇 도의 날씨 속
그늘에 앉았어도
소나기가 그리운데
막혔던 소식을 뚫듯
매미 울음 한창이다.

계곡에 발 담그고
한가로운 부채질로
성화같은 더위에
달래는 것이 전부다.
예닐곱 적 아이처럼
물장구를 못 치네.

늙기엔 아직도 멀어
청춘이 만리인데
이제 갈 길은
막상 얼마 안 남고
그 바쁜 조바심 속에
절벽만을 두드린다.

박재삼·시인,(1933-1997)-박재삼 시인은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경남 삼천포(오늘날 사천시)에서 가난하게 성장했다. 삼천포고등학교를 나와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끝까지 마치지는 못했다.

1953년부터 1955년 사이, 문학잡지 <문예>와 <현대문학>의 추천을 통해 시인이 되었다. 그 뒤로 오래 동안 잡지사와 출판사 기자생활로 일관했으며 바둑을 좋아해 일간신문의 바둑 관전기를 쓰기도 했다.

 

<이야기 미국사 38>

스미소니안 박물관(Smithsonian Institution)

19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세계최다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스미소니안 박물관

스미소니안 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으로 19개의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은미연방정부가 영국의 화학재벌인 제임스 스미소니안(James Smithsonian, 1765-1892)으로부터 $508,318 상당의 유산제의를 받아들임으로 1846년에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초라하게 시작되었지만 스미소니안 박물관은 1억 3천 6백만개의 소장품을 수집하여 “미국의 다락’이란 별명이 어울릴만큼 미국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아연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진 과학자인 스미슨은 한 영국귀족의 사생아였지만 그의 유언으로 그가 한번도 방문해 본적이 없는 미국에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이유로 자기의 전 재산을 기증하였다. 처음에는 그러한 막대한 유산을 외국으로부터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의회에서 수 년동안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받아들이기로하고 그것으로 박물관을 세우기로 하였다. 와싱톤 DC의 내셔날 몰(National Mall)에 중세기 성곽과도 같은 스미소니안 캐슬을 지어 1855년에 스미소니안의 본부건물로 개장하였다.

(왼쪽)자연사 박물관 로비와 (오른쪽) 우주항공실에 소장되어 있는 Apollo 10

원래 의도는 스미소니안의 예산은 모두 과학연구에 투입하는 것으로 지금도 대부분의 예산을 과학탐구에 투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스미소니안 하면 대중을 위한 뮤지움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매해 2천만 명 이상이 무료로 공개되는 내셔날 몰에 자리한 이 뮤지엄을 방문한다. 스미소니안에 소장되어 있는 유명한 공예품들의 리스트 가운데는 1814년 McHenry 항구에 걸려있던 본래의 성조기를 포함해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그리고 1969년 달에 첫 착륙한 우주인들이 탓던 인공위성 등이 들어 있다.

최근에 개장된 스미소니안 뮤지엄 지점은 내셔날 몰에 만들어진 <the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으로 2004년에 개장되었다.

스미소니안의 유산을 미국으로 가져올 때 그것을 영국의 금화로 바꾸어 열 한 개의 상자에 넣어 배편으로 필라델피아에 보냈으며 그곳에 있는 주조창에서 미국 금화로 다시 만들어 통용하였다고 한다.

스미소니안은 미국에 있는 뮤지엄의 진행과정은 보지도 못한 채 1829년에 이태리에서 죽어 매장되었다.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래함 벨이 후에 스미스의 유해를 미국으로 옮겨와 이장함으로 처음으로 모든 유산을 기증한 미국땅을 밟게되었다.

<책 소 개>

이윤모 지음 <믿음에 관한 종교-사회학 논고>

이윤모 박사의 유고집 <믿음에 관한 종교-사회학 논고(Essays on the Sociology of Belief))>가 지난 6월 시카고에 소재한 한인사회연구원(Hasa Institute)에 의해 출간되었다

지난 50여년 동안 시카고 지역에서 한인사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다 2년 전에 타계한 이윤모 박사는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과 미국 켄터키주의 애스베리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시카고의 로욜라대학에서 사회학 전공으로 Ph.D 학위를 취득하는가 하면 시카고 한국일보의 창간멤버로 편집국장과 주필로 봉직하였으며 은퇴할 때까지 일리노이 주정부의 인권국에서 활약하면서 주류사회에서의 소수민족 권리증진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말년에는 싱크탱크인 <한인사회연구원>을 설립, 미중서부 일대의 한인사회 문제점들을 학술적으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은퇴후 그동안의 연구결과들을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발표되지 못했는데 미망인 이화식 여사와 가족 및 편집진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여러 간행물들에 기고하였던 글들을 모아 <이윤모 박사 칼럼집>을 간행하고 이번에는 컴퓨터에서 찾아낸 원고들을 정리하여 유고집 <믿음에 관한 종교-사회학 논고>를 출간하였다.

이 박사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종교 내지 교회에 관한 관심을 놓치 않않고 종교사회학으로 종교현상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종교적인 신앙에서부터 사회적 신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믿음의 현상을 살펴보고 분석하면서 그 본질을 추적하고 있다.

이미 언급한대로 이 박사가 완성한 원고가 아니라 집필을 목적으로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중복되는 부분들도 있고 연결이 잘 되지않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 박사가 의도하고, 이야기하고 싶던 것이 무엇인지는 이 책에서 분명히 들어났다고 하겠다.

원고가 아니라 자료집을 뒤져서 이같이 엮어내었다는 점에서 편집진들의 노력과 정성과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이 박사의 글은 원래 난해하다. 그러나 요즈음 국내외의 종교현상과 사회현상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의 틀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김상신)

연락처:hansainstitute@gmail.com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