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문화산책/2020년 2월 15일>*<미주 문화계 소식-윤동주 미주 문학상 수상자 조옥동 시인 소개 및 수상작 '서시'>*<이야기 미국사(35)-미국의 고립주의 전통>* <이달의 시-사랑의 열차, 영원한 사랑-박윤수>*<이야기 미국사(34)-미국의 제2차 대각성 운동>*<김준자 작가의 영미문학 산책(16)-토머스 하디의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미주 문화계 소식>

민족의 함성 ‘서시’와 맞닿은 현대 서정·서사시

윤동주 미주 문학상 수상자 조옥동 시인

민족시인선양회 이사장인 조옥동 시인이 연세대학교 미주 총동문회(회장 김원자)가 제정한 ‘윤동주 미주 문학상’을 수상한다. 대상 수상작은 ‘서시’다.

윤동주 문학상위원회(위원장 최연홍)는 LA에서 10여년간 미주 윤동주 기념사업회 등을 이끌어오면서 그의 문학 사상을 널리 알린 조옥동 시인을 제2회 윤동주 미주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지난 9월 발표했다.

최연홍 위원장은 “윤동주의 서시가 민족의 함성이 되었다. 조옥동의 ‘서시’가 되는 생성과정이 조옥동 시인의 윤동주에 대한 사랑과 존경, 연민을 서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윤동주의 짧은 26세의 삶이 조옥동의 서시에 닿아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동주의 아름다운 서정세계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조옥동 시인은 서울 사대를 졸업하고 도미해 미주리주 워싱턴대에서 수학했고 워싱턴대 의대 연구원, UCLA 의대 리서치 스탭으로 근무했다. 조 시인은 1997년 본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입상했고 ‘현대시조’로 등단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신인상, ‘한국수필’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7년 ‘시와정신’ 평론 추천을 받았다.

재미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미주한국문협, 미주수필문학가협, 고원기념사업회 이사를 역임했다. 지난해 제2회 해외풀꽃시인상을 비롯해 제1회 재외동포문학상(1999), ‘현대시조’ 좋은 작품상(2005), 한국평론가협회 해외문학상(2014)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여름에 온 가을엽서’ ‘내 삶의 절정에 만지고 싶다’가 있으며 수필가 조만연씨와 부부수필집 ‘부부’를 펴냈다.

 * 2019-09-16 (월) 하은선 기자

▶ 수상작 ‘서시’ 전문

광복의 함성, 그날 밤 하늘

큰 별 하나
은하수 건너 빛납니다
식민지 시대

27년 짧은 생애,
못다 부른 님의 노래

민족의 서시 되어
사랑되어 지금도 목이 메입니다
돌아서 가다가 다시 돌아와 들여다보았던 그 우물

달이 밝고 구름이 하늘이 파아란 바람이 그대로 흐르지만

한 사나이,
그대로 서 있습니다
영원한 젊은 시인의 초상

청순한 청년의
얼굴,

그의 따뜻한 눈빛
남의 땅 북간도의 겨울은 동토(凍土)의 땅

사라져가는 모국의 언어로 아름다운
동시를 쓰던 소년

식민지에서 더
아름다운 언어를 직조한 무명시인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며

바람에
스치우는 별을 바라보던 눈동자
흑백사진 속 고독과 슬픔, 노스탈지어
밤하늘 당신의 별을 찾는 사람들

북간도에서,한국에서,일본 열도에서, 미국에서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첨탑의 십자가를 바라보던 청년

시가 너무 쉽게 씌어져 괴로워했던 청년

그의 언어가 성서가 되어 읽히고 있습니다.

- 윤동주 미주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조옥동 시인의 ‘서시’ 전문

 

<이야기 미국사 35>

미국의 고립주의 전통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제1주의를 내세우며 고립주의를 들고 나오자 많은 외국들은 물론 미국안에서도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임했던 미국이 어디로 가려는가?하는 의문들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고립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796년 죠오지 와싱톤 대통령이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대통령직을 물러날 준비를 하면서 미국국민들에게 보내는 고별연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연설은 그 후에 수많은 언론매체들을 통해 출판되었는데 미국 정치 특히 외교정책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연설문에서 와싱톤 대통령은 동료 미국국민들에게 어떤 외국과도 동맹을 맺지 말 것을 권고하면서 어떤 외국과 지나치게 친해지는 것도 피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는 “역사와 경험은 외국의 영향이 공화국 정부에게는 가장 해로운 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하였다. 와싱톤은 유럽제국들의 끝없는 음모에 휘말리기 보다는 미합중국의 복지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고했던 것이다.

어떤 한 나라를 지나치게 편애하거나 어떤 한 나라를 지나치게 싫어하면 일방적으로 위험을 작동시키고 다른 나라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감추는데 도움이 도지 않는다 . . . . 왜 우리의 운명을 유럽의 어떤 나라들과 연결 지음으로 우리의 평화와 번영이 유럽사람들의 야욕과 경쟁과 이해와 변덕에 영향을 받게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외국과 얽키는 것을 피하라는 와싱톤의 분명한 호소는 미국의 대중들 사이에 국제관계에서 오래 지속되 오면서 외국에 대한 혐오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엿다. ?와싱톤의 권고에 귀를 기울여서 미합중국은 독립 이후 150년 까지도 정식으로 외국과의 동맹에 싸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고립주의는 일차대전(1914-1918) 이후 와해되기 시작하여 특히 비극적인 2차(1939-1945) 이후에는 세계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끔 되었다. 비록 고립주의가 여전히 지지를 받고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전후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와싱톤의 권고를 팽개쳤던 것이다.

미국은 1949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동맹에 서명할 때까지 정식으로 외국과 동맹관계를 맺어 본적이 없으며 와싱톤의 연설전문은 오늘날도 의회에서 1년에 한번씩 낭독하고 그 취지를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40년 미국 제1고립주의 위원회가 제2차 대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되었으나 1941년 12월 11일 일본이 진주만 폭격을 하자 이 모임은 즉각 해산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달의 시>

사랑의 열차
박 윤 수 시인

사랑의 열차를 타고
80마일로 달려가네.
그러나 나는 물어보지 않는다.

어느 간이역을 통과하고 있느냐고?
내 인생은
강물같이 고요히 흐르다가

거센 파도같이 분노도 했고
험한 돌바닥을
쏟아지는 눈물로 적시기도 했지.

마지막 남은 사랑의 열차를 타고
한없이 달려가 보고 싶네.
종착역이 그 어디인지는 모르나.

영원한 사랑
박 윤 수 시인

인생의 마지막 길 까지
당신과 같이 걸어왔습니다.
이제 당신과 같이 가는 마지막 길
아픔과 번뇌를 다 내려놓고
같이 가는 길 얼마나 기쁩니까?

달빛이 쓸고 간 이 길을
이제 이 땅의 일로
가슴 아파 할 필요 없이
달빛을 맞으며 당신과 함께
걷고 있는 것 얼마나 기쁩니까?

바람도 없이 흐르는 구름에
이 세상의 모든 것 흘러 보내고
흘러 간 것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영원한 사랑만 안고
당신과 가는 길 얼마나 기쁩니까?

*캘리포니아 주 실비치에 거주하며 해외문인협회」(미국)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윤수시인은 『해외문학』 신인상과 『창조문학』 신인상을 수상했고, 그의 대표작 ‘보슬비'‘맨해튼의 별들''소나기’등 3편이 제21회 해외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물리학 박사요 교회의 장로인 박윤수님은 본지(늘푸른나무 .webegt.com)에 <어느 과학도의 신앙고백>을 연재하고 있다.

<이야기 미국사 34>

제2차 대각성(大覺星) 운동

18세기 초에 일어났던 제1차 大覺성 부흥운동에 비하여 제2차 대각성운동은 19세기에 초기에 일어났던 강력한 종교적 부흥운동으로 미국의 개신교회들에게 종교적인 열기를 불어넣어 주었을 뿐 아니라 노예해방운동을 위시해서 여러가지 중요한 사회적 개혁운동의 동력을 더하여 주었다. 이 운동은 촬스 그랜디슨후니(1792-18750)와 헨리 워드 비쳐(1813-1887)와 같은 영력을 가진 부흥사들이 영원한 구원을 받는 방법으로 이 땅에 완전한 사회를 이룩하도록 개신교도들에게 도전함으로 시작되었다.

제2차 대각성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든 켄터기 주의 케인 릿지 부흥회

역사가들에 의하면 제2차 대각성 운동의 계기가 되었던 최초의 주요집회는 켄터키 주의 케인 릿지에서 열렸던 캠프부흥회라고 한다.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등을 포함한 몇몇 교단의 지도급 목사들이 주관하여 7일 동안 열렸던 집회에서 연 2만 여명의 회중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대규모, 야외부흥집회로 19세기 미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강력한 부흥 집회였다고 하며 그 열기는 급속히 전 미주로 퍼져 나갔다.

퓨리탄 조상들의 정통적인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한 18세기의 첫번째 대각성운동과는 달리 ?제2차 대각성운동은 크리스천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받도록 강조하면서 신학에서나 운동에서 자유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제2차 대각성운동의 낙관적인 분위기는 인간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을 반영하는 많은 유토피아적인 공동체가 생겨나는데 기여하였다.

처음에 제2차 대각성운동은 분명한 정치적 아젠다를 갖고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곧 피니와 반노예제도 작가로 잘 알려진 해리엣 비쳐 스토우의 오빠였던 비치는 설교에서 노예제도를 비판하고 음주를 경고하였다. 피니는 “교회는 노예제도에 침묵하고 노예주들을 그들의 공동체에 받아들임으로 노예제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제2차 각성운동은 미국 개신교도들에게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멧세지는 노예제도에 대한 반성을 하게하였고 폐지운동에 앞장서도록 기여하였으며 남북전쟁(1861-1865)발발 이전에 이미 미국안에서 노예제도에 대한 인식의 지역별 격차를 깊게 하였다.

제2차 각성운동 중에 특히 서부 뉴욕중에서 부흥집회가 많이 열렷는데 피니는 이 지역을 불에 탄 지역이라고 불렀다.

이때 인기가 있던 부흥사들 가운데는 윌리암 밀러(1782-1849)가 있었는데 그는 1844년 10월 22일에 종말이 온다고 예언함으로 주목을 끌었으나 그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후에 그의 지지자들은 제7일 안식교회라는 교파를 만들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외에도 뿌리는 다르지만 유니타리안 교회, 몰몬교들이 이 시기에 나타나 미국 종교계의 판도를 다양화 하였다.

<김준자 작가의 영미문학산책 >

김준자 작가의 열 여섯 번째 글

토머스 하디의 <캐스터 브리지의 시장>

1830년 어느 한여름 오후, 실직한 건초 묶기 일꾼 마이클 헨처드는 그의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경기를 보기 위해 걸어서 시골 동네 웨이돈에 도착한다. 배고프고 지친 이들은 음식점에 들어가자 마이클은 술부터 주문하여 마시기 시작한다. 진탕 마신 후, 술값을 치룰 수 없자 남편은 그 동네를 지나던 손님중의 한 사람인 항해사 리처드에게 5기니(guimeas)를 받고 부인과 아기를 판다. 부인 스잔은 결혼반지를 빼서 남편 얼굴에 내 던지고 항해사를 따라 간다.

다음날 아침, 술에서 깬 농부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가를 깨닫고 앞으로 20년 동안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맹서하고 여러 달 동안 아내와 아기를 찾으려 헤맨다. 서편 해변가에 왔을 때 아기와 두 사람이 타국으로 떠난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농부는 아내와 아기 찾기를 포기하고 캐스터 브리지에 정착하여 일을 열심히 한다.

한편 항해사 리처드는 스잔에게 남편의 만행을 일깨우며 그녀를 달래여 결혼하고 캐나다로 이사했다가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동안 스잔은 항해사 리처드와의 결혼이 불법 결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8년 뒤, 리처드가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자 스잔과 딸은 곡물거래가 주 산업인 웨섹스 주()의 작은 도시인 캐스터브리지를 찾아온다. 그동안 전 남편인 마이클은 곡물 장사를 잘 해서 부자가 되었고 지금은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이 되었다. 그곳에서 스잔은 전 남편과 다시 결합한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곡물 전문상인 파프레이가 마이클의 사업에 메네저로 동참하게 되는데 그는 사업능력도 있고, 주인의 예쁜 딸 엘리자베스에게 관심이 크다. 사업은 젊은이의 합리적인 경영 방식에 따라 날로 번창하자 마이클은 그의 입지가 점 점 좁아지는 것을 느끼며 질투심에 파프레이를 해고한다. 이제 파프레이는 자신의 회사를 차리고 두 사람은 경쟁을 하게 되나 번번이 마이클이 실패하여 파프레이가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이 된다.

그동안 병약하던 부인 스잔이 죽으면서 마이클에게 고백한다. 그의 딸은 어려서 죽었고 엘리자베스는 리처드 뉴선의 딸이라고 알려준다. 이렇게 돈, 명예, 사랑까지 하나하나 잃어가는 마이클에게는 18살에 결혼한 아내를 21살에 팔아넘긴 일이 치명적인 원죄(原罪)가 되어 중요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거져 나온다. 이제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을 아버지로 알고 있는 의붓딸 엘리자베스뿐이다. 두 사람은 작은 씨앗 가게를 내고 그런대로 생활을 유지 한다. 파프레이가 가난하고 외로운 마이클을 방문하다가 엘리자베스와 가까워지면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고 준비한다.

그동안 죽은 줄 알았던 리처드 뉴선이 스잔과 엘리자베스를 찾으러 캐스터브리지에 온다. 마이클은 일 파운드의 금화를 결혼 선물로 가지고 결혼식에 참석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이미 법적으로 뉴선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고 결혼 식 후 힘없이 그곳을 떠난다. 한때는 세상을 흔들고 포악했던 그도 마음이 약해져 자신이 맹서하던 20년의 금주 기간이 만료되자 또 다시 심하게 술을 마시다 죽는다.

항상 바쁜 리처드 뉴손은 그의 딸과 사위 파프레이의 결혼 생활이 안정되자 다시 항해의 길을 떠난다.

이 책은 토머스 하디가 46세에 출간하여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한 책이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은 일반적 관행에서 벗어나 아내 판매라는 충격적 소재를 등장시킨다또 소설의 등장인물이 귀족이나 젠트리 계층을 배제한 것도 당시 사회적으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일으킨 작품이다.

*김 작가는 연세대학교와 일리노이 주립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 피츠버그대학, 3M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인디아나 퍼듀대학의 강사를 역임했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실비치에 거주하면서 YTN 방송과 신문 등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