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문화산책/2020년 11월 15일>*<이달의 시-11월-오세영>*<이야기 미국사(35)-남군의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1807-1870)) 장군>*<미국 음악 산책-클래식과 팝을 함께 키운 레너드 번스타인.>*<이달의 시-11월이 전하는 말-반기룡>*< 이야기 미국사(34)-남북전쟁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남북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소개한 윈슬로 호머>*<김준자 작가의 영미문학산책-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달의 시>

11월 / 오세영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 보면
다들 떠나 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오세영(吳世榮, 1942- )전북 영광 출생, 1965년에《현대문학》에 〈새벽〉이,1968년네〈잠깨는 추상〉이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무명 연시》,《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이 있다.한국시인협회상, 소월시 문학상,정지용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야기 미국사 35>

남북전쟁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

남군의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1807-1870)) 장군

로버트 E. 리(Robert E. Lee)장군은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남군의 사령관이었다. 결국 북군에 의해 패배했지만 리 장군은 명석한 전략가요 영감을 주는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다. 비록 패장이지만 용감하였던 그는 남부의 자존심의 상징이었고 전후에도 남부사람들에게는 거의 종교적 경지의 인물로 존경을 받았다.

버지니아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리는 육군사관학교를 다녔다. 그는 학교에서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 졸업할 때에는 2등을 하였으며 웨스트 포인트 역사상 재학중 벌점이 전혀 없는 유일한 모범생이었다. 멕시코 전쟁때(1846-1848)에는 미국을 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미국을 분리하는데 반대하였으며 노예제도는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버지니아 주의 대표로서 버지아가 소속한 남부군을 지도하는데 동의하고 충성을 다하였다.

장군으로서 리는 온갖 역경을 다 겪었다. 전쟁 초기에 남군은 북군보다 주민도 적었고 도로나 철도도 적었을 뿐 아니라 공장이나 산업시설도 부족하였다. 그럼에도 북부 버지니아를 기반으로 했던 리의 남군들은 놀라운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1862년 매리랜드의 안티템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이후 1863년 북부로의 진격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게티스버그에서 패퇴하고 말았다.

1864년 유리시스 S. 그랜트가 북군의 사령관이 되자 처음으로 리 장군의 남부군들을 효율적으로 공격하였으며 1865년 봄에는 지치고 굶주린 남부군들이 전멸상태에 빠져서 1865년 4월 9일 리 장군이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하였다.

항복한 후에 리 장군을 남부군들에게 패배를 정중히 받아들이라고 강조하였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책임감과 명예심은 그로 하여금 남부의 영웅으로, 패배한 남부의 “낭만적인’ 인물의 중심으로 받들어졌다. 남부 지역의 수많은 거리들과 다리들이 아직도 전쟁 영웅 리 장군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이후 그는 미합중에 대한 반역죄로 기소되었지만 끝내 재판은 받거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

*The Intellectual Devotional American History

<미국 음악 산책>

클래식과 팜을 함께 키운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박학한 미국의 음악가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 미국 고전음악계의 대표적인 지휘자였으며 20세기 후반의 작곡가로서 그가 지휘한 뉴욕필하모니 심포니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그는 미국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뮤지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수많은 인기곡들의 작곡자로서 죠오지 거슈인 이후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다양한 음악을 미국음악으로 정착시킨 음악가이다.

매사츄세츠주에서 우크라이계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번스타인은 어렸을 때 피아노 영재교육을 받았으며 1939년 하바드를 졸업한 후 2차대전 동안에 안정적인 음악가로서의 일자리를 얻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결국 1943년에야 뉴욕필하모니의 지휘자로 정착할 수 있었다.

거슈인과 마찬가지로 번스타인은 유럽고전음악과 미국의 팝음악에 매료되었다. 지휘자로서 그는 말러, 모찰트, 하이든 등 유럽의 전통적 음악에 몰두하는가 하면 자신이 교향곡을 둘이나 직접 작곡하였다.(1944년에 심포니 1, 에레미야를, 1949년에는 심포니 2, 불안의 시대)

번스타인은 대중음악에도 두각을 나타내어 피터 팬(1950),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 같은 뮤지컬과 말로 브론드가 주연한 영화 On the Waterfront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면서 1957년에는 공식적으로 뉴욕 필하모니의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자유주의 민주당이였던 번스타인은 케네디 대통령과 깊은 교우를 가지면서 민권운동을 지지하고 뉴욕필하모니에 처음으로 흑인을 채용하는 등 인종차별철폐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케네데 대통이 암살당한후 그를 추모하는 미사곡을 작곡, 와싱톤의 케네디 센터에서 직접 지휘하기도 하였다.

정열적이고 에너지가 넘쳐났던 번스타인은 무대에서 종종 지휘자로서의 관행들을 깨어버림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휘할 때 지나치게 팔을 휘젔거나 음악에 도취되어 연주중에 무대에서 너머지는 일도 있었다. 그는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까지도 지휘를 하였다.

번스타인의 이태리 미란에 있는 유명한 오페라 연주장에서 처음으로 연주한 미국인의 기록을 세웠다.

번스타인은 1989년 크리스마스에 베르린장벽 제거를 축하하기 위해 베르린에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직접 연주하였다.

 

<이달의 시>

11월이 전하는 말-반 기 룡

한 사람이 서 있네
그 옆에 한 사람이 다가서네
이윽고 11이 되네
서로가 기댈 수 있고 의탁이 되네
직립의 뿌리를 깊게 내린 채
나란히 나란히 걸어가시네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꿈쩍하지 않을 곧은 보행을 하고 싶네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만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올곧은 모습으로
어기여차 어기여차
장단에 맞춰 풍악에 맞춰
사뿐히 사뿐히 걸어가시네

삭풍이 후려쳐도
평형감각 잃지 않을
온전한 11자로 자리매김하고 싶네
(반기룡·시인)

*반기룡-충북 음성 출생. 청주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2005년 대한문학세계 등단. 2012년 4월 반가운으로 가수 데뷔.최근작품집으로는 시집 <반가운 포옹, 찬샘의 시 7>이 있다.

<이야기 미국사 34>

남북전쟁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
남북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소개한 윈슬로 호머

남북전쟁의 참상을 현장에서 직접 소개한 윈슬로 호머

1861년 남북전쟁 초반, 하퍼(Harper) 잡지사는 25세의 젊은 자유기고삽화가를 전장에서의 생생한 모습들을 스케치 하도록 전장터로 파견하였다. 조숙한 예술가인 윈슬로 호머(1836-1910)는 수 개월동안 북군과 동행하면서 지친 군사들이나, 허둥대는 군마들을 강력한 필치로 스켓치하여 뉴욕의 잡지사로 보냈다. 호머의 대담하고 극적인 남북전쟁 그림들은 당시 가장 인기있고 존경받는 잡지에 의해 출판되면서 즉각적으로 그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솓구쳐 올랐다.

호머는 열 아홉살 때 명성과 행운을 찾아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전쟁그림으로 명성을 얻엇지만 수채화에 전념하기 위해 상업미술을 점차 포기하였으며 그는 결국 미국의 전형적인 미술가로서의 명성을 얻게되었다.

1883년 호머는 뉴욕을 떠나 외로운 메인주로 들어가 그곳에서 남은 생애를 보냈다. 어부들과 표류목들, 바위로 덮힌 해안 등이 그의 최고의 작품들에 영감을 넣어주었다.

호머는 외로운 예술가로서의 길을 택해 쉽게 어는 분야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개척하였다. 허드슨강 학파와는 달리 호머는 자연에 감상상적으로 빠져들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인상파에 호감을 가지고 유럽을 여행하였을 적에도 호머의 수채화는 주제를 중요시 하는 점에서 미국적인 것이었으며 자연경관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강력하였다.

호머는 생시에 그가 20대에 쌓아 올린 남북전쟁 당시의 명성으로 큰 영향을 끼쳣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그가 사랑했던 메인주 해변가의 수채화들로 미국예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남북전쟁 당시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전투 장면들은 뉴욕시에 있는 Cooper Hewitt 뮤지움에서 볼 수 있다.

 

<김준자 작가의 영미문학산책 >

김준자 작가의 스물 다섯 번째 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주인공인 스티븐 데들러스가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아이들은 그의 성이 라틴어 같다고 놀린다.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 드린 스티븐이 부끄러워하자 친구들은 한층 더 그를 못살게 굴고 어떤 아이들은 그의 대장 노릇을 하려 든다.

이런 저런 일들로 학교는 그에게 힘든 곳이다. 스티븐에게 행복한 날은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고 친구들을 보지 않는 날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스티븐이 몹시 아파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을 때다. 아일랜드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날이 1891106일이었던 것을 지금도 그는 기억한다. 아버지 사이몬 데들러스는 Mr.파넬을 존경하고 모든 면에서 그의 편이다. 언제나 영국을 지지하는 아주머니 단테 리오단은 파넬를 경멸할 뿐 아니라 그를 병자로 취급하고 무리를 모우는 선동자로 본다. 스티븐은 의견이 다른 두 분을 보면서 방학 동안 Mr.파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지만 파넬에 대한 그들의 다른 의견은 스티븐에게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공휴일이 지나고 학교에 돌아간 스티븐은 그가 다니는 교회 학교의 도란 신부님으로부터 무섭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안경이 깨져서 새 안경을 기다리는 동안, 딴 생각을 하면서 안경 핑계를 댄다고 신부님이 스티븐을 때린 것이다. 반의 학생들 모두가 스티브 편이 되어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불평을 하라고 종용한다. 겁이 난 스티븐은 벌벌 떨면서 교장선생님을 찾아간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교장선생님은 친절하게 도란 신부님에게 잘 말씀드린다고 하신다. 스티븐은 사무실을 나와 학생들에게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전하자 모두가 스티븐을 얼싸안고 기뻐한다.

그이후로 스티븐의 학교생활은 한결 편해졌지만 한 가지 일이 또 생긴다. 선생님 중의 한분이 스티븐이 쓴 에세이에서이단 신앙을 지적하신 것이다. 스티븐은 바로 그 구절을 고치고 그것으로 끝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 몇 명이 몰려와서 그가 이단자 일뿐 아니라 좋지 않은 낭만 시인, 바이론을 좋아한다고 그를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몰아친다. 스티븐은 그들에게 답을 하느라 애를 쓰다가 처음으로 예술과 도덕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것이 일생동안 그의 과제가 된 것이다.

스티븐은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아버지가 어릴 때 무척 좋아하시던 곳도 방문하고 그의 어릴 때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밤마다 술 취한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면서 그의 추억담을 듣느라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계기가 되어 스티븐은 자신이 싫은 것, 좋은 것을 파단하고 분별할 수 있게 된다.

학기 말에 스티븐은 여러 가지 상을 받았다. 그것으로 여러 곳에 선물을 하고 나머지를 자기 방에서 대부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운이 따르지 않아 돈이 바닥이 날 즈음, 긴 분홍 드레스를 입고 찾아 온 여인으로부터 유혹을 받고 16살에 성()을 경험하게 된다. 스티븐은 샌 프란시스 피정에서 여자들과의 성 관계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이후부터 성직자들의 설교마다 강조하는 천당과 지옥 중에 지옥이라는 말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밤이 되면 그의 죄로 인해 지옥에서 받을 고통에 대한 꿈에 시달리다가 스티븐은 도시에 있는 이름 없는 작은 교회를 찾는다. 그곳에서 나이 드신 인자한 목사님에게 고백을 한 후에 영혼의 평안을 얻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을 결심한다.

이후, 스티븐은 학교에서 모범생이 된다. 철학자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고 선생님으로부터 칭찬도 듣는다. 어느 날 학교 교장 선생님이 스티븐을 사무실로 불러 상담을 한 뒤 가톨릭 제수이트 수사 교육을 받을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가고 물으신다. 스티븐은 일생동안 성직자가 된다는 것을 아주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말씀드리고 그때부터 성직자가 되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적이 된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자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의문이 더 많아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 의심이 간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귀던 여자 친구 에마와 멀리하고 같은 반 학생들인 다빈과 린치와 어울려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고 심리학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눈다. 다빈은 스티븐에게 아이랜드를 먼저 생각 하라고 건의하고 스티븐은 아일랜드는 그가 어려서부터 뿌리를 내린 곳이라고 답한다. 어느 날 카니발에서 만난 에마가 왜 자기를 멀리 하는 가고 묻자 자신은 원례 중( monk)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답한다. 에마가중이 아니라 이단자겠지.”라고 톡 쏘자 스티븐은 그녀와도 끝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븐은 세계 평화를 위한 탄원서에 사인하지 않고 평화주의, 아이랜드의 부흥, 교회일 등도 스티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그를 반 사회주의자로 또 이기주의자로 불리고 많은 친구들로부터 반목을 산다. 그의 친구 중에는 그가 신앙을 되찾도록 그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의 기도는 종내 응답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븐은 더 이상 혼자인 것이 두렵지 않다. 만일 아름다움을 찾고 아름다움을 이해하기위해 아이랜드를 떠나야 한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떠날 생각을 한다. 스티븐은 그의 물건들을 챙기어 아이랜드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결심을 한다. 그러나 언제고 아이랜드에 대한 그의 생각과 아이랜드 삶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을 한다.

*김 작가는 연세대학교와 일리노이 주립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 피츠버그대학, 3M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인디아나 퍼듀대학의 강사를 역임했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실비치에 거주하면서 YTN 방송과 신문 등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